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냥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포킹룸
포킹룸 ‘가지치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포킹(forking)’은 오픈소스 문화에서 코드나 기술이 여러 개의 버전으로 분기되는 과정, 혹은 그를 위한 기능을 일컫는 말이다. 포킹룸은 이러한 ‘포킹’이 가지는 공통적이면서도 호환 불가능한 분기를 실행의 모형으로 두고 리서치, 전시, 워크숍, 강연, 토크 등이 진행되는 일시적인 플랫폼이자 연속적인 프로젝트로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 주로 동시대의 사회, 기술, 예술이 동시에 직면하고 있는 현상에서 주제를 정해 진행하고 있으며, 리서치를 중요하게 다루는 플랫폼으로 설정한다. 개별적 리서치의 과정의 토대 위에 예술, 기술, 사회가 주고받을 수 있는 공통성의 구성에 관심을 둔다. 2021년까지는 언메이크랩(송수연, 최빛나)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으며, 2022년부터는 좀 더 확장된 협업적 조직을 지향하며 기획자 강민형이 협력하고 있다.

이 대담은 15명의 질문자들이 이메일로 보내준 질문을 토대로 3명의 《포킹룸(Forking Room) 2022》 진행자들이 나눈 대화입니다. 사려 깊은 질문을 보내어 준 15명의 질문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담자: 강민형, 송수연, 최빛나

질문자: 김다예, 김민아, 김선형, 김승범, 남선미, 소원영, 양숙현, 윤원화, 이재옥, 전유진, 제닌기, 조성현, 최선주, 최승준, 황주선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 현수막, 탈영역우정국, 2022. 제공: 포킹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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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과 항소

( ) 아니 그냥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저는 모든 게 너무 커져 버린 거 같은 느낌이에요. 저는 살짝 질문했는데 엄청 큰 질문으로 되돌아온 느낌을 받았거든요. 네, 15명에게서 답장을 받았죠. 포킹룸에 참여했던 연구자, 작가, 관객들. 포킹룸에 궁금한 것을 질문을 부탁드렸는데, 답장이 하나씩 도착하면서 약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묻는 질문처럼 보인 것들도 있었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다 질문 자체에 답이 있더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왠지 현문우답이 될 거 같은 기분도 들었어요. 그래서 메일을 하나씩 열어 보는 게 약간 알 수 없는 소포를 풀어보는 기분 같기도 했어요. 한편으로 여기 세 명 모두 비슷한 태도가 있는 게 이 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진 않죠. 그래서 이런 글 - ‘의미를 길어내야 하는 글’을 요청받으면 고민이 돼요. 이를테면 커머닝이나 커먼즈에 대해 어느새 슬쩍 얹어 얘기하려는 태도 같은 게 나오는 거 말이에요. 그건 여전히 세밀하게 자신을 얘기해 내는 언어가 부족한 거란 생각이 들어요. 처음 시작했던 걸 떠올려보면 내가 알고 싶은 지식과 활동은 예술가, 활동가, 연구자들의 공통적 질문이 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경계가 나누어져 있을까에 대한 답답함이 꽤 큰 동력이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자리를 만들었는데 처음은 박재용 씨가 운영하는 서울리딩룸이라는 작은 공간을 빌려 시작했었고 그 이후엔 리니어 콜렉티브가 운영하는 탈영역우정국의 공간 후원이 있었죠. 그런 공간들과 운영자의 존재도 포킹룸이 지속되는데 큰 바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참여하는 분들. 오히려 그런 존재들이 스스로 의미를 지정하거나, 약속하는 것보다 더 큰 지지대가 되는 거 같아요. 매해 조금씩 형식을 달리하며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좀은 기민하게 움직이려는 접근들이 더해지며 지금의 꼴을 갖추게 된 게 있네요. 그러다 보니 6년이 되었고요. 저로는 굳이 표현을 하자면 이건 ‘항소’같은 것일 수는 있을 거 같아요. 내가 관심이 있는 일들이 있단 말이죠. 당신이 자꾸 이상하게 말을 붙이니까 아니라고 얘기하려고 하는 느낌이 있죠. 진짜 기술을 사랑해서 예술을 사랑해서 이걸 하는 게 아니라. ‘이건 소송은 아니지만 항소다! 항소!’ 이렇게 되는 (웃음) 아 공감되는데요. 근데 비판을 하는 항소가 아니라, 다른 관점을 얘기하고, 구축하려는 방식의 항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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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킹 그리고 공동체

가지치기, 버전 분기라는 뜻을 가진 ‘포킹’이라는 방법론에 대해 질문이 많았죠. 포킹이라는 단어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실행적인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한거 같아요. 어떤 분은 보르헤스의 「갈림길의 정원(The Garden of Forking Paths)」을 언급하며 ‘탐색 가능한 다양한 가지 그리고 갈림길에서의 길 잃음’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죠. 역시 질문자들의 질문이 더 좋네요! 네. 저도 그 의미가 무척 좋았어요. 사실 포킹이라는 단어는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서 가지고 왔는데 종종 이것이 은연중 잘못 이해되는 것도 느껴요. 이를테면 ‘포킹(forking)’이라는 단어가 ‘쉐어(share)’로 이해되는 것이 그런 것일 거 같아요. 어떨 때는 우리조차 그런 뉘앙스로 실행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사랑받기 좋은 방법이니까요. 좀 안심이 되는 그런 영역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래서 오해의 뉘앙스가 생기는 부분도 좋아해요. 하지만 분기되는 것은 사실 ‘호환 불가능해짐’의 의미이거든요. 버전이 달라지면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매력적이죠. 등 돌리고 마주하고 있는 느낌. 그리고 보통 포킹이라고 하면 하향적 분기를 생각하기 쉬운데 상위 포킹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아예 갈라져 버리는 하드 포킹 같은 것들도 있잖아요. 이제까지 우리가 커뮤니티성을 이야기할 때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메커니즘이 있죠. 아마도 우리가 기술이 추동하는 사회적인 부분들을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정동적인 매니페스토 같은 것을 기반으로 ‘공통성과 분기’를 이야기한다면 굉장히 맞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정동적인 면보다는 메커니즘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모델을 생각해 보게 되죠. 그게 우리에겐 포킹이었던 거 같아요. 메커니즘은 그 시대의 감각이나 생각의 구조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인식의 틀 같은 거잖아요. 만일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면 그 커뮤니티를 어떤 다른 메커니즘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도 중요한 거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포킹을 하려면 일단 포킹할 ‘꺼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꺼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의 부분, 그 부분은 종종 간과되기 쉬운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게 되죠.

근데 그거를 그렇게 얘기를 해도 그냥 습관적으로 사용해왔던 의미로 ‘공동체, 커뮤니티’ 이러면 난망해지는 거죠. 맞아요. 많은 걸 덮어 버리는 게 되죠. 세계가 힘들수록 공동체 얘기를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몰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분 때문이기도 하고, ‘알아서 살아내라’는 주문과도 연결되는 게 공동체잖아요. 그래서 지금 시대의 공동체란 게 저한테는 참 으스스하게 느껴져요. 그와 별개로 어쨌든 인간이 성장하는 데 늘 불화하든 긍정하든 공동체적인 것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저는 튀어나온 부분을 다 모서리를 다 다듬어내 버린 그런 공동체만 남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멋있는 공동체만 남은 거예요. 멋있는 커먼즈만 남았고 잘 만들어진 가구 같은 그런 거죠. 누군가 ‘풀뿌리가 아니고 인조잔디’라고 표현하는 걸 보며 좀 웃었는데, 외부에서 조직되는 공동체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기도 하죠. 포킹룸은 어떤 면에선 활동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공동체 경험들 그리고 그 시스템들을 보며 느낀 것에 대한 반성적 활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공동체의 오만과 상호의존, 모든 장점과 단점을 다 포함해서 그것에 대한 반성이랄지 반동이랄지 성찰이랄지, 그런 것들이 이 일에 대한 의지보다 좀 더 앞서는 거 같아요. 이것도 항소 같은 것일까요? 한국의 공동체가 가지는 일말의 정동적인 면들―애도의 공동체, 저항의 공동체, 환대의 공동체―이런 것들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포킹이라는, 일면 건조해 보이는 메커니즘적 단어를 모델로 가져오게 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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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포킹되는가, 태도 혹은 주제

한편으로 그 포킹이 바깥으로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의 문제를 질문해 주기도 했었죠. 개인적으로는 좀 날카롭게 느낀 질문이었어요. ‘안에서 분기하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그래서 포킹룸이 바깥쪽으로는 어디로 포킹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 주로 현대 예술이 주로 푸는 방식으로 풀고 있지 않는가라고 질문도 덧붙여졌죠. 활동이 외부로 어떻게 포킹되고 있느냐는 질문이 저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사실 어디로 흘러가고 있지도 않은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그냥 자족적인 활동이 되어 버리는 그런 순서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계속 되새겨 볼 질문이에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포킹룸의 주제인 합성 미디어를 기반으로 실천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재난 학교’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시도해 보려고 해요. 우리는 재난에 대해 어떻게 감각하는가. 재난에 대한 데이터셋을 모은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이미지가 그 데이터셋에 포함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합성 이미지는 무엇을 드러내는가. 이런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죠. 개인적으로 포킹룸의 주제를 이런 실천적인 프로그램으로 풀어내는 시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게 답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질문을 계속 되새겨 봐야 할 거 같아요.

어쩌면 누가 봐도 예술이라면 예술인데 예술적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만드는 건 거 같기도 해요. 주제들이 기술에 반영이 되기도 하고 예술로 인식이 되기도 하고 일상에 반영되기도 하며 생각하는 방식과 이해하는 방식을 열어준다는 언급은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죠. 그래서인지 유독 태도와 관련해 여러 언급이 많았죠. 태도가 포킹룸의 근간이 되고 그게 타기관에서 진행하는 전시, 행사와 차별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해준 분도 있고요. 또한 상처로 얼룩진 공동체 경험 외에, 이런 함께함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상상할 수 있는 계기였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건 어때? 이것도 좋지? 이거 진짜 재밌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점잖게 숨기고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친절함 같은 것이 있다’는 언급은 다정했죠. 정말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종종 태도가 많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부정할 순 없네요.

근데 저는 태도나, 포킹룸이 뭐고, 포킹룸이 왜 이걸 했고, 포킹룸이 앞으로 뭘 할지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아요. 포킹룸이 어떤 질문을 실제로 해왔는가―그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사람들이 포킹룸이 이런 예술 커뮤니티구나, 리서치 랩이구나 이렇게 알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이런 저런 질문을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6년 동안 다뤄온 주제가 사실 다양하지만 일관된 부분이 있죠. ‘데이터화된 자아’에 대한 것, ‘데이터와 연산장치’를 주제로 데이터를 틀 짓는 다는 것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이웃들’이라는 제목으로 스마트 시티에 대해 이야기, ‘부재하는 데이터셋’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죠. 올해는 인공지능이 생성해내는 합성 미디어에 대한 얘기까지 이제까지 크게 대여섯 가지 주제를 다루었네요. 저는 그 디테일한 질문들이 사실 포킹룸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방법론, 태도 이런 거보다 주제 선정, 그러니까 좋은 질문을 던지기가 훨씬 어렵잖아요. 근데 질문이란 게 그냥 던지면 되는 게 아니라 그게 맥락화 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죠. 그 맥락화는 오랜 기간 탐색을 해야 나오는 거잖아요. 더듬거리면서 질문 찾는 과정, 그 과정에 사실 다 모든 게 포함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이후에 나오는 전시나 리서치랩 같은 것들은 그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고. 그리고 주제가 가지는 시의성도 있죠. 네, 맞아요. 주제의 시의성이라는 유행의 것보다는 지금 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다는 뜻인데 일반적 상황에서는 그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게 많잖아요. 한편으로는 한국의 예술-기술-사회의 특수성이 있죠. 국가적 발전 담론과 결부되기 무척 쉽게 흘러가기도 하고요. 기술적 시의성이 인문의 양식과 결부되어 다루어지는 것이 기술을 다루는 예술이 할 수 있는 방식일 텐데요, ‘기술을 잘 사용하는 문제’가 그런 것들로 착각되는 걸 종종 보죠. 한국 사회가 기반하는 국가 주도적 기술입국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큰 영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을 잘 파고들어 주제를 만들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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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혹은 분류

리서치랩, 오픈콜, 워크숍, 전시 등의 의미를 물어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새로운 생각을 모으기 위함인지, 주제를 확장하기 위함인지 물어보시기도 했고, 어떤 분은 전시의 의의를 ‘논의를 종료시키지 않는 것’에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셨죠. 저는 ‘포킹룸이 왜 리서치를 하죠?’ ‘왜 전시를 하죠?’ 이런 질문은 사실 참 답하기 어렵잖아요. 하다 보면 도달하는 거니까. 리서치랩, 오픈콜 같은 구조는 사실 기금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포킹룸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해서 의미를 붙이긴 더 민망하기도 해요. 그런데 좀 다른 건, 보통 오픈콜을 하면 ‘나는 이걸 너에게 줄 수 있어 내가 이걸 줄 수혜자를 찾아’는 방식인데 포킹룸은 ‘난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이 주제에 관심 있으면 연락 줘’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 같아요. 리서치랩이든 전시든 다 그런 뉘앙스가 있죠. 정말 줄 게 없어서 그런 건 맞잖아요(ㅎㅎ). 네 그래서 사실 참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기도 해요.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함은 한편으로 즐거운 결과죠. 우리보다 오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니까. 그러니까 자기 목적과 의도가 더 강하죠. 자기 관심사를 포킹룸의 주제와 연결시키면서 엉뚱한 ‘보간(interpolation | 補間)’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연결이 자꾸 튀어나오는 거 같아요. 그러면서 그런 것들 자체가 선제적인 제안이 되어 버리고, 그다음의 주제로 연결이 되기도 하죠.

그런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배경도 다양한 편이라, 어느 정도 경계가 뒤섞인 양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가지치기될 수 있는 공통성의 구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크고요. 그래서 포킹룸이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늘 어느 정도 도사리고 있는 거 같아요. 운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도서관 사서에 따라서 책을 어디 분류할지가 달라지는 그냥 그런 문제 같기도 하죠.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 해도 메타적이면서도 특유의 실용주의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 때문인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가지치기’할 수 있는 중재적 지점이 어디일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장르가 될 수밖에 없겠죠. 어쨌든 예술, 사회, 기술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라운드를 그려보는 것에 관심을 두니까요. 그리고 그 공통성이 각각의 언어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을 두니까요. 저는 ‘누가 여기에 오는가’로 포킹룸의 분류를 굳이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처음부터 포킹룸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교육자의 정체성,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최근에는 그런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가진 분들을 만나게 돼요. 이를테면 스스로를 연구활동가라고 정체화하는 연구자들 같은 분들. 연구를 하고 현장에서 활동을 하려는 분들을 계속 만나고 있거든요. 물론 많지는 않아요. 이런 분들은 또 예술가들과의 협력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더군요. 이런 분들의 등장을 유심히 보게 돼요. 실제적인 것을 구축해 나가면서도 실천적이고 그것을 은유의 구조 안에 넣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을 지금의 장르에 맞추어 생각하기는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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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그리고 zine

포킹룸의 여러 포맷(전시, 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공통적으로 작업의 완성을 기대하기보다는 과정을 장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있었죠. 어떤 참여자의 SNS 소감 중에, “학교 말고 포킹룸 다니고 싶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이런 부분 때문 아닐까 싶은데요. 또 포킹룸에 참여하며 교육(education)이 아닌 상호 간의 배움(learning)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는 의견들이 있었죠. 특히 리서치 랩의 경우는 공동의 배움 및 학습의 장이라는 측면에서(그러나 보통의 예술 워크숍과는 다른 형태로) 매우 독특한 이벤트이자 공동의 지식/예술 창작 활동으로 보인다는 언급도 있었는데요. 무척 과분한 의견이네요. 오히려 보통의 예술 워크숍과 가장 닮은 형태이기도 한데 말이죠. 네, 우리는 다들 알지만 리서치랩이 엄청나게 내밀하고 깊이가 있게 진행이 되고 그러지 않잖아요. 차라리 시간이 없어서 우리가 발표를 축약해 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상호 간의 배움이나 공동 생산의 어떤 아우라가 발생하는 부분은 좀 다른 부분 같아요.

사실 계속 간과되는 부분이 플랫폼보다 어떤 이들이 오는가의 문제인 거 같아요. 사실 그 부분이 사실 더 강조돼야 하는 게 아닌가. 좋은 사람들이 왔고 우리랑 맞는 사람들이 왔고 우리가 던진 어떤 우문 같은 거에 현답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왔고 그거 덕분에 포킹이 굉장히 다채로워졌기 때문에 사실 그 사람들이 와서 연구를 했다는 게 중요하지, 이게 우리가 공동의 장을 열었고 학습의 장을 열었고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거 줌 열어서 진행하는 거는 사실 큰일이 아닐 수 있어요. 다양한 배움의 욕구가 있는 개인들이 마침 그런 장과 우연히 잘 만난 경우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 개인들은 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욕구가 닿을 수 있는 장소가 더 많아져야 하는 부분이겠죠.

리서치랩에 대해 그런 감각이 생긴 부분은 아마도 그것이 zine이라는 결과물로 나와서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닐까 하는데요. 진 스프린트라는 걸 저희가 해본 적이 있었어요. 북 스프린트라는 연구자들의 이벤트에서 영향을 받은 건데 이게 연구자들이 모여가지고 한 2박 3일 같이 밥 먹으면서 책을 한 권 딱 만들고 헤어지는 거예요. 그것도 기술적 배경이 있는 건데 왜 주문 생산하는 책 있잖아요. 그게 대중화되면서 그런 걸 해주는 북숍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연구자들이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게 있는 거죠. 그 기민함이 흥미로워서 저희는 진 스프린트를 해봤었어요. 2014년 정도였던 거 같은데 그때는 구글 독스를 플랫폼으로 zine 한 권을 만들었어요.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럼에도 그 프로세스 자체가 체화되어 있던 게 리서치랩 zine으로 연결된 거 같아요. 출간의 기술과 결합한 기민함도 상호 배움의 아우라와 연결될 수 있을 거 같고 노션이라는 미디엄이 가지는 cms 도구의 특징이 지금의 지식 생산의 방식과 은연중 연결되는 게 있기도 한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지식을 소비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건 구체적 지식보다 지식의 좌표에 가까운 거 같거든요. 리서치 zine을 관객들이 열심히 탐독하는 건 지식 자체보다는 좌표가 있는 지식의 지도를 보는 것에 가까운 거 같아요.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의 <리서치 zine>, 2022. 제공: 포킹룸.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의 <리서치 zine>, 2021. 제공: 포킹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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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성 그리고 관계적 시스템

자생적 커뮤니티의 소멸 속에 한마디로 ‘우리가 위태해 보인다’(웃음)는 우려와 함께 ‘외부와 어떤 연결적 시스템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있었죠. 이건 ‘더 큰 기관 혹은 기성 제도와의 협력 관계 혹은 독립 기관 같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그를 위해 어떤 지원을 받아들이고 거부해야 할까’라는 질문이었는데, 어떨까요? 포킹룸은 이제까지는 특별한 기금의 지원이 없이 진행되다 올해 아르코의 기술융복합지원 중 활동지원 프로그램이 생겨 첫 기금을 받았죠. 사실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해 여러 방법들을 고안하기도 한 건데요. 한편으로는 한계도 크죠. 그걸 다르게 우회하는 건 제도화 되거나, 기관에 의해 깔끔하게 구성되는 공동체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 같아요. 사회가 이런 영역을 원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늘 우리가 느껴왔던 문제는 확장, 규모의 문제나 시스템의 문제 같은 것, 협력의 문제 같은 것은 아닌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규모가 아니라 탄탄하게 구축해 나가고 어젠다를 계속 끌고 나가는 단위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 거가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무얼까 생각이 들어요.

‘포킹룸이 지속되는 원동력, 활동의 토대는 무엇인가? 혹은 포킹룸을 포킹한다면?’이라는 다른 분들의 물음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답변으로 한번 끌어와 보자면, 그냥 계속 분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에게는 계속 참여하고픈 마음(분기되고 싶은) 그런 원동력이 포킹룸의 원동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만약 굳이 정의해야 한다면, 그러한 경험 감각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다들 가지고 있는 학교 다닐 때는 실패한 자기 연구와 학습에 대해 항소하는 마음 같기도 해요. 저는 이게 계속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저는 어쩌면 분기하는 기술의 욕구나 생명력에 우리가 올라타고 가는 거 같기도 해요. 그리고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참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시기이기도 해요. 한 기술의 시대가 열릴 때 꼭 그런 시기가 있더라고요. 한 연구자의 말을 빌리면 ‘투명한 시기’― 그러니까 활발하게 오픈소스가 교류되고 들여다볼 수 있고, 비판적 의견이 오가고, 열려 있는 시기. 그리고 이런 시기를 거치면 자본화되고 닫히죠. 어쩌면 포킹룸은 그 시기 안에서 잠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록

인공지능이 생성해 내는 합성 미디어를 다룬 올해 포킹룸의 주제를 실행적으로 포함하기 위해, 위 대담에 대해 대규모 자연어 생성 모델 GPT-3가 주어진 지시문 (prompt)으로 생성해 낸 문장을 같이 수록합니다. 영어로 출력된 텍스트를 번역하여 최소한으로 수정한 문장입니다.

Prompt: 위는 세 명의 대담자 사이의 대화이다. 그들의 성격은 어떠한가? 인물 1, 인물 2 인물 3으로 나누어 알려달라.

인물 1: 그들 자신의 동기에 의문을 품는 것 같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인물 2: 더 실용적이고, 시스템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
인물 3: 더 이상적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한다.

Prompt: 위 대화를 바탕으로 포킹룸이 속하는 분류를 제안하라.

픽션

Prompt: 위 대화에 기반해 사람들이 가장 매력을 느낄만한 포킹룸 오픈콜 홍보 문장을 만들라.

관심사를 공유하는 다른 사람과 연결될 방법을 찾고 계십니까? 포킹룸보다 더 멀리 보지 마세요! 리서치랩, 오픈콜, 워크숍 및 전시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Prompt: 위 대화를 바탕으로 포킹룸의 공간적 구조에 관해 서술하라.

‘포킹룸’은 여러 구역으로 나뉜 물리적 공간이다. 각 섹션에는 다른 활동 또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공간 내의 구획은 가구 또는 다른 사용하여 만들 수 있다. 포킹은 사람이 갈 수 있는 여러 길이나 방향을 가리키므로 이것은 방에서 나가는 출구가 여러 개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공간 내에서 활동을 위한 여러 옵션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Prompt: 위 대화에 기반해 포킹룸이 앞으로 피해야 할 주제는 무엇인가.

포킹룸은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Prompt: 위 대화를 토대로 포킹룸이 가진 태도를 한 명의 유명인 이름으로 비유해 달라.

Yayoi Kusama

Prompt: 위 대화에서 풀뿌리’와 ‘인조잔디’가 의미하는 바의 차이를 <스머프>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 설명하라.

이 차이의 좋은 예는 ‘스머프’의 편리 스머프 캐릭터에 있다. 편리는 그 지역 사회의 풀뿌리 멤버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에 있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다. 똑똑이 스머프의 캐릭터는 인조잔디의 한 예이다. 그는 타고난 리더가 아니며 종종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종된다.

Prompt: 올해 포킹룸의 주제는 인공 지능이 만들어 내는 합성 미디어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 적용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만든다면 제목은 무엇인가?

합성 미디어와 민주주의의 미래

Prompt: 위 대화를 기반으로 포킹과 사랑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라.

사랑과 포킹의 관계는 이해와 매력의 관계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은 서로 이해하면서도 변덕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변덕을 통해 다른 생각의 분파를 탐구할 수 있다.

Prompt: 위 대화를 기반으로 짧은 하이쿠를 만들어 달라.

이것은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
이것은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항상 쉽지 않지만 그것은 가치가 있지.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의 〈뉴마트_하이퍼리딩〉(2018.11.01-11.04). 제공: 포킹룸.
도통단,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 연계 퍼포먼스 〈재판장의 인공지능 : 합성 부적, 이대로 괜찮은가?〉, 탈영역우정국, 2022. 제공: 포킹룸.
《포킹룸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 전시 전경, 탈영역우정국, 2022. 사진: 안재영. 제공: 포킹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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