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세마 코랄의 ‘연결’ 주제어와 SeMA 의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겨난, 시각문화/예술과 미술관의 (동)시대적 과제에 관해 논하는 지식을 선보입니다.

글과 웹 프로젝트를 함께 수록해서 세마 코랄이 지향하고 생산하는 지식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록 보기’는 수록된 글과 웹프로젝트의 제목을 부호-숫자-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공개된 날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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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의 비트를 들어라

    〈지질학적 테크노〉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의 일환으로 제작된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 핵심이 되는 상상력은 프로젝트를 이끈 작가 안데스의 2017년 남미 여행 중 생겨난 오래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 남아메리카 동부의 거대한 자연 장벽 안데스 산맥 지층의 단면에서 케이크의 절단면을 상상한 그는, 이 발견을 곧 제빵으로 산의 형성과정을 추적한 전시형 퍼포먼스 〈지질학적 베이커리〉(2019-2021)와 서울의 산을 방문하여 여러 지형을 관찰하고 탐험한 참여형 워크숍 〈빵산별 원정대〉(2020) 등으로 구체화한다.

  • 보이지 않는 것의 지도 그리기로서 회절(diffraction)

    대상을 자기에게로 재흡수 통합하는 것이 반영이라고 한다면, 해러웨이는 반영론에 구멍과 균열을 낼 수 있는 전략으로 회절에 의존한다. 반영이 직진하면서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면, 회절은 겹치고 주름져서 보이지 않는 것의 흔적에 주목한다. 광학에서 회절은 빛이 장애물을 만나면 일부는 직진하지 못하고 에둘러가는 현상을 뜻한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는 오래된 논쟁이었지만 현재 빛의 이중성(반영과 회절 모두)을 인정하는 바, 회절은 빛이 파동임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빛은 어둠에 의해서 존재함에도, 반영론의 인식론적 우월성에 균열을 내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 사물을 따라가기, 끌려가지 않으면서

    연구자로 훈련받아온 내가 만약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연구가 미술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만들기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만으로 만들기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만들기는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 한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만들기는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있음에서 다른 있음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인간 ‘창작자’ 역시 특수한 종류의 재료로 간주한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인간 창작자는 매우 특수한 능력을 지녔지만, 만들기의 참여자라는 점에서 다른 재료들과 형식적으로 동등하다. 이 글은 연구와 미술이 얼마나 닮았는가 혹은 우리가 서로 얼마만큼 비슷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그 반대이다. 연구에서의 재료와 미술에서의 재료 사이에서, 사물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