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과 대화: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윤충근
윤충근은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대한 통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평면 또는 공간, 시간 위의 시각 요소와 인간의 시지각을 포함한 사용자 경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탐구한다. ‘새로운 질서 그 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사용자 자율성, 웹 접근성, 거대 플랫폼 등 웹(World Wide Web)을 둘러싼 환경을 탐구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의문과 실천을 웹사이트, 설치, 워크숍, 출판 등의 형태로 선보인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 《창동레지던시 입주보고서 2021: 풀 물 몸》(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2021)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세마 코랄의 네 번째 워크숍/강연은 디자이너이자 웹 기반 현대미술 작품을 발표하는 윤충근 작가가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 제안에 실험적으로 제시한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코랄(CoRaL)〉과 〈마블(Marble)〉’에 관한 질문과 대화로, 2022년 11월 9일, 펼쳐졌습니다.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난 이 시간, 작가는 자신의 일련의 작업이 맺고 있는 웹브라우저 역사와의 관계성과 그간 연구해 온 여러 지식을 공유하며, 세마 코랄이 제시한 기획적 화두인 ‘미술관 교육 활동과 질문하기’에 관해 어떠한 자신만의 작가적 질문과 형태로 호응했는지를 밝혀줍니다.

‘코랄’과 ‘개인화된 렌즈’

윤충근: 오늘 강연에서는 제가 어떻게 웹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소개한 다음 웹 브라우저와 화면비의 역사를 짧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어서 반응형 웹 디자인에 맞서는 ‘요청형 웹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발표 자료로 보여드리는 웹페이지 중 화면 아래의 긴 영역은 〈거의 모든 것의 일부 역사〉(2022)라는 작업입니다. 화면의 숫자들은 연도를 구분하는 단위인 세기를 뜻하는데요. 이 작업은 저의 주된 관심사인 웹과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모은 연표입니다. 이 연표를 통해, 오늘 강연에서 소개할 사건이나 사물이 발생한 시점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지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윤충근, 〈거의 모든 것의 일부 역사 A Partly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2022. 웹사이트.

오늘 강연의 주제는 ‘웹’입니다. 줌(Zoom)을 이용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니, 강연에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인터넷에서 ‘웹’이라는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마 저보다 웹이라는 공간에 훨씬 익숙한 개발자분들이 관객 중에 계실 것 같습니다. 반면, 웹이 낯선 분들도 계시겠지요. 저는 웹이라는 단어를 초등학생 때 처음 접했습니다. 방과 후 수업으로 ‘나모 웹 에디터(Namo Web Editor, 1997)’라는 프로그램을 배웠는데요. 알록달록한 아이콘을 고르고 템플릿을 활용해 웹사이트를 만든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사실 수업을 들을 당시에는 웹사이트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왜 만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가 국내에서 웹이 대중화되던 시기임을 생각해 보면, 유행을 따라 맹목적으로 배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이후로 약 20년 동안은 웹사이트를 만든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1월, 민구홍 씨가 진행하는 수업 〈새로운 질서〉를 듣게 되었죠. ‘코딩을 배워두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어요. 아쉽게도 이 수업은 단기간에 속성으로 실력을 높여준다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모션이나 인터렉션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웹사이트의 바탕이 되는 언어인 HTML과 CSS를 글쓰기의 관점에서 알려주었죠. 그리고 이 수업을 함께 들은 이소현, 이지수와 함께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콜렉티브를 만들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충 시티(choong.city)’라는 도시를 웹상에 구축해 운영하고 있고요.

저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고 오늘 소개해드릴 〈코랄(CoRaL)〉이라는 작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해보려 합니다. 〈코랄(CoRaL)〉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의 커미션 작업이었죠. 서울시립미술관 김진주 학예연구사님께서 “미술관 교육에서 ‘질문하기’의 의미”를 언급하시면서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질문하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또 “웹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러한 교육 활동의 질문 수행과 생성을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지”에 관한 작업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를 보면 ‘교육’이라는 카테고리를 ‘전시’와 동일한 위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미술관의 활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코랄(CoRaL)〉을 제작하면서 학예연구사님과 주고받던 이메일 중 한 문장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미술관 교육에서 질문하기란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수행으로 개인의 서사나 개인화된 렌즈를 호출한다.” 평소의 저는 이런 식의 문장을 잘 쓰지 않지만, 미술관이라면 응당 난해한 문장을 써야 할 것 같아 조금 딱딱하게 써보았습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윤충근: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발표 자료 웹페이지 choong.city/221109 갈무리, 2022년 11월 9일, 제공: 윤충근.

미술관 교육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교육홍보과(현 전시교육과) 추여명 학예연구사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미술관 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미술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 교육은 관람객이 미술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작품을 해석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수행이라 할 수 있겠죠.

미술관 교육이 관람객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작품과 관객을 긴밀하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개인화된 렌즈”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과정은 그동안 사회나 교육 기관에서 배우고 학습했던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탈학습’의 과정이자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 인지적 차원의 질문으로 이루어지고요. 이것은 어쩌면 개인이 쌓아온 기존의 인지 체계를 전복하려는 무모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웹 브라우저

저는 미술관 교육에서 ‘질문하기’라는 과정을 웹이라는 매체 환경과 웹상의 사용자 경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코랄(CoRaL)〉을 소개하기에 앞서, 웹 브라우저라는 도구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대한 기술 지원을 종료했습니다. 저는 애플의 운영체제인 macOS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서비스 종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처음 배운 시점부터 대다수의 컴퓨터에 항상 기본값으로 탑재해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이것이 사라질 것이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2000년대 초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90%에 달하던 웹 브라우저가 어떻게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몰락하게 된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은 기술의 탄생과 소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윤충근: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발표 자료 웹페이지 choong.city/221109 중 윤충근 작, 1989년 이후 등장한 웹브라우저 서비스(제품)을 정리한 연표, 2022년 11월 9일, 제공: 윤충근.

이 연표는 웹이 탄생한 1989년도부터 현재 시점인 2022년까지 연도를 나열한 다음, 웹 또는 웹 브라우저와 관련한 사건들을 해당 연도 위에 아이콘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아이콘이 몰려 있는 부분을 보면 1990년대 초중반에 모자이크(1993),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1994), 오페라(1995), 인터넷 익스플로러(1995) 같은 웹 브라우저들이 등장한 시점이 있고요. 1997년에서 1998년에는 새로운 브라우저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 점유율을 다투는 ‘브라우저 전쟁’이 벌어졌죠.

그 후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사파리와 파이어폭스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파이어폭스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독점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죠. 요즘 많은 분들이 사용하시는 구글 크롬은 2008년에 등장했습니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2012년 삼성에서는 자체 웹 브라우저인 삼성 인터넷을 출시했습니다. 201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웹 브라우저인 엣지를 출시했고요.

다시 과거로 돌아가, 1991년 최초의 웹 브라우저인 월드와이드웹 브라우저를 만든 팀 버너스리 경(Sir Timothy John Berners-Lee)은 자신이 만든 웹이라는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마크 앤드리슨(Marc Lowell Andreessen)과 에릭 비나(Eric Bina)가 1993년에 공동 개발한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출력하는 기능을 갖춘 웹 브라우저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1994년, 앤드리슨은 회사를 나와 넷스케이프를 설립하고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개발했어요.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의 변천을 살펴보면, 1994년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995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등장 이후 브라우저 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운영 체제를 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던 반면, 넷스케이프는 하나의 브라우저를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는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이러한 규모의 차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판매하고 있던 운영 체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탑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웹 브라우저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고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의 웹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을 볼까요. 파란색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 청록색이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을 나타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98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탑재한 이후, 시장의 판도가 뒤집히게 되죠. 1998년,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문제를 제기를 하면서 미국 법무부에 소송을 걸었고 처음에 재판부는 넷스케이프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90%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1차 브라우저 전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승리로 끝났지만, 넷스케이프는 하나의 유산을 남깁니다. 바로 모질라 재단입니다. 1990년대 후반, 넷스케이프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스 코드를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이후 설립된 모질라 재단은 보안성과 안정성이 높은 브라우저를 만드는 움직임에 동참해 2002년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개발합니다.

웹 브라우저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역사를 살펴본 바와 같이, 웹상의 서비스는 언제든 종료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죠. 인터넷 익스플로러, 어도비 플래시처럼요. 이렇듯 하나둘 종료해 나가는 서비스들을 보며 이들을 추모하는 온라인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월드 와이드 공동묘지(World Wide Cemetery)〉(2022)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곳에는 웹과 관련한 서비스의 죽음을 기리는 장소로 모자이크, 엠파스, 네띠앙 등과 같이 지금은 사라진 국내외 서비스들의 묘비가 모여 있습니다. 이 중 포털 사이트 〈파란〉(2022)은 실제 전시장에서 선보인 작업으로 소환하기도 했고요. 대다수 서비스의 이름이 영어인 상황에서 파란만이 거의 유일하게 한글 이름이라는 점이 제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죠.

넷스케이프를 꺾고 세계를 제패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지금은 구글 크롬에게 그 자리를 건네주었습니다. 구글 크롬은 이 자리를 영원히 지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를 대체할 웹 브라우저는 무엇일까요?

모바일 장치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제게 화면 비율(aspect ratio)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각디자인은 시각 요소를 한정된 공간에 배치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용지의 비율은 1: √2라는 특수한 비율입니다. A4용지가 이러한 비율을 지닌 이유는 반으로 접어도 그 비율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작이나 규격화, 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죠. A4 종이의 규격이 탄생하고 공표된 시기는 1975년입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죠. ISO 국제표준화 기구가 만들어진 것이 1947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종이의 규격은 근대의 산물임을 재인식할 수 있습니다.

화면 비율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무성 영화 〈달 세계 여행〉(1902)의 화면비는 약 1.33:1로, 이는 4:3이라 알려진 비율입니다. 이 비율은 당시 필름 규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초기 컴퓨터와 TV에도 적용되었고 CRT 모니터에까지 쓰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대중화되기 시작한 TV는 영화 산업의 4:3 화면 비율을 채택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집 밖을 나서지 않고도 이미지의 충격적 경험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죠. 영화가 줄 수 있던 스펙터클을 TV에게 빼앗긴 영화 산업 관계자들은 전보다 극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3개의 영사기를 동시에 활용하는 2.59:1의 시네라마 비율을 개발했습니다. 이후에 폭스,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85:1이나 2.35:1 화면 비율을 만들기도 했고요.

앞서 소개해드린 인쇄나 영상 매체와는 달리, 웹사이트는 표준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좀처럼 쓰이지 않는 극단적인 비율을 설정할 수도 있죠. 2021년에 선보인 작업 〈올해의 웹사이트상 2021〉은 16:9 비율의 화면을 넘어 가로폭을 길게 설정한 웹사이트입니다. 인쇄 매체의 경우 규격에서 멀어지거나 크기가 커질수록 제작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지만, 웹사이트는 비율이나 크기를 극단적으로 설정하더라도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죠. 〈대체 미술관〉(2022) 역시 긴 복도 공간을 연출해 가로 스크롤을 극대화한 작업입니다. 강연 초반에 소개해드린〈거의 모든 것의 일부 역사〉 또한 가로로 긴 연표였고요.

반대로 ‘웹사이트를 출력하기에 가장 적절한 비율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또는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비율이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겠죠. 4:3 비율이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을 떠올리게 하고 16:9가 동시대의 표준 비율이라면, 이후에 표준이 될 비율은 무엇일지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진행한 작업이 〈모던비(Modern Ratio)〉(2022)입니다. 모던한 비율, 과거를 저버리는 비율이란 무엇인지 물으며 일상에서 발견한 사각형 오브제들의 비율을 수집한 작업입니다.

윤충근, 〈모던비 Modern Ratio〉, 2022. 웹사이트.

그렇다면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모바일 장치의 비율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애플이 2007년 출시한 아이폰 1세대의 화면 비율은 2:3입니다. 다소 뭉툭하고 투박해 보이죠. 그로부터 5년 뒤인 2012년 출시한 아이폰 5는 16:9로 극적인 변화를 선보입니다. 16:9 비율이 동영상을 시청하기에 최적화된 비율이라는 사실은 당시 유튜브 플랫폼의 사용자 추이와 무관하지 않겠죠. 다시 5년 뒤인 2017년 출시한 아이폰 X에서는 19.5:9라는 비율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비율을 유지하고 있죠. 태블릿 PC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아이패드는 2010년 출시한 이후로 4:3에 가까운 비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요. 제가 애플의 여러 기기들을 예시로 들었지만, 이후에 19.5:9 비율은 삼성 갤럭시 시리즈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산업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입니다. 모바일 장치들의 종류가 다양한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정형화된 규격의 디바이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반응형 웹 디자인

모바일 디바이스가 다각화되는 상황에서 웹 디자인 역시 변화를 겪는데요. 2007년에 아이폰이, 2010년에 아이패드가 처음 등장했으니, 우리가 모바일 디바이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블릿 PC가 등장 이후 널리 통용된 반응형 웹 디자인 역시 상당히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참고로 반응형 웹 디자인에 많이 쓰이는 속성인 미디어 쿼리(Media Query)는 2012년에 CSS에 추가되고 개발됐습니다.

반응형 웹 디자인이란 데스크톱,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서로 다른 디바이스에서 웹사이트를 경험할 때 사용자가 내용을 보다 더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디바이스/디스플레이의 크기나 비율에 맞춰 콘텐츠를 알맞게 조정하는 디자인 방법을 말합니다. ‘반응형(responsive)’이라는 단어는 컴퓨터가 네트워크에서 통신하는 방식인 요청(request)과 응답(response)에서 파생되었어요.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웹 브라우저 속 음악, 텍스트 파일 등의 정보를 요청하면 서버가 그에 응답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죠.

요청형 웹 디자인

삼성전자가 출시한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플립과 Z폴드는 기기를 접거나 펼쳤을 때에 따라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달라지는 ‘플렉스 모드’를 제공합니다. 이는 곧 웹사이트를 만들 때 두 가지의 모드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앞으로 스마트폰, 랩탑을 비롯한 전자기기에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사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가정할 때, 모든 기기에 알맞게 반응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여기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평면으로만 여겨왔던 디스플레이가 구부러지고 휘어짐으로써 입체적이며 유동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칩니다. 이 말은 디스플레이의 형태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기존의 사각형이라는 틀을 벗어던질 수도 있고요. 만약 동그란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디스플레이 상에서의 사용자 경험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한다면, 현재와 같이 접었다 펴는 정도가 아니라 찰흙처럼 주무를 수 있고 더 나아가 떼었다 붙였다 할 수도 디스플레이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이렇듯 가상의 브라우저 〈코랄(CoRaL)〉은 직사각형으로 대표되는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의 기술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무모한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삼는 작업입니다.

작업의 바탕이 되는 개념인 ‘요청형 웹 디자인’은 디바이스에 반응하는 웹사이트를 역전해 웹사이트가 디바이스에 요청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테면 웹사이트가 물방울 형태를 디바이스에 요청한다면 또는 가는 막대 모양을 요청한다면, 제 손에는 쥐어진 디바이스의 형태가 그에 맞게 바뀌는 것이죠. 이렇듯 표준화된 비율이나 형태를 벗어난 디바이스에서 사용자 경험은 훨씬 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화면을 축소하거나 닫기 위한 아이콘이 반드시 웹 브라우저 왼쪽 위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죠.

〈코랄(CoRaL)〉이 단일한 웹 브라우저의 형태에 집중한 작업이라면, 〈마블(Marble)〉은 복수의 브라우저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염두에 둔 작업입니다. 또한, 〈마블(Marble)〉에서는 미술관 교육의 질문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죠. 미술관 교육에서 쓰인 질문들 중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낱말을 추출하고 이를 동그란 웹 브라우저에 담아 화면을 클릭할 때마다 브라우저의 위치가 임의로 바뀌도록 했는데요. 이때마다 낱말들이 가까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짧은 문장이나 어절을 만들어냅니다.

낱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편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미술관 교육이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키워드들이 쓰이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키워드만을 가지고는 완전한 문장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불완전한 지점이 미술관 교육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애쓰는 에듀케이터의 존재를 상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충근, 〈코랄(CoRaL)〉, 2022. 반응형 웹페이지 choong.city/coral/marbl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윤충근, 〈코랄 마블(CoRaL Marble)〉, 2022. 반응형 웹페이지 choong.city/coral/marbl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대화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미술관 교육에서의 질문하기로부터 출발한 〈코랄(CoRaL)〉과 〈마블(Marble)〉이라는 작업을 윤충근 작가님의 이전 작업의 흐름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작업의 제목을 왜 ‘세마 코랄’과 같은 이름으로 정하셨나요?

윤충근: 산호의 형태는 대체로 매끄럽지 않거나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요.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나가는 산호의 모습들이 웹 브라우저 〈코랄(CoRaL)〉이 지향하는 형태, 기존의 디바이스를 넘어서는 규격화되지 않은 형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코랄’이라는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김진주: 저는 작가님의 작업을 보면 한 편의 즐거운 ‘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충근: 비정형의 디바이스를 상상하는 과정은 실제로 저에게 놀이와 같았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이었죠. 만약 원형 디바이스가 상용화된다면 닫기 버튼이나 홈 버튼이 어디에 위치해야 할지, 글이나 이미지를 읽는 경험을 어떻게 달라야 할지 등과 같이 말이죠. 이러한 궁금증과 함께 자연스럽게 〈코랄(CoRaL)〉을 채우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또, 하나의 기기가 네트워크상의 요청값에 따라 형태를 달리 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요. 물론 미래의 기술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김진주: 작가나 창작자에게 지지대가 흔들린다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창작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 관객 중 두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불안정한 문장과 오픈형 콘텐츠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작업 같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른 한 분께서는, “디바이스가 다양해지면서 모양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사용자 입력의 다양화(아이트래킹, 모션 인식)도 생길 것 같고 이에 따른 UI/UX의 다양화에 대해서도 얘기가 이루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의견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웹 창작물에서는 세세한 기능의 구성과 수행 효과, 그것의 시각적인 배치, 그리고 그 사용법을 설명하는 일이 작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작가님과 작업을 함께 논의할 때 웹브라우저의 상단 바를 변형하는 가능성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윤충근: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발표 자료 웹페이지 choong.city/221109 중 윤충근 작, 〈코랄(CoRaL)〉의 여러 형태 그림, 2022년 11월 9일. 제공: 윤충근.

윤충근: 〈코랄(CoRaL)〉을 통해 선보인 여러 형태들의 웹 브라우저 디자인은 모두 사용자 경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육각형 브라우저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상상했던 것이고요. 역삼각형 브라우저는 모서리 부분을 가운데로 접어 사용하는 방식을 생각했죠.

김진주: 작가님이 언급하신 “개인화된 렌즈”는 개개인의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인식하게 만드는 예술 작업의 의미를 짚고 있습니다. 관객과 창작자, 그중에서도 작가, 디자이너, 이렇게 각각 위치에서 미술 작업을 다룰 때 갖게 되는 생각이 다를 것 같아요.

윤충근: 요청형 웹 디자인은 반응형 웹 디자인을 뒤집는 개념입니다. 웹사이트가 디바이스에 더 이상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형태를 요청하겠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계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서의 저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미술관을 클라이언트로 마주하지만, 이번 커미션 작업의 경우는 작가로서 미술관을 마주했죠. 그렇기에 미술관의 요구 사항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청형 웹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가진 작가로서 미술 제도에 외치는 선언이기도 했고, 이 때문에 한편으로는 통쾌했습니다.

김진주: 아까 질문을 주신 관객께서, “작가님이 사용하시는 스마트폰 모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라고 물어보시네요.

윤충근: 저는 아이폰 XR을 3년 동안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을 사용해보고 싶기도 한데요. 리서치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디자인 전략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자신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체계를 ONE UI라고 부르며 보는 영역(Viewing Area)과 반응 영역(Interaction Area)을 구분합니다. 또한, 삼성 갤럭시의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사용자 환경을 ‘갤럭시 에코 시스템’이라고 부르고요.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이들의 UI 체계가 미래에 표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UI와 관련해 각 분야의 표준을 제정하는 기업과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코랄(CoRaL)〉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삼성전자의 갤럭시 Z 시리즈가 보여준 가능성은 큰 자극이 되었죠.

김진주: 두 번째 질문하신 관객께서 다른 질문을 주셨습니다. “플렉서블 디바이스에 적합한 UI 디자인을 만듦에 있어서, 사실 디자이너들에게 [이 작업은] 정말 곤혹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산업 전반에서 디자이너에게 도전성과 곤혹을 촉진하는 디바이스를 내놓는 것이 사용자들에게 더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충근: 디바이스가 다양해지는 것은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곤혹이 맞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어쩌면 사용자에게도 곤혹일 수 있고요. 일반적으로 기업은 기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변경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죠. 이를 테면, 기존의 홈 버튼이나 검색창의 위치가 바뀌면 사용자들은 곧바로 불만을 토로하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겠습니다.

김진주: 작가님은 요즘 온라인 전시들이 늘어나고 또 전시장에 이렇게 디스플레이들이 많아지는 환경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충근: 디스플레이가 전시장에서 쓰이는 방식은 디자인적인 관점에서도 흥미로운데요. 저는 주로 오프라인 전시를 방문해서 감상하는 편인데, 특히 미술관들이 매 전시마다 자신들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화면/디스플레이가 공간 안에 어떻게 ‘배치’되는 지를 항상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지금 [온라인 강의 시점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정서영 개인전 《오늘 본 것》에서는 미술관 본관의 긴 공간을 무대처럼 활용해 중앙에 작품을 배치하고 사방을 따라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죠. 《이불-시작》에서는 양쪽 벽면에 프로젝션을 쏘아 같은 공간을 거대한 통로처럼 만들기도 했고요. 또한 아트선재센터의 경우, 건축물의 특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매 전시 때마다 공간을 다르게 연출하고 변주해 나가는 방식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죠.

김진주: 첫 번째 질문을 해주셨던 관객께서 “코랄 융합학과가 개설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댓글로 적어주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오늘 강의 서두를 열어주실 때 ‘탈 학습’을 말씀하기도 하셨잖아요.

윤충근: ‘탈 학습’은 미술관 교육에서 질문하는 행위를 생각하며 고민했던 화두입니다. 미술관의 교육을 담당하시는 학예연구사님을 만나 나눴던 이야기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확장된 의미로서, 교육이 미술관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일상에서 미술 작품을 다시 떠올리고 발견하는 것까지를 미술관 교육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죠.

김진주: 오늘 강연에서 제가 기억에 남는 단어는 ‘그 후’, ‘그 이후’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표현이 질문을 상기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후에는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 이후에는 스마트폰이 어떻게 될까?’ 같은 질문이 생성될 수 있겠죠. 작가님이 속해 계신 팀 ‘새로운 질서 그 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윤충근: 제가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데 ‘그 후’라는 단어를 오늘도 많이 썼네요. (웃음) 저는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코딩을 처음 배울 때는 반응형 웹 디자인이 이미 보편화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데스크톱과 모바일 디바이스의 폭에 맞게끔 콘텐츠를 조정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응형 웹 디자인은 개발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개념이죠. 이러한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임시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래의 사물의 형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죠. 제가 역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과거를 탐닉한다기보다는,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오늘의 신화를 해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그 후’를 생각하는 일은 항상 ‘그전’을 생각하는 일을 동반합니다.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오늘날 웹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탐구하는 콜렉티브입니다. 저희 팀은 웹의 기본 정신인 개방, 공유, 참여를 가치 있게 여기는데요. 웹이 탄생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웹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빅테크 플랫폼이 야기하는 문제에 관한 해외의 글을 모아 번역한 책 『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2022)를 최근에 출간했습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사각형의 디바이스가 획일화된 사용자 경험을 만든다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플랫폼이 그 역할을 하고 있죠. 플랫폼은 간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직접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지나 글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거대해지면서 소수의 플랫폼을 독점을 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생기죠. 이를테면 메타로 이름을 바꾼 페이스북이 일으킨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사태(Facebook-Cambridge Analytica Data Breach)’처럼 개인 정보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요. 사용자의 관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 개인을 극단주의에 빠뜨릴 수도 있죠. 플랫폼의 효용도 물론 크지만,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한 생각들이 이번 책에 담겨 있어요.

책에 실린 글을 일부 소개해보자면, 흔히 플랫폼 하면 대기업의 플랫폼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 「나만의 소셜 네트워크 운영하기(Run your own social)」는 개인이 직접 플랫폼을 구축해 볼 것을 제안하며 ‘작은 규모를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만들라고 말하죠.

책에 실린 다른 글 「웹은 죽었다. 인터넷이여 영원하라(The Web Is Dead. Long Live the Internet)」는 2010년에 미국의 기술 과학 매거진 『와이어드(Wired)』에 발행된 글입니다. 당시는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이 점차 세력을 키웠던 때인데요. 이 글은 사람들이 애플리케이션에 종속되면서 웹의 사용률이 줄어드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것이 자본주의 순환 주기 안에서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기술이 발명되면 그것이 확산되면서 수많은 업체들이 경쟁하지만, 종국에는 소수의 기업이 독점해 다른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아선다는 것이죠. 책에 실린 여섯 편의 글 중에는 가장 오래된 글이지만 웹 3.0에 관한 논의가 뜨거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주: 각각 개별적인 웹 브라우저들이 패배했을 때, 즉 사용자의 반응을 판단하는데 실패했을 때, 그렇게 웹 브라우저가 소멸되는 시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들이 발현된다는 것을, 작가님의 이야기를 따라 여러 웹 브라우저들을 짚어가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중 브라우저의 비석을 만들어서 현실화시키는 〈월드 와이드 공동묘지〉를 다시 떠올려보면, 가상 세계의 것들을 가져와서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죽어 다시 태어나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윤충근: 기술이나 기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터치 스크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에 쓰인 피처폰이 생각납니다. 당시의 디바이스들은 훨씬 다채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었죠. 예를 들어, 스카이에서 출시한 ‘붐붐폰’은 키패드를 누를 때마다 진동이 발생했고, 싸이언에서 출시한 ‘샤인폰’은 휠을 장착하기도 했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플랫 하게 획일화된 스마트폰 경험이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터치 스크린 이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인 것이죠.

김진주: 작가님의 웹사이트 이름이 ‘충 시티’인데 왜 ‘시티(도시)’라고 이름 붙였나요?

윤충근: ‘충 시티’라는 이름은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 시티’에서 가져왔습니다. 웹사이트는 ‘웹’과 ‘사이트(site)’의 합성어로 온라인에서의 장소라고 뜻을 풀이할 수 있는데요. ‘충 시티’는 제가 웹상에 구축한 장소를 모아 만든 도시인 셈이죠. 이 도시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제 활동을 하는 등 웹사이트가 개인이 구축한 하나의 작은 사회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도시라는 개념을 부여했습니다.

김진주: 네, 앞으로 작가님이 만들어가실 그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작가님, 그리고 오늘 강의를 온라인으로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께도 감사합니다.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교정, 교열, 윤문: 김진주, 윤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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