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세마 코랄의 ‘연결’ 주제어와 SeMA 의제를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겨난, 시각문화/예술과 미술관의 (동)시대적 과제에 관해 논하는 지식을 선보입니다.

글과 웹 프로젝트를 함께 수록해서 세마 코랄이 지향하고 생산하는 지식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록 보기’는 수록된 글과 웹프로젝트의 제목을 부호-숫자-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공개된 날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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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보아 주는 사람들, 사물들

    동료비평, 동료평가라는 말로 번역되는 피어리뷰(peer–review)는 본래 학술 출판의 품질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여 (대개 익명으로) 수행되는 출판물에 대한 논평을 뜻한다. 피어리뷰는 과학자사회를 특징하고 유지하는 장치로써 그 이념과 필요성은 광범위한 동의를 받고 있지만 지나친 전문화에 따른 고착과 연구 경직성 등에 따른 비판과 제도적 개선을 요구 받기도 한다. 예술가사회라면 어떨까? 구체적인 관계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사회보다 좁혀, 동료라는 말로 그 중간 단계의 공동체를 감각해볼 수 없을까? 이 물음은 ‘같은 분야의 전문가나 동업자’ 정도로 실체화된 동료라는 말의 개념적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이 변화를 쫓아갈 길로써 동료비평(peer–review)의 한 축인 리뷰(re–view)를 조명하고자 한다. 해당 키워드를 제시 받았을 때부터 떠올랐던 막연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리뷰함으로써 동료가 되는 건 아닐까?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로너(loner)’의 사전적 의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혼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로너’란 단어를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홀로 있음’과 ‘같이 있음’을 중계하는 행위로서 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은 기이한 행위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SNS건, 과거의 서신이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를 표현하고자 애쓴다. 요즘에 난립하는 자가 출판 기업은 자기표현을 환전하는 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문학 강좌에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한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는 생략되어 있다. 그들은 왜, 또 무엇을 알고 싶은 걸까?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가? ‘콜리그(colleauge)’라는 낱말이 그 자체로 동료를 뜻하는 건 아니다. 60여 편 이상의 글을 실은 이 ‘콜리그’라는 플랫폼이 어떤 연대, 공동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홀로 있는 사람들이 잠깐 오가는 공간에 가까울 것이다. 그곳은 어떤 지식도 산출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다양하고 자동적인 표현들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