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미술관을 말하기

다이애나밴드
다이애나밴드는 관계적 미학을 향한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를 실험하는 신원정과 이두호로 구성된 아티스트 듀오이다. 소리와 행위를 매개로 상호 작용하며 관객들의 참여와 관계 형성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들은 인간의 언어 바깥의 소리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개별 소리 요소들을 감각적으로 구성한 관객 참여형 사운드 퍼포먼스를 구현한다.

세마 코랄의 일곱 번째 워크숍/강연은 작가 듀오 다이애나밴드(신원정, 이두호)가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로 리서치하고 제작한 〈미술관 믹스(Mix)〉를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는 순간으로 2022년 12월 7일 온라인으로 접속한 관객들과 함께 했습니다. 작가가 채집하고 기록하는 행위에 의해 미술관이 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 작업 〈미술관 믹스(Mix)〉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해 둡니다.

미술관에서 듣기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온라인 작가 토크에 참여해 주신 관객 여러분께 깊은 감사 말씀 전합니다. 세마 코랄은 웹페이지에서 텍스트 위주로 지식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소위 ‘아티스틱 리서치(artistic research)’라 불리는 연구에 기반한 예술가들의 활동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이애나밴드의 신원정, 이두호 님께 ‘미술관의 소리 환경, 미술관에서의 듣기 경험’을 작가적으로(창작자의 태도와 감각으로) 연구하고 다시 나눌 수 있는 작업을 부탁드렸어요. 다이애나밴드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관계, 소리, 행위, 상호작용, 관객의 참여 등을 이끌어내는 인간의 언어 바깥의 소리와 같은 개념들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사운드 아티스트 듀오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미술관 믹스(Mix)〉라는 다이애나밴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을 어제 공개했습니다. 이 웹사이트의 공개를 준비하면서, 이걸 일할 때 듣는 배경음악으로 써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원정: 안녕하세요. ‘들려진(들리는) 미술관을 말하기’1 토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이애나밴드 원정입니다.

이두호: 안녕하세요. 두호입니다.

신원정: 오늘 강연의 제목 ‘들리는 미술관을 말하기’는 세마 코랄의 제안으로 시작한 웹프로젝트 〈미술관 믹스(Mix)〉에서 발견된 것, 생각했던 것, 질문했던 것에 대해서 나누기 위해 김진주 학예사님이 이름 붙여주셨어요. 〈미술관 믹스(Mix)〉 웹페이지는 방문하셨을지라도 다이애나밴드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서 다이애나밴드에 대해 소개할게요. 예전에는 다이애나밴드 소개할 때 “‘밴드’라는 이름을 쓰지만 미디어 아트 작가이고, 아직 앨범이 없어요!” 하고 농담 삼아서 소개하곤 했는데, 이제는 앨범이 있어서 그 말은 못 하게 됐네요. 2022년에 드디어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을 담은 온라인 앨범 〈고양이와 종이 상자〉를 발매했고 지금 밴드 캠프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앨범 홍보도 해 보고 싶었어요. (웃음)

저희는 소리와 관계되고 소리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 예를 들면 사람, 사물, 환경 사이의 연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관계하고 태도를 취하고 질문하는지에 관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보통 저희는 소리 나는 것, 방식, 환경을 만들거나 혹은 소리를 모을 수 있는 웹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형식들을 제안해요. 이렇게 만든 작업을 모아 전시하고 다양한 주체가 소리 내거나 들을 수 있게 초대해 참여형 공연을 하거나 악기를 만들어 사운드 퍼포먼스를 하고 같이 만들 수 있는 워크숍을 만듭니다. 이처럼 저희는 다양하게 작업하지만, 중요한 건 소리와 매체에 천착하고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직조하는 것입니다.

이두호: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에서 진행했던 《루트에 대한, 대화(Conversation about the ROOT)》는 소리가 나는 사물들이 움직이면서 존재감을 가질 때 발생하는 공동체적인 네트워크를 드러내고자 의도한 전시이자 작업이에요. 움직이거나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사물들이 서로 네트워크된 상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그 기분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실현해 보고자 했어요. 에너지적인 시뮬레이션 혹은 알고리즘을 가지고 그들은 서로 예상할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관객들은 이를 관조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소개할 작업은 전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2020)에서 진행했던 사운드 퍼포먼스 〈숲에 둘러서서(Forest All Around)〉입니다. 비인간과 인간이 같이 머물면서 누구도 불쾌하지 않을 수 있는 소리 환경을 구축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이 공연을 계획했어요. 작품 제목은 존재가 숲을 바라보고 서 있고 숲에 둘러싸여 있다는 직관적인 뜻과 동시에 존재가 한곳에 모여 있으면 서로에게 숲이 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관객이 작품을, 작가가 관객을, 공연자가 공연을 보는 사람을. 이처럼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다양한 방향성이 공존하는 상태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대상을 위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들이 존재의 드러냄의 태도로 발생하고 가득 차 있는 숲과 같은 공간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경험을 만들려 했어요.

다이애나밴드, 《루트에 대한, 대화(Conversation about the ROOT)》(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 2021) 전시 장면. 사진: 우에타 지로. 작가 제공.

믹스(Mix)의 이유와 방법

신원정: 오늘은 세마 코랄의 제안과 그 연구에서 발견된 것들을 최근 작업인 〈미술관 믹스(Mix)〉와 함께 이야기하려 합니다. ‘세마 코랄은 미술관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 이야기, 사물, 사람이 만드는 지식을 저장하고 생산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라고 들었을 때, 다이애나밴드가 세마 코랄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스스로 궁금했습니다.

다이애나밴드는 소리에 관심이 있고, 소리를 만들고, 같이 듣고, 같이 소리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일어나는 공간은 미술관의 ‘안’일 수도 있고 ‘밖’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미술 혹은 예술 활동과 관련된 공간, 커뮤니티 안에서 전시와 공연, 워크숍의 형태로 실험하고 있기에 하얀 벽으로 사방이 둘러 쌓인 미술관은 공간에서 소리를 감각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지요. 스튜디오에서 마음에 들었던 소리가 미술관 공간에서는 다 흩어집니다. 공간에서 비슷한 주파수의 소리나 혹은 반대되는 주파수가 서로 교차되어 흩어지고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미술관 공간에서 사운드 작업을 하는 것은 긴장되는 일입니다.

세마 코랄의 연구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을 발견하게 됐어요. ‘미술관에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주제와 관련되어 두호 씨가 쓴 글의 한 부분을 소개할게요.

“어떤 소리들이 어떻게 구성될 때, 우리들의 몸의 기억(=공통감)은 그것이 ‘미술관’스럽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각자 몸의 기억(=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낯설지만 가장 진솔한 ‘미술관’스러운 소리 환경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전자는 미술관 소리 환경의 언어적 측면을 말한다면 후자는 소리 환경의 당사자성을 부각한다고 할 수 있어요.”

미술관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로서 시설청소원 분들, 학예사 분들, 또 다른 미술관 직원 분들이 각자 생각하는 미술관의 면모, 소리가 궁금했고 그들에게 과연 ‘들리는 미술관’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미술관에서 다양한 소리를 녹음을 하고 다양한 주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직원, 미술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무엇을 듣는지에 대해 질문했고 미술관 공간, 소리를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미술관에서 사운드 작업하면서 가지게 된 저의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이두호: 이번 작업의 연구 방법을 소개할게요. 미술관에서 보편성이나 공통적인 감각을 주는 소리를 탐구하는 것이 저희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평소에 지나치기 쉬운 소리 속에서 ‘발언하는’ 존재들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2022년 9월16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 녹음을 하기 위해 몇 번 방문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정서영 작가의 개인전 《오늘 본 것》과 기획전 《춤추는 낱말》, 상설전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시가 진행되었고 두 개의 전시가 철수되는 장면을 보면서,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미술관에 대한 소리 경험을 나눠주신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서 만났고요.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학예연구사 김진주 님, 인터뷰 당시에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수집 담당 코디네이터였던 박현 님, 고주파를 잘 들으시는 사운드/설치예술 작가 오로민경 님, 시각예술 작가 김은설 님, 이렇게 네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소와 소리

신원정: 〈미술관 믹스(Mix)〉 웹페이지를 한번 살펴 볼게요. 이 작업에서 ‘장소’는 앞마당, 로비, 전시실, 카페 이렇게 4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장소들의 버튼을 클릭하여 각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장소마다 들리는 소리가 다르기에 구분을 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앞마당’에서는 ‘전시실1’, ‘셔터’, ‘작별인사’, ‘까마귀’, ‘도슨트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이애나밴드, 〈미술관 믹스(Mix)〉, 2022. 웹페이지 museum-mix.dianaband.in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여기에 있는 동그란 버튼이 노란색이면 사운드가 켜져서 현재 소리나 나오고 있는 상태, 파란색이면 사운드가 꺼져 있는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올리브색이면 현재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이지만, 선택된 그 장소에 해당하기에 여러분이 직접 믹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소리들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앞마당’의 경우, ‘앞마당’, ‘작별인사’, ‘셔터’, ‘까마귀’를 올리브색으로 표시해 두었어요. 이처럼 여러분이 원하는 배경 소리와 함께 사건의 소리를 믹스해서 넣고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두호: 두 번째 장소는 ‘로비’입니다. 앞마당을 지나 들어오면 미술관 로비에 도착하면 ‘슬라이드 문’ 소리, 전시를 안내하는 ‘딩동댕’ 소리, ‘도슨트’ 소리, 도슨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리, 로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육중한 저음의 ‘대형 화물 엘리베이터’ 소리까지 다양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장소는 ‘전시실’입니다. 흔히 전시실에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녹음을 해서 들어 보니 여러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시실 4’는 회화 작품 위주의 전시장이었고 관람객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또각 또각’하는 하이힐 구두 소리가 명확하게 녹음되어 있어요. 그때가 겨울이라서 사람들이 옷을 여미는 소리, 전시를 철거할 때 나는 소리 그리고 전시실에서 사진을 찍는 카메라 셔터 소리도 재미로 넣어볼 수 있게 했습니다.

신원정: 전시실에서 어떤 작품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작품과 관계하는 관객의 소리와 공기도 달라집니다. 녹음했던 당시에 조각, 회화, 그리고 다양한 설치 및 영상 작품이 산재되어 있던 네 개의 전시실의 소리를 함께 들어볼까요. (작품 웹사이트를 작동 시켜 소리를 들려준다.)

이두호: 네 번째 공간은 로비 옆 ‘카페’입니다. 카페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전시 안내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어요.

신원정: 소개해 드린 네 개의 장소 외에도 미술관 책방 등 다양한 장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특정하기 쉬운 보편적인 공간들을 골라 만들었습니다.

이두호: 여기에는 빠져있지만 붓질하는 소리도 믹스에 꼭 넣고 싶었습니다. 녹음했던 당시에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운이 좋게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녹음하면서 음악 소리가 함께 섞여서 붓질 소리를 사용하지 못했지만, 작업하면서 ‘이 붓질 소리가 전형적인 미술관의 소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신원정: 로비를 장소로 설정해 소리를 들어 보면, 미술관 로비에 들어선 서너 명의 사람 중 한 사람이 “화장실”이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여러 명이 이동할 때, 다른 일원들에게 자신의 행방을 알리게 되잖아요. 보통 긴 시간 이동해서 건물 로비에 들어서서 화장실을 간다고 고지하는 목소리가 저에게 너무 익숙해서 미소를 띄우게 되더라고요. 이처럼 장소를 녹음하고 이를 다시 듣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사건이었지만, 개인적인 기억을 관통하여 공통적인 상황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두호: 어떤 상황에서는 사소한 소리인데 녹음을 해서 다시 들어 보면 마치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그 사진을 보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 사건,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시실 4에서 사람들이 바닥을 걸을 때 나는 소리가 흥미로웠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러닝스테이션에서 공연을 할 때, 양반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아서 발을 움직였더니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어요. 녹음된 전시실 4에도 비슷한 소리가 들리고요. 어떤 미술관은 시멘트 바닥이고 어떤 미술관은 대리석 바닥인데 이때 각 미술관에서 걷는 사람들의 소리는 각기 다르며 관람객도 각자 다르게 소리를 들을 겁니다. 사람들의 신발 소재, 모양, 바닥의 상태, 재질에 따라서 공간의 성질과 느낌이 다르게 만들어지며 이렇게 만들어진 소리가 미술관의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신원정: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경우 1층 로비 중앙은 2, 3층으로 위쪽이 뚫려 있어, 중앙 계단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지요. 로비와 맞붙어 있는 카페에서 다양한 소리가 흘러들어 와 1층 중앙에 서면 계단에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 카페에서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 음악 소리, 커피 머신이 작동되는 소리, 로비의 긴 의자에 앉아서 대화하는 소리, 대형 엘리베이터 작동 소리, 엘리베이터 안내음 등 여러 소리가 발생하고 미술관 벽에 반사되며 서로 섞이게 됩니다. 진주 님과 1층 로비의 소리 환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귀뚜라미가 들어온 적은 없나요?”라고 물었던 적도 있는데, 소리의 관점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를 떠올리는 것은 흥미롭기 때문이었어요.

김진주: 소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나는 장면이네요. 발자국 소리가 사람의 발과 바닥이 부딪혀서 만들어 낸 소리인 것처럼 저희가 듣지 못하는 떨림, 진동이 주변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리는 것과 듣는 것

이두호: 아우라(Aura)라는 윈도우 환경에서 사운드 배경음을 사용자가 선택하고 조합할 수 있게 제작된 소리 환경 발생기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요즘 ‘일하면서 듣는 집중력 높여주는 플레이리스트’, ‘일할 때 듣는 팝송 무한반복’과 같은 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있는데, 이런 기능처럼 프로그램 아우라는 소리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 프로그램입니다. 아우라에서 왼쪽 초록색 배경은 낮, 오른쪽 검은색 배경은 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 창에서는 낮의 숲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요소로 비, 폭풍, 딱따구리, 까마귀, 뻐꾸기, 바람, 실개천 소리 등이 들어가 있고, 이것들을 넣고 빼면서 소리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집에서 작업만 해서 답답함을 느낄 때, 아우라를 틀어 놓고 눈을 감으면 숲에서 책상을 펼쳐 놓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밤의 소리는 모닥불, 맹수 소리 등을 넣고 빼면서 소리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한편 마이노이즈(mynoise)라는 웹/모바일 오디어 플레이어가 구성하는 소리 경험은 우리가 듣고 있는 소리 환경이 몇 가지 소리의 합성이라는 전제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노이즈에서 ‘비현실 바다(Unreal Ocean)’라는 소리 세팅을 함께 살펴보면 낮은 음역대의 소리부터 높은 음역대의 소리까지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낮은 소리는 심해저의 느낌이라면, 높은 소리는 해변에서 파도가 친 후 거품이 사라지면서 터지는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사전 설정을 통해서 해수면 아래의 소리, 비가 내리는 해변가 소리, 바닷가 주변의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등 다양한 주제를 경험해 볼 수 있어요. 이처럼 소리를 통해 공간에 대한 감정과 기억, 예를 들면 바다 근처에 있는 집의 느낌은 무엇인지를 바로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볼까요. 만약 미술관의 소리 환경이 불안한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를 주는 소리라고 느낀다면, 여러 가지 소리 요소 중 어떤 요소를 어떻게 바꿔야 긍정적인 소리 환경으로 변환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방향의 리서치로 〈미술관 믹스(Mix)〉를 진행했어요.

신원정: 김진주 학예사님이 적어 주신 〈미술관 믹스(Mix)〉 소개 글을 발췌해 읽어 볼게요.

“우리는 ‘어떤 소리가 들려’라고 하며 소리를 어떤 것으로 구분하지만, 소리가 발생하는 상황은 이렇게 개별적이지 않다. 소리는 무차별적으로 총체적 상태로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지나가고 머무른다. 이렇게 섞여 있는 소리는 우리가 듣는 상태가 될 때 비로소 나누어진다.”2

지금까지 ‘들리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면 이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듣는 환경을 우리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에 관하여 얘기하고 싶습니다. 소리풍경(soundscape)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어떤 태도로 소리를 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육하는 머레이 셰이퍼(Murray Schafer)의 책 『소리 교육: 소리, 귀, 마음을 위한 100가지 연습노트(The Soundscape: Our Sonic Environment and the Tuning of the World)』3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 책은 주변의 소리 환경, 소리를 이루고 있는 구성들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연습 100가지를 소개합니다. 그중 몇 가지를 발췌하여 읽어 보겠습니다.

“1번. 들리는 소리를 모두 종이에 적어 보자.”

“4번. 들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자.”

4번은 현재 구상하고 있는 소리 환경에 대해 다시 떠올리고 고정된 소리와 움직이는 소리, 여러분이 움직이면서 생성되는 소리를 각각 구분하라는 의미입니다. 책의 예시를 보면, 고정된 소리로 교회 종소리, 고장 호각 소리, 난방 및 환기 장치 소리가 있으며 여러분이 움직이는 소리로는 목소리, 발소리, 옷과 장신구 소리, 자동차 또는 자전거 소리 등이 있습니다.

“14번.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기를 해 보자.”

이 연습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들으면서 산책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걷기를 마친 뒤에 가장 컸던 소리가 무엇인지, 리듬이 확실한 소리는 무엇인지, 가장 아름다웠던 소리는 무엇인지, 기억에 남았던 소리는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32번. 이번엔 뭉친 종이를 벽을 향해 던져 보자. 그 소리를 목소리로 표현해 보자. 지도자는 벽을 향해 두세 번, 가공의 공을 던지는 흉내를 낸다.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소리를 내 본다. 소리가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매우 복잡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연습에서는 소리가 한 순간의 발생물이 아니라 행위의 레이어(layer)들이 모여 소리가 발생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리가 발생하는 과정의 층을 하나하나 쪼개어 상상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예시에서 종이를 던진 사람이 주체인 것 같지만, 반대로 벽이 주체일 수가 있어요. 이러한 사고는 소리에 관한 모든 관계를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감을 생성합니다.

“45번. 소리가 원이 되거나 삼각형이 되는 경우가 있을까?”

이건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거나 해석할 때 시각적인 형태, 구조로 연결해 보는 연습이고요.

흥미로운 응답들

신원정: 관람객이 미술관을 방문해서 들었던 경험들을 알고 싶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취지로 미술관의 소리 경험에 관하여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어요. 미술관에 방문하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지, 미술관에 머무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무엇인지, 미술관에서 특별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 미술관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을 때는 언제인지. 이렇게 네 가지를 질문했고 모아진 여러 답변을 웹사이트에 정리했습니다. 답변들은 개인적인 감각과 경험을 기술해 주셔서 내용이 다양했지만 답변들을 꿰뚫는 보편적인 정서나 몇 가지 방향이 보여서 흥미로웠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이야기 하려고 해요. ‘미술관에 방문하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그곳에서는 보통 무엇이 들리나요?’라는 질문에 어떤 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필름앤비디오 상영관 앞 화장실(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함) 문 여는 순간 환풍기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림”이라고 적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한다며, 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는 조건까지 섬세하게 남겨 주셨어요. 이곳에 들어가서 위로와 편안함을 느끼는 그 분을 상상해 보았는데 이 대답을 같이 확인하면서 두호 님도 이런 경험이 있다고 하셨죠?

이두호: 연세대학교 앞 할리스 커피숍 3층 남자 화장실 천장에 고장난 환풍기 소리가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직접 녹음해서 들어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다양한 음, 주파수가 섞여 있어서 흥미로웠고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소리가 바뀌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녹음은 했었는데 제가 마음에 들었던 소리는 담기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김진주: 저는 “미술관에서 전시장 한가운데 있을 때가 가장 좋아요. 그 자리에서는 미술관의 모든 소리가 모이고 들리는 것 같아요.”라고 설문에 적었어요. 다른 답변을 살펴보니까 “복도와 벤치”, “걷다 앉는 실내외 벤치”라고 적어주신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작품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장소에서 듣는 소리가 미술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같네요.

신원정: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미술관 소리 환경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네 분과 인터뷰도 했어요. 김진주 님과의 대화는 ‘미술관 좋아하세요?’, 박현 님과의 대화는 ‘수장고에서의 리듬’, 오로(민경) 님과의 대화는 ‘청취방식’, 김은설 작가님과의 대화는 ‘시각적인 소리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웹사이트에 올려놨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이 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청각 혹은 청취의 장소로 가능한지 등에 관한 이야기예요.

다이애나밴드, 〈미술관 믹스(Mix)〉, 2022. 웹페이지 museum-mix.dianaband.in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첫 번째 인터뷰인 김진주 님과의 대화를 살펴볼게요. 회화부터 조각 설치 작품까지 관람객이 어떻게 작품에 경험적으로 흡수되는지, 전시장에서 소리는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관해 주관적인 해석을 남겨주셔서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이 각자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미술관의 면모를 이야기해 주셔서 좋았고, 이 부분들을 저희가 〈미술관 믹스(Mix)〉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보고 싶었어요.

박현 님께서는 미술관 소장품 수집 담당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종종 찾았던 작품 수장고 소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소장 작품들을 모니터 화면 속 디지털 이미지로만 바라보다가 그것들이 몇 개월에 걸쳐 여러 장소를 지나 미술관 수장고에 도착했을 때, 작품의 포장을 풀 때, 작품 뒤편을 살필 때, 이렇게 수집 과정에서 여러 명의 학예사, 코디네이터가 달려들어 작업을 진행하는 순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작품이 보관되는 장소와 소리, 그 장소의 주인을 생각해 보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오로 님은 사운드를 매개하여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작가예요. 오로 님의 작업 중 약간 기울어진 책상에 관람객이 몸을 기대어 진동이나 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데, 이런 듣기의 태도나 방식을 다르게 제안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오로 님께서는 관람객이 벽에 서서 진동을 듣거나 누워서 듣는 등 다양한 형태의 청취 방법을 꾸준히 전시에서 제시하고 있고, 청취 방식과 자세를 통해 나오는 정서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각예술가 은설 님께서는 보청기를 사용하여 청각에 접근하시기 때문에 미술관 소리 환경을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했습니다. 은설 님께서는 미술관에서는 온전히 시각 정보를 향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미술관에 오면 소리의 방향성을 인지하기 어렵고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귀가 피곤하고 오래 머무르지 못합니다. 은설 님께 소리 환경을 어떻게 느끼시는지 여쭤보았는데 집에서는 다양한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예측할 수 없지만, 미술관에서는 소리가 발생하는 요소가―예를 들면, 작품에서 나오는 소리와 관객들 소리 정도로―단순하기 때문에 집보다 명쾌해서 즐겁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김진주: 모든 청각장애인이 은설 님처럼 듣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은설 님만의 특유의 감각으로 소리를 다시 듣는 부분, 특히 미술관 혹은 작품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와 다른 방식, 다른 감각을 쓰는 부분이 참 인상 깊어요.

듣기 공동체

신원정: 미술관 경험에 대해 다양한 관람객의 설문 답변을 살펴보면 어떤 분은 미술관의 여러 소리를 듣는 것이 피곤하니까 이어플러그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하고 관람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변을 달아주기도 하셨고요. 반면에 어떤 분은 집중하여 작품을 바라보는 타인의 숨소리, 발걸음 소리 혹은 자신의 신체 소리를 듣고 다시 인지하는 상황이 흥미롭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전시장 내부에서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공간과 작품들 사이에서 서로 듣는 공동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두호 님께서 저희가 웹진 『연극in』과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두호: 당시에 원정 님께서 소리와 관련된 좋아하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는지 물어봤고 저는 칠레에 여행 갔을 때 본 아침 풍경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연 〈숲에 둘러서서〉의 소개 글이 그 풍경을 묘사하고 있어요.

“그들은 숲에 둘러서서 있었습니다. 빌라들이 마주 보며 줄지어 늘어선 하얀 돌길 위를 수탉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가스통을 한가득 싣고 하얀 가스통을 두드리는 사람이 탄 트럭이 지나가기로 한, 그 길 위를 쓸쓸하게 걷는 수탉은 꺼이꺼이 울어대면서, 어젯밤의 술자리의 푸념을 동네방네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높이가 5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너편의 빌라에 3층 발코니에 앉아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있었고, 맞은편 빌라의 4층 침실에도 아래로 이십도 정도 꺾어진 처마 밑으로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탉의 먹먹한 노래는 골목과 창문들과 하늘까지 울려 퍼지고, 언덕 아래 사거리 횡단보도 옆 핫도그 가게 앞에 늘어져 있는 개와 길가에 세워진 올리브 나무, 그리고, 철제 담장이 있는 요리점의 회색 고양이, 하늘을 날아 어딘가로 가고 있는 갈매기들이 그 푸념을 듣고, 눈을 껌뻑이거나, 잎을 스치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하는 도중에, 마침 지나가던 건너편 빌라 지붕에서 마주친 삼색 고양이와 얼룩이 고양이는 뒤틀린 심기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이고 말았습니다.”4

인터뷰 도중에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듣기인 것 같아요.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한데, 여기서 지금 크게 소리를 내는 존재는 수탉밖에 없는데, 그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높은 건물이 마주 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 공간, 거리가 다 울린단 말이에요. 어떤 소리 가마처럼, 부글부글, 소리가 뻗어나가고 퍼지는 걸 내가 듣고 있는데, 건너편에 모르는 사람도 그걸 듣고 있어요. 심지어 그 사람은 반대쪽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거리에 나무들이나 풀들도 그걸 다 듣고 있을 거란 말이죠. 수탉이라는 존재의 이야기를 다 같이 듣고 있는 그 긴장감. 수탉 본인도 듣고 있죠. 누가 대답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울면서요. 그 소리가 어디까지 퍼져나갈까, 싶기도 했고, 그러면서 소리의 덩어리, 듣기의 덩어리,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5

소리가 우리 모두를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한데, 그 길을 사이에 두고 공간과 거리가 ‘소리 가마’처럼 부글부글 하면 울리고 있는 장면 속에 정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소리가 멀리 갈 것 같았어요. 내리막 언덕 너머에 있는 공간으로도요. 거기까지도 다 닿을 텐데, 거기 슈퍼마켓 옆에 있던 고양이도 그 소리를 들을 거고요. 우리는 이렇게 다 이 소리를 들으니까,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소리를 통해 함께 연결되겠지 싶었어요. 소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공동체적인 어떤 것이 있구나. 이렇게 소리를 통해서 듣기 공동체가 발생함을 깨닫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하철 스피커가 고장 나면 안내 방송이 흘러 나올 때마다 시끄러운 잡음이 들리고, 이때 우리의 귀는 항상 열려 있기에 잡음에 대한 고통을 느낍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소리에 대해서 피동의 입장을 취합니다. 어떤 냄새를 맡으면 차분해지고 졸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특히 공공의 공간이나 거리의 소리에 관해 우리가 계속 예민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신원정: 소비적이지 않고 같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해요. 청각 환경은 중요한 요소이고 모든 존재를 환대할 수 있는 방편이며 그 감각들을 계속 연습해야 됩니다. 따라서 오늘 강연에서 ‘듣기 공동체’ 그리고 서로 머무를 수 있고 초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소리 환경의 가치를 생각해보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더 고민하고 알아가야 하는지 질문하고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두호: 앞으로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마다 작업마다 소리를 다 녹음해서 아카이빙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리의 좋고 나쁨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시실1 소리, 전시실2 소리’ 이런 식으로 혹은 전시가 바뀔 때마다 모아 놓으면 나중에 흥미로운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전시를 개최하면 사진으로는 기록하는데 녹음은 따로 하지 않지요. 녹음을 하면 전시장에 있었던 시간과 이야기를 기록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진주: 소리나 듣기 특유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고 놓치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잘 고쳐지지 않고 방치해 놓고 있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자 피할 수 없는 감각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이두호: 감각을 놓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은설 님과 나눈 인터뷰를 보면 진동이라는 감각은 소리와 함께 들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청인으로서 감각의 진동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진동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이걸 못 느낀다고 말할 수 있죠?’라고 은설 님이 말씀하실 때, 저는 그 감각을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주목하려고 했다면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이 감각은 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진주: 이런 감각들은 두 분과 같은 작가들이 만드는 도구를 통해서 발견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강연에서 언급한 ‘듣기 공동체’를 이번 작업 〈미술관 믹스(Mix)〉라는 단어와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보게 되고요. 믹스는 소리를 만들거나 음악을 만드는 데 하나의 기본적인 방법이에요. 특히 고전적인 연구의 방식으로 녹음 활동이나 연주된 여러 소리를 또 다시 섞을 때 흔히 믹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요. 다이애나밴드가 하는 ‘믹스’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두호: 믹스는 소리를 믹스하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이미 믹스된 소리의 발견,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술관 믹스(Mix)〉는 미술관에 믹스된 소리 환경을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소리를 적극적으로 리-믹스(re-mix)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미술관의 소리를 믹스해 보자는 자극적인 가능성을 던져주는 동시에 우리는 이미 믹스된 환경 그리고 듣기 공동체로서 놓여있음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김진주: 강연에서 ‘수탉 소리’를 언급하시면서, 소리의 덩어리 속 개별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사이를 발견하고 연결해 주는 어떤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미술관 믹스(Mix)〉 작업에서 보여주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로서의 미술관’에 ‘수탉과 같은 존재’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답으로 걷기, 흐르는 수행성, 움직임 등을 생각했고요.

신원정: 지금도 소리가 흘러가잖아요. 소리를 잡고 싶은데 안 잡히고 흘러갑니다. 사운드의 기본 태도에서 보면 소리, 장면, 장소가 끊임없이 흐르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은 흥미로워요. 오로 님께서 인터뷰에서 사운드 작업을 전시할 때 오히려 창문이 있는 공간이 더 좋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외부와 내부에 공기를 타고 소리가 흐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아요.

이두호: 수행적인 활동은 발견의 계기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작업을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혼자서 계획하고 전략을 짜는 것에만 몰두하면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견은 수행적인 활동 혹은 걷기를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것들로부터 계속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 발견의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다이애나밴드가 참여하셨던 ‘소리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세미나에서 다이애나밴드가 오브제를 통해서 소리나 감각을 느끼면서 상상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셨던 기억이 나요. 일상에서는 제가 듣고 싶지 않은 것, 판단하고 싶지 않은 것, 번잡스러운 것들 속에서 정제되어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집중하지 않으면 소리들을 분리해서 듣거나 느끼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술관 믹스(Mix)〉의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미술관의 소리에 대해서 긍정적인 감상이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번잡스러운 미술관 소리 환경에서 제가 접한 감각들은 시야 안에 넘쳐나는 수많은 이미지,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계속 쌓여가는 피곤함이었어요. 사실 저는 주차장 소리를 녹음한 적이 있는데, 소리를 다시 들어보니 매연, 어두운 분위기, 소음과 같이 부정적인 느낌의 여러 소리가 뒤섞여 있었고요. 저만 녹음된 소리를 들었을 때와 실제 경험과의 괴리를 크게 느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연결해서 이야기해도 된다면, 많은 작가님께서 고민하는 부분이 ‘자신의 작업을 관람객에게 얼마나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가’인 것 같습니다. 저도 기획을 하다 보니, 아카이빙을 하든 텍스트화를 하든 뭔가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전달 안 되는 상황이 굉장히 고민이 됐어요. 보통 전시를 기록하더라도 영상이나 사진은 남지만, 실제 관객들이 감상하며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소리는 녹음하지 않는데, 소리를 작업 이미지와 같이 공유하며 아카이빙할 수 있으면 굉장히 신선할 것 같습니다.

신원정: 관객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환경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이트 큐브에서 작업하는 게 어려워서, ‘믹스’라는 형식을 선택하고 작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업을 하면서 힐링하는 것 같았어요.

편견일 수도 있지만, 녹음을 하면 소리가 납작해집니다. 〈미술관 믹스(Mix)〉 로비 섹션에 담긴 ‘화장실’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여럿이 있는데 화장실 간다고 말하는 소리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소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다시 듣다 보면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 찾아와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며 ‘녹음하는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미술관 믹스(Mix)〉의 앞마당 섹션에는 토요일마다 진행된 대규모 시위 소리가 계속 깔려있고 사람들이 미술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가 중첩됩니다. 대규모 시위 소리가 스트레스이자 에너지로 전달되는데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막상 녹음본을 들어보면 시위 소리는 뒤로 깔리면서 소리를 듣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녹음하고, 또 그 녹음본이 출력되는 사운드 시스템에는 그 소리의 에너지를 다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좋은 부분만 편집한 건 아니에요. ‘믹스’라는 상황도, 우리가 스피커로 들을 때도, 나는 그 상황에 관여하고 있지 않잖아요. 지금 “화장실!”하고 들리는데 내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노스탤지아적으로 소리를 상상하고 감각하게 되어 즐거운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처럼 우리가 소리라는 감각에 대해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인지해야 될지, 소리가 공동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가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두호: 전시를 기록하기 위한 녹음이 좋은지는 의문이 들지만, 전시를 둘러싼 시간과 관계를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녹음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이 될 수 있어요.

신원정: 녹음한 결과물이 ‘100% 현실이다’ 혹은 ‘현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요.

김진주: 온라인으로 함께 하시는 관객 중에 작가로도 활동하는 후니다 킴 님께서 댓글창을 통해 이렇게 질문해 주셨습니다. “점점 더 다중감각으로 환경을 인지하는 시대에 하나의 감각[청각]에 집중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두호: 예전에 여다함 작가가 참여했던 공연 《장면합성기: 아우어우오으》(2020)에서 램프와 빨간 풍선을 이용하여 빨간 원 모양의 불빛을 벽에다가 비추면서 작가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관람객은 오랫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았고 작가의 미세한 손 떨림이 불빛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시각이라는 감각은 정보를 읽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이기만 했었는데 그 공연을 통해 시각의 노이즈적인 가능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듣는 것처럼 빛을 보고 색깔을 느끼면서 온전히 시각 노이즈를 경험하는 것은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다중감각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하고,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원정: 우리는 다양한 감각 방식을 차단당하는 도시 환경에서 산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장소만큼 듣는 환경도 방법도 다양한데요. 가끔 청각적으로 흥미로웠던 장소를 떠올려요. 제주도에 인가가 드문드문 있는 밭은 깜깜한 밤이면 끝도 보이지 않고 수없이 많은 귀뚜라미 같은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셀 수 없는 소리들이 중첩되어 어쩌면 이 소리가 저를 덮쳐올 것 같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소리에 잠기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청각적 감각과 경험이 나와 너,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에 변주를 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비언어적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미술관 믹스(Mix)〉를 통해서 소통한 다양한 분들, 웹페이지를 함께 구성해주신 분들, 오늘 강연을 끝까지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김진주: 오늘 저희와 듣기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신 관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이애나밴드의 〈미술관 믹스(Mix)〉 웹사이트는 앞으로 약 1년 동안 유지되니 그동안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일 수도 있도록 자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작가님께도 감사합니다.

다이애나밴드 작가 프로필. 작가 제공.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교정, 교열, 윤문: 권정현


  1. 원래 강연의 제목은 ‘들려진 미술관을 말하기’였다. 대화를 글로 옮기며 본문편집자 권정현의 제안을 강연의 화자들이 받아들여 제목에 들어있던 이중 피동의 표현을 ‘들려진’에서 ‘들리는’으로 고쳐 쓰기로 한다.  

  2. 다이애나밴드 외, 「소리를 장소로 경험하기, 미술관 믹스(Mix)」,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서울시립미술관, 2022년 12월 5일, http://semacoral.org/features/dianaband-museum-mix-experiencing-sound-on-and-off-places.  

  3. Murray Schafer, The Soundscape: Our Sonic Environment and the Tuning of the World (Rochester, Vermont: Destiny Books, 1994); Originally published: The Tuning of the World (New York: Knopf, 1977). 머레이 셰이퍼, 『소리교육 1』, 『소리교육 2』(홍성군: 그물코, 2015). 

  4. 다이애나밴드, 〈숲에 둘러서서〉(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0) 퍼포먼스 소개글, 작가 홈페이지, http://pilote.byus.net/wpdiana/?page_id=1942

  5. 신원정, 이두호, 「서로 발견되는 사이 [연극인이 만난 사람] 다이애나밴드」, 웹진 『연극in』 제222호, 2022년 9월 29일, https://www.sfac.or.kr/theater/WZ020200/webzine_view.do?wtIdx=1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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