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공유하는 키트(KIT)로서의 웹사이트, ‘Local-first Knowledge’

김승범
김승범은 엔드 유저를 위한 (혹은 의한) 컴퓨팅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메타미디어로서의 컴퓨팅이 리터러시 일부가 되어 엔드유저 개개인이 사유하고 표현할 때, 우리 문화와 사회를 채우고 있는 기술 매체에 대해 다르게 읽고 생각할 계기와 맥락이 만들어진다 생각한다. 이를 위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비언어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키트(KIT)를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연구자인 김승범은 지식을 공유하는 도구이면서 사용자들이 스스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키트(KIT)’로서의 웹프로젝트를 제작한다.

세마 코랄은 모두가 통하는 웹을 핵심적 도구로 삼아 ‘모두의 연구실’을 표방하며 시작됐다. 그런데 ‘모두’는 왕좌처럼 선점할 수 있는 것도, 또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위가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굳이 따져본다면, 이 ‘모두’는 우리 각자가, 즉 여러 명의 내가 참여함으로써 만들어지고 또 만나지는 것에 가깝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최초의 웹페이지를 만든 이유 또한 동료 각자가 서로 다른 컴퓨터에 가지고 있던 정보와 지식을 다 같이 공유하기 위해서였음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일상적으로 웹을 나만의 것으로 사용한다. 내가 궁금한 것을 자판에 입력하고 나만의 단말기에서 나만이 우선해 찾아진 결과를 본다. 하지만 최종 사용자(엔드 유저 | end user)로서 내가 찾은 것들은 이미 무한의 거대 양화와 중앙 집중화된 어떤 데이터, 어떤 플랫폼, 어떤 알고리즘, 어떤 시장이 제공하는 결괏값을 단지 일시적으로 불러온 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인 나의 인지능력으로 그 ‘모두’를 다 소유하거나 소화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거나 망각할 때 웹에서 내가 찾은 것들은 주체적 이해를 상정하는 ‘지식’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반면 우리는 이미 항상적으로 웹을 모두의 것으로 사용한다. 세대 분화를 거듭하며 ‘클라우드’라 불리는 단계까지 온 지금의 웹에서의 작업은 실시간으로 여러 사용자들의 개입 속에 진행되고 장치들은 언제나 다중적으로 동기화된다. 하지만 공동 작업자인 나는 나의 데이터들이 저장되고 나의 장치가 연결된 그 거대 장치를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모두가 그저 데이터를 기여하고 위탁한 중앙망을 믿을 뿐이다. 최근 벌어진 “클라우드란 것은 없으며 그건 단지 다른 누군가의 컴퓨터일 뿐”이라 말하는 ‘몇몇의 사건’1들은 모두의 신뢰를 취약하게 만들지 않는가?

김승범 작가의 웹프로젝트 〈Local-first Knowledge〉는 웹을 생성하는 기술적이며 행위적인 지식 중 두 가지를 결합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지식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경험하기를 제안한다. 사용자의 소유권과 행위성을 되찾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상용화된) Local-first Software 중 하나인 옵시디언(Obsidian)을 사용해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여러 경로’를 보여준다. 이 경로 어디에서 먼저 시작해 어디에 멈추든 웹페이지 책갈피를 축적해 사용자 ‘여러분의 발자국’을 만드는 기술은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의 Federated Wiki를 차용했다. 이 ‘개념은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웹에서 사용자의 편집을 가능하게 하고 또 이를 권장함으로써 독자가 저자가 될 수 있게 했던 위키(WikiWiki)를 좀 더 분산된 상태로도 연결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경험을 일으키는 키트(KIT)’로 작동하는 이 웹프로젝트는 세마 코랄이 제안한 ‘1년 유지’의 조건을 주체적으로 읽어낸 결과로 ‘사라질 것을 미리 선언’하여 우리 모두가 ‘Local-first Knowledge를 위한 실천’을 미루지 말고 지금 경험하길 촉구한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김승범, 〈Local-first Knowledge〉, 2022. 웹사이트 갈무리. https://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열려있으나 읽을 수 없고, 읽을 수 있지만 읽지 않는,
찾을 수 있지만, 혹은 찾을 수 있다고 믿지만 찾을 수 없는,
항상 그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수많은 지식과 경험의 아카이브,
우리를 지탱하는 기술 도구의 여러 부품들이
이런 상태의 상호 연결된 지식의 네트워크 안에서 유지되며,

우리는 지금을 감각하기보다는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딱, 1년만 살아있는 (구독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지금은 열려있지만 곧 닫혀 사라질 것을 미리 선언하는
Local-first Knowledge를 위한 키트를 담은 오픈소스 웹사이트를 구상한다.

이 키트는 네트워크의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 개인 (Local)에게 의미를 가질 지식의 편린을 담아낼 연습이자 생존을 위한 훈련이다.
1년 후 이 웹사이트는 사라지지만, 일부 개인(Local)의 공간에서는 동작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확장되어 체화될 것이다.”

―김승범 작가노트, 2022.

*〈Local-first Knowledge〉 웹사이트는 모바일보다는 PC에서 열어보셔야 빠짐없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나의 웹브라우저의 새 창을 열어 이 웹페이지 publish.obsidian.md/sema-coral-local-first에서 모두가 만들 수 있는 지식의 경로를 경험해보길 권합니다.

덧붙여, 웹 제작의 지식에 능동적인 사용자라면 대표적 ‘분산버전관리시스템’인 Git을 서비스하는 웹사이트인 Github에서 이 프로젝트 그 자체를 ‘포킹’할 수 있습니다. Github 저장소에 생성된 웹페이지 github.com/picxenk/SeMACoralLocalFirst에서는 〈Local-first Knowledge〉를 Zip 파일로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나눠진 상태로 연결될 수는 없어도 각자의 편집을 생성해볼 수 있습니다.


  1. 이하 홑따옴표로 표시된 표현은 모두 김승범 작가의 〈Local-first Knowledge〉에서 빌려온 것이다. 작가는 〈Local-first Knowledge〉를 시스템적 입력과 산출로 바로 찾아지는 결과가 아닌, 사용자가 스스로 찾아가는 경로를 만들고 생성된 경로를 조망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길 권장하기 때문에 본문에 직접 해당 웹페이지를 링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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