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성지순례 ― 숭배, 신체, 이미지

이나라
이나라는 한국과 프랑스에서 사회학, 미학, 영화를 공부했고 이미지 문화연구자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영화, 무빙 이미지, 재난 이미지, 인류학적 이미지에 대한 동시대 미학 이론을 연구하고, 동시대 이미지 작업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유럽영화운동』, 『알렉산드르 소쿠로프』(공저), 『하룬 파로키』(공저), 『풍경의 감각』(공저), 『어둠에서 벗어나기』(역서), 『색채 속을 걷는 사람』(역서) 등을 펴냈다. 빛, 포탄, 소나기처럼 감각되는 동시대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사랑과 경멸을 글로 토로할 때가 있다. 현재 동의대 영화 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전임연구원이다.

1. 인터넷 성지, 인터넷 성지순례

인터넷은 플랫폼, 메타버스, 무대, 전시장, 상점이면서 학교, 집, 사전, 병원이고, 스크린, 거울, 게시판, 카페, 다리, 대문, 벽이다. 법원이고 경찰서다. 그리고 교회, 성당, 절, 점집, 곧 신성과 마력을 찾는 장소다. 텔레비전을 이어받되, 능가하는 플랫폼 인터넷은 신성과 마력을 생산하고, 발견하고, 갈구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우상을 방영했던 텔레비전과 다르지 않다.

2022년 12월 31일 가수 아이유와 배우 이종석이 소속사를 통해 열애 보도를 인정했을 때 점집 몇 곳의 주소가 떠돌았다. 2017년 익명의 개인은 네이버 지식인에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썼다. 2022년 12월 열애 보도보다 14시간 앞선 시각 또 다른 개인은 이종석 영상 아래 댓글에서 아이유를 언급했다. 그는 “내 망상이겠지만”라는 단서를 달면서, 연말 시상식장에서 이종석이 언급한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란 아이유일 것이라고 썼다. “존경이라는 말에 어울리고”, “둘이 친분이 있고” 같은 짧은 문장 속에서 글쓴이는 아마도 이종석과 아이유의 공적 활동과 사적 취향, 성장을 목격하고 기억하고 편찬해 온 팬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연구자로서의 팬이 아니라, 열렬한 팬이기에 스타의 역사를 꿰뚫는 소위 ‘아카-팬(academic-fan)’일까? 아니면 사이버 탐정 디텍-팬(ditective-fan) 또는 사생(활)팬일까? 하지만 사람들은 아카-팬이나 디텍-팬이 아니라 예언자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그의 말이 실현된 예언이길 바란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들은 직감과 예감, 예언을 경멸하는 동시에 갈구한다. 그편이 더 재미있고 그편이 더 유용하다. 예언의 주소는 곧 성지의 주소가 되고, 사람들은 성지 주소를 클릭한다. “성지순례”는 “성지 글” 어드레스를 클릭하고, 사이트에 시험, 주식, 부동산 등 세속적 행운을 비는 소원을 담은 대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인터넷은 신기술과 알고리즘 행동이 실현되는 시공간일 뿐 아니라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인류학적 욕망과 소망, 숭배와 신성함의 시공간이다. 20세기 초국적 히트를 기록하며 텔레비전 시대 미니시리즈의 고전으로 남은 〈프렌즈(Friends)〉에서 등장인물은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는 데이트 상대 여성에게 “그렇다면 가구는 도대체 어디를 향할 수 있는지” 묻는다.1 텔레비전을 향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듣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향하고,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거실에 있던 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거실은 분명 신전이었다. 텔레비전은 분명 신전 테이블의 우상이었다. 이제 인터넷은 텔레비전이라는 우상을 넘어선다. 인터넷은 우상으로 제단을 차지하고 있던 텔레비전과 달리 사용자에게 성지순례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2. 나폴리의 인류학적 이미지

인터넷 사용자 대부분은 장난치듯 성지순례라는 말을 사용한다. 댓글 성지순례를 위해 재산을 탕진하는 사용자는 없을 테니까. 예언적 댓글을 쓴 사람이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 성인, 신이라고 믿는 사용자는 드물 테니까. 그런데 인터넷의 바이럴 문화, 열렬한 사랑, 순례 놀이의 수행성은 신도들이 가지고 다니던 숭배 조각물(idole), 소원을 빌며 성소에 바치던 봉헌물(Ex-voto), 순례 문화를 만들고 집착했던 유한한 인간의 인류학적 욕망의 반복이기도 하다.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이미지를 고안하는 기술과 이미지의 미적 성격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한 집합적 이미지의 인류학적 성격을 탐구한 연구자다. 벨팅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적 탐구는 ‘인간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벨팅은 죽음의 의례가 인간 이미지 생산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2

1925년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를 여행했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인류학적 욕망이 발현되는 숭배 문화를 목격하며 “지구상에서 가톨릭이 사라질 때 마지막 발판이 될 곳은 로마가 아니라 나폴리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가 나폴리에서 목격한 것은 엄숙한 가톨릭교회와 영성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교회의 무릎” 아래에서, “가톨릭을 통해 정당화되는” “풍부한 야만성”과 “과잉”이었다.3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된 폼페이의 지척에 있는 이 항구도시, 화산이 삶을 집어삼키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3세기에 순교한 수호성인 산 젠나로(San Gennaro, 성 야누아리우스)의 단단히 굳은 핏덩어리를 유리병에 담아 대성당 예배당에 보존한다. 이들은 일 년에 세 번 ‘기적적으로’ 액화하는 핏덩어리를 꺼내어 축일 행렬을 하면서 화산폭발에서 나폴리를 보호하는 성인을 기린다. 나폴리 사람들은 가톨릭 순교자축일, 전설을 빌미로 삼아 모든 과잉, 곧 인류학적 욕망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가 〈이탈리아 여행〉(1953)에서 잘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도시의 교회, 무덤, 거리, 제단에는 죽음을 섬기는 문화가 있다. 너무나 유명한 숭배의 대상이자 구경거리인 산 젠나로 성인의 응고된 피와 폼페이 유적, 유골이 빽빽이 들어찬 여러 개의 지하묘지(Catacombe)를 제외하고도 그렇다. 가령 18세기와 19세기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포함하는 양시칠리아 왕국에 존재했던 장례 풍습은 인간, 죽음, 이미지가 맺고 있는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 중 하나다. 이는 이중 매장을 통한 미라 제작 풍습이다.

불과 수백 년 전에도 양시칠리아 왕국에서는 세상을 떠난 성직자나 유력 시민을 매장하는 대신 납골당 벽 음각 틈새 속에 세워 놓거나 바닥에 판 얕은 구멍에 수십 일 이상 눕혀 놓곤 했다. 이 틈새는 시신을 건조하는 좌식 또는 수평 콜라토이(colatoi), 곧 여과 장치의 역할을 하는 틈새다. 물리적 죽음 직후 행하는 임시 매장으로 미라를 만들고 이후 영구 매장하게 된다. 나폴리 교회에서는 특히 가톨릭교회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20세기까지 초까지 “테레산타(성스러운 흙, Terresanta)”라는 이름의 방식이 성행했다.4 테레산타는 지하예배당 바닥에 망자의 시신을 눕히고 소규모의 흙을 다지지 않고 덮어두는 임시 매장 방식이다. 콜라토이, 테레산타 같은 이중 매장의 첫 번째 매장 단계에서 망자의 가족과 지인은 살, 피, 장기가 망자의 몸을 모두 빠져나가길 기다린다. 건조 과정을 거쳐 해골 상태가 된 시신은 두 번째 장례의 대상이 된다. 이름과 권세가 있는 자들의 건조 유골, 곧 미라 상태의 유골은 치장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이중 매장으로 만든 미라 상태의 유골 상당수가 나폴리에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다.5 양시칠리아 왕국의 이중 매장 풍습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동시대의 장례 풍습과 구분된다. 한스 벨팅 같은 연구자가 주장하듯 자연적 죽음은 장례 문화를 통해 이미지를 획득하면서 상징적 죽음이 된다. 반면 미라 제작의 성격을 갖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이중 매장 풍습은 상징적 죽음으로 이행하는 대신 시신 보존이라는 자연적 죽음의 물성에 집착하는 풍습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중 매장은 동시대 장례 문화와 죽음 표상에서 배제된 죽음의 또 다른 표상을 만들어낸다. 동시대의 장례 문화는 임종의 순간 이후 시신을 관이나 유골함 속에 시신을 안치하면서 시신을 산자의 시선에서 비가시화하고, 분리한다. 반면 양시칠리아 왕국의 이중 매장 풍습에서 임종의 순간은 특권화된 순간이 아니다. 현대의 좀비물에서 인간은 다른 좀비의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좀비로 변한다. 좀비는 살아있을 때의 영혼을 소실한 시신 상태이지만 기계적 작동이 가능한 몸을 가진 존재다. 좀비는 쉽게 죽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보편적 상상의 산물이었지만 현대의 좀비물은 좀비 공격 이후 가속화된 사체화 과정을 화려하게 시각화하는 것에 주력하면서 죽음을 순간의 사건으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양시칠리아 왕국에서는 이중 매장을 통해 죽음을 지속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하고, 산 자들은 이 지속의 시간 속에서 망자를 공동체에서 떠나보냈다. 이러한 면모에 주목한다면 이중 매장 의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하고 사회를 재구성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6

나폴리의 테레산타 매장이 이름 있는 자들의 이중 매장 풍습이었다면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유골은 수 세기 동안 전염병, 전쟁, 가난 등의 이유로 제대로 매장되지 못하고 폰타넬레 묘지에 관이나 납골 상자 없이 던져지다시피 쌓였다. 해골이 가득 쌓인 이 묘지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나폴리를 차례차례 방문하는 영화 〈이탈리아 여행〉에도 등장한다. 이 묘지는 영화에서 국립 고고학박물관,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착지이자 예언자와 기독교인이 거주하던 쿠마, 활화산의 활동을 목격할 수 있는 들판, 폼페이 유적지, 성축일 행렬과 함께 현재로 되돌아오는 화석화된 나폴리의 역사적 시간을 대면할 수 있는 장소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이스(Joyce) 부인을 안내하는 나폴리 여인의 오빠는 바다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찾지 못한 오빠의 시신을 대신하여 묘지에 있는 익명의 유골을 보살핀다. 영화 속 에피소드는 나폴리의 실제 풍습을 반영한다. 실제로 18세기 이후 20세기까지 나폴리 하층 민중 여성 사이에는 폰타넬레 묘지 해골 입양의 풍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입양한 해골은 영화 속 사례처럼 찾을 수 없게 된 가족의 시신을 대신하기도 했지만, 반드시 상징적 대체물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유골 입양 문화는 연옥 영혼 숭배 문화로 이해되었다.7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묘지에 던져진 이들의 영혼은 불길에 쌓인 채 연옥을 헤맨다고 가정되었고, 해골을 입양한 이들은 기도로 이들을 위로했다. 위로는 기도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청소와 해골 치장, 쓰다듬음, 공물 봉헌 등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민속학자들은 해골과 해골을 입양한 사람 사이에 일종의 협약이 맺어졌음을 강조한다. 유골의 영혼은 자신을 보살피는 입양 여성을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3. 인간, 이미지의 장소

한스 벨팅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이미지와 외적 이미지의 생산자이지만, 이미지를 미적 방편에 따라 고안하고, 통제하는 이미지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이미지의 장소(le lieu des images)”다.8 그렇다면 인간의 ‘몸’이 바로 인간 이미지의 장소라는 뜻일까? 인간 이미지의 장소로서의 몸은 해부학적 몸, 에너지를 섭취하고, 힘을 쓰는 몸, 물리적 몸이 아니라 심적 차원을 갖춘 유기체로서의 몸일까? 눈앞에 지나가는 수많은 이미지, 꿈의 세계를 채우는 초현실적 이미지,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미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 점점 더 생략되는 동시에 선명하게 반복되는 이미지, 헛된 이미지, 인간은 몸을 통해 꿈 이미지와 같은 내적 이미지를 생산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일단의 이미지는 몸의 작용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하지만 벨팅은 몸으로 이미지의 생산을 모두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 인간 이미지, 몸과 구별되면서 이미지와 몸을 연결하는 매개(medium)의 문제를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벨팅이 이야기하는 매개는 기술 매체, 매스 미디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벨팅은 가령 매개의 한 탁월한 인류학적 사례로 거울을 언급한다. 거울은 인간의 몸과 인간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매개다. 또는 인간이 그림자를 비추는 벽 역시 매개의 사례다.9 거울, 벽에 자신을 비추던 인간은 캔버스 위에 자신을 그리고, 스크린에 자신을 비추게 될 것이다. 벨팅은 이미지, 매개, 신체를 구별하면서 인류학적 형식으로서의 이미지의 성격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인간 신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내부 이미지와 인간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 그림, 영상 등의 물리적 생산물을 포함하는 외부 이미지 모두 인류학적 실천의 결과이자 인류학적 실천을 끌어내는 이미지들이다.

종교 의식, 죽음 의례에서 비롯된 이미지 역사를 조명하는 벨팅은 얼굴 이미지 제작의 문화사 역시 망자 숭배의 역사 속에서 살핀다.10 얼굴 이미지의 문화사는 마스크의 문화사와 떼어낼 수 없는데 선사시대에도 이미 망자의 얼굴을 따라 마스크를 제작했다. 이때 마스크는 얼굴을 가리는 위장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망자의 소실될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망자의 마스크가 아니더라도 마스크는 얼굴을 감추는 용도가 아니라 감정의 정수로서 얼굴을 표현하는 “매개”가 된다. 가령 그리스 비극 배우는 얼굴에 쓴 마스크를 통해 히스테리를 표현할 수 있었다. 마스크는 말하자면 이미지와 신체를 연결하는 전형적 매개이고, 마스크의 표현성은 예술 형식에 빗댈 수 있는 매개의 표현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폴리 폰타넬레에서 입양되어 꾸며진 해골들 역시 신체의 페티시-물신인 것만이 아니라 하나의 매개가 아닐까? 망자의 몸과 망자의 이미지를 연결할 뿐 아니라 망자의 몸과 망자를 입양한 사람의 심정을 연결하는 매개.

4. 죽음의 자국, 끝의 이미지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혼을 결정한 주인공 조이스 부부의 폼페이 유적지 방문 시퀀스는 죽음과 망자, 망자의 흔적을 대하는 나폴리인의 태도와 영국인 주인공 부부의 태도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00년 전 폼페이에 흘러내린 용암 사망자의 시신은 시간과 함께 분해되는데 그 자리에는 윤곽을 가진 공간, 틈이 남는다. 18세기 이후 발굴이 시작된 폼페이에서 발굴자들은 그 틈에 석고를 부어 망자의 형상을 드러냈다. 조이스 부부가 목격한 석고 조형은 죽음 자체의 “인덱스” 형상이다.11 나폴리인은 흥분한 어조로 (태어난 아이를 보러 가자고 말하듯!) 오늘 형상을 떠내는 작업이 있으니 꼭 보러 가야 한다며 조이스 부부를 폼페이로 이끌었지만, 조이스 부인은 형상을 대면하자 인덱스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죽음과 죽음이 폭로하는 인간의 원형적 진실, 언캐니(uncanny, Unheimliche, 낯선 두려움)함에 소스라친다.

벤야민이라면 망자의 자국이 담긴 석고상에 거의 페티시-물신적12흥분을 내보이는 나폴리인이나 죽음의 형상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조이스 부인과 달랐을 것이다. 〈이야기꾼〉에서 실존의 종국의 순간에는 한 사람이 살았던 모든 삶, 곧 이야기를 구성하는 질료들이 소통 가능한 형식을 띠게 된다고 언급했던 벤야민이라면 말이다. 죽어가는 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산 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자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기원」에서는 역사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 의해 분해된 자신의 죽은 얼굴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벤야민의 사유를 원천으로 삼는 미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종교 의례 밖의 아우라, 세속화된 아우라에 관해 적은 글에서 “해골은 표현의 전적인 부재(눈구멍의 암흑)와 가장 야만적 표현(찌푸린 치열)을 하나로 만든다”는 벤야민의 글귀를 인용한다.13 나폴리 사람들의 종교성과 나폴리의 야만적 문화를 하나로 보았던 벤야민은 해골 눈구멍의 암흑과 해골에 남은 치열의 들끓는 표현성을 하나로 본다. 우리 앞에 누구인가의 유골이 있다. 이 유골은 기복의 오브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동시에 이 유골은 과거의 시간과 죽음 자체의 잔해로도 존재한다. 죽어가는 자의 권위는 죽음을 기복의 오브제,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결핍을 감추는” 페티시로 바꾸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게 될 것의 잔해로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해골은 눈과 입, 암흑과 소리, 빈 구멍과 가득 찬 들끓음 속에서 남아있는 죽음이다. 발굴되는 “상기의 물질”14이다. 이때 해골은 죽음의 오브제, 죽음의 페티시, 죽음의 상품이 아니라 죽음의 자국, 죽음의 ‘이미지’가 된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언캐니, 낯선 두려움의 이미지다.

디디 위베르만은 한스 벨팅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의 인류학적 차원을 강조하지만 디디 위베르만이 관심을 가지는 이미지란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미지, “낯선 두려움”으로서의 이미지다. 그에게 이미지는 폼페이 석고 조형을 만들어 낸, 썩고, 부스러지고, 소실되어 더는 존재하지 않는 타자의 몸이 남긴 ‘텅 빈 자국’, 인간의 크기로 쓰러지는 구멍과도 같은 미니멀리즘 조각과 같은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과정은 내면의 이미지가 죽음의 의례 혹은 인류학적 매개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 죽어있는 존재, 묘석, 해골, 조각의 텅 빈 구멍 속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현상학적 이미지 경험의 인류학적 보편성이다. 따라서 디디 위베르만에게 이미지의 근원적 기능이란 반복 강박 속에서 “우리가 겪는 서로 다른 죽음을 생각하게”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다시 말하자면 죽음, 곧 “자기 자신의 끝의 문턱”에서 계속 성찰하고, 응시하고, 쓰도록 하는 것, “끝과 함께 시작”하는 장소, “끝과 함께 유희하는” 행위이다.15

5. 테크놀로지 언캐니

로라 멀비는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낯선 두려움, 언캐니를 과학적 합리성 속에서 느끼는 방향 상실로 설명하면서, “테크놀로지 언캐니”의 성격을 강조했었다.16 프로이트는 생명을 부여받은 유령의 모습으로 산 자들의 세계로 돌아오는 죽은 자들에게 느끼는 공포와 매력을 언캐니로 설명한다. 로라 멀비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주로 환영을 생산하는 20세기의 새로운 시각 기술과 문화 속에서 겪는 언캐니의 심리에 주목한 옌치(Ernst Jentsch)와 달리 새롭고 낯선 것이 ‘오래된 것’을 불러일으켜 느끼게 되는 기이한 두려움의 감정에 주목하고, 이를 문화적 원형으로서의 언캐니로 파악한다. 19세기 파리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삼성역 코엑스 앞 XR 전광판에 열광하듯 시체안치소 시신과 밀랍 박물관 인형에 열광했다. 시신과 인형은 얼마나 감쪽같이 살아있는 사람을 흉내 내는지! 하지만 프로이트가 흥미를 느꼈던 것은 생명을 가진 인간을 감쪽같이 흉내 낸 무생물 모형이 촉발하는 ‘지각적 불확실성’이 아니었다. 언캐니의 심리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17 반면, 살아있는 몸의 형상을 한 인형들이 죽음과 관련한 믿음 자체,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사이, 유기체와 비유기체 사이의 구분 자체를 위협한다는 사실은 프로이트의 흥미를 끌었다. 죽은 자가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귀환할 때, 기독교 등 기존 종교의 가르침이나 이성적 가르침에 따라 “과거의 무엇을 확실히 극복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 〈이탈리아 여행〉의 조이스 부부와 같은 이들이 다시 마주하는 원시적 공포, 미신과 같은 “오래된 것”의 문제가 프로이트의 흥미를 끌었다.

로라 멀비는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이 어떻게 산 자의 모습으로 귀환하는 죽은 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지 묘사했다. 로라 멀비는 〈이탈리아 여행〉을 나폴리 민간 미신 문화의 기이함을 다루는 영화로 보는 대신 영화가 나폴리의 현재를 지배하는 생명 없는 과거의 유령을 조명하는 방식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뒤섞고, 환영적 이미지로 살아있는 것을 보존하는 영화의 역량을 보았다.18 〈이탈리아 여행〉은 영화라는 환영 기술의 등장과 언캐니함의 동시대성, 곧 “테크놀로지 언캐니”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영화다.

6. 기술복제 시대의 동정녀 마리아

19세기 서유럽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 문화가 폭발한다. 신도들에게 기적처럼 출현하는 성모 마리아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다. 성모 마리아의 인류학적 이미지는 기적의 장소이자 통제의 장소로 몸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역설적 육체 관념, 자본주의 기술문화, 과학주의와 신비주의의 경합 속에서 만들어졌다. 오늘의 인터넷 문화에서도 목격되듯, 성지순례, 예언, 기복의 문화는 기술과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발전 속에서 폭발적으로 융성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그리고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나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같은 이들이 강조하듯 이교도의 우상 숭배, 신비주의 실천은 기독교 문화 속에 늘 잔존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자.

성모 마리아 출현은 한편으로는 19세기의 종교적 열광의 문화와 관련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 문화와 관련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모 마리아의 신체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해석과 관련된다. 먼저 종교적 열광의 문화. 19세기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 곧 합리성, 실증성의 시대, 찰나성과 상품, 육체의 문화가 새로이 꽃폈던 시대이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성당에서 열린 신부의 강의에 사람들이 들어차고, 책에 영향을 받은 소녀들로 인해 수녀 지원자가 폭증했다.19 기적, 신비, 초자연적인 힘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가 넘쳐나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였으며, 숭배가 멈추지 않았다. 가령 예수를 고문했던 도구에 대한 대중적 숭배가 있었다. 천사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고, 천사학이 발전했으며, 천사의 모습을 인용하는 세속 기관의 표지석이 넘쳤다. 둘째, 서유럽에서는 이미 16세기 무렵 신체와 죽음에 대한 열광적 호기심이 일었었다. 해부에 몰두했던 부르주아는 가정 안에 인체 해부실을 만들 정도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세기 파리 사람은 여가를 위해 시체안치소를 방문하였고, 길거리 처형은 언제나 사람을 불러 모았다. 셋째, 1854년 로마 교황청은 무염수태 사상을 공인하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의 신체를 표상하는 태도의 변화를 이끈다. 성모 마리아는 세계의 범속한 인간과 달리 원죄를 지닌 인간의 정상적 잉태를 거치지 않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무염수태 사상은 수 세기 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무염수태 공인과 함께 소녀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결합한 온화한 마리아의 이미지가 예수 수태를 고지받은 소녀 마리아 서사를 담은 그림이나 죽은 예수를 안고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적 성모상보다 더 크게 유행하게 된다.20

이 시기 동정녀-성모 마리아는 유럽 곳곳에서 숱하게 출현한다. 출현지에는 순례객이 넘쳐났다. 19세기 수백 건에 달한 출현 보고 중 교황청은 단지 세 건을 성모 마리아 출현으로 공인한다. 세 건의 사례는 전술한 사회문화 속에서 생산된 성모의 이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성모 마리아는 1846년 프랑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 라 살레트에서 두 아이 앞에 나타나 불행을 예고했고, 1858년 루르드의 동굴 앞에서 14살 양치기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 앞에 나타났으며, 1870년 독일 퐁맹에서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고 공인되었다. 이 중 12세 소녀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가 출현했다고 기록된 루르드는 치유의 기적을 낳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성지순례 열풍을 이끌었다. 교회권력과 세속권력의 대립 속에서 상류층 신도들은 루르드에서 직접 장애인을 맞이하고, 하층민이 담당하던 허드렛일을 거들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는 전염성 강한 상처를 지닌 환자들이 기적의 샘에 몸을 담그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사망자가 속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21

파리 생 슐피스 성당 인근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싸구려 미술 “슐피스 스타일(style sulpicien)”로 야유받던 다수의 종교미술품 제작 업체 운영자 중 한 사람인 이냐즈 라플(Ignaz Raffl)은 루르드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묘사, 실제로는 동정녀-성모 마리아 성상에 대한 교회의 관념에 따라 조율된 묘사에 바탕을 둔 루르드 성모 조각상, 오늘날에도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흰 원피스, 푸른 허리띠, 머리와 어깨를 덮은 흰 망사 베일 차림 성모상의 프로토타입이 되는 성모 조각상을 대량 생산했다. 베르나데트 수비루를 보았던 이들은 그녀의 몸이 마치 성모의 몸을 거울처럼 비추는 듯했다고 증언한다.22 성모 마리아의 인류학적 이미지는 동정녀 소녀라는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성상 이념에 부합했던 베르나데트 수비루라는 소녀의 몸을 매개로, 당대의 기술 재생산 시스템과 종교적 열광의 결합 속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말하자면, 이미지의 장소는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였다. 이미지는 때로 쓰러지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신체의 자리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때로 페티시로 축소된 이미지는 응시를 삭제하며 신체의 자리를 차지한다. 순례 맛집이 된다.


  1. Bruno Péquignot, Hans Belting, Pour une anthropologie des images (Grenoble: Sociologie del’Art, 2006), 203-208. 

  2. Hans Belting, Pour une anthropologie des images

  3. Walter Benjamin, Reflections: Essays, Aphorisms, Autobiographical Writings, trans. Edmund F.N. Jephcott (New York: Schocken, 1978), 163. 

  4. Antonio Fornaciari, Francesco Pezzini, Valentina Giuffra, “Processi di tanatometamorfosi: pratiche di scolatura dei corpi e mummificazione nel Regno delle Due Sicilie” in APM-Archeologia Postmedievale: società, ambiente, produzione, 11, 2007, ed. Marco Milanese (Firenze: All’insegna del giglio, 2008). 

  5. Antonio Fornaciari, Francesco Pezzini, Valentina Giuffra, “Processi di tanatometamorfosi: pratiche di scolatura dei corpi e mummificazione nel Regno delle Due Sicilie”. 

  6. Antonio Fornaciari, Francesco Pezzini, Valentina Giuffra, “Processi di tanatometamorfosi: pratiche di scolatura dei corpi e mummificazione nel Regno delle Due Sicilie”. 

  7. Florian Villain-Carapella, Prier pour les âmes du purgatoire à Naples. La parole donnée, au-delà du donnant-donnant (Caen: Revue du MAUSS, 2017). 

  8. Hans Belting, Pour une anthropologie des images (Paris: Gallimard, 2004), 18. 

  9. Hans Belting, Pour une anthropologie des images, 35-39. 

  10. Hans Belting, Faces : une histoire du visage (Paris: Gallimard, 2017). 

  11.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이기형, 이찬욱 옮김(서울: 현실문화연구, 2007), 138. 

  12. 포루투칼어 feitiço(인공물, 마력)에서 기원한 낱말 페티시는 부재의 대체물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사용되기 전에 숭배 대상 인공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숭배 대상의 조형물이라는 의미에서 페티시는 우상의 라틴어 어원 아이돌룸, 프랑스어 아이돌(신성함을 지녔다고 가정되어 숭배 대상이 되는 조형물)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13. G. Didi-Huberman, Ce que nous voyons, ce qui nous regarde (Paris: Editions de Minuit, 1992), 113. 

  14. G. Didi-Huberman, Être crâne. Lieu, contact, pensée, sculpture (Paris: Editions de Minuit, 2000), 50. 

  15. G. Didi-Huberman, Ce que nous voyons, ce qui nous regarde, 196-198. 

  16.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54-55. 

  17.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49. 

  18. 로라 멀비, 『1초에 24번의 죽음』, 141. 

  19. 알랭 코르뱅, 「종교의 영향력」, 일랭 코르뱅, 조르주 바가렐로, 앙리 제르네 외, 『몸의 역사 2-프랑스 대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조재룡, 정숙현 옮김(서울: 길, 2007), 54-55. 

  20. 알랭 코르뱅, 「종교의 영향력」, 『몸의 역사 2』, 58-59. 

  21. 알랭 코르뱅, 「종교의 영향력」, 『몸의 역사 2』, 88-90. 

  22. 알랭 코르뱅, 「종교의 영향력」, 『몸의 역사 2』,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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