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모그(Fly Morgue): 가지 펼치기

이소요
이소요는 생물을 시각정보와 예술창작물로 환원해온 문화적 관습을 탐구하는 미술작가이다. 미국 렌슬리어공대 예술학과에서 예술-과학사 학제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창시절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모형으로 도입하는 생물물리학 연구실에서 6년 동안 조직학 테크니션으로 일하며, 데이터를 얻기 위해 생물을 기르고 죽이는 일상을 보낸 경험이 있다.

세마 코랄의 세 번째 워크숍/강연은 이소요 작가가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로 선보인 <플라이 모그 Fly Morgue>(2021)의 이야기 가지를 풀어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2021년 12월 2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작가는 실험용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가 어떻게 생물 자원으로서 유형화되고 소비되는지를 다룬 마인드맵 <플라이 모그>가 그리는 단상의 고리를 따라, 생물과 조응한 자신의 경험, 그 기억들과 교차하는 문장들과 시각적 편린의 흐름을 찬찬히 펼쳐 보였습니다. 인간의 범주에 함몰되지 않는 생물로서의 사유와 관찰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참여자들과 함께, ‘피와 살’에 관한 윤리적, 기술적, 제도적 문제에 관한 생각, 실천, 태도를 되짚어 본 그날의 이야기 가지들을 공유합니다.


1. 웹과 연결된 지식

지난달, 세마코랄이라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새로운 지식 공유 플랫폼에 <플라이 모그 Fly Morgue>(2021)로 참여했습니다. 제게 웹 작업은 처음 해보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플라이 모그> 프로젝트는 코글(Coggle)이라는 마인드맵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제작했어요. 코글에 올린 <플라이 모그> 웹페이지 주소를 가지고도 바로 찾아 들어올 수도 있고, 세마 코랄 웹사이트를 통할 수도 있어요. 세마 코랄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링크와 함께 다이어그램 작품을 볼 때 도움 될만한 매뉴얼을 함께 수록했어요.

<플라이 모그> 웹페이지는 퍼블릭 다이어그램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로그인하지 않은 채로도 누구든지 작품에 접근할 수 있어요. 다이어그램 중앙에 떠 있는 ‘플라이 모그 Fly Morgue’라고 적힌 동그라미에서 플러스나 마이너스를 누르는 방식으로, 사고가 연결된 키워드들의 가지를 펼쳐가면서, 따라가면서 보실 수 있어요. 이렇게 계속 연결지어 이미지와 내용을 보여줍니다. 프리젠테이션 모드를 누르면 다이어그램 전체 안에 들어있는 구성 요소들 전체를 한번에 볼 수 있어요. 전체에서 원하는 부분으로 이동해서 화면을 줌인해서 볼 수도 있어요.

저는 작품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 자료를 모으고 참조하면서, 그것들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는 편이고, 반면 표현적이거나 정서적인 글쓰기에 약한 편인데, 마인드맵 형식을 통해 자료를 좀 더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었어요. <플라이 모그> 다이어그램의 각 파트가 직접적인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사용자가 이 모든 문구나 그림이나 영상을 자세히 읽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의 어떤 마음속, 머릿속에서 이것들이 각자 다른 완결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열린 차이들: 연구실과 생물

“모두의 연구실 코랄”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 봤어요. 열려 있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또 서로 다른 연구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기여하는 오픈된 연구실. 그리고 이 연구실은 오프라인, 아날로그의 환경이 아니라, 100% 웹에 존재하는 디지털 데이터로만 구성된 연구실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나 웹을 통해서 접속할 수 있지요. 이렇게 열림이기도 제약이기도 한 조건이 저한테 주어졌고요.

그리고 주어진 또 다른 조건은 <세마 코랄>에도 실려 있는 김혜순 시인의 시 여섯 편이었어요. 「피어라 돼지」라는 이 작품을 비롯한 여섯 편의 시를 참고해서,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구성해 달라는 요청을 제게 주셨어요. 저는 이전에는 김혜순 시인의 작품을 잘 알지 못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책들을 찾아서 읽고 또 새로 공부하며, 이 시인의 작품 세계 속으로 조금씩 새로 들어가 보는 경험을 통해서, 제 학창 시절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대표작 중 「피어라 돼지」에는 구제역 때문에 생매장되었던 돼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상당히 격앙된 감정에, 아주 극적인 설정들. 이런 번쩍번쩍하고, 뭔가 끓고, 빨갛고, 뜯어먹고, 흘러내리는, 굉장히 극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수 코(Sue Coe)의 그림 중,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이렇게 시뻘건 핏속에, 다양한 동물들이 길에 흘러내리는 장면이 있어요. 이 생물들은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원이기도 하고 자본이기도 해요. 이 그림은 생물이 금융의 논리 속에서 희생되거나 이용되는 도구화되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어요. 이 그림이 실린 『Dead Meat(데드 미트)』라는 책은, 동물권의 문제, 사람의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 안에서 희생되는 여러 가축에 관해 쓴 수 코의 에세이와 그림을 담고 있어요. 이 책을 보면서 했던 동물들에 대한 생각이, 김혜순 시인의 시를 보면서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김혜순 시인이 동물들을 보면서 가졌던 여러 감정이나 표현과 제가 학생 때 실험실에서 생활하면서 동물들하고 겪었던 경험과 감정은, 온도 차가 있다는 것도 동시에 떠올랐었어요. 저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자연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연구실에서 7년 동안 초파리를 키우기도 하고, 또 죽여서 해부하기도 하고, 또 데이터로 가공하기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초파리들이 살고 번식할 수 있는 일정에 제 생활이 항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맞춰지게 돼요. 눈 뜨면 가서 하는 일이 초파리 밥 주고, 지저분한 것들 갈아주고. 그다음에는 초파리를 잡아서 마취시키고 해부하고. 거기서 필요한 정보들을 꺼내고. 이런 일들을 수년간 반복하며 동물들이 살고 죽는 어떤 특정한 모습을 제 피와 살처럼, 삶의 일부처럼 경험했어요. 많은 도시인이 동물이 죽는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하거나 미디어를 통해 가공된 모습으로 접하게 되는데, 그것과 동물의 죽음을 정말 무덤덤해질 정도로 매일 접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점들이 <플라이 모그>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3. 책들: 과학기술자들의 경험과 관점, 그것에 대한 비평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일 하면서 제가 봤던 책들을 조금 보여드릴게요.1 『리프리젠팅 애니멀즈(Representing Animals)』의 저자인 나이젤 로트펠즈(Nigel Rothfels)는 동물권을 연구하는 철학자이자 문학인이면서,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출판 시리즈인 『아니말리부스(Animalibus)』를 기획, 편집하고 있어요. 동물권에 대해서 연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논문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책무를 표상하는 과학과 예술과 언론의 여러 가지 방법과 관점을 소개하는 책들이 학창시절 제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이러한 책에는, 과학 안에서 기술적으로 생물의 어떤 특성을 묘사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시각물들이 생겨나요. 이 그림들을 보면서, 과학적 이미지 속에서 생물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왜곡되기도 하고 선별적으로 보여지는 ‘객관성’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 영향을 받았던 중요한 책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스티브 울거(Steve Woolgar)의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이에요. 브뤼노 라투르가 박사 논문으로 70년대에 썼던 내용을 단행본으로 낸 것이고, 몇 년 전 우리말로도 번역이 잘 되어 나왔어요. 이 책은, 이를테면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연구실의 과학자들을 하나의 부족(tribe)처럼 보고, 연구실 속으로 들어가 이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고 레토릭을 만들어서 이 사회에 기여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합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과 비슷한 결이라 할 수 있는, 초파리 연구와 연구자들에 관한 『롤즈 오브 더 플라이(Lords of the Fly)』라는 책이 있어요.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로 많이 보셨을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의 제목을 변주했어요. 여기서 ‘fly’는 초파리(Droshopila melanogaster)를 말해요. 그리고 초파리를 지배했던 여러 대표적 과학자들을 ‘lord’라 표현한 거예요. 이 책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유전공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초파리를 누가 처음 ‘모형 생물’로 길들였고, 어떤 실험실이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그러한 과학 연구자들의 실천으로 인해 현대의 유전과학이 어떻게 발전하게 됐는지를 역사적,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조금 더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소개할게요. 『어게인스트 메소드(Against Method)』를 쓴 폴 페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가 과학기술학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1980년대는, 실험과학이 70년대에 방법론으로 정립된 지 10년 정도 되면서 실험과학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지식의 객관성에 대해 질문하는 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어요. 이 책은 과학적으로 면밀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그런 방법론들, 즉 책 제목에도 있는 ‘메소드(method)’를 비평하는 내용이에요. 과학이 ‘절대 지식’, 즉 우리 모두가 항상 믿어야 하는 어떤 신념 기반의 내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항상 그 사람들(과학자들)에 의해서 계속 업데이트될 수 있다는 점. 한편, 이런 지식 또한 검증 받을 수 있고, 또 이론이나 가설 같은 것은 항상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 과학적 지식 역시 누군가의 주관성에 따른 지식 체계라는 점을 이 책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했어요. 이런 책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사라는 서구 과학 지식 체계가 만들어졌을 때 사용됐던 언어들을 비평한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The Archaeology of Knowledge and the Discourse on Language)』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요.

미술에서 요즘 많은 관심을 받는 연구자인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크리스탈, 패브릭스, 앤드 필스(Crystals, Fabrics, and Fields)』는 해러웨이가 본격적으로 여성 또는 동물에 대해 글을 쓰기 전, 70년대에 쓴 과학학 박사 논문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우리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요. 이 논문은 유기체에 적용하는 단어들이 생물학 안에서의 논리를 만드는 데 어떻게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는지를 언어학적으로 비평하고 있어요. 해러웨이가 푸코의 『말과 사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쓴 책이기도 해요. 저는 이렇게 과학 안의 언어 체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과학의 지식 체계와 과학 분야의 사람들이 지식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세상을 가공하고 또 변형하는가에 대해서 비평했던, 70년대 80년대에 나왔던 책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김혜순 시인이 대량생산과 자본주의 속 동물들을 바라보며, 피와 살로, 피부에 와닿는, 어떤 시각적이고 후각적인, 또는 촉감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 그런 글들을 썼다면, 저는 실험과학자와 같이 팀을 이루어 일했던 경험, 또 그러한 과학적 행동을 비평하는 일들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어요.

4. 플라이와 모그

이번 작업의 제목에 쓴 단어 중 ‘모그(morgue)’는 제가 실험실에서 썼던 도구 이름이기도 해요. 이 단어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시체 보관소인데요. 보통 사람이 사망하면 병원 등의 ‘안치소’에 며칠 동안 안치했다가 장례를 치르지요. 그렇지 않고, 변사체가 발견되었거나 어떤 사건이 있어서 검시를 해야 되는 그런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는 안치소보다는 조금 더 장기적으로 사체를 훼손하지 않고 보관할 장소가 필요해요. 냉동실이 칸칸이 쭉 아파트처럼, 서랍처럼 되어 있는 방에 사체들을 일정 기간 보관하면서 조사를 하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하고 주인이나 가족을 찾아주기도 하는 일들을 하는 곳이 시체 보관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플라이 모그’는 ‘초파리 사체 보관소’를 뜻해요.

<플라이 모그> 다이어그램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나타나는 이미지를 보면, 평범한 플라스틱 시약병에 깔대기 하나를 테이프로 고정하고, 붓도 하나 끼워놨고요. 그리고 통 겉면에 매직펜으로 그때 실험실에 있던 구성원이 “fly morgue”라고 써놨어요. 이렇게 생긴 통은 초파리를 연구하는 다른 실험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 연구실 고유의 관습이라기보다는, 초파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초파리는 번식력이 굉장히 강합니다. 바나나에 한 번 초파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금방 우글우글하게 번식하고, 쓰레기통에도 애벌레나 알이 확 퍼져 있는 걸 자주 보셨을 텐데, 좋은 환경에서 초파리들을 키우면 연구에 사용할 양보다 훨씬 많은 수의 초파리를 얻기 돼요. 생물이 굉장히 작기 때문에, 연구할 때 사용하기 편하려면 일단 크기가 충분히 크고, 건강하고, 좀 좋은 것들을 골라서 쓰게 된단 말이죠. 그렇게 연구에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굉장히 많은 초파리들이 남거든요. 그러면 그것을 전부 이 플라이 모그 통에 넣습니다.

실험실마다 다르긴 한데, 이 통에는 주로 비눗물이나 알코올 같이 간단한 소독액이 들어있어요. 저희는 주방 세제 같은 걸 풀어서 넣었어요. 깔대기가 길게 속으로 들어 있어서 초파리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액체 속에 잠기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초파리를 이 상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폐기물 업체가 오면 한꺼번에 정기적으로 수거해 가는 방식으로 버립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실험에 사용하지 않은 초파리들은 그냥 자연에 놔주면 되지 왜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느냐 질문하실 수도 있어요. 보통 실험실에서는 어떤 특정한 기능을 가지도록 표준화되고 개량된 생물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저희 실험실에서 썼던 초파리 역시 아주 특수한 형질을 가지도록 유전자조작을 통해 만든 생물이었어요. 곤충은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나오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변태한다는 것 많이 알고 계실 거예요. 애벌레는 다리가 거의 없거나 아니면 굉장히 짧은 다리가 여러 개가 달려 있으면서 마디로 이루어지며, 꿈틀꿈틀, 꼬물꼬물 움직이면서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머리, 가슴, 배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아니면 하늘을 날아야 된다거나, 멀리, 빨리 뛰어야 된다거나 하는 기능이 거의 없이, 한 곳에 붙어서 음식만 계속 조금씩 먹으면서 몸을 키우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애벌레가 가진 근육은 성충의 것에 비해 연약하고 또 부드러워요. 동시에 애벌레의 근육은 번데기 안에 들어가서 변태했을 때 나중에 날개 근육, 배 근육, 다리 근육 같이 여러 가지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집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의 생명공학 연구센터에는 재생의학 연구가 활발했어요. 이런 실험실은 군사과학기술 지원금을 많이 받는데, 전장에서 손상된 신체를 재생할 수 있는 분야가 예산도 크고 연구도 다양하게 이루어져요. 제가 일했던 연구실의 목표는 팔다리 근육을 잃었을 때 기계를 접합하거나 의수나 의족을 사용하지 않고도 직접 살이 생겨날 수 있는, 즉 근육 세포가 스스로 재생하는 원리, 아니면 유충의 근육이 성충의 것으로 분화하는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었어요. 초파리 애벌레 안에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근육이 어떻게 성충의 근육으로 바뀌는지가 궁금했던 거예요.

애벌레의 근육을 얻기 위해서는 애벌레를 해부해야 될텐데, 애벌레의 근섬유는 너무 약해서 해부와 실험이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실험실에서는 초파리가 변태하여 성충이 되었을 때 그 초파리 근섬유 안에 들어있는 단백질들이 성충의 것이 아니라 유충의 것으로 발현되게끔 유전자를 조작했어요. 근섬유 다발의 횡단면을 보면 여러 가닥의 근섬유가 있고, 섬유 가닥마다 액틴(actin)과 마이오신(myosin)이 벌집처럼 배열되어 있습니다.2 이 같은 성충의 근섬유에 발현된 단백질이 유충의 것이 되도록 조작했던 거죠. 구조는 성충의 것이지만, 그만큼 강도가 안 되기 때문에 이 생물이 날거나 뛸 수는 없어요. 날갯짓을 하면 근육이 다 찢어져버릴 정도로 약하지만 그 근섬유를 추출해서 기계 장치에 걸어 강도를 측정하는 실험은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특수한 종류의 근육을 얻기 위해서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계속 개량하고 배양하는 일들을 했어요. 굉장히 기괴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은 제가 있던 실험실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실험실에서, 또 다른 동물을 사용해 하고 있는 일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왜 우리가 실험에 사용하고 남은 초파리를 놔주지 않고 ‘플라이 모그’에 넣었느냐 하면, 여러 목적에 맞춰서 실험실마다 다양하게 만들어 낸, 특수한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조작된 생물들은 누군가의 지적 자산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밖으로 나가서, 야생에 있는 다른 초파리들하고 같이 섞여 그 형질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해요. 그것이 지적 자산인 동시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태어난 초파리는 원론적으로는 100% 다 실험실 안에서 죽게끔 통제를 합니다. 초파리뿐 아니라 유전자를 조작한 모든 모형 생물들이 다 그런 식으로 다루어지죠.

실험용 초파리에도 와일드 타입(wild type)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와일드 타입은 야생형이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실험실 밖에 바나나를 놔두고 꼬이는 초파리를 잡아와서 쓰는 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초파리가 가지는 여러 특성들이 있어요. 이를 테면 눈은 빨갛고 날개는 노란색인데 날개 안에 맥은 검정색이고 다리가 여섯 개 달렸고 배에 털이 있고 없고. 기본적인 초파리, 즉 드로소필라 멜라노가스터(Drosophila Melanogaster)라는 생물을 동정(同定 identify)할 때 기준이 되는 여러 분류 키(key)이죠. 그것을 와일드 타입으로 설정하여 그 형질을 가진 초파리를 일부러 육종합니다. 그리고 그 대조군으로, 와일드 타입에서 변형된 수많은 초파리 계통(strain)을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연구실들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마인드맵에는 플라이 모그의 깔대기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본 사진도 있어요. 통 안에 있는 대부분의 파리들은 아마 목숨이 끊어진 상태일 거예요. 제가 처음에 이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파리 시체 보관소라고 적혀 있는 이 통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김혜순 시인이 돼지들이 식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대량으로 살생, 폐기되는 모습을 봤을 때 느꼈던 충격이 어떻게 보면 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5. “빨간 물”과 “피의 색깔”

김혜순 시인이 2016년 발표한 시집 『피어라 돼지』에 「춤이란 춤」 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어요.

비커엔 빨간 물이 찰랑거리네요.
흘러내리는 화산도 솟아오르는 피도 붉은색
살아 있다면 저런 색이죠
3

김혜순 시인의 『여자짐승아시아하기』에는 이런 문구가 있어요.

만약 쥐덫으로 쥐를 잡게 되면 쥐덫을 물에 담가 천천히 죽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쥐에게 미안하지 않은 일이라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쥐를 죽이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4

플라이 모그에 담겨 죽은 초파리 사진, 그리고 이 초파리를 어떻게 우리가(인간이) 만들어내고 또 죽이는지, 그 과정을 생각하며, 김혜순 시인의 문구들을 떠올렸습니다.

<플라이 모그> 마인드맵에 초파리 마취하는 법을 보여주는 동영상 링크도 걸어놨어요. 제가 일했던 곳과 상관 없는 실험실인데, 여기도 초파리를 모아 놓은 통에 ‘모그(morgue)’라고 써 놨어요. 실험을 위해 초파리를 마취하는 법, 필요 없는 초파리는 모그에 넣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에요. 제가 일했던 실험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산화탄소로 초파리들을 기절시켜 사용했었습니다.

“빨간 물” 같이, <플라이 모그>에서 파생돼서 나오는 몇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짐승하기”, “상투성의 뜨거움”, “피의 색깔”, “얼음 거실”, “예쁜 배우”. 모두 김혜순 시인의 말에서 제가 뽑은 단어들이고, 마인드맵의 분홍색 마름모에서 인용구를 읽을 수 있어요. 여기에 시인의 다른 글, 제가 했던 일과 읽었던 다른 책들의 문구가 연결되도록 다이어그램을 구성했습니다.

또 다른 링크, 플라이 베이스(FlyBase)로 들어가면, 전 세계 초파리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초파리의 유전자와 게놈 정보들이 오픈 소스 데이터로 모여있어요. 연구자들은 자신이 만든 유전자 조작 초파리를 실물로도 당연히 가지고 있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 시퀀스까지 정보화한 데이터베이스를 다른 연구자에게 공유하고, 실험용 초파리를 살아있는 생물로 후손을 번식시켜 그 초파리를 연구하고 싶은 연구자가 있으면 싼 값에 우편으로 보내줘요. 초파리를 상당히 귀찮고 또 좀 불결해 보이기도 하는, 해충에 가까운 생물로 인식하기 쉽지만, 어떤 특정한 과학 연구 분야, 우리 생활에 밀접한 지식을 생산하는 굉장히 커다란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에서 보면 이 초파리만큼 널리 사용되는 모형 생물이 없어요. 돼지를 가축으로 길들여 식용품으로 가공하는 굉장히 거대한 산업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요. 많은 언론을 통해서도 접하고, 실제로 이제 식생활 안에서 돼지의 세계를 접해요. 저는 김혜순 시인의 시 속 돼지나 쥐를 비롯한 여러 생물들의 이미지에서, 또 초파리의 세계 안에서, 그것 이상의 엄청나게 견고하고 커다란 여러 생물 자원화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됐어요.

1950년대에 시카고 대학 연구실을 찍은 사진에서 초파리 연구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저렇게 바나나를 걸어놓고 초파리를 잡아 배양하는 식으로 연구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자연에서 얻지 않고 표준화되어 있는 초파리들만 번식시켜 사용해요. 제가 일했던 연구실의 초파리 인큐베이터는 계통 번호, 배양한 사람과 실험 연구자를 적어 놓는 방식으로 아카이빙해서 관리했어요. 이 모습은 피가 흘러내리는 도축의 장면과는 굉장히 대조적이에요. 일단 초파리는 피가 빨갛지 않거든요. 투명해요. 그래서 그렇게 끔찍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험실과 인큐베이터 안의 초파리 특유의 끈끈한 느낌과 옥수수 배지가 발효되면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나기도 해요. 이렇게 굉장히 다른 종류의 감각이지만, 동물이 살고 죽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같고, 그런데 이 실험실 밖에서는 전혀 맡아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물의 감각과 경험들이 이 안에서 벌어져요.

6. 현미경으로 본 초파리의 일생

우리 실험실에서는 각 연구자들이 자기가 쓰는 실험 용액, 여러 가지 화학 약품, 해부한 신체 조각들을 영하 20도 정도로 유지되는 냉동고에 넣어두고 보관했어요. 네모난 디쉬(dish)의 웰(well) 안에 보존액과 제가 해부해놓은 초파리 신체의 작은 조각이 들어있어요. 마장동 가서 소나 돼지의 갈비를 걸어놓은 걸 보면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으로 다가오는데, 초파리라는 생물은 워낙 작기 때문에, 이 생물들의 열린(해부된) 신체는 현미경을 통해서 보지 않으면, 육안으로는 안 보여요. 그래서 그렇게까지 끔찍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왜 이렇게 투명하지? 안 보이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실험실에, 냉동고에 들어가면 정말 생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멸균되어 있고 정제된 정리된 환경이지만, 사실 이걸 확대해서 보면 신체가 해체되는 모습을 똑같이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초파리의 유충이 고기를 분해하는 실험을 찍은 사진이 있어요. 잡식성의 초파리가 고기를 어떻게 먹는지를 실험한 연구예요. 사람만 고기를 먹는 게 아니죠. 건조한 환경에서 초파리를 배양한 다음, 고기 덩어리를 주고, 초파리들이 고기가 액화 될 때까지 분해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제가 한 7년 동안 쓰던 해부 현미경이 있어요. 60배 정도까지 확대할 수 있고, 양안으로 들여다보면 입체로 보여요. 박테리아나 다른 미생물을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1mm 정도 이상 크기의 식물이나 동물의 조직을 올려놓으면 거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크게 보일 정도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어서 생물을 해부할 때 사용하기에 적합한 현미경입니다. 제가 일했던 연구실에서는 초파리의 근육을 써야 했는데, 초파리의 머리와 배에는 근육이 없고 가슴에만 근육이 있어요. 그 부분만 필요하니까 다른 부분은 일단 다 제거해요. 다리도, 날개도 떼고, 모든 걸 떼어내 정확하게 근육만 분리해냅니다. 실험 대상인 근육 외에 다른 조직들은 플라이 모그에 넣습니다.

가슴을 갈라 종단면을 노출하는데, 이 때 굉장히 미세한 도구들을 가지고 잘라요. 이렇게 작은 칼이나 가위는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직접 만들어요. 텅스텐 와이어를 에칭(etching)해서 만든 굉장히 뾰족하고 미세한 칼과 가위를 사용해서 근육 다발을 들어내고 근섬유를 한 가닥씩 분리해요. 분리한 근섬유를 양쪽에서 집을 수 있는 정말 미세한 알루미늄 클립이 있습니다. 끊어놓은 섬유를 그 클립으로 집어서 어딘가에 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몇 가지 용액에 집어넣고, 다시 피에조 모터(piezo motor)가 달려 있는 기계에 걸어요. 정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이 근섬유를 잡아당기고 흔들고 수축시키고, 계속 자극을 줘 가면서, 이것의 강도가 얼마나 되고 얼마나 유연한가, 어느 정도까지 잡아당기면 끊어지는가, 그런 물리적인 속성들을 측정한 다음, 충분히 많은 데이터가 모이면 수치로 이루어진 그래프로 만들어서 논문으로 발표하게 돼요. 이렇게 이 생물의 신체는 실험연구라는 방법을 통해 특정한 지식으로 환원(reduce)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각자 어떤 감정을 가지고 받아들일지, 낯설게 느낄 수도,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실험실에서의 경험은 어떤 한 사람의 일상인 한편,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굉장히 괴이한 관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7. 가지의 출발점을 연결하기

“모두의 연구실”이라는 이 플랫폼(세마 코랄) 안에서 <플라이 모그> 이야기를 풀어낼 때 제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수록하는 모든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일이었어요. 예술 안에서 여러 유형의 연구가 있겠지만, 제가 익숙한 연구는 선행 연구가 있고, 그것의 타당성과 신뢰에서 비롯한 어떤 측면을 검증한 후 계속 지식을 덧붙여 나가는 학술적 연구 방법이에요. 관람객들이 제 다이어그램에 본인의 경험을 덧붙이거나, 의문점을 표시하거나, 더 읽어보고 싶으면 찾아볼 수 있게끔 링크를 걸었어요. 이 구성 요소들 사이에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계속 순환, 재창조할 수 있는 구조를 최대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한테 이메일을 통해서든 아니면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이 글을 보고, 이 작품을 보고 피드백을 주시면 거기에서 이 다이어그램이 앞으로 더 자라나거나 형태가 변화할 수도 있을 거고요.

대화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웹페이지로만이 아니라, 이렇게 작가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더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실험실은 건조하고 냉정할 것 같지만, 생이 순환하는 장소이지요. 정말 미세하고 보이지 않는 초파리의 삶의 사이클과 그것보다는 큰 부피와 무게를 가진 인간의 삶의 사이클이 같이 순환합니다.

이소요 작가가 선택한 마인드맵은 지식이나 연구가 왜 시간을 구축하는지를 잘 연결해서 보여줍니다. 김혜순 시인의 시와 이소요 작가의 작업이 만난 것은 개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지식이 만나는 시간이 되겠죠. 마인드맵의 <플라이 모그>라는 출발점에서부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지점이 시어라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생물학적인 것들이 최근 미술의 화두가 되는 이유는, 생물학적 감각들이나 지식을 통해 인지하는 것들이 그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에 이미지를 중대하게 생산하기 때문일 거예요. 단순히 지식의 한 카테고리로서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요. 이소요 작가는 생물학적 연구에 사용되는 이미지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작업합니다. 그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지, 어떤 시대에서 쓰였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찬찬히 살펴봐요.

<플라이 모그>의 인용구 중에 ‘세미-도메스티케이티드(semi-domesticated)’라는 개념이 나와요. 실험실의 영역이 완전히 통제된 조작된 영역이라면, 야생은 저기 멀리에 있는 자연, 인간이 닿지 않는 곳을 뜻합니다. 그런데 미술관 주변에 있는 새들을 예로 들면, 이들은 야생도, 또 완전히 도메스티케이티드도 아니죠. 이렇게 중간 영역의 개체들도 굉장히 많은데, 그 중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많이 놓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소요(작가): 생물학적 이미지와 중간 영역, 이 두 가지 모두 제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해요. 기술적 이미지와 데이터로서 만들어지는 생물의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제가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완전한 야생에서 인공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생물의 그라데이션과 관계망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서 질문을 이해했습니다.

올해(2021년) 『조선식물도감 유독식물편』(도봉섭, 심학진 공저, 1948)을 소재로 작업을 했어요. 그 도감을 펼치면, 왼쪽 면에는 식물 그림이 크게 들어있고, 오른쪽 면에는 그 식물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어요. 사전처럼 한 70여 종의 식물이 순차적으로 쭉 실려 있는 그런 형식을 가진 책이에요. 이 책에 등장하는 식물은 현대에 재분류가 되었거나, 학명이 조금 달라졌거나, 정확히 그 식물이 아닐 수도 있는 등,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어요. 이 도감이 나온 지 거의 70년의 세월이 지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과학적 지식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재검증을 해야지만, 한편 책에는 이 식물이 현대의 어떤 식물인지를 알 수 있는 여러 단서가 들어있어요. 다른 여러 책들, 지식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도감 속 생물이 남한에서 자생하는 지역을 직접 찾아가 채집하고, 그 그림이 연상되게끔 식물을 건조시켜서 보존물을 만드는 형식으로 작품화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과학 이미지를 비평하는 일을 주로 작업했었는데, 이번에 제가 직접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들의 고충을 오히려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간, 과학적 이미지는 왜 생물을 왜곡하거나 누락하는가에 대한 비평적 관점에서, 생물 이미지가 가지는 한계에 관해 생각했었는데, 직접 제가 생물을 채취해서 한 개의 이미지로 정리해야 되는 과제를 스스로한테 부여하고 보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하나의 생물이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방법과 전략과 모습들이 있을 텐데, 제가 작품이라는 결과로 만들어 놓은 그 모습이 인상적이거나 효과적일수록 그 이미지가 그 생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겠지요. 누군가 야생이나 자연에서 그 생물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이미지로 인해 좁아질 수 있고, 저 역시 그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었어요.

그래서 관람객에게 제가 직접 작품을 해설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여러분, 직접 나가서 이 생물 찾아보시고. 그 모습은 여기서 보는 이 모습하고 다르다. 이것이 유일한 모습이나 이 생물을 대표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라는 걸 말로 전달해 드리는데, 사실 제가 만든 시각물은 그 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이것을 보아라. 이것이 이 생물이다. 이것이 이 그림에 나왔던 이 식물의 모습이다.’라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는 물건을 만들어 놓고 아무리 설명해도 역부족이라는 걸 알면서도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보는 생물의 모습들이 누군가 한 사람이 한시적으로 어떤 특정한 기준과 환경 안에 처했을 때 만들어내는 이미지일 뿐, 수없이 많은 역사 속의 다양성, 즉 생물들이 살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생태와 관계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 작품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아직 풀지 못한 과제지만 저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생물을 채집해서 전시로 보여주는 것이, 작가인 내가 그것을 어떤 이미지로 소유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물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만—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모습들을 가까이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 호기심을 가지고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많이 보여드리려 해요.

김진주: 생물의 이미지를 해석하고 다시 재생산하는 작업은 생물이 개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런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환기시켜주는, 어떻게 보면 역방향의 이미지들을 만드는 것 아닐까요?

이소요: 네, 그러고 싶어요. 제가 만드는 생물 이미지가 그런 이미지였으면 좋겠어요.

김진주: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될지도 고민인 것 같은데, 도메스케이티드와 와일드 사이의 영역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소요: 올해 그 단어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의 학술 분야에서도 자주 등장했어요. 조지 몽비오가 쓴 『활생(Feral: Rewilding the Land, the Sea, and Human Life. 파주: 위고, 2020)』에 와일드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어요. 보통 ‘야생’은 인간이 길들여서 익숙해져 있는 이 사회 속의 환경과 전혀 관계없이, 사람의 손이 전혀 미치지 않고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다른 생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아니면 지구상 인간 이외의 다른 물질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어떤 물리적인 공간과 상태와 생물들의 관계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사실 이 지구상의 물질은 다 순환하고 있고 전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어떤 환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더군다나 이렇게 지금처럼 70억 인구가 지구 상에 굉장히 많은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이런 시대에요.

그래서 야생은 사람들이 설정해 놓은 어떤 상태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선사시대, 인류가 존재하기 전 공룡이 살았던 어떤 시대를 상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산업혁명 이전 사람들이 많은 이동을 하지 않았을 때, 만 년까지 안 가더라도 500년 정도 사람이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어떤 장소가 있다고 하면, 야생이라는 개념이 유효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야생과 인공을 구분하기 어려워졌어요. 또, 흰개미가 집을 짓는 것을 자연이라 하면, 인간이 건물을 짓는 것은 자연이 아닌가? 지구상에 사는 생물이 거주하기 위한 어떤 구조물을 짓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사람이 짓는 건물도 자연이고 또 개미가 짓는 집도 자연일 수 있겠죠.

인공과 자연, 야생과 길들여진 삶이 명확히 구분이 된다기보다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저는 편해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결벽증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야생이고 어디가 아닌지 계속 구분을 지어야 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활생의 원제는 ‘피럴(feral)’인데, ‘야생의’라고 자주 변역돼요. 작품에 제목으로 이 단어를 가져다 쓰면서 저는 ‘풀려난’ 생물이라고 썼어요. 사람과 가까이 살다가 나름대로 자생력을 가지고 사람의 거주지를 벗어나 나름의 생태를 구축하는 사례를 많이 봐요. ‘야생’이라는 개념은 너무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니까, 길들였다가 풀려난 생물의 개념으로 ‘피럴’을 이해하면 어떨까. 지리산 반달가슴곰 재야생화(rewilding) 사업을 아실 거예요. 재야생화는 생물의 상태를 원래 야생이었다고 가정하고 어떤 특정한 역사적 시점의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하는 일이에요. 멸종이 되었거나 그 장소에 더 이상 살지 않게 된 생물을 과거에 살았던 곳으로 재야생화를 하면, 바뀐 환경 안에서 그 생물들에게 여러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요.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가축화한 곰과 복원사업에서 풀어 놓은 곰이 서로 섞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을 우리가 완벽히 통제하기 어렵고요. 곰처럼 눈에 띄는 큰 생물도 그러한데 수많은 씨앗과 꽃가루, 박테리아와 미생물 같은 많은 생물들을 우리가 길들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겠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방식으로, 이들은 완전히 다른 네트워크를 가지면서 이 세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해요.

반면, 특수 목적으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생물은 쉽게, 빨리 번식하고 조작하기도 쉬워야 경제적이에요. 이런 조건에 맞추다 보면 초파리나 애기장대처럼 이미 인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앞서 질문에서 언급하신 개념대로 반 정도는 이미 길들여진(domesticated) 생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생물에 적용하는 기준은 사람의 주관적 결정과 관습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도구나 자원으로 쓰는 생물이나, 그렇지 않고 자연을 복원하려고 풀어놓는 생물들이나, 어쨌거나 다 사람의 손과 의지와 통제 속에 있기도 해요.

김진주: 인간은 정말 인간의 규모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참여자 질문을 받아볼게요.

관객 1: 과학에서의 이미지에 대해 비평한다고 말씀해 주신 부분이 작가님의 작업에서 외면적인 것에 또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예술에서의 생물 이미지가 이해되는 방식과 과학에서 생물 이미지가 기능하고 이해되는 방식이 서로 같으면서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둘 사이에 걸쳐 작업을 하실 때 고충이나 고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이소요: 네, 질문 감사합니다. 예술 이미지와 과학 이미지를 대비해서,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룰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나 인상적인 내용이 없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해했습니다. 지금의 방식으로 과학과 예술이 두 개의 다른 분과로 분리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1970년대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60년대 전쟁을 거치면서 분화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는 굉장히 많은 경우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이미지를 생산할 때 서로가 많이 섞여 있었어요. 예전에는 과학적 이미지라고 생산했는데, 지금의 현대 과학 관점에서 보면 하나도 과학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역사를 공부하면서, 저는 이미지를 과학과 예술로 나누어서 생각하기보다는, 얼마만큼 서로 연결돼 있고 연속선상에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어요. 이미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산됐는지, 어떤 지식 체계를 근거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관객 2: 생명이나 과학과 관련된 미술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또 이런 작업을 하시기 전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요?

이소요: 어렸을 때 저는 고고학자나,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을 연구하는 동물 행동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제인 구달(Jane Morris Goodall)이 나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동을 얻는 어린이였는데, 문과 이과로 나뉜 우리나라 교육 체계 안에서는 제가 이과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너무 현실적인 얘기가 될까요? 제가 가진 관심사를 문과의 학술 체계 안에서 펼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문과 안에서도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방법론을 사용하는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그 안에서 시지각 공부를 했어요. 우리의 눈 속 시신경 세포들이 어떻게 대상의 윤곽선, 색깔, 크기, 밝기를 감지해서 뇌로 정보 처리를 전달하는가를 연구하는 거예요.

지금은 굉장히 작고 컴팩트한 장비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제가 공부했던 90년대 중후반, 아이트래커(eye tracker)는 한 평짜리 방 하나 가득 찰 정도로 큰 기계였어요. 아이트래커 한 부분, 턱을 괼 수 있는 장치에 피험자의 얼굴을 고정시켜놓고, C언어로 코딩한 실험 자극들이 모니터에서 깜빡거리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는지를 피험자가 계속 스위치를 눌러 표시하게 하고, 그 반응을 수집했어요. 이렇게 얻은 수많은 데이터들로 만든 그래프가 과연 환경 속에서 우리 눈이 실제로 하는 것과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일이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의 편집 기자로 들어가서, 주로 동물 기사를 취재하고 편집, 번역하는 일을 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험실 컴퓨터 화면에 환원되어 있는 자극이 아닌, 예술 안에서 조금 더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로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미대를 다시 들어갔고, 이제는 예술 안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 동식물과 생물에 대한 관심을 계속 두게 되었어요.

이소임(서울시립미술관 코디네이터): 팬데믹으로 인해 요즘 동물이라는 타자와 더불어 사는 방법에 관한 고민이 듭니다. 해러웨이는 동물을 너무 의인화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모그의 개념이 실험실에서의 초파리의 죽음을 인간 중심적으로 로맨틱하게 대상화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이소요: 모그는 그야말로 꼭 사람이 아니라도 어떤 사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에 한시적으로 보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꼭 사람의 죽음이나 장례하고 연결지어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점에서, 모그는 의인화나 낭만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파리들이 어느 정도 분량이 모이지 않으면 폐기물 업체에서 수거하지 않아요. 그런 하나의 목적에서 다른 목적으로 옮겨가기 위한 전환의 어떤 단계에 한시적으로 머물러야 되는 어떤 통에 모그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의인화의 문제는 제게도 무척 어려운 문제에요.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감각적인 한계와 지식의 한계, 어떤 삶의 한계를 통해서 다른 생물을 볼 수밖에 없고요.

그러나 가장 익숙한 인간의 삶을 대비해서 해석하는 것이 어떤 생물의 삶을 헤아리고 다가가는 첫 번째 단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편, 현미경을 포함해서 특정한 생물의 특정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정말 수없이 많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장비들이 개발돼요. 인간화는 한계와 욕망을 양가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생물을 파악하고 이용하거나 의미를 생성하는 측면이 확실히 있는데, 또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려면 그 생물에 맞춰서 그것의 특성과 삶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인간이 신체를 확장함으로써 생물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기도 해요. 해부할 때 맨눈으로 보고 초파리의 가슴 근육을 떼면 일그러져요. 이 생물의 근육은 어떤 수준 이상의 해상도를 가진 현미경을 통해서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뾰족한 도구를 만들어서 분리해야 해요. 그건 우리가 평소에 젓가락질하면서 사용하던 손의 스케일하고는 너무 달라요. 조금만 삐끗하면 다 망가질 정도의 생물을 다룰 때 줘야 되는 힘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초파리 해부에 적합한 핸드-아이 코오디네이션(hand-eye coordination)은 일반적으로 한 3개월 동안 매일 연습해야 익힐 수 있어요.

그리고 실험하기 위해서 키우는 초파리는 사람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아요. 생물은 그것 나름대로의 물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항상 사람이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알람을 틀어놓고 자다가도 깨서 실험실에 뛰어가 뭐 하나 해놓고 집에 오고, 수업 듣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가서 일하고 오고. 그 일을 하다 보면, 주변 친구들하고 똑같이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저녁에 같이 맥주 마시러 가고 텔레비전 보다 잠이 드는 생활을 할 수 없어요. 점점 나의 삶이 초파리의 삶이 되어가는, 특별한 연결이 발생하는 것을 저는 경험했었어요. 집에서 함께 사는 다른 동물이나 식물들하고도 이런 종류의 교감이나 연결이 생기는 것을 또 경험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제가 했던 과학 실험실의 일이 생명 윤리의 관점에서 생물을 희생하거나 대상으로 하는 점에서 공격 받는 것 같고, 방어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들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돌아보니까 꼭 제가 실험실에서 초파리와 맺었던 관계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이 가까이 있는 다른 종류의 생물과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둘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매일매일 그 대상하고 더불어 사는 그 경험이 저한테는 특별한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관객 3: 이런 작업들을 과학과 예술의 경계선 중 어느 부분으로 분류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지만, 작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시나요?

이소요: 기술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생성되는 여러 가지 생물 이미지들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예술도 되고 과학도 되고 또는 대중적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에른스트 해켈(Ernst Haeckel)은 생태학, 에콜로기(Oecologie)5라는 말을 학술 체계 안에서 처음 쓴 생물학자에요. 그가 그렸던 해양 미생물 그림들은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박물학, 분류학적 목적으로 그려졌지만, 지금 봐서는 이 그림 속 미생물이 뭔지 정확히 동정하기 어렵기도 해요. 도식화된, 장식적인 그림이기도 해서 커피 테이블 도감으로 만들어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전시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그 그림을 보거나 이용하는 사람의 목적과 해석에 따라서 그것이 과학적인지 예술적인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김진주: 이미지와 지식이 어떤 맥락에서 활용, 수용되는지, 그것이 바로 가지 펼치기 아닐까요? 과학과 예술의 경계, 인간과 초파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초파리의 근육이 가진 미세한 규모도 사실 우리 안에서 있는 거겠죠.

이소요: 맞아요. 인간과 호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모형생물을 연구하는 것이겠지요.

기록과 편집 김진주


  1. [편집자 주] 이소요 작가가 본 강연에서 추천한 책은 다음과 같다. 번역본이 있는 경우 괄호로 표시했다.
    Coe, Sue. Dead Meat. New York: Four Walls Eight Windows, 1996.
    Feyerabend, Paul K. Against Method.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3.
    Foucault, Michel.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and the Discourse on Language. Smith, A. M. Sheridan, trans. New York: Pantheon Books, 1972. (미셀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서울: 민음사, 2000.)
    Haraway, Donna Jeanne. Crystals, Fabrics, and Fields: Metaphors of Organicism in Twentieth-Century Developmental Biology.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76.
    Jones, Caroline A. and Peter Galison. Picturing Science, Producing Art. New York: Routledge, 1998.
    Kohler, Robert E. Lords of the Fly: Drosophila Genetics and the Experimental Lif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4.
    Latour, Bruno and Steve Woolgar. Laboratory Life: The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6. (브뤼노 라투르, 스티브 울거.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구성』. 파주: 한울아카데미, 2019.)
    Rothfels, Nigel, ed. Representing Animals.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2. 

  2. [편집자 주] 근수축을 가능하게 하는 두 종류의 단백질 결합체(필라멘트)이다. 

  3. 김혜순, 「춤이란 춤」, 『피어라 돼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6), 125. 

  4.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서울: 문학과지성사, 2019), 117. 

  5. Ernst Haeckel, Allgemeine Anatomie der Organismen (Berlin: Georg Reimer, 1866),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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