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세마 코랄의 ‘연결’ 주제어와 SeMA 의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겨난, 시각문화/예술과 미술관의 (동)시대적 과제에 관해 논하는 지식을 선보입니다.

글과 웹 프로젝트를 함께 수록해서 세마 코랄이 지향하고 생산하는 지식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록 보기’는 수록된 글과 웹프로젝트의 제목을 부호-숫자-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공개된 날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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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달걀의 혁명과 닭의 사랑

    『메두사의 웃음』(1975)에서 앞으로 도래할 “여성적 글쓰기”를 선언했던 식수는 그것의 범례, 혹은 자신의 “뮤즈”를 리스펙토르에게서 발견한다. 식수는 프랑스에서 호세 카스텔로와 한 인터뷰에서 리스펙토르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서구 작가”, “유일하게 비견될만한 작가는 카프카”인 작가라고 거침없이 호명했다. 전문가들보다 어린 소녀들이 더 잘 읽어낸다는 리스펙토르, 순서와 상관없이 읽거나 띄엄띄엄 읽고 있게 될 리스펙토르, 매일 조금씩 읽어도 읽었다는 기쁨을 주는 리스펙토르, 몇 문단만 읽어도 방향상실을 초래하는 리스펙토르. 저 기자에게 리스펙토르의 친구가 들려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 “리스펙토르를 조심해. 그건 문학이 아니야. 그건 마법(witchcraft)이거든”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다변화하는 미술의 존재 양식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술의 존재 양식은 디지털 기반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기반의 미술은 ‘비물질적’이라고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생산해 내고 있다. 또한 과거에 배타적이었던 문화 향유가 오늘날로 와서 비배타적으로 바뀌게 되어 디지털 대상은 물질적인 사적 소유 개념과는 다른 형태의 사적 소유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실물 작품 구매와는 달리 NFT 작품 구매는 공동체가 기존 사물에 부여한 의미와 가치를 구매함으로써 해당 공동체에 속한 타인과 함께 그 가치와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양식의 미술이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

  • 미술관을 불태워라!: 불 밝히는 트랜스 뮤지엄

    최근, 미술관의 ‘공론장’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트랜스(trans-)’라는 접두어는 경계를 초월하고 가로지르는 과정을 뜻을 가지는데, 예술과 미디어 생산에서는 초문화적 접촉, 초텍스트적 교차, 초매체적 연결과 관계된 다양한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 결과 미술관 관객의 범위는 비관객을 수용하면서 확장하고 이들은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여기서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불러오는 것은 스토리텔링, 즉 내러티브다. 관객은 미술관이 제공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대정신이 반영된 가치 및 지속해서 변하는 미학을 작품과 전시에 접목시켜 관객 및 비관객이 자율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함으로 미술관은 작품을 수집, 연구, 전시 등 경직된 활동만 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더 심화한 세계 이해와 교육을 제공한다.

  • 씨앗 시간을 찾아서

    윤원화는 코니 정의 〈씨앗 시간(Seedtime)〉(2020)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시작해 총 여섯 장면(scene)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씨앗 시간〉은 씨앗이 가진 잠재적 시간을 표상하는데, 이를 본 필자는 잠들어 있는 희망에 대해 고찰하면서 아직 접하지 못한 작품을 상상해 본다. 거리상의 이유로 볼 수 없던 작품을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되자 의식의 흐름은 점차 구체화된다. 이후 직접 현실에서 작품을 보자 ‘씨앗’에서 시작한 의식이 시간의 축적으로 진전한다. 예술과 지식에 있어서 씨앗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맺는지 작가의 고민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 없음과 있음들에 대하여

    “거기에는 늘 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김남주가 아닌 또 하나의 목소리도 듣는다. 재일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아니, 오히려 우리야말로 북도 남도 아닌 하나의 조선”이라고 힘주어 외친 남자의 목소리다. 그 오사카 시인은 광주사태를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는 늘 내가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갈라진 해협의 거리가 아니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다. 시대에 짓눌리면서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기’로 바꾸려 했던 또 한 명의 시인. 자신의 어둠을 향한 통절한 목소리.” 이 글은 사쿠라이 다이조(櫻井大造)라는 일본의 연극인이 썼다. 여기서 ‘우리’란 ‘바람의 여단’이라는 1980년대 일본의 텐트연극집단을 말하지만, 이 대목은 넘어가겠다. 따로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신 이 글에서 몇 가지 단어를 챙겨두고 싶다. 목소리, 재일, 감옥, 시인, 어둠, 그리고 ‘존재’.

  • 온라인 디폴트 시대의 미술작품

    미술 작품 및 전시의 경험이 문학, 영화, 음악, 공연 등의 다른 장르처럼 매끄럽게 묘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에 내재되어 있는 복합성 때문이다. 최근에는 작품이 가상 공간인 웹과 연동되면서 ‘온라인 디폴트’ 작품이 등장했다. 온라인 디폴트 작품은 오로지 가상 현실에서만 상호작용이 가능한 유형부터 물질 세계에 맞춰 재구성된 작품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이들 모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흐린다. 이 모호해진 경계가 다시 작품과 전시의 복합성을 강화하고 완전히 복제 및 재현될 수 없는 성격을 유지시킨다.

  • 원형(圓形)의 원형(原形), 원형(原形)의 원형(圓形) + Diffusion

    이 글은 ‘미메시스’와 ‘이데아’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3D 조각 프로그램과 이미지 생성 AI를 통해 미메시스로만 존재하는 원형(原形)의 역설을 이야기하고, 추상이 아닌 반(反)추상으로서 미메시스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반추상이란 추상의 해체이자 이데아의 세계 그 자체로서,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현실과 이데아가 연결되는 ‘단일한 세계관’을 상상한다.

  • 인간질서-질문들 (Human Order-Questions)

    퍼포먼스를 미술관이 소장할 때 발생하는 여섯 가지 질문을 강연 형식으로 풀어낸 퍼포먼스로서 미술작가 김홍석과 배우 김신록의 공동 작품이다.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퍼포먼스 기록사진, 비디오는 퍼포먼스를 대표하는 원본성을 가진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으로 완성된 퍼포먼스의 저작권과 소유권이 작가에게 온전히 귀속되는 것이 타당한가? …

  • 인공적 원본: 합성 텍스트와 번역적 가변성

    언어 모델이 생성한 결과물은 손실 압축된 사본이 아니라 수많은 언어 데이터의 조각들로 구성된 언어적 모자이크다. 이 모자이크는 열등하지 않고 단지 다를 뿐이며, 언어 자체를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언어 모델이 생성한 결과물처럼, 우리의 세계 인식은 객관적인 현실의 손실 압축본이 아니라, 방대한 양의 감각 데이터로부터 구성된 “바이브”일지도 모른다. 언어와 생각을 조정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인 끊임없는 번역의 과정에 동참하고, 언어를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브”에 상응하는 새로운 형태로 빚어 나간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스스로의 생각의 번역자가 된다. 이는 우리의 소통방식을 재정의할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실과 인공적인 실로 번갈아 짜인 더 풍부하고 복잡한 언어적 태피스트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