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위 여자 (Red Scissors Woman)

김혜순
김혜순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시론집으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 산문집으로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 시카다 상, 삼성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이다.

저만치 산부인과에서 걸어나오는 저 여자
옆에는 늙은 여자가 새 아기를 안고 있네

저 여자 두 다리는 마치 가위 같아
눈길을 쓱 쓱 자르며 잘도 걸어가네

그러나 뚱뚱한 먹구름처럼 물컹거리는 가윗날
어젯밤 저 여자 두 가윗날을 쳐들고
소리치며 무엇을 오렸을까
비린내 나는 노을이 쏟아져 내리는 두 다리 사이에서

눈 폭풍 다녀간 아침 자꾸만 찢어지는 하늘
뒤뚱뒤뚱 걸어가는 저 여자를 따라가는
눈이 시리도록 밝은 섬광
눈부신 천국의 뚜껑이 열렸다 닫히네

하나님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나님이 키운 그 나무 그 열매 다 따 먹은
저 여자가 두 다리 사이에서
붉은 몸뚱이 하나씩
잘라내게 되었을 때

아침마다 벌어지는 저 하늘 저 상처
저 구름의 뚱뚱한 줅은 두 다리 사이에서
빨간 머리 하나가 오려지고 있을 때

(저 피가 내 안에 사는지)
(내가 저 피 속에 사는지)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저 여자
뜨거운 몸으로 서늘한 그림자 찢으며
걸어가는 저 여자

저 여자의 몸속 눈창고처럼 하얀 거울 속에는
끈적끈적하고 느리게 찰싹거리는 붉은 피의 파도
물고기를 가득 담은 아침바다처럼
새 아가들 가득 헤엄치네


That woman who walks out of the gynecology clinic
Next to her is an old woman holding a newborn

That woman’s legs are like scissors
She walks swiftswift cutting the snow path

But the swollen scissor blades are like fat dark clouds
What did she cut screaming with her raised blades
Blood scented dusk flooding out from between her legs

The sky keeps tearing the morning after the snowstorm
A blinding flash of light
follows the waddlewaddling woman
Heaven’s lid glimmers and opens then closes

How scared God must have been
when the woman who ate all the fruit of the tree he’d planted
was cutting out each red body from
between her legs

The sky, the wound that opens every morning
when a red head is cut out
between the fat red legs of the cloud

(Does that blood live inside me?)
(Do I live inside that blood?)

That woman who walks ahead
That woman who walks and rips
with her scorching body her cold shadow

New-born infants swim
inside that woman’s mirror inside her as white as a snow room
the stickysticky slow breaking waves of blood
like the moming sea filled with fish

*이 시는 저자의 허락을 받아 재수록했습니다.
한국어 원문 시는 『당신의 첫』(서울: 문학과지성사, 2008)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영번역 최돈미.
This poem is written by Kim Hyesoon, and translated from Korean to English by Don Me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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