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저급 이론들의 연합〉: 후기

이연숙
이연숙은 〈2021 SeMA-하나 평론상〉 수상자로, 닉네임 ‘리타’로도 활동한다. 2015년부터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왔다. 페미니즘과 퀴어 예술, 그리고 하위문화에서 발견되는 소수자 문화의 저항적 형식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비평을 지속하려 한다.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 기획, 편집했고,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 2022년 9월 총 3회에 걸쳐 진행된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저급 이론들의 연합’〉의 녹취록을 위한 후기 겸 안내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음성 기록을 문서화한 (증언 또는 증거) 자료를 의미하는 녹취록은, 해당 프로젝트 내에서는 라운드테이블의 기록물이라는 보다 유연한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다. 현장에서 진행된 대화가 녹취록의 형태로 재구성되면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세마 러닝 스테이션에서 폭죽처럼 터지던 웃음들, 눈맞춤과 끄덕임들, 무엇보다 영원할 것처럼 흐르던 짧은 침묵들이 행간 사이로 매끄럽게 숨어들었다. 이는 한 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결코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다. 현장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녹취록이란 존재할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녹취록은 현장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하나의 독자적인 형식이자 장르이기 때문이다. 〈저급 이론들의 연합〉의 녹취록 역시 현장에 방문하지 못했던 잠재적인 독자들이 분위기라는 맥락에 의존하지 않고도 각각의 참여자들과 관객들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수정되고 편집되었다. 더욱이 온라인 게시물이기에 가능한 ‘하이퍼링크’의 적극적인 활용은 라운드테이블과 각각의 패널들이 의존하는 참조점들을 즉각적으로 개방하며 이들과 독자 사이의 간접적인 연결 고리를 생성한다. 이러한 녹취록의 방향성은 2022년의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의 (퀴어)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할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저급 이론들의 연합〉은 잭 할버스탐(Jack Halberstam)의 책, 『실패의 퀴어 예술(The Queer Art of Failure)』에 등장하는 용어인 ‘저급 이론(low theory)’을 차용한 제목이다. 잭 할버스탐 역시도 스튜어트 홀(Stuart Hal)에게서 차용한 용어인 ‘저급 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고급’과 ‘저급’의 이분법적인 위계를 겨냥할 뿐만 아니라 ‘저급’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옹호하고 긍정하기 위해 도입됐다. ‘고급’들의 반대항에 놓이는 ‘저급’은 결코 ‘정전(canon)’, ‘고전(classic)’의 반열에는 오를 수 없을 하위문화적 생산물들, 그리고 자본주의 내에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즉 계속 그런 식으로 산다면 필패가 예정되어 있는 ‘패배자(loser)’들에게 어울리는 단 하나의 이름이다. 내용물이야 어찌 되었든 ‘저급한 것’으로 자동 분류되는 하위문화적 생산물들과 마찬가지로, ‘패배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당신이 가난하다면, 동성과 사랑에 빠진다면, 이성애-재생산 모델에 복무하지 못한다면, 아프고 장애가 있다면, ‘외국인’이라면, 나이가 들었다면, 자본주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아니 당신이 실패하기도 전에 실패가 당신을 선택한다. 이러한 단언은 ‘노오력’의 신화와 성공의 환상을 배반하기에 소수자들에게 특히 고통스러운 비관주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을, 실패를 전유하기란 소수자들의 ‘전통적’ 기술이자 유일한 무기가 아니던가? 소위 ‘정상 사회’라고 하는 내부의 ‘구성적 외부’로서 내쳐지는 우리, 남들이 말하는 평균 그 미만에 위치하는 우리를 퀴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이처럼 울적한(low) 실패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서다. 이러한 관점은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아우르는 우산 개념으로서의 퀴어, ‘정상 사회’의 포용과 관용, 인정을 기다리는 ‘재미있는’ 문화적 용어로서의 퀴어를 거부한다. 퀴어는 실패자다. 퀴어(한) 예술이란 실패하는 예술 또는 기술(art)이다. 실패를 기술로 간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잘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론적 참조점을 배경에 두고 〈저급 이론들의 연합〉을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세 번의 라운드테이블로 구성했다. 야광 콜렉티브(김태리, 전인)와 홍지영과 함께 한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여성, 퀴어, 콜렉티브”라는 제목으로 ‘콜렉티브’라는 협업 또는 친밀성의 형식, 레즈비언 ‘미학’의 특수성에 관한 질문들을 나눈 자리였다. 우리는 레즈비언의 최소 정의를 비워둔 채 무책임한 ‘인상 비평’을 던지며 과연 ‘레즈비언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탐문했다. 강덕구, 이여로와 함께 한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 “아마추어리즘과 비평”에서는 아마추어리즘, 블로그 네트워크, (청년 세대에게는 더더욱 구축하기 힘겨워진) 독립적인 보상 피드백과 우정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나는 이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퀴어(한) 스타일과 태도로서의 실패를 각기 다른 학제적/공동체적 맥락 내에 존재하는 아마추어적인 것, 소수자적인 것들과 간접적으로 연결해보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문상훈, 양승욱, 이반지하와 함께 한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예술 기금으로 표상되는 공적 기관/제도/체계로부터 인정, 퀴어 예술(계) 내부의 차이, 축적되는 실패의 감각에 대한 우울하고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나 소란한 수다와 침묵, 열띤 성토와 넋두리 사이를 오갔던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며 보았던 얼굴들, 표정들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복기해 봐도 세 번의 라운드테이블에서 다뤄진 주제들이 마냥 ‘즐길 만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회피나 거부 없이, 충실하게 라운드테이블의 질문들에 응답해 준 패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또한 적극적인 질문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에 열기를 더해준 청중들 한 분 한 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고 싶다. 끝으로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담당자인 서울시립미술관의 김진주 학예연구사님, 박지연 코디네이터님, 그리고 초고를 바탕으로 라운드테이블 녹취록을 교열해주신 정혜진 편집자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녹취록이 행사 이후 약 5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무사히 완성된 형태로 온라인에 게시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 분들의 노력과 노동 덕분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보여준 애정과 관심이 곧장 〈저급 이론들의 연합〉에 특별한 자격이나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저급 이론들의 연합〉은 끝났지만, 우리의 실패와 우정을 위한 대화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1. 여성 퀴어 작가의 콜렉티브

이연숙: 오늘은 연휴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올해 저는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저급 이론들의 연합’이라는 제목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총 3회 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는 세 분과 함께 ‘여성 퀴어 콜렉티브’라는 제목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할 것이고, 두 번째 자리에서는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세 번째 자리에서는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이어갈 것입니다.

우선 ‘저급 이론들의 연합’이라는 제목을 살짝 소개해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게시물에서 보셨을 수도 있지만, 퀴어 이론가 주디스 잭 할버스탐(Judith Jack Halberstam)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참조해서 ‘저급 이론(low theory)’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올해와 내년의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중심 개념으로 삼고자 합니다.

‘저급 이론’은 ‘고급 이론’과 다른 날 것의 지식, 학계에서 유통되는 종류의 지식이 아닌 다른 종류의 지식들을 일컫습니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소수자들의 대항 담론을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텍스트로 유통이 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미술관 안에서 라운드 테이블의 형식으로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제도권 안에 있는 미술관에서 이러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상당한 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하실 세 분을 소개해 드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아마 퀴어, 여성 퀴어, 특히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관심 있게 보시고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라운드 테이블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자리이기보다는 조금 더 열려 있는 장이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객 분들께 질문도 많이 드리고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손에 잡히지 않고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개념인 ‘저급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나눌 질문은 “‘레즈비언 퀴어 예술만의 미적 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입니다.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지, 레즈비언 미술은 일반적으로 ‘구리다’고 이야기되는데 ‘구리다’라는 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세 분과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후략)

“여성 퀴어 작가의 콜렉티브” 이어 읽기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2.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이연숙: 안녕하세요. 오늘 라운드 테이블에서 함께해 주실 이여로 님과 강덕구 님은 이번과 같은 계기로 꼭 만나 뵙고 싶었던 분들이라서, 저도 지금 이 자리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번 두 번째 라운드 테이블 자리에서는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태도 또는 정체성’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아마추어리즘이 무엇인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개념적인 도구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어떠한 삶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위계와 마찬가지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위계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최근 두드러지는 활동을 시작한 두 분과 함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예시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제가 두 분을 짧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여로 님은 독립 기획자이자 저술가입니다. 지원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예술 사업과 웹진, 1인출판 등을 통해 2019년 창작과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요. 예술에서 각자의 언어와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이에 관한 연구서를 2022년 출간했습니다. 지식의 투명화와 접근성에 대한 관심 아래 인문예술 분야에서 출판, 기획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강덕구 님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진입니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이론과 영화사를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요. 동시대 영화, 한국 힙합, 힙스터리즘 등 사회와 예술이 만나는 접경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 분이 함께 ‘한국문학의 구조’라는 인터뷰도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덕구 님은 개인 단행본을 준비하는 중이시고 이여로 님은 이동휘 님과 함께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 언어, 이론』(미디어버스, 2022)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먼저 이 책과 아마추어리즘 개념에 대한 반응을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책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 안에서도 아마추어리즘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몇 대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어떤 예술 이론을 말하지 않고 예술에서 이론하기의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 가장 약탈적인 방식, 도둑질, 경박함, 가벼움, 정확하지 않음에 의해서 이 이론을 전용할 가능성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단순함이 우리가 취할 것이다. 단순함에서 시작해 복잡함에 이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성의 방법이다.”

저는 이 이야기가 아마추어리즘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여로 님께서 책에 대한 반응,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반응을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후략)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이어 읽기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3. 실패의 퀴어 예술

이연숙: 안녕하세요.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번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세 분의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각자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인사드릴까요?

이반지하: 안녕하세요. 이반지하입니다.

양승욱: 안녕하세요. 시각 예술 작가 양승욱입니다.

문상훈: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문상훈입니다.

이연숙: 3회차 라운드 테이블 ‘실패의 퀴어 예술’에 이반지하, 양승욱, 문상훈 세 분을 모신 데에는 엄청나게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고요. 제가 이 자리에서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분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계기로 ‘실패’라는 개념을 함께 공적으로 다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기금, 제도,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테지만, 사전에 저희가 대화를 나누면서 좁혔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패가 곧 저항이므로 퀴어는 곧 실패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퀴어 이론의 한 명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싶고, 잘나가고 싶고, 돈도 벌고 전시도 많이 하고 싶은 퀴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세속적인 욕망을 가진 퀴어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희는 이런 질문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조금 일찍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넷이 합을 맞출 때의 분위기가 굉장히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중 분들께서도 자유롭게 이야기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있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많이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후략)

“실패의 퀴어 예술” 이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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