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계 소유 역사기

배인숙
배인숙은 일상적 사물의 장치나 시스템을 소리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일상적 사물의 요소를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새로운 소리장치로 재창조하는 설치 작업을 한다. 최신 기술만큼이나 과거의 기술이 소멸되는 과정이나 의미에 관심이 많고 리서치 과정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하여 현재의 작업에 적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의 작업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생각하다 뜬금없이 ‘기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에게 ‘기계’는 크기와 상관 없이, 작동하는 데 ‘전기’가 필요한 모든 것이다. 갑자기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맞다. 침대에 만약 USB 포트가 한 개라도 장착되어 있다면, 그것은 가구가 아니고 당연히 기계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는 기계일까? 헷갈린다. 전기가 필요하지만 만질 수 없는 기계, 기계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기계, 말 그대로 가벼운 기계 등 나만의 해석을 내렸다. 이 글의 제목을 ‘나의 기계 사용기’가 아닌 ‘나의 기계 소유 역사기’로 쓸 수밖에 없는 배경은 이렇다. 하나의 기계를 독자적으로 소유하여 사용할 때 적극적인 사용자로서 기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기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듣는 기계 - 라디오, 카세트, CD, MD, MP3, 그리고 LP

라디오는 어린 시절 내 친구였다. 특히 방학은 라디오의 힘이 크게 발휘되는 시기였다. 밖에 나가서 아무리 놀아도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다. 지금과는 다르게 TV 방영 시간이 짧았기에, 라디오에 의지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낮에는 ‘두 시의 데이트’를, 밤에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들었다. 때로는 라디오 드라마나 소설을 읽어 주는 방송도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모파상의 「목걸이」 등의 단편들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듣기의 비중이 높은 일상을 보냈다. 음악 창고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에서는 수많은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가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라디오를 켜기만 하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디오 앱이나 팟캐스트를 켜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반드시 해야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는 집안일을 한다.

초등학생 시절 마지막 겨울방학 때는 부모님을 졸라서 태양열로 충전하는 소형 라디오를 갖게 되었다. 이미 라디오가 있는데 왜 라디오를 사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밖에서 듣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라디오를 받자마자 신나게 동네를 몇 바퀴 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용돈을 모아 카세트 플레이어를 샀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소리가 등장한다. 카세트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면 음악보다 먼저 듣게 되는 소리, 히스 노이즈(hiss noise)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LP판의 노이즈를 추억하지만, 나는 LP 플레이어가 없었기 때문에 카세트테이프의 노이즈가 더 익숙하다. 2017년에는 그 소리를 실컷 듣고 싶은 마음에 카세트테이프 여러 개를 모아 설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카세트테이프를 사는 취미는 20대까지 지속되었는데, 이후 CD의 등장으로 카세트는 서서히 안 사게 되었고 자연스레 카세트 플레이어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식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처음 맛본 돈 버는 기쁨은 대학 입학의 즐거움보다 몇 배는 컸고, 돈이 주는 달콤함은 20대 대부분의 시간들을 아르바이트로 보내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내가 벌어 내가 쓰는 ‘내돈내산’의 세계에 흠뻑 빠져든 것이다. 드디어 내 인생의 첫 수입이 생겼고 오롯이 내가 번 돈으로 첫 기계를 사게 된다. 그것은 1층에는 CD 플레이어가, 2층에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양쪽에는 스피커가 있는, 아남에서 만든 미니 컴포넌트였다. 그 다음으로 구입한 기계는 너무나 짧게 사용하고 떠나보냈던 MD(Mini Disk) 플레이어였다. 밴드 멤버 찾는 구인 광고를 통해 만난 Y가 가지고 왔던 단단하게 생긴 MD 플레이어. 그가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음질에 감탄했고, MD 플레이어에서 꺼내 만져 본 딱딱한 MD는 최첨단의 느낌을 주었으며, 크기는 작지만 광출력/입력 단자가 있어 컴퓨터의 사운드 카드를 통해 고품질의 녹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MP3 파일 한 개를 MD 디스크에 옮겨 담으려면 실시간 녹음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CD를 사용할 수 있는 시디롬이 가정에도 보급되면서 MD의 존재는 점점 잊혀 갔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MD를 보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올여름 숲 속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새소리를 녹음하던 중, 온 국민에게 ‘새박사님’으로 불리는 분이 문득 생각나 그의 근황을 유튜브에서 확인하였다. 거기서 그분은 새소리가 녹음된 수십 장의 MD 중 한 개를 꺼내 MD 플레이어에 넣어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장면은 나를 울컥하게 했다. 컴퓨터 폴더에서 소리 파일의 이름을 보는 것과 ‘두루미’라고 적힌 MD를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 드디어 완벽한 ‘듣는 기계’가 등장한다. 이전까지 플레이어의 브랜드는 상관이 없었지만, MP3는 애플에서 나온 ‘아이팟’을 꼭 가지고 싶었다. 부드러운 클릭 휠과 어울리는 미니멀한 디자인 때문에 그것을 더욱 소유하고 싶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큰 마음을 먹고 용량이 큰 제품을 샀다. 넓은 화면에 파일 이름을 편하게 저장할 수 있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앨범을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었기에, 아령 같이 무거운 무게 정도는 극복해야 했다. 당시에는 스트리밍의 개념이 없었고, MP3는 불법과 합법 사이에 놓여 있었다. 나는 작명 센스가 돋보이는 ‘소울식(soulseek)’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밤이면 밤마다 MP3 파일을 쓸어 담았다. 그때는 참 신선했던 P2P 방식은, 지금 생각하면 보안 문제가 다분한 위험한 기술이다. 공유의 의미를 떠나, 낯선 사람의 컴퓨터에 내가 접근해서 파일을 가지고 오는 행위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일이다.

시간은 흘러, 보고 듣고 읽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듣는 기계’를 따로 소유하는 사람은 급격히 줄었다. 인터넷의 빠른 속도는 우리의 보고 듣는 생활을 파격적으로 바꾸어 버렸고 우리는 편하고 실용적인 시스템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듣는 기계’를 다시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 LP 플레이어를 덜컥 사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LP의 세계에는 발을 들이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플레이어의 크기는 그렇다 쳐도 LP판은 유독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12인치 LP판의 사이즈를 알아보자. LP판의 지름은 30cm로, 이 LP판을 일반적인 크기의 책장에 넣으면 일부가 앞으로 튀어나온다. 책을 넣은 공간도 부족한데 LP판을 뉘어야 하나 세워야 하나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미 오디오 테크니카에서 나온 가장 저렴한 LP 플레이어 LP60은 배송 중이었다. 음악을 재생하는 플레이어는 그것이 허락하는 물성의 매체와 영원한 짝꿍일 수밖에 없다.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스마트폰과는 다른 점이다.

유료 음악 플랫폼을 두 개나 구독하고 있으면서 이제서야 LP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을 고르는 과정이 생략될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플레이 리스트를 참고하기도 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유명한 음악 위주로 듣게 된다. 이렇게 음악을 듣는 것과 심사숙고하여 고른 음악을 듣는 것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제 나는 ‘듣는 기계’를 따로 사용하는 멋진 사람이 되었다.

#2. 큰 만능 기계 - 컴퓨터

컴퓨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컴퓨터가 똑똑한 만능 기계인 것은 알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쓸 일이 별로 없었고, 오빠와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내 차례가 별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오빠가 컴퓨터의 공동 소유자였음은 확실하다. 아빠가 나도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산 날부터 계속 밤을 세웠던 오빠는 컴퓨터 환경을 자주 바꾸어 나를 컴퓨터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왜 자꾸 유닉스/리눅스를 설치하여 내가 컴퓨터를 쓸 수 없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오빠가 나를 위해 윈도우와 멀티부팅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서 원망은 바로 멈추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를 사용하기 위해 기본적인 리눅스 명령어를 공부할 때, 갑자기 오빠가 떠올랐다. 오빠가 편한 윈도우를 쓰지 않고 왜 리눅스를 썼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잘난 척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비록 만년 초보 리눅서지만, 리눅스를 쓸 때면 닫힌 커튼을 열고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날, 컴퓨터에서 악기나 노래를 여러 트랙으로 녹음해 편집, 재생할 수 있는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나와 무관해 보였던 컴퓨터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전에도 멀티트랙 녹음을 지원하는 기계는 있었으나, 그것은 당시에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컴퓨터가 비싼 멀티트랙 레코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컴퓨터가 좋아졌다. 이전까지 통기타로 곡을 만들었던 나에게 컴퓨터가 창작의 도구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벅차오르는 감정과는 달리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소리 파일이 왜 미디 데이터와 오디오 데이터로 나누어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채널과 포트는 무엇인지, 음악 만들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만 들고 공허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정보가 많지 않았던 때였기에, 무엇보다 용어들이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연결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설정이 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사운드 카드나 오디오 인터페이스 드라이버의 충돌 문제도 있었다. 밤을 새우면서 계속 프로그램을 설치했다가 삭제했던 적도 많았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작업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소소한 문제들은 매번 힘겹게 해결해 가고 있다. 음악을 계기로 컴퓨터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직접 컴퓨터의 사양을 따지다 보니 CPU, 메모리, 하드디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찾아보게 되었고, 음악을 위한 컴퓨터를 구매하기 위해 가격과 사양을 조사하고자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음악과 관련한 기술이나 장비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음악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이상한 점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소프트웨어에 대한 궁금증도 늘어났다. 한창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이었을 때 나모 웹에디터로 금방 웹페이지를 만들어 내는 지인이 멋져 보였다. 나도 윈도우 메모장에서 html 공부를 조금 해 보았다. 역시 처음에는 웹을 배우는 게 가장 좋은 거 같다. 나는 타자를 쳤을 뿐인데 웹페이지의 내용이 변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그 뒤로 프로그래밍 공부에 빠져들어 점점 잘하게 되었다는 결말로 끝나면 좋으련만, 그런 결말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처음에만 좀 신기했지, html 하나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웹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없다 보니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프로그래밍과의 인연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어느 음악가가 음악을 만들 때 MaxMSP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니 그것은 전자음악이나 미디어아트 장르를 다루는 사람들이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설치하여 실행해 보니 하얀 바탕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싶어 당황했다. MaxMSP는 오브젝트끼리 서로 연결해서 원하는 것을 만드는 노드 방식을 사용한다. 요즘 사람들이 게임이나 영상을 만들 때 쓰는 프로그램 언리얼의 블루프린트 시스템과 비슷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4와 5를 더하고 싶을 경우 이미 만들어진 더하기 오브젝트를 4와 5와 연결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C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방법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노드 방식의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가 구현하려는 것에 맞는 오브젝트를 고르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와 비슷한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시각적으로 전체 구조가 보이기 때문에, 뭔가 잘 되지 않아도 힘이 덜 빠진다. 물론 사람마다 이해의 속도가 다르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하고 싶을 것을 구현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텍스트 방식의 프로그램보다는 노드 방식의 프로그램이 이해하기 쉬웠다.

신기하게도, 노드 방식의 프로그램을 많이 쓰다 보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텍스트 방식의 프로그램도 예전처럼 두통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모르는 게 있다 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온라인 세상에 24시간 상주하는 선생님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각종 라이브러리 및 코드를 공개하고 있다. 그 자료를 가지고 처음부터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듈화된 지붕, 벽, 문을 이용하여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식을 나눈다는 개념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은 거의 없다. 컴퓨터는 항상 묵묵히 나를 도와주는 작업 파트너이며 계속해서 알고 싶은 존재이다.

#3. 작은 만능 기계 -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

큰 만능기계와 작은 만능기계를 나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성능, 가격, 크기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담당하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두이노(Arduino)를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역시 담담했다. 아두이노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혁명이라고들 이야기했지만, 나에게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두이노를 쓸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주변 지인들과 워크숍을 열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LED 하나 켜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재미는 느꼈지만,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아두이노와 같은 명령어를 쓸 수 있는 틴지(Teensy)는 USB 장치로 바로 인식할 수 있어서 미디 컨트롤러를 만들면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틴지는 훌륭한 오디오 라이브러리도 사용할 수 있는 음악 친화적인 MCU(Micro Controller Unit)이다. 개발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쓸 곳이 없을 것 같았던 아두이노는 드디어 첫 전시에서 등장한다. 작품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페인트 통 안에는 아두이노, 수직운동을 하는 솔레노이드 모터, 진동을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는데, 관객이 페인트 통을 두드리면 일정한 구간부터 관객의 두드림 주기를 저장하여 리듬처럼 반복해 주다 사라진다. 작품을 만들 때 기술을 구현하는 것도 힘들지만, 나는 이 작품을 왜 만들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정립하는 단계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첫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두이노와 점점 친해지면서 세상은 입력(input)과 출력(output)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원인으로 인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입력은 센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센서로부터 받은 데이터가 전달되어 원하는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아두이노 예제 중 버튼을 눌렀을 때 LED가 켜지는 것은 입출력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아두이노를 혁명이라고 하는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하드웨어와 함께 아두이노 IDE를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와 비전공자인 사람들에게 하드웨어 세상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냥 광고문구가 아니었다.

라즈베리파이는 컴퓨터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으로서, 아두이노와는 조금 다르다. 라즈베리파이는 컴퓨터와 같이 운영체제가 있어 윈도우처럼 각종 스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삭제할 수 있으며, 훌륭한 미디어 플레이어로 사용할 수 있는 진짜 컴퓨터이다. 라즈베리파이는 영국에서 교육용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으며 파격적인 가격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록 지금은 반도체 가격이 올라서 다른 싱글보드보다 오히려 비싼 느낌이 들지만, 관련 자료와 커뮤니티가 많이 있기 때문에 리눅스를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아두이노류의 MCU, 라즈베리파이 같은 싱글보드 컴퓨터, 윈도우 기반의 미니PC 중 무엇을 쓸 것인지를 가장 먼저 정하게 된다. 요즘에는 속도도 빠르고 wifi가 가능한 MCU들이 많아져서 작업하기에 편해졌다. MCU는 대부분 작품 안이나 주변에 설치되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4. 소리 내는 기계 - 악기

전자 부품에 아주 작게 적혀져 있는 ‘Texas instruments’를 보고 악기회사가 전자 부품도 만드는 줄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 ‘instrument’의 의미는 오직 악기일 뿐이다. 악기는 주로 그 몸체로부터 소리를 얻으며, 연주자에 따라 소리의 깊이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특정한 구조의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는 한정적이었다. 전자악기가 탄생한 후에는 음악 산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채로운 음색과 편집이 가능하여 표현할 수 있는 소리의 세계가 넓어졌고, 전자악기는 어쿠스틱 악기와 함께 전성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계속 그렇지는 않았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 악기도 실제 악기소리를 거의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 불가능한 음색도 낼 수 있어, 사람들은 예전처럼 전자악기를 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에는 ‘손맛’이라는 게 존재하므로, 계속해서 새로운 악기와 과거의 악기를 복각하는 형태로 악기가 출시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자 악기의 가격 범위가 넓어지면서 가성비 좋은 전자 악기도 많이 등장했다. 나 역시 가끔 사 모은 악기가 많아져 책상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신디사이저는 노브, 페이더, 버튼들을 이용해서 사용자가 소리를 만드는 요소에 접근하여 음색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신디사이저 여러 개를 놓고 소리를 만지면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간다. 신디사이저는 악기이지만, 소리를 만들어서 꼭 음악에 사용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정도로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는 기계이다. 게다가 직관적이라서 이것저것 해 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도 아두이노처럼 입력과 출력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소리의 어떤 요소를 집어넣어(입력) 그 소리가 변화하게 만든다(출력). 이것이 신디사이저의 소리 만들기의 기본 원리이다. 예를 들어 ‘윙’하는 소리에 낮은 주파수를 넣게 되면 그 소리의 높낮이가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는 것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누구나 악기가 있다면 바로 이해가 될 정도로 매우 직관적인 것이 신디사이저이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는 많은 단자가 있다. 특히 ‘CV out’이나 ‘CV in’이라는 단자가 있다면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아두이노와 연결하여 소리를 변화시키거나 피에조 센서를 직접 연결할 수도 있다. 나도 언젠가 신디사이저들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국내 가요 중에서 드물게 신디사이저가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곡 하나를 추천해 본다. 바로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이다. 신디사이저의 음색이 점점 추가되는 것에 집중하여 음악을 들어 보자.

글을 마치며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기계 이야기를 정신없이 쓰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가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둘 중 무엇 하나를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세계는 매력적이며, 특히 둘이 함께 할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타는 기계’ 중 가장 긴 KTX 안에서, 아직 쌩쌩한 애플의 아이폰 SE 2세대 모델에 설치된 메모장에서 마무리 글을 쓰고 있다. 문득 내 곁에 있는 수많은 기계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는 앞으로도 과거의 기계와 새로운 기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계를 처음 소유할 때는 누구나 반짝 애정을 보이다가 새로운 기계가 나오게 되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이전의 기계를 방치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기계와의 의리를 지켜보는 게 어떨까?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어 기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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