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 샌드박스 - 레지던시 - 텍스트 Game-Sandbox - Residency - Text

정시우
정시우는 서울 외곽에 위치했던 공간 교역소(2014–2016)를 공동 운영했으며 플랫폼엘, 부산비엔날레,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을 맡았고 《그리드 아일랜드》(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2)를 담당했다. 《폴리곤 플래시》(인사미술공간, 2018),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기획에 참여했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드 아일랜드》는 서문에서 “미술관의 기능인 수집과 연구, 전시와 교육의 바탕이 되는 ‘담론의 생산 조건이자 과정으로써 제작(production)’에 주목하는 전시”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미디어에서 데이터로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 형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창제작 플랫폼을 상상하며” 이를 위해 “평면, 입체, 공간, 사운드 등 시각예술 매체를 게임의 구성 요소에 대입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세계(world)’를 생성하는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 Game-Sandbox-Residency〉(이하 GSR)를 구축했다.”라고 기획 의도를 서술하고 있다.

GSR을 레지던시로 설정한 이유는 20여 년간 국내 미술 현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공립 창작공간은 하나의 제도로 자리를 견고히 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프로그램을 갱신하거나 이를 재고하는 노력이 있었는지 질문하고자 함이다. 김정현 비평가는 〈미술관의 재숙련〉에서 “국공립 레지던시는 작가의 개인적 공간을 넘어 같은 시기에 한 건물의 공간을 사용하는 작가 다수의 저자성이 교차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레지던시가 단지 작가에게 제공되는 인적, 물리적 서비스 시설에 그치지 않고, 미술관의 대안적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주체들 간의 교류와 예술적 실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비평한다.

레지던시와 관련해 GSR을 제작한 홍진훤 작가의 〈GSR Application Note ― v1.4〉에서 일부를 인용하면 “GSR은 기본적으로 작가들의 작업이 중첩되며 최종 결과물을 생산하는 일종의 협업 시스템이”며 “작가의 작업물을 이용해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공동의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작업물이라는 것이 오로지 작가 개인의 상상-노동-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때 가능하다”라고 밝힌다. 또한, “작가가 결과물을 명확히 예상할 수 없”는 GSR의 특성으로 인해 “이런 선택적 불능의 구조는 결과물(작품)의 소유를 둘러싼 전통적인 배타적 권리형태를 극복하고 역설적으로 동시대적 협업의 가능성을 생산”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GSR의 협업 가능성에 관해 곽노원 큐레이터는 〈GSR 매개/관람 기록물〉에서 “이미지의 생산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창작’에서 주어진 것들의 쌓아 올리기로, 즉 재구성-재조직으로서의 ‘제작’으로 넘어갔다는 기반적 동의를 근간으로”하며 “차용-전유자 간의 교차, 즉 어느 부분이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리킬 수 없는 뒤섞임을 넘어, 이미 제작된 것이 다시 한번 각자의 손을 떠나 다시 뒤섞이거나 누군가/어떤 것에 의해 ‘제작’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평한다.

코로나19로 이동의 제약이 생기자 국제 레지던시가 작가의 신체적 이동을 전제로 설계되었음을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다. 물리적 이동이라는 기존 프로그램의 관성을 따르지 않고, 온라인을 하나의 조건으로 설정해도 여러 예술 행위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을지 상상했다. 온라인 레지던시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웹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작업 활동과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대 시각예술이 여전히 물리적이고 물질적 경험에 상당 부분 기대어 있지만, 작업의 제작 방식과 매체, 그리고 보이는 방식은 변화했다. 영상과 조각, 평면 등 많은 작업이 디지털 소스를 현실에 출력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에 반해 레지던시는 여전히 물리적 스튜디오와 이를 활용한 개별 예술가의 작업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레지던시의 지향점은 공유하는 시간성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인데 GSR은 개별 예술가의 디지털 작업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것이 웹 프로그램을 통해 뒤섞이는 일종의 공동 작업 환경으로서 제안되었다. GSR은 당대의 창작 개념, 생산물의 소유권, 콜렉티브 형태를 비켜서는 탈중심적 개념에 닿고자 했던 시도였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국공립 레지던시가 기존의 물리적, 개별적 스튜디오의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저자성이 교차하는 환경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이 글은 미술관의 ‘제작’ 활동에 주목하는 전시 《그리드 아일랜드》(2022)와 맞물려 기획되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와 전시의제의 소주제를 발굴하는 2022 SeMA 의제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록되었습니다.

미술관의 재숙련

질문의 재구성

이 글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기획전 《그리드 아일랜드》(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2. 5. 26. - 8. 15.)와 연계해서 작성되었다. 원고는 둘 중 한 가지 방향을 선택해서 집필하도록 요청됐다. ‘첫째, 전시 리뷰를 포함한 비평, 둘째, 국내 레지던시의 수행성에 대한 제안’이다. 이 중 두 번째 주제를 선택한 데는 필자가 2017년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연구자로 레지던시를 직접 경험하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배경이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여러 예술 중에서도 특히 미술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2000년대 초반에 도입되기 시작한 레지던시 제도는 동시대 미술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또한 이런 질문을 던진 기획 주체가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인 ‘제작’을 과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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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R Application Note ― v1.4

0. OVERVIEW

GSR은 Game-Sandbox-Residency의 약자로 동시대 이미지 생산-유통 패턴을 레지던시라는 미술 제도 안에서 실험하는 기획이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온라인 자동 영상 제작 프로그램과 닮아있다. 이 프로그램의 원형은 MS 오피스(특히 파워포인트) 등의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던 시각 템플릿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사용자가 템플릿을 선택하고 정해진 위치에 정보를 입력하기만 하면 디자인의 수고로움 없이 프로그램이 그럴듯한 시각물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다. 뒤를 이어 각종 자동화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더욱 손쉽게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의 등장 이후 이 기술은 자동 영상 제작 프로그램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광고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 서비스와 GSR의 가장 큰 기술적인 차이라면 최종 결과를 인코딩 서버를 통해 영상 파일로 출력하는 것이 아니라 HTML5의 캔버스와 WebGL을 이용해 웹브라우저에 출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GSR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런 기술적인 부분의 검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문서는 GSR 시스템의 설계-구현-운용에 관해 작성한 일종의 기술문서, 그중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어플리케이션 노트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에 관한 서술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GSR의 분절점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 설명에 더해 개인적인 의견, 짐작, 의심, 비약 등을 함께 기술했다. 크게 5개의 모듈로 구분해 작성했으며 글의 마지막에 시스템 개발환경을 밝혀두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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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R 매개/관람 기록물

0. ‘GSR 플랫폼’을 보아 온/본/봤던 기억에 앞서

이 글은 필자가 GSR 플랫폼 개발 과정을 매개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시각 예술을 자주 관람하(고자 하)는 한 명의 관람자로서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 전후의 GSR 플랫폼을 보고 남기는 기록이다. 필자는 GSR 플랫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기획자 – 개발자 – 생산자(작가) 사이의 의도와 의견을 매개-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즉 ‘동시대 이미지의 생산-유통 패턴을 레지던시라는 미술 제도 안에서 실험’하는 한 형식이 생산되는 과정에 포함되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개입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위치에서 필자는 과연 GSR 플랫폼이 소위 ‘동시대 이미지/콘텐츠 소비’ 지형 내에서 다른 이미지나 콘텐츠와는 무엇을 달리 보여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였고, 한편으로는 GSR 플랫폼이 전시에서 구현된 최종 결과물의 형태로서 (본인을 포함한) 사용자/관람자들에게는 어떻게 다르거나 다르지 않게 보이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기록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해, GSR 플랫폼이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했는가―보이고 싶었는가―보이는 것으로 나왔는가’라는 제작의 의도와 과정을 되짚는 매개/관찰 일지이다. 그리고 그 맥락과는 관계없이 내보여진 것으로서의 GSR 플랫폼이 (적어도 한 명의 관람자에게는) 어떻게 보였는가를 떠올리는 관람 기록물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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