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큐레토리얼적 전환: 서울시립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돌아보기

김정아
김정아는 서울시립미술관 교육홍보과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대화형 도슨트 프로그램 《SeMA Talk》의 전신인 《미술에 대한 수다》(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18)를 도슨트와 함께 기획했고, 그밖에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석사학위논문 「존 발데사리의 포스트 스튜디오 미술 연구: 미디어 이미지 차용 전략을 중심으로」(2012)에서는 진보적 예술교육이 ‘픽처스 세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 미술사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미술관은 늘 배움이 가득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미술관 교육은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 등 다른 기능보다 다소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관람객 연구가 활성화되고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미술관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고 최근 큐레토리얼 담론에서도 교육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큐레토리얼 담론의 주요한 이슈인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은 그동안 단일하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미술관이 자신의 관행을 반성하고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교육 기능을 재고하며 비판적이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현상을 말한다. 이는 전시를 교육적 성격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교육 자체를 비판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다양하고 이질적인 관람객과 협력하여 지식을 생성하고 공유하는 실천을 강조한다.

윈슬로우 호머(Winslow Homer), 파리 루브르 갤러리의 예술 학교 학생들과 모사 화가들(Art-Students and Copyists in the Louvre Gallery, Paris),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1868. 1. 11.), 25. 미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소장 자료. 퍼블릭 도메인.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소프트 카오스: 공간 상상》(2019. 3. 26. - 9. 22.) 연계 교육 장면.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이 글의 출발점은 그동안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에 대한 이론화와 실천을 누가 주도해 왔는가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주목할 점은 큐레이팅을 교육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미술관 에듀케이터 또는 미술관 교육학자보다 큐레이터, 비평가 또는 예술가에 의해 주로 주도되어 왔으며 미술관 교육 부서의 활동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큐레토리얼 실천을 추구하는 미술관이라면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과 동시에 교육의 큐레토리얼적 전환 또한 추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교육의 큐레토리얼적 전환은 무엇을 의미하고 에듀케이터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본 발표는 3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되어 온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의 역사를 돌아보며 교육의 큐레토리얼적 전환과 에듀케이터 역할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의 과거와 현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해보고 미술관 교육의 미래에 대해 함께 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본관 개관 장면, 1988. 8. 19. 1988년 8월 경희궁 공원 내 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이날 개관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본관에서는 국내외 작가 120여 명이 출품한 작품 134점을 전시하는 《88 서울미술대전》이 개최됐다. 서울사진아카이브 소장 자료. 제공: 서울기록원.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

서울시립미술관은 국내 많은 국공립미술관처럼 1988년 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춰 개관했다. 빠른 속도로 건립이 추진되었던 탓에 미술관으로서의 적절한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운영되었는데, 이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초기에 안정적인 소장품 수집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고 《서울공예대전》(1993-2000), 《서울서예대전》(1993-2000), 《서울사진대전》(1996~) 등 관전 형식의 전시를 개최하여 전시 출품작들을 소장품으로 구입했던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1 학예인력을 채용하기는 했으나 서울시 문화국 올림픽준비단 문화담당관실이라는 행정 관료 조직 체제 하에서 운영되었던 점, 전문인 관장이 11년간이나 부재했던 점 등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정체성을 구축하고 이를 반영한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2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의 교육은 개관 후 2년 후인 1990년 〈토요시민미술강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오후, 2시간씩 진행되는 강좌로 교육의 주요한 방향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편성과 대중성에 역점을 두고 추진”되었다.3 장르별 이론 강의, 비디오를 통한 시청각 교육 등을 시작으로 1991년부터는 특정 시기나 지역을 연간 주제로 설정한 미술사 강좌를 선보였다. 예를 들어 1991년에는 원시미술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아우르는 ‘서양 미술의 이해’, 1992년 ‘한국 미술의 이해’, 1993년 ‘동양 미술’, 1994년 ‘도시 서울의 미술’ 등을 주제로 한 일련의 강좌를 개최했다.

김정아, 《SeMA 러닝 스테이션: 전환》 중 〈공공미팅〉 둘째 날(2022.1.16.) 발표 자료.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출신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유준상이 관장직에 취임한 후 서울시립미술관은 독립사업소로 기구를 개편했고 2002년 구 대법원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현재 서소문 본관으로 이전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서울시립미술관은 본격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성인 대상의 미술사 강좌와 어린이 강좌 및 청소년 강좌 등 20여 개의 강좌를 운영했고 수강생들의 다양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교육의 주제를 도예와 사진, 그리고 전시 연출과 무대 미술 등 광범위하게 채택했다. 2003년에는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자원봉사자 도슨트를 선발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아웃리치 프로그램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을 신설하여 바쁜 직장인과 학생들, 맞벌이 저소득 가정의 자녀를 대상으로 신청 기관에 찾아가 미술의 기초 지식을 전달하는 다양한 강좌를 선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은 20년간 〈토요시민미술강좌〉와 〈시민미술아카데미〉, 〈도슨트 운영〉,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 등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되었고 교육의 대상과 범위를 넓혀왔다.

그러나 강좌 목록으로 유추해보건대 보편성과 대중성에 역점을 두고 추진된 미술관 교육은 미술사나 미술작품 감상법, 표현법 등 주로 미술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 교육의 목표를 대중성과 보편성에 맞춘다는 것은 결국 대중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검증된 형태의 교육을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0년대 한국 미술교육에서 중시되었던 학문 중심 미술교육, 즉 DBAE(Discipline-Based Art Education) 이론이 미술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DBAE 이론은 이전 미술교육에서 창의성을 중시함에 따라 표현적인 측면에만 편중된 상황을 비판하며 미학, 미술사, 미술비평, 미술제작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통합적인 훈련 학습을 강조하는 교육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제6차 교육과정 개편을 통하여 DBAE이론을 미술 교과 과정에 반영했고, 2005년 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 또한 기존의 기능 위주 예술교육에 대한 비판적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DBAE 이론의 영향이 감지된다.

이러한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에서 미술관 에듀케이터는 강좌 주제를 설정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여 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가르치는 권한을 위임한다. 이때 강사와 수강생은 전통적인 교수자-학습자의 관계로 강사는 앞에 서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다수의 학생은 앉아서 받아 적거나 강사가 지시한 것을 그대로 행하는 강의 형태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교육은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지식을 전달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나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지식을 수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므로 현재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을 부정적으로 본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유명한 “은행저금식교육(banking education)”이라는 비유는 전통적 교육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4

그러나 여전히 미술관을 방문하는 많은 관람객들은 미술작품에 대한 정보적인 교육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술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해석하려면 역사적 맥락이나 배경 지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므로 지식 전달 교육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미술관 교육의 목적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겠으나 오랜 기간 유효했던 교육 방식을 너무 쉽게 배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은 20년간 규모나 대상 주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확정되었으나 교육의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을 미루고 개별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몰두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교육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일이므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치중하다 보면 이에 대한 고민이 소홀히 여겨질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의 적절한 중심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미술관 운영에 ‘포스트 뮤지엄(Post-Museum)’이라는 비전이 도입된 시기이다.

참여 중심의 교육

서울시립미술관은 2010년대부터 미술관 시설과 활동 범위가 확장되면서 이를 총괄하는 별도의 프레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자체적인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모색했다.5 이는 2012년 큐레이터 출신인 김홍희 관장이 취임하며 세운 포스트 뮤지엄이라는 비전을 통해 본격화되었는데 김홍희 관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스트 뮤지엄은 관객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떠한 태도와 전략으로 관객에 다가가는가? 실로 오늘날의 다수 미술관들은 관객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고 있다. 모던 뮤지엄은 미술관 관객을 결핍의 대상, 즉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여 교육이 필요한 일방적 수신기 같은 존재로 간주했다. 포스트 뮤지엄은 관객을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 또는 뮤지엄 발전을 위한 창조적 동반자로 인식하며 뮤지엄과 관객의 쌍방향 소통을 전제로 하는 관객 논리를 재개념화 하고 있다.6

박물관 학자 후퍼-그린힐(Eilean Hooper-Greenhill)이 언급하기도 한 포스트 뮤지엄 개념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뮤지엄 역할에서 벗어나 관람객과의 관계를 재편함으로써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지식을 고정 불변하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학습자에 의해 구성되는 주관적인 것으로 보는 구성주의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비전 아래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재정비하는 한편, 〈예술가의 런치박스〉, 〈시민큐레이터〉와 같은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관람객 참여 중심의 교육을 운영했다. 2013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분위기 속에서 퍼포먼스, 워크숍, 토크 등의 활동을 통해 참여자와 예술가가 함께 작품 또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에듀케이터는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예술가와 참여자 간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활동 내용을 구성하는 데 보다 집중한다.

이우성, <예술가의 런치박스: 저기요, 잠깐만요> 드로잉 워크숍 장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19. 3. 12. ~ 4. 23.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예를 들어, 이우성 작가와 함께한 〈저기요, 잠깐만요〉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상대방의 신발을 관찰해서 그리는 활동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에듀케이터는 작가와 협력하여 작가의 작업에 사용되는 정사각형의 천을 바닥에 깔고 자투리 천을 그 위에 얹어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경계를 이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신발에 관한 대화를 참여자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질문의 목록을 정리하였는데, 예를 들어 신발에 관한 유년기의 추억, 신발을 신고 갔던 장소, 신발을 신고 앞으로 가게 될 곳, 자신과 신발에 닮은 점, 사게 된 이유 등의 질문을 구성했다.7

해를 거듭하며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참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메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담당 에듀케이터는 관람객들의 참여와 해석이 미술관에서 진정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가 자문하며 “이러한 참여 중심 프로그램이 일회적이고 휘발되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간 미술관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관람객/참여자들이 생각을 교환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교육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어떤 순간에는 서로 공감하며 연결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도슨트나 시민큐레이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계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관객의 참여와 이들의 해석이 미술관에서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관객이라고 일컬어지는 참여자들을 미술관에서 정말 필요로 하나? 수치나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구성자로 생각하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기존의 미술관 프로그램이 일회적이고 휘발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미술관 구성원 간에 서로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한계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8

참여 중심의 교육은 학습자들 스스로 사고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이러한 참여는 미술관에 의해 ‘잘 짜여진’ 틀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여 중심 교육에서 생성되는 지식은 참여자 자신의 질문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관심사나 주제 우선순위를 반영한 계획과 커리큘럼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관계 중심의 교육

오늘날의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품 보존과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회문화적 가치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전파하는 문화기관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고 반목하면서 역사적 진보를 성취해온 한국사회 특유의 발전과정을 반영하며…

21세기 현대미술관 활동에서 시각예술은 점차 이미지 소비에서 퍼포먼스 생산으로, 미디어에서 데이터 개념으로, 라이브러리에서 아카이브 구축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있다.9

서울시립미술관은 2019년 백지숙 관장이 취임한 후 여럿이 만드는 미래 모두가 연결된 미술관이라는 비전 하에 운영되었다. 백지숙 관장은 학예연구워크숍을 통해 구체적인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했는데 그중 하나는 “다양한 주체들이 만들어 나가는 사회문화적 가치—창의적 지성과 실천의 네트워크”로 이는 대중이 “사회문화적 가치를 수행하는 정치적인 주체로서 미술관의 다양한 플랫폼에 개입”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확장 변모하는 시각 예술의 성과—큐레이팅에서 큐레토리얼로 이동하는 미술관”으로 “미술관 기획의 초점이 전시 기획의 어법을 의미하는 큐레이팅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지식 생산과 실천의 구조를 생성하는 큐레토리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서울시립미술관 미션의 중심에 큐레토리얼 이론과 실천을 접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형용사인 큐레토리얼(curatorial)을 고유 명사로 사용하는 큐레토리얼 프로젝트는 다양한 방법론으로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며 여러 공동체와 대화와 토론으로 생산되는 지식 협력에 의한 연구를 강조한다. 큐레토리얼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전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던 교육을 그 중심에 놓았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하나의 전환의 순간으로 보았으며 이에 대한 논쟁적 비평을 모아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10이라는 선집을 출간했다. 저자 중 한 명인 이릿 로고프(Irit Rogoff)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마 이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나는 문화 및 교육 모두에 강요된 접근 가능성, 즉 문화와 교육이 우리가 이야기할 모든 복잡함에 쉬운 시작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대한 끝없는 요구를 거치지 않으며 교육을 생각해보고 싶다. … 그 대신 나는 교육을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장소라고 생각하려 한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접근은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적 절차라는 이름 아래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이런 질문을 만들어낸 자들이 이 판을 만들어 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11

이는 미술관 교육이 문화예술 이해의 쉬운 시작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강화하기보다 강력한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질문이 미술관이 아닌 관람객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많은 미술관 에듀케이터들은 관람객들을 참여로 이끌 수 있는 질문 목록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 왔다. 답변이 정해지지 않은 열려 있는 질문 참여자의 선행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 등을 좋은 질문으로 참여자의 지식을 시험하는 질문 또는 추상적이어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등을 나쁜 질문으로 구별하곤 했다. 이러한 노력은 참여자를 대화에 초대하기 위한 것이지만 참여자가 진정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0년부터 교육의 중심 목표를 상호 관계를 통한 배움으로 두고 참여자, 매개자, 운영자가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질문하고 답변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협력해 기획하고 운영했다. 관계 중심 교육에서 에듀케이터는 교육 이전에 사전 워크숍, 공공 미팅 등을 통해 참여자들과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관객과 능동적 관계 맺기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연구하고 실행하기 위해 남서울미술관을 퍼블릭 프로그램 공간으로 특화한 〈대기실 프로젝트〉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기실 프로젝트: 전혀 예술적인 엉성한 미술관〉 대기 장면, 2020. 8. 25. ~ 10. 25.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첫 번째 〈대기실 프로젝트: 전혀 예술적인 엉성한 미술관〉은 미술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 관객과 도슨트 그리고 미술관 시설 관리 직원 및 전시 안내 스태프 그리고 작가 및 교육자와 함께 사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들과 협력해 미술과 미술관의 공간과 전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전시와 프로그램은 잘 짜인 계획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러 협업자, 참여자와의 느슨한 만남과 대화에서부터 출발했고 관람객이 개입할 수 있도록 엉성한 틈이 의도적으로 존재하도록 구성되었다.

〈SeMA 도슨트 대회 1: 묵다 묵다〉는 미술관에서 전시해설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을 이어주는 매개자인 도슨트가 주최가 되어 도슨트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기고 다양한 관람객과 관계 맺는 방법을 실천해보고자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도슨트가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어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활동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여러 매체를 통한 새로운 도슨팅 프로그램을 실험해보는 무대가 되었다.

또한 2020년부터 시작된 〈찾아오는 퍼블릭 프로그램〉은 기존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을 개선한 프로그램으로 잠재된 관람객을 미술관에 초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연결점을 만들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배움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갤러리 토크 이야기의 모양〉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각자 마음에 그린 이야기의 모양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기획전 사례 연구로 주목했던 것은 소셜 뷰잉(Social Viewing)이라는 방식인데 이는 일본 미학자 이토 아사(伊藤亜紗 | いとう・あさ)가 창안한 용어로 말 그대로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감상을 주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각장애인이다.12

소셜 뷰잉은 다 같이 작품 앞에 모여서 비(非)시각장애인이 자신이 본 것을 언어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주 자세히 관찰하며 작품의 크기나 색 작품 속 형상의 구체적인 시각적 정보를 언어로 표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의미 즉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자신만의 생각이나 인상 기억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때 시각장애인은 단지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듣는데 단편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점점 전체 형상이 드러나고 안 보이거나 잘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 워크숍을 이끈다.

이러한 관계 중심의 교육은 개개인의 생각을 확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경쟁적인 관계가 아닌 협력적인 관계로 변화시킨다. 이야기의 모양은 소셜 뷰잉의 방법을 참고하여 시각장애인 비시각장애인을 초대해 사전 프로그램과 몇 차례 미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전시 작품을 함께 해석하고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모두가 미술관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이러한 사전 워크숍을 토대로 교육 영상을 제작했는데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각자 마음에 그린 이야기의 모양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협력해서 작품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구분, ‘지식 전달, 참여, 관계’는 분석을 명확히 하고 미술관 교육의 목표나 방향 에듀케이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 제시된 것일 뿐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교육에 있어 모두 필수적인 역할을 함으로 엄격히 분리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에듀케이터는 미술관 교육의 적절한 중심 목표가 무엇인가 질문하고 자신의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이를 이론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은 큐레이팅과 교육, 두 관행의 중요한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큐레토리얼 연구가 전시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주로 이야기해 왔다면 미술관 교육 또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전시와 교육, 두 영역에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교육적 큐레토리얼적 전환을 중시하는 미술관이라면 전시나 교육 부서뿐 아니라 예술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자 사이에 위계 없이 긴밀히 협업할 수 있는 구조와 그들이 연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함으로써 끊임없이 서로에 대해 질문하고 비평하며 균형점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이 가능할 때 진정 전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1월 16일, 세마 러닝 스테이션(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있었던 《세마 러닝 스테이션: 전환》의 〈공공미팅—배움의 전환(Public Meeting―Shift in Learning)〉 발표문을 보충하고 재편집한 원고입니다.


  1. 김아영, 「복합적 동시대성을 구현하는 미술관과 소장품」, 『SeMA Coral』(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21. 9. 18.) 참고. 

  2. 임근혜, 「제도와 미술의 역학관계: SeMA를 중심으로 본 공립미술관의 작동원리」,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읽기 쓰기 말하기』(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6), 178, 참고. 

  3.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연보 1988-2001』(서울:서울시립미술관, 2001), 132. 

  4. “이렇게 해서 교육은 예금 행위처럼 된다. 학생은 보관소, 교사는 예탁자다.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받아 저장하고, 암기하고,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이다. 여기서는 학생들에게 허용된 행동의 범위가 교사에게서 받고, 채우고, 보관하는 정도에 국한된다.”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남경태, 허진 옮김(서울: 그린비출판사, 2020), 90.) 

  5. 윤원화, 「블루칩, 푸른 꽃, 또는 우울감: 서울시립미술관의 젊은 미술가들」,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읽기 쓰기 말하기』(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6), 158, 참고. 

  6. 김홍희, 「포스트 뮤지엄과 새로운 관객」, 앞의 책, 132. 

  7. 서울시립미술관, 『미술관에 놓인 배움의 식탁 예술가의 런치박스 레시피』(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9), 140-142, 참고. 

  8. 「대기실 프로젝트《전혀 예술적인, 엉성한 미술관》기획자 인터뷰」, 『2020 SeMA Zine』(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20), 54-55. 인용된 부분은 서울시립미술관 추여명 학예연구사의 답변이다. 

  9.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워크숍’ 발표 자료(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9. 8. 5.), 3-6. 미술관 내부 직원 교육을 위한 비공개 자료이다. 

  10. 폴 오닐, 믹 윌슨 엮음,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 김아람 옮김(서울: 더플로어플랜, 2021). Paul O’Neill and Mick Wilson Eds.,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 (London: OpenEditions, 2010). 

  11. 이릿 로고프, 「전환」,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 41-42. 

  12. 이토 아사는 시각장애인 시라토리 겐지가 미술작품을 감상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미술관의 협조를 구하며 시작된 워크숍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감상하는 방식을 ‘소셜 뷰잉’이라고 칭하였다. 이토 아사,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박상곤 옮김(경기: 글항아리, 2009), 153-186, 참고. 

© 2024 작가, 저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 SeMA Coral)에 수록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작가, 저자,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으며, 저작자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서면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각 저작물에 담긴 의견은 미술관이나 세마 코랄과 다를 수 있으며, 관련 사실에 대한 책임은 저자와 작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