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R 매개/관람 기록물

곽노원
곽노원은 구 기획자 집단 ‘불량선인’의 일원(2017-2019)으로 활동하며 《관악구 조원동 1645-2》(2017), 《땅따먹기 ‘n’ P》(오퍼센트, 2019) 등 전시를 공동 기획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 2020)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 학예연구사(2021)로 근무하며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SeMA 벙커 운영 담당 및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SeMA 벙커, 2021), 《세마 러닝 스테이션: 전환》(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1)에 참여하였다. 옳지 않은 이미지와 이를 포착해나가는 과정, 내보이는 일, 보는 행위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0. ‘GSR 플랫폼’을 보아 온/본/봤던 기억에 앞서

이 글은 필자가 GSR1 플랫폼 개발 과정을 매개한 사람으로서, 동시에 시각 예술을 자주 관람하(고자 하)는 한 명의 관람자로서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 전후의 GSR 플랫폼을 보고 남기는 기록이다. 필자는 GSR 플랫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기획자–개발자–생산자(작가) 사이의 의도와 의견을 매개-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즉 ‘동시대 이미지의 생산-유통 패턴을 레지던시라는 미술 제도 안에서 실험’하는 한 형식이 생산되는 과정에 포함되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개입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위치에서 필자는 과연 GSR 플랫폼이 소위 ‘동시대 이미지/콘텐츠 소비’ 지형 내에서 다른 이미지나 콘텐츠와는 무엇을 달리 보여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였고, 한편으로는 GSR 플랫폼이 전시에서 구현된 최종 결과물의 형태로서 (본인을 포함한) 사용자/관람자들에게는 어떻게 다르거나 다르지 않게 보이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기록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해, GSR 플랫폼이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했는가―보이고 싶었는가―보이는 것으로 나왔는가’라는 제작의 의도와 과정을 되짚는 매개/관찰 일지이다. 그리고 그 맥락과는 관계없이 내보여진 것으로서의 GSR 플랫폼이 (적어도 한 명의 관람자에게는) 어떻게 보였는가를 떠올리는 관람 기록물이다.

1. 전시(장)에서: 월드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에 입장하게 되면, GSR 플랫폼은 전시의 초입인 2층 우측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어떤 화면이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반투명한 스크린이 가로로 길게, 그러나 좌우 날개가 비스듬히 꺾인 형태로 시야를 가득 메운다. 이내 우리는 반투명한 긴 스크린이 사실은 세 개의 화면으로 분절된 일종의 삼면화(면)라는 것을 이내 깨달을 수 있다. 이는 막에 어렴풋이 비치는 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뚫고 비쳐 오는 프로젝터의 강한 빛 때문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접힌 한 면을 따라 돌아들면,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로 투사된 상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잠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상들이 맺힌 표면에는 복잡다단한 그래픽 이미지와 오브젝트, 텍스트 등이 보는 사람은 잘 알 수 없는 어떤 규칙을 따라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눈앞에 보이는 화면의 구조를 좌우상하로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화면 가장 좌측에는 ‘스테이터스(status)’라 적힌 네모난 박스가 있어 어떤 이미지와 그것의 표제로 보이는 텍스트가 떠있다. 이 레이아웃은 표제가 지시하듯 마치 게임 속 캐릭터나 아이템의 간략한 정보를 나타내는 상태(status)창과 유사한데, 지속적으로 다른 ‘아이템’을 호명하여 보여 주기 때문이다. 중앙에는 영화 〈트론〉(1982)에서나 볼 법한, 촘촘한 격자로 나뉜 전형적인 디지털 가상 공간이 펼쳐져 있다. 이는 뻥 뚫린 삼차원 공간으로 보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이미지가 붙어있는 이차원적인 배경을 지닌 캔버스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이 공간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디지털 오브젝트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일부는 폴리곤 오브젝트의 전형적인 표피를 띠고 있다. 바꿔 말해 전체적으로 매끄럽지만 외경계의 일부가 이따금 계단처럼 각이 진 하얀 픽셀 덩어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때때로는 어떤 이미지들을 표피처럼 뒤집어쓰고 있지만, 여전히 삼차원 디지털 오브젝트라는 사실을 숨길 순 없어 보인다. 매번 화면이 새로고침 될 때마다 이 세계에는 매번 다른, 하지만 하나같이 쨍한 ‘디지털적’인 색깔의 햇빛이 흘러들어 와 대상들을 물들인다. 화면 가장 오른쪽에는 ‘데이터 로그(data log)’ 박스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종의 프로그램 작동 명령어 따위로 보이는, 보는 이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는 텍스트들이 빠른 속도로 스크롤-업 되며 지나간다. 화면의 최하단에는 얇고 긴 박스가 있어서 역시 모종의 텍스트들이 마치 주식 전광판처럼 빠르게 옆으로 흘러 나간다. 잠시 지켜보다 보면 이곳에는 스테이터스 창에 불려온 아이템들의 이름이 옆으로 줄지어 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중간중간 로딩 페이지가 뜨며 가상 공간과 대상들이 사라지고 불려오길 반복하는 동안 리플렛을 읽어 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시공간이 GSR 플랫폼의 데이터들로 구성된 ‘월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관람자인 내가 직접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어떤 시선에 붙들려서 나에게로 전달되고 있다. 매번의 월드마다 특정한 카메라 워크가 대상들을 줌인하거나 비스듬히 비껴가며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지켜보면, 대개의 월드는 일정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다(물론 꽤나 큰 볼륨의 소리이기에 어떤 이들은 대번에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이 음향들은 마치 배경 음악 같기도 하지만, 이따금 월드보다 먼저 사라지기도 하거니와 몇 개의음원들이 무작위로 뒤섞인 것이 명백한, 딱히 ‘음악’이라고 칭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그저 음향 정도로 들린다.

《그리드 아일랜드》 연계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GSR | Game-Sandbox-Residency)〉 화면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2022. 웹사이트 디자인/프로그래밍: 홍진훤, 프로덕션 매니징: 곽노원.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그리드 아일랜드》 연계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GSR | Game-Sandbox-Residency)〉 화면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2022. 웹사이트 디자인/프로그래밍: 홍진훤, 프로덕션 매니징: 곽노원.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그리드 아일랜드》 연계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GSR | Game-Sandbox-Residency)〉 화면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2022. 웹사이트 디자인/프로그래밍: 홍진훤, 프로덕션 매니징: 곽노원.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그리드 아일랜드》 연계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GSR | Game-Sandbox-Residency)〉 화면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2022. 웹사이트 디자인/프로그래밍: 홍진훤, 프로덕션 매니징: 곽노원.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2. 전시(장) 이전에: 월드

필자는 GSR이 일종의 레지던시이자 샌드박스 게임 형식을 동시에 포용한 일종의 ‘레지던시 – 게임 -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획 초반부터 전시에서 구현되기까지의 일관된 기획 의도였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의도의 핵심에는 소위 ‘포스트 디지털/인터넷’으로 언급되는, 거칠게 요약하면 이미 모든 사회-경제-문화적 기반이 디지털-네트워킹 시스템을 통해 구축되어있어 디지털-네트워크 기술 ‘특정적’ 속성이나 그 반대급부를 강조하는 것이 무용한, 모든 것이 “미디어에서 데이터로 변화”해 포섭되어있는 동시대적 상황이 전제되어있다(고 적어도 필자는 이해했다). 특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기획하는 GSR 레지던시-게임-플랫폼은 당대적 레지던시를 둘러싼 질문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다른 이미지-콘텐츠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시각 예술 생산 역시 “메타버스(로 통칭되는 ‘가상’ 공간)의 지형 안으로 죄다 옮겨갈 수 있지 않느냐”라던가, 혹은 “그럼에도 물질/물리적인 장소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지 않느냐”로 요약될 수 있는 문제 말이다. 동시에 또 명백하게 그러한 문제들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기획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름이 가리키듯 기획 초기부터 GSR(Game Sandbox Residency)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자 하나의 ‘샌드박스 게임’으로 상상되었다. 일반적으로 ‘샌드박스 게임’은 가상 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주어진 도구를 활용해 특정한 목표 없이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 기반의 게임을 일컫는다. 하지만 GSR에서 초점은 ‘디지털 매체 기반의 게임’이 아니라 ‘샌드박스’, 문자 그대로 모래 놀이터 안에서 균질한 모래알을 가지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형상을 쌓고 부수는 놀이-상호작용에 맞추어져 있다. 동시에 ‘모래알’이 물질적 입자가 아닌 디짓(digit)으로 구성된 신호로 변화하였다는 식의 질료 차원 또는 현실/가상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는다. 그보다는 우선 이미지의 생산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창작’에서 주어진 것들의 쌓아 올리기로, 즉 재구성-재조직으로서의 ‘제작’으로 넘어갔다는 기반적 동의를 근간으로 한다. 다만 이것이 레디메이드, 파운드 오브젝트, 콜라주 등 이미 구시대적인 ‘창작’ 방법이나, 뿌리처럼 뒤얽힌 하이퍼링크들과 구체적인 기원 없는 데이터의 (재)조직 등의 벌써 구시대적인 ‘제작’ 방법론의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용-전유자 간의 교차, 즉 어느 부분이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리킬 수 없는 뒤섞임을 넘어, 이미 제작된 것이 다시 한번 각자의 손을 떠나 다시 뒤섞이거나 누군가/어떤 것에 의해 ‘제작’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동시대 미술 생산-매개의 부분적 양태와 필연적으로 닮아 있다. 바꿔 말해 제작된 작업-작품이 매개자/기관에 의해 선보여지는 과정 또는 이들을 통해 선보여지기 위한 특정한 작업-작품의 제작이 촉진되는 과정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일반적인 샌드박스 게임의 플레이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게임 안에서 주어진 공간, 예컨대 ‘오픈 월드’ 안에서 게임 자체가 제공하는 구성의 최소단위(블록 등)와 기본적인 제작법(조합법)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상호작용의 권한이 주어진다. 그런데 샌드박스 게임 안에서 상호작용의 권한은 이미 주어진 재료와 제작법을 넘어서는 추가적인 재료와 제작법을 발굴하거나 상호작용의 방향 자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권한까지로 확장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예컨대 이러한 것을 가리켜 사용자 ‘모드(MOD)’라고 한다(샌드박스형 게임은 모드를 위한 모드/게임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GSR이라는 ‘모드’에서 각 사용자들의 놀이 권한이 자신의 역할에 한정되고, 그들이 역할에 따라 GSR과 상호작용한 결과물이 그들과는 다른 누군가/어떤 것의 권한 아래로 포섭된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역할’은 분명하게도 RPG(Role Playing Game) 게임에서 차용된 것이다. 기획자는 RPG 게임에서처럼 소위 ‘클래스/직업’ 등으로 각각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선호하는 (제작의) ’기술’ 범위에 따라 GSR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을 선정하였다. RPG 게임에서처럼 참여자들의 역할을 확실하게 규정하거나 그들의 수행을 한정 짓는 제약은 없었지만, “참여자의 생산물을 GSR에 기입한다”라는 역할의 범위는 규정되어 있었다. 대신 참여자의 생산물을 뒤섞어 (재)제작하는 일련의 자동적 프로그램이 존재했고 그 작동의 시각적 결과물이 ‘월드’였던 셈이다. 다만 월드가 가시적인 하나의 ‘세계’로서 구성될 법칙은 여전히 필요했다. 처음에 이를 설정하는 것은, 기획 및 개발에 관여하는 이들에 의해서 임의로 ‘마스터’라고 불린, 또 다른 클래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마스터의 역할은 프로그램 자체의 작동 방식을 처음부터 설계/설정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었고, 월드 구성물의 범위와 월드가 구현될 방식 등을 이미 정해진 한계 내에서 지정해, 우리가 ‘프리셋’이라고 부르는 사전 설정값을 마련해 두는 정도였다. 따라서 마스터가 프리셋을 설정해 두면, ‘제네레이터(월드 구현을 수행하는 프로그램 자체)’는 매번 각기 다른 프리셋 값에 따라 이미지와 오브제 따위를 불러와 프리셋에 맞춰 각자의 크기나 위치를 결정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지으며 월드 안에 늘어놓게 된다. 하지만 소위 마스터 역할은 월드가 구체적으로 개발되는 단계에서 다시 GSR 참여자들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는 다른 참여자들과 위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역할로 설정되었던 ‘마스터’가 실질적으로는 월드의 구현을 제한적이나마 결정짓는 위계적 권한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기획자와 GSR 레지던시 참여자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필자는 적어도 생각한다).

3. 전시(장)에서: 스킬트리

리플렛의 설명을 읽어 보아도 아리송한 월드를 뒤로하고 2층의 작품들을 구경하다가 3층의 우측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시 한번 우리는 월드 또는 GSR 플랫폼이라는 것의 일부와 마주할 수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한 기둥에 아래의 삼면화(면)와 같이 세 개의 모니터가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GSR 플랫폼의 연장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기둥 가까이에 다가가면, 아래층에서 관람하는 동안 제법 익숙해진 혼란한 소리가 2층과 3층 전시장을 잇는 네모난 천장/바닥 구멍을 타고 들어와 두 삼면화의 음향적 공통 배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물리적인 연결성은 관람자에 따라 잘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시장의 동선상 대부분 먼저 마주하게 되는 기둥의 맨 좌측면에서 낯익은 이미지, 즉 아래 월드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이 보인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여기에는 월드의 좌측 스테이터스 창에 떠올랐던 ‘아이템’들의 이미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이들 사이에는 선이 이어져 있어 어떤 구조도 따위를 연상하게 한다. 각각의 이미지들을 자세히 뜯어 보거나 그들 사이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마치 월드와도 같이, 그러나 월드보다 빠른 속도로 새로운 구조도가 호출되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등장하는 이미지의 개수는 매 구조도가 새로고침 될 때마다 다르다. 월드의 스테이터스 창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이번엔 좌측 정렬된 형태로, 이미지들에 부여된 파일명들이 위아래로 늘어서 있다. 파일명은 jpeg나 png, mp3, mp4, obj 같은 확장자를 달리하고 있고, 그 파일의 형식에 따라 다른 색깔로 색인(예컨대 이미지 파일은 파란색, 오브젝트는 흰색, 음향은 초록색 등)이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로부터 짐작해 볼 수 있는 사실은 호출되는 이미지들이 각각 다른 형식의 데이터 파일을 썸네일 이미지처럼 불러오고 있고, 이미지들 사이의 거미줄은 이미지가 지시하는 데이터들을 하나의 형식으로 연결하여 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 썸네일 이미지가 아래층의 월드의 구성물들을 불러온 것이라면, 썸네일들 사이의 연결은 결국 월드의 구성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눈을 뒤통수에도 달고 있거나 한 층의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관찰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모니터에서의 구조적 연결과 월드에서 실제로 ‘연결’된 구성을 동시에 관람해 볼 순 없다.

살짝 사이드 스텝을 밟아 기둥 중앙의 모니터를 마주하면, 여전히 월드의 스테이터스 창과 거의 유사한 구성을 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썸네일 이미지는 배경 화면이 되고 파일명은 중앙에 위치한다. 다만 스테이터스 창과 다른 점은 썸네일 이미지와 그것이 지시하는 어떤 파일과 연관된 사람의 이름이 가장 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사람은 이러한 일련의 데이터들을 만들었을 작가다. 리플렛에서 “GSR에는 누구누구가 참여했다”라고 소개된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월드에선 어림 잡히지 않았던 것, 즉 누가 어떤 형태의 작품-데이터를 만들었는지를 구분할 수 있다. 파일명 아래에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물론 달려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떤 것은 다 읽어 보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고(월드, 그러니까 좌측 화면과 마찬가지로 이 화면 역시 계속해서 새로고침 된다), 어떤 것은 의미를 그러잡기가 힘들 정도로 간략하다. 다시 한번 옆걸음을 하면(그러나 조금 오른쪽으로 몸을 더 틀어서), 세 번째 화면도 역시 중앙의 화면과 구성이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에는 (이번에는 바둑판 구성으로 바뀌어 표출되는) 이미지가, 맨 위에는 작가의 이름이, 가장 아래에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중앙에 파일명이 아니라 URL 주소가 놓여 있다. 주소를 눌러볼 수는 없기에,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그 주소가 각각의 데이터가 놓인 어떤 웹사이트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몇몇의 설명문은 인용문이라든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명백해 보이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설명문에 연동되는 URL은 그것이 데이터와 관련된 참고자료 따위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

4. 전시(장) 이전에: 스킬트리

GSR 플랫폼의 스킬트리 역시 명백하게도 게임의 ‘스킬트리’ 시스템을 차용한 것이다. 주로 RPG 게임에서 이는 플레이어와 주로 상호작용하게 되는 캐릭터가 수행 가능한 기술과 능력, 바꿔말해 게임 생산자가 테두리 지어둔 캐릭터의 스킬에 대한 정보를 플레이어에게 도표화해 보여주는 기능을 일컫는다. 여기서 다시 GSR 플랫폼의 구성을 간략히 살펴보자. 우선 GSR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이들이 GSR 플랫폼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인벤토리’다. 참여자들이 인벤토리에 업로드한 각자의 결과물을 일련의 규칙(프리셋)에 따라 재조합해 또 다른 결과물로 구현해 내는 시스템이 ‘월드’다. 이 연장선상에서 GSR 플랫폼의 스킬트리는 인벤토리 내에서 특정한 규칙에 의해 호출되어 월드를 구성한 각기 다른 형식의 데이터들과 그 연결을 도해화해 보여 주는 일종의 ‘조립도’의 기능이다. 이를 게임 내 플레이어, GSR 플랫폼의 사용자와 연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스킬트리’는 GRS 참여자가 자신의 손을 떠나 월드의 구성 안에 뒤섞여 부분적 ‘데이터’가 된 생산물 또는 타 참여자의 생산물을 분리해 정보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월드’는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당연한 전제를 가지고 있었고, GSR 플랫폼의 사용자는 GSR 레지던시의 참여자뿐만이 아니라 ‘관객’이라는 (어쩌면 당연한/당연시되는) 볼 이들까지를 상정하고 있었다.

스킬트리 시스템은 구현되기 거의 직전까지 ‘SAW 플랫폼’이라는 이상한 명칭과 혼용되었다. ‘SAW’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2021)에서 고안된 SAW 개념/프로젝트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때 SAW는 관람객(Spectator), 관중(Audience), 관찰자/구경꾼(Watcher), 즉 ‘관객’으로 통칭될 수 있는 존재들을 가리키는 말들의 앞 글자를 딴 준말이다. 위의 전시는 소위 콘텐츠 소비 시대의 지형 내에서 시각 예술을 본다는 것의 의미 또는 가치를 질문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에서 SAW는 ‘관객’이라는 익숙한 이름 아래 당연한 수용자로 전제된 이들을 보기 행위의 능동적인 주체인 ‘관람자’로 호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관람자’란 생산/매개자의 맥락에 호출/포섭되지 않는 차원에서 자신의 보기 행위를 인식하고 자신이 본 것들을 고유한 결과물로 가져갈 수 있는 능동적인 보기 행위자를 상상하기 위한 이름이다. 동시에 SAW는 해당 전시의 참여 작가였던 격주로와 함께 전시를 본 이후 자신의 감정과 경험, 기억을 기록할 수 있는 관람 기록-생산물의 방법과 전략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이러한 SAW가 GSR과 연동된 이유는, 앞서 말했듯 GSR 레지던시를 포함한 GSR ‘플랫폼’이 전시를 통해서나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보여져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대 이미지 ‘생산’에 대한 실험에는 당연하게도 동시대 이미지 ‘수용’에 관한 실험도 잇따를 수 있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과 공명한다(이러한 문제의식은 GSR ‘레지던시’ 프로젝트 전체가 결국에는 왜 ‘플랫폼’이라는 명칭으로 귀결되었는지와도 연동된다). 예컨대 구현된 월드와 그것의 구성도로서의 스킬트리가 선보여진다면, 이를 보는 관람자들이 단순히 그것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차원에서든 유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SAW적’인 의도를 담은 스킬트리가 월드나 인벤토리 등 생산자가 데이터와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 또 월드의 개별 데이터들 혹은 그것들의 관계에 대한 주어진 정보에 수동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도록 구현된 점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수용자/관객의 GSR 플랫폼과의 상호작용이, 예를 들어 월드 구현에 개입하거나 인벤토리에 자신의 데이터를 기입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부차적인 ‘생산’ 차원으로 딸려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강한 ‘SAW적’인 전제 조건 때문이다.

다시 게임 안에서의 ‘스킬트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특히나 사용자 차원에서 스킬트리는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도표인 동시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캐릭터의 성장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 능력과 기술의 선택 및 조합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생산자에 의해 제공된 전체적인 게임/플레이의 틀과 각 캐릭터의 ‘클래스’에 따라 지정된 기술과 능력치 자체는 플레이어가 바꾸거나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조합은, 예컨대 지정된 클래스의 범위를 벗어나는 캐릭터 육성 등과 같이, 게임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변칙적인 플레이로 이어질 수 있다(이러한 플레이 유연성은 플레이어들이 한 게임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이 되는 동시에, 플레이어 문화 내에서 한 게임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국 ‘SAW 플랫폼’이라는 사라진 명칭이 표상하는 것은 ‘관람자 중심적 방향성’이었다. 즉, 월드를 본 관람자가 스킬트리를 통해 자신이 본 월드에 대한 메타 데이터를 확인하고, 인벤토리에서 월드를 거쳐 스킬트리로 표출된 각 생산자들의 데이터를 자신이 선택-조합하여, 생산자 차원(GSR의 참여자 또는 그들의 데이터를 통해 구축된 월드)의 의도에서 벗어나 자신이 본/상호작용한 것에 대한 결과물로 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말이다.

처음 기획 당시 SAW 플랫폼은 GSR의 월드나 스킬트리와 연동되지만 독립되어 있는 개별의 웹 또는 앱으로서의 관람자 전용 플랫폼이었으나, 개발 과정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스킬트리 시스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한 기능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관람자의 관람 행위, 또는 스킬트리를 경유해 GSR 플랫폼과 상호작용하는 관람자의 ‘사용’ 행위가 다시 인벤토리로 딸려 들어가 월드의 질료로 귀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따라서 처음 스킬트리 시스템 내에서 ‘SAW’ 기능은 마우스 트래킹이나 클릭 빈도를 시각화해 관람자의 보기/상호작용 행위를 가시화함으로써 관람자가 자신의 주의 투자와 관람 행위를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기능으로 고려되었다. 동시에 SAW 기능은 월드의 데이터 소스, 즉 생산자의 생산물을 관람자가 자신의 관람 방식에 따라 최적화하여 볼 수 있도록 돕는 데이터의 기호화 및 분류, 선택 기능을 의미했다. 더불어 생산자들이 입력한 데이터의 메타적인 정보(데이터의 설명이나 참조로 삼는 자료의 하이퍼링크 등)를 확인하고 관람자의 필요에 따라 이 정보를 선택적으로 묶어 외부 기기로 추출, 저장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고려되었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의 컬렉션 기능이나 크롬의 북마크 등 웹브라우저의 목록화 기능, 핀터레스트나 비헨스 등 이미지 기반 SNS의 보드 생성 기능이 참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이 자신이 선택, 조합한 데이터들을 월드와는 다른 구현 방식으로 이미지화하고 타 관람자들과 공유하거나 서로 평가할 수 있는 웹 기반의 관람자 포럼/커뮤니티 형성까지 스킬트리 시스템의 기능으로 ‘상상’되었다.

그러나 역시 모종의 현실적인 제약(다소 복잡한 기능들을 포함한 웹/앱 개발에 따른 시간 문제, 다수의 이용자를 고려해야 하는 서버의 트래픽 문제, 서버 지속 기한의 문제 등)들로 인해 스킬트리 시스템의 ‘SAW적’ 기능들은 대부분 구현되지 못했다. 관람자가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은 ‘g-s-r.net’에 접속할 때 마주하게 되는 스킬트리 시스템의 한 부분뿐이다. 해당 웹페이지의 최하단 중앙에 위치한, 서서히 360도로 회전하는 SAW 로고(붉은색 눈 모양이다. 디자인: 신신)2는 클릭 시 페이지 최상단으로 스크롤업 해 주는 아주 간단한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미술관의 ‘제작’ 활동에 주목하는 전시 《그리드 아일랜드》(2022)와 맞물려 기획되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와 전시의제의 소주제를 발굴하는 2022 SeMA 의제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록되었습니다.


  1. (편집자 주) GSR은 《그리드 아일랜드》(2022)를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레지던시로 2021년 웹주소 g-s-r.net에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홈페이지 기능을 수렴해 운영을 시작했고 전시를 계기로 발전된 형태로 재공개되었으며 전시 폐막 이후 몇 개월 간 유지되었다. 약 1시간 가량의 GSR 실행 영상이 youtu.be/HxgSzKd-teI에 남아있다. 

  2. (편집자 주) 눈을 연상케 하는 붉은 로고는 《우리가 전시를 볼 때 말하는 것들》(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 2021)의 도록 표지와 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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