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을 시간 〈세마 코랄 시계〉

민구홍
민구홍은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시적 연산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각각 5년 동안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한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활동한다. 핸드메이드 웹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서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통해 스튜디오 파이·취미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등과 어깨동무하며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하고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출판 지침』(공저, 국립현대미술관, 2018),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 『세상은 무슨 색일까요?』(브와포레, 2023)가 있다. 앞선 실천을 바탕으로 2022년 2월 22일부터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 디렉터로 일하며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웹프로그래머이자 디자이너, 편집자로도 활동하는 민구홍은 세마 코랄의 ‘지식’을 구성하는 여러 글의 제목과 문장을 재료로 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웹프로젝트를 제작한다.

세마 코랄의 기본이 되는 ‘지식’ 웹페이지에는 ‘목록 다운로드’ 아이콘이 있다. 이 아이콘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발행된 여러 글의 제목, 저자 등의 정보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표를 매번 업데이트하고 전자파일로 올려놓고 있다. 여러분은 한번 확인해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목록의 100번째 줄이 채워질 날이 벌써 코앞이다. 2021년 9월 정식으로 웹사이트를 공개한 이후 햇수로 3년째인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글 제목들은 그만큼 세마 코랄의 시간이 쌓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간의 축적은 아주 단순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독자들은 세마 코랄의 여러 글을 잘 찾아 읽고 있을까? 새로운 시간이 불러일으키는 필연적 과실로, 과거의 글을 찾기 힘들어지고 그래서 서서히 잊히고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지난 글들도 ‘다시 읽을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해 줄 누군가로, 세마 코랄의 웹사이트를 구축한 민구홍 웹프로그래머를 찾았다. 첫 개인전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To Whom It May Concern)》(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2)로 이제야 ‘작가’로서 등장한 민구홍은 진작부터 ‘기생’ 전략과 자리바꿈을 통해 일과 창작 사이의 변환을 타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의 이름에 ‘매뉴팩처링’을 붙여 ‘회사(업체)’로서 일해왔으나 창작으로 보인 것 중 하나가 2019년 발표한 〈소정 근로 시간〉이다. 이 작업은 회사의 시간 개념을 ‘방문객’(고객)과 ‘임직원’(노동자)로 각각 상정하고 아날로그 시계 침의 움직임을 문장으로 대체하여 만든 두 개의 웹페이지이다. 임직원의 시계 웹페이지는 2020년 《하나의 사건: 무빙/이미지》(서울시립미술관, 2020)에서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반면 자연인 작가명이 아닌 회사명으로 모니터에 틀어 전시되기도 했다. 세마 코랄에서 쌓여가는 글을 재소환할 방책으로, 민구홍 작가는 작품이자 온라인 시계 〈소정 근로 시간〉을 세마 코랄에 맞게 다시 만드는 아이디어를 답했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민구홍, 〈세마 코랄 시계〉, 2023.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세마 코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을 표방하는 『세마 코랄』이 문을 연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가운데 이렇게 꾸준하고 성실하게 운영된 사례가 또 있을까? 내가 알기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를 살펴봐도 손에 꼽기 어렵다. 이는 『세마 코랄』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쏟은 서울시립미술관 안팎의 전문가뿐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해 『세마 코랄』을 찾는 방문객들이 함께 이룩한 성과다. 『세마 코랄』의 2주년을 맞아 그들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세마 코랄 시계〉를 선보인다. 『세마 코랄』의 ‘지식’에 담긴 결과물의 제목을 무작위로 출력하는 이 웹 애플리케이션은 1초마다 6도씩 각도를 바꾸며 『세마 코랄』의 숨은 ‘산호초들’을 다시 되짚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시계로도 기능한다. 한편,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주장해왔다. “오늘날 출판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이제 출판은 종이 책 중심의 오프라인 출판과 웹사이트 중심의 온라인 출판으로 나뉜다.” 그 실천 가운데 하나로 이 글에서 『세마 코랄』을 부러 겹낫표로 묶은 까닭이다.

―민구홍, 작가노트, 2023.

민구홍, 〈세마 코랄 시계〉(2023)가 장착된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웹페이지 데스크톱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민구홍, 〈세마 코랄 시계〉(2023)가 장착된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웹페이지 모바일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세마 코랄 시계〉는 과거의 글도 우연에 기대 손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만든 커미션 웹프로젝트이자 세마 코랄 웹사이트의 새로운 기능이다. 세마 코랄에 맞게 재구성된 문장(문자)형 온라인 시계는 웹사이트에 원래 있던 메모장 바로 위에 놓았다. 모바일 기기에서는 화면 가장 아래에서 두 번째, 태블릿이나 PC 모니터에서는 오른쪽 중간에서 볼 수 있다. 세마 코랄 ‘지식’ 메뉴에 저장되고 공개된 글의 제목을 출력하는 원리로는 자바스크립트의 Math.random() 함수를 사용했다. 간혹 같은 제목이 연달아 나오는 걸 볼 수도 있는데, 이는 오류가 아니라 무작위 출력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제목이 1초에 6도씩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오면 벌써 1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1분이 10분이 되기 전에, OTT 서비스의 동영상 목록에서 호버링만 하듯 하지 말고, 끌리는 시계 침-제목을 클릭해 보자.

‘다시 읽을 시간’이다. 〈세마 코랄 시계〉는 9월 중에 발췌한 문장으로 시계 침을 한 번 더 조율할 예정이다. 화면에서 움직임은 초침 단위가 분명하지만, 언어로 움직이는 시간은 규모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이 시침이라면 문장은 분침이 된다.

민구홍 작가는 이번 세마 코랄 커미션 연구의 하나로, 작품 외에도 웹페이지에 관한 연구 글 한 편을 쓰고 있다. 최근 그가 한국어로 번역한, 미디어 연구자이자 예술가인J. R. 카펜터(J. R. Carpenter)의 「핸드메이드 웹(A Handmade Web)」에 관한 주해이자 역자 후기를 통해 길들여지지 않는 “시적이고 비타협적”인 것을 꿈꾸는 웹사이트 창작론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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