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호와 관계 맺고 실천하기

최혜영
최혜영은 제주에서 10년 넘게 페미니스트 평화활동가이자 예술가,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즉흥 컨텍 춤추기를 좋아한다. 강정마을 안내를 즐겨한다. 제주 해군기지 완공 이후 제주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강정 활동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정지킴이’에 대한 석사논문을 썼다.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연산호를 매개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험과 실천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독립 기획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작한 영화로는 〈섬퀴어복희〉(2020), 〈섬이없는지도〉(2021), 〈코랄 러브〉(2023) 등이 있다. 2014년부터 강정 연산호 조사를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수중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시작했으며, 그 결과물을 모아 사진집 『코랄 블루』(2021)를 만들었다. 사회운동과 예술의 협력에 관심이 많으며 연산호 이미지를 통해 제주 해군기지 신규 항로를 막아낸 과정을 엮어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2019) 서울사진축제 리서쳐로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강정 평화 활동가로 12년째 제주에서 살며 사회학 공부와 전시 기획을 하고 있다. 2014년 겨울에는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팀’에 들어가기 위해 처음으로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Scuba Diving Open Water) 자격증을 땄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은 제주 해군기지 준공 이후에도 지속되는 다양한 ‘강정지킴이’의 활동 중 하나로, 해군기지 해상 공사 과정과 준공 후의 강정 바다 속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기록하는 행위를 말한다. 해군기지 준공 이후 연산호 군락의 면적은 준공 이전에 비해 50% 이상 감소했다. 공사 전 강정 등대 부근에는 해송, 큰수지맨드라미, 검붉은수지맨드라미, 연수지맨드라미, 별혹산호, 둥근컵산호, 둔한진총산호 등 9종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분홍바다맨드라미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조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은 시민들의 기지 감시 및 꾸준한 기록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바다 밑의 연산호라는 비인간 존재들을 보여 주면서 군사주의와 국가 권력을 고발하는 평화운동이자 예술 활동, 기록 행위이다. 필자는 연산호를 기록‘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닌 행위자로 명명하며, 필자의 체험을 중심으로 연산호의 적극적인 행위 가능성과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알아차리기

로그북
날짜 2015년 5월 1일 (금) 날씨
장소 범섬 본섬 수온 15도
최대 수심 32미터 잠수 시간 30분
로그 횟수 9회
메모 -범섬 다이빙은 처음이었는데, 공기통 부족으로 나는 두 번째에 같이 입수했다.
1) 다이빙할 때 멋있게 입수하고 싶다.
-서서 입수: 앞으로 큰 걸음으로 내딛듯이 한 발을 앞으로 뻗은 자세로 입수한다.
2) 연산호 첨 봐! 실제로! 보라색 연산호 무리
3) 줄 안 잡고 하강 잘했다. 부력 조절도 가능.
상승할 때는 강사님을 따라서 하면 되는 건가? 5미터에서 3~5분간 안전 정지.
4) 나도 다이빙 컴퓨터 갖고 싶다.

2023년 여름, 프리 다이빙(free diving)1을 처음 배우며 로그북(log book)2을 쓰다가, 고작 8로그밖에 안됐으면서 더 잘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오래전에 썼던 스쿠버 다이빙 로그북을 찾아봤다. 로그 횟수가 9일 때 범섬에서 연산호를 처음 봤다는 메모를 보니 반가웠다. 현재까지 스쿠버 다이빙을 300번 정도 했다. 이제 제주 연산호를 누구보다 많이 보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최혜영, 〈가시수지맨드라미〉,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 2019.

연산호는 영어로는 ‘Soft Coral’로, 말 그대로 부드러운 산호이다. 연산호는 부드러운 겉면과 유연한 줄기 구조를 갖고 있다. 산호는 경산호와 연산호로 분류된다. 산호는 전 세계에 7,500종, 우리나라에는 170여 종이 있는데, 그중 제주 바다에만 120여 종의 산호가 서식하며 그 대부분은 연산호이다(2020년 10월 기준). 나는 제주 서귀포에 있는 범섬과 문섬, 섶섬과 그 주변에서 주로 다이빙을 하는데, 그곳의 수심 5m에서 깊게는 40m 사이에 다양한 연산호들이 피어 있다. 거기서는 바다의 계절에 따라 다양한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감태 같은 해조류 밭을 지나면 분홍바다맨드라미와 큰수지맨드라미 연산호 군락들이 피어 있고, 연산호 주변에 줄도화돔이 떼로 산다. 바위틈과 산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새우들과 게, 갯민숭달팽이도 만날 수 있다. 더 깊이 내려가면 커다란 가시수지맨드라미와 천연기념물인 해송을 발견하게 된다. 해송은 바다의 소나무라 불리는데, 하얗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다. 바닷속에 있으면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아도 화려하고 다양한 산호와 물고기들로 인해 황홀해진다.

백화현상3에 따른 산호초4의 죽음으로 산호의 위기가 널리 알려졌지만, 제주 바다 연산호의 존재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전 세계 많은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제주 바다. 그중에서 연산호 군락은 해초, 연체동물, 식물 등 다양한 생물 종의 ‘커뮤니티’다. 산호는 전체 해양 표면의 0.1%를 차지하며, 해양 생물의 25%는 산호에 산다. 연산호 군락은 해양 생물의 먹이장, 산란장, 보육장의 역할을 한다.

산호는 폴립(polyp, 촉수)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동물이며, 폴립을 통해 먹이 활동과 생식 활동을 한다. 폴립은 독립적인 하나의 생명이면서 산호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된다. 폴립이 모여 버섯 모양이나 나무 모양의 군체(colony)를 이루고, 군체들이 모여 산호 군락(reef, community)을 만든다. 이렇게 폴립은 스스로 전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부분이 된다. 연산호는 팔방산호와 육방산호로 분류되는데, 이는 폴립의 개수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폴립은 조류에 따라 열리거나 닫히는데, 폴립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폴립 안에 공생하는 다양한 생명들을 만날 수 있다.

최혜영, 〈수풀산호의 폴립〉, 2023. “폴립은 독립적인 하나의 생명이면서 산호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된다. 폴립이 모여 버섯 모양이나 나무 모양들의 군체(colony)를 이루고 군체들이 모여 산호 군락(reef, community)을 만든다. 이렇게 폴립은 스스로 전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부분이 된다.”

나는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정기 조사 때마다 스텝으로서 배 위에서 조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공기통을 나르고, 다이빙 짐을 옮기고, 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 직접 바다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있기에 답답하기도 했고,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들을 더 알고 싶었기에, 얼른 오픈 워터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조사 다이버들이 공기통을 메고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은 힘들어 보였지만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초창기에 다이빙 횟수가 많지 않아 모든 다이빙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과도한 발차기로 부유물을 일으켜 조사 지점의 촬영을 방해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그러던 중 물속에서 찾은 나의 역할은 조사 다이버들과 조사 지점 밖에 있는 연산호를 수중 카메라로 찍는 일이었다.

잠수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오리발을 차고, 공기통을 메고, 호흡기를 물고 바다에 들어가 강정 주변에 있는 연산호 이름을 알아가고, 물고기를 알아보고, 조사 지형을 익히고,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이빙 숍(diving shop)에 있는 도감을 꺼내 보며 그날 만난 산호와 물고기의 이름을 익히고 알아가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매번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로그북을 쓰며 다이빙 자세를 수정하고, 바다에서 본 연산호들을 수중 잡지에서 오려 붙이며 이름을 익혔다. 돈을 모을 때마다 다이빙 장비들을 하나씩 샀다. 다이빙이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때로 센 조류에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했고, 버디(Buddy)를 잃어버려 혼자 상승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물속에서 장비를 잃어버리기도 했고, 공기를 많이 써 강사님의 보조 호흡기를 물고 상승할 때도 있었다. 다이빙을 할 때마다 ‘다이(die)’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다이빙을 한다.

2. 관계 맺기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을 위한 스쿠버 다이빙은 취미나 여가이기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 접속의 장을 만들고 바다를 둘러싼 변화를 직접 관찰하는 일이다. 수중에서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은 연산호와 그 주변을 둘러싼 해양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고, 생물들의 입장과 지역주민·활동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와 땅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감시하는 활동이다.

“강정의 다이버들은 개발과 국가 안보라는 논리와 폭력적인 흐름 앞에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비인간 행위자들, 스스로 목소리 낼 수 없는 생명들에게 목소리를 내어준다. 그들은 강정 바다 속 연산호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기록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해군기지 방파제가 만들어지면서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얼마나 많은 산호 군락지가 폐사되었는지, 천연기념물 해송이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민군복합관광미항이라는 해군기지 옆에 크루즈항을 짓겠다던 그 항로 밑은 얼마나 아름다운 연산호들이 살고 있는 장소들인지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이들은 남들이 쉽게 보기 어려운 바다 속에서 연산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속한 바다와 삶을 가꾸고 저항하는 사람들이다.”5

강정에서 연산호를 기록하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험과 실천을 보다 적극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제주 해군기지 준공 이후 지속된 강정 평화 투쟁에서 연산호의 행위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는 연산호를 매개로 제주 바다의 군사주의와 개발주의에 맞서는 시도이다. 지속적인 기록과 관찰로써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에 공감하고, 서식지를 잃어 주변부로 밀려난 목소리를 듣는 행위다. 제주 해군기지라는 거대한 국책사업과 국가·정부 기관을 감시하는 기지 감시 운동이다. 직접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메고 수심 15m 이상까지 들어가서, 쉽게 볼 수 없는 존재들을 물 밖으로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각종 보호 구역과 멸종 위기종을 훼손하면서 건설되었다. 강정 앞바다는 2000년 이후 7개의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12),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2000.7),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2004.12), 해양수산부 지정 생태계보전지역(2002.11), 제주도 지정 제주도해양도립공원(2006.10), 제주도 지정 절대보전지역(2004.10), 해양수산부 지정 절대보전연안지역(2007.4) 등이다. 이 중 제주 해군기지 공사 현장과 겹치는 지역은 모두 보호 구역에서 해제되었다.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는 입지 선정, 주민 동의 절차, 생태계 파괴 및 환경 훼손 등 많은 논란과 갈등을 야기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절차적 문제와 생태계 훼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인간의 경제적 개입 대상으로만 생각해 온 자본주의와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진행된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를 훼손해 왔지만, 자연은 그만의 속도로 망가진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고, 사라지고, 변화한다. 이 모습을 포착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팀, 〈강정등대 강정 연산호 군락 변화〉, 2007-2015-2021.

2015년도 조사를 계기로, 해군기지 공사 전후 강정 연산호 군락의 변화 과정을 담은 자료들이 뉴스, 기자회견, 사진, 영상을 통해 널리 전해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방파제가 생기면서 조류의 흐름이 바뀌어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해 사라지고 망가진 연산호를 보여 주는 일은 괴로웠지만 간단했다. 전후 사진을 보여 주고 나면 신음에 가까운 소감을 듣게 되는데, 사진을 본 사람들이 충격적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을 때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한번 망가진 연산호 군락이 회복되는 일은 해군기지가 폐쇄되는 일처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연산호 군락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이미 훼손된 강정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망가진 풍경의 반복 속에서 무력감이 더해지고 할 말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공사 전후의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 주지 않으면 일반 시민들은 사진과 영상 속 연산호들이 망가진 것인지 괜찮은 상태인지 알기 어려워했다. 사진 속에 물고기가 조금만 많으면 바다는 깨끗하거나 화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공사 이전에는 다양한 연산호가 서식했으나 해군기지 공사 과정에서 연산호 종의 다양성이 사라졌고, 멸종 위기종으로 구분된 연산호가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 해군기지 해상 공사 과정에서 아름다운 강정 연산호 군락이 망가졌습니다. 해군기지 공사 중단하라. 해군기지 폐쇄하라!” 이외에 다른 할 말들이 필요했다. 다이빙을 시작하던 2014년도는 기지 공사 중이었기에, 강정 바다 속에 있는 연산호들은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강정 연산호 군락들이 망가지기 이전에 화려했던 모습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지금 내가 건져 올리는 다양한 연산호 이미지는 강정이 아니라 그 옆의 섶섬, 문섬, 범섬의 것이고, 이제 강정에서는 이런 사진들을 찍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는 이 조사를 계속 이어나가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망가지고 오염되고 어둡고 부유물이 가득 쌓인 연산호 대신 아름답고 예쁜 사진들을 찍어 왔다.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미지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땅 죽었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이 필요했다. 여전히 그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연산호 군락이 있기도 했다. 제주 바다의 특성이 무엇인지, 연산호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수중 사진을 계속 찍으며 ‘제주코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연산호 사진들을 공유했다. 바닷속에 연산호가 있음을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해군기지 준공으로 인한 연산호들의 변화와 제주 바다의 생태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할 기회들이 생겼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기록과 제주 연산호 사진들을 엮은 사진책 『코랄 블루』6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연산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북페어’에서 이 책을 보고 연산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4년차 해녀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호테우 바다 아래에서 뿔소라, 성게, 문어 등만 잡아 올렸지 제주 바다에 연산호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후 그녀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산호탐사대원으로서 제주 바다의 산호들을 기록하고 있다. ‘제주코랄’ 인스타그램으로 연산호를 보고 제주 바다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이러한 만남이 반가웠다.

나의 사진들은 물속에 있는 것을 물 밖으로 건져 보여 주는 것인데, 이는 내가 볼 수 있고 찍을 수 있는 만큼의 표현이다. 나는 연산호의 존재를 인간의 시선과 위치에서 보여 줄 뿐이지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산호가 아니라서 연산호를 이렇게 찍고 이야기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미끄러짐을 어떻게 잘 설명해야 하는가는 숙제로 남아 있다.

3. 실천하기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던 2018년도 말, 신규 항로 공사 예정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해군은 제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의 30도 항로 추가 지정을 고시했다. 안전성의 문제로 인해 기존 77도 항로로는 15만 톤급 대형 국제 크루즈선과 항공 모함의 입출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 팀은 2018년 11월과 2019년 8월에 조사를 두 차례 실시하여, 신규 30도 항로를 위해 준설이 필요하다는 저수심 ‘암초’ 지역이 국내외 멸종 위기 산호충류의 집단 서식지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는 문화재청에서 제주도정에게 현상 변경을 ‘불허’한 근거가 되었다. 수심 10m 안팎의 이곳, 신규 항로 예정 지역은 연산호의 종 다양성과 피도(被度)가 높은 곳이다. 여기서는 천연기념물 제457호 긴가지해송을 비롯하여 해송, 꽃총산호, 분홍바다맨드라미, 둥근컵산호, 유착진총산호, 흰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검붉은수미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 등을 단 40분의 다이빙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이 사진전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로 이어졌다.7

최혜영, 〈분홍바다맨드라미〉,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 2019.

비인간 존재는 인간이 보호하고 지켜야 할, 안타깝기만 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과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저항하는 능동적인 주체이다. 국가 권력과 군사주의가 겉으로는 자연스럽고, 거대하고, 도전할 수 없는, 당연한 것처럼 보여도, 국가를 막아선 연산호의 존재는 국가 권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은 연산호 스스로가 정치적, 생태학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에 구럼비 바위가 발파될 때 구럼비는 ‘보호 받아야 할’ 신성한 자연물로 이야기됐다. 2019년 연산호는 존재 자체로 새로운 항로를 막아서는 자연물이 된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준공 이후 연산호는 직접적인 저항의 주체이자 운동의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의 순간이 되었다.

당시에는 강정평화센터 안에 있는 작은 전시 공간 ‘스페이스산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길에서 외치는 데모나 성명서 혹은 기자회견이 들리지 않던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만나고, 그들로 하여금 강정으로 올 수 있게 하는 시도였다. 산호 뜨개를 직접 했던 100여 명의 시민들은 오랫동안 제주에 살았지만, 자신이 만든 산호 뜨개가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에 방문할 때에야 강정에 처음 발을 디딘 이들도 많았다. 또한 산호를 뜨면서 산호의 존재를 알게 된 경험은, 제주 바닷속에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산호가 해군기지 때문에 없어졌다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해 오던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의 조사 보고서 발표나 기자회견 장소보다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평화 활동을 확장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 다양한 전시를 신나게 기획했다.

산호 뜨개와 제주 바다 영상으로 엮은 전시 《산호 coral》8은 알록달록한 실들로 산호처럼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 사람들로 하여금 산호와 바다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한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였다. 코바늘과 실로 코 잡는 법을 10분 정도만 배우면, 정해진 방식이나 순서, 규칙, 도안 없이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바다에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산호를 뜨면서 산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근접성 없는 친밀”9성을 만들어 내는 행위이며, 바다와 산호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산호를 지키는 “보살피는 대중”10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여럿이 모여 함께 만드는 산호 뜨개는 꼬불꼬불하고 구부러진 흐름을 따라 창조적이고 물기 가득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연산호를 소재로 한 문화·예술 기획과 영화 제작은 나와 동료들이 목격한 장면들을 기록하고 외부에 공유하는 수단이다. 강정 연산호 조사를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맴버들과 함께 바다에 나가 물속에서 연산호 사진을 찍으며 경험한 감각, 보고, 듣고, 숨 쉬는 행위가 달라지는 물속의 감각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해군기지로 인해 위협 받는 연산호들의 존재는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확장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고민을 갖고 여러 전시와 작업을 했다. 이소정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코랄 러브(Coral Love)〉11는 이소정 감독을 바다로 초대해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바닷속에서 경험한 감각을 직접 나누면서 제작하였다. 또한 여러 장르의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초대하여 연산호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감각을 실험한 《코랄 유니버스 coral universe》12 전시는 각자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연산호를 여러 미디어로 보여 주었다.

연산호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사회운동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하는 문화·예술 활동이자, 소수자 시각이 필요한 작업이다. 연산호는 군사주의와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바다와 자연, 섬과 자연이 격리된 개발 담론 및 남성 중심주의를 지적한다. 어떻게 인간이 제주 환경을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주변의 일부로, 동등한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을지, 독특하고 이국적인 볼거리로 소비되어 온 바닷속 생명을 어떻게 주체적 존재로 다룰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4. 나가며: 액체성 가득한 신체로 보고 듣고 존재하기

물속에서는 오랫동안 다이빙하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일부러 날렵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크게 필요 없는 동작은 하지 않는다. 호흡기로 숨을 쉬지만 영상이나 사진을 찍을 땐 숨을 오래 참기도 한다. 물속에 있다는 것은,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거나, 조류가 세거나, 파도가 높거나, 수온이 낮거나 하는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의 상황’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한편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물 안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낀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빛이 흡수되기 때문에, 파장이 가장 긴 붉은빛은 수심 5m 이내의 깊이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사라지고 물속은 주로 푸르게 보이게 된다. 비디오 라이트(video light)나 스트로브 라이트(strobe light)를 사용해 빛을 터뜨리면 연산호는 화려한 색을 보여 준다. 눈과 코를 덮는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시야가 굴절되어 보이고, 옆을 쉽게 보기 어려워 정면을 보게 된다. 두 다리로 서고 걷던 몸은 엎드려지고 코와 입으로 호흡하던 몸은 공기통에 연결된 호흡기에 의지해 입으로만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다. 부력에 몸이 뜨지 않도록 6kg에서 8kg 정도의 무게를 져야 하고, 앞으로 더 잘 나가기 위해 발에는 핀(fin)을 신어야 한다. 입으로는 호흡기를 물고 있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물 안에서는 몇 가지 단어들을 수신호로 표현한다. “괜찮아요?”, “하강”, “상승”, “안전정지”, “저쪽에 거북이가 있다”, “춥다”, “상태가 안 좋아요” 등이 있다.

물속에 있을 때면 언제나 귀에는 살짝 물이 차 있고, 오직 공기를 마시고 뱉는 호흡기 소리와 배 모터의 진동, 물소리만이 가득하다. 몸 안의 물과 몸 밖의 물의 만남을 통해 부드러움과 자유로움, 흐름을 느끼며 움직인다. 육상에서는 눈으로 보고, 코와 입으로 숨 쉬고, 말하고, 듣고, 걷는 것이 ‘일상적으로’ 혹은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물속에서는 그런 당연한 전제들이 전부 뒤집어진다. 인간인 나는 스쿠버 다이빙으로 제주 바닷속 연산호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물에서 더 잘 적응하고 편하게 있기 위해 프리 다이빙 기술로써 포유류 혹은 물고기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한다.

여전히 제주 해군기지로 인한 강정 연산호 군락의 변화를 매년 태풍 전후로 추적하고 있다. 2016년도 준공 이후 현재까지 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관찰과 기록을 지속하고 축적하기 위해 나는 계속 바다에 들어간다. 제주 해군기지의 영향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로 인해 제주 바다의 수온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열대성 물고기가 늘어났고, 제주 바다에 살던 연산호들은 조금씩 북상 중이다. 몇 년 전부터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연산호에 걸린 낚싯줄도 제거하고 쓰레기도 줍는다.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번 바닷속에서 연산호 이미지들을 건져 올린다. 수중 필름 카메라로도 찍어 보고, 비디오 라이트 두 개를 켜서 찍기도 하며. 스트로브만 터트려 찍어 보기도 한다. 영상을 남기기도 한다. 강정 연산호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연산호를 알게 됐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연산호에 진심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움과 변화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말하기 방식으로 연산호를 보여 주고 싶다. 내 소원은 나이를 많이 먹어도 무거운 공기통을 매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연산호를 기록하는 것이다.

최혜영, 〈제주 바다〉, 2023.
최혜영, 〈가시수지맨드라미와 낚시줄〉, 《둘레》, 2021.
최혜영, 〈해송과 밧줄〉, 2022.

  1. 프리 다이빙은 아무런 장비 없이 한 번의 숨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입수하는 스포츠다. 나는 이제까지 프리 다이빙 교육 및 훈련을 통해 여덟 차례 바다에 들어갔고, 현재는 수심 25m를 갈 수 있는 아이다(AIDA) 레벨 3까지 획득했다.  

  2. 로그북: 다이빙 일기처럼 매번 자신이 한 다이빙에 대해 기록하는 것. 날짜, 장소, 시간, 다이빙 횟수, 잠수 시간, 바다 상태, 장비, 바다에서 본 것과 인상적이었던 점에 대해 쓴다. 

  3. [편집자 주] 연안 해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4. ‘산호초’와 ‘산호’는 용어의 구분이 필요하다. 산호는 생물이고, 산호초는 산호로 만들어진 지형을 말한다. 산호초는 열대와 아열대 지역의 돌산호가 오랫동안 쌓여서 만들어진 암초 지대다. 제주 바다는 온대 산호 지역으로 연산호가 군락을 지어 지내고 있으며, 제주 바다에서 아직 산호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수온이 더 높아지고 돌산호가 늘어나게 되면 산호초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5. 최혜영, 「사회운동 참여와 정치의식의 성장: 강정지킴이 체험과 생태, 평화, 여성의 가치」, 제주대 석사학위논문, 2021, 51쪽. 

  6. 최혜영, 『코랄 블루』, 강정친구들, 2021. 

  7. 《국가를 막아선 사진들》은 2019년 10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된 서울사진축제 《오픈 유어 스토리지: 역사, 순환, 담론》의 프로그램인 <리서치 쇼>에서 진행된 전시이다. 

  8. 《산호 coral》은 2019년 3월 10일부터 4월 7일까지 제주 스페이스산호에서 진행된 기획전이다. 

  9. 도나 해러웨이,『트러블과 함께 하기』, 최유미 역(마농지, 2021), 139쪽. 

  10.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 하기』, 139쪽. 

  11. 이소정, 〈코랄 러브〉, ㈜시네마달, 2022. 

  12. 《코랄 유니버스 coral universe》는 2021년 8월 18일부터 2021년 8월 31일까지, 제주 강정평화상단 선과장의 ‘문화공간 비수기’에서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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