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

김승범
김승범은 엔드 유저를 위한 (혹은 의한) 컴퓨팅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메타미디어로서의 컴퓨팅이 리터러시 일부가 되어 엔드유저 개개인이 사유하고 표현할 때, 우리 문화와 사회를 채우고 있는 기술 매체에 대해 다르게 읽고 생각할 계기와 맥락이 만들어진다 생각한다. 이를 위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비언어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키트(KIT)를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세마 코랄의 여섯 번째 워크숍/강연은 김승범 작가가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로 선보인 〈Local-first Knowledge〉의 개념과 실천에 관한 공동의 이해를 형성하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2022년 11월 23일 온라인으로 마련된 이 자리에서 작가는 지식을 갖기 위한 도구를 단순하게 방법적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확장하고 재생성하는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나누고자 했습니다. 영감과 실행, 언어와 비언어적인 것을 교환하며 도구와 주체를 분리하지 않고 융합하는 지식 창작을 예시해 본 그날의 대화를 공유합니다.

엔드 유저와 로컬-퍼스트의 실천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세마 코랄은 웹 디지털 도구를 가지고 지식을 함께 만들고 나눌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여러 창작자분들과 함께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김승범 작가님께서는 “엔드 유저(end user)1를 위한 (혹은 의한) 컴퓨팅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합니다. 엔드 유저를 강조한 점이 작가님의 작품 활동뿐 아니라, 기술, 컴퓨터, 매체 미디어를 다루는 태도와 관점을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 “메타미디어로서의 컴퓨팅이 리터러시의 일부가 되어 엔드 유저 개개인이 사유하고 표현할 때, 문화와 사회를 채우고 있는 기술 매체에 대해 다르게 읽고 생각할 계기와 맥락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한 언어적이면서 비언어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키트(KIT)’를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2고도 하셨지요. 그래서 이런 태도를 가지고 미디어 작업을 하시는 김승범 작가님께 저희가 웹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기획자는 웹 도구를 활용한 작업이 창작물이자 키트가 되는 것이 가능할지 질문했고, 작가님께서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Local-first Knowledge〉라는 동명의 개념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드셨어요.

김승범: 소개를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라 생명과학, 컴퓨터 교육을 전공했고 이를 배경으로 컴퓨팅 기반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마 코랄에서 커미션으로 받은 웹 기반의 작업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강연의 제목 ‘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가 조금 거창하고 낯선 단어일 수 있지만,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에요. 제가 오래 전부터 고민한 개념이고 오늘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로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요즘 거대 언어 모델, 인공지능 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 창작자나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인공지능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 부분을 저의 도구로 만드는 연습을 해 보고자 구글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여러 모델을 연동시켰습니다. 오늘 강연에서 공유할 구글 프레젠테이션bit.ly/sema-coral-local-first-talk은 Local-first(로컬-퍼스트)3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슬라이드 옆에 부착된 이 도구는 ‘라이팅 프렌즈(Writing Friends)’이고 요즘 많이 사용하는 거대 언어 모델 GPT-3나 DALL-E를 연결시켰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어도비나 MS 프로그램 등 대부분의 기술 표현 매체는 스크립트로 확장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글 프레젠테이션 또한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유해 드린 프레젠테이션의 앱 스크립트에 들어가면 GPT-3나 DALL-E를 연결할 수 있는 코딩 몇 가지를 설정해 놓았습니다. 코딩 속 키에 접속하면 외부에 존재하는 거대 언어 모델, 인공지능의 기능을 쓸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여러분의 슬라이드에서도 제가 제작한 미완성의 도구인 라이팅 프렌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 발표 자료 웹페이지 http://bit.ly/sema-coral-local-first-talk 갈무리, 2022년 11월 23일. GPT-3와 DALL-E를 결합해 작가가 제작한 도구 ‘라이팅 프렌즈(writing friends)’는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 슬라이드 왼쪽 아래 영문의 설명을 선택한 다음, 오른쪽 Run DALL-E 버튼을 클릭하면 상단의 Style Context에 맞춰 해당 내용의 이미지가 생성되어 왼쪽 화면에 나타난다. 제공: 김승범.

라이팅 프렌즈가 가진 몇 가지 기능을 소개하자면 우선 간단하게 영어와 한글 번역이 가능합니다. 번역 도구를 넣은 이유는 GPT-3가 한글보다는 영어로 실행할 경우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GPT-3는 앞뒤 맥락을 고려하여 글을 생성합니다. 기존의 짧은 한 문장을 클릭한 후 이어쓰기 도구를 사용하여 덧붙여지는 여러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도구는 사용자의 의견과 다른 맥락으로 문장이 추가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라이팅 프렌즈는 DALL-E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비언어적 피드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도구를 공유하는 이유는 불완전한 키트를 활용하여 영감을 받고 다른 시도를 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그릴지 미리 정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한 낙서 스타일로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두꺼운 펠트 팬(Felt pen) 드로잉 스타일로 약간의 컬러가 있고 흰색 배경으로 이루어진 그림들을 화면에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모델이 글귀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 주고 이미지를 만들어 나갑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 발표 자료 웹페이지 http://bit.ly/sema-coral-local-first-talk 갈무리, 2022년 11월 23일. GPT-3와 DALL-E를 결합해 작가가 제작한 도구 ‘라이팅 프렌즈(writing friends)’를 사용해 생성한 이미지로, 프롬프트에 적용된 문장은 “style of simple doodle of little child, thick felt pen drawing, a few colors, white background”이다. 제공: 김승범.

보통 ‘엔드 유저’를 소프트웨어 사용자라고 인식하는데 제가 사용하는 엔드 유저는 컴퓨터를 자신의 표현, 창작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엔드 유저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적 컴퓨팅에 관심을 가지고 메타 미디어로서의 컴퓨터, 컴퓨팅과 관련하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적, 비언어적 키트를 만들고 나아가 워크숍, 전시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개인 작업과 더불어 ‘프로토룸(PROTOROOM)’이라는 메타 미디어 콜렉티브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에서는 디지털 아트 전공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수업도 진행합니다.

도구들을 활용하여 어떻게 이미지를 생성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문장을 DALL-E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그림으로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문장 줄이기를 GPT-3에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도구를 쓰는 거죠. GPT-3에 원래 문장과 함께 “summarize it in 1 sentence”라고 입력하여 요약한 문장으로 바꿉니다. 이제 DALL-E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 한 문장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길었던 글을 ‘키트를 만드는데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경험을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이야기를 풀어준다’ 정도로 GPT-3가 줄여주었네요. 이 문장을 가지고 이번에는 DALL-E를 사용해서 그림으로 표현해 보죠. 어울리는 그림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제가 이러한 이 실험을 하는 이유는, 보통 PPT에서 나타나는 이미지가 발표자의 설명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게, 제가 작성한 글에 관해 다른 관점으로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연 중간중간 도구를 이용해서 그림을 만들고 같이 보면서 진행할게요.

앞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비언어적인 경험을 ‘키트’라고 언급을 했는데 이 표현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선 웹사이트로 키트를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풀었던 작업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 코딩 언어 2개를 양쪽에 배치하고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하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컴퓨터 언어를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 언어는 시간을 투자해서 배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통상 존재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하여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가 바로 코딩의 언어입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 발표 자료 웹페이지 http://bit.ly/sema-coral-local-first-talk 갈무리, 2022년 11월 23일. 제공: 김승범.

화면에 제시된 두 가지 다른 컴퓨터 언어는 형식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그림을 그리는 코딩 언어입니다. 반면에 제시한 두 가지의 코딩 언어는 각기 다른 감각으로 인간에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왼쪽의 언어가 더 이해하기 쉽다고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오른쪽의 언어가 더 감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이야기하고 관찰하고 상상하며 코딩 언어가 기계적으로 문법을 이해하는 구조가 아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 언어임을 알리는 키트 작업을 워크숍, 전시를 통해 구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전유진 작가님, 미국에 계신 정앎 작가님과 함께 〈코드 밀 키트(CODE MEAL KIT)〉라는 작업을 진행했고 토요일 오전마다 소수로 모여서 총 열 차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컴퓨터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에 비유하는 단어들도 쓰입니다. 뿌리를 뜻하는 ‘루트(root)’, 오픈 소스(open source)에 소스는 양념을 뜻하는 그 소스와 단어가 같고, 껍질을 뜻하는 쉘(shell) 같은 단어들을 컴퓨터 분야에서도 많이 쓰거든요. 이렇게 사람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을 풀어나가며 동시에 진지한 기술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일련의 과정을 미술관 환경에서 풀어낼 수 있어서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작품 〈SmallBig-SØ〉(2022)는 저와 함께 콜렉티브 ‘프로토룸’으로 활동하고 있는 후니다 킴 작가와 협업하여 악기를 만든 작업입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작은 용량인 1KB(킬로바이트) 데이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상에 나온 열 개 이상의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계는 저장된 음악을 바탕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1KB 미만의 수식을 탐색하면서 소리를 찾고 만들어 나가는 기기입니다. 이를 이용하여 올해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현대사회는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거대한 규모 속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창작하는 반면에 이 작업은 작은 단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어 가면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또한 장난감이나 악기처럼 직관적으로 작동하여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섞여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컴퓨팅을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도우며 키트를 통해 전시, 퍼포먼스로 풀어나가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키트, 그리고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와 지식

세마 코랄에서 작업을 요청 받았을 때 제가 다루고자 했던 키워드는 ‘키트’라는 개념입니다. 이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데 과연 무엇을 느끼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로컬-퍼스트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제가 한 고민들을 풀어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상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물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분포된 것이 아니라 개인과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표현의 일부가 되고 개인의 사고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애착을 가진 물건이 있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만한 사물이 존재하는 등 다양한 사물 사이에서 인간은 일종의 사물의 일부로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기술적인 사물들이 점차 늘어나 기술적인 객체 없이 인간은 먹지도 살지도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스마트 워치 등의 컴퓨팅 사물이나 소프트웨어, 기기에 들어가는 개념 등 무형의 컴퓨팅 객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적 사물들의 속성이나 행위가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고 심지어 기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받습니다.

이러한 컴퓨팅 객체가 저의 작업의 주제인 동시에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기술적 객체의 사용법과 객체의 속성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물이나 기술적 존재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 기능을 100% 다 활용하지 못할지라도 일부를 익혀서 사용자의 표현으로 재가공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술적 객체를 처음 만날 때 사용법 위주로 기술을 바라봅니다. 교육계에서 일을 하면서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코딩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는지’입니다. 미술계에서도 기술을 기반으로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인데 이런 분들조차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사용법을 익히려고 다시 공부를 하고 배우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주어진 기능만 보고 기술적 객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모두 다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술적 객체를 만든 사람조차 그 객체가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 내리고 한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열 가지 기능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설명하더라도 기술적 객체가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다른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철도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단순히 사람들의 편의에 대한 기대를 예측했지만 실제로 철도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고 새로운 사업을 구축했으며 그동안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기술적 객체는 우리 주변에서 계속 상호작용하며 나아가는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사용법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객체의 숨겨진 속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제가 모르는 속성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컴퓨팅의 속성을 이해하고 어떤 속성을 기반으로 읽고 쓰고 소통하는지 고민해 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몇 가지 사건을 연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G사는 자사의 SNS 서비스를 출시한 지 8년 만에 종료를 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정리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이 서비스를 이용했을지도 모릅니다. 2020년 G사의 인증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해당 인증이 필요했던 관련 서비스들이 약 1시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멈추는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때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단되는 바람에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2021년 K통신사가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하는 도중에 명령어 하나를 빠뜨리면서 해당 통신망을 사용하는 인터넷 및 유/무선 전화가 전국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2022년 데이터 센터의 화재로 K사의 다수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고 해당 플랫폼에 의존하는 수많은 각종 서비스가 멈추면서 전국적으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들은 계속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거대 기업의 클라우드 플랫폼 환경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의 편리함을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기술을 너무나 편리하게 사용해서 쉽게 그 속성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기술은 연결이 끊어질 수 있고 늘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클라우드라는 건 없다. 그건 단지 다른 누군가의 컴퓨터일 뿐이다.(There is no cloud. It’s just someone else’s computer.)” ―크리스 와터스톤(Chris Watterston)

유명한 짤(인터넷 상의 이미지)로 돌아다니는 이 문구처럼 우리는 컴퓨터의 속성을 잊고 살아갑니다. 항상 베타의 상태인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종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은 주변 환경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정식으로 출시한 후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우려와 달리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시스템들은 견고합니다. 크게 망가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복구가 잘 이루어지고 기술적으로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인간이 거대한 기술, 클라우드,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고민을 하면서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Local-first Software)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개념에 대해서 짧게 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데이터 저장소를 서버에 중앙 집중함으로써 클라우드 앱은 사용자의 소유권과 주체성(agency)도 빼앗습니다. 서비스가 종료되면 소프트웨어가 작동을 중지하고 해당 소프트웨어로 생산된 데이터가 손실됩니다.” 딱딱한 표현이지만 결국 표현의 방법, 지식의 일부, 창작의 도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는 2019년 온워드!(Onward!) 컨퍼런스에서 네 명의 개발자이자 연구자 마틴 클레프만(Martin Kleppmann), 아담 위긴스(Adam Wiggins), 피터 반 할덴버그(Peter van Hardenberg), 마크 맥그라나간(Mark McGranaghan)가 발표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를 제안합니다. 이것은 사용자의 공동 작업과 소유권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일련의 원칙입니다. 로컬-퍼스트는 오프라인으로 작업하고 여러 장치와 협업할 수 있고 동시에 보안, 개인 정보 보호, 장기 보존 및 데이터의 사용자 제어를 개선합니다.” 우리는 클라우드를 쓸 때 공동 작업이 편리하고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는 동시에 개인이 100%를 소유할 수 없고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는 [사용자가 일부를 희생해야 하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가 아니라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컴퓨팅의 속성 중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특성을 바꾸는 질문입니다. 아직까지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 친화적 혹은 자본 친화적인 개념이 아니라서 널리 퍼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어떤 속성을 바꿀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봅니다.

이번 세마 코랄 작업을 하면서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가 기술적인 용어가 아니라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단어가 될 수 있게끔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Local-first Knowledge’라고 작품 제목을 지었고 바로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강연을 준비하며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앎을 안에 두기’라고 표기했습니다. ‘앎을 안에 두기’에서 ‘안’은 안쪽이라는 방향성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단어는 옆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꽤 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대상이나 표현의 일부를 더 가까이 둘 수 있는 노력과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식, 상호 작용을 나와 더 가까이 둘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사물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당연한 과정 속에서 ‘로컬-퍼스트’한 작업을 통해 스스로 기존과 다른 것을 발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2022. 웹사이트 갈무리. https://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이 사이트는 내용을 설명하는 사이트가 아니라 여러 개의 페이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세한 지식을 전달하는 ‘위키피디아’와도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컬-퍼스트 지식’의 개념들을 펼치기 위한 연습 노트로서 키트를 만들었고 이러한 키트는 보통 워크숍을 통해서 온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이자 초기 인공지능의 아버지인 시모어 페퍼트(Seymour Papert)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키트는 혼자 보고 읽고 듣기만 한다면 제대로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시모어는 인간의 언어는 이미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공유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내용, 언어로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에 대해 인지하기 위해 우리는 대상을 만지거나 보거나 혹은 직접 만들어보거나 약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모어는 ‘워크숍’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워크숍을 체험하고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는 대신에 워크숍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워크숍 사이트는 사용자가 쉽게 배회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웹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이트에는 거창한 설명이 아니라 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쉽게 서술했고 기술적인 설명이나 튜토리얼을 배제했습니다. 친절하게 설명하면 어떤 사람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사람은 읽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다가 관심이 생긴 사람이 적극적으로 모르는 개념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2022. 웹사이트 갈무리. https://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Local-first Knowledge 웹사이트에서 페이지가 링크된 작은 원을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팝업 창이 생성되며 맥락이 이어집니다. 정확히 1년만 옵시디언(Obsidian)4 웹 출판 서비스를 구독하기로 한 이 사이트는 2023년 10월 31일 호스팅을 종료하고 자동 결제를 꺼둔 구독 서비스로서 사용자의 지식과 경험은 미래에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이트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같은 페이지에 머무르다가 떠나기도 하고 처음에 놓쳤던 페이지를 발견하면 그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할 것입니다. 결국 이 사이트는 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음미하고 경험할 수 있는 키트입니다.

참고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이트는 페이지가 많지 않지만 사용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얻을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이 페이지들은 여백이 많이 존재하는데 사용자가 이를 보면서 내용이 불충분한 부분에 내용을 추가하는 재미가 존재합니다. 직접 사이트에서 고칠 수는 없지만 포킹(forking)5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저장소로 내용을 가져와서 자신의 컴퓨터에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옵시디언 도구를 통해 페이지를 수정하거나 덧붙여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Local-first Knowledge 웹페이지에 생소한 단어들이 있는데 이는 사용자가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단어 위주로 배치했습니다.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2022. 웹사이트 갈무리. https://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마지막으로 저는 실천을 권유합니다. ‘로컬-퍼스트 지식’을 위한 실천을 읽어보겠습니다.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에 대해 읽고 생각해 보세요.
몇몇의 사건을 통해 겪은 여러분의 삶의 영향을 생각해 보세요.
이 웹사이트를 포킹해서 소유해 보세요.
여러 페이지로 분산된 글쓰기를 시도해 보세요.
분산버전관리시스템 같은 개념이 여러분의 작업에 적용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세요.”

이처럼 이 작업은 ‘실천들을 여러분에게 공유하는 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개념

오늘 강연에 참석한 분들에게 앞서 언급한 개념은 낯설 수 있기에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존경하는 유명한 소설가 P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그 소설가가 새로운 소설을 쓰겠다고 독자에게 공지를 합니다. 보통은 소설을 다 쓴 다음에 공개를 할 텐데 이 소설가는 자기가 쓰는 첫 문장부터 그 과정을 독자들이 볼 수 있게 배려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설가는 완성된 문장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자들은 소설가의 한 문장이 쌓여서 챕터가 하나씩 늘어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이 나아가는 방향이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다고 느낀 일부 독자들이 소설가 P가 쓴 소설의 전반부를 가져다가 후반부를 이어서 쓰기 시작합니다. 이 새로운 소설들에 다른 독자들이 반응하면서 어떤 독자들은 새로운 소설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소설을 쓴 독자들은 소설가 P에게 원고를 보내며 글을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독자들이 쓴 새로운 소설을 읽다가 소설가 P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하여 그 글을 자신의 소설에 귀속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소설가 P가 쓴 글이고 어디부터가 독자들이 수정한 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들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고 혹은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일어날 수 있다고 해도 글이 수정되고 합쳐지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언급한 이 이야기의 과정은 분산버전관리시스템(Distributed Version Control System)의 일부 개념입니다. 대표적으로 도구 깃(Git)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웹 깃허브(Github) 서비스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개발자는 여러 사람과 협업하고 그에 따라 때로 발생하는 잡음이나 충돌을 풀어나가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이 감각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이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변의 기술 객체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개념을 기능이나 사용법이 아니라 기술의 속성으로 받아들여 제 작업에 반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흔히 사용되는 위키피디아는 위키위키(WikiWikiWeb)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 중 일부만 가져와서 정착된 서비스입니다. 위키위키를 만든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은 개발자이자 엔지니어이며 기술 분야의 아티스트입니다. 저는 위키위키를 예술적인 작업이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웹사이트를 방문자인 타인이 고쳐나가는 것은 개발자에게 좋은 일이 아니지만 오히려 위키위키는 적극적으로 이런 행위를 기능으로 만들었고 이는 생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키위키는 ‘연합 위키(Federated Wiki)’라는 개념을 만들어 스스로를 실험했고 유지되었지만 널리 퍼지지 못했습니다. 워드 커닝햄은 “위키처럼 느껴지는 여러 목소리의 합창(A chorus of voices that feels like a wiki)”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위키는 위키피디아의 속성이 아니라 위키위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속성들의 발현을 의미합니다. 사용자가 위키 페이지를 고치는 행위는 오리지널 위키 페이지를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쓰인 버전의 위키 복사본이 그 사용자의 소유가 되고, 이렇게 여러 버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분산버전관리시스템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페이지들이 유지되고 사용자만의 생각들이 쌓여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사용자가 편집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중앙 집중화된 편집으로 이루어지고 공동의 의견 일치를 요구합니다만, 연합 위키에서는 사용자가 편집한 글이 삭제되거나 다른 사용자와 다투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합창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워드 커닝햄은 로컬-퍼스트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의 작업은 로컬-퍼스트하면서 앎을 안에 두려고 하는 대표적인 노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서비스(연합 위키)는 사용성이 좋지 않아서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다른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혹은 예술 창작 분야에서 다른 방향으로 풀어보는 시도가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위키위키의 역사 중에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키위키가 타자의 텍스트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고 변화를 준다는 아이디어는 컴퓨터 과학자인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의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입니다. 버니바 부시의 소논문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As We May Think)」는 1945년 7월에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에 처음 게재되었고, 1945년 9월에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에 재게재되었습니다. 버니바 부시는 인류가 물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힘인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참여했던 과학자이자 동시에 미래에 다가올 정보의 폭발을 미리 예상하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발췌해 정리한 내용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는 쓸 필요가 없고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기계화와 이야기할 수 있다. 단순 반복적인 사고는 논리 법칙에 따라서 기계로 할 수 있다. 기록을 조회하는 방법은 기계가 파일을 알아서 검토하고 관련 항목들을 선택한다. 이런 관계들의 연관성에 의해서 우리 인간의 두뇌 파일들이 다뤄지며 이 두뇌 파일들은 기계 메멕스(Memex)를 사용하여 우리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과정들을 거칠 것이다.”6

위키위키의 아이디어는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밖으로 퍼져 있어 감각할 수 없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자기 언어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쓸 필요가 없다’라는 표현은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사람이 손으로 기록해야 하는 일인데 현대사회에서는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간이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거나 다른 생각을 펼칠 여지나 여유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논문은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면 좋은 논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2022. 웹사이트 갈무리. https://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서 세마 코랄 웹프로젝트로 선보인 페이지를 만들었고 앞으로 1년 동안 작은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저를 이 웹사이트의 저자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저는 첫 번째 저자일 뿐입니다. 워크숍을 통해 포킹, 분산버전관리시스템을 익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저자로서 여러분의 이름을 추가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네트워크, 생각, 표현을 만드는 공간을 생성하고 관리하는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대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Thank you to all the objects in the world) 오늘 사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를 하나 추출하면서 오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이미지가 하나 나오면 좋겠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앎을 안에 두기’〉 발표 자료 웹페이지 http://bit.ly/sema-coral-local-first-talk 갈무리, 2022년 11월 23일. 제공: 김승범.

대화

김진주: 세마 코랄의 제안을 받고 기술적 도구를 다루는 창작자로서 작업을 풀어나가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풀어내는 과정에서나 완성한 후에 느낌이 달랐을까요?

김승범: 저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쓰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어디까지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도구에 제 생각을 담아 표출할 때, 도구가 가진 기능이 강하게 표현되거나 제 생각보다 먼저 전달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비용이 충분히 확보가 된 상황이라면 저만의 도구를 만들어서 생각을 풀어나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끝없이 베타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기에 저만의 도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도구나 아이디어 중에 최대한 사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도구를 찾으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옵시디언을 선택하여 실험했습니다. 웹사이트 자체만으로는 전달이 어려울 수 있기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워크숍으로 더 이야기를 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주: 기술적인 능력이 많아질수록, 그러니까 리터러시가 많아지고 능력치가 올라갈수록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작가님은 지금보다 도구를 못 다루었을 때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김승범: 기술적 도구는 너무 광범위해서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도구도 많습니다. 미디어 작가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쓰는 도구를 저는 아직 안 쓴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무지의 상태에서 도구를 사용할 때 학습이 가능한지 아닌지의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소프트웨어를 비교해봅시다. 기술을 익히기 위해 문서도 읽고 실험도 하는 등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은 있지만 다시 학습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살펴봅시다.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여 저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혹은 학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단합니다. 물론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저는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기술을 선택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배워야 할 것이 매우 많지만 배우는 것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술의 사용법이 아니라 속성을 파악하는 데 집중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주변에 자주 보이는 대상의 속성을 찾아보고 익히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결국 그 속성이 여러분의 사고 방식, 표현에 영향을 줄 것 입니다. 계속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기술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보일 것입니다.

김진주: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최근의 작품 〈SmallBig-SØ〉과 겹치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용량의 서버를 가진 네트워크가 아니라 작은 도구에 담겨 가벼운 숫자로 보는 키트를 염두에 두고 만드셨지요.

김승범: 컴퓨터의 데이터는 실행 가능한 구조를 이룹니다. 굉장히 작은 데이터지만 실행할 수 있는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에 진행한 사운드 작업은 수식이 들어간 것이며 이 결과는 숫자로 나타납니다. 결과값은 소리로 나타나며 적용된 수식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서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슈퍼마리오 게임 속 한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의 크기는 몇 MB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 게임의 데이터 사이즈는 고작 40KB입니다. 아이러니하게 40KB의 데이터를 수 시간 동안 실행하는 결과물을 캡처할 때 더 큰 단위의 MB의 크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데이터가 많고 클수록 비례적으로 좋다는 우리의 편견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진주: 세마 코랄에서 진행한 작품은 키트를 웹사이트로 구축하면서 동시에 작업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복잡한 과제를 풀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예술적 표현이자 실천임을 강조하셨어요.

김승범: 컴퓨터 교육은 실용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딩을 이용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학생이 어떤 것을 성취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것이 컴퓨터 교육 분야에서 중요합니다. 쓸모 없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 컴퓨터 교육계와 달리 경계에 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예술 분야에서는 예술적 베이스를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표현 매체로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위키위키는 원래의 의도대로 퍼지지는 않았지만 도전했고 이 시도가 다른 곳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 급진적인 사고와 실험이 진행된 과정 그리고 그 영향력을 예술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메이크랩은 포킹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전시를 개최하고 미술계에서 언어화시켰습니다. 포킹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눠진다는 개념이 아니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컴퓨터의 속성을 이해하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저는 컴퓨팅 환경에서 표현하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미술계에서 놓칠 법한 개념을 다른 분야에서 가져와서 다시 풀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번 코랄 작업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컬-퍼스트를 소프트웨어로서 차용하면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보일 수 있고, 반면 이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본래의 아이디어(로컬-퍼스트)대로 쓴 것이 아닐 겁니다. 과정을 제대로 사용해야 지식이 된다는 의도로 가져온 개념입니다.

김진주: 온라인 관객 중에 미디어 작품과 교육 활동도 하시는 최승준 님께서 질문을 주셨습니다. “연합 위키, 로컬-퍼스트의 철학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큰 유행에 묻어가면서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도 생기고 특히 개인이 세상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며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 접근이 널리 알려지고 지속 가능할까요?”

김승범: 지속하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널리 알려지는 것은 어떤 사람이 커뮤니티 안에서 그 개념을 전달하고, 말하고, 유지한다면 기회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고 봅니다. 저와 최승준 님 그리고 몇몇 분이 모여서 컴퓨터 분야 속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개념들을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채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널리 알릴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AI 기술에 거대 자본이 덧붙여져 우리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펀드나 자본이 끊어져서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나 기술, 실험이 도태되고 가려지기도 합니다.

김진주: 다른 관객 참여자께서 “일반인이 에디터를 쓸 때 접근하기 쉬운 루트가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김승범: 저는 앞서 언급했듯이 옵시디언을 쓰고 있고 찾아보면 많은 도구가 있습니다. 처음 접근하신다면 쉽게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옵시디언을 추천합니다. 옵시디언 외에도 롬 리서치(Roam Research), 로그 시퀀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에버노트, 인공지능과 플러그인이 되는 노션 등 많은 도구가 있습니다. 이런 도구와 달리 옵시디언은 다른 페이지와 페이지 간의 연결 지점을 촉발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크롤을 계속 내리는 긴 문서로 한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 안의 개념들을 다른 페이지로 연결하면서 페이지와 페이지의 관계를 건설합니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법으로 90,000개가 넘는 카드 노트를 만들어서 지식을 재정비하고 연결하며 자신의 언어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종이와 종이 사이의 링크를 만들기가 어려웠던 제텔카스텐을 기반으로 두어 현대사회의 옵시디언과 같은 자동화 모델은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발전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용자가 도구를 이용하여 분산 쓰기를 할 때 도구가 가진 속성이나 느낌이 분명히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제텔카스텐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도구를 방법론적으로 따라가면 도구가 복잡하기만 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선을 잘 지켜서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진주: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모습이 마치 연주처럼 보였습니다. 컴퓨팅 언어와 같이 지식을 편집하는 언어는 나 자신이 쓰는 언어가 아니고 비언어적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언어적인 상호작용을 포용하면서 어떻게 이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김승범: 생각할 때의 나와 발화할 때의 나, 글을 쓸 때의 나는 다릅니다. 농담조로 사람들은 6개월 전에 쓴 글이 나의 글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는 언어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말하면서 축소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순서가 논리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저는 거대 언어 모델이나 DALL-E를 표현의 언어로 사용하지만 이런 기술은 아직 사회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정의가 제대로 안 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것이며 여러분의 소비를 부추길 것입니다. 어느 순간 생각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통해 개인의 창의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면 사용성이 떨어지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저는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여러 거대언어 모델과 연결했고 이를 통해 그동안 제가 해왔던 작업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기존에 제가 알던 슬라이드와는 다른 슬라이드일까, 아니면 슬라이드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걸까, 혹은 AI가 작동할 때마다 뻔했던 속성들이 다 바뀌게 되는 걸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거대 언어 모델이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인터페이스화 되기 때문에 우리는 속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유심히 지켜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어진 도구의 서비스, 사용법에만 얽매인다면 더 좋은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김진주: 최승준 님께서 오늘 발표 자료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메멕스 이야기가 롬 리서치의 트위터에도 나온다고 언급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라고 덧붙여서 코멘트도 달아 주셨어요. 작가님께서 발표 자료에서 보여 주신 메멕스의 그림이 사실상 우리 앞에 이미 와 있고 우리는 이미 그 기계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승범: 그동안 기술, 서비스를 쓰면서 정보를 많이 수집했지만 그 정보가 모두 다 테두리 밖에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메멕스는 ‘밖에 두자’라는 개념이 아니라 사용자가 추리거나 자기 언어화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사용하는 작업입니다. 메멕스에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서비스는 잘못 사용하면 결국 복잡한 자료를 자신의 안에다가 쌓고 붙여 넣기만 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구는 계속 바뀌지만 사용자는 바뀌는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아 허무했습니다. 이때 로컬 퍼스트 소프트웨어가 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고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메멕스나 부시의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위키위키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김진주: 역시 참여자 중에 작가로 활동하시는 후니다 킴 님께서 “언어의 트랜스포팅! 향연들이 앞으로 더 활발해지겠죠. 확장이 아닌 이식이 되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라고 코멘트를 달아 주셨습니다. 이 말은 무조건 몸집을 불리거나 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식된다는 의미에서 교체되거나 변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개체의 속성, 주체의 속성이 변화함에 따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김승범: 후니다 킴 님은 기술 장치가 몸의 일부로서 이식될 때 감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확장, 사고의 확장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분산버전관리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개발자만 사용할 것 같은 딱딱함이 떠오릅니다. 이 개념과 사고 방식을 사용자가 기존에 쓰던 것과 접목했을 때,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기에 개발자만 이를 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고방식의 이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아직 이런 것이 발현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개발자들도 이를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진주: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기술을 활용하는 제작자로서 평소에 가지고 계신 작가님의 교육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지식의 총체인 교육 공간, 즉 교실에서 경험하는 지식의 공유는 어떤가요? 기술이나 지식을 공유하는 실천 중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움직임도 많은데,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승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든 배우는 사람이든 지식의 경계 없이 서로 들여다보거나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설정한 후 최소한의 교류만 진행됩니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교육 과정에 대해서 서로 터치를 하지 않습니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최소한으로 열린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융합하는 것은 결국 학생들입니다. A 수업을 듣고 B 수업을 들으면서 충돌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은 학생의 특권이지만 학교의 권위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취사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한계점을 발견하면서 학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제가 학교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세마 코랄과 같은 작업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거나 개인 작업을 하면서 전시나 워크숍을 통해 교육의 장을 열어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모색 중입니다.

국내의 위키위키 문화를 처음 만든 분인 김창준 님이 오늘 강연을 듣고 계셔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했는데 사라지신 것 같습니다. 그가 만든 노스모크(no-smok.net)라는 커뮤니티의 문화는 자유롭게 사람들이 생각을 나누고 수많은 아이디어를 생산시키면서 동시에 룰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노스모크가 생겨난 초창기에는 위키위키와 같은 커뮤니티가 더 늘어나는 것에 대해 기대를 가졌지만 지금은 이런 문화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습니다.

위키위키는 사용자를 자유롭게 만들고자 의도했지만 사용자들 안에서 편집의 권한이 부여되고 위계가 생기며 다른 의견이 묻히고 사라졌습니다. 고정된 사이트로 정해지는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키위키는 끊임없이 유입이 존재합니다. 유입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면 튼튼한 위키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한 위키가 될 수 있는 극과 극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워드 커닝햄이 연합 위키를 만들 때, 처음부터 깃허브에 코드를 짠 것이 아니라 ‘나 지금부터 이런 위키를 만들 거야’라고 글을 쓰면서 코드를 발전시켰습니다. 당시에 이 과정을 보면서 이해하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당시 그 과정을 보고 읽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와닿지 않았습니다. 한참 지나고 난 후에 ‘내가 놓치고 있었던 속성들이 있었고 당시에 저런 것을 만들려고 했고, 아쉽게도 유지되고 있지만, 영향력은 없을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김진주: 도구를 알아가고 쓰는 데까지는 시간이 드니까요. 그 뒤늦은 시차는 사물과 내가 감사하게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다림인 것 같습니다. 키트와 지식 공유라는 문제를 흥미롭게 작업으로 풀어 주신 김승범 작가님, 그리고 온라인으로 참여해 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교정, 교열, 윤문: 권정현


  1. 이 글의 각주는 모두 권정현 편집자가 덧붙였다. ‘엔드 유저’는 최종 사용자를 뜻하는 단어로 경제학에서는 물건 유통의 최종 단계에서 구매하여 사용하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반 사용자를 가리킨다. 

  2. 김승범 소개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서울시립미술관, http://semacoral.org/producers/seungbumkim

  3. 로컬-퍼스트는 로컬-퍼스트 소프트웨어라는 컴퓨팅 분야의 개념에서 파생된 단어로 로컬을 존중함으로써 네트워크 기반의 장점을 가져가면서도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과 제어권을 우선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컬-퍼스트 방식에서는 사용자가 오프라인으로 작업하고 여러 장치에서 협업하면서 보안, 개인 정보 보호, 장기 보존 및 데이터의 사용자 제어를 개선할 수 있다. 

  4. 옵시디언(Obsidian)은 로컬 저장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메모 작성 소프트웨어이다. 

  5. 포킹(forking)은 기존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가져와 독립적인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뜻한다. 세마 코랄에는 ‘포킹’에 관한 다음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포킹룸, 「아니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서울시립미술관, 2022년 7월 28일, http://semacoral.org/features/unmakelab-minhyeongkang-forkingroom-conversation.  

  6. 원문은 다음과 같다. Vannevar Bush, “As We May Think,” Atlantic Monthly, July 1945,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1945/07/as-we-may-think/303881/; Life Magazine, September 10, 1945, http://worrydream.com/refs/Bush%20-%20As%20We%20May%20Think%20(Life%20Magazine%209-10-194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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