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 세마 코랄의 씨앗과 동료

김진주
김진주는 미술작가, 큐레이터, 시각예술문화 연구자, 팟캐스트 진행자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Home Works 7》(Ashkal Alwan, 2015),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고향》(서울시립미술관, 2019)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개인전 《지진계들》(합정지구, 2020)을 열었다.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의 메인 진행자(2015~2016)였고,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2019~2021)를 공동 기획, 편집했다. 세마 코랄(SeMA Coral)(2021~)의 외부 기획자로 창간 기획과 편집을 맡았으며, 이어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2021.10.~2023.9.)로 일했다.
권정현
권정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포스트매체 조건에서의 예술 매체: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매체 개념을 중심으로」(2018)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바깥 일기》(YPC SPACE, 2022), 《믿음의 자본》(SeMA벙커, 2021),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다양한 미술 출판물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에서 ‘총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전시 공간 YPC SPACE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윤원화
윤원화는 시각문화 연구자이다. 도시와 미디어, 미술과 시각문화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동시대 서울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말과 글로 기록하고 매개하는 데 주력한다. 저서로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으며,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이 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일민미술관, 2014)를 공동 기획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서울시립미술관,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다.
이여로
이여로는 지원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블로그, 독립출판, 해적번역 등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각자의 만들기 속에서 가치나 인정, 행동의 체계가 정립되는 과정을 ‘아마추어리즘’이라 부르며 예술을 비롯한 모든 만들기에 주목한다. 『긴 끈』(아티스트북),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이동휘 공저, 이론서), 『미술 구술: 전시 보기와 말하기 매뉴얼』(임가영 공저, 워크북) 등을 출판하며 현장 비평과 연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집담회 2부 〈세마 코랄의 씨앗과 동료〉는 2021년 오픈한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이 맞이한 3주년을 기념하고 또 다른 가능성과 내일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세마 코랄’은 웹-온라인을 매개로 지식 생산자와 사용자가 서로 교차하며 다양한 형태의 미술 지식을 탐구하고 연결 짓고 확장하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기획편집자 김진주와 권정현, 비평가 윤원화, 이여로가 한자리에 모여 세마 코랄이 그동안 뻗어 낸 연구의 가지들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씨앗과 동료에 대해 논의한다. ― 세마 코랄

2021년 10월 공개한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 http://semacoral.org )이 운영된 지 벌써 3년째를 맞았다. 세마 코랄로 줄여 부르는 이 웹사이트에서 그간 100여 편에 이르는 글과 웹 매개 작품이 분화하며 발생했다. 그 수만큼의 필자(생산자), 그보다 많은 수의 독자(사용자)가 미술계의 어떤 지적 생태계를 만드는 지금이야말로 세마 코랄에 대한 진단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집담회를 통해, 기존 필자 중 지속할 수 있는 시간성과 함께하는 생성을 상상하는 실마리가 될 ‘씨앗’과 ‘동료’라는 화두를 일찌감치 던져 주었던 윤원화와 이여로, 그리고 기획편집자(매개자) 배턴을 잇는 김진주와 권정현이 모여 세마 코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해 본다.

그런데 통상 미술비평을 논해 온 집담회인데 이번에는 세마 코랄을 주제로 삼은 까닭이 무엇일지 의아할 수 있다. 그 당위를 말하는 것은 지난 3년간 세마 코랄을 꾸려 온 김진주에게 오롯이 주어진 숙제이다. 다른 대화자들은 이 질문에서 되도록 자유롭기를 바란다(그래야 이 자리에서 논하는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 같기에). 웹진인지 지식 플랫폼인지 이론 무크지인지 미술비평지인지 정체를 규정하기 어렵고, 사실 독자의 정체나 사용성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이 세마 코랄이 미술관의 한 사업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지식을 자신의 동력으로 적극적으로, 필수적으로 쓰고야 마는 미술의 생리가 자리한다. 세마 코랄에서 보듯 정립된 미술사, 아방가르드의 감각학, 위반의 문화이론, 최신의 기술매체론 등 세상의 모든 지식은 미술이라는 것의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미술계가 지식의 잡식 기계 같기도 하다면 과장일까? 한편 미술계에서 지식을 향한 욕구는 그것을 흡수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자기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결과 또한 세마 코랄의 한 부분을 중요하게 채운다. 이러한 다차원적 지적 욕구의 결실로 비평이 생산되는 것인데, 그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비평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벌어진다. 이 간극을 횡단하는 씨앗이 될 동료는 누구일까? 바로 세마 코랄이 자극하고자 했던 연구하는 퍼블릭(public)이다.

윤원화는 문서에 기반한 대화와 도움의 장으로서 세마 코랄의 독특한 장소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마 코랄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연쇄 반응으로 특징지어지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보다는 학술 저널에 가깝다. 그러나 학술 저널의 지식 생산이 현상을 설명하는 보편적 원리를 체계화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통제·계획하는 도구의 제공에 주력하는 데 반해, 세마 코랄이 연결하는 예술적 생산자들은 기존 지식 체계에 포섭될 수 없는 것들을 보살피는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어떻게 미래를 방치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짐과 현재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할까? 모든 문서는 서로 다른 지점들을 연결하는 편지이자, 그들 각자가 위치한 상이한 시간의 노선들을 합선시키는 잠재적인 시간 여행 장치다. 문서를 우리가 가보지 못할 미래 또는 내가 될 수 없는 당신에게 보내는 작은 꾸러미로 대할 때, ‘공공화하다(publication)’라는 본연의 의미에서 출판의 장소인 세마 코랄은 자부심 강한 예술 공동체보다는 차라리 그런 영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밀수꾼들의 연결망으로 나타난다. 비공식적이고 자연 발생적인 문지기로서, 밀수꾼들은 무엇을 몰래 들여보내거나 빼돌릴지 판단해야 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숨길지 궁리해야 한다. 이는 경계의 감시와 대조되지만 교통을 위한 교통을 찬미하는 경계의 파괴와도 구별된다.

이여로는 민주적 상징성을 위한 표어가 아닌 실제 현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마 코랄이 표방하는 ‘모두의 실험실’을 검토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개념적 해제와 경험적 재구축을 들여다본다. 이여로가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 웹 플랫폼이 급증했다. 자주적인 활동 기반이 된 곳들이 있는 반면, 기업 단위의 편승이나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혹은 성폭행 가해자가 운영하는 약탈적 웹진도 횡행했다. “지식과 그 생산자를 생태계의 관점에서 고려”한다는 세마 코랄의 소개에 비춰봤을 때 이는 생산적 순환을 어지럽히는 요소였다. 운영 주체가 서울시립미술관인 세마 코랄은 신뢰성 문제에서 벗어난 동시에 추상적인 공공성 이상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후 뻗어 가는 세마 코랄 글들에 독자이자 필자로 참여하면서 이여로는 글과 지면이 형식적 상호모방을 시도하고, 관심의존성의 샛길을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지식 생산의 계기(“씨앗”)와 과정, 결과가 분리되지 않고 결과물로서 글이 자신의 영향 관계를 가시화하며 여기에 ‘프로세스’와 ‘커뮤니케이션’의 요소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경험이었다.

권정현은 새로운 시대의 연결로서 세마 코랄이 내포한 뜻, 즉 산호처럼 다양하고 유연하게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오늘날 동료와 공동체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이전의 동시대 미술이 익명의 사람들과 하나의 씬을 공유하며 모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느낌을 주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동시대 미술은 잘 그려지지 않는 경계로 존재한다. 이전처럼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기 어려운 시기에 세마 코랄은 다른 종류의 연결과 공동체를 꿈꾼다. 그것은 키워드와 키워드로 연결되는 연약하고 느슨한 관계이고, 관심사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관계이며, 확고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 애매하고 의외인 것들의 모임이다. 하나의 중심으로 모두가 모여들기를, 모두가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이야기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평평하고 넓고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의 경계가 모호한 모임을 상상한다. ― 김진주


김진주: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3년간 〈모두의 연구실 코랄(SeMA Coral)〉이라는 웹사이트의 기획, 편집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학예연구사이기 전에는 외부 기획자로 세마 코랄 웹사이트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권정현 님은 저에 이어서 기획 편집자, 서울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서 세마 코랄의 기획, 편집을 맡아서 하실 예정이고요. 미학을 전공하셨고 YPC SPACE라는 전시 공간이자 워크숍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연구하고 담론도 만드는 그런 작은 공간을 동료들과 함께 운영을 하고 계세요. 사실 권정현 님은 이미 세마 코랄과 인연이 있으세요. 세마 코랄에 유지원 필자의 「상호 배움의 일지」라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이 권정현 님을 포함한 동료들이 함께 운영하는 YPC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서로 간에 배움이 작동하고 일어났는지 그 방법론과 실천 양상에 대해서 짚어주신 글이었습니다. 또 그 전에 본문을 편집하는 편집자의 역할도 하셨어요.

이여로 님은 아마추어리즘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글을 이어오고 계세요. 세마 코랄에도 글을 주신 바 있고, 최근에는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라는 책을 번역하셨고 또 출판 기획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윤원화 님은 시각문화 연구자로, 여러 저술로 많은 영감을 주는 필자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 불완전함에 관하여』라는 책들을 쓰셨는데, 책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미술의 어떤 이상이나 바라는 것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시각들을 밝혀내고 그 감정의 결들을 포착해 내는 필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 분과 함께 2021년 9월에 정식으로 공개해 3년째를 맞은 세마 코랄에 관해서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세마 코랄은 분화와 발생을 거듭해 왔는데요.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줄여서 ‘세마 코랄(SeMA Coral)’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약칭인 ‘세마(SeMA)’를 붙이고 ’코랄(Coral)’에 함께라는 의미를 담아서 만든 단어로, ‘관계를 의미하고 또 생태계를 의미하는 지식 생산을 꿈꿔 보자’고 만든 웹사이트예요. 저는 이 웹사이트를 운영할 때 두 가지 소개글을 썼는데 하나는 독자를 만나는 버전이 있고 또 하나는 필자를 만나는 버전이 있었어요. 필자를 만나는 버전에서는 조금 더 유의미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세마 코랄의 핵심을 이렇게 전달했어요. 이 웹사이트에서의 지식의 생산이, 그 구심점이, ‘주제어’ 혹은 ‘연결어’라고 부르는 단어들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그래서 그 단어들이 현재까지 디지털 기술, 디지털 대상, 복제, 기록 시스템, 리터러시(Literacy), 데이터 시각화, 산포, 장애나 비장애, 웹 접근성에 이른다는 것.이렇게 지금까지 100여 편에 이르는 글과 웹을 매개로 한 창작 작품이 세마 코랄에 분화하며 발생하고 있어요. 여기서 웹 매개 작품은 웹사이트 형식을 취하는 창작인데, 이 역시 글을 통해서 생산되고 접근, 전달된다는 점에서 언어라는 특이성은 공통되게 세마 코랄이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과 창작 모두에 적용되는 언어적 특성은 세마 코랄이 공유하고자 하는 ’지식’과도 연결되고요.

이렇게 분화 발생되기 이전의 모습들을 좀 보여 드릴게요. 2020년 12월 정도에 세마 코랄을 구상하며 작성한 메모예요. ‘수집’, ‘지식’, ‘배움’이라는 단어들도 등장하고 ‘시각화’, ‘재조직화’ 이런 미션처럼 읽히는 말들도 있죠. 또 ‘평론상‘ 같은 사업명도 있고요. 수상자의 구체적인 이름들도 보이고, 미술이론이나 미술사 등을 전공하는 학위 보유자들, 시민 큐레이터 같이 미술관에서 연구나 글을 쓰거나 담론을 퍼뜨리기 위한 일을 부탁하고 함께하는 여러 역할들도 세마 코랄의 첫 구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른쪽 화면은 약간 웹사이트 화면 배치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런 구상들, 메모들이 쌓여서 세마 코랄이 탄생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만으로 미술관의 연구 프로젝트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SeMA 온라인 지식 플랫폼〉이라는 가제를 단 어떤 사업의 ‘구축’, ‘추진’, ‘계획’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서 미술관 안에서 이런 연구 사업들이 작동하게 됩니다. 공식 보고(행정) 문서로 남은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 웹사이트가 ‘온라인 지식 플랫폼’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고 그전에는 ‘미술관이 가지고 있던 의제 연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지식 생산이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고 이동하는 전 세계적 추세나 차원에서 이 생산 구조 개편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했던 지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미술관의 의제 연구로부터 출발한 연구 활동들이 저널화, 그러니까 책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 사업의 변천 과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책은 완결성을 가지지만 한 번 찍고 묶여 나오면 덧붙이기 어렵기도 합니다. 미술관의 의제가 계획됐을 때 일단 계획한 것만 5년 치였어요. 그러니까 1년에 2개씩을 다룰 때 의제 10개로부터 파생될 여러 가지를 적극적으로 담기에 종이책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미술관이 정기 간행물을 만든다면 어떤 파트너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이 파트너는 아마도 개별 편집자 쯤으로 해결되지 않는 단위일 것이고, 그렇다면 거대한 협력체와 미술관과 같은 규모의 기관이 장기적 협약 관계를 맺는 것도 사실은 수월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구상들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게 됐고 그때 핵심은 ‘연결’이었어요. 형식이나 매체가 이동을 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지식 자원들이 나타나고, 그 지식 자원은 사운드나 영상은 물론이고 이미지 정보까지, 데이터까지 다루는 것이어서 여러 가지로 분화된 만큼 연결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형편이었습니다.

문맥들을 연결할 웹사이트를 구상하면서 메모장도 생각해 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화면에 텍스트의 침투가 다양하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더 찾아 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떤 모양으로 발전되기도 하면서 나타난 것이 지금 세마 코랄의 모습처럼 키워드들로 만들어진 ‘연결어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이 웹사이트는 한 주제, 혹은 1호, 2호 이렇게 발행 주기를 가지지 않는, 시시때때로 쌓여 나가는 글들이 키워드를 통해서 연결되고 축적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죠. 이것이 계속돼서 지금까지 많은 연결어가 축적된 한편, 그 연결어의 축적이나 글의 과밀화 때문에 하나하나의 글을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목도하면서 저는 또 이걸 ‘어떻게 랜덤하게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게 웹사이트에 〈세마 코랄 시계〉 같은 기능도 배치하게 됐습니다. 이 시계 바늘은 매초 6도씩 각도를 바꿔 가면서 글 제목을 자동적으로 임의로 호출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경로를 만들어 온 세마 코랄을 이야기하기에, 저는 ‘씨앗’과 ‘동료’라는 두 가지 화두가 적절하겠다 싶었습니다. 씨앗과 동료라는 화두는 윤원화, 이여로 두 필자로부터 얻은 힌트입니다. 윤원화 님은 「씨앗 시간을 찾아서」라는 글, 이여로 님은 「다시 보아주는 사람들, 사물들」이라는 글을 이미 세마 코랄에 주셨어요. 「씨앗 시간을 찾아서」는 한 작품에서 제목을 빌려 왔는데, 그 작품은 이메일로 시작된 작업이었고, 팬데믹 속, 어떤 정보나 웹에서 늘 벌어지는 규격화 등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창작이나 지적 대화의 열망이 씨앗과 같이 작동할 수 있을지를 보여 주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원화 님은 이렇게 묘사하셨어요. “이것은 모래바람 속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정보 분류 시스템이다.” 또 실제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 주는 문서 공간을 떠돌다 보면 굳이 작품을 보고 글을 덧붙이는 일이 불필요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비효율적인 시간이 아직도 허용 가능할 것인지?”, “그 안에서 우리의 씨앗은 어떻게 틔우는지 혹은 불투명한 씨앗은 어떻게 방어될 수 있을지?”라는 질문도 던져 주셨습니다. 이여로 님은 「다시 보아주는 사람들, 사물들」에서 동료들과의 인터뷰로 글을 구사하셨는데, 청탁의 시작점은 동료 비평이었어요. 흔히 학술사회에서 실천되는 이런 방식이 예술가 사회라면 어떻게 적용될지, 어떤 반응이 벌어질지를 대화로 풀어내 주신 글이었습니다.

세마 코랄의 미래를 진단하고 조망하려는 이 자리에 이 두 화두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상 미술비평을 논해 온 이 집담회에서 세마 코랄을 주제로 삼은 까닭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또 세마 코랄이 품은 비평에서 이론까지, 인터뷰에서 작가노트까지, 아니면 정말 어떤 카테고리에 속한다 말할 수 없는 글까지, 정체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마 코랄의 비평과 미래에 관한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세마 코랄은 사실은 미술 전문 잡지도, 학회지도, 저널도 아니에요. 매호 정기적으로 글을 내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또 한 차례 발행하고 멈춘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글을 올려서 지금 원고 수가 100건에 다다르고 있어요. 또 연결이라는 단어들로 여러 글을 엮고 있지만 사실은 이 엮여 있다는 것은 반대로 또 떨어지며 떠다니게 하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을 웹으로 매개해서 실현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세마 코랄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술 지식의 생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지식을 어떻게 찾느냐 인데, 저는 특이하게 미술관에 이러한 사업으로 지식 플랫폼이 작동하고 지금까지 3년째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식을 자신의 동력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또 필수적으로 가져다 쓰는 미술의 특성이 자리한다고 보았어요. 그로 인해서 정립된 미술사도 있고, 아방가르드의 감각학도 있고, 위반의 문화 이론도 있고, 최신의 기술 매체론, 이 모든 지식이 미술이라는 세계 안에서 공존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계가 지식의 잡식기계 같다고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과장일지라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이러한 생각은 앞서 1부에서 남웅 님이 비엔날레가 장애, 접근성, 생태 이런 모든 잡다한 화두의 공론장이나 혹은 다뤄야 될 장처럼 공식화되는 지점을 지적해 주신 것과도 공명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지식 생태계에서는 사실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런 지적 욕구로 비평이 생산될 텐데 그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비평 사이에는 여전한 간극이 벌어진다는 것을, 이유는 모르겠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분명히 더 느끼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마 코랄에 올려진 글들을 전부 비평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최근에 저는 사적 경험으로 퍼블릭과 연구 사이에도 간극을 느꼈어요.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연구나 웹사이트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도 물론 퍼블릭 프로그램, 미술의 퍼블릭 활동일 수 있겠지만, 이런 연구 활동이 과연 퍼블릭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고민도 하게 되고요. 또 제가 올 초에 SeMA-하나 평론상을 준비하면서 1차 접수를 받았을 때, 비평의 언어들이 가지는 간극, 과거나 현재의 미술비평 언어들이 가지는 간극 또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간극들의 중첩이 세마 코랄에게는 과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간극들을 섣불리 이어붙이지 말고 다른 질문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간극이 벌어지게 되는 상황에 이른 미술의 지적 욕구의 총체에는 어떤 욕구, 호기심, 취향이 발생하고 있고 그것은 주문자와 독자가 모두 참여하면서,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상황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모두 이 간극을 횡단하는 씨앗이 될 동료들이 아닐까? 그 동료들과 어떤 과제들을 같이 만들 수 있을까? 그 동료들은 다름 아닌 연구하는 퍼블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마 코랄이 지난 3년 동안 지속해서 자극하고자 했던 누군가의 정체를 규명한다면 이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역은 생산, 소비, 매개 이 세 가지의 구도 안에 가둔 것이라기보다는, 세마 코랄에서 지난 3년 동안 아주 분명히 목도할 수 있었듯 계속해서 교환되고, 확장되고, 무너지면서 재형성되고, 발현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세 분의 필자도 어떤 순간에는 독자이기도 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매개자이기도 했고, 또 지금 이 자리에 안 계시는 독자들도 세마 코랄의 또 다른 필자로서, 생산자로서 연결되는 이런 교차가 저희가 꿈꾸고 연구하는 퍼블릭이 아닐까요.

윤원화: 넘겨 받은 윤원화라고 합니다. 저는 앞에서 김진주 선생님이 해 주신 소개를 사용자 입장에서 이어받아서 세마 코랄이라는 사이트가 하나의 담론적 장소로서 어떤 특성을 가졌고, 어떤 유형의 사용자성을 활성화하려고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려고 해요. 기본적으로 세마 코랄은 여기 보시는 것처럼 그냥 인터넷 상에서 문서를 내보내는 작은 웹사이트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온라인 저널이나 웹진으로 묶을 수 있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일반적인 정기 간행물처럼 호 단위로 나뉘어 있지는 않아요. 그 대신에 첫 페이지를 보면 키워드들이 쭉 나열이 되어 있어서, 그중 하나를 클릭하면 그 키워드를 공유하는 문서들이 쭉 검색되어 나오고, 그리고 거기에 붙은 다른 키워드를 통해서 또 다른 문서들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연결’ 항목으로 들어가 보면 개별 키워드들을 다시 몇 개씩 묶어서 더 큰 주제, 여러 개의 키워드들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를 소개하는, 새로운 글 묶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 묶음들이 등장해요.

이런 구성은 SNS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현재 시점에서는 좀 고풍스럽게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매끄러운 흐름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페이지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는 것, 그 다음에 어디로 갈지를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요. 이것에는 웹사이트 디자인을 맡은 민구홍 작가의 스타일도 작용했겠지만, 그 이전에 미술관에 부속되는 텍스트 기반 플랫폼으로서 세마 코랄이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들을 유연하게 포괄하기 위한 절충적 형태였던 것 같아요. 세마 코랄은 2021년에 오픈했는데, 그때는 미술관들이 팬데믹 상황에 대응해서 이런 디지털 플랫폼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는 데가 없죠. 저는 그때 당시에 세마 코랄의 원고 청탁을 받고, 여기도 그런 일시적인 디지털 장소들 중 하나로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여기에 「씨앗 시간을 찾아서」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기본적으로 제가 2021년 봄~여름 사이에 봤던 것들의 기록이에요. 이 글을 청탁 받아 쓸 무렵에는 주로 온라인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죠. 슬슬 오프라인 행사들도 일어나고 있는 상태였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시간이 되게 급하게 흐르고 있다고 느꼈고, 그리고 당장 제 눈앞에 무척 많은 것들이 번쩍번쩍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들이 금방 휩쓸려가 버릴 거라고, 그래서 한번 지나가 버리면 또 완전히 없었던 것처럼 잊힐 테니까 그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기록이 세마 코랄에 들어갔을 때, 이 글의 수명도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미술관에서 만드는 이런 웹사이트들은 홍보용 인쇄 자료랑 거의 비슷한 지위를 가집니다. 일회용품 같은 거라서,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게 좀 허망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개별적인 문서들, 각각의 작업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서 부서지지 않으려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려면 개별적으로 좀 튼튼한 몸체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이 글에서 말하는 ‘씨앗의 형상’이 됐고요. 하나의 작업이, 하나의 글이 어떻게 튼튼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세마 코랄에 들어가서 제 글을 읽어 보시면, 언급한 코니 정(Connie Zheng)이라는 작가 작업에서 씨앗의 이미지가 등장해요. 이 씨앗은 그 자체로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지만, 살아 있는 것에서 떨어져 나와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가거나 운이 좋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런 농업, 농부의 태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씨앗을 수집하고 기르는, 재배하는 일이라면 ‘쓰기’는 그걸 수확하고 다시 파종하는 그런 일에 해당하겠죠. 그러니까 저한테 출판은 일종의 파종이에요. 제가 세마 코랄에 이 글을 보냈을 때는 ‘여기가 그런 농사를 위한 텃밭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질문이 담겨 있었어요. 정말로 그런 기대를 했던 건 아닌데 그때 당시에 이 플랫폼의 소개 글이 꽤 거창했기 때문에, 그냥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용케 이 사이트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운영이 됐고, 텃밭까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종자 창고, 씨앗 저장소 같은 걸로는 꽤 재미있는 공간으로 자라난 것 같아요. 그래서 ‘지식’ 항목으로 들어가 보면 전체 글 목록을 볼 수 있거든요. 아까 선생님이 100편 정도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많다면 많지만, 사실 우리가 넷플릭스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려면 볼 수 있는 분량이에요. 여기 보면 우리가 오늘 소개한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내용들도 계속 업로드되고 있고, 그 외에 미술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이라든가 넓은 의미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묶인 여러 가지 활동의 결과물이 선별적으로 계속 누적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특히나 미술관의 기능을 예술적인 공론장 혹은 대안적인 지식의 장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진행해 왔고 그 과정에서 텍스트 자료가 많이 생산됐단 말이죠. 세마 코랄은 이런 자료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도록, 이후에 재활용 가능한 형태로 재편집하는 아카이브 기능도 수행하고 있어요. 그때 이런 키워드들이 상이한 맥락에서 생산된 문서들을 다양하게 엮어볼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거고요.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제 경우처럼, 외부 필자한테 원고를 청탁하는 일종의 텍스트 기반 프로덕션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마 코랄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과도 조금 어긋나 있지만 일반적인 미술 담론의 매체와도 약간 성격이 달라요. 이 사이트는 여태까지의 미술을 해명하는 담론보다는 ‘앞으로의 미술이 어떤 담론을 생산할 수 있고 또 매개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좀 더 천착하면서, 기존의 미술 이론이나 비평을 실어 나르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미술 글쓰기를 꾸준히 지원하고 실험해 왔어요. 이건 편집자로서 김진주 님의 에디터십이 크게 작용한 부분일 텐데, 그중에서도 제가 재미있게 봐 왔던 것은 ‘작가 지식 생산’이라는 묶음입니다. ‘작가 지식 생산’은 말 그대로 작가들이 들어가서 쓴 글이에요. 작가들이 직접 쓴 글, 그리고 그들이 진행한 아티스트 리서치의 결과, 또는 그저 작업 과정에서 스스로 묻고 답한 내용들이 텍스트의 형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세마 코랄에서 커미션한 웹 프로젝트에 관한 텍스트들이 좀 많죠.

세마 코랄의 웹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연구와 창작, 그리고 글쓰기와 작업을 딱히 구별하지 않고 ‘담론의 장소로서 미술관 웹사이트가 어떤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세마 코랄의 질문에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하는 형태로 진행이 됐어요. 이 질문은 좁게 보면 세마 코랄의 미래에 대한 것이고 좀 더 넓게 보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떤 미래의 미술에 관한 질문, 궁금증을 담고 있습니다. ‘미술이 무엇이 될 수 있고, 어떻게 해서 그런 미지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이건 ‘디지털 웹 작업에 미술의 미래가 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이 매체 환경의 구체적인 사이트에 누적되어 있는 것은 여태까지의 과거와 현재겠지요.

그렇지만 정말로 세마 코랄에서만 볼 수 있는 종류의 글로, 임소담 작가의 「그리기, 만지기, 가늠하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작가는 2021년 SeMA-하나 평론상 트로피를 만드신 분이에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본인이 트로피를 만들었는지, 그러니까 작가가 왜 이런 형태로 손의 이미지를 넣어서 트로피를 만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기서 손에 대한 생각은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는 작가 자신의 손,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자기 친구의 손, 자기한테 서비스를 해 주는 미용사의 손,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조금만 읽어 보면, “미술관으로부터 의뢰 받은 2021년 SeMA-하나 평론상 트로피를 제작하며 눈앞에는 없지만, 의식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업 방식 사이의 연결 관계를 어렴풋하게 느꼈다. 인간이란 과거의 몸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는 존재지만 각자가 더듬거리며 가늠해 본 미래를 지금 이곳에 나타나게 하는 힘 또한 우리 손에 있지 않은가?”

저는 이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이 문장은 만드는 사람의 지식이라는 점에서 문자 그대로 ‘작가 지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어떤 원점을 보여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게 세마 코랄이 요구해 왔던, 기대해 왔던 사용자의 기본 조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소비자나 담론의 수용자, 착한 학생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가능성을 더듬으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세마 코랄은 그런 만들기를 위한 지식을 매개하고 또 그런 만들기의 과정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을 개인의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고 공유재로 전환하고 싶어 해요. 저는 이것이 공공화한다는 본연의 의미에서 퍼블리케이션(publication), 그러니까 출판의 장소로서 세마 코랄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런 접근이 작가와 비평가의 고전적인 분업 체계보다 좀 더 생산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느껴요. 만든다는 것과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동일한 시적인 생성에서 분기해 나오는 것이지, 서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거나 심지어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율하거나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요. 비평의 위기에 관한 말들이 종종 어떤 심판에 대한 열망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특히 굳이 비평이라는 행위를 지금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에 그런 열망이 확 하고 솟아나는 장면들을 자주 보는데, 저는 비평이 심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수행하는 글쓰기는 사법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입법 제안서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우리가 누군가의 대표자로 선출된 것도 아니거든요. 아무도 우리에게 권력을 양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가 글을 쓰고 작업을 하는가?’ ‘그 즐거움과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고 외부의 자원과 어떻게 교환될 수 있는가?’ 했을 때 이건 결국 생산과 유통의 문제예요. 비평이 그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고요.

저는 세마 코랄이 서로 만나본 적 없는 밀수꾼들의 모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이 글들이 결국 시장의 냉혹한 심판을 피해서 일시적으로 여기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임이 여전히 일시적이라고 느껴요. 이게 정말로 오래 지속되려면 이렇게 인력이 교체되거나, 관장님이 바뀌시거나, 주변 상황이 바뀌어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을 만큼 제도화돼야 하는데, 그러면 세마 코랄이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되겠죠. 아직은 이 공간이 그렇게 견고하게 경화돼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품고 있는 구멍들이 있고 그 사이로 드나들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그래서 연약한 상태지만 저는 지금으로서는 이게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여로: 이어서 ‘동료’를 주제로 발표 할 이여로라고 합니다. 오늘 ‘미술비평 집담회’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가 마련되었는데요. 동료와 미술 비평이 무슨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물으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관해 보이는 것들의 유관함을 밝혀 나가는 것을 비평이라 부르고 싶고, 그것은 미술과 미술 아닌 것 사이에도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발표에서는 미술계 내부의 이익 집단이나 친목 모임으로서 특정한 팀이나 콜렉티브, 공간은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활동 역시 동료성에 기초합니다. 기성 제도로부터 가치나 인정을 할당 받기보다 ‘어떻게 스스로 조직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때 그것은 ‘스스로’나 ‘자기’라는 말이 함의하는 개별자, 단독자가 아니라 오히려 동료를 요청한다는 것을 느껴 왔습니다. ‘누구와 피드백을 나눌 것인가’로 번역된 이 질문은 자신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타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이해를 함께한다는 것, 가령 ‘아마추어리즘’의 가치를 공유하거나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는 감각은 당연히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동료 집단에 관한 보편적 언어는 물리적 인접성이나 지속성, 이해관계나 정체성의 일치, 이로부터 비롯되는 친밀감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동시에 영토적 경계로 동료를 구획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성이 주는 충분함은 동일한 이유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느껴왔습니다. 가령 저는 지금까지 독립출판을 통해 공동 생산의 양식을 시도해 왔는데요.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은 미학 연구자 이동휘 님과 『미술 구술: 전시 보기와 말하기 매뉴얼』은 시각 예술가 임가영 님과 공저했고, 제작 이전 단계인 기획이나 이후 단계인 유통, 판매까지 디자이너, 저자, 편집자, 마케터의 역할 구분을 강하게 두지 않고 함께하며, 제작비와 이익 분배를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말하다 보니 협동조합에 가깝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것은 결과물이 발표되면 잊히거나 가려지기 쉬운 요소들을 결과물 자신이 반영하고 말하는 형식을 개발하는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가령 『미술 구술』의 경우 저자들이 원고를 작성하면 디자이너가 책의 형식으로 조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더미북처럼 활용해 원고를 작성했고, 이는 줄글 형태가 아니라 책의 전개와 편집술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 워크북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반 작업으로서 디자인 또한 원고의 일부가 될 수 있었고요.

이렇게 프로젝트 단위로 관계 맺는 ‘동료’의 상대자는 매번 달라지고 그들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접촉을 유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관계의 대상도 인격체로서 ‘이 사람’보다 ‘이 작업’이며 이때 고민되고 고안된 커뮤니케이션은 제작의 방식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에 함께 머물렀던 문제의식은 금세 또 각자의 경로로 흩어지고 책을 낸 이후에는 서로 반목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보편적 동료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차이를 갖고 있었죠.

현장에서 평론을 쓰는 경험도 그랬습니다. 가령 다이 작가는 개인전 《사근으로부터》1에서 할머니의 구술 기록을 기반으로 회화나 입체 작업을 했는데요. 저는 그때까지 구술(사)를 알지 못했고 알고 싶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평론을 매개로 작가들과 만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리서치를 통해 확장되는 과정에서 작가뿐만 아니라 의외의 동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령 저는 인류학자 윤택림 님의 구술사 저서들을 읽었고2 그를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대면으로나 서면으로 접촉한 것도 아니고 다분히 상상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동료라는 말이 제 안에서 상상적인 구조물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동료는 욕망의 차원이 되고, 윤원화 님의 표현대로 “문서에 기반한 대화와 도움의 장”을 형성합니다. 이렇듯 기존의 동료 언어를 초과하거나 이탈하거나 잉여적인 것을 다시금 동료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은 저의 욕망이 그것을 기술할 새로운 언어를 만들도록 이끌었습니다.

외부적인 이유로는 저 자신의 성폭행 고소 경험이 있는데요. 성폭행 가해자 역시 자신만의 동료 집단을 갖고 번역 플랫폼, 비평 웹진 등을 운영하며 그곳에서 성폭력에 우호적이거나 무관심한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혹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 2차 가해가 재생산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즉 친연성으로만 동료를 구별할 때, 나의 동료와 저들의 동료가 동질해졌습니다. 동료라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을 희망하고, 실망하고, 부정하는 것은 오류이겠지만, 이러한 오류가 다양한 범주의 구분을 추동한다는 점에서 오류는 지식 생산의 정당한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구분, 새로운 연결을 목표로 하는 구분의 시도입니다.3

극단적 예시 같지만 일상적으로 접하는 말들도 있습니다. “미술계에 실망했다” “이 씬에 환멸을 느낀다” 등등의 표현을 저는 중요한 심리적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물리적 인접성에 기반해 미술계를 호명하고 이해하고 내부자를 동료라고 생각하면 회의감이나 체념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냥 활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 집단에서 타 집단으로 넘어가거나,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원자 상태로 머물고 싶은 욕망이 커져 갑니다. 즉 기존의 동료 개념이 저의 행위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기에, 저는 동료 개념을 다시 이해하고 기술해야 했습니다.

이는 한 집단 내부의 작동 양상을 관찰하며 시작됐습니다. 말로 할 시간이 없어 그림으로 그려 봤는데요. 저는 이 중에서 좌측의 양성 피드백 구조4로 동료 집단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기능적 관점으로 동료를 관찰하고 관계의 형식을 찾아낸다면, 물리적 경계에 제한되지 않는 관계 맺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2023년 초에 저는 피어리뷰(peer-review, 동료비평)을 주제어로 세마 코랄에 글을 한 편 실었습니다. 피어리뷰는 주로 과학자 사회에서 학술 출판의 품질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동료 연구자에게 익명으로 의뢰하여 수행되는 논평 제도를 뜻합니다. 저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다시 읽었습니다. 동료를 내부자로 자격화하지 않고 ‘리뷰’라는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동료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리뷰는 평론가나 연구자에 의해 문자로 작성된 서문, 평론, 도록, 연구서의 공식적 형태만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시-보기’를 촉발하는 모든 행위가 리뷰였고, 일상의 우발적이고 비공식적 형태를 포함했습니다. 제가 웹소설 작가, 디자이너, 극작가 등 언뜻 미술계와 무관해 보이는 분야의 창작자들을 인터뷰한 것은 그들과 다양한 형태의 리뷰를 주고받았던 경험에서 이 글이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획을 통해 반대로 저의 리뷰를 되돌려 주고 싶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글의 형태로 구조화하기 위해선 또 다른 관찰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세마 코랄을 관찰했습니다. 세마 코랄에 어떤 글과 필자가 수집되었는지, 그 내부를 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깥과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계성의 노출 덕분에 글과 지면이라는 다른 차원 사이의 상호모방이 가능했습니다.

여기 몇 편의 글을 예시로 들었는데요. 사전 미팅 때 윤원화 님이 하신 말씀처럼 이 글들은 동시대 시각 예술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주제나 저자가 속한 문화적, 공동체적 맥락은 상이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함께 모인 글들의 차이와 특이성만을 강조한다면 중앙화 모델에 다양성을 첨가한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미술계가 어떻게 보면 지식의 잡식 기계 같다”는 김진주 님 말씀처럼요. 가령 ‘편집자가 선별한 글의 묶음’5이라는 점에서 세마 코랄을 일종의 앤솔로지(anthology)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특별할 것 없는 출판의 한 형식처럼 보입니다만,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전환하고, 단일한 목적과 주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수단화하는 위험 또한 환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의 씨앗은 미디어버스 임경용 사장님으로부터 앤솔로지가 과거 식민국가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들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세마 코랄 역시 기획 의제와 키워드를 축으로 필자들에게 원고 청탁을 전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상자의 영역이 동시에 조명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흡수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기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세마 코랄의 한 부분이라는 김진주 님의 말씀처럼요. 그림으로 비교해 보면 이런 도형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만드는 건 무엇일까, 가령 민구홍 님의 탈중앙적 웹 디자인이나 해시태그를 이용한 하이퍼링크 시스템, 동일한 필자에게 재청탁을 자제하는 편집 내규 등의 규칙들이 한편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편집자의 역할을 말하고자 합니다. ‘세마 코랄의 차이를 만든 편집의 방식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숙련된 베테랑 편집자의 기술력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다면 적당히 그만해야 하는 일일 겁니다. 저는 그것을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처음에 세마 코랄 청탁을 받았을 때 김진주 편집자와 주고받은 메일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기획 의제에 따라서 필자들에게 청탁하는 것을 일종의 ‘신호’라고 본다면, 제가 다른 잡지나 매체에서 받은 청탁들은 대체로 신호 단계에 멈춰 있었습니다. 주제를 정해 놓고 해당하는 필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연락을 돌리는, 외부를 내부로 들여오는 과정에 해당하죠. 물론 이 과정에 응하면서도 개별 필자들은 자기만의 목적으로 상호 이용을 의도합니다.

김진주 편집자와의 메일은 신호에서 한번 더 나아갔습니다. 세마 코랄의 의제와 필자의 관심사, 방법론이 어떻게 맞물리고 변형될지, 필자가 써 왔던 글이나 책에 기반해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일임할지 주고받은 것이죠. 즉 청탁을 일종의 조정 행위라고 한다면 피청탁자의 개별성에 기반한 조정을 세부적으로 다시 제시하는 것은 ‘조정의 조정’을 거듭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어는 이때 발생합니다.6 김진주 님이 인터뷰어로 참여한 글들이 더 가까운 예시가 될 것 같아요. 짧은 질문과 긴 답변이 이어지는 통상의 인터뷰와 달리 대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으시죠. 저는 여기에서 인식보다 관심이 앞서고 지식보다 돌봄이 앞선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자기 이론을 만들려는 의지”란 개별자의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관심 어린 듣기에서 발생합니다. 그것은 내가 자신에게 행할 수도, 타인에 의해 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인데요. ‘세마 코랄에서 관찰한 것을 누구에게 내보이고 싶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미술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 지망생이나 관계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담회 소개 글에서 언급된 “연구하는 퍼블릭”입니다. 이 말 또한 사설 기관에 적을 둔 연구자나 자유기고자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구한다’는 행위로부터 퍼블릭을 다시 발명하자는 일종의 제안입니다. ‘연구한다’는 동사 역시 정상과학이나 경성과학에서 수행되는 실험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는 삶의 한 가지 양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가 세마 코랄의 독자로서 느낀 것은 많은 글이 자기 연구의 프로세스 전체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연숙(리타) 님과 함께한 라운드테이블에서 홍지영 님이 보여 주신 템플릿인데요. 콜렉티브 야광의 전인 님이 레즈비언 미술의 형용사적 특징으로 언급하신 ‘구구절절함’도 함께 떠오릅니다. 이것은 오늘날 “밑에 있는 존재들”에게 지워지는 부담이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나눠야 하는 것, 즉 지식의 설명적 기초이자 일종의 지성주의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치다 다쓰루(Tatsuru Uchida, 內田 樹)는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7에서 각 개인의 측정 가능한 ‘지력(知力)’과 달리 ‘지성(知性)’이란 그때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어지는 형태로 주변의 타자들에게 미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즉 많은 것을 전제한 ‘그다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전’이나 ‘그 아래’의 이야기부터 시작할 때, 결과가 되기 이전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문제, 욕망, 오류, 감정, 과정까지 담아낼 만큼 풍부한 이야기 속에서만 우리는 욕망을 나눠 갖고 그것이 지성의 형태를 이룹니다. 세마 코랄에서는 이렇듯 타자를 향해 글을 쓴다는 태도, 내 관심이나 작업에 대하여 처음부터 설명하겠다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공유된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세마 코랄의 표어인 ‘모두의 연구실’에 부합하는 규칙이자 지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연구’, ‘학습’, ‘교육’과 같은 말에 일종의 법정주의를 채택해 공식적이고 실체적인, 국가 제도의 인정에 한정짓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모든 양상을 교육이나 학습의 관점에서 다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처인 세마 코랄은 경계상 실체로서 공적 영역에 속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곳에서 추상적이고 비공식적인, 즉 상호학습의 문화나 기성 교육의 탈학습적인 면모를 더 많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세마 코랄의 일부만을 가져왔고 그 일부는 저 자신의 관심에 기반합니다. 즉 세마 코랄의 모든 글이 실제로 그러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다시 본다는 것, 다시 말한다는 것은 말한 것을 뛰어넘어 말해질 수 있는 것, 말하고 싶었던 것, 혹은 말하도록 요구하고 싶은 것 등을 희망함으로써 풍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윤택림 님께 배운 것이지요. 저는 관찰의 편향성을 스스로 노출함으로써 또 다른 관점을 여러분이 보완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권정현: 오늘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연결’인데, 저는 앞선 이야기를 잘 연결해서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세마 코랄을 잘 운영해 주신 김진주 선생님의 활동을 연결하고 잇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세마 코랄에서 ‘연결’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것 같아요. 세마 코랄 웹사이트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부터가 바로 연결이죠. 그래서 수많은 단어로 연결된 글들의 집합이라는 것이 세마 코랄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실 ‘연결’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 같아요. 연결이라는 한 단어로 집약될 수 없는 굉장히 상이한 종류의 연결들이 있을 텐데, 저는 오늘 제가 그동안 미술계에서 경험한 몇 가지 연결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세마 코랄이 어떤 연결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미술계 안에서 그러한 연결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동시대 미술의 적극적인 관객이 된 시기는 2012년~2013년쯤이었어요. 그리고 2013년에 ‘신생공간’이라고 불리는 공간들이 막 생기기 시작했고, 그후 대략 2016년까지 굉장히 활발하게 작은 공간들에서 미술 전시가 열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간략하게 집약해서 말하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굉장히 다층적인 활동들이 있었던 시기고, 관점에 따라서 이 시기를 분석하는 입장도 모두 다를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당시에는 분명히 서로가 서로를 ‘동료’라고 부르면서, 서로를 연결하고 씬을 만들던, 그런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공통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며 일어나는 연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연결이 그 이전의 미술계의 연결, 말하자면 대안공간 시기의 연결이 좀 더 끈적끈적하고 가족 같은 그런 울타리를 만드는 연결이었다면 그것과는 다르게 훨씬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관계를 만들어 갔고, 또 서로가 서로를 동료라는,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명칭으로 호명하면서 그전과는 다른 종류의 연결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던 듯해요. 그리고 이때는 또 온라인 기반의 연결이 굉장히 강하게 부상하던 시기였고, 그래서 온라인 기반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연결되면서도, 또 동시에 물리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연결도 혼재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신생공간’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접촉하고 서로 친구가 되는 경험이 분명 있었어요.

엮는자(@herbererr), 서울의 신생공간 지도 2016년도 버전, X(트위터) 갈무리.
출처: https://twitter.com/herbererr/status/776570442333106176

그때는 이러한 다양한 연결의 느낌을 받았고 특히 서로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느낌, ‘동시대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러한 시스템은 2016년을 지나며 와해가 되죠. 이 시스템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그밖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2016년을 기점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미술계는 훨씬 더 이질적인 것들이 협력하고, 경합하고, 반복하고, 혹은 외면하면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좀처럼 하나의 씬으로 수렴되지 않는, 계속해서 확장하고 발산되는 장이라고 생각돼요. 이미지는 ‘2023년 아르코 미술공간 네트워크’라고 하는, 말하자면 ‘서울아트위크’를 겨냥해서 아르코에서 준비한 행사와 연계하여 나온 온라인 맵의 화면입니다. 여기에 리스트된 미술 공간의 목록을 보면 이전의 신생공간 시기의 지도와는 다르게 리스트된 공간 사이의 연결이 훨씬 적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서울의 대안공간, 신생공간, 비영리 공간을 정리한 지도인데,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나 공통적인 관심사 같은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서울의 미술 씬을 하나의 지도로 묶는 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아마 지도를 구성한 분들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2023 아르코 미술공간 네트워크 온라인 지도, 웹페이지 갈무리(2024. 2. 19. 접속).
출처: http://bitly.ws/SjG2

어쨌든 지금의 미술계는 이전의 시기와는 다르게 어떤 하나의 씬으로 작동한다는 감각이 많이 줄어든 상태예요. 마치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뭔가 각자 바쁘게 자기 것을 하면서 살길을 찾기에 바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 연결되지 않은 채 각자의 것을 하는 시기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미술 장의 장점이라고 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이들이 더욱 쉽게 유입되고 확장된다는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 신생공간 시기의 미술계는 원론적으로는 모두에게 열린 개방된 미술의 장이고 수평적인 장이었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경계들,더 친밀한 것과 친밀하지 않은 것 같은 구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지금의 이러한 열린 장에서는 새로운 이들이 훨씬 쉽게 유입되고, 또 누군가가 쉽게 특권을 가지고 담론을 주도하거나 위계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또, 연결의 힘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잘 연결되지 않는 씬에서는 불안정함과 불안함이 계속 일어나는 것 같아요. 하나의 씬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각자 살 길을 찾기 바쁜 식으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미술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세마 코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러한 미술계 연결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세마 코랄에서의 연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세마 코랄의 웹사이트에는는 응당 텍스트 매체라면 가지고 있는 구조랄 것이 없습니다. 시간 순으로 텍스트를 배치한 것도 아니고,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주제나 형식으로 분류한 것도 아니고, 연결어 별로 텍스트들을 모아 놓고 있어요. 이런 방식의 연결이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페이지이고 불편해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위 메뉴부터 하위 메뉴로 트리(tree) 구조의 분류를 따라가면서 글을 찾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죠. 또 한편으로는 앞서 윤원화 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노출 방식이 지금의 SNS 피드처럼 계속해서 글이 뜨는 스크롤 방식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을 텐데, 마찬가지로새로운 방식에 익숙한 독자에게도 불편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끝없이 띄우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클릭하여 찾아 들어가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방향이든, 어느 쪽에 익숙한 사람이든, 세마 코랄은 어디가 입구이고 어디서부터 글을 분류해서 봐야 될지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움을 안겨 줍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러한 ‘연결어’를 중심으로 글들을 보여 주는 것이 세마 코랄의 굉장히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래서 세마 코랄은 이러한 연결어를 중심으로 예기치 못한 것들이 계속해서 연결되고, 입구와 출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개방적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식들은 트리 구조 안에서 위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생산되고 계속해서 옆으로 확장되는 특성을 또한 가지고 있죠. 그리고 저는 이렇게 느슨하고 연약한 관계, 확고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 애매한 것들이야말로 실로 미술에서의 지식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에서 앎이란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연구 논문이나 뉴스, 다큐멘터리 같은 것에서 공인된 지식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그런 종류의 앎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기치 못한 것을 만나게 되고, 지식이지만 공인된 지식이 아니고, 또 미술 작가들은 때론 지식을 이상하게 뒤집거나, 갑작스럽게 연결하거나, 아니면 자기 멋대로 유용하거나 하면서 공인된 지식의 장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과는 다르게 지식을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품으로부터 계속 무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한 이상하고 난잡한 방식의 지식 전달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알게 되죠. 그래서 리서치 기반의 작품 혹은 비엔날레에서 이야기하는 담론 중심적인 작품들은 물론이고, 때로는 작가가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없었음에도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관객은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굉장히 학술적이고 개념적인 지식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소한 사실 같은 지식을 알게도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학처럼 공인된 지식에서는 다루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알게 되기도 하고요. 이런 점이 앞서 시상식에서 장한길 비평가가 이야기한 ‘기억의 문제’와도 연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도화된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이나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지식이라고 흔히 부르지 않는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 같은 넓은 의미의 앎을 얻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마 코랄의 지식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애매하고 분류가 어렵고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세마 코랄이 생산하는 지식이 아카데미의 지식보다 수준이 낮다거나 지식으로서 자격이 결여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보다 정형화된 연구 방법론으로는 생산하기 어려운, 학자의 철저한 규범 안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지식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마 코랄은 그런 지식들을 분류하는 대신에 연결어로 연결함으로써 애매하고 분류 불가능한 지식들을 예기치 못하게 연결시켜 버립니다. 예를 들어 세마 코랄에서 ‘사물’이라는 연결어로 나온 글들은 사물이라는 단어를 각각 다른 관점에서 주목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김범과 정서영의 작업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중심으로, 미술 작품의 재료로서 사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글에서는 비인간 존재로서의 사물에 주목하면서 좀 더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물이란 단어 안에서 서로 다른 글들을 연결했을 때,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범주의 오류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인데 이것들을 같이 묶어 낸다면 실패한 논문이 되겠죠. 그렇지만 세마 코랄에서는 오히려 그것들을 연결함으로써, 그 둘을 같이 보게 함으로써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을 주거나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마 코랄에서의 연결이 예기치 못한 것에서 가져오는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결을 기반으로, 그렇다면 새로운 세대의 연결, 새로운 시대의 동료 집단은 어떠해야 될지 상상해 보았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미술계는 잘 연결되지 않으면서 확산하고 발산하는 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마 코랄도 어떤 연결들을 만들지만 그것들이 어떨 때에는 잘 응축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연결돼야 한다면 그것이 어떠해야 할까요? 저는 그러한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것이 연결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공동체라는 것이 과거의 연결처럼 어떤 사적인 인간 사이의 연결이거나 인간관계의 연결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서로 간의 상호작용, 글로 하는 연결일 것 같아요. 이 공동체는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공동체 그런 것도 아닐 것 같아요. 글과 글이 만나는 것이고, 글에 대해서 글로 답변하는 것이고, 지면으로 주고받는 연결이고, 그런 것들이 일어나는 인용과 참조라는 글에서의 연결 방식으로 일어나는 지식 공동체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체는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계도 아닐 것 같고 서로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해서 잘못된 논의를 내놓는 그런 관계도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지식이나 글을 기반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공동체, 마치 그야말로 세마 코랄이 지향하는 산호초와 같은 생태계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연결이 되어야 하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작품이건, 글이건, 연구이건 모두 관객과 독자를 필요로 합니다. 누가 이 글을 읽고 이 글이 어디에 가닿는지는 항상 필자 또 창작자는 궁금할 것 같아요. 그렇게 가 닿는 곳, 관객과 독자의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피드백이 사실은 그 글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마 이여로 님이 이야기했던 ‘다시 보기’의 피드백 구조와도 연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타인에 의해서 이 글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 결국 글쓴이의 말이 가닿는 곳, 독자가 되는 곳, 독자이자 또 다른 필자일 사람들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세마 코랄의 앞으로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정말 산호초를 이루는 것 같아요. 다양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이 계속 공존하면서 완전한 울타리의 공통 집단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산호초 안에는 서로 협력 관계에 있는 동식물도 있지만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동식물도 있고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다양한 관계가 공존하는 그런 집단, 글을 매개로 연결되는 느슨한 동료 집단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마 코랄은 계속해서 그들이 올 수 있도록 먹이가 될 만한 이상한 글들을 만들고, 이상한 것이 자랄 틈을 만들고, 그리고 그 먹이를 찾아 온 모든 독자이자 필자의 생각이 서로 만나서 더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씨앗을 만드는 일이고 동료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주: 오늘 세 분 선생님의 세마 코랄 이야기는 무척 감동이고요. 권정현 님 이야기 중에는 ‘이상한 먹이’나 ‘틈’이라는 단어에 꽂히는데, 아마 그런 것들이 살고, 서로 포식도 하고, 공존도 하고, 무관하게도 있는 생태계가 다시 코랄을 만들어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 자리도 그렇지만 세마 코랄의 운명은 산호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호초가 계속 생태계 내에서 위협을 받듯이, 미술에서 이렇게 글 쓰고 말하는 사람들, 그걸 좀 더 들여다보고 확산시키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인구를 따지면 그게 얼마나 될지는 어떤 면에서 분명 비관적이거든요. 세마 코랄의 시작을 함께한 김아영 학예연구사와 이소임 코디네이터와 일전에 논의했을 때도 ‘지식 인구’라는 말이 나왔지만, 사실 인구라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많이 느끼곤 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늘 이런 자리도 의미가 더욱 강조되지 않나 싶습니다.

질문자1: 권정현 님이 발표하신 내용처럼 2016년 이전까지 소위 신생공간으로 다소 과대 대표됐던 물리적이거나 비물리적인 플랫폼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독자로서 봤을 때 윤원화 님은 그 당시에 썼던 글들이 그 플랫폼 안에서의 현장과 실시간으로 조응하는 형식의 글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많이 쓰신 걸로 기억을 해요. 물론 실제로 신생공간이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얼마만큼 맞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2010년대 서울의 미술을 나름대로 개괄하는 형식의 책(『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워크룸프레스, 2016)을 쓰기도 하셨고요.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그때의 현장이라는 장소나 공간을 좀 돌이켜 봤을 때 권정현 님이 발표하신 것처럼 지금은 연결성이 서로 결여되어 있거나 아니면 좀 더 미시적인 차원의 어떤 네트워크들이 있긴 한데, 그런 네트워크들이 서로를 대상화하거나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현장이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런 상이한 현장이라는 공간이나 장소에서 글을 썼던 경험 혹은 지금 시점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경험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질문을 포함해서 현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특정한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어떻게 변화했고, 그거를 필자로서 어떻게 체감을 하고 있는지 윤원화 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패널분들한테도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윤원화: 당시에 저는 ‘현장’보다는 ‘씬’이라는 말을 많이 썼었죠. 씬을 만들고 싶다는 열의 같은 것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게 ‘정말로 씬이라는 게 존재했는가?’라고 했을 때는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후적으로 ‘그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떻게 경험을 했는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아까도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모든 사람이 모두 다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기억을 ‘제가 없었던 현장들이 있으니까 기억들을 수집하면 좀 더 총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개별적으로 기억을 모으면 모을수록, 우리가 기억을 말하면 말할수록 분열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모든 사람의 기억이 달라요.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말하는 게 어려워요. 오히려 되게 두루뭉술하게 ‘2010년대는 이랬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는데, ‘어떤 커뮤니티가 어땠었다’ 이를테면 ‘다섯 명 짜리 콜렉티브의 내부 상황 어땠다’ ‘세 명이었을 때 어땠다’ ‘두 명이었을 때 어땠다’라고 해도 합의가 안 돼요. 그래서 이거는 기억에 기반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전승될 수도 없는 이야기고,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 부분은 포기를 했어요.

그렇다면 ‘그때 당시에 어떤 공통의 장이 있었다는 감각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그건 저한테도 지금으로서는 수수께끼에 가깝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사건들, 아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슷비슷하면서 같지 않은 사건들이 쭉 반복되면서 점점 자기 방어적인 단절이 강해지고 있다고는 느껴요. 그게 제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등뼈가 꺾였던 것은 팬데믹 때였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간에 우리가 공공 공간이라고 하는 것을 궤멸시켰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는 공통의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공공 공간이라고 하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없어졌는데 그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금은 일들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말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올해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학생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힘들었던 게 공기가 없다는 느낌, 정말 계속 느낌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대화가 가려면 소리가 전해져야 되니까 중간에 공기가 있어야 되는데 공기가 없다는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아요. 그래서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일단 그렇게 갔는데 ‘내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어떤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인가?’ 그랬을 때 이런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근데 이게 ‘예전처럼 어떤 큰 장을 만드는 것처럼 뭔가 확 여는 것은 사기가 아닐까?’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지금 회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어쨌든 개별적인 레벨에서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고, 거기에서 이를테면 어쨌든 ‘문서’라고 하는 인간이 아닌 매개체를 빌리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일단은 믿고 있습니다.

권정현: 쉽지 않은 질문인데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전에는 하나의 씬으로 그려지는, 공유되는 감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게 잘 연결되지 않는 각자가 자기 것을 하기에 바쁜 그런 시기처럼 보여요. 그런데 글과 현장이 멀어졌냐고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비슷하게 지금의 씬을 다루는 글, 미술계의 장을 다루는 글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글이 작동하는 미술계 현장과 멀어졌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느꼈다는 것 자체가 거대하게 발산하고 있는 미술계 안에서 제가 관심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 쓴 글을 봤을 때는 그것이 현장과 관련이 없는 글이라고 쉽게 단정짓거나 상상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세마 코랄에서도 그렇고 다른 비평의 장에서도 AI와 관련된 담론이 오가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글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저는 그런 글이 현장과 좀 멀어져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관심 있는 미술, 제가 계속해서 모여 있는 미술의 네트워크 안에서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 AI 기술이 유행하니까 그런 글들이 등장하고 지금 동시대 미술을 다루는 글이 잘 없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 이 발산하는 미술계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이 굉장히 첨예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글이 현장과 멀어졌다고 느끼는 것 자체도 사실은 현장이 확장되어 버린 상태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게 지금의 제 생각인 것 같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또 말하자면 그 글들 사이에서의 어떤 연결을 다시 만드는 것이 그러니까 이렇게 서로 다른, 퍼져 있는 관심사의 글들을 다시 모아 주고 연결해 주고 하는 것이 결국에는 글과 현장을 가깝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아직 잘 정리되진 않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진주: 먼저 질문에 감사드리면서 이 질문에서 다른 화두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신생 공간의 흐름 같은 어떤 특정 시점의 미술의 흐름, 발산, 차원에서만이 아니라요. 제가 평론상 1차까지 접수를 하고 접수자로서 그 글들을 읽어 봤을 때, 그리고 또 접수 전에 평론상 공고 업무를 진행했을 때 세마 코랄을 3년째 운영하면서 느낀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미술에서 만들어지고 생산되는 글이 지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미술에서 텍스트가 생산될 때 어떤 문체를 택하고, 어떤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어떤 감성과 정동으로 쓰고, 이런 것들이 변화하고 있구나. 이 사이에는 분명 오늘 누누이 이야기된 팬데믹 영향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세대 간의 변화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출생 연도가 바뀌는 아주 극적인 변화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평론상을 통해서 어떻게 수렴되거나, 혹은 이탈되거나, 부딪히면서 발현되는 것도 평론상이나 세마 코랄 같은 텍스트 플랫폼에서 엿보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있었거든요. 이런 격차들을 생각했을 때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언어를 쓰고 있는가?’ 이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언어는 세대나 현장의 경험을 얹고서 어떻게 수용되면서 어떻게 벗어나고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얹고 그중에 하나는 기성으로부터 권위의 자리를 빼앗아서 안착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다른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도 있겠죠. ‘미술의 글이 어떻게 변화할까?’ 이 관통의 시기를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이여로: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가 갖는 관념, 제시해 주셨던 동료나 현장이라는 관념, 그런 믿음이 형성되는 데 얼만큼의 경험이 필요한가를 물었을 때 최소 세 번인 것 같아요. 우리의 믿음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횟수에 관한 교육학이나 심리학 연구에서 보면, 두 번째 반복 때 믿음의 확신이 제일 강해지고 그 뒤로 내려간다고 하는데, 그걸 달리 말해 보면 저한테는 가령 주위에 세 사람만 있으면 그게 저한테는 미술계인 것 같아요. 그것은 제가 미술 제도를 구성하는 기관, 미술대학, 관련된 학과 같은 미술인 커뮤니티에서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여러분들이 “미술 현장이 어떤 시대 때 어떻고” 이런 말들이 굉장히 낯설게 들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런 사후적인 문헌이나 구술로써 접하는데, 윤원화 님의 해당 책을 저도 읽어봤는데 거기서 제가 제일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실체적으로 서울의 미술 씬을 개괄하는 것보다는 미술과 미술 아닌 것이 어떻게 인지적으로 경합하는가?” 그런 말씀을 서문에서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앞선 이야기들도 그렇지만, 어떤 보편적인 시점을 제시하고, 그런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이 필요한 만큼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활동들에 대한 관심이나 조망이 동시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이나 미술계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런 거시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미시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는가 생각하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오히려 각자의 개별적인 미술 관념, 동료 관념을 계속 언급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질문자2: ‘담론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최근에 생각해 보다가 그런 것이 이런 행사가 있을 때나 다른 콘텐츠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인용할 때만 잠시 생긴다는 생각을 해서, 그래서 오늘 시간 내서 이 자리에 꼭 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지금 미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외면’과 ‘반목’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공감이 되었어요. 행위자들끼리 어떤 협업을 한다고 해도 그 협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외면하는, 스스로 ‘별 재미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한 경험들이 계속 떠올랐어요. 질문은 김진주 님에게 드리고 싶은데요. 아까 이여로 님이 발표에서 언급한청탁 메일을 줄 때 단순히 “주제가 있어서 당신을 필진 중 하나로 모시고 싶다.” 이게 아니라 “당신의 작업에서 어떤 거를 보았고 발견했고 그래서 이번에 이거 가지고 뭐 했으면 좋겠다.”라는 개별성을 담아 발견한 것, 관찰한 것을 포함해서 말하는, 왜 그런 접근을 하셨는지 묻고 싶었어요. 저는 김진주 님을 예전에 〈말하는 미술〉이라는 팟캐스트로 처음 알았는데, 미술에 대해서 그냥 한 시간 넘게 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좋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여기 미술관에서 일한다고 하실 때 되게 놀랐어요. 그래서 왜 입사하셨는지도 그냥 밝힐 수 있는 선에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진주: 감사합니다. 저에게 웃음과 감동, 감사함을 주셨어요. 첫 번째 질문에 답을 드리면 이여로 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간파하셨는데 “숙련된 편집자면 이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전에 편집을 한 건 이진실 님, 이연숙 님과 동료로서 함께 만든 웹진 『세미나』였어요. 그 경험만을 해본 상태에서 다음 작업이 이번 세마 코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숙련된 편집자도 아니었고요. 사실 편집자나 필자로서 제가 갖춰야 될 미덕 중에 아주 중요한, 데드라인을 지키는 걸 제가 제일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0점짜리인데 그렇기 때문에 숙련된 편집자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핑계대고 싶은 마음이 반이 있고요. 나머지 반은 저는 절대적으로 세마 코랄이 지식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지식이 자기 이론화를 말하고 자기 연구를 말한다면 그것은 필자의 흐름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흐름을 떠나서 번쩍하는 계기에 달라붙어서 그때만 생산되고 지나가 버려서도 안 될 것이고, 그렇게 나타날 수 있는 지식도 아니고요. 그래서 필자분들께 청탁할 때 항상 그들이 써 온 글과 연구의 결들을 자세히 보려했던어요. 이런 제 고집이라든가, 세마 코랄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청탁 메일을 보낼 때 보면 이게 참 아마추어 같았습니다. 청탁의 변이 길어지고, 필자에게 글을 뽑아 내도록 추동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역할도 중요한데 그런 거 못하고 있는 게 아닐지 스스로 반성이나 의심도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앞서 말씀드린 자기 이론화라는 관점에서 ‘이 필자들의 결 사이에서 세마 코랄이 어떻게 진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다음 스텝은 세마 코랄을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들을 고려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고요.

사실은 근데 이것이 전개되는 과정은 필자마다 다 달라요. 어떤 필자분들은 정말 단순명쾌하게 “아, 좋습니다” 하고 마감일에 원고를 주시기도 하고, 또 어떤 필자분들은, 이여로 님의 경우가 그런 경우인데, 글을 주시기 전에 논의가 많아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아니면 또 어떤 필자 분들은 글을 받고 나서 조금의 논의가 더 들어가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런 양상들은 다들 달랐지만 그래도 코랄이 지식 생산에 뭔가를 기여할 수 있고 확장하는 범위, 단순히 한 방향의 생산 구조만이 아니라 그걸 흐트러뜨리고자 하는… 그래서 사실은 플랫폼을 자임했다면 자임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방식은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렇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두 가지 의미에서, ‘발전을 위해서 재고’, 그리고 ‘고쳐야 될 의미에서 제고’라는 차원에서 좀 달라져야 될 부분도 있는 부분이긴 했어요.

〈말하는 미술〉을 계속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말하는 미술〉 작업은 경제적 이득을 만들고 주는 것이 아니었어요. 또 미술관에서 코랄을 런칭한지 한 달밖에 안 되는 시점에 파트너였던 학예사 선생님이 잠시 사무실을 떠나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미술관에서는 제가 들어와서 받아서 세마 코랄 일은 일정 기간 동안 이어가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저는 이 일이, 시한이 정해져 있는 한편, 생계는 물론 좋은 배움도 줄 것 같아서 택했습니다. 제가 이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미술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 것과 상품이 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말하는 미술〉을 했던 이유도 사실 상품 이면에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굉장히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작가들의 말들을 담을 수 있었고요. 그것도 당연히 동료들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것이었어요. 그랬는데, 요즘 재취업을 준비하면서는 ‘작품을 팔지 않는 대신 나는 나를 팔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웃음)

그런데 세마 코랄이 ‘플랫폼’이라는 명제를 안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상품이 되었든, 자본화가 되었든, 작품을 했든 그것은 우리가 사는 구조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에 처음에 세마 코랄을 만들 때 외부 기획자로서는 ‘플랫폼이란 말이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도 했었고 ‘그럼에도 우리가 이 체제와 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이걸 완전히 놓고서는 그런 고민을 할 수 없었어요. 이건 또 오늘 이야기된 ‘연결’이라는 주제와 또 다르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항상 이렇게 연결되는 망 사이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거나, 그것을 버렸을 때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렇게 예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좋을까? 혹은 나쁠까?’ 생각했을 때 권정현 님이 오늘 이야기한, 또 관객 여러분께서 감응하신 “외면, 반목, 협력”도 일어나고 “경합”도 일어나는 지금의 이 상황, 그 상황에서도 보면 우리가 무엇을 놓지 않아야 이 외면과 반복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 꿈틀거리면서 모색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2023년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1부 바로 가기 ↗


  1. 다이, 《사근으로부터》(온수공간, 2023). 

  2. 함께 연극치료에 관한 저서를 준비하던 중 인류학 전공자 유민수 님으로부터 윤택림 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유와 나눔에 감사를 전합니다. 해당 저서로는 『구술사, 기억으로 쓰는 역사』, 윤택림 편역(서울: 아르케, 2010), 『인류학자의 과거 여행-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윤택림 지음(고양: 역사비평사, 2003), 『역사와 기록 연구를 위한 구술사 연구방법론』(서울: 아르케, 2019) 등이 있습니다.  

  3. 같은 맥락에서 신민 작가가 광주여성가족재단의 ‘젠더 칼럼’ 코너에 게재하신 「안티 페미니스트 백래시;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를 함께 읽고 싶습니다. https://gjwf.or.kr/open/06?mode=view&boardIdx=12013

  4. 해당 도형은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지은 『앎의 나무』, 최호영 옮김(서울: 갈무리, 2007) 89~90쪽에서 세포라는 개체가 어떻게 자기구조를 바탕으로 환경을 ‘바라보고’ 처리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개체가 발생하는지, 그 상호작용을 표현한 도형을 변형해 옮겨 그렸습니다. 

  5. 영문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 정의를 참조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Anthology

  6. ‘조정의 조정’은 움베르또 마뚜라나의 표현입니다. 그는 위에 인용한 저서와 더불어 베른하르트 푀르크젠과의 대담집 『있음에서 함으로』(서창현 옮김, 갈무리, 2006) 전반에 걸쳐 이것이 왜 ‘언어의 조건’으로 간주되는지 다룹니다. 「인지생물학의 언어 이해: 마뚜라나의 관점」(신재영, 『국제언어문학』 통권 46호, 2020년 8월, 285-311)이 해당 주제를 특수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7. 우치다 다쓰루가 쓰고 엮은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김경원 옮김(대전: 이마, 2016)는 정치학 연구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와 아카사카 마리(赤坂眞理), 기업가 히라카와 가쓰미(平川克美), 칼럼니스트 오다지마 다카시(小田島隆), 정신과 의사 나코시 야스후미(名越康文), 다큐멘터리 감독 소다 가즈히로(想田和弘), 의학자 나카노 도오루(仲野徹),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鷲田淸一)가 함께한 책입니다. 이 책은 조희수 작가의 추천으로 동행한 카페 ‘울프 소셜 클럽’의 책장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자기만의 방’을 표방하는 해당 카페의 이야기는 다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heritagemansion.kr/itaewon/woolf/

© 2024 작가, 저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 SeMA Coral)에 수록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작가, 저자,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으며, 저작자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서면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각 저작물에 담긴 의견은 미술관이나 세마 코랄과 다를 수 있으며, 관련 사실에 대한 책임은 저자와 작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