지식

세마 코랄의 ‘연결’ 주제어와 SeMA 의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겨난, 시각문화/예술과 미술관의 (동)시대적 과제에 관해 논하는 지식을 선보입니다.

글과 웹 프로젝트를 함께 수록해서 세마 코랄이 지향하고 생산하는 지식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록 보기’는 수록된 글과 웹프로젝트의 제목을 부호-숫자-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공개된 날짜를 보여줍니다.
‘목록 다운로드’를 누르시면 발행순으로 수록된 글의 목록을 정리한 전자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2021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1부: 그것이 그곳에서 그때

    저는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것이 그곳에서 그때―김범과 정서영의 글과 드로잉』이라는 작은 책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책의 부제에 쓰여있듯이 저는 김범과 정서영 두 작가의 글과 드로잉을 중심으로 책을 엮어 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에 작가의 글과 드로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에는 두 작가의 잘 알려진 조각과 회화 작품 몇 점을 비롯해 그에 대한 저의 해석이 두 작가의 글이나 드로잉과 함께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범은 회화에서, 정서영은 조각에서 그 고유하고 매혹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졌지만, 동시에 두 작가는 다양한 형식의 글과 드로잉을 발표해 온 작가들입니다.

  • 2021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 사랑과 야망

    이진실: 자유롭게, 조금은 편하게, 이번에 출간한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 1 , 이 책과 관련해서, 또 이 책에서 건드리고 있는 페미니즘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김화용 작가와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책을 오늘 처음 받아봤어요. 책이 참 예쁘게 나와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평론상 수상 이후에 2년 동안 이렇게 …

  • 2023 〈SeMA-하나 평론상〉 공모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평론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논리력으로 미술과 세계의 변화를 꿰뚫는 비평다움’을 보여 줄 평론가를 찾습니다. 2023년 평론상 응모평문 접수는 이메일로 8월 1일부터 25일까지 입니다. 2023 〈SeMA-하나 평론상〉의 수상자는 2천만 원의 상금에 덧붙여, 미술관과 함께 평론의 반경과 깊이를 키워갈 2024-2025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얻습니다. 한국 미술 비평을 새롭게 할 여러분의 적극적인 응모를 환영합니다. 평론을 매개로 상생하는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실천은 계속됩니다.

  • 2023 〈SeMA-하나 평론상〉 심사평

    2023 SeMA-하나 평론상은 심사위원장 조주연(미학자), 심사위원 곽영빈(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 교수), 김상민(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신승철(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안소연(미술평론가)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운영부장의 심사로 진행되었다. 심사는 1차 서면, 2차 토론, 3차 인터뷰의 단계를 통해 총 28편의 응모작이 검토되었다. 후보작 3편으로 압축된 3차 인터뷰 심사는 응모작의 비평적 논리 구조와 응모자의 문제의식을 심도 있게 다루는 질의응답이 오갔고,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단의 토론을 통해 응모작의 밀도 있는 완결성과 더불어 비평적 태도와 잠재성이 우수한 수상자를 결정했다.

  • 2023년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1부: 송년회: 올해 우리가 본 것들

    집담회 1부 〈송년회: 올해 우리가 본 것들〉은 2021년 SeMA-하나 평론상 제4회 수상자 이연숙이 꾸렸다. 그는 비평가이자 그 경계를 넘어 활동가와 기획자로 실천하는 남웅(2회 수상자)과 이진실(3회 수상자)을 토론자로 초청하여 올해 미술계를 메운 전시와 작가에 대한 ‘애매한’ 이야기를 나눈다. 공적 대화와 사적 대화의 사이에서, 진지한 비판도 ‘인상 비평’도 아닌 그런 각자의 (비평)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할 수 있는 그 모호한 (비평적) 경계들을 점검해 본다.

  • 2023년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 세마 코랄의 씨앗과 동료

    집담회 2부 〈세마 코랄의 씨앗과 동료〉는 2021년 오픈한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이 맞이한 3주년을 기념하고 또 다른 가능성과 내일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세마 코랄’은 웹-온라인을 매개로 지식 생산자와 사용자가 서로 교차하며 다양한 형태의 미술 지식을 탐구하고 연결 짓고 확장하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기획편집자 김진주와 권정현, 비평가 윤원화, 이여로가 한자리에 모여 세마 코랄이 그동안 뻗어 낸 연구의 가지들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씨앗과 동료에 대해 논의한다.

  •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저급 이론들의 연합〉: 후기

    이 글에서 나는 지난 2022년 9월 총 3회에 걸쳐 진행된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저급 이론들의 연합’〉의 녹취록을 위한 후기 겸 안내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음성 기록을 문서화한 (증언 또는 증거) 자료를 의미하는 녹취록은, 해당 프로젝트 내에서는 라운드테이블의 기록물이라는 보다 유연한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다. 현장에서 진행된 대화가 녹취록의 형태로 재구성되면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세마 러닝 스테이션에서 폭죽처럼 터지던 웃음들, 눈맞춤과 끄덕임들, 무엇보다 영원할 것처럼 흐르던 짧은 침묵들이 행간 사이로 매끄럽게 숨어들었다.

  •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1. 여성 퀴어 작가의 콜렉티브

    오늘은 연휴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올해 저는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저급 이론들의 연합’이라는 제목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총 3회 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는 세 분과 함께 ‘여성 퀴어 콜렉티브’라는 제목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할 것이고, 두 번째 자리에서는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세 번째 자리에서는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이어갈 것입니다. 퀴어 이론가 주디스 잭 할버스탐(Judith Jack Halberstam)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참조해서 ‘저급 이론(low theory)’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올해와 내년의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중심 개념으로 삼고자 합니다.

  •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2.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오늘 라운드 테이블에서 함께해 주실 이여로 님과 강덕구 님은 이번과 같은 계기로 꼭 만나 뵙고 싶었던 분들이라서, 저도 지금 이 자리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번 두 번째 라운드 테이블 자리에서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태도 또는 정체성’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아마추어리즘이 무엇인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적인 도구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어떠한 삶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위계와 마찬가지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위계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최근 두드러지는 활동을 시작한 두 분과 함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예시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3. 실패의 퀴어 예술

    라운드테이블 ‘실패의 퀴어 예술’에 이반지하, 양승욱, 문상훈 세 분을 모신 데에는 엄청나게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고요. 제가 이 자리에서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분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계기로 ‘실패’라는 개념을 함께 공적으로 다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패가 곧 저항이므로 퀴어는 곧 실패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퀴어 이론의 한 명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싶고, 잘나가고 싶고, 돈도 벌고 전시도 많이 하고 싶은 퀴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세속적인 욕망을 가진 퀴어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희는 이런 질문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 ‘비체적’ 정서의 내장 만지기: 이미래의 《캐리어즈(Carriers)》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공포의 권력』에서 정식화한 개념인 비체(卑體 abject)는, 썩는 살과 내장, 오물과 토사물과 같이, 문화적 인간인 우리에게 일종의 ‘경고’처럼 즉각적인 혐오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들을 말한다. 비체는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과 죽음, 외부와 내부, 무엇보다 ‘나(주체)’와 ‘너(타자)’ 사이의 경계라는 구성물의 권위를 끈질기게 모욕한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결코 제거할 수 없기에 공포스러운 오물인 비체는 일종의 ‘즉자적 복수’로서 주체에게 언제나 유유히 되돌아온다.

  • 〈진격하는 저급들〉 1장: 슬픈 퀴어 초상

    ‘셀피 페미니즘(selfie-feminism)’은 지난 10여 년간 페미니즘─행동주의의 한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통상 ‘셀카’로 번역될 수 있는 ‘셀피’는 휴대용 전화기의 보급과 함께 널리 퍼진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자화상 또는 초상 사진)의 한 종류로, 주로 여성들이 찍는다는 편견 또는 사실 때문에 진지하지 못한 사진의 하위 장르로 취급되어 왔다. 1992년생의 젊은 예술가이자 제4세대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오드리 월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그는 미술사적으로는 권위있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널리 비판 받아온 익숙한 이미지들을 차용해, 자기 자신을 주인공 삼는 셀피를 찍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셀피 시리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업 중 하나는, 통증관리센터나 병원을 배경으로 환자용 의복이나 장치를 착용한 채 패션지 스타일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것이다.

  • 〈진격하는 저급들〉 2장: 단식 광대는 왜 춤추는가

    깡마른 채로 웃고 달리고 춤추는 아서 플렉의 몸은 〈조커〉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집요하게 묘사되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감히 추측하건대 〈조커〉를 즐길 수 없었던 많은 관객들은 영화가 표현하는 바로 그 몸의 아름다움에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서 플렉의 기이할 정도로 마른 몸은 그 자체로 그를 관통했던 정신적⋅신체적 학대와 고된 노동의 시간이 축적된 증거물이며, 그가 가진 “부정적인 생각들”만큼이나 그의 유일한 자산이다. 그의 몸은 먹지 않음으로써 말없이 배신하고, 저항한다. 무엇에 대해서? 어머니와 함께하는 식사가 강제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그를 상처 입히는 동료들과의 친목에 대해서,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일할 수 있는 몸의 규격에 대해서, 무엇보다 그의 인간됨을 보장하는, 섭취와 배설이라는 유기체적 절차에 대해서.

  • 〈진격하는 저급들〉 3장: 뉴플 스케치

    부치들 팸이든 복장도착자든 이곳에 모인 몸들은 서로의 질량에 대응해 서로에게 감응하고 충돌한다. 잠재적으로 당신을 원하거나 혹은 완전히 무관심한, 그러므로 수치심을 유발하는 에로틱한 다른 몸들 사이에 놓인 당신은 자신의 몸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감각한다. 이제 내 몸은 단순히 내 것만은 아니다. 내 몸은 다른 몸들 사이에 놓인 몸, 다른 몸들과 관계하는 몸, 그러므로 다른 몸들에게 다른 쾌락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몸이다. 이곳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이 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낯선 이들과 어울리기, 무엇보다 멈추지 말고 춤추기. 이곳 바깥의 논리로는 온전히 포착될 수 없는 모호한 친밀성의 제스처를 발명하고 마주치는 몸들 사이의 힘을 증폭하기. 그러므로 이 몸은 매개체다. 이 몸은 사용되기 위해 여기 있다.

  • 〈진격하는 저급들〉 4장: 사이버펑크 혹은 살아남기의 장르

    그러니까 이 뒤로 이어질 이야기는 항상 답이 없는 상황적 비극일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에 대한 나의 건설적인 피드백이다. 나는 〈엣지러너〉의 결말을 본 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데이비드를 살릴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데이비드가 그의 연인인 루시와 함께 달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답은 사이버웨어의 디자인에 있었다. 알다시피 인간성의 ‘엣지(경계)’를 향해 내달리는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범주화하는 것은 그것의 주제만큼이나 특정한 미적 스타일이다. 어둡고, 축축하고, 암울한 도시의 전망 속 뿌옇게 빛나는 네온사인, 미래적인 인상을 주는 가죽⋅라텍스⋅금속 재질의 의상들, ‘사이버 스페이스’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특수한 (고글 모양의) 기기들과 글리치 섞인 홀로그램들이 자아내는 인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 〈진격하는 저급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

    이 글은 좋았던 우리의 옛날을 회상하거나 트위터에게 이른 작별을 고하는 그런 종류의 글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 지구적인 초상집 분위기를 목도하고 원래 하려던 말을 잊어버린 종류의 그런 글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싸워도 그것은 끝끝내 ‘사적인 해프닝’에 머무른다. 심지어 그것은 아무런 결론도 대안도 생산해낼 수 없는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의 시간낭비로 치부된다. 물론,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데도 말이다! …지금처럼 트위터를 계속한다면 머리가 망가지고 그것이 주는 쾌락에 구속되어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밤낮으로 해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오직 지금보다 더 한심하고 쓸모없게 구는 것이다. …헛소리들은 그 어떤 의미나 가치로도 환산될 수 없는 극치의 쓰레기들이며, 우리는 이것으로 망가진 우리의 머리를 통통히 살찌워야 할 것이다.

  • 〈진격하는 저급들〉 6장: 레즈비언 황무지ㅡ비가시성에 대한 노트

    기세 좋게 계획했던 연재 순서에 따르면 〈진격하는 저급들〉의 마지막에 해당할 이 글은 지난 몇 년간 서울에서 발표된 ‘(여성) 성소수자-퀴어 시각 예술’의 경향성을 다뤄야 한다. 물론 나는 이 주제에 강박적인 수준의 관심이 있다. 지난 10년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 주제에 관해 쓰고 또 말해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재미만이 동기는 아니었다. 매번 내게 이 주제, 그러니까 반복하자면 (여성) 성소수자-퀴어 시각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만큼이나 고생스럽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작업처럼 느껴졌으니까. 더구나 나만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여성) 성소수자-퀴어 시각 예술이라는 이름의 황무지에 들어가고 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개간 작업을 해왔으며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진격하는 저급들〉 들어가며: ‘젠더 문제’

    이 글은 2021년 SeMA-하나 평론상의 특전으로 2년간 지원받은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진격하는 저급들〉 연재의 서문에 해당한다. 작년 가을 진행한 《저급 이론들의 연합》 라운드테이블에 이어 〈진격하는 저급들〉은 (시각)예술문화 전반에서 포착되는 퀴어 부정성(queer negativity)의 존재 양식에 관심을 둔다. 퀴어 부정성은 1990년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처음 ‘레즈비언&게이 [담론]’의 사이에 위치한 ‘&(and, 그리고)’라는 분리의 표시를 퀴어라는 “공동 전선”을 통해 다시 사유하자고 제안한 이후 “퀴어 이론의 정상화(규범화)” 혹은 ‘탈정치화’라 부를 만한 시점이 도래한 상황에서 다시금 퀴어를 정치적으로 급진화하는 시도에 가깝다.

  • 그리기, 만지기, 가늠하기

    ‘본 적 없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은 작업하는 나를 계속 따라다닌다. 나에게 생생하게 반짝거리는 순간은 비시각적인 감각들과 함께 구성되기 때문에 종종 시각보다 강력하게 나를 작업하도록 추동하는데, 이 때문에 나는 그리기의 대상이 눈앞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미지의 것을 꺼내어 형태를 입히기 시작하면 그림은 금방 관념의 세계로 들어가고 관념의 세계란 나의 과거 시각 데이터의 집합이므로 내가 모르는 형태일 확률이 낮다.

  • 부재를 스크리닝하기: 임철민의 〈야광〉

    장한길은 ‘비경험 세대의 경험’과 ‘포스트메모리’ 개념을 ‘부재’라는 키워드로 엮어 설명하고, 이를 성소수자의 크루징이라는 문제와 연결하며, 이 주제를 다룬 실험적 영상 작업인 임철민의 〈야광〉을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