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 사랑과 야망

이진실
이진실은 독일현대미학을 공부하고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리드마이립스》(성지은 공동기획, 합정지구, 2017), 《미러의 미러의 미러》(합정지구, 2018), 《합창 Dictee:Chorus》(안옥현 주최, 아마도예술공간, 2021)를 기획했다.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 기획, 편집했다. 2019년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서울: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버스, 2021)이 있다.
김화용
김화용은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며 이를 둘러싼 경계, 젠더, 비체, 인간-비인간 대한 고민을 여행, 만남, 연대, 워크숍, 퍼포먼스의 방법으로 작업해온 미술작가이자 기획자이다. ‘문화 생산자를 위한 공간 : 가옥’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옥인 콜렉티브’ 멤버로 활동했다.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인천아트플랫폼, 2021), 《어스바운드》(아마도예술공간, 2020)에 참여했고, 《몸이 선언이 될 때》(보안1941, 2021), 《제로의 예술》(2020-21, 공동기획 강민형 전유진)을 기획했다.

이진실: 자유롭게, 조금은 편하게, 이번에 출간한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1, 이 책과 관련해서, 또 이 책에서 건드리고 있는 페미니즘 미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김화용 작가와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책을 오늘 처음 받아봤어요. 책이 참 예쁘게 나와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평론상 수상 이후에 2년 동안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인 글쓰기와 대화와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서울시립미술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책을 출간하면서, 저는 이 책이 한 사람의 비평적, 연구적 성과로만 귀결되지 않는 방식이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참여하는 판을 만들어봤습니다. 제 책에는 저의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 번에 걸친 라운드테이블 내용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또 나머지 부분은 제가 지난 한 해 주목했던 페미니즘의 부정성에 관해 비평적 주제를 정리해보는 글을 실었습니다.2

이렇게 라운드 테이블 형식을 만들어 본 것은, 2016년 이후 페미니즘이 ‘리부트(reboot)’3라고 부를 정도로 부흥했고, 또 미술에서 페미니즘 미술 작업들과 전시들이 굉장히 증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문자화되지 않은 여러 다양한 이야기들, 실체 없는 말들이 여러 정동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전시의 도록이나 혹은 비평문으로는 제대로 기록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라운드테이블 형식에서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싶었습니다. 문자화되지 않은 2016년 이후의 페미니즘 지형, 말들에 대한 어떤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라운드테이블은 세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김홍희 큐레이터, 김현주 교수, 양효실 비평가, 이렇게 선배 세대의 큐레이터, 미술사가, 미학 연구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서로의 입장과 차이, 대립각을 가지고 비평적 논의를 전개해보는 방식으로 꾸려봤고요. 2016년 이후에 굉장히 많은 페미니즘 작업들이 등장했지만, 그 전부터 어떻게 보면 2000년대를 관통하며 페미니즘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 세 분을 모셨어요. 정은영, 흑표범, 장파, 이 세 사람과 함께 지금 고민되는 페미니즘과 미술의 문제들, 소회들을 같이 나눠봤어요.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지금 저의 동료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비평가분들, 김정현, 남웅, 유지원, 이렇게 세 분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책을 보시면 재미있는 여러 가지 단상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선배 세대를 초대했어요. 과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관통했던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미술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1999년 《팥쥐들의 행진》이라는 큰 전시가 있었고, 또 2015년도에 《판타시아 동아시아》가 있었지요. 그런 부분들을 되새기면서 2016년도 이후부터 지금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즘 작업, 작가, 전시의 양상을 선배 세대의 눈으로 어떻게 보는지 들어보고 싶었어요. 세 분의 관점은 일관되지 않고, 굉장히 달랐어요. 특히 김홍희 선생님의 큐레토리얼적인, 좀 더 작가와 작업에 대해서 우호적이거나, 미학적 성취들을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입장과, 김현주 선생님의 미술사라는 것이 문화정치학과 만나면서 ‘신미술사’가 등장하고, ‘어떤 미학적인 지점이 기호-정치학적인 차원까지 연결되는가’의 차원에서 페미니즘 미술을 어떻게 분석하고 들여다볼 것인지를 기록하는 입장, 그리고 미학자로서 양효실 선생님의 모더니스트로서 미학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대의 위급함, 젊은 시대, 젊은 세대 여성들의 분노를 피부로 절감하는 가운데 느끼는, 분열적 자기 인식이 다각적으로 서로 오간 굉장히 뜨거운 논쟁이었어요. 여러분들도 읽어보시면 재미를 느끼실 거예요.

두 번째 라운드 테이블의 세 작가들이 작업의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가장 입을 모았던 이야기들은, 2015년 이전에 내가 페미니즘 작업을 한다고 하면 다 뜯어말렸고, ‘작가 스테이트먼트에 ‘페미니스트’ 이런 말 쓰지 말라’ 말들 했는데 2016년 이후에 굉장히 달라진 양상들이었어요. 너도, 나도 ‘나는 페미니스트 작가다’라고 나서고, 또 수많은 페미니즘 전시가 등장하는 이런 놀라운 반응들, 변화들, 이런 이야기가 나왔죠. 그렇다면 ‘페미니즘 담론, 그리고 비평적 언어가 좀 더 풍부해지고 조금 다양하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대중적 페미니즘의 흐름 안에서 여성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당사자성, 피해자성만 등장하거나 일차원적인 키워드들만으로 전시가 만들어진다.’ 등, 작가들로서는 불만족스러운 지점들을 많이 토로했고,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특히, ‘신생공간’ 다음, ‘포스트-신생공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 흐름들 속에서 실은 젠더 정치라는 것이 어떻게 발현되었었던가. 그러니까 2016년에, 미투(#MeToo)운동이 일어나기 전, 미술계 성폭력 사건이 있었고, 많은 공론화와 폭로 이후 어떤 제도적인 반응, 미술계 안에서 신생공간에서 주로 활동했던 젊은 여성 작가들이 느꼈던 박탈감과 위기의식, 문제점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던가. 이런 부분들이 집중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공정 담론이라고만 이야기되는, 어떻게 보면 백래시(backlash)와 함께 돌아온, ‘수적으로 이거(성별)를 균형을 맞춰야 된다’ 혹은 ‘어떤 부분이 더 공정하냐’ 이런 것에 대한, 공회전 같은 이 논의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또 비평가들로서 다 같이 느끼는 문제점인 ‘어떤 것이 페미니즘적인 글쓰기인가?’ 이런 고민들을 좀 나누었던 자리였던 것 같아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김화용 작가와 오늘 대화를 진행하면서 하나하나 해나갈 것 같은데요. 일단 두 번째,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재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어요. 미술에서 ‘무엇을 재현한다’고 할 때, 특히 여성의 신체라든지 여성의 형상을 재현한다고 할 때,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대상화, 혹은 더 나아가서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 도그마적인 ‘재현 금지’로 납작하게 만드는 그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인가? 좀 더 풍부한 논의의 장으로서 공론장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언급됐었어요. 특히, 《올해의 작가상 2020》에서 정윤석 작가의 작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들, 성명서, 민원의 방식으로 “(작품을) 내려라!”라고 했던 이런 요구들에 대해서 어떻게 비평이 대응할 것인가? 비평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그런 구체적인 사안들을 이 책에서 여러분들이 살펴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오늘 김화용 작가를 모시며,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로서 어떻게 읽었는지가 굉장히 좀 궁금했습니다. ‘인상 깊었다’ 아니면 ‘여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 편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화용: 이 시간 안에 이 책의 촘촘한 이야기들을 다 하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책 내용을 정리해주시는 것을 다시 한번 들으면서 생각하니, 각 토크의 구성이 다 셋이잖아요. 트라이앵글 구성으로, 실제로도 라운드테이블이었던 것 같은데요. 오늘은 제가 혼자 이야기를 한다면 뭔가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느꼈던 부분들, 또 제가 생각하기에 이 책이 갖고 있는 유의미한 지점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세대인 정은영 작가나 흑표범 작가가 토크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 시기 페미니즘 작가들이 이야기하고 만들어 왔던 일들, 제가 특히 목격했던 어떤 지점 같은, 이 책에 미처 다 담기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라운드 테이블부터 이야기해 보면 그러니까 선생님 세대들이죠. 거기에 언급된 많은 전시들이나 이야기들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예전 기억들이 많이 떠올렸어요. 김홍희 선생님께서 지금보다 훨씬 더 촉박한 상황에 놓였던 당시 활동한 페미니즘 작가들과 신생공간 이전에 있던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한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4 동의를 하면서도 또 다른 생각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당시에 저는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팥쥐들의 행진》이 열렸던 시기부터 젊은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그 위치에서 상황을 바라봤던 사람으로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당시에 저의 입장, 지금 저의 입장, 그리고 김홍희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위치와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전면적으로는 동의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남성 중심적인 미술의 구조, 모더니즘적 미술의 구조 안에서, 그리고 모더니즘을 타파하려 했던 움직임들, 민중미술 세력이었을 수 있는데,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발견해야 되는 작가들이 있다는 거예요. 꼭 페미니즘 작업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회적 의미의 작업을 하고 싶은, 그런 발언을 미술이라는 도구로서 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방식을 언급하셨어요. 저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내가 생각하는 것도 미술의 언어를 통과해서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김홍희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결국 여기서도 선생님들이 논쟁하잖아요. 퀄리티(quality)라는 단어를 가지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끼어들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물론 책에서 삭제된 부분도 많겠지만, 그 ‘미술의 퀄리티란 무엇인가?’에 여전히 의문이 남고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의미가 있다. 이런 작가들을 포착해야 된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결국 ‘그 시대적 미감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퀄리티 있는 작가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 그 퀄리티라는 것들이 결국은 엘리트 중심적이지는 않더라도, 미술제도에서 이야기하는 미학담론 같은 것들에 의한 평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 기준으로 2007년에 쓰인 논문5 이야기하시잖아요. 2007년 이후에 작가들에게서 페미니즘 작업이나 페미니스트를 많이 발견하지 못하는 지점들. 제가 젊은 작가로 활동을 막 시작했던 시기가 사실은 2004년부터 정도부터니까, 그 시기였어요. ‘영페미(젊은 세대 페미니스트, young feminists)’라고 여겨졌던, 미술계뿐만 아니라 여성 운동을 했던, 그런 흐름들이 문화운동이라는 지형 안에서 미술이나 여러 가지 문화적인 발표 방식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리부트 이후에 그 시기를 구멍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선배 세대들도 우리가 이어왔던 것들을 구멍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당시 영페미들이 가장 많이 했던 여러 가지 아젠다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켜라’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페미니즘으로 저를 정치화하고 할 때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그 이야기를 많이 하나?’ 하는 의문이 들어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제도 안을 공략하고, 파이를 찾고 그런 것 같아서요. 그 태도가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뭔가 했어.’ 이렇게 전투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 그냥 우리끼리 해. 평가 안 받아도 좋아.’ 이런 나이브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 당시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공략했던 지점들이 미술 제도 내부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제2회 여성미술제였던 《팥쥐들의 행진》의 주축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의 활동이나, 이후에 좀 규모는 작아졌지만, 제가 참여했던 그다음 제3회 여성미술제 《판타스틱 아시아》6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여성사전시관이라든가, 그런 페미니즘 문화운동 기반의 여러 기획이나 연구와 공부와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요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아카이빙 같은 시도가 있을 때,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제대로 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이것이 비평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제도에 포섭되지 않고 제도를 낙후시킨다고 하다가 스스로의 역사를 자체적으로 잘 정리하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들도 들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2000년대와는 지금이 하나의 시간의 흐름으로 볼 수 있겠지만, 행동했던 시기마다 어떤 지형이나 방식 같은 것들이 부분, 부분, 달랐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해 주셨던 부분들 중에 《안티 아라키》7 같은 것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다양성 이야기를 하면서, 《젠더 스펙트럼》8 전시도 있었거든요. 당시에 그 움직임들을 미술 제도 안에서 적극적으로 읽어주는 시각은 미미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토크에서 작가들이 ‘스테이트먼트에 페미니스트라고 쓰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하셨지만 물론 저도 그 말을 들었거든요. 첫 번째 개인전에 “페미니스트로서”라는 말을 썼는데 누군가가 빨간색으로 딱 줄을 그어 주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분위기였던 시기의 이 전시들이 다시 회자되긴 했고 《안티 아라키》 전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 빨간뻔데기의 멤버도 있고 혹은 이반지하, 이런 친구들이 다시 언급되고 더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시기가 구멍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하는 걸 보면서, ‘그때 활동들을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할 것인가’가 너무 중요하고 활동이 없거나 구멍이 아니라, ‘다른 측면과 층이로 활동하지 않았나?’ 혹은 ‘여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활동이 많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진실: 한 3년 전에 노뉴워크RFAN(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으로 페미니즘 작업들을 정리했을 때 빨간뻔데기가 했던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처음으로 들었어요. 아카이브도 중요하지만,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유지원 평론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교 다니던 시절 페미니즘은 촌스러운 것이라는 식의, 운동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환경에서 알파걸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 이런 부분들이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이에, 여문(여성문화예술기획)이라든지 작게 파편적으로 일어났던 저항들, 이런 미술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주목받지 못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첫 이야기에서 그 “퀄리티라는 말이 걸렸다.”고 하셨잖아요. 책에서는 김홍희 선생님이 “그래도 내가 어떤 작가들을 이야기할 것인가라고 했었을 때는 결국 퀄리티야.”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두 선생님들이 다 저항을 하시죠. “퀄리티라는 말 자체가 남근적인 개념이다.”라고 비판을 하시는데, 그런데 저도 그 부분에서 ‘어떤 게 맞다’라고 이야기를 잘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했던 이야기가 ‘결국 퀄리티라는 것이 어떤 정량적 평가라기보다, 또 예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어떤 본질이나 특질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시대적으로 구성되는 어떤 것 같다. 그러니까 어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떤 내재적인 구조나 의미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같이 형성되는 것이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아까 김화용 작가님이, 그 당시에 활동하셨던 여러 가지 방법론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당시의 주류 미술에서 ‘이거, 이거, 촌스럽고 퀄리티 떨어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페미니즘 미술의 어떤 방식이 시대가 바뀌면서 다시 주목받고 주류가 되는 것은, ‘결국 거기에는 절대적인 어떤 퀄리티라는 것이 없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신거죠.

김화용: 사실 김홍희 선생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세요. 책에서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9 게릴라 걸스가 활동한 미국에서도 1980년대에 분명히 유의미한 운동들이었는데, 2000년대에 전혀 바뀌지 않는 어떤 사회 문제 때문도 있지만, 2000년대에 미학적으로 다시 이야기되는 지점을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들을 김홍희 선생님께서 인지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해요. 사실 그래서 저도 자꾸 고민이 돼요. 현재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내가 시대적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부분인 것인지, 자기 검열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제 검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저의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나 한계이기도 한데,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작가들이 이야기할 때 스스로의 매체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페미니즘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고 장파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좀 반성을 했습니다. 사실 그 섹션을 읽을 때 가장 친밀할 줄 알았는데. 이야기로는 친밀하죠, 동의되는 것도 많고. 제가 작가로서 매체적 탐구나 어떤 매체적 성과를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아셔도 항상 모호하게 생각하는 부분들도 그 때문일 것 같아요. 그래서 문득 이 책을 읽다 스스로를 돌아보았는데 그런 내 본질 같은 것들을 오히려 계속 흐리게 만들었던, ‘미술’ 작가로서 내 매체를 주 매체로 무엇 하나를 두지 않고 개인, 콜렉티브, 기획 등의 방식을 오가는 활동들이 오히려 저는 페미니즘적 태도에서 나왔던 것이라 생각해요.

미술(의 어떤 본질)이랑 계속 경합했던 것 같아요. 미술은 어떤 예술보다도 개인이 너무 중요하고, 개인의 어떤 이야기가 중요한데, 매체적인 실험도 그렇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계속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미술을 통해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들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콜렉티브 실험이라든가, 협업이라든가, 아니면 활동가들이랑 함께 하는 활동을 매개하는 매체로서 예술을 다루었던 것 같아요. 결국 결과가 예술이 아니기도 했고요. 액티비즘적 활동, 문화운동 같은 방법, 그런 식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던 것들이 저는 페미니즘적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이 지금 와서 어떤 개인성이나 스포트라이트를 중시하는 개인의 성과를 생각할 때 항상 좀 뒤로 물러서는 방식이 아니었나. 아까 구멍 이야기를 할 때도, 그 친구들을 하나하나 이렇게 복기해보면 그런 뒤로 물러서 있던 이야기들을 우리가 더 어떻게 잘 정리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적 언어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돼요.

이진실: 작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 있어요. “페미니즘과 미술이라고 한다면, 나는 페미니즘이 먼저였다.” (웃음) 제가 너무 오독한 건가요?

김화용: 아니, 아니, 그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쩌나요. (웃음)

이진실: 죄송합니다. (웃음) 그런데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양효실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지금 젊은 세대의 지향점들을 살펴보면, ‘페미니즘 예술’에서 ‘예술’은 삭제하고 ‘페미니즘’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어떤 긴급함, 위급함, 이런 것들은 이해하지만, 사실은 거기에서 어떤 판단으로서 작동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예술이 하는 일인데,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것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판사로서의 욕망만을 가진 여성들”10 이야기를 해요.

한편으로는 이 세대의 작가들이, 페미니스트 혹은 여성임을 내세우며 굉장히 많은 전시를 하고 있고요. 제가 한 2년 전 어떤 미술대학 졸업전을 갔었을 때는 한 80% 작가들이 페미니즘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흐름 안에서 각자 ‘페미니즘이 무엇이냐, 여성이 무엇이냐?’라는 질문들은 없는 채, 자기의 정체성이나 성별에 기반하고, 아니면 페미니즘의 화두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전시나 작업들이 진행됐을 때, 그 퀄리티라는 측면이라든지, 아니면 작품의 내재적인 수준이나 특질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작가들은 결국 ‘그건 비평이 해줘야 되는 역할이다’, ‘비평 똑바로 좀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셨고요.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긴 한데, 그만큼 이런 흐름을 타고, 페미니즘의 언어가 좀 더 풍부해지는 방향, 아니면 그 안에서의 어떤 분기되는 지점이나, 다양한 차이들이 펼쳐지는 게 보이지 않고 일축되거나 수렴되는 방향으로만 전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모두에게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2016년 이후 김화용 작가님이 공동으로 기획한 《제로의 예술》이라든지, 아까 이야기하신, 자신을 작가로서 지우는 방식 혹은 어떤 매체적인 실험이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의 화두에 대한 실험으로서 접근하고 리서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오면서 들었던 고민이나, 지금, 현재 미술에 대한 어떤 불만들도 좀 들어보고 싶어요.

김화용: ‘페미니즘이 먼저였다.’ 이렇게 제가 이야기를 한 것을 말씀을 드리면 연결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냥 미술이 먼저 나한테 도구였던 사람이 아니고, 미술 수련을 해서, 입시 미술을 하고, 그런 방식으로 미술을 먼저 언어로서 알고 그다음에 자기의 생각, 페미니즘이나 여러 가지를 그 도구를 이용해서 이야기했던 작가가 아니라서—사실 요즘은 그런 경우가 많아졌지만—외로웠던 측면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전혀 미술이랑 별개의 전공을 하면서 어떤 여성주의 문화운동 같은 것들을 만나고 사회운동 같은 것들을 만날 때, 여러 가지 운동 방식들 중에서 문화운동이 갖고 있는 어떤 퍼포머티브(performative)한 것들에 매료됐었고,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방식 중의 하나가 미술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에 가까이 오게 된 경우이고, 그러다 예술대학 안의 교육을 받게 되긴 했지만요. 그래서 그런 말을 제가 했던 것 같은데요.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부터도 나와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와 그냥 여성미술은 구분돼야 된다.’11 그런데 ‘후퇴’라고 언급하는 부분들12이, 분명히 지금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 리부트 이후에 나온 것들이, 저도 설렜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한 명 한 명의 기질들, 능력들은 제대로 기록조차 못 했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앞서 있고, 해외 여러 사례들에 대한 인식도 훨씬 높기 때문에 눈에 띄는 활동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 선생님들조차 에서도 구분 지었던 어떤 ‘여성미술’까지 페미니즘 운동에 그냥 ‘쪽수’로 뭉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거죠. 막상 작업은 페미니스트로서 정치화된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조금 소멸된 채, 그냥 모여 있는 거죠. 그런데 함께 모이는 것, 분명히 그게 의미가 있는 측면도 있어요. 저희가 계속 바꿔내지 못하는 제도 미술계 안에서 여성 작가들의 처우,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할 때는 분명히 함께 모이는 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작업을 이야기하면서 페미니즘 정치성은 없이, 그냥 ‘여성 미술가가 모인다’고 이게 페미니즘 아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은 저에게도 남아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문제들을 대할 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이 이슈들을 어떻게 우리가 고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함께 리서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시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어떤 행동들을 시도하기도 하고, 이랬던 과정들이 머리에 스치거든요. 그런 선후 과정들에 있어서, 지금 양상은 조금 달라진 것이 아닌가. 그런 우려도 들기는 하는데요. 언급하신 것이 그런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진실: 제가 난지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정정엽 작가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정정엽 작가님의 ‘작업실 변천사’를 트레이싱지에 기록했던 그 작업을 가지고 난지 입주 작가들하고 작업실이라는 곳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미술 작업을 위한 작업실을 만들어내는 그 의지라는 건 무엇일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었는데, 1986년, 1987년, 이때 여성미술연구회 당시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가 다른 것으로 모인 게 아니라, 우리 스터디로 시작했다. 우리는 뭔가 현실에 대한 각성과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이걸 풀어야 될 언어가 없으니까, 이걸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어떤 스터디로 시작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고. 그때 돌아가면서 자기 작업실을 스터디의 공간, 공동 작업의 공간으로 내줬었다 하시더라고요. 윤석남 선생님, 박영숙 선생님, 김인순 선생님, 이런 분들이 돌아가면서 몇 개월씩 자신의 작업실을 모임의 공간으로 내줬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의 어떤 양상, 그러니까, 내 크레딧과 내가 했던 어떤 범위와 누가 스피커가 되느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굉장히 첨예해진 지금이다 싶었어요. 이건 굉장히 세대론적으로,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김화용: 그러니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이진실: 그런 달라진 양상에 대해서 저도 고민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하셨던 콜렉티브, 집단성을 실험하고, 같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인 작업이라는 점이 사실 페미니즘의 핵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데요.

김화용: 제가 처음 옥인 콜렉티브 할 때를 떠올려보면 콜렉티브라는 것을 만들기 전에 그냥 프로젝트로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 앞서 말한 페미니즘의 장에서 만났던 연구자 친구들이라든가, 그런 분들도 많이 오시고 그랬었거든요. 저희가 나중에 ‘옥인 라디오’도 하고, 예술 안팎에서 여러 시도들을 할 때 때, 자세히 읽어보면, 김현미 선생님도 초대해서 토크도 만들고 여성주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페미니즘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많거든요.

당시에 용산 문제(참사 또는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나, ‘옥인’이 시작된 계기,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나, 그런 부분들은 제가 페미니즘으로 분투했을 때보다 훨씬 쉽게 읽혀졌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으로 분투했던 어떤 이야기들은 사실 그렇게 쉽게 해독되지 않기도 했고, 비평적으로도 그렇고요. 그래서 옥인 활동 이전에 좀 큰 전시 같은 것들을 한 번씩 하게 된 경험들을 떠올려 보면, 박영숙 선생님이나 정정엽 선생님 같은 선배 세대의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이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움직이는 것들을 보러 오셨다가 ‘우리 함께 뭘 해보자’라고 제안을 하시거나 했던 것에서 시작되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저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젊은 예술가들의 등장이 반갑고 책임감도 느껴지고, 그런 것들은 분명히 있었죠.

이진실: 페미니즘 전시의 양적 팽창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제가 세 번의 라운드테이블에서 전시에 대한 리뷰나 이야기들을 많이 끌어내고 싶었는데 다들 좀 말을 아끼셨어요.

김화용: 책에 강하게 쓰신 것 같은데요.

이진실: 쓰긴 했는데, 어쨌든 국공립 기관이든, 신생 공간이든, 전시에서 다루는 페미니즘의 키워드는 굉장히 다양해지고,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최근에도 사이보그, sf, 생태, 요즘에 돌봄이라는 키워드까지, 페미니즘 전시에서 굉장히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 이 전시들이 굉장히 평이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디스플레이만 보이는 것 같다, 좀 더 차이나 도발적인 걸 보고 싶은데, 결국은 대중이 승인할 수 있는 얌전한 페미니즘의 이야기, 아름다운 페미니즘의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 같다, 이런 아쉬움들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 남웅 평론가도 이야기하지만13 ‘우리가 만드는 전시들이 누구를 관객으로 삼고 있는가? 우리에게 관객은 누구인가?’ 이런 지점들이 사실 전시를 만들거나 작업을 했을 때 관건일 것 같은데, 그 고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김화용: 사실 앞에서 이야기한 거랑 겹치는데요. ‘당시에 이런 작업이 있었다. 근데 미술씬이 몰랐던 거다.’ 이런 언급을 했던 그 당시에도 관객이 안 오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잘 몰랐던 건, ‘우리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가?’를 전혀 다르게 상정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 아무리 양적 팽창을 하고 좀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제도 안에서 관객을 기존의 ‘미술’ 관객들로 상정할 때 페미니즘이 불화하지 않고 읽힐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작가 정체성이 더 센 사람으로서, ‘더 공격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더 비평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미술이 갖고 있는 한계에 관해 페미니스트들도 많이 이야기하지만, 분명히 다른 예술에 비해서 미술이 갖고 있는 어떤 지극히 매력적인 지점이 저에게 있어요. 여러 작업들을 포착해서 그걸 어떤 기획으로 만들었을 때, 이 작업과 이 작업 사이에 어떤 새로운 의미망을 만들었을 때, 그 기획이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것이 큐레토리얼 것이고. 그래서 그런 페미니즘의 정치적 부분에서 단순히 일반 대중 그리고 기존의 현대미술 제도, 이런 것을 상정(공략)하고 계속 그 안에서의 파이를 고민하는 방식으로만 기획이 된다면, ‘그건 페미니즘적이지 ‘않지’ 않나?’ 이런 고민을 가끔 저도 하거든요. 그런 부분은 기획이 또 비평이 해 주셔야 되는 것 같아요.

이진실: 또 똑같이 당하네요. (웃음) 일단 이야기하신 부분들에 너무 공감하고요. 비평의 곤란함에 대해서는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많은 분들이 토로하고 계신 부분이 있는데, 저는 비평가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아요. 특히 제도라고 부를 수 있는 국공립 기관들이 대응하는 자세, 혹은 신생공간이나 대안공간이라 불리는 공간이라지만 어떻게 보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오는 태도, 이런 부분들이 어떤 도발적인 이야기, 아니면 뭔가 불화하는 이야기보다는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다루고, 그다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저 민원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인 것. 결국 작년 정윤석 작가의 《올해의 작가상 2020》 작품 논란과 관련해서도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거든요.14 불러서 뭔가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을 텐데,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려고 하면 그건 미술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제가 느끼기에, 기관이나 공간이나 기금 선정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었고, 특히 ‘페미코인’이라는 상업적인 영향력을 끼웠을 때는, 모두 굉장히 보신주의적이고, 그 물결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태도들이 적지 않게 보이거든요. 페미니즘의 불화라는 부분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과 차이와 이야기들, 이런 부분들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나는 이쪽 이야기도 들어보고 저쪽 이야기도 들어볼게’라는 어떤 중립의 입장을 취한다든지, 아니면 기관으로서 그냥 민원을 대처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든지, 어떤 것이 공론화되면 모든 미술계 사람들이 ‘2차 가해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든지.

김화용: 투명하게 만든다.

이진실: 네.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고, 그 군중 속에 숨어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들이 지금 서로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어요.

김화용: 이런 토론들이 SNS를 기반으로 많이 벌어지는 것도 큰 문제인 것 같고. 아무래도 기관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니까 SNS를 다루는 방식이 개인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SNS가 짧은 글로 유통되는 방식이다 보니까. 이런 복잡한 층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사실은 어떤 장이 마련돼야 되는데, 그런 부분은, 말씀하신 것처럼 없고. 그래서 제가 비평이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비평가의 어떤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비평가가 말할 수 있는 장이 과연 있는가? 그런 것들을 어떻게 구성해야 되는가?’ 이런 것들은 저희가 좀 고민해야 될 봐야 될 문제인 것 같아요.

이진실: 그리고 세 번의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면서 반복됐던 질문이 있어요. ‘페미니즘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런 질문이었는데. 사실 여성 작가가 만들면 페미니즘 미술이냐? 아니면 여성을 재현하는 거냐? 도대체 뭐냐, 페미니즘적이라는 것이? 그 부분에 대해서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가 열렸을 때,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시원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때까지 없었던 어떤 움직임이 미술 안으로 펼쳐졌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작가님은 페미니즘적인 것 혹은 페미니즘 미술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어려운 질문이 아닌가 싶지만요.

김화용: 아니 어렵기도 한데 저는 ‘예술이라는 것 그 자체보다 예술적인 걸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아까 이야기했던 촌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포섭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 활동가들의 어떤 활동이, 예술적인 제도 안에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명히 저 사람이 새롭게 질문하는 행위 같은 것이 페미니즘적이기도 하고, 예술적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에 희열을 느끼고 매개하려 하고요. 분명히 예술사 안으로 들어올 예술가는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조직하고, 끌어오고, 이런 것이 현대 미술이 갖고 있는 어떤 매력 같거든요. 아무거나 다 가져올 수 있는. (웃음) 그런 점에서 아카데믹(학계)이랑은 조금 다른 지점이 있죠.

‘페미니즘적인 것들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하게 돼요. 근데 최근에 공동으로 기획하신 웹진 『세미나』의 글에 제가 오혜진 평론가 글15을 보고, ‘내가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여기 안에 많이 담겨 있다.’ 이런 생각했고요. 『사랑과 야망』에서도 김홍희 선생님도 언급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이불 선생님의 후기 작업들에 있어서, ‘이것을 페미니즘 아트라고 볼 것인가?’ 김홍희 선생님도 심지어는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그 대서사를 본 부분이 ‘분명히 페미니즘 아트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16

오혜진 문학비평가의 글로 다시 돌아가서, 주체와 불화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이런 유사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오혜진 비평가가 언급한 어떤 글 중에 하나가 활동가 나영정이 『페미니스트 모먼트』17라는 책에서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어떤 주체를, 나로 규정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날 것인가로 상정하고, 스스로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를 틀어서, 더 낮은 누군가를 만날 것인가.’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세상이 다시 보인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그럴 때 지금까지 현재에 비가시적으로 존재했던 존재들이 페미니즘을 통과하면서 다시 보였던 것들, 그런 것들을 계속 만나는 방법, 그런 것이 페미니스트에게, 페미니즘의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자꾸 나로서, 개인이라는 나로서의 주체로 규정될 때 갖는 한계, 그리고 그것이 처음에는 스스로를 규정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에서 페미니즘이 좋게 작동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나갈 때 ‘우리가 무엇과 만나야 되는가’ 그것이 미술로 올 때는 ‘어떤 관객과 만나야 되는가’랑 상충하는 말 같거든요.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로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낙태죄라는 것들을 면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떤 불법이라든가, 불법 시술이라든가, 그리고 정상 가족 안에서만 가능한 임신이라든가, 혹은 이성애 중심주의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재생산이라든가, 이런 식으로만 규정을 할 때 안 보이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에는 너무 다루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낙태를 하지 못하는 어떤 처우에 놓인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부분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낙태죄가 없어지고,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통과한 이후에 임신 중지를 둘러싸고 있던, ‘비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은 무엇인가’ 이런 부분의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 이 이슈는 낙태죄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페미니즘이 바라봐야 하는 가려진 다양한 존재들,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기획했어요.

그래서, 분명히 작가 한 분 한 분들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되게 다양하겠지만, 이 기획을 가져갈 때 단순히 임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런 부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재생산권의 문제, 그동안 계속 낙태를 하고 싶어도 못 하게 했던 어떤 제도가, 사실은 재생산을 하고 싶어도 제도나 사회가 하지 못하게 했던 존재는, 누가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당연히 장애 여성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도 ‘자신이 타고 태어난 생물학적 성별의 문제, 과연 진짜 생물학적 여성의 범주는 무엇일까?’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것이 기획이 혹은 미술이 할 수 있는 어떤 매력인 것 같기도 해요. 작품 작품 하나하나가 다른 식으로 나열이 됐을 때랑 다르게, ‘왜 이게 함께 모여 있을까?’를 생각할 때 분명히 관객에게나 비평에게나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거리를 남기잖아요. ‘이 작업과 이 작업이 왜 이 자리에서 같이 만나지?’ 저는 ‘그런 부분에서 좀 미술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서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진실: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페미니즘적’이라는 규정하고 ‘예술적’이라는 규정이 별개가 아닌 것으로 들리네요.

김화용: 제가 아! 평소에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은 많이 안 쓰고 예술적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제가 생각하는 예술적인 것이 사실 페미니즘적인 것 아닌가 싶었어요.

이진실: 제가 이번에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18라는 페미니즘 선언문 번역에 참여했는데, 굉장히 좋은 선언문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가슴을 울리는, 뜨겁게 달구는 선언문들이 많은데. 선언문들 중에 정말 뜨겁게 와닿는 선언문들이 대부분 익명의 선언문이에요. 누가 몇 년도에 썼는지 불명확한, 이런 공동의 어떤 작업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다가오더라고요.

또 한편으로, 선언문 중에 맥킨지 와크(McKenzie Wark)의 「해커 선언문」19이 있는데, 좀 아카데믹한 언어로 쓰여 있긴 하지만, 머리를 딱 때렸던 것이, 정보에 대한 규정이었어요. 「해커 선언문」에서 정보를 뭐라고 이야기하냐 하면, ‘한 사람이 배타적으로 소유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소유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걸 뺏을 필요가 없는 것, 그러니까 그 가치가 희소성이 떨어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 공동의 소유가 가능한 소유재가 정보다. 그리고 해커는 그러한 생산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고 정의를 했을 때, ‘이건 그냥 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지금 현실적으로 작가의 크레딧이 필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예술의 힘이 어떤 한 사람이 독점해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고, 그 예술 작품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힘이라는 것을 한 작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공동의 가치를 가능케 하는 것이 사실 예술이기도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를 봤었을 때 에이피피(A-P-P)의 작업이라든지, 사진들이라든지, 아카이브, 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기록들, 이런 부분을 봤었을 때, 물론 개별 작가님들 작업도 굉장히 울림이 있었지만, ‘이런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아카이브 또는 기록이) 가지는 정치적인 힘, 그러니까 ‘그것이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해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집됐을 (때), 배치됐을 때 형성되는 어떤 힘들이 가장 저한테 크게 다가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화용: 저도 막 출간된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를 급하게 보면서 먼저 찾아 읽은 부분이 「해커 선언문」이었어요. 제가 여러 가지 협업을 할 때, 미디어 기술 개발자, 이런 분들 중에 그렇게 약간 정치적이고 진보적인 태도로 기술을 다루는 분들을 만났을 때 사실 예술 제도 안에 있는 예술가들보다 훨씬 더 예술적이라는 감각을 느낀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이 많아졌던 경험들도 있고. 에이피피(A-P-P)와 전시를 위해 만났을 때도, ‘에이피피(A-P-P)가 정치적 기록인 이 이미지를 어떻게 유통할 것인가?’ 질문이 들었어요. 그들의 작업이 웹 아카이브 형태잖아요. 거기에 함께한 분들이 당연히 웹 개발자, 언론인, 연구자 등 다양하거든요. 박근혜 시대 때처럼 에이피피(A-P-P)가 활동하는 폴란드의 모든 언론들이 다 통제되고 있으니까, 정치적 상황을 알리기 위해 조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결합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작업이 예술의 성과라고만 볼 수는 없는 거예요. 분명히 예술가들이 기록 운동가로서 그 안에서, 폴란드의 현재 상황을 열심히 기록하고, 그것들을 다 ‘개인 자원화’만 하지 않고, 함께 연대하며 모여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작가의 작업이 개인 작가의 자산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맞는가?’ 이런 생각들을 때로는 하게 돼요. 「해커 선언문」 같은 태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 안에서 모여 있는 거죠.

이진실: 그래서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대의 가능성과 희망, 이런 것들을 꿈꾸게 됩니다. 사실 2016년 이후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님도 그렇고, 일단 불화의 많은 지점들을 통과해 왔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어떤 연대의 가능성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긴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는지. 연대를 믿고 계시는지.

김화용: 연대의 실패자들이 연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이진실: 오늘은 실패자들이 하는 연대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보려 합니다. (웃음)

김화용: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데. (웃음) (침묵) ‘불화’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몸이 선언이 될 때》 기획하기 전에 한참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최근 계속 비거니즘 운동하던 애가 왜 다시 페미니즘을 찾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농담처럼. 제가 저 스스로에게, 사실, 질문하기는 했어요. ‘지금 이거, 페미니즘, 내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데 꼭 잘해야 되나?’ 또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는데요. 제가 ‘동물권 운동이나 비거니즘 운동을 왜 만나게 됐던가?’를 추적해서 올라가 보면, 저한테는 그 시작이, 어떤 분들은 생태 운동하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시작이 페미니즘이었거든요. 그래서 페미니즘이, 어디를 만나야 될까? 계속 만남을 진척하다가 제가 만난 곳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을 해요.

동물권 운동도,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지만, 동물 해방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한번도 상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15년 전 20년 전에는 말이죠. 그런데 이제 젊은 동물권 운동가들이 정말 래디컬(radical)하게 ‘동물해방’을 외치고, 해방 시위도 하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그걸 정치적으로 제가 다 지지한다’ 이런 차원을 떠나서 ‘뭔가 또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구나’ 이런 것들에 제가 설렜어요.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때도, 저희가 그런 부분 다 느꼈었던 것 같아요.

동물권 운동가들한테 제가 더 감동을 받았던 건, 무엇이냐면, 처음에 그 운동을 시작하실 때, 장애 운동하는 분들이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다’ 이런 언급을 했던 것들을, 처음에는 지적했었어요. ‘개와 돼지를 어떻게 보는 것이냐? 장애 운동가들의 주장이 보수 정치인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러면서, 막 언쟁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 이후에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동물권 운동가와 장애 운동가가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언어의 어떤 근원, 그 언어적 표현에는 문화적 역사적인 이유가 있잖아요. 장애라는 몸을 가진, 불구의 사람들이 개와 돼지에게 사람을 비유해서 표현하게 된 사회 문화적 그런 이유들을 서로 나누면서, 그 불화를 다시 연대의 장으로 만들고 하는 장면들을 제가 목격을 하게 됐어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항상 격렬하게 불화하는데, 이 불화가 다시 경합과 연대의 방식으로 가는 건강한 씬(scene)에 대한 희망 같은 걸 계속 잃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동물권 운동들을 좀 보면서 다시 희망을 조금 갖게 된 부분들이 있어요.

이진실: 저한테 해주신 노량진 수산 시장 이야기도 나눠주시지요.

김화용: 맞아요. (웃음) 그래서 동물권 활동가들이 처음에 비질(Vigil)20 같은 것들을 다니면서 축산업의 도살장 현장들을 막 가셔서 참혹한 상황을 알리고,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거대한 해산물 유통현장에서 가서, 수족관에 갇혀 있는, 차별 없는 새로운 언어로는 ‘물살이’라고 하는 그런 여러 생물들을 촬영하고 기록하고 비질 운동을 하세요. 그런데 그 생물들을 판매하시는 노량 수산시장의 상인들 분들이랑은 어떻게 보면 불화하는 위치에서 계속 그 공간을 동물권 운동가들이 계속 방문했던 거죠.

그런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노동 문제들 있잖아요. 강제 철거를 집행하고 하는 상황을 동물권 운동가들이 보게 되면서 그 이후에 상인분들에게 연대하고, 그분들의 지금 농성 텐트에 같이 가 있고요. 이런 장면들도 제가 목격하면서, 사실 ‘동물권이라는 키워드로만 운동을 한정해 본다면 이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싶지만 ‘그 장소에서 함께 만났던 경험 같은 것들을 통해 서로를 듣고, 우리가 뭘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고 해야 되는가?’를 실천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제가 운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희망적인 사람 같이, 갑자기 마무리돼서 이상한데요. (웃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제가 그걸 보면서 이 불화의 정치라는 것들이 꼭 싸움과 경계와 구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다음에는 무엇을 다시 만날 것인가?’ 그런 것들의 가능성도 주는 것 같아서 그 장면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이진실: 저희가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네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서 발견하고 같이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요. 결국 책에서도 오늘도 연대와 불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저도 한 1, 2년 사이에 어떤 불화에 대한 실망감, 그다음에 연대 불가능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회의가 컸던 것 같고. 저보다 더 상처와 회의를 많이 느끼셨던 김화용 작가님이시지만, ‘어차피 우리가 미술이라는 것을 붙들고 있는 한 이런 회의와 실망을 이겨내고, 다시 헛될 수도 있지만, 희망을 품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화용: 책의 주제랑은 이 대화의 결말이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이진실: 그러게요. 이 책 『사랑과 야망』의 주제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저희가 이 연대의 가능성을 믿으며 구호로 마무리할까요?

김화용: 구호 전에, 그래도 책 제가 칭찬 한마디 하죠. 불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그냥 투명해진, 아까 그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이 대화의 자리를 괜히 수락했다 싶었어요’. ‘책이 이렇게 선언하는 글인 줄 몰랐어!’ 이런 생각을 좀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때 우리가 불화했던 어떤 여러 가지 감정들, ‘이런 것도 기록돼야 되는 것이구나. 그것이 기록되어야지 또 그다음, 또다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도 벌어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기록을 잘하지 못했던 것들, 앞에 반성 많이 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불화의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실: 저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저희 대화는 구호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화용, 이진실: “나중에”를 끝내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몸동작과 웃음)

*2021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2부에서 오고간 말을 글로 옮기고, 이진실, 김화용, 두 토론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했습니다.

기록과 편집 김진주


  1. [편집자 주] 이진실 외,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서울: 미디어버스, 서울시립미술관, 2021). 이 책은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판되었다. 

  2. 이진실, 「불온한 프리네를 위한 시론」, 앞의 책, 135-152. 

  3. [편집자 주] 2015년 이후 주로 온라인에서 촉발된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확산을 말한다. 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한국 영화를 통해 보는 포스트-페미니즘, 그리고 그 이후」(『문화과학』 83호, 2015.9, 14-47.)와 같은 저자의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서울: 나무연필, 알라딘. 2017) 참고. 

  4. 이진실 외, 『사랑과 야망』, 18-19. 

  5. 조선령,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어제와 오늘: 80년대 여성주의 미술과의 연결점을 중심으로」(『문화과학』 49호, 2007.3, 177-191.) 참고. 

  6. 제9차 여성학대회 기념으로 열린 전시이자 제3회 여성미술제였던 《판타스틱 아시아—숨겨진 경계, 새로운 관계》(성곡미술관, 2005. https://neolook.com/archives/20050625a.)를 말한다. 

  7. 《안티 아라키》(카페 시월, 2005). 김현주, 「아라키와 ‘안티’ 아라키, 그 또렷한 상반의 시선」(여성신문, 2005년 5월 12일.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519.) 참고. 

  8. 《젠더 스펙트럼》(요기가 갤러리, 더 갤러리, 2008). 권세미, 「새롭거나 익숙하거나: 전시 젠더 스펙트럼(Gender Spectrum」)(『일다』, 2008년 8월 2일. https://m.ildaro.com/4525.) 참고. 

  9. 이진실 외, 『사랑과 야망』, 26, 40-43. 

  10. 앞의 책, 28-29. 

  11. 앞의 책, 36. 

  12. 앞의 책, 45-46. 

  13. 앞의 책, 108. 

  14. 앞의 책, 85-86, 112-114. 

  15. 오혜진, 「‘주체’와 불화하는 글쓰기—최근 한국 퀴어/페미니즘 문학의 에토스에 대한 메모」(『세미나』, 9호, 2021년, http://www.zineseminar.com/wp/issue09/ohaejin-queerfeminismwriting/.) 

  16. 이진실 외, 『사랑과 야망』, 26. 

  17. 권김현영 외, 『페미니스트 모먼트』(서울: 그린비, 2017). 

  18. 브리앤 파스 엮음,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 양효실 외 옮김(서울: 바다출판사, 2021).  

  19. 앞의 책, 640-665. 

  20. [편집자 주] “고요해지는 시간이란 뜻에서 확장된 비질은 동물들이 일상적으로 학대받고 살해되는 도살장 등을 찾아 가려진 폭력을 직면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강석영, 「[인터뷰] ‘육식은 폭력’ 동물권 시위에 마음 뺏긴 20년차 인권 운동가」(『민중의 소리』, 2020년 2월 7일. https://www.vop.co.kr/A000014657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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