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배움의 일지

유지원
유지원은 미학을 공부했고, 기획자, 비평가, 통번역가, 때로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한다. 《박보마, 장다해: Defense》(d/p, 2020), 《그래비티 샤워》(N/A, 2021), 《교착상태: 아카이브적 여정》(YPC SPACE, 2022)과 리서치 프로젝트 ‘(Not) Your Typical Narcissist(2018~2021)’, ‘머티리얼 스터디(2021~)’ 등을 기획했다.

2022년 3월, 충무로 오토바이 거리 한쪽에 있는 작은 건물 4층에서 YPC SPACE가 개관했다. 총 25평 정도 되는 공간에 벽을 세워 1/3은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 룸을 마련하고 나머지는 전시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정비했다. 공간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공들여 진행한 것은 웹사이트 업데이트다. 2016년 9월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이라는 이름을 걸고 동인 활동을 시작할 때 처음 개설한 웹사이트는 이름처럼 노란색 바탕에 텍스트가 잔뜩 얹힌 모양이었다. 미술이나 그 인접 분야에 대해 ‘김뺘뺘’, ‘루크’, ‘총총’이 글을 올리는 것이 활동의 거의 전부였던 당시에는 간단한 형태의 웹사이트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유지원, 이아름, 권정현의 본명을 밝히며 시작된 YPC SPACE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제 웹사이트는 매달 새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신청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종종 열리는 전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을 남겨 일종의 포트폴리오 역할도 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새로운 웹사이트의 대문은 세 개의 열로 나뉘었고, 가독성을 올리기 위해 배경색은 사라졌다. 이렇게 개관전과 더불어 공간에 관객을 맞이하기 전 이러한 변화를 먼저 소통한 것이 바로 개편된 웹사이트였다. 늘어난 정보량은 활동의 다각화를 의미했고, 각종 프로그램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캘린더는 별도로 멤버를 충원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온 우리가 외부와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2015-2019: 소모임 활동과 동인 체제

세 사람, ✎상호편집, ✎동료학습

옐로우 펜 클럽 활동 초기에 올린 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2016.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옐로우 펜 클럽 활동 초기에 올린 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2016.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필명을 사용하는 3인의 동인(同人)이 되기 전, 우리는 1년간 소모임 활동을 지속했다. 주요 근거지는 학교 캠퍼스였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만나는 노란색 웹사이트에 구구절절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학내 카페에서 만났고, 그저 막연한 촉에 떠밀려 황급히 쓴 두어 문장만 가져와 다음 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본문을 쓴 단계에는 글을 어떻게 결론 맺어야 할지까지 구체적으로 조언하곤 했다. 결국 제멋대로 써오더라도 ‘너라면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겠다’고 납득할 만큼 서로의 글쓰기 여정과 방향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 혼자 읽기 난감한 참고문헌을 같이 읽거나 서로 관심이 있을 만한 전시나 아티클을 자주 공유해주었던 점, 딱히 동인 활동 중이라는 의식 없이 아무 때나 만나서 서로 아무 말이나 했다는 점은 의도했다기보다 그때그때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다 보니 형성된 질서였다. 이점들은 전혀 특별할 구석이 없었다. 집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원고의 중간 단계를 공유하기를 꺼린다는 것, 편집자가 필자에게 원고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극히 조심스러운 일이며, 대체로 글의 구성이나 내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 일이었다.

우리가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2010년대 중반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체불명의 계정과 임의의 활동 단위가 촘촘하게 얽혀 있는 네트워크를 타고 소식이 쉽게 공유되던 때였다. 이 네트워크 덕분에 전통적으로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 외에도 서울 외곽 곳곳에 작은 공간이 생겨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홍보하고 연결될 수 있었으니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든 관객이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이러한 ‘신생공간’의 작동방식에 동기화되어 전시를 보고 온라인에 리뷰를 남기는 동인이나 블로거가 있었고, 이들을 통칭하여 “온라인 비평가”나 “새로운 세대의 콜렉티브”라는 말이 붙기도 했다. 옐로우 펜 클럽은 이러한 맥락에 호명되면서 인터뷰에 응하거나 토크 같은 행사에 초청되는 일이 생겼고, 우리 자신의 활동 방식과 동력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의 하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집필의 중간 과정을 공유하며 생산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글쓰기 방식인 상호편집, 다른 하나는 각자의 관심 분야를 연구하는 동시에 그 지식을 서로에게 가르치는 동료학습이었다.

상호편집은 아직 오지 않은 글을 기대하며, 서로의 글쓰기에 긴밀하게 개입하는 활동이다. 웹사이트에 세 명의 글이 동시에 올라갔기 때문에 업로드 될 글을 함께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옐로우 펜 클럽은 원고의 점검과 편집을 마지막 단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글감을 고민하는 시점부터 적용했다. 막연하게 어떤 글이 쓰고 싶다는 인상이나 불현듯 찾아온 표현 몇 줄을 서로가 공유하면서 글의 잠재적인 방향성을 함께 살필 뿐만 아니라 이전에 썼던 글에 비추어 어떠한 변화가 기대되는지 일러주기도 했다. 그 이후 몇 주간, 설익은 문단을 함께 나누고, 막혀 있는 부분에 대해 스스럼없이 고백하며, 억지스러운 구간을 짚어주거나 가능한 결론을 대신 구상해주기도 했다. 이때 중요한 원칙은 ‘내가 보기에 좋은 글’이 아니라 ‘글쓴이가 쓸 수 있는 최선’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질서 없이 끄적인 문단을 선택, 배치하며 글을 만들어가는 김뺘뺘(나, 유지원), 내용 전체가 머릿속에 그려본 후 문장을 꾹꾹 눌러쓰는 루크(이아름), 정돈된 개요를 근거로 두괄식으로 글을 구성하는 총총(권정현)은 서로가 얼마나 다른 필자인지 잘 알고 있기에 전혀 다른 종류의 글이 나올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질성이 동인의 생명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완성한 글이 모두를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웹사이트에 최종 게재될 수 없었다. 게재는 투표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각 구성원이 33.333…% 만큼의 의결권을 가지기보다 모두가 100%씩 책임을 다하는 셈이었다.

다른 한편, 동료학습은 지식의 습득과 공유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수평적 연구법이다. 우리의 글은 주로 전시에 대한 리뷰였기 때문에 별도의 연구를 수반하기보다 해당 전시를 여러 번 보며 감상을 나누는 것도 충분한 준비 활동이 되었다. 하지만 간혹 특정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되거나, 어떤 영역을 다루기 위한 언어에 대한 결핍을 발견했다. 이러한 필요는 꽤 내밀한 것일 때가 많았는데, 상호편집의 과정 중에 당연하게 서로 공유했다. 공유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텍스트를 선정하여 같이 읽는 활동은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우리에게 전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동기였던 우리 중 누구라도 발언권을 선점하지 않았다. 주제를 발의한 사람조차 해당 분야에 전문가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맨눈으로 읽고, 채 다듬지 못한 감상을 부끄럼 없이 뱉곤 했다. 이때 각자 텍스트에 대해 정리한 내용은 이후 작성한 글에 배어 나오곤 했고, 함께 공부했던 우리는 그 주장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법을 같이 고민하곤 했다. 집필 활동과 게재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고, 겉으로 볼 때는 휴면기에 돌입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 이처럼 상호편집이 동료학습을 부르고, 그 반대로도 이어지는 나름의 리듬은 지속됐다.

2019-2021: 다시 시작하기 위한 쇼, 그리고 공개 워크숍

감각에 충실한 글쓰기, ✎확장의 다시 쓰기

《YPC (REBOOT) SHOW》 전시 전경, 5%, 2019. 사진: 임효진.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YPC (REBOOT) SHOW》 전시 전경, 5%, 2019. 사진: 임효진.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2019년 4월, 이태원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 겸 전시공간 5%의 초청으로 두 달간 프로그램 겸 전시 《YPC (REBOOT) SHOW》를 기획해서 진행했다. 집필 활동이 시들하던 때라 의외였다. 기왕이면 자발적인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꾸리기로 했다. 동인 활동 시작 당시와는 달리 2010년대 후반, 신생공간의 에너지는 소강상태가 되었고, 우리 셋도 각자 학위 논문을 쓰거나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자발적으로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이 버거워지고 있었다. 글을 우리의 웹사이트에 게재하지 못한 지 1년이 훌쩍 넘어가던 시점에 응원받으면 힘이 날까 하여, 글쓰기를 계기로 연이 닿은 동료로부터 선물을 받아 전시하고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여, 우리는 전시장 한편에 테이블을 두고 최대한 자주 모였다. 이때 진행한 워크숍 〈자, 시-작! 글쓰기〉는 어떻게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참여자를 모집해 회차별로 글쓰기의 시동을 걸 수 있는 단순한 과제를 소개하고, 이를 적용해 바로 그 자리에 40분 정도 글을 쓰고 합평하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 시작한 워크숍은 구성원 영입 없이 셋이서 진행해 온 글쓰기 과정을 한정적으로나마 외부에 적용해본 사례였다.

“묘사를 통해 작품의 형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복수의 시점을 설정하여 감상하는 신체의 규모와 시점을 의식하기, 간단한 서사를 창작하여 전시의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잡아보기.” 당시 제시했던 이 과제는 내가 김뺘뺘로서 글을 쓸 때 즐겨 찾던 기법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별다른 조건 없이 모여든 참여자가 당일 바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 제시했던 시작점이 공통으로 감각을 언어화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이다. 옐로우 펜 클럽의 집필 활동이 뜸했다고 해서 글을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러한 방법을 꽤 오래 잊고 있었다. 본명으로 청탁받아 쫓기듯 마감을 대할 때는 글이 있어야 하는 맥락과 기대치, ‘프로페셔널 비평가’로서 이론을 인용해야 한다는 막연하지만 확실한 압박, 결과물에 대한 불투명한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김뺘뺘’로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개발한 방법은 접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두 사람의 독자만을 위해 쓰는 것처럼, 내 글을 자신의 것처럼 붙들고 늘어질 이들에게 건네듯, 그러니 언제나 미완성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열려 있었던 당시 자아낸 시선까지 잊고 있었단 말이다. 그러니 ‘김뺘뺘’와 ‘유지원’의 작법이 미묘하게 달랐던 것은 물론이고, 다른 두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던 김뺘뺘는 오히려 간지러운 시도들을 뻔뻔하게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만난 이들에게 이러한 신뢰의 모험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워크숍을 통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스펙트럼의 결과물을 만났고, 그 글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읽고 다시 쓰기를 권하는 과정의 묘미를 발견했다.

이 워크숍에서 가능성을 보았던 보았던 스튜디오 파이의 제안으로 2020년 9월 미술 글쓰기 워크숍 〈본 것을 쓰기〉가 시작됐다. 흥미롭게 보았던 전시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참여자에게 글을 구상, 작성, 퇴고하는 법을 안내하고 합평을 진행했다. 묘사, 해석, 평가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미술 비평문의 구조를 참고 삼아 가르치지만, 감각에 충실한 글쓰기를 표방하고 상호편집의 원칙을 본격적으로 외부로 확장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일방적인 가르침이기보다 적극적으로 상호 피드백을 주고 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참여자의 자기소개로 워크숍이 시작된다. 소개의 양식은 물론 글이다. 참여자의 글은 우리 셋이 서로에게 그랬듯 일관된 원칙으로 재단하지 않았고, 오히려 글로부터 그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

글은 역시 글쓴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밝히고야 만다. 그의 배경, 취향, 사고방식, 언어적 습관까지.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무엇이든 읽어내려고 한다. “촘촘하게 묘사하신 것을 보니 관찰력이 좋으시군요.” “형용사와 부사의 활용이 다채롭고, 표현력이 풍부하시네요.” “문장이 간결해서 주장에 확신이 실립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은 우리가 시큰둥하게 보았던 전시로부터 큰 감명을 받아 그 감동을 글로 전해주기도 하고, 그다지 흥미로워 보이지 않아 아예 방문도 하지 않았던 전시에서 날카로운 논쟁점을 끌어내 펼쳐 보이기도 했다. 참여자가 지금껏 공부하고, 글 쓰고, 생각해온 역사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보고 온 전시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도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글로부터 배우고, 더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이미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글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다듬고 또 다듬는 일뿐이었다.

한 기수 당 참여자 여덟 명과 함께 했고, 지금까지 다섯 기수를 진행했다. 물론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하며 최종 결과물을 낸 것은 아니지만 대략 30여 편의 글은 족히 만났을 것이다. 2019년부터 글쓰기가 쉽지 않다며 곡소리를 내던 우리는 그 후로 3년간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술술 글을 뽑아내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더디게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글을 읽고, 다시 쓰며, 그다음 쓰기 활동을 도모하게 되었다.

2022: YPC SPACE

확장과 서비스, ✎배움의 실험, ✎프로그램 연계 전시

YPC SPACE 프로그램 룸, 2022. 사진: 이의록.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OPENING CEREMONY》 전시 전경, YPC SPACE, 2022. 사진: 이의록. 제공: 옐로우 펜 클럽(Yellow Pen Club).

2021년 무척 추운 겨울날 우리는 을지로와 충무로 거리를 쏘다니며 부동산 매물을 기웃거렸다. ‘정말 우리가 공간을 연다고? 그 일이 정말 일어나고 있다고?’ 반신반의하던 가운데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일과 그곳에 담길 내용과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시작이 그랬듯 거창한 청사진은 없었지만, 결국 우리의 동력이 동심원을 그리며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의 공간이라면 그것은 참신한 기획으로 널리 회자하거나 당대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가가 줄줄이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된다면 결코 거부할 마음은 없으나) 상호편집과 동료학습이 연장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 명이 열 명이 되고, 열 명이 사십 명이 되었던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공간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함께 글을 읽고 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지 살폈다. 결국 적당한 곳을 찾았을 때, 어디까지가 워크숍을 위한 공간이 될지 고민했다. 일단 그걸 결정하면 나머지는 전시 공간이 될 터였다.

개관을 앞두고 함께 글을 쓰고, 함께 배우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 워크숍과 더불어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함께 배우는 스터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각 프로그램이 다루는 주제는 달랐지만,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 과제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게 복병이 되었을 줄이야. 개관 소식과 세미나 홍보를 시작하자마자 주위에서 흥미로워 보인다며 관심을 표했지만, 실제 신청률은 높지 않았다. 지금까지 진행한 외부 프로그램 중 모객에 실패한 것은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수강료가 너무 높게 책정되었나? 우리가 강사로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걸까? 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히 재미있는데, 그건 우리만의 생각이었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채 가시기 전에 공간을 연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주위 동료에게서 듣게 된 피드백은 예상 밖이었다. 돌아가며 발제나 발표하고, 텍스트 결과물을 생산하고, 그것을 모두가 보도록 공개하는 일이 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한 달씩 매주 정해진 시간에 만나 읽고 쓰고 나누는 일은 마음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상호편집과 동료학습이 확장의 기로에서 난관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수월하게 모집하여 시작한 세미나에서는 지향했던 것만큼 세미나 진행자와 수강생이 함께 배우는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수강료를 지불하고 오는 참여자는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진행자를 ‘선생님’이라고 지칭한다. 게다가 YPC SPACE를 찾는 참여자 중 상당 수가 학생이거나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표방해왔던 수평적인 교육의 모델을 재고할 시점일지 의문하게 되기도 했다. 물리적인 공간과 더불어 대폭 확장된 세미나는 더 이상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는 모델이 된 것인지, 우리의 세미나가 정규 교육을 보완하는 일종의 방과 후 활동 같은 것이 되는지, 그것이 꼭 나쁜 일일지, 좋은 세미나란 무엇이며 이 공간이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세미나 수익금으로 운영 비용을 겨우 충당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은 불가피하게 서비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끌어안게 되었다. 우리는 요즘 세미나 수강생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만족도를 조사하고, 보완할 점은 없는지 묻는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그램이 수강생에게 주어지는 일방적인 서비스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관 다음 달부터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꾸렸다. 공간의 취지에 동의하면서 강의 경험이 많지 않은 분을 모시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세미나가 배우러 방문하는 참여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동료가 교수법을 실험하는 장소가 된다는 점도 보게 되었다. 물론 세미나가 잘 되는 것, 그러니까 수강생이 만족하며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 일에도 훈련과 실험이 필요하다. 세 사람의 모임에서 발생한 방법론이 외부로 확장되기까지 수년의 시간과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듯 말이다. 그 때문에 간혹 가지고 있는 경험에 비해 전달력이 부족하여 아쉬움을 남기거나 실험적인 교수법으로 수강생을 적잖이 당황하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세미나는 한 회차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진행자가 참여자와 더불어 배우고 서로 주파수를 맞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또한 공간의 중요한 방향성이었기에 6월 중에는 기획한 〈YPC OPEN PRESENTATION―이론에서 현장으로〉는 최근 석사 학위를 취득한 신진 이론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청중의 피드백과 질문을 받는 자리로 꾸렸다.

개관 5개월 차인 현시점에 우리는 전시 공간으로서의 YPC SPACE의 운영 방향 또한 여전히 고민하며 여러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개관을 앞두고 지난 몇 년 사이에 대관료가 대폭 상승하고, 자체 기획 없이 대관만 진행하는 전시 공간도 많이 생겨난 상황에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이 굳이 필요할 것인지 의문이었고, 큐레토리얼 콜렉티브가 아닌 우리가 어떤 전시를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중점적으로 시도했던 것은 프로그램 연계 전시였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국공립기관부터 작은 미술공간까지 익숙할 정도로, 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계 프로그램을 고안하곤 하는데, 우리가 하는 일은 처음부터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이 《YPC (REBOOT) SHOW》처럼 전시의 형태를 띨 때조차 프로그램의 일환에서 확장된 것이었다. 개관전에 이어 권정현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연 《바깥 일기》는 그 전 달에 진행한 워크숍 〈창작자의 책 읽기 – 자기 고백의 서사〉와 연계한 다섯 명의 참여자와 함께 했다.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와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의 저작을 읽는 이 모임은 시작부터 전시가 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4주 간의 배움과 나눔 끝에 전시로 다시 쓰인 것이다.

그다음 전시인 《교착 상태: 아카이브적 여정》은 류혜민 연구자를 초청하여 4월에 진행한 워크숍 〈미술 아카이브 세미나―모으고, 분류하고, 기술하기〉와 연계하여 기획했다. 올해 개관 예정인 예정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수집 사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에 만난 류혜민 연구자에게 아카이브가 구성되는 원리와 실무, 아카이브로부터 자료를 찾고 재구상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세미나를 제안했다. 《교착 상태: 아카이브적 여정》는 이 세미나를 기획한 계기가 된 생각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다시 쓴 것이다. 특히, 이 전시는 아카이브의 기본 원리가 되는 원칙과 일련의 처리 과정 없이는 잡다한 물품에 불과할 수 있는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여 고정하는 활동, 그리고 체계화된 질서에 의지하거나 그 빈틈을 파고들어 종적, 횡적 여정을 떠나는 예술적 실천의 역동을 살폈다.

지난 7여 년의 시간을 돌아본 상호 배움의 일지는 좁은 의미의 ‘우리’, 즉 지난 7년간 함께 해온 세 동료만의 일이 아니다. 미술 전시를 보고 이에 반응하는 데 집중했던 글쓰기 활동은 점차 확장되어 바깥을 다시 쓰는 데로 나아갔다. 여기서 다시 쓰기란 좁게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글을 퇴고하는 것부터 넓게는 미술 현장의 필요를 체감하며 현재 흐름의 일부를 재배치하는 일을 포함한다. 활동의 확장이 단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나 중심 가치를 널리 확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여정은 결론 없이 매번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규모와 방향성의 단위들이 만들어가는 미술 현장에서 시시각각 변모하는 우리의 위치와 역할, 책임과 영향을 마주한다. 공적 자원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기관이 아닌 우리가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하는 당위성, 작품 판매를 중계하는 갤러리나 소장을 추진하는 사립 미술관도 아닌 우리가 하는 전시의 의미, 매번 자기소개 문구를 고민하고 수정해야 하는 콜렉티브가 자발성과 연대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다음에 해야 할 일. 이 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의 모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선 이렇게 마무리하는 나의 기록은 총총/권정현이나 루크/이아름의 기억과 해석과는 아마 미세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인 시절 우리의 활동을 다시 쓰는 과정에서 동력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할 계기를 마련했던 만큼, 각자의 경험이 쓰이고, 서로에게 비추어 다시 쓰이고, 충돌하고 포개어져 다시 우리를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 2024 작가, 저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 SeMA Coral)에 수록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작가, 저자,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으며, 저작자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서면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각 저작물에 담긴 의견은 미술관이나 세마 코랄과 다를 수 있으며, 관련 사실에 대한 책임은 저자와 작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