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코랄(CoRaL)과 마블(Marble)

윤충근
윤충근은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대한 통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평면 또는 공간, 시간 위의 시각 요소와 인간의 시지각을 포함한 사용자 경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탐구한다. ‘새로운 질서 그 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사용자 자율성, 웹 접근성, 거대 플랫폼 등 웹(World Wide Web)을 둘러싼 환경을 탐구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의문과 실천을 웹사이트, 설치, 워크숍, 출판 등의 형태로 선보인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 《창동레지던시 입주보고서 2021: 풀 물 몸》(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2021)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디자이너 윤충근은 서울시립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자료에서 나타나는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 웹프로젝트를 제작한다.

교육 프로그램의 공개된 또는 공개되지 않은 여러 자료 속에서 우리는 미술관이 여러 방법과 맥락에서 ‘질문하기’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음을 확인한다. 에듀케이터는 미술관에서의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교육 담당 학예연구사와 논의를 거쳐 일종의 수업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전시와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석과 가치를 품은 이러한 강의록은 질문과 답이라는 수행성이 아니고서는 작동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한편, 이렇게 다가올 미술관에서의 배움의 순간을 준비하는 이들은 어떤 것이 ‘좋은 질문’이고 ‘나쁜 질문’일지 고심하며 최대한 가늠하려 애쓴다.1 ‘좋고 나쁨’은 질문보다는 답에 적용되기 용이한 가치일 것이다. 그러한 가치 판단이 질문하기에 왜 주어지게 되었을까? 여기서 ‘좋고 나쁨’은 흔히 통용되는 대당관계의 논리와는 다르게 작동한다. 미술 교육 프로그램에서의 ‘좋은 질문’은 맞는 답을 끌어내기 위해 잘 설계된 질문이 아니라, 배움의 수용자가 기꺼이 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고 환대하는 질문에 가깝다. 그래서 이 질문들은 어떤 대답으로부터의 요청에 계속 열려 있어야 하고 새로 고쳐질 수 있는 대담함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두 단계로 나누어 선보일 윤충근 작가의 웹프로젝트 〈코랄(CoRaL)〉은, 첫 번째 모습으로 ‘질문하기’의 상황을 ‘웹브라우저’로 옮겨 놓는다. 마치 질문을 거듭하듯 새로고침을 반복할 때마다, 작가가 만든 가상의 브라우저 〈코랄〉은 우리의 인식 속 브라우저의 형태, 그리고 기존의 브라우저 사이의 공백 영역을 변주해 보여준다. choong.city/coral을 클릭하고, 이 창에서 Ctrl (또는 Command) + R이나 F5를 눌러보자. 질문은 이렇게 사소한 것을 요청하며 시작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질문을 함으로써 우리는 그에 응답해야 한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요청형 웹(Requestive Web)을 위한 브라우저, 코랄(CoRaL)

요청(request)과 응답(response)은 컴퓨터의 기본적인 소통방식 중 하나이다. 요청은 클라이언트2가 서버3로 전달하는 메시지이고 응답은 이에 대한 서버의 답변이다. 2010년대 초반 태블릿 컴퓨터가 보급됨에 따라 등장한 반응형 웹(responsive web)은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웹사이트를 디스플레이에 출력할 때, 디스플레이의 크기나 비율에 응답해 웹사이트의 구성 요소를 재배치하는 기법을 말한다. PC에서는 여섯 단으로 나뉜 글이 태블릿 컴퓨터에서는 세 단으로, 휴대폰에서는 한 단으로 바뀌는 식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의 커미션 작품으로 선보이는 가상의 브라우저 〈코랄(CoRaL)〉은 디스플레이에 응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대로 디스플레이에 요청할 것을 상상한다. 이는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작품 제작과 관련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한다. 하나는 미술관 교육에서 ‘질문’의 수행과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웹사이트를 매체로 삼는 것이다.

미술관 교육이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수행이라고 할 때, 질문은 개인의 서사나 개인화된 렌즈를 호출한다. 또한, 국가나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교육의 조건과 그에 따른 반응에 대한 메타인지(metacognition) 차원의 질문을 포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관 교육에서의 질문은 미술이나 미술작품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촉매임과 동시에 개인의 기존 인지체계를 전복하려는 무모한 시도이기도 하다.

〈코랄〉은 질문하기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웹사이트 사용자 경험에 은유해 인터페이스 차원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디스플레이-브라우저-웹사이트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출력 과정의 역전을 시도한다. 기존의 브라우저 안에서 발버둥 치는 기이한 형태의 〈코랄〉 브라우저는 낱낱의 웹페이지를 출력하는 방식이나 웹페이지 안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하게끔 한다. 나아가 2020년 이후 상용화되기 시작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다음은 무엇인지 묻는다.

요청형 웹을 위한 브라우저 〈코랄〉은 지속해서 형태를 추가해나가며 기존의 디스플레이에 부딪히며 도전하는 한편, 8월 중 이루어질 업데이트에서는 미술관 교육에 쓰인 질문의 요소가 브라우저 안에 개입하며 ‘질문하기’의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윤충근 작가노트, 2022.

윤충근, 〈코랄(CoRaL)〉, 2022. 반응형 웹페이지(http://choong.city/coral/) 모바일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윤충근, 〈코랄(CoRaL)〉, 2022. 반응형 웹페이지(http://choong.city/coral/) 데스크톱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질문의 산포를 위한 놀라운 놀이로서의 웹브라우저

윤충근 작가의 웹프로젝트 〈코랄(CoRaL)〉의 두 번째 모습은 단어들의 위치를 바꾸어 질문을 재구성할 것을 요청한다. 작가는 미술관 교육 활동에서 실제로 쓰인 질문의 문장에서 통상적인 문법의 요소에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단어들을 추출했다. 그리고 웹브라우저 〈코랄(CoRaL)〉에 이 단어들을 ‘낱말’이라는 말 그대로 흩뜨려 놓았다. 낱말은 분리되기도 또 자립해서도, 두 가지 장면으로 언어를 모두 쓸 수 있음의 의미와 효과를 공유한다. choong.city/coral/marble을 다시 클릭해보자. 웹브라우저를 작동시키는 이 간단한 제스처 하나에 낱말은 위치가 바뀌고 새로운 조합이 되어 전에 없던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의 과정은, 마치 잘 미끄러지는 마블, 즉 구슬 하나(a marble)를 가지고도 온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마블러스(marvellous), 즉 놀라운 사건이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윤충근, 〈코랄 마블(CoRaL Marble)〉, 2022. 반응형 웹페이지(http://choong.city/coral/marble) 모바일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코랄 마블(CoRaL Marble)

의문사, 단어, 동사 등으로 질문의 요소를 범주화해 보여주는 방식은 미술관 교육이라는 활동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미술관 교육에서의 질문은 발산적 사고를 위한 열린 질문으로,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한다. 질문은 미술관 교육에 있어 필수적인 재료이지만 때때로 미끄러지며 임무에 실패하거나 사담에 그 역할을 내주기도 한다. 교육이라는 실천은 과정과 결과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역동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업데이트에서는 다수의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기 적합한 브라우저 코랄 마블(CoRaL Marble)을 선보인다. ‘코랄 마블’의 개별 브라우저에 입력된 낱말은 미술관 교육에서 실제로 쓰인 질문에서 추출한 것으로, 배경을 클릭할 때마다 겹치거나 엇갈리며 어절 또는 문장을 만든다. 이 낱말들은 개인의 보편적인 경험을 전제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이는 곧 질문의 빈틈을 채우는 이들의 존재와 역할을 환기한다.

—윤충근, 작가노트, 2022.

윤충근, 〈코랄 마블(CoRaL Marble)〉, 2022. 반응형 웹페이지(http://choong.city/coral/marble) 데스크톱형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서울시립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의 수많은 출판물과 교육자료는 이번 윤충근 작가의 세마 코랄 연구 커미션 웹프로젝트 〈코랄(CoRaL)〉과 〈코랄 마블(CoRaL Marble)〉의 생각을 키우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미술관에서의 교육 활동에 끊임없는 질문을 이어가며 자료를 생성해주신 여러 학예연구사와 에듀케이터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료를 공유해주시고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신 추여명 학예연구사께도 감사드립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육과정출판물) 파격! 노팁 노옵션 남서울미술관 + 지역투어 프로그램』.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7.
____. 『나의 기억 박물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7.
____.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시연계 〈나의 기억 박물관〉展 교육 활동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7.
____.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시연계 〈나의 기억 박물관〉展 작품카드』.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7.
____. 『2019 SeMA 도슨트 양성교육 나와 모두를 위한 환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9.
____. 『대기실 프로젝트 《전혀 예술적인, 엉성한 미술관》 국문 리플릿』.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20.
____. 『《전혀 예술적인, 엉성한 미술관》 연계 《SeMA 멤버스 클럽》 프로그램 결과집』.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20.
____. 『교육홍보과 생산 교육 프로그램 시나리오』(비공개 자료).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6~2022.


  1. “그동안 많은 미술관 에듀케이터들은 관람객들을 참여로 이끌 수 있는 질문 목록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 왔다. 답변이 정해지지 않은 열려 있는 질문 참여자의 선행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 등을 좋은 질문으로 참여자의 지식을 시험하는 질문 또는 추상적이어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등을 나쁜 질문으로 구별하곤 했다. 이러한 노력은 참여자를 대화에 초대하기 위한 것이지만 참여자가 진정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아, 「교육의 큐레토리얼적 전환: 서울시립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돌아보기」,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2022.7.7. 

  2. 클라이언트(client)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 혹은 사용자의 단말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3. 서버(Server)란 서비스를 제공하는 컴퓨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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