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3. 실패의 퀴어 예술

문상훈
문상훈은 미술작가이자 기획도 겸업하고 있다. 전시 《레즈비언!》(2019), 《실패전》(2020)을 기획했으며 개인전 《No Future》(2021), 《넌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2020),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2019) 외에 《퀴어락 QueerArch》(2019), 《씨 뿌리는 여자들》(2020) 등의 전시를 했다. ‘드랙킹콘테스트’ 1~2회에 참여하다가 2019년에는 ‘드랙킹콘테스트’ 3회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부터 기획진으로 일하기 시작해, 《드랙x남장신사》,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를 기획했다. 정해지지 않는 방식으로 매번 새롭게 만들어가며 경계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양승욱
양승욱은 시각예술 작가이자 오픈리 퀴어 작가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사진 매체를 이용하여 젠더 이슈, 가족, 동물, 지역 사회 등, 소수자의 입장에서, 일상생활 중 마주치게 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전시와 출판물 형태의 결과물로 만들어내고 있다. 2019년 부터 허호 작가와 함께 아티스트 콜렉티브 “살친구”를 결성해 활동해오고 있다.
《유랑극단》(유아트스페이스, 2022), 《Past Toys》(쇼앤텔, 2020), 《Glass Closet》(공;간극, 2018) 등 의 개인전을 열었고, 《버서커와 소환사》(탈영역우정국, 2022), 《3040》(미학관, 2022), 《초대의 감각》(탈영역우정국, 2021), 《동성캉캉》(아트비앤,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Pride Photo Award〉에서 2019년 대상 및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반지하
이반지하는 가부장제, 퀴어성, 젠더와 매체 경계를 가지고 놀며 작업하는 다학제 예술가이다. 2004년 부터 퀴어적 존재이자 현대 미술가로서의 불안정한 삶의 여건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치를 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오가며 꾸준히 작업 해왔다.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뿌리를 둔 생존자 유머를 비롯, 기존의 젠더이분법적 질서 위에 아무렇지 않게 퀴어적 공간을 창조해내는 작업들을 통해 독자적인 퀴어미학을 발전시켜왔다. 작가명 “ 이반지하”는 퀴어의 의미를 가진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위태로운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이었던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1집 앨범 〈이반지하〉의 여러 히트곡과 저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2021), 관객참여형 워크숍 퍼포먼스 〈부치의 자궁〉(2022) 등의 작품이 있다.
이연숙
이연숙은 〈2021 SeMA-하나 평론상〉 수상자로, 닉네임 ‘리타’로도 활동한다. 2015년부터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왔다. 페미니즘과 퀴어 예술, 그리고 하위문화에서 발견되는 소수자 문화의 저항적 형식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비평을 지속하려 한다.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 기획, 편집했고,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이연숙: 안녕하세요.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번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세 분의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각자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인사드릴까요?

이반지하: 안녕하세요. 이반지하입니다.

양승욱: 안녕하세요. 시각 예술 작가 양승욱입니다.

문상훈: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문상훈입니다.

이연숙: 3회차 라운드테이블 ‘실패의 퀴어 예술’에 이반지하, 양승욱, 문상훈 세 분을 모신 데에는 엄청나게 구체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고요. 제가 이 자리에서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분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계기로 ‘실패’라는 개념을 함께 공적으로 다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기금, 제도,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테지만, 사전에 저희가 대화를 나누면서 좁혔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패가 곧 저항이므로 퀴어는 곧 실패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퀴어 이론의 한 명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싶고, 잘나가고 싶고, 돈도 벌고 전시도 많이 하고 싶은 퀴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세속적인 욕망을 가진 퀴어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희는 이런 질문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조금 일찍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넷이 합을 맞출 때의 분위기가 굉장히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중 분들께서도 자유롭게 이야기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있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많이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작가님들을 차례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상훈 작가님은 미술 작가로, 기획도 하고 있는데요. 《레즈비언!》(2019)과 《실패전》(2020)을 기획했습니다. 《실패전》에 대해서는 라운드 테이블의 후반부에서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또한 작가님은 《규중칠우쟁론기: No Future》(2021), 《너는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2020),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2019), 《퀴어락 QueerArch》(2019), 《씨 뿌리는 여자들》(2020) 등의 전시를 올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드랙킹 콘테스트》 1~2회에 참여하셨고, ‘드랙킹 콘테스트’ 3회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2019)부터 기획진으로 일하기 시작해 《드랙x남장신사》(2022)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2021)를 기획했습니다. 여기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도 ‘드랙킹 콘테스트’ 공연을 실제로 보신 분들이 여럿 계실 것 같습니다. 이처럼 문상훈 작가님은 정해지지 않은 방식으로 작가와 기획자의 역할을 오가며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 《실패전》(2020) 포스터, 디자인: 주지윤.
7인 릴레이 개인전 《규중칠우쟁론기》(2021) 중 여섯 번째 이야기 문상훈 《No Future》(2021) 전시 전경. 사진: 양승욱.
《규중칠우쟁론기: No Future》(2021) 전시 전경. 사진: 양승욱.

2020년에 《실패전》 전시를 하셨을 때는 전시의 사이트가 따로 있었는데요. 거기서 작가들이 각자의 실패 서사를 이야기한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이 부분도 뒤에서 따로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전시인 《규중칠우쟁론기: No Future》가 일리에서 오픈했고요. 2020년에 진행된 《넌 이 전시는 못 보겠지만》은 여성 연인과의 이별을 가장하고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로 이해했습니다.

문상훈: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감수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연숙: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헤어진 연인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우리가 헤어졌는데 어쩌고저쩌고 너는 이걸 못 보겠지만······.”하는 소통 방식이 굉장히 많아서, 이를 전시 형식으로 구현해 보신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반지하 님에 대한 소개를 해 드릴까 합니다. 이반지하 님은 가부장제와 젠더 관계, 퀴어성을 가지고 놀며 작업하는 다매체 예술가입니다. 이반지하 님은 2004년부터 퀴어적 존재이자 현대미술가로서의 불안정한 삶의 여건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치를 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오가며 꾸준히 작업을 해 왔습니다. 끈질긴 생존력으로 각종 경계를 뻔뻔하고 집요하게 넘나드는 현대미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 생존자 유머의 선구자입니다. 강력한 팬덤 ‘감태즈’를 둔 ‘아버지(압지)’라는 전례 없는 커리어를 스스로 구축해 냈습니다. 경계를 흐리고 불확실하게 만드는 독보적인 재능으로 끊임없이 헤테로 ‘정상성’에 도전해 왔고,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질서 위에 아무렇지 않게 퀴어적 공간을 창조해 내는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퀴어 미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반지하 최초마지막단독인권콘서트》(2019),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문학동네, 2021), 한국 최초 퀴어 가족 시트콤 〈으랏파파〉(2021), 이반지하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 〈V.I.P(Visiting Ibanjiha Professionally)〉(2022) 등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에세이 시리즈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연재하고 있고,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반지하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 〈V.I.P(Visiting Ibanjiha Professionally)〉(2022) 포스터.
이반지하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 〈V.I.P(Visiting Ibanjiha Professionally)〉의 영상 기록 중 한 장면. 영상 촬영, 편집: 조윤지.

이반지하 님은 저와 꽤 오래된 사이로, 제가 이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반지하 님이 소위 영페미니스트 시기에 하셨던 활동, 즉 ‘페미니스트 킬조이’의 실천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3년에, 이반지하 님께서는 《안티아라키》(2003)라는 전시를 올렸습니다. 이 전시는 선정적인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Araki Nobuyoshi)의 사진전이 일민미술관에서 열렸을 때 이반지하 님께서 이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셨던 맥락과 이어지는데요.

이반지하: 단순히 선정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시선을 기반으로 한 여성 재현을 비판하는 전시였습니다.

이연숙: 또 그 당시 아라키 노부요시에게 문제 제기를 했던 모델과 만나기도 하셨죠.

이반지하: 그 당시에는 사실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저분이 “사실은 나도 당시에 피해자였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셨고, 한국에 오셨을 때 만나서 즐거운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이연숙: 또한 전시 《작전 L》(2005)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록된 바로는 레즈비언만을 위한 최초의 전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반지하 님은 지금도 접속 가능한 레즈비언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공로를 세우기도 했고, 《젠더 스펙트럼》(2008) 전시 등 2003~2008년에도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계신 작업 중의 하나는 ‘24절기 라이브’인데요.

이반지하: 그것은 종료된 작업입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1년 동안 24번의 라이브 방송을 한 것인데요. “인생을 한 번에 통째로 살아 내려 하지 말고 끊어서 살아 보자”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자살이 잦은 퀴어 커뮤니티에 던져 주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연숙: 이런 많은 활동을 해 온 작가님이십니다. 다음은 양승욱 작가님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양승욱 님은 시각 예술 작가이자 오픈리 게이 작가로 창작 활동을 있습니다. 주로 사진 매체를 이용하고요. 소수자의 입장에서 일상 생활 중 마주치게 되는 여러 문제점, 즉 젠더, 가족, 동물, 지역사회 등과 관련된 이슈를 전시나 출판물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허호 작가님과 함께 아티스트 콜렉티브 ‘살친구’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고요. 저는 이 맥락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1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퀴어 콜렉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콜렉티브라는 것이 퀴어에게 굉장히 중요한 맥락인가, 왜 우리는 그렇게 활동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허호 작가님과 양승우 작가님 두 분은 2019년부터 ‘살친구’라는 이름의 콜렉티브로 활동하면서 전시도 같이 열고 공동 작업도 합니다. ‘살친구’는 ‘비역질의 대상이 될 정도로 친한 친구’라는 의미의 토박이말이라고 합니다.

양승욱: ‘비역질’은 성관계를 의미하며, ‘살친구’는 ‘게이’라는 용어의 순우리말로 이야기되곤 합니다.

이연숙: 양승욱 작가님은 전시 《Past Toys》(2020), 《Glass Closet》(2018)의 개인전을 올린 바 있고, 더프리뷰 성수 아트페어의 ‘미학관’ 부스에서 두 분이 같이 ‘살친구’로서 참여한 《3040》(2022), 《초대의 감각》(2021), 《동성 캉캉》(2019) 등의 단체전 이력 또한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프라이드 포토 어워드’에서 2019년에 대상 및 특별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고요.

‘미학관’에 전시된 《3040》은 30대, 40대 게이 섹슈얼리티를 좀 더 개방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시 《밤의 유대》(2020)는 키덜트적인 성향, 키치한 게이들의 미학을 보여 주는 전시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양승욱: 《밤의 유대》(2020)는 오페라를 재해석한 것으로, ‘밤의 여왕’ 캐릭터를 가지고 〈마술 피리〉를 퀴어적인 시선으로 다 뜯어고친 결과물을 전시 형태로 나타냈습니다. 오페라를 직접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전시 《Past Toys》(2020) 포스터. 디자인: 양승욱.
《Past Toys》(2020) 전시 전경. 사진: 양승욱.
《Past Toys》(2020) 전시 전경. 사진: 양승욱.

이연숙: 돈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굉장히 자주 나올 예정입니다. 이제 전시 《Past Toys》에 대한 이야기로 라운드 테이블의 포문을 열어 볼까 합니다. 뒤에서도 또 보여 드리겠지만, 이 전시는 2020년에 열린 전시이긴 하나 2020년의 작업물을 전시한 것은 아닌데요. 서문에서 양승욱 작가님이 이렇게 말하고 계세요. “이 작품들은 2015년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몇 년간 여러 공모에 떨어지면서 더이상 되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이 시리즈를 보여 줄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직접 제작한 작품의 피드백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 그 후 새 작업을 시작해도 자꾸 이 작업이 트라우마로 남아 더 늦기 전에 훌훌 털고 싶은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커지면서 다시 한 번 전시 할 기회를 찾아보게 되었다.”1 이 사연을 좀 풀어 보면서 오늘의 주제인 퀴어 미술의 인정과 기금의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저희가 사전 미팅을 할 때도 이반지하 님께서, “우리를 왜 불렀고, 우리가 ‘실패’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면 그 자리는 실패한 사람들의 모임인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중요한 문제이고, 현실에서의 실제 실패와 저항으로서의 실패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책 『실패의 퀴어 예술』에서는 ‘저급 이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애니메이션을 인용합니다. 책의 서문에도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의 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집게 사장과 스폰지밥이 특이한 대화를 합니다. 집게 사장은 일을 그만두려는 스폰지밥을 말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네 바지를 들어 올려서 점점 더 높이 더 높이 해수면 위까지 네가 헐떡거릴 때까지 끌어올릴 거다. 그리고 널 요리할 거야. 널 먹어 치울 거야. 하지만 더 최악도 있어.” 그러자 스폰지밥이 떨면서 질문합니다. “그보다 최악이 뭔데요?” 집게 사장은 “기념품 가게”라고 답합니다.

스폰지밥 같은 아마추어, 퀴어, 예술가, 즉 약한 존재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는 죽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저는 퀴어 예술과 소수자성, 약한 것들에 대한 담론이 공론장에 올라가게 될 때 너무나 쉽게 제도와 자본주의, 이성애 질서 내부의 특이한 상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이 장면이 상기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을 때, 할버스탐은 실패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필연이라고 말합니다. 실패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얘기하는 바깥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고 그러한 인식을 강화하는 대신에, 오히려 실패를 우리의 방법론의 하나로 삼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교적 최근의 퀴어 이론에서는 ‘실패’를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룹니다. 앞서 언급한 명제의 맥락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퀴어한 것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문상훈 작가님의 개인전에서 드러났듯, 계속해서 일어나는 상실을 공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 역시 실패의 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시로 다음 인용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실패는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장 경제에는 승자와 패자, 도박꾼과 모험가, 사기꾼이 있어야 한다. 스콧 샌디지가 그의 책 『Born Losers: 미국에서 실패의 역사』(2005)에서 주장했듯이 자본주의는 다음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이 성공과 이익을 동일시하고 어떤 것에 대한 이익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한 손실을 의미하더라도 부를 축적할 수 없는 것과 실패를 연결하는 시스템에서 살 것을 말이다. 샌디지가 그의 설득력 있는 연구에서 서술했듯이, 패배자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반면, 승자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실패의 기록은 “낙관주의의 문화 속에 숨겨진 비관주의의 역사”가 된다. 이 숨겨진 비관주의 역사, 더욱이 모든 성공의 이야기 뒤에 조용히 놓여 있는 역사를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샌디지가 그것을 미국 자본주의의 그림자 역사로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여기서 그것을 반자본주의적이고 ‘퀴어한’ 투쟁의 이야기로 말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반식민지 투쟁, 읽히기의 거부, 그리고 ‘되지 않기(unbecoming)’의 예술에 대한 서술이기도 하다. 이것은 시장이 없는 예술, 대본이 없는 드라마, 진보가 없는 이야기다. 실패의 퀴어한 예술은 불가능하고, 증명할 수 없고, 다른 무엇과 같지 않으며,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향한다. 그것은 조용히 잃고, 그것을 잃는 과정에서 삶, 사랑, 예술, 존재에 대한 다른 목표들을 상상하도록 만든다.”2

여기서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실패했는지 아닌지,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인지 아닌지라기보다, 실패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이 인용문은 실패를 지향하는 태도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 분과 함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분들의 작업 속에서 실패에 대한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로 세 분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는 “퀴어 예술은 벌써 주류인가?”를 묻고 싶습니다. 최근에 정은영 님께서 ‘일다’에 「지금, 한국 퀴어 미술의 어떤 경향」(2021)이라는 좋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작가이자 필요하다면 비평가의 역할까지 병행하는 정은영 님은 이 글에서 퀴어 미술의 전시 목록을 총망라하여 살펴봅니다. 이전에 비하면 양적으로 많은 퀴어 전시들이 생겨났고, 퀴어 예술이 주류 예술 시장에서 먹히거나, 혹은 굉장히 좋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가 모인 까닭은 “정말 그런가?”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옛날’ 이야기를 좀 더 해 볼까요? 맨 처음에 저희가 나누었던 대화 중의 하나가, 2018년의 국립현대미술관 세미나를 회상하면서 “감개무량하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미나에서 초대 큐레이터이자 입주 작가인 크리스 이만츠 어컴스(Kris Imants Ercums)가 한국의 퀴어 미술을 목록화했습니다. 양승욱 작가님께서 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셨는데요. 양승욱 작가님은 제가 당시에 굉장히 분노에 차서 해당 세미나를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지금도 분노가 많지만, 당시에 제가 참지 못하고 SNS 상에 여러 말을 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양승욱: 당시에 제가 이 프로젝트의 인터뷰에 참여해서, 중간 결과 발표 겸 세미나를 들으러 갔었는데요. 당시에 저는 이연숙 님과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세미나에 꽤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던 중 쉬는 시간에 참석자의 절반 이상인, 여성으로 패싱된 분들이 갑자기 우르르 다 나가셨습니다. 제 옆에 계셨던 짧은 머리의 여성 분이 씩씩거리면서 나가셔서 ‘저 분은 화가 많이 나셨구나’라고 생각했고, 잠시 후에 트위터를 보니 저런 트윗이 올라왔습니다. 추후에 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 보니, 당시 제 옆에 앉아 계셨던 분이 바로 이연숙 님이셨습니다.

이반지하: 그럼 양승욱 작가님은 그때 전혀 화가 나지 않으셨다는 건가요?

양승욱: 그럼요. 사실 그때 인터뷰를 안 했으면 저도 거기서 지워졌을 테니까요. 세미나를 하기 전까지 퀴어 미술가들 간에 교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서로의 작업만 조금씩 알고 있었고,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큐레이터 크리스가 퀴어 미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중간 발표를 한다고 자신이 인터뷰했던 퀴어 작가들에게 (사실 90%는 게이 작가들이었는데요) 연락을 해서 그들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단톡방이 생기고 서로 알게 되어서 그때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반지하: 나도 이 중의 한 명이다. 나도 뽑혔다. 백인 남성에게 나도 선택되었다.

양승욱: 백인 남성이 인정한 퀴어 작가다.

이반지하: 여자들은 다 나가네. 그냥 안됐다.

양승욱: 왜 나가지? 이러면서.

이연숙: 제가 중간중간 조율을 할 예정이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성토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제가 굳이 그 세미나에 간 이유는 당시에는 퀴어 행사가 매우 적어 몹시 갈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단지 퀴어를 다룬다기에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기분이 상한 채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은영 님도 지적하고 계시듯이 최근 들어서, 혹은 몇 년 사이에, 퀴어 전시들이 많이 있었고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이라는 큰 프로젝트에 퀴어와 관련된 콜렉티브가 선정된 것이 흥미로운 사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에 뜨거웠던 사건을 고른다면, 뮤지엄 헤드에서 열렸던 전시 《BONY》(2021)입니다. 저는 이 전시에 흥미롭고 중요한 맥락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이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전시에서 어떤 즉각적인 반응들이 분명하게 감지되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이반지하 님께서 양승욱 님께 “너는 그럼 그 자리에서 좋았냐, 너는 백인 남성한테 인정받아 좋았냐”라고 공격하듯 말씀하신 것처럼요.

이반지하: 너는 즐긴 것이 아니냐.

이연숙: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BONY》 또한 굉장히 다층적인 반응들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BONY》가 ‘한국이 여기까지 왔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였을 수도 있고, 이런 작품이 드디어 전시장에 들어 온 것이 고무적인 사건처럼 얘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1회차 라운드 테이블 ‘여성 퀴어 콜렉티브’ 편에서도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질투에 대한 이야기나, 라운드 테이블에 함께하지 못한 남성 퀴어 작가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등, 여러 반응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하여 기억나는 다른 반응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양승욱: 제가 거기에 못 들어간 게이 작가입니다.

이반지하: 전에는 분노하지 않았지만 내가 빠지니까 분노하게 되었다.

양승욱: 그래서 그때 많이 분노하긴 했습니다. 그 기획 자체가 회화와 조각이라는 매체 위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큐레이팅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래서 ‘나에게는 왜 연락이 안 오지?’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분노가 차오를 때쯤 리스트를 보니 ‘퀴어’로 묶어놨지만 결국 섭외가 된 것은 게이 작가들이었고, 지금 많이 회자되고 있는 회화와 조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회화와 조각을 하지 않는 게이 작가나 퀴어 작가들은 거기서 다시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화와 조각을 하지 않으면 전시를 열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전부터 계속 주위의 작가 분들과 함께 전시를 해 보려 했지만 반응이 정말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러 주면 하지 우리끼리 뭘 해요”라고 말했던 몇몇 분들이 전시 《BONY》에 참여하셨습니다.

이반지하: 그런데 이 전시가 왜 누군가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전시도 세상의 모든 퀴어를 포함할 수는 없는데, 왜 이 전시에서는 성토와 불만이 터져 나왔던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승욱: 저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매체로 묶었다고 얘기를 하셔서.

이반지하: 그냥 님을 빠뜨려서 화가 난 거잖아요.

이연숙: 제가 《BONY》를 언급한 것은, 이 전시가 게이 중심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획자든 작가든, 본인이 하고 싶은 전시를 스스로 여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한다면 세상 모든 것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미술의 영역에서까지 모두를 공평하고 평등하게 전시에 올려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무척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BONY》가 저에게 매우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 전시가 다양한 분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극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전시 《BONY》가 무엇을 자극했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인정 욕구’이자, 여성 퀴어로서 항상 가지고 있는 ‘억하심정’이나 ‘열등감’, 어떤 아이콘이 게이 미술에는 있지만 레즈비언 미술에는 없다고 여기는 식의 ‘질투’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많은 것들이 퀴어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있었는데, 그것들이 불쑥 튀어나온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시 《BONY》(2021) 포스터. 디자인: 홍진우.

이반지하: 우리 안에도 뭔가 차이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알고 보니 우리도 다 같은, 똑같은 쓰레기는 아니었다? 제 말은 우리가 ‘퀴어’로 묶여 있는 줄 알았고, 다들 나와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이 안에도 그런 차이가 있었다는 게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가요?

이연숙: 말하자면 그렇죠. 그래서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BONY》는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해 준 전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BONY》는 그 자체로 게이 조각가들의 독자적인 형식과 미학을 탐구한 전시이기도 하고요. 양승욱 작가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나는 안 들어갔다”라거나, “게이 작가들은 큰 공간을 빌려서 전시하는데 레즈비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잖아”라는 등의 여러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으로부터 우리가 추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퀴어 예술가들에게 ‘억하심정’이란 그들에게 매우 핵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상훈: “퀴어라서 억하심정이 있다”, “퀴어는 꼬여 있다”라는 말들이 예전에는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도 그렇고 우리가 태어나서 퀴어 소셜(queer social)을 만나기 전까지는 헤테로들과 부대끼면 살아가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이 약간 꼬이게 됩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난 너희랑 좀 다른데 너희는 날 이해 못해’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에서 미술을 하고자 예술 학교에 들어가서 내 작업을 발표했는데 교수는 내 작업을 이해하지 못할 때, ‘아무도 이해를 못하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억하심정으로 인해,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도 내 작업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하고 ‘내 작품이 퀴어적이라서 떨어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연숙: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문상훈 작가님께서 기획하신 《실패전》이라는 전시가, 퀴어들이 정상 사회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실패를 전시 형태로 묶어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문호영 님께서 「망작으로 말하기」라는 글을 《실패전》의 비평으로 써 주셨는데요. 한번 쭉 읽어 보겠습니다.

“《실패전》의 작품들이 이곳에 도달한 경로는 다양하다. 망작이란 기본적으로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오면서 노력을 배신하는데 작가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 창작자는 자신 있게 선보였지만 외부의 평가로 인해 좌절하게 된 경우도 있다. 공모에 떨어지거나 피드백 없이 잊혀지는 인기도 없고 관심도 못 받은 작품들은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실패로 접어든다. 양승욱 작가는 몇 년간의 노력이 담긴 작품을 선보였을 때 졸업 심사를 담당한 교수로부터 ‘너 장난감 많다고 자랑하려고 찍은 거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썼다. 이런 경험에서 오는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주문을 외우면서도 우리는 알고 있다. 실패를 급하게 지난 일 취급해버리기 전에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는 걸. 실패는 전시에도 포트폴리오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누락되지만 시도의 증거, 과정의 흔적이기도 하다.”3

이러한 방식으로 비평에서는 실패를 승화 또는 회복의 차원으로 봉합해 보려고 하는데요. 지금 문상훈 님이 말씀해 주신 맥락은 이러한 종류의 시도조차도 실패할 때, 잘 안될 때의 경험인 것 같습니다.

문상훈: 《실패전》을 열었을 때 저는 ‘실패’에 엄청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보이고, 사람들이 다들 실패라는 주제에 빠져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게 실패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래서 실패라는 주제가 어떤 힘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패전》을 기획하는 데 저는 굉장히 확신에 차 있었고, 이것이 잘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확신에 차서 할 때 우리는 항상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사실 희망 없이는 전투적으로 나가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나의 기대보다 미흡했다는 실패의 감각이 자꾸 쌓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가 어떤 태도나 자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책 『실패의 퀴어 예술』을 다 같이 읽는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요. 사실 시도를 해야 실패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시도를 하다 보면 계속 실패가 쌓이고, 무너지는 것이 자꾸 반복되고 누적되는 것 같습니다.

이반지하: 근데 저는 문상훈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실패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걸 실패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문상훈: 감정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감정의 영역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현상이나 결과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깊게 찾아 들고 침체하는 실패감, 실패의 감정이라고 봅니다.

이반지하: 작품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전시에 많은 관객이 찾아 주지 않았다거나, 그것이 이후에 어떤 작업이나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식의 실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문상훈: 복합적으로 그렇습니다.

이연숙: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는 라운드 테이블 후반부에 지원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나누겠지만, 저는 실패라는 주제를 얘기할 때 지금과 같은 침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실패에 대해 얘기할 때면 말수가 상당히 줄고, 각자의 실패를 떠올리면서 그것을 어떻게 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얘기할 수 없어 침잠하게 되는데요. 방금 있었던 그러한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승욱 작가님께서도 《Past Toys》 전시와 관련하여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양승욱: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장난감 1천 개를 이용해서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Fast Toys》였습니다. 이 작품을 2014~2015년에 열심히 작업해서 대학원 졸업 심사를 받았는데요. 패스트푸드 및 소비주의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작품을 설명했지만, 교수님은 제가 단순히 장난감을 많이 모았다고 자랑을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이 시리즈 작품으로 끊임없이 지원을 했지만 계속 떨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열심히 뼈를 갈며 작업했지만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작품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 와중에 공모에서는 3년 내에 했던 작업을 내라고 하니, 4~5년이 지난 작품은 낼 수 없어 이 작품은 그냥 묻힌 작업이 된 것입니다. 2020년도에 쇼엔텔이라는 공간에 지원하는 공모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쇼엔텔(show & tell), 즉 이미지 하나와 글 하나만 제출하는 공모였는데요. 그때 제가 그 작품의 이미지를 첨부하면서, “작품이 5년이 지나 더 이상 보여 줄 수 없는 신작이 되어버렸는데, 이를 보여 주고 싶다”라는 글을 작성해서 공모에 붙었습니다. 전시는 2020년에 열었지만 2015년도 작품을 선보였고, 이미 지나간 작품이기에 제목도 ‘Fast Toys’에서 ‘Past Toys’로 바꾸게 됐습니다.

이연숙: 지금 말씀해 주신 것은 이후에 지원 제도 또는 기회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다시 꺼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계속 실패의 경험에 대해,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할 정도로 축적된 실패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요. 혹시 이반지하 님께서는 보태 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이반지하: 기운을 내라고 해야 될까요? 제게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계신지요. 두 분의 성토에 대해 제게 어떤 입장으로 이야기를 청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연숙: 바로 이런 반응을, 말하자면 실패에 대한 감각이 퀴어 정체성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패를 지향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이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이러한 경험에는 공감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신가요?

이반지하: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 두 분이 말씀하신 이야기는 2~3년 전만 해도 정확히 저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저는 이미 책을 통해, 제가 졸업 작품에서 가짜-남성기를 잘랐다가 한 학기를 꿇게 되는 등의 많은 해프닝을 겪은 것을 만천하에 공개했고요. 그것이 아까 말씀하신 실패와 비슷한 맥락이겠죠? 대학 졸업 후 바로 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세대가 아니기도 했고, 미술 작가로 살아남으려면 기관에서 인맥을 쌓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것들에 이미 척을 진 상태였고 희망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 작업하고 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양승욱 작가님이 예전 작업을 몇 년이 지난 후에 전시하신 경험을 말씀해 주셨는데, 저 역시도 10년 전 작업을 전시했을 때 세상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옷장 위에는 여전히 많은 신작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원하는 때에 작업이 노출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실패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여기 계신 분들과 라운드 테이블을 하기 전, 사전 토크를 진행했을 때 혼란스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있는 지금의 저는 누군가의 눈에 굉장히 성공적인 길을 가고 있는 아티스트로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년 전 제가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저를 성공적인 길을 걷는 사람, 제도 안에 속한 사람, 초심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요즘 신진 작가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세대 차이도 많이 느낍니다. “기금이 작품의 수명을 3년밖에 주지 않기 때문에 3년이 지난 작품을 전시할 수 없었다”는 말도, 사실 기금이 없었던 시절에 미술을 시작했던 제게는 지금 세대에게 새로운, 혹은 다른 실패의 결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앞서 말씀하셨던, 미국의 백인 남성 연구자 크리스가 한국에 와서 리스트를 만든 후 “이 사람들이 한국의 진짜 퀴어 작가다”라고 말하는 방식은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식입니다. 이는 백인 연구자만이 아니라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제가 레즈비언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기획한 전시 《작전L》은, 어떤 학회에서 발표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가 레즈비언 전시를 해 보자”라고 의기투합하여 시작된 것이었어요.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는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시도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연숙: 퀴어 예술가가 어떤 미술관에 들어가거나 엄청 큰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됐을 때, 소위 공적인 방식으로 인정을 획득할 때, “저 작가 초심 잃었네”라고 반응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이반지하: 너도 초심을 잃고 싶으면서.

이연숙: “저 작가 초심 잃었네”라는 말의 밑바닥에는 같은 작가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질투나 선망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로서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원 사업에서 떨어졌을 때 내가 퀴어라서 떨어진 건가 작업이 별로라서 떨어진 건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사실 삶 전반에서 항상 발생합니다. 내가 당한 일이 퀴어라서 겪게 된 것인지 내가 사람이 별로라서 생긴 일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반지하: 만약 내가 시스젠더 헤테로 사회에 맞는 구성원이라면 시험 점수나 학벌 등 남들이 고민하는 것들만 생각하면서 살아도 됩니다. 하지만 퀴어적 존재의 경우에는 고민의 카드가 하나 더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퀴어라서’, ‘혹시 내가 페미니스트라서’, ‘혹시 내가 여자라서’ 등의 고민을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는 것 자체가 차별적 구조이며, 실패를 의미합니다. 이는 결과적 실패일 뿐만이 아니라, 과정에서도 배의 시간을 쓰게 되기에 과정 또한 실패에 밀접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연숙: 계속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원 제도가 마치 우리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되는 것이 매우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관점에서 대화를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1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 어떤 청중 분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질문이 3주 내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지원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돈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원금이 생기니 더 이상 작업이 즐겁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반지하: 돈을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돈의 아름다움을 모르지?

이연숙: 그분은 지원금을 받으면 작업이 괴롭고, 즐겁지가 않은데, 돈이 없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이러한 교착 상태가 우리의 공통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아까 이반지하 님께서 여기에는 세대의 문제도 있다는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예술가들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또는 학교 안에서, 지원금 신청 방법과 공모 사업 기획서 작성법을 배우는 수업을 듣기도 하고, 여러 사설 기관에서 공모 지원서 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육성되는 예술가들이 우리 세대에서는 흔히 발견됩니다.

하지만 “우리도 꼭 이렇게 해야 할까?”, “지원금 없이 작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계속해서 공모 지원 사업이 잘 안되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말씀해 주신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원금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나, 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승욱: 저는 모색이 아니고 그냥 하고 있습니다. 모색하고 싶어서 일부러 하는 게 아니고, 공모는 잘 안되지만 작업은 해야겠으니까 꾸역꾸역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7년 정도 지원금 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만약 신진 작가나 대학을 갓 졸업한 분이 저에게 와서 지원 제도 없이 작업을 하겠다고 말한다면, 저는 뜯어말리고 싶습니다. 기관에서 돈을 주는데 왜 굳이 힘들게 지원금 없이 하냐며 말리고 싶으면서도, 막상 저는 공모에서 떨어지고 있으니, 끊임없이 양가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상태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상훈: 저는 기획서 작성 자체에 대한 피로가 너무 심해서 작업을 못 하게 되기도 하다 보니, 지원 사업에 대한 회의감이 많은 편입니다. 보통 지원금이 1,500~2,000만 원인데, 이 돈이 과연 큰 돈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공연 기획 같은 경우는 지원금이 없으면 아예 못 하는 것을 알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작업은 공모전에서도 많이 떨어져서 사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비로 진행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크니 공모 지원금을 받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도 제 안에 공존합니다.

공모 지원 사업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까도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시기와 세대에는 공모 사업조차 없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학교 졸업 후, 교수들이 밀어주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로 나뉘었고, 전자는 계속 작업을 하고 후자는 어떻게든 해 나가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고려해 공모 사업이 좋은가 나쁜가를 생각하면, 작업의 절차가 좀 더 투명해진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연숙: 제 생각에는 공모 사업에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기획서를 쓰는 과정에서 깎여 나가는 것들을 고려하는 편이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먹힐 것 같은 아이템’을 기획서에 씁니다. 기획서를 쓸 때, ‘이런 것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제한하고 검열하며 판단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는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제가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가정할 때, 그런 작업이 공모에 붙어서 지원금을 사용할 경우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이성애 남성들이 재현하는 판타지보다도 퀴어 하위문화에서 재현하는 판타지와 관련해서 더 많은 검열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지원 과정에서 깎여 나가는 부분을 감수하고 돈을 받는 게 맞는 건지와 같은 실질적인 고민이 생깁니다. 양승욱 작가님도 섹슈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이에 대해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양승욱: 저는 섹슈얼한 이미지로 작업하는 것 그대로를 기획서에 집어넣습니다. 그러고는 떨어집니다. 떨어진 후에, 지원 사업에 선정된 사람들이나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전략적인 방법을 알려 줍니다. 하지만 저는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2~3년 동안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전략적인 방법도 시도해 보았지만, 제 구상과 다르게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하나도 안 되고, 스스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작업이 있더라도 기획서나 공모에 맞는 이미지를 그려 내고 제도에 맞춰서 지원서를 쓰지만, 저는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예술, 특히 퀴어 예술의 경우는 공모 제도로 인해 고유의 성격이 깎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원서에 맞추지 않으면 지원금도 못 받고 작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저는 공모 제도가 오히려 작가들을 존중하지 않는 형국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공모에 잘 선정되는 주변 작가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공모를 잘 쓰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업이 처음부터 공모에 잘 맞는 면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작업이 좋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요즘 이슈’와 관련된 작업을 하시니까, 글을 잘 쓰지 못해도 공모에 선정되는 경우를 꽤 많이 봤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그렇다면 내 글이 문제가 아니었나’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재단에서 일하는 지인이 “사실 작가들은 글을 잘 못 쓴다. 글을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작업이 좋으면 다 붙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는, ‘나는 모든 게 다 문제고 모든 게 다 엉망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내면의 실패를 생각합니다. ‘내가 퀴어라서, 혹은 나의 작업이 퀴어 작업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나 자체가 너무 구린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작업 원동력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문상훈: 공모 사업에 선정됐을 때나 안 됐을 때나, 계속 실패의 감정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공모 사업에 붙으면 약간의 돈이 생기니까 나를 갈아서 작업을 하고, 그럴 때면 거기에 존재하는 실패감이 있고요. 반대로 공모 사업에서 탈락하면 또 이중의 실패감이 생깁니다. 지원 사업에 신청할 때도 어떤 지원서에는 퀴어를 부각해서 쓰지만 어떤 지원서에는 나를 포장해서 감추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스스로를 검열할 때 생기는 감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연숙: 얘기를 듣다 보니 두 가지 선택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작업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모 사업에 채택되어서 전시를 하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반지하 님께서는 이러한 두 가지 선택지 또는 모델밖에 없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볼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양승욱 작가님이나 문상훈 작가님이 언급한 일화는 저도 똑같이 다 겪었던 것입니다. 두 분은 본인의 정체성을 현재 드러내놓고 작업을 하고 계시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그런 생각도 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작업에 대해 누가 물어볼 때 사실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누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 “미술가입니다”라고 답하면 “전시 언제 하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오고, “전시는 안 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러면 작업은 어디서 볼 수 있어요?”, “어떤 작업 하세요?”라는 물음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에 답을 하려면 커밍아웃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을 못 했습니다. 당시에는 미술 기금이 없었으니 다양성 기금을 찾아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재단에서 나오는 기금을 받기 위해 퀴어를 쓸 수 없으니 가족, 여성, 돌봄, 노동과 같은 주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있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전시는 운동권 옆에서 잠깐 껴서 하다가, 운동가들이 그림을 망쳐 놓으면 ‘그래 이게 민중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리가 없으니까 계속 여기저기 떠돌게 되고, 그런 와중에 작가로서 상처가 늘어갔습니다. 미술 제도에 대해서 화도 났고, 운동권 사람들은 진짜 작품이 뭔지도 모르고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민중미술 하나밖에 없고 개념도 없으니, 내 이미지도 여기저기 사용하니까 많이 힘들었습니다. ‘언제쯤 나는 미술가처럼 살 수 있지? 나는 언제 미술가가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오랜 시간 실패의 경험을 했습니다.

기금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신자유주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점점 더 심해지니 예술 분야는 ‘빈(貧)’ 자체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빈부 격차’에서 ‘빈’이 사라져서 가난한 이들은 아예 전시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격차’라는 단어도 우습게 느껴지는데, 가난한 사람은 결국 작가 활동을 하지 못하는 양극화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미술 자체가 씬이 얇고, 다층화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됩니다. 미술계가 잘하는 사람(여기서 잘하는 사람은 작품이 좋은 것을 포함하여 공적인 자아도 잘 내세울 수 있고 사회적인 커넥션도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시장 구조를 갖고 있기에, 씬이 얇아지면서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한 300명이 있으면 전교 1등만 살아남는 시스템이 아니라 중간층의 학생들도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승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년 과장인 사람과 신입 사원들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합체로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미술계는 매우 뛰어난 한 명의 예술가가 계속 전시를 올리고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식이기에, 나머지 예술가들은 대충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집이 잘 살거나 기금을 계속 받는 등의 굉장한 지원 없이는 대충 미술을 하면서 가끔 전시하는 중간의 위치로는 미술계의 호흡을 따라갈 수 없어서 씬이 점점 더 얇아지고 중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일어납니다.

이연숙: 대충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상의 일부로서 예술을 하는, 전문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아마추어 예술가’를 의미하며 그러한 예술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반지하: 그것도 그렇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도 직업으로 바라볼 때 당연히 모든 작가의 퍼포먼스 결과가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줄 세우면 안 되지”라고 말하면서 줄을 세우는 미술계에서, 어떤 작가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예술적으로도 위대한 작가라 평가 받기도 하고, 그와 달리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미적지근한 작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적지근한 시기를 버텨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무엇은 있어야 그 안에서 소위 대단한 작가도 탄생하는 순환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 사이의 두터운 여러 층위가 필요합니다. 프로페셔널이지만 조금 못할 수도 있고, 이런 사람도 좀 살아야 하지 않나요? 회사에서도 누군가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커버를 쳐 주면서 어떻게든 월급을 받아 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저 그런 커리어를 쌓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너무 극소수이고 그들은 제도가 있든 없든 잘할 사람들입니다.

이연숙: 오늘 길게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잘’이라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이라는 것을 커리어를 많이, 높이 쌓는다는 의미로 얘기하시는 건가요?

이반지하: 모든 면에서의 얘기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고흐처럼 귀를 자르는 대단한 예술가는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미적지근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연숙: 저는 개인적으로 미적지근한 예술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반지하: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이 얘기는 용어와 개념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연숙: 어떤 작가든지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반지하 님의 말씀은 전업 작가가 아닌 경우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개인의 자아 노동, 자기 표현을 요구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자기를 몰아붙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 자기 착취를 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이반지하: 네, 나의 노동이 제일 싸기 때문에.

이연숙: 이런 관점에서 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려고 했습니다.

이반지하: 혹시 플로어에서 질문을 받으면 어떨까요? 기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이연숙: 그럼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청중1: 제가 아까 언급된, 1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 질문을 했던 사람입니다. 우선 제가 제도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를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을 예시로 들자면, 재단이 지원하는 사업의 장르는 무용, 연극, 음악, 미술, 다원 총 5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울문화재단에서 ‘다원 장르’로 기금을 두 번 받아 봤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엔 위의 다섯 장르 중에 퀴어 예술이 속할 수 있는 분야는 없습니다. 다원 장르의 기금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다원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자신의 야망과 진로가 무엇인지를 적게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도 다원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것저것을 열심히 끌어 와서 다원 예술에 대해 씁니다. 이처럼 기금을 받으려면 저의 작업이 어떤 장르에 속해야 하는데, 과연 장르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됩니다.

퀴어 예술에는 여러 형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 무용이 아닌 춤, 담론장 만들기, 라운드 테이블, 드랙,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스탠드업 코미디, 다른 종류의 에세이 쓰기, 유튜브, 팟캐스트 등의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것들은 기존 예술의 장르를 기반으로 하여 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맞지 않으니, 내가 하고 싶은 작업으로 지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기금 지원 사업은, 자신의 장르가 뚜렷한 예술가들의 협업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듯합니다. 그러면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드랙 아티스트는 도대체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다가 다원이라는 장르에 끼워 넣게 되는 것이고요. 퀴어 예술을 어떤 장르에 끼워 넣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기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작업을 하고 기획서를 넣다가,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이 아무 장르에도 끼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저의 작업은 예술을 가장한 살풀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못 하는 게 많으니, 내가 남의 돈으로 살풀이를 하고 싶어서 지원서를 썼던 것인가, 이제는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주기적으로 듭니다. 자신의 작업이 예술이라고 판단하나 그것이 기존의 장르에 끼워 맞춰지지 않을 때 느끼는 실패감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기금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이반지하: 청중 분의 말씀을 듣고 생각난 것이 있어 제 얘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에 서류를 낼 때, 개인전 3회 이상의 경력을 갖지 못한 작가는 지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많은 레지던시들이 그러합니다. 아시겠지만 기금을 받지 않으면서 개인전을 최근 몇 년 안에 3회씩이나 해내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 레즈 바에서 했던 전시는 개인전이 아니겠지? 그건 개인전이 아닐 거야. 내가 그 카페에서 했던 전시는 개인전이 아닐 거야. 그러면 내가 했던 단독 콘서트는 당연히 개인전이 아니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들의 언어가 너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언어를 기반으로 해서 제 작품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일을 계속 같이 하던 분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이반지하 솔로 콘서트는 당연히 개인전이지. 그걸 그냥 퍼포먼스 경력으로 넣으시면 어떡해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내 작업의 장르를 그들의 언어에 맞춰서 다시 해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게으르고, 드랙이 정말 다원인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무엇이다”라고 떠먹여 주어야 겨우 받아먹는 정도만 가능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기존에 했던 것들을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제 것으로 다 흡수하고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2018년에 했던 개인전은 목요일마다 휴점을 했던 동네 단골 샌드위치 가게에서 진행했습니다. 그곳은 벽이 하얀 가게였고, 사장님과 저는 친분이 있었습니다. 작품이 10년 넘게 쌓이고 있으니 전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내 친구들도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가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획인데, 당시에 6주 동안 목요일마다 전시를 했어요. 아침 일찍 가서 DP를 하고, 가게 사장님의 물건에 피해를 끼치지 않게끔 조심하고, 전시를 끝내고 나서 혼자 설치를 다 풀고,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집에 가면 눈물만 났고, 오늘 전시장에 안 온 친구들 명단을 적어 놓았습니다. 샌드위치 가게가 굉장히 힙한 번화가 골목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는 ‘이 개인전은 사람들이 말하는 개인전이 아니야. 현대미술이 말하는 그 개인전이라고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전에는 마주치지 못했던 비평가 분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께서 그 전시를 ‘퍼포머티브한 전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약속된 시간과 장소가 있는 퍼포먼스적인 전시라는 거죠. 이는 어마어마한 공력이 든 새로운 형태의 개인전인데 왜 이것이 개인전 혹은 전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신선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퀴어 바에서 하는 전시는 진짜 전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레즈 바에서 하는 전시에 참여했을 때, 튀김 기름이 제 작품에 다 튈지라도 집에 돌아가서 제 작품에 묻은 기름을 다 닦아내는 시간을 가지면서 전시를 했습니다.

물론 제도 자체가 좋다는 말은 아니고요. 제도의 언어에 작품을 끼워 맞춰야 하는 것이 억울하지만 그 언어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하는 실패들이 절대 의미 없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상훈: 이반지하 님이 본인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신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어느 장르에 맞지 않는 건가, 내가 한 것이 예술이 아닌 건가 하고 실망하다 보면, 한 번의 시도로 끝나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면 ‘버티고 버텨서 이 작업을 계속 해야지’라는 생각이 조금씩 듭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는 누구나 자의식이 과잉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한 번의 실패가 매우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때 무너지지 않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며, 이러한 과정이 작업을 이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연숙: 저는 자신의 작업물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분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타협을 나의 실천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호세 에스테반 무노즈(José Esteban Muñoz)가 제시한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전략’은 어떤 것에 속해 있지 않음을 지향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자기 실천을 하는 것이고, 이러한 지향성을 곧 정체성으로 삼는 소수자의 생존 전략입니다. 호세 무노즈는 기존의 제도와 언어, 즉 ‘헤테로 정상성’의 언어를 훔치고 사용하면서 자기 작업을 하는 라틴 아메리카 예술가들의 방식을 중요한 예시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 전략은 헤테로 정상성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헤테로 정상성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그러므로 헤테로들에게 ‘팔리는’ 상품이 되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위험과 이득은 항상 같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타협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면 양승욱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절대 의지를 꺾지 않는 방식으로 기획서를 쓰시는데, 이런 면이 퀴어한 것이 아닌가, 이런 종류의 고집이 퀴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가지 방법론을 당연히 병행해야겠지만, 결국에는 기획서를 잘 쓰는 방법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제도라는 이름의 인정 속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글 두 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남웅 님이 쓴 「동시대 퀴어 예술의 예속과 불화」이고, 다른 하나는 오혜진 님이 쓴 「‘주체’와 불화하는 글쓰기 ─최근 한국 퀴어/페미니즘 문학의 에토스에 대한 메모」입니다. 이 두 글이 지향하는 바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2년 사이에 양적으로 많은 퀴어 예술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양적으로 많으니 무조건 좋은 것인지 또는 제도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인정 방식인지를 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웅 님의 글은 흥행하는 방식, 주류의 인정을 받는 방식의 예술이 우리 시대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위험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게이 유튜버가 내부자 유머로 트랜스 혐오나 여성 혐오를 발화하는데도 이것이 비판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채 그가 게이 유튜버라는 이유로 가시성을 확보하는 상황을 예속과 불화의 개념을 통해 언급합니다. 오혜진 님은 자신의 ‘파이’를 고려할 때의 파이가 주체성,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권리 혹은 파이가 없는 페미니스트/퀴어 문학은 가능한지 질문합니다. 이러한 비평이 던지는 문제의식을 생각하며, 저는 제도나 가시적인 미술, 주류의 퀴어 예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상훈: 제도 진입 여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미술대학에서 배운 것은 제도에 들어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 비물질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학습하면서, 그들의 작업이 좋은 미술이라는 상을 갖게 되고, 제도에 대한 반항적이고 삐딱한 태도가 내면에 자리 잡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도권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작업은 구리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제도권에 들어가는 것이 작가로서 생계를 이어 가고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가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제 작업이 제도권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겠고 고민하는 중이지만, 앞서 다룬 철학이나 이론들에는 공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생각하면, ‘내가 이런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제도권은 나쁘지 않고, 제도는 좋은 것이며, 거기에 들어가야 살 수 있어”라는 말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반지하: 근데 학교에서 제도가 나쁜 거라고 배운다고요?

문상훈: 제도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갖는 작가들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스스로 그것을 좋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승욱: 그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제도권의 중심을 꽉 잡고 계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돼서 잘 살고 있지만 너는 반항적인 예술가가 되어라.”

문상훈: 실제로 제가 학교 다닐 때 미대 교수님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양승욱: 제가 학부에서부터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미대 학부를 졸업할 때의 딜레마로 얘기되곤 하는 것이 방금 말씀하신 그것이었습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나중에 봤더니 그런 좋은 말을 했던 분들은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분들이었다.

문상훈: 일단 그 시대에 미술을 하고 교수까지 되셨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반지하: 좋은 교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전 없었습니다.

이연숙: 저희가 지금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것이 어떤 결론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승욱: 제가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양자택일 사이를 끊임없이 돌고 있습니다. 제도권에 들어갈 건지, 아니면 밖에서 버틴다기보다 그만둘 건지. 처음에 말씀하셨던 〈스폰지밥〉 이야기가 결국은 (잡아 먹혀서) 미술을 그만두고 없어지든지, 아니면 (기념품 가게의) 잘 팔리는 작가로 전시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둘 다 스폰지밥 자체를 인정해 주는 길은 아닙니다. 스폰지밥은 자기 자체로 인정받고 싶어 할 텐데 이런 선택지가 여전히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연숙: 2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제가 〈스폰지밥〉 예시를 들었습니다. 제가 스폰지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실패의 퀴어 예술』에서 계속 〈스폰지밥〉 이야기를 합니다. 스폰지밥으로서 어떻게 인정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이 책에서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친구들입니다.

제가 인용한 부분에서 뚱이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멍청해져도 좋아. 너랑 친구할 수 있으면”이라고 얘기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얘기하는 바는 “우리 모두 뚱이가 되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또는 스폰지밥과 뚱이 같은 친구 관계 안에서 대안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농담이나 창작의 방식을 통해, 죽거나 상품이 되는 숨 막히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스폰지밥과 뚱이‘처럼’ 관계 맺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반지하: ‘살친구’가 그거 아닌가요?

양승욱: 저희는 둘 다 스폰지밥입니다. 뚱이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꼬아서 얘기해 보자면, 뚱이가 저한테 뭘 해 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무한한 응원? 저는 흔히 말하는 인정론과 관련해서 뚱이가 나를 인정해 주는 것과 집게 사장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 주위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계속 인정해 주는 건 정말 좋지만,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연숙: 내면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뚱이와 집게 사장의 비유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상정하는 스폰지밥은, 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자기에게 중요하고 대단한지를 언어화할 수 있는 부류의 뚱이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응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상징계 안에서 당신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반지하: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게, 물질 자원이 아닐지라도 자원을 주는 것입니다.

이연숙: 그런 존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는 또 굉장히 구체적인 문제가 되긴 합니다.

문상훈: 퀴어 세계에는 뚱이보다 스폰지밥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연숙: 뚱이와 스폰지밥의 관계에서 스폰지밥은 공주이자, 뚱이가 모든 것을 해 주는 존재라는 말씀인가요?

이반지하: 저는 둘이 그렇게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뚱이처럼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폰지밥이 무엇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뚱이도 그걸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스폰지밥과 뚱이가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연숙: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저는 여기에 다른 요소들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인간 세계를 비유한 것으로서의 스폰지밥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의 독특한 관계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스폰지밥의 세계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대표하는 정신병적인 면모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세계 안에서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유토피아적인 이야기인 건 저도 알지만, 그건 우리가 꿈꿔볼 수 있는 세계 중에서 제일 나은 세계인 것 같아요. 뚱이는 할 수 있는 말이 매우 적고, 원하는 것은 먹는 것뿐이지만, 그것을 개선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뚱이와 스폰지밥이라는 존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이 있나요?

청중2: 오늘 토크는 너무 잘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도 지원 사업에서 떨어지고 와서 참 적절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예술적인 활동을 지원 사업의 기금을 받아서 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원 사업의 기획서를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그런 종류의 앎을 대체 어떻게 제공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추가적으로 코멘트를 달자면, ‘뚱이에게도 뚱이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돌봄을 ‘스폰지밥에게 뚱이 같은 친구가 되어 주기’ 혹은 ‘뚱이 되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뚱이에게도 뚱이가 필요하다면, 뚱이적인 것을 어떻게 더치페이할 수 있는가? 이런 감상과 고민이 듭니다.

그래서 가장 궁금한 점은, 어떻게 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기금을 받아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은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앎조차도 제도 안에서만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다면, 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돈을 받아 보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이반지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쓰는 서류를 잘 쓰고 싶은데 잘 쓰는 방법조차 내부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 같으니 어디에서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를 물으시는 건가요?

청중2: 네.

이연숙: 오늘의 라운드 테이블 주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질문이라 제가 도저히 대답을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쉽게 《BONY》 전시의 기획자와 작가들의 ‘내부’를 상상하고 그들을 동질화하는 것처럼, 라운드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뭔가 공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사실 내부라고 상정된 것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끼리 공유하고 있는 정보, 예를 들어 지원금을 잘 쓰는 법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전혀 없습니다. 저는 리서치를 하는 것이 제 일이기에 제가 가져온 예시를 찾은 것이며, 지원서를 잘 쓰는 법을 물으신다면 저는 대답할 수 없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양승욱: 아까 잠깐 보여 드렸던 워크숍이 하나 있습니다. 틀 자체를 잡아야 한다면 그것을 찾아서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지원서를 잘 쓰는 방법이 정말 궁금하시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선정되신 작가들에게 자료를 한번 보여 달라고 부탁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몇 번 그렇게 했음에도 제가 그 자료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서 더 이상 그 자료들은 저에게 효력이 없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는 정말 얼굴에 철판 깔고 보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래요, 한번 보여 드릴게요”라고 말할 거라는 것입니다. 저는 5~6명의 PDF 파일을 받아서 열심히 보았지만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떨어진 제 자료라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이반지하: 지금 완전 뚱이네. 마음이 따뜻한 친구네.

청중3: 안녕하세요. 이반지하 님, 양승욱 작가님, 이연숙 님도 다 기금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다른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기금과 관련된 것을 배우지 않고 나와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데요. 저와는 다르게 지금은 학교 안에서부터 출발하는 세대들이 나왔습니다. 제도, 지원, 기금이 만들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35~39세라는 명확한 커트라인과 기준들이 있습니다.

기금을 받아서 작업을 하는 것이 예술을 지속하는 방법인 건 맞지만, 한편으로 기금은 그것을 받지 않는 작업을 ‘구린 예술’이 되게 하는 인증마크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원이 없던 세대 혹은 지원이 이미 끊긴 세대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갈수록 기금이 인정마크로 기능하면서 예술가 자신도 기금을 받지 않거나 받지 못했던,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작업을 기금을 받은 작업과 분리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퀴어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나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금을 한번 받고 나니 본인은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허세를 부리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이나 기획서를 구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자신에게 생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이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연숙: 우리 안에 내면화된 위계가 분명히 작동할 것입니다. 사실 퀴어 작가들이 위계를 더 잘 인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으로, 또는 ‘정상’인 것과 ‘비정상’인 것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작가들 사이에서도 전시장에 걸리는 미술과는 다른 종류의 실천들이 미술 바깥에 있는 것으로 합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문상훈 작가님의 《레즈비언!》 전시가 활동, 운동을 미술의 영역에서 다시 볼 것을 제안하는 전시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 방식의 이해가 있다고 할 때, 이반지하 님이 목요일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연 전시나, 여성재단의 기금을 받아서 했던 전시를 우리가 미술의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미술로 정의되는 것들의 범주를 수정하면서요. 또는 미술과 미술 아닌 것 사이의 위계를 가지고 놀 수도 있고, 이것을 박차고 나올 수도 있겠죠. 정해진 한 가지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양승욱: 저는 얼마 전에 퀴어 작가 리서치를 혼자 했어요. 혼자 SNS를 살펴보기도 하고, 제가 여태 다녀온 전시를 다 찾고, 지인들의 전 남친, 전 여친들을 서치해서 150명 정도를 엑셀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안 한 작가, 퀴어이긴 하지만 퀴어 작업을 하지 않아서 스스로 퀴어 작가군에 들어오고 싶지 않아 하는 작가들을 모두 삭제하니 150명 중 100명이 안 되게 남았습니다. 그 파일에 포함되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캠페인 운동, 인권 운동 쪽에서 전시했던 분들이 훨씬 많이 있는데 이분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고, 이분들은 매번 가명을 써야 하는 상황에 있기에 찾기도 힘듭니다. 그중 한 분의 사례를 말하자면, 2017년에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회화 작업을 하신 여성분이신데요. 이분을 제가 아무리 찾아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지신 줄 알았는데, 저와 똑같이 프라이드 페어에 나와서 고양이 그림을 열심히 팔고,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이 “왜 이러이러한 작업은 없나요?”, “왜 이런 작가는 없어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작업과 작가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못 찾는 것임을 항상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 위치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미끄러지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모든 작가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업을 일회성으로밖에 할 수 없고 가명을 사용해야만 하는 퀴어 작가 분들이 실제로 어디서 어떻게 가명을 사용하면서 작업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카이빙 자료가 남아 있어도 그분들은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중4: 라운드 테이블의 대화가 공모에 당선되어서 지원금을 받는 문제에 집중되었는데, 이러한 지원에는 양승욱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담론적 인정’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좋은 비평과 피드백을 받는 것,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과 같은 보상은 제도의 인정에 따라오는 이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담론적인 해석과 비평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 예시로 들었던 〈스폰지밥〉의 ‘비정상적인’ 마을 사람들끼리 돈을 마련해 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성의 있는 피드백과 비평을 받는 돌파구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열렸던 2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 글 쓰는 아마추어가 겪는 가장 큰 문제가 누군가 글을 읽어주지 않으니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제도 안에서 생산된 글은 누군가 강제로라도 읽기 마련인데,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까운 지점들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비평을 주고받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상훈: 청중께서 말씀하신 문제에 정말 공감합니다. 제가 2020년에 《실패전》을 열었을 때 두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하나는 ‘실패 말하기’ 혹은 ‘실패 성토대회’였고, 나머지 하나는 《실패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평론가와 기획자에게 본인의 작업을 소개하고 작업에 대한 비평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들이 두 번째 프로그램에 신청을 안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거의 모든 작가들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며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띤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그 시간에 정말 목말라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사실 이런 기회 자체가 끊기고, 졸업을 안 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런 자리를 갖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비평을 주고받는 기회는 개인의 역량으로 만들기 힘드니 공적으로 마련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연숙: 그러니까 단순히 지인들 사이의 피드백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시죠?

문상훈: 지인의 커넥션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전》을 기획했을 때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도리어 《실패전》을 통해서 동료를 만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술 작업과 전시를 하지 않고, 졸업 후 시간이 많이 흐르면, 주변 친구들이 다 갈라집니다. 갈라진다는 것은 친구들의 경력도 달라지고 내 위치도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사라지게 되는 듯합니다.

이연숙: 2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한 청중 분께서 “어떻게 해야 콜렉티브를 할 수 있나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구하는 거예요?”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아까 질문을 주신 분은 어떠신가요? 피드백하는 동료를 만날 수 있을 만큼의 비위 좋은 성격을 갖고 계신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는 성격,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피드백을 주고받는 관계가 무조건 장려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반지하 님에게 ‘단독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장을 보태 인용을 하나 하자면,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는 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혼자 견뎌야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회차 라운드 테이블에서 답변했듯 저 같은 경우는 비위가 좋은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견딜 수 있기에 후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향을 가진 분들의 경우에는 피드백과 관련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반지하: 이것은 정말 작가별로 성향이 달라서 저도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소위 콜렉티브에 가까운 모임에서 미술하는 친구들, 기획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긴 했습니다. 나이가 30대만 넘어가도 미술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집니다. 물론 계속 콜렉티브로서 활동하는 작가분들도 있긴 하지만, 사실 콜렉티브가 짝을 이뤄서 오래 유지되기는 쉽지 않고, 특정 시기에 필요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성격적으로 혹은 작가의 성향상 협업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다닐 때 크리틱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고 피드백을 받을 때 ‘네가 뭔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피드백을 받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은 너무 이해하지만, 너무 다양한 작가들이 있다 보니 일괄적으로 “이게 좋다”라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중5: 저는 미술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작가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준비를 하면서 ‘내가 하는 이 일이 예술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보니,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등 핑계를 대자면 댈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질문해 주셨던 것들 모두 공감하며,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하면서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은, 내가 나를 작가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반지하 님은 “나는 작가니까, 예술가니까, 내가 하는 게 예술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보였는데요. 그 믿음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작가님 본인이 스스로를 믿는 것이 느껴지고 너무 멋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 자신을 믿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본인이 어떻게 그것을 느끼는지가 궁금합니다.

이반지하: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제가 고정된 존재 같을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확실한 의견을 가진 사람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술인가?”, “내가 제대로 된 예술가인가?”, “내가 예술가로서 잘 가고 있나?”, “내년에도 난 예술가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그냥 계속합니다. 이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멋진 존재로서 서 있지만 다시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사실 이 질문들은 제 안에 계속 존재합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인 맥락에서 예술가로 살고 싶은 의지가 되게 컸습니다. 내 이야기가 가치가 있고, 이 세상의 이야기가 ‘나’라는 필터를 거칠 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그 누구도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지 않는, 손상되기 쉬운 믿음입니다. 예술 혹은 퀴어 예술을 응원하는 분위기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이를 응원하지 않고 누구도 이를 장려하지 않을 겁니다.

이연숙: 하지만 해외, 특히 서유럽에서 퀴어 예술은 이미 메인 스트림의 영역이기에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봅니다. 물론 이 역시 환상일 수밖에 없겠지만요. 어찌되었든, 한국에서도 우리가 조금만 더 힘주면 퀴어 예술이 매력적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반지하: 제가 말하는 것은 그 차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현대미술가로 산다는 것 혹은 퀴어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응원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직업은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위험한 직업, 많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응원받지 못하는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절대로 삼성에 입사하는 것만큼 응원받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나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지만, 아까 말했던 뚱이 같은 친구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꼭 프로페셔널이 아니더라도 날 좋아해 주는 친구 몇 명 정도가 있어야 큰 믿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미술계에서 겪어 보았는데, 시기나 시류에 따라 기관과 기관장의 분위기는 늘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본인이 퀴어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이런 공적인 자리에 나오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집게 사장 같은 사람은 어제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지라도 내일은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뚱이 같은 존재는 그게 나의 내부든, 외부에 있는 친구든 간에, 상대적으로 영속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혼자 계속해서 쌓는 믿음이고 어떤 의미/차원에서는 인정의 영역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연숙: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로 라운드 테이블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요. 3주 동안 퀴어, 레즈비언, 아마추어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것에 대해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데 목말라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만든 것이고요. 이 라운드 테이블이 발화점이 되어서 더 많은 쓸데없는 행사들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게릴라성 이벤트 혹은 다 같이 놀 수 있는 장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말씀 나눠 주신 세 분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저급 이론들의 연합’〉(연구자: 이연숙) 중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 “실패의 퀴어 예술” 현장 장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세마 러닝 스테이션, 2022년 9월 23일. 패널: 문상훈, 양승욱, 이반지하, 이연숙. 사진: 김진주.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본 원고는 아래 일정으로 열렸던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저급 이론들의 연합’〉의 현장에서 나눈 말을 글로 옮기고 편집을 거쳐 보완된 녹취록입니다.
2022년 9월 8일 목요일 오후 3~5시 “여성 퀴어 작가의 콜렉티브”(패널: 야광 콜렉티브, 홍지영, 이연숙)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오후 3~5시 “아마추어리즘과 비평”(패널: 강덕구, 이여로, 이연숙)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오후 3~5시 “실패의 퀴어 예술”(패널: 문상훈, 양승욱, 이반지하, 이연숙)
라운드테이블 전체를 정리한 글은 이연숙, 「〈저급 이론들의 연합〉: 후기」입니다.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교정, 교열, 윤문: 정혜진


  1. 전시 《Past Toys》(2020) 서문에서 양승욱 작가의 말. 

  2. Judith Halberstam, The Queer Art of Failure (Duke University Press, 2011), 88. 

  3. 문호영, 「망작으로 말하기」, Plan B project spac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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