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디폴트 시대의 미술작품

이기원
이기원은 미술/사진비평가이다. 학부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했다. 동시대의 사진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것이 미술과 관계맺는 양상에 관심이 있다. 사진잡지 『VOSTOK』의 편집동인이자 미술 글쓰기 모임 ‘와우산 타이핑 클럽’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비평문집 『이미지 조각 모음』(물질과 비물질, 2016)을 출간했고,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 ‘더 스크랩’(2016)의 공동기획팀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연필을 쥐고 종이에 손으로 쓸 수도 있고, 컴퓨터 자판과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해 타이핑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 자판을 이용하거나, 전자 펜을 이용해 액정 화면 위에 손 글씨를 쓸 수도 있다. 혹은 받아쓰기 기능을 이용해 음성 인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결과물은 모두 동일한 ‘글’로 인식된다. 이는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종이에 인쇄된 서류를 읽는 것, 책의 형태로 제본된 것, 스크린에 떠 있는 글자를 읽는 것 역시 내용만 같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 영화나 음악에 적용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TV,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 사이에 ‘관람 경험’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화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음악의 경우에도 어떤 곡을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들은 것과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CD나 LP로 듣는 것, 그리고 스마트폰의 음원 스트리밍 앱을 통해 이어폰으로 들은 것을 결코 같은 곡이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연극이나 뮤지컬, 무용 같은 공연예술 역시 적어도 같은 극본 및 내용이라면 출연진이 다르거나 공연이 열리는 장소와 시기가 다르더라도 대게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영상으로 기록된 공연을 ‘공연 실황’이라 부르는 것처럼, 직접 관람한 것과 영상으로 기록된 것을 보는 것 사이의 격차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이를 미술 작품에 대입하면, 다른 장르들처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을 전시장에서 직접 본 것과, 도판 이미지만 본 것, 전시 전경 이미지로 본 것 사이에는 앞서 언급한 사례에 비해 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미술 작품들이 전통적으로 하나의 물리적인 ‘사물’로서 물질적 형태에 기반하고, 이를 감상하는 주된 방식인 ‘전시’ 역시 물리적인 공간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라는 형식으로 한정되는 음악이나 ‘영상’이라는 (비교적) 단일한 형식을 갖는 영화, 문자를 형식으로 삼는 문학은 이를 재현 및 복제하는 매체를 통해 완전히 복제될 수 있는 것으로 통용된다.

물론 이들에게도 ‘마스터 음원’, ‘마스터 필름’, ‘원고 원본’과 같은 원본으로서의 작품은 존재하지만, 작품을 감상한다는 차원에서는 이것이 유통용으로 복제된 것에 비해 특별히 우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반면 미술 작품은 자신이 재현 및 복제 매체를 통해 (다른 장르만큼) 완전히 재현될 수 없다는 점이 한계이자 특수성으로 작용한다. 유통, 소비의 차원에서도 음악, 영화, 문학 등은 스스로 감상자에게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장돼 왔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다. 미술 작품들은 (마치 관광 명소처럼) 어딘가에 놓여 관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또한 미술 작품의 감상은 영화나 음악, 책처럼 관객의 ‘시간’을 점유해 그 시작과 끝이 명확히 규정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도 작용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미술은 원본에 해당하는 물리적인 작품 자체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이를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1 작품 및 전시를 감상하는 경험에는 전시장의 형태나 분위기, 전시의 형식(소장품전인지, 기획전인지, 개인전인지), 조명의 상태, 함께 놓인 작품 사이의 조합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사실 어쩌면 미술은 음악이나 영화, 문학이 아니라 오히려 (기능과 용도, 안정성이 필수 조건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건축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미술의 재현 및 복제 불가능성은 ‘(유통과 소비를 위해) 극복돼야 할 한계’이기보다는 미술 자체의 특이성으로 승인되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의 차이는 예술의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더 큰 격차를 갖게 된다.

팬데믹이 본격화된 지난해 봄 이후, ‘생활 필수시설’과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규정된 미술관, 박물관을 비롯한 국공립 문화예술 시설은 가장 먼저 문을 닫게 됐다. 이에 맞춰 상당수 사립 전시 공간들도 함께 문을 닫았다. 사실 자체 기획으로 전시를 꾸리는 기관 및 공간들은 휴관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공공 기금을 받아 전시장을 대관해 전시를 열어야 하거나 준비 중인 이들에게 전시공간들의 반 강제적인 휴관은 타격의 범위와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개인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전시와 작품을 준비하던 상당수 기획자, 작가들은 갑작스럽게 비대면 환경에서도 관람이 가능한 전시 또는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리고 이는 그저 관객이 현저히 줄거나 전시 자체가 열리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즉각적으로 휴관할 수밖에 없었던 국공립 미술관들은 오프라인 공간에 꾸린 전시를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며 ‘비대면 전시’라 포장하거나, VR과 유사한 방식으로 360도 카메라를 이용해 전시 공간을 촬영해 공개하는 등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정확하게는 시도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방식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기획 측면에서도, 기술적인 면에서도 전시장 셧다운 이후의 ‘비대면 전시’를 염두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장 뭐라도 내보이기 위해’ 급조된 형태에 가까웠다. 이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오프라인 전시의 단편적인 대체물로써 도판 이미지의 확장된 버전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했다. 아무리 공들여 전시장에서 영상과 사진을 찍어 두더라도, 결국 관객은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 모니터를 통해 이를 볼 수밖에 없기에 이것이 전시장을 직접 둘러보는 경험을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보수적인 공공 기관부터 재택 근무와 화상 회의가 도입되며 사회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온라인 환경이 더 이상 ‘가상 또는 가짜의 무엇’이라 바라보지 않게 됐다는 점은 어떤 면에서는 유의미했지만, 미술 역시 비대면으로 감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가설까지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치열한 관람 예약 경쟁에서도 느낄 수 있듯, 오히려 관객들은 어설픈 ‘비대면 콘텐츠’를 통해 그 한계를 체감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작품과 대면하는 경험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비대면 방식으로는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술관 셧다운이라는 전제하에서 만들어진 전시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결국 비대면이라는 조건에 맞춰 기존의 작품 및 전시들을 변환시키기에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또 역시 같은 이유로) 미술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기존의 작품 및 전시를 ‘비대면’이라는 필터로 변환시키는 것보다는 변경된 조건에 최적화된 작품 및 전시를 선보이는 쪽으로 이동했다.

전시 공간으로서의 웹

오프라인 작품 및 전시가 ‘누구든 전시장에 방문해 작품과 전시를 볼 수 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온라인 작품 및 전시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온라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작품을 보여주는 쪽과 작품을 감상하려는 쪽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웹(World Wide Web)에 접속할 수 있고, 이를 실행할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가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상태가 ‘기본값’인 조건을 ‘온라인 디폴트’ 지칭한다. 이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용자가 일정 수준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갖춘 상태까지 포함한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다룰 ‘온라인 디폴트’ 작품들은 비단 팬데믹 이후에 등장한 것 혹은 팬데믹이 만들어 낸 현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물론 팬데믹이 이러한 흐름을 (반 강제적으로) 가속시킨 것은 맞지만, ‘팬데믹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온라인 디폴트’ 작품들과 과거의 ‘웹 아트’ 작품과의 구분이다. 웹 아트 작품들이 전시장에 작품이 내장된 컴퓨터를 옮겨오는 형태로 전시되거나, 특정한 운영체제나 웹 언어를 통해서만 구동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웹 아트는 하나의 매체로서 컴퓨터와 웹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하나의 계보로 엮어 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작동시키기 위해 전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기’가 그 자체로 매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온라인 디폴트’ 작품에게 온라인은 전기처럼 존재하는 전제 조건일 뿐 ‘온라인’ 자체에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또한 ‘온라인 디폴트’는 ‘디지털 디폴트’와도 다르다. 작품이 철저히 물질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이는 ‘온라인 디폴트’에 기반한 방식으로 발표되고 유통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온라인에서 열리는 전시로 한정되지 않으며, 온라인에 기반하더라도 이것이 오프라인 공간의 전시장이나 작품과 형식이나 개념적으로 연동되도록 시도한다는 점이 ‘온라인 디폴트’의 핵심이다.

〈에란겔: 다크 투어〉(2020.03.20.-21. 14:00-15:00) 온라인 스트리밍화면(2020.03.20. 드론뷰 샷) 갈무리. ©가상정거장

‘온라인 디폴트’ 작품으로 먼저 살펴볼 사례들은 온라인 환경 안에서만 가능한 활동이나 이에 특화된 형식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다. 2021년 3월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열린 전시 《가상 정거장》(예술감독: 김성희)에서는 오프라인 전시를 비롯해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된 공연, 공유회, 스크리닝과 함께 ‘공공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으로만 참석이 가능한 〈에란겔: 다크 투어〉(기획: 오영진)가 진행됐다. 이는 ‘배틀로얄’2형식의 온라인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Player Unknown’s Battlegrounds)’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공간 ‘에란겔’에 모인 참가자들이 이 게임에 프로그래밍된 규칙(최대 100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공격해 최후의 1인으로 남아 승리하는 것)을 무시하고, 조교와 리드 퍼포머의 안내에 따라 에란겔 곳곳을 평화롭게 둘러보는 일종의 온라인 여행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참가자와 퍼포머들은 자기장3이 좁혀 오는 최종 집결지에 모여 춤을 추며 공멸하는 것으로 이 투어(또는 공연)는 마무리됐다. 물론 이렇게 게임 속 공간에서 공연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시도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에란겔: 다크 투어〉는 온라인 환경 안에서만 가능한 퍼포먼스를 통해 게임 속 가상의 공간에 지나지 않던 ‘에란겔’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정경담이 지적한 것4처럼 ‘다크 투어리즘’의 맥락에서 평소에는 아무런 감흥 없이 받아들이던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의 죽음 역시 다르게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Girls in Quarantine》(2020.12.31.-2021.1.10.) 웹사이트 갈무리.

《Girls in Quarantine》(기획: 유지원, 웹사이트, 2021)은 팬데믹 이후 등장한 온라인 전시들 중 ‘오프라인 전시의 대체물’이 아닌 사례로 주목할 만한 전시다. 이는 크게 ‘스크리닝’과 ‘프로젝트’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스크리닝’은 전시의 주제5에 맞춰 선택된 작가 5인(권세정, 백수현, 한지원, 장서영, 최보련)을 영상 작품을 웹사이트를 통해 스트리밍하고, ‘프로젝트’ 파트에 참여하는 작가 6인(권세정, 박보마, 안초롱, 양윤화, 이주연, 한지형)에게는 제시된 키워드 ‘격리(isolation)’와 ‘친밀함(intimacy)’을 이어받을 단어와 함께 《Girls in Quarantine》 웹페이지에 게시할 신작을 의뢰했다. 이를 통해 신작을 의뢰받은 여섯 작가들은 기획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거나, 오프라인에서 열렸던 자신의 개인전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고, 기존에 선보였던 퍼포먼스의 연장선 상에서 웹페이지에서 작업을 확장시키는 등 정교하게 디자인된 《Girls in Quarantine》 웹사이트를 활용해 웹 환경에 특화된 작품을 선보였다. 각각의 웹페이지는 작가의 의도에 맞게 최적화된 화면 사이즈 및 장치를 상정하고 있어, 어떤 웹페이지는 스마트폰의 세로 화면으로, 또 어떤 웹페이지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의 가로 화면으로 보는 것이 효과적이도록 설계돼 있고, 링크를 통해 웹사이트 바깥으로 연결되거나, 작가가 작성한 문서를 보여주기도 하고, 특정한 사운드 및 음악을 재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각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기존에 선보였던 작품 및 전시에 기반하지만 결코 그것의 ‘온라인 대체물’은 아닌, 고유한 작업물로 남는다. 이어서 살펴볼 《수장고》(기획: 정휘윤, 웹사이트, 2020)은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온라인에 특화된 전시였다. 이는 참여 작가(김한나라, 돈선필, 박미정, 이동훈, 이수경, 이유성, 임지영, 정유진, 조이솝, 최하늘)들의 작품을 3D 스캔한 데이터를 웹사이트에 업로드해 관객들은 웹사이트에 내장된 3D 뷰어를 통해 업로드된 작품을 확대 및 축소해 살펴보거나 이리저리 돌려 볼 수 있었다. 또한 관객이 작품 데이터를 다운로드해 자유롭게 공유 및 변형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수장고》에 업로드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관객이 작품 데이터를 다운로드해 재구성하며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온라인 고유의 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지만, 온라인으로 선보이기에 한계가 많은 조각 작품의 보여주기 방식을 3D 스캐닝을 통해 더욱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있다.

《수장고》(2020.9.17.-10.17.) 웹사이트 갈무리.

(가상으로 여겨졌던) 현실과 현실을 엮어 내기

이처럼 ‘온라인 디폴트’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들은 웹이라는 환경을 적극적이고 또 충실하게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온라인 환경에 기반해 오프라인에서 작품 및 전시를 선보이거나 또는 두 세계를 연동시키는 시도도 존재한다. 송민정은 온라인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특정한 분위기의 티저 영상, 홍보물 등의 어법을 차용해 이를 물리적인 전시 공간에서 영상 작품으로 구현한다. 송민정은 ‘시리어스 헝거(Serious Hunger)’라는 가상의 디저트 브랜드를 활용해 이를 자신의 작품과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객 각자의 손에 쥐여 있는 스마트폰은 작품을 관객과 마주하게 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는 그저 스마트폰의 스케일에 맞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SNS상의 마케팅, 브랜딩 문법을 차용해 ‘시리어스 헝거’라는 브랜드의 분위기, 콘셉트를 전달하며 이를 송민정의 작업을 구성하는 기믹(gimmick)으로 작동한다.

《COLD MOOD (1000% soft point)》(취미가, 2018.10.10.-10.31.) 전시전경. (사진: 홍철기)
송민정, 〈Caroline,Drift Train〉(2018), 단채널영상,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다중매체, 19’20. (사진: 안초롱)

2018년에 열린 송민정의 개인전 《COLD MOOD (1000% soft point)》(취미가, 2018)에서 관객은 음료를 판매하는 세련된 분위기의 쇼룸에 앉아 기다리다가 한 명씩 전해 받은 태블릿 PC로 영상을 보고, 영상의 지시에 따라 안쪽 방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전시를 관람한다. 이는 작가가 꾸린 특정한 분위기의 공간과 태블릿 PC 속 영상이 서로 연동되는 방식으로 단순히 영상 한 편을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쇼룸으로 상정된 공간을 둘러보는 경험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방식은 같은 해 연말 《퍼폼 2018》(일민미술관, 2018)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Caroline, Drift train〉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작가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일민미술관 1층 공간을 기차역의 대합실로 상정하고, 폭설로 인해 열차가 연착 및 취소되는 상황에 맞춰 관객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링크를 발송해 각자의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을 관람하게 했다. 영상의 중간중간 삽입된 스마트폰 화면 기록 영상은 기차역에서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할 것 같은 행동들(게임을 하거나, 재난 문자를 읽고, 날씨를 확인하는 등)로 구성됐는데, 이는 관객들을 ‘퍼포먼스 관람자’가 아닌 〈Caroline, Drift train〉의 설정 속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인 퍼포먼스 참여자의 위치로 끌어들였다. 이후 발표한 작품들에서는 ‘시리어스 헝거’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6 브이로그(Vlog)7나 넷플릭스 TV 시리즈8, 게임 등의 스타일 및 어법을 차용하고 이를 전시 공간의 분위기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4〉(2018), 6’, 단채널영상. © 류성실

스타일은 크게 다르지만, 류성실은 송민정과 유사한 방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작가는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방송의 문법을 자신의 작품으로 재조합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2018년부터 선보인 〈BJ 체리장〉 시리즈는 유튜브와 아프리카 TV에 ‘체리장 TV’라는 이름으로 업로드돼 있기도 한데, 각 영상의 댓글 창을 살펴보면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흘러들어와 이것이 미술 작품인지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까지 확인할 수 있다. 첫 작품인 〈BJ 체리장 2018.4〉에서는 ‘체리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소 기괴한 분장을 BJ가 등장해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한다. 화면에는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큰 연관이 없는 듯한 어설픈 자료와 요란한 경고 메시지가 수시로 등장하고, 핵미사일이 떨어질 장소를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가 하면, 종국에는 마치 마감시간이 얼마 안 남은 홈쇼핑 방송처럼 계좌 번호를 띄우며 핵공격 이후 ‘천국 시민’이 되기 위한 돈을 입금하라고 종용한다. 이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만들어 내는 1인 방송 채널이나 사이비 종교의 포교 같은 유튜브의 가장 밑바닥에서 건져 낸 듯한 이미지들의 요소와 문법들을 집약한다. 덕분에 이는 너무 허무맹랑하기에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데, 한편으로는 류성실이 패러디의 소재로 삼은 영상들을 보고 이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작가가 ‘체리 장’을 통해 짚어 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류성실은 〈BJ 체리장〉 시리즈 이외에도 2017년부터 여러 전시를 통해 싸구려 단체 효도 관광을 패러디한 〈대왕트래블〉 시리즈를 발표해 왔는데, 이는 개인전 《대왕트래블 칭첸투어》(탈영역 우정국, 2019)에 이르러 ‘대왕트래블’ 세계관을 공유하는 조각, 설치 및 영상, 사진 작품을 통해 확장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2021.2.5-2.7.)의 리뷰 비디오 갈무리. (촬영 및 편집: 김익현)

앞서 다룬 ‘온라인 디폴트’ 작품들이 주로 온라인에서 구축된 콘셉트나 세계관을 오프라인의 경험으로 확장시키거나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오프라인의 작품을 온라인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변형시킨 경우였다면, 2021년 2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진행된 프로젝트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기획: 김익현, 박가희, 2021)는 더욱 다채롭고 촘촘한 방식으로 온라인 및 오프라인을 쌍방향에서 동기화하려 시도한 사례다. 전시보다는 하나의 공동 작업에 가까운 이 프로젝트는 ‘무주지(無主地)’ 또는 ‘공해(公海)’ 개념으로부터 출발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해적’으로 규정하고, 해적으로 합류할 참가자들을 웹사이트를 통해 모집했다. 참가 신청 후 일정 금액을 입금하고 택배로 전해 받은 ‘키트’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스티커, 마스크, 일회용 교통카드 등)과 함께 접선할 장소와 시간, 암구호, 행동 수칙 등이 적힌 안내문이 담겨 있었다. 약속된 시간에 을지로2가 부근의 공개 공지인 베를린 광장에 도착해 암구호를 외치면, 스태프가 ‘더듬이’를 지급한다. 이는 최윤의 작품이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매개체가 되는 스마트폰이 장착된 거치대로 참가자들이 지령을 받고 이에 따르게 하는 지도와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더듬이’를 장착한 참가자는 베를린 광장에 숨겨진 힌트를 찾고, 이에 따라 ARS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지령을 수행하고,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전달받은 링크에 따라 을지로 지하상가로 이동해 액자집 복도에 설치된 QR 코드를 통해 안유리의 작품과 마주한다. 또 몇 가지 지령을 수행하면 (또 다른 의미에서 무주지인) 2호선 을지로3가역 외선 방향 플랫폼의 7-1과 7-2 탑승구 사이의 벤치로 이동해 ‘더듬이’로 전송된 김익현과 현우민이 협업한 영상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영상이 끝나면, ‘더듬이’를 반납하고 ‘선상 파티’ 초대권을 받아 박다함의 믹스를 들으며 2호선 열차에 탑승하는 것을 끝으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는 마무리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치 게임 퀘스트를 하듯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암호를 입력해 접속하거나 문자로 전달받은 링크를 통해 다음 지령을 전달받는 등 참가자들은 대략 40분~1시간가량의 소요 시간 동안 꽤 정교하게 설계된 상황극 안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항해’의 과정은 물리적으로 을지로에 도달할 수 없는 참가자들에겐 ‘키트’에 지급된 무선 공유기를 이용해 온라인으로도 경험할 수 있게 했고, 사전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공해에 접속한 해적’ 링크를 통해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작업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이처럼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는 AR(증강현실)기술을 직접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지만, 오프라인의 세계에 온라인의 정보를 겹쳐 내는 AR의 방법론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의 세계와 온라인 세계가 직접적,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재현 및 복제 불가능성이 만들어 내는 가능성들

‘온라인 디폴트’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의 기반에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이 가상과 현실로 등치 돼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 온라인의 세계 역시 우리에게 실재하는 ‘현실의 무엇’으로 받아들인다는 전제가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이는 랜선으로 연결된 PC 앞에 앉아 있을 때에만 ‘온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손에 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일 수 있게 되면서 가상이라 여겨졌던 세계가 우리의 일상과 완전히 맞닿게 됐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9등과 같은 기술들은 사용자에게 가시적인 경험을 전달해준다는 차원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온라인 및 오프라인의 경계를 흐린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의 요소가 결국 모두 하나의 ‘현실’로 인식될 때, 오프라인을 재현하고 복제했던 온라인의 요소, 즉 디지털 데이터들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가? 시각적인 요소는 사진과 영상으로, 소리는 음원으로, 언어와 말은 문자로 재현되고 복제될 수 있는 것처럼 온라인에 업로드된 데이터 역시 데이터 자체는 얼마든지 재현 및 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 또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이 결합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경험 자체’를 기준으로 둔다면 이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예컨대 HMD(Head Mount Display)를 장착하고 관람한 VR 형식의 작품을 관람한 ‘경험’ 자체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다시 재현 및 복제10되지 못하고 있으며, 3D 프린터 역시 원본이 되는 사물의 질감이나 재질까지 구현하진 못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우리가 인식하는 재현 및 복제의 기준 자체가 바뀌었고, 또 앞으로도 바뀔 것이란 점을 전제한다. 가령 DVD가 출시된 1995년에 이는 분명 ‘고해상도’의 재현 매체였지만, 2021년에 DVD를 ‘고해상도’라 부르기엔 다소 어색해진 것처럼 우리가 ‘충분히 재현 및 복제됐다’고 느끼는 기준은 시간의 흐름이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 ‘온라인 디폴트’ 사례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영상과 사진을 통해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방식을 통해 ‘충분한 수준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미래의 어떤 순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온라인 디폴트’ 작품들은 재현 및 복제할 수 없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재현 및 복제 가능한 온라인 공간으로 이행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과 온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이 결합하면서 더욱 재현 및 복제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형태로 확장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처럼 어쩌면 미술은 무엇으로든 완전히 재현 및 복제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 늘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 물론 이른바 ‘아트 상품’이라 불리는 작품 이미지를 대량 인쇄한 포스터 같은 것이나 작가가 제작한 ‘굿즈’의 경우 역시 소비의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분명 (원본이 되는) 작품과 명백히 다른 층위에 놓인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을 소비한다고 뭉뚱그리기는 어렵다.  

  2. 비디오 게임의 장르 중 하나로, 주로 다인용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된다. 서바이벌 게임의 채집 요소 및 생존과 라스트 맨 스탠딩을 융합한 장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 또는 팀이 승리하는 구조이며, 장르의 이름은 일본 영화 〈배틀로얄〉(2000)에서 따온 것이다. 대표적인 배틀로얄류 게임에는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 등이 있다. 『위키백과』 ‘배틀 로열 게임’ 항목 발췌  

  3. 배틀그라운드 게임 내에서 플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자기장으로, 자기장 안에 들어가면 플레이어의 체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경기 지역을 좁히는 역할을 한다. 

  4. “에란겔은 결국 자기장의 구역 제한이라는 리밋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다시말해 언젠가는 끝난다. 관광객들이 예약하는 것은 관념적 죽음, 그것의 체험이다. 어쩌면〈에란겔: 다크 투어〉의 관광객들이 추모할 것은 스스로의 죽음일지도 모른다.” 정경담, 「책상의 측면 돌기: 〈에란겔: 다크 투어〉 기행」, 『마테리알』, 제5호, 2021, 2–3. 

  5.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로 인해) 매개된 소통은 물리적, 신체적 한계를 괄호 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는 한편 우리를 더 촘촘한 고립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사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을 잇는 장치는 여성을 자신의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하는 동시에 가장 내밀한 공간까지 침범할 여지를 지닌다. 카메라와 스크린을 경유한 업무와 만남은 자기 이미지의 오퍼시티를 조정할 기회를 주는 한편 새로운 종류의 압박을 창안한다. 이처럼 소통 매체는 순수하게 경험을 옮겨놓기보다 정보와 친밀감이 교환되는 장을 재구성한다.”, 유지원, 기획의 글, 《Girls in Quarantine》 웹사이트. 

  6. 송민정은 2021년 6월 10일에 나눈 필자와의 대화에서 이에 대해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 2018년의 개인전 《COLD MOOD (1000% soft point)》과 《퍼폼 2018》에서 선보인 〈Caroline, Drift train〉을 거치며 자신의 작업 설정에서 ‘시리어스 헝거’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고 밝혔다.  

  7.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2019)에서 발표한 〈Talker〉(2019). 

  8.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2019)에서 발표한 〈AKSARA MAYA〉(2019). 

  9.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과 같은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통칭한다. 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초상 사진’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사진을 정교하게 변형하거나, 맨얼굴 사진에 안경 사진을 더해 안경 쓴 얼굴 사진을 만드는 등 이미지간 연산을 수행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딥페이크’ 역시 이러한 알고리즘에 기반한다.  

  10. 이는 AR/VR 이미지들이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것과,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안경, HMD와 같은 특정한 장치를 통해서만 구동될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한다. 

© 2024 작가, 저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 SeMA Coral)에 수록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작가, 저자,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으며, 저작자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서면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각 저작물에 담긴 의견은 미술관이나 세마 코랄과 다를 수 있으며, 관련 사실에 대한 책임은 저자와 작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