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세마 코랄의 ‘연결’ 주제어와 SeMA 의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겨난, 시각문화/예술과 미술관의 (동)시대적 과제에 관해 논하는 지식을 선보입니다.

글과 웹 프로젝트를 함께 수록해서 세마 코랄이 지향하고 생산하는 지식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록 보기’는 수록된 글과 웹프로젝트의 제목을 부호-숫자-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공개된 날짜를 보여줍니다.
‘목록 다운로드’를 누르시면 발행순으로 수록된 글의 목록을 정리한 전자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2021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 사랑과 야망

    이진실: 자유롭게, 조금은 편하게, 이번에 출간한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 1 , 이 책과 관련해서, 또 이 책에서 건드리고 있는 페미니즘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김화용 작가와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책을 오늘 처음 받아봤어요. 책이 참 예쁘게 나와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평론상 수상 이후에 2년 동안 이렇게 …

  • ‘당신을 지지한다’는 문장의 곤란함에 관하여

    많은 예술가들은 사회 이슈를 알리고 기록하기 위해 예술의 언어를 동원하고 시각예술의 형식을 갱신해왔다. 더러 미술관은 규율과 관습을 깨는 재현적 투쟁의 장으로서 역할을 자임하고, 같은 전시 안에서도 검열과 그에 저항하는 행동들이 쟁투를 벌이는 재현적 정치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비평은 무엇을 예술로 소환하고 있는가를 묻는 데 나아가 이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주체가 어떻게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배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양식과 방법론으로 대상을 재현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 글쓰기-달걀의 혁명과 닭의 사랑

    『메두사의 웃음』(1975)에서 앞으로 도래할 “여성적 글쓰기”를 선언했던 식수는 그것의 범례, 혹은 자신의 “뮤즈”를 리스펙토르에게서 발견한다. 식수는 프랑스에서 호세 카스텔로와 한 인터뷰에서 리스펙토르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서구 작가”, “유일하게 비견될만한 작가는 카프카”인 작가라고 거침없이 호명했다. 전문가들보다 어린 소녀들이 더 잘 읽어낸다는 리스펙토르, 순서와 상관없이 읽거나 띄엄띄엄 읽고 있게 될 리스펙토르, 매일 조금씩 읽어도 읽었다는 기쁨을 주는 리스펙토르, 몇 문단만 읽어도 방향상실을 초래하는 리스펙토르. 저 기자에게 리스펙토르의 친구가 들려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 “리스펙토르를 조심해. 그건 문학이 아니야. 그건 마법(witchcraft)이거든”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 보이지 않는 것의 지도 그리기로서 회절(diffraction)

    대상을 자기에게로 재흡수 통합하는 것이 반영이라고 한다면, 해러웨이는 반영론에 구멍과 균열을 낼 수 있는 전략으로 회절에 의존한다. 반영이 직진하면서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면, 회절은 겹치고 주름져서 보이지 않는 것의 흔적에 주목한다. 광학에서 회절은 빛이 장애물을 만나면 일부는 직진하지 못하고 에둘러가는 현상을 뜻한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는 오래된 논쟁이었지만 현재 빛의 이중성(반영과 회절 모두)을 인정하는 바, 회절은 빛이 파동임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빛은 어둠에 의해서 존재함에도, 반영론의 인식론적 우월성에 균열을 내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 사물을 따라가기, 끌려가지 않으면서

    연구자로 훈련받아온 내가 만약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연구가 미술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만들기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만으로 만들기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만들기는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 한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만들기는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있음에서 다른 있음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인간 ‘창작자’ 역시 특수한 종류의 재료로 간주한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인간 창작자는 매우 특수한 능력을 지녔지만, 만들기의 참여자라는 점에서 다른 재료들과 형식적으로 동등하다. 이 글은 연구와 미술이 얼마나 닮았는가 혹은 우리가 서로 얼마만큼 비슷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그 반대이다. 연구에서의 재료와 미술에서의 재료 사이에서, 사물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

  • 엄지은 작가 인터뷰: 손끝으로 경험하는 세계, 방향을 더듬으며 그리는 회로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시각예술작가 엄지은은 신체와 땅이 연결된 회로를 그리는 웹프로젝트 〈피치카토 서킷〉(2023)을 선보입니다. 〈피치카토 서킷〉은 관객이 스크린을 터치함으로써 작업을 진행시키는 인터렉티브 웹 작품입니다. 신체의 움직임이 더 거대한 세계와 연결되는 감각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가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웹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면서 어떤 새로운 지점들을 만들어 냈는지 이야기 나눕니다.

  • 없음과 있음들에 대하여

    “거기에는 늘 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김남주가 아닌 또 하나의 목소리도 듣는다. 재일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아니, 오히려 우리야말로 북도 남도 아닌 하나의 조선”이라고 힘주어 외친 남자의 목소리다. 그 오사카 시인은 광주사태를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는 늘 내가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갈라진 해협의 거리가 아니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다. 시대에 짓눌리면서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기’로 바꾸려 했던 또 한 명의 시인. 자신의 어둠을 향한 통절한 목소리.” 이 글은 사쿠라이 다이조(櫻井大造)라는 일본의 연극인이 썼다. 여기서 ‘우리’란 ‘바람의 여단’이라는 1980년대 일본의 텐트연극집단을 말하지만, 이 대목은 넘어가겠다. 따로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신 이 글에서 몇 가지 단어를 챙겨두고 싶다. 목소리, 재일, 감옥, 시인, 어둠, 그리고 ‘존재’.

  • 연산호와 관계 맺고 실천하기

    이 글은 강정 평화 활동가인 저자가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팀’에서 수중 카메라로 연산호를 촬영하며 연산호와 관계 맺어 온 경험을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해군기지 공사로 훼손된 연산호 군락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을 넘어, 저항적 주체로서 연산호를 포착하고 그와 연결되고자 했던 노력을 전한다. 전시 기획과 영화 제작이 그 방법이 되었음을 밝히며, 그 속에서 열린 새로운 감각을 전해 준다.

  • 열 손가락과 목소리를 조금씩 밀어내며

    언젠가부터 인간의 신체조건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음악적 환상들이 발견됐다. 주로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유럽 전통을 따르는 근현대 음악가들의 악보에서 나타난 징후로, 대체로 연습하면 해낼 수 있는 것과 신체 구조상 거의 불가능한 것의 경계면에 있었다. 이어지는 상상들. 소리는 당연히 귀에 들리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청주파수 대역폭 안에서도 일정한 진동수를 가지고, 진동과 통증이 아닌 것으로 느끼게 되는 특정한 공기의 진동, 같은 정의를 만들어보기. 그리고 그 넓은 영역 안에서 음악이라는 개념은 얼마나 작고 얇은지 생각한다. 엄청나게 긴 시간 속에서 인간 신체가 변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몸 바깥에 있는 안경이나 이어폰, 보청기 같은 외부 장착물들이 점차 신체 더 깊은 곳으로 향하며 ‘보철’이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몸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다.

  • 우연한 몸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라인 삶의 형체와 질량이 한층 더 확장했고, 화면 속 육체가 없는 존재들의 묵직함과 정보의 범람에 의해 다양한 몸들의 윤곽이 얼버무려지고 있는 듯하다. 사용자는 ‘좋아요’와 같은 반응 기반의 상호 작용을 추적하는 통계로 몸을 입증하고, 기계가 생각하는 ‘인간미’가 없다면 몸은 인식되지 못할 수 있다. 매일매일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물리적인 현실과 디지털 환경의 얽힘(entanglement)에 편재하는 굉장한 공허와 대혼란 사이에서 우리의 몸을 정의하고 입증하기 위해 바삐 활동하고 있다. 그 움직임이 중앙 집권화된 편협한 규범성에서의 쳇바퀴 달리기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예상된 패턴을 이탈하는 오류인 글리치(glitch)를 통해 출구전략을 세우고 또 다른 형체의 몸에 도달해 보려 한다.

  • 채굴되는 지구, 추출되는 데이터: AI 시대의 지도 그리기와 예술

    우리의 관심은 AI가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을 하는지에 관한 것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AI 알고리즘은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집적된 데이터에 기반해 훈련(기계학습)하고 그 과정에서 구축한 알고리즘 모델(패턴)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독창적인 텍스트와 이미지, 나아가 사운드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가와 창의 산업의 종사자들은 새로운 작품과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성형 AI를 도구로 삼아 혹은 협업의 파트너로 삼아 창의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다. 비록 할루시네이션(환각)의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아마 앞으로의 예술 창작은 생성형 AI와의 대화, 문답,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과정은 예술 창작자와 AI 양자에게 상호 혁신과 진화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 탈인간을 위한 실천: 사물의 윤리

    기계는 작동되어야 하거나 찬양되어야 하거나 지배되어야 할 어떤 물건이 아니다. 기계는 우리 자신이고, 우리의 작동양식이며, 우리의 신체성의 한 측면이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raway) 1 어떤 존재들을 배제해나가는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 만들어지는 타자성(otherness)에 도전하기 위하여, …

  • 탈인간을 위한 실천: 사물의 윤리 (1)

    어떤 존재들을 배제해나가는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 만들어지는 타자성(otherness)에 도전하기 위하여, ‘비인간화(dehumanization)’의 한 방식인 ‘사물화(objectification)’ 개념을 새롭게 사용할 수는 없을까? 그동안 비인간화, 사물화(혹은 대상화)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부정적인 말로 쓰여왔다. 두 개념을 통해, 인간이 식물과 동물 등 타자들과 구별되는 어떤 특성이 있다고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특성이 결여된 상태가 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글은 능력(ability)과 장애 여부를 기준으로 인간을 다른 대상과 구별하는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간성의 뚜렷한 표식을 제거해나가는 작업들을 검토한다. 퍼포먼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리듬〉 연작은 사물화를 실행하고 동시에 사물화 당하는 몸이 사물성과 겹쳐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구분에 도전한다.

  • 탈인간을 위한 실천: 사물의 윤리 (2)

    억압과 식민주의 역사에 기반한 노동 착취를 지지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정치 안에서 사물-되기는 과연 어떻게 실현 가능하며,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는 초현실주의, 코미디, 음악적 요소를 사용하여, 목적 없는 기계가 되는 한 정신장애인을 묘사한다. 사이보그여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순응과 치유로 귀결되는 전형적인 심리치료 서사와는 다른 길을 택한다. ‘괜찮다’는 평가는 퀴어적 장애성이 잠재적으로 인간과 사물 사이의 경계를 흐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분명한 것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능력을 나타내는 표식에 국한되어 있는 행위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언뜻 수동적 사물로 보이던 영군은 의도치 않게 수용시설이라는 공간에서 장애를 가진 삶, 인지적/심리적 차이를 가진 삶을 인간성의 조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지공동체를 만들어낸다.

  • 테크놀로지 성지순례 ― 숭배, 신체, 이미지

    인터넷 사용자 대부분은 장난치듯 성지순례라는 말을 사용한다. 댓글 성지순례를 위해 재산을 탕진하는 사용자는 없을 테니까. 예언적 댓글을 쓴 사람이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 성인, 신이라고 믿는 사용자는 드물 테니까. 그런데 인터넷의 바이럴 문화, 열렬한 사랑, 순례 놀이의 수행성은 신도들이 가지고 다니던 숭배 조각물(idole), 소원을 빌며 성소에 바치던 봉헌물(Ex-voto), 순례 문화를 만들고 집착했던 유한한 인간의 인류학적 욕망의 반복이기도 하다.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이미지를 고안하는 기술과 이미지의 미적 성격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한 집합적 이미지의 인류학적 성격을 탐구한 연구자다. 벨팅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적 탐구는 ‘인간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플라이 모그(Fly Morgue): 가지 펼치기

    세마 코랄의 세 번째 워크숍/강연은 이소요 작가가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로 선보인 <플라이 모그 Fly Morgue >(2021) 의 이야기 가지를 풀어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2021년 12월 2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작가는 실험용 초파리( Drosophila melanogaster )가 어떻게 생물 자원으로서 …

  • 피치카토 서킷: 신체와 땅, 지구적 여정의 회로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시각예술작가 엄지은은 신체와 땅이 연결된 회로를 그리는 웹프로젝트 〈피치카토 서킷〉 (2023)을 선보인다. 관객은 웹페이지를 손으로 터치하면서 회로를 만들어/따라 간다. 어디로 갈지, 어떤 연결망을 만들어 낼지 모른 채,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회로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엔딩에 도달하게 된다.

  • 흩날리는 말, 소리의 삶

    아카이브의 식민성에 대한 고찰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많은 연구자들과 창작자들이 실증주의적 지식관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면서, 제국의 지식생산과 억압이 맞물리는 순간에 대해 더욱 예리하게 분석하고, 이러한 아카이브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그 당시 식민적 조건과 구조를 밝히고, 그 속에서 저항의 흔적 또한 읽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시도는 문자로 된 아카이브와 그것이 말하는 (혹은 숨기고 있는) 서사에 집중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음성으로 된 자료는 단순히 문자로 된 아카이브에서 밝혀낼 수 있는 서사를 증명하는 표본으로서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인가? 제국의 지식생산이든 비판적 아카이브 분석이든, 소리는 계속 문자와 문자가 만들어내는 서사에 종속되거나, 부차적 자료로 기능하는 것으로만 다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