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 동시대성을 구현하는 미술관과 소장품

김아영
김아영은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학예연구사로, 미술관의 새로운 지식생산의 형태와 공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뮤지올로지, 소장품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온라인 지식 플랫폼인 <세마 코랄>, 『이불-시작』 모노그라프,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SeMA 소장품 가나아트 컬렉션』 연구서, 가나아트 컬렉션 상설전 《시대유감 時代遺憾》 등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이데올로기적 시공간 안에서의 미술관

서구 뮤지엄의 역사와 달리 한국은 근대화, 도시화와 함께 미술관이 탄생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 제24회 올림픽 개최도시가 ‘서울’로 호명되던 순간을 전후로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관통한 압축적이고 속도감 있는 변화는 예술의 영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 “…88년까지 앞으로 7년 동안, 이제는 좋아도 싫어도 한국은 세계에 노출되게 되었다. 세계가 한국을 보러 올 것이고 세계의 눈이 한국을 주시할 것이다. 언제 어느 구석에 그러한 주시의 눈길이 닿아도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한국을 보일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 세계의 ‘쇼윈도’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1

“세계의 쇼윈도” 속에 들어간 한국에서의 미술관은 서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선진 도시문화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성공을 문화 예술적 버전으로 번역한 산물로서 제시되었다. 이 무렵 한국의 굵직한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들이 신축, 이전, 개관을 거듭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69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미술관을 신축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의해 1982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과천으로 이전 재개관하였다. 재미 건축가 김태수에 의해 설계된 현 국립현대미술관은 규모나 디자인 면에서 한국 최고의 미술관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를 두고 양은희는 제5공화국의 “스펙터클 만들기 계획”이라 설명하면서 “독립기념관(충청남도 천안, 1983. 8. 15 기공, 1987. 8, 15 개관) 개관, 국립중앙박물관 이전(1986년 중앙청 자리로 이전)”과 함께 한국의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라고 평하였다.2 이와 유사한 움직임은 국가적 단위 뿐 아니라 시 단위에서도 일사분란하게 전개되었다. “올림픽의 운영 주체보다는 개최 도시로서의 역할” 수행에 가까웠던 서울시는 ‘세계에 선진도시 서울의 모습 과시’라는 목표 아래 “대회 준비사업을 경기장 및 관련 시설 건설 등의 직접사업과 여건 조성 등의 간접사업으로 구분하여 추진”하였다. 간접사업에 해당했던 도시의 인프라 구 축은 외국인들의 눈에 노출되는 “올림픽 가시권”내의 도시 개조사업이 대표적이었다. 도시 서울에는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등장하였고 건물 외부에는 조각, 회화 등의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1984년 서울시 의무화)이 마련되면서 도시의 외관은 변하고 있었다.3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청 주변의 도심지 풍경이 화려하게 바뀌면서 도달해야할 또 다른 목표는 도시의 문화 예술 인프라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 박물관을 도심지에 건립하는 것이었다. 1985년 ‘경희궁지에 시립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립한 것’을 제1호 시장 지시사항으로 추진한 염보현 시장과 서울시 문화국 서울올림픽준비단의 기획 아래 시립미술관과 박물관 건립은 약 3년간의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매우 속도감 있게 추진되었으며 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추어 완료되었다.4

개관 당시 서울시립미술관 전경(1988) ©서울사진아카이브

도시 서울의 변화상을 상징하듯이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 문화국 ‘서울올림픽준비단 문화담 당관실’ 소속으로서, 강남으로 강제 이전된 경희궁 터의 구 서울고 본관 건물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속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술관 신축을 미루고 “임시로 쓸 미술관을 서둘러 보수 개관하는 것은 서울올림픽 문화행사를 치르기 위한 무리한 졸속행정”5이라며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미술관이 기관의 정책과 소장품 수집제도를 논의하고 수립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설립되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개관전시이자 이후 수년 간 미술관 전시의 중추기능을 담당해 온 《서울미술대전》6은 당시로선 가장 현실적인 운영방식이었다.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 단순 전시장 겸 사무실로서 향후 경희궁 근린공원 개발을 계속 추진하기 위한 근거지”7에 가깝다고 평한 윤원화의 말처럼, 서울시립미술관의 초기 형태는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인의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도시 서울에 세워진 간접 인프라 중 하나에 더 가까웠다.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 본연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한 고민과 미술전 문인과 행정조직 간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이는 이 후 오랜 기간 동안 미술관 소장품과 소장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85~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수 증가 추이’ (2019. 7. 기준) ©서울시립미술관

전문인 관장이 부재한 약 11년 동안 《서울공예대전》(1993-2000), 《서울서예대전》(1993-2000), 《서울사진대전》(1996- )으로 확장된 대전(大展) 형식의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지탱하는 큰 축이었다. 당시 미술관은 기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서울미술대전》이라는 전시형태와 한 국화, 양화, 판화, 조각 분야를 대표하는 원로작가들로 구성된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회’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회’는 전시를 구성하고 출품작 중에서 우수 작품을 선별하여 미술관 소장품으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8 관전을 개최하고 그 연장선으로 작품구입을 병행하는 제도는 미술계의 원로, 중진 작가들의 전시 참여를 독려하며 대전을 활성화시켰고, 당시로서는 검증된 작품을 소장품으로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었다. 미술관 개관 시점부터 25년간 재직한 정혁 전 수집보존과장에 따르면 1988년부터 1999년까지 소장품 수집의 기조는 “검증된 작품”이었다.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은 행정 관료조직 체제 하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에 보편적인 상식에서 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안전한 소장품의 기준이 필요하였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진품’을 담보할 수 있는 생존 작가의 작품은 ‘작품성’보다 더 중요한 소장품의 선별 기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이후에 제작된”, “생존 작가의”, “서울 미술대전 출품작”은 작가가 직접 전시에 출품한 진품이자 제도가 인정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검증된 작품”으로 여겨졌다.9 이러한 수집 기조는 전문인 관장이 취임 직전까지 소장품 수집의 근간이 되었다.

매년 새롭게 구성되는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회가 구성한 전시가 계기가 되어 소장품 구입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수집은 관장이 없는 공백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자구책이었으나, 기관의 성격과 미래를 관망하는 수집 정책과 제도로 이어지는 데 한계는 분명하였다. 이처럼 관전에 수집이 종속되어 있는 구조는 초기 소장품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지도를 떨어뜨리며 미술관의 역사에서 수집과 관련된 일체의 역사가 배제되고 기관 및 소장품을 연구하기 위한 제도적, 미술사적 접근 또한 차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10

그런 의미에서 1999년 초대 관장인 유준상의 취임을 전후하여 미술관 안팎에서 제도적 차원의 논의가 생성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초대 관장 후보를 정하는 ‘인선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강홍빈은 “자문위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관계, 사립미술관과의 차별성, 새 천년에 문을 여는 미술관의 진보적 내용, 시민들의 참여 등을 고려해”11 관장 인선과 미술관의 기능 변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주요 일간지 역시 관 주도의 운영에서 탈피한 서울시립미술관이 어떠한 새 모델을 설정하여 미술관의 위상을 제고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유준상 관장은 취임 후 인터뷰에서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성격을 유지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작품기증 활성화”로 소장품의 “질을 높”인다는 포부를 내 비쳤다.12 이러한 의지는 “한정된 수집예산”으로 “현실적으로 수집 맥락을 잡을 수 있는 1980년대 이후 미술 중, 유일하게 의미 있는 대형 컬렉션이 가능한 리얼리즘 부문의 대표작품”13들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현실화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술관의 학예인력들은 소장 대상 작품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였으며, 그렇게 모여진 소장품은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소문 이전 재개관과 맞물려 미술관의 역사를 구성하고 상설전시실을 신설, 소장품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학예적 지지기반이 약한 태생적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 급진적인 소장 방식 및 주체의 변화는 2년 간의 짧은 실험으로 그치며 또 다른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2003년 국공립 미술관 최초로 시행한 ‘수집 공모제’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는 전임계약직으로 구성된 학예직의 고용형태로는 지속적인 소장품 정책을 담보하기 어려운 조건과 미술관의 행정 구조상 수집 절차의 투명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적인 시공간 안에서 행정과 예술의 논리로 움직이는 서로 다른 주체가 만나서 미술관의 역사를 써온 것을 주시하는 것, 그리고 미술관을 구성하는 여러 이해관계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변화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현재의 관점에서 일종의 페다고지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거, 미래를 위한 호출

2002년은 당해 배정된 수집예산을 불용시키고 단 한건의 작품수집도 하지 않은 이례적인 해이다. 수집 작품 ‘0건’은 전체 소장품 수 1,031점(2002년 기준)의 약 50%에 해당하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한 지난 2년간의 전례와 비교할 때, 수집의 행정적, 기술적인 방법론 을 모색하며 제도상의 정비를 거친 과도기를 증명하는 지표로 읽힌다. 이듬해에 미술관이 보고한 문서에 따르면 2002년 소장작품 확보 예산 불용사유는 “시립미술관운영조례상에 명시된 인터넷·시보공고 절차를 누락함으로 인해 발생”15하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2002년 3월 25 일자로 개정된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조례 시행규칙’에는 소장품 수집 절차를 세분화한 흔적이 발견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소장품의 수집 대상작을 구성하는 주체가 학예직에서 일반 시민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작가, 작품소장자, 화랑관련자, 작품매매업자 및 법인”16으로 제한한 참가자격요건에는 미술작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당사자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일반인들까지 대상을 넓혀놓았지만, 미술관 내부의 전문 인력은 제외되었다. 초대 관장 재임기의 수집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개선은 미술관 소장품 수집제도의 패러다임 전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1997년에 개정되어 2001년까지 소장품 수집의 근거로 활용되었던 운영조례를 살펴보면 그 내용은 더욱 명확하게 다가온다.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는 1997년 운영조례에는 “시장”(사실상 그 권한을 위임받은 관장)이 “미술관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미술작품을 구입하고자 할 경우 예산의 범위 내에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구입”17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다. 소장품 수집에 있어 시장(관장)의 재량권은 매우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위의 내용은 앞서 살펴본 보편적인 상식에서 수집에 대한 안전한 기준을 마련하며 “검증된 작품”의 수집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던 지난 과거와 배치되면서 2002년의 제도 개선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주요 국공립미술관 소장품 수집제도’(2020. 6. 23. 기준)

흥미로운 지점은 2000년대에 신규 개관한 다수의 지역 공립 미술관들인 경기도미술관(2006), 제주도립현대미술관(2007), 포항시립미술관(2009), 대구시립미술관(2011), 수원시립미술관 (2015) 등도 개관과 동시에 ‘공모제’를 소장품 수집의 주요 방법으로 채택하였으며, 현재 건립을 추진 중인 미술관들도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18 대내외적으로 찬반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집 공모제가 공립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방식으로 빠르고 공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끌어안아야 하는 지역 공립미술관들의 공통된 자기 인식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집대상 작품 구성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대의적인 관점에서 최소한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절차로서 행정조직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으며, 이것이 공공기관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 및 투명성과 연결되는 구조로 안착되면서 2000년대 주요 공립미술관들 대다수가 공모제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명한 실체로 보여져야 한다는 의식에서 제도라는 안전한 장치를 만들었다면, 그리고 그 제도가 도리어 작품의 자율적인 가치만을 강조하며 미술관의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지워감으로써 중성적인 기관으로 살아남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였다면, “리얼리티를 다시 읽어내는 담론의 정치”19의 시각으로 수집 공모제와 소장품을 재독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1월호에 『미술세계』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심포지엄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를 기념하는 기획으로 마련한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의 수집과 수장고’에 관련된 특별 설문은 이러한 필요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여기에 응답한 일곱 곳의 미술관은 공통적으로 수집예산의 부족과 공모제를 통한 수집제도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로 기관 정체성 설정을 통한 구체적인 소장작품 수집 정책의 수립과 점진적으로 전문가 추천 및 미술관 자체 연구·조사를 통해 소장품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동일한 방식으로 유사한 시기에 진행되는 공립 미술관의 수집제도가 미술계의 관성처럼 굳어지면서 각 미술관별로 구성된 수집 대상작품이 대동소이해지고, 결국 각 미술관 소장품 마다 차별성이 없어지는 결과는 이 제도의 부작용으로 지적되었다.20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모제를 시행한 원년의 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3년 9월 29일자 소장작품 구입공고에는 구입대상 작품의 구체적인 방향성과 범위를 제시하며 기관 소장품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발견된다. 작품의 시대적 범위를 1980년대 이후로 정하고, 신경향, 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면서 기소장품과의 연결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수집하겠다는 방향성은 유준상 관장 재임시절에 의욕적으로 진행한 학예직에 의한 수집을 내용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지와 다르지 않다.21 이는 공모제가 소장작품 구입을 위한 클리셰로 변질되는 것을 염려하고 극복하고자 하였던 미술관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며, 2010년 서울특별시립미술관 작품 수집 및 관리 규정을 신설하면서 수집대상 작품의 구성원의 자격을 미술관 내부의 전문 인력까지 넓히고 구체적으로 수집의 대상을 명시한 또 한 번의 제도 변화와도 일맥상통한다.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모제가 가진 한계가 뚜렷하고 수집의 주된 활로로 운영되며 제도가 클리셰로 작동하는 현실은 수집에 있어 근본적인 검토를 요구한다.

포토월로 설치된 ‘SeMA 미술사 시간지도’(2016) ©서울시립미술관
2018 SeMA 신소장품 멀티-엑세스491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19.04.16-06.02) 전시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이처럼 미술관 스스로가 구입 대상작을 구성하기 어려운 한계는 소장작품 수집 계획을 수립하여도 사실상 기관의 미션과 비전에 따라 장기적인 소장 정책을 시행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하며 또 다른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스티브 밴이 미술관과 수집물의 ‘저자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미술관의 “창조적인 움직임은 수집가라는 주관적인 행위자를 실제 논쟁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23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다수의 미술관들이 공통적으로 실행 하고 있는 소장품 수집 제도를 자기인식 출발점으로 삼고 메타비평을 시작하는 것이야 말로 각 미술관마다의 소장품 정체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나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작품의 형태가 늘어나면서 동시대 미술관들은 ‘무엇을 수집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으며, 여기서 파생되는 새로운 소장개념에 대한 논의는 결국 미술관의 수집을 재구조화하는 결과를 낳으며 수집의 제도적, 내용적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미술관의 역사와 함께 변화한 수집제도와 그렇게 모여진 소장품들의 유산을 셈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수집을 맞이할 제도적, 내용적 준비가 필요하다. 2020년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기관의제를 ‘수집’으로 잡고 전시, 연구, 출판, 교육, 자문 등을 통해 소장 정책 및 제도와 소장품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미술관을 둘러싼 동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수집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심했던 미술관의 여러 시간과 맞닿아있다.

*본 고는 2020년 7월 24~25일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한 SeMA Agenda 2020 ‘수집’ 〈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 심포지엄 발표문을 각색 및 재편집한 원고입니다.


  1. 「올림픽과 한국」, 『동아일보』, 1981년 10월 02일. 

  2. 1982년 정부에서는 88올림픽을 위하여 국립미술관을 짓기로 결정하고 국내의 몇몇 건축가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건축가를 초청하여 지명 현상 설계를 진행하였다. 재미 건축가 김태수에 의해 설계된 국립현대미술관은 규모나 디자인 면에서 한국 최고의 미술관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국립현대미술 관 건물은 기본적으로 대리석을 사용하는 서양의 공공건물 건축과 맥락이 닿으며 건물 내부의 높은 천장이 있는 중앙은 프리드리히미술관(베를린)에서 구겐하임미술관까지 이미 서구의 미술관 건축에 많이 사용된 방법이었다. 양은희, 「기억, 욕망 그리고 스펙터클 국립현대미술관 만들기」, 『현대미술사 연구』 22 (2017.12.): 174-178, 184. 

  3.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기획연구2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서울역사박물관, 2017), 186-209 참고. 

  4. 같은 책, 33.; 1985년 염보현 서울시장은 제1호 시장 지시사항으로 “경희궁지에 시립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같은 해 서울시립미술관의 토대가 된 전시 <서울미술대전>을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8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제24회 서울올림픽은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9월 17일에 개막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서울시립미술관, 2016), 17. 참고. 

  5. 당시 서울시는 “경희궁 앞터에 대형 현대식 건물로 시립박물관과 미술관을 89년에 시작하여 92년까지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서울 시립미술관 특별전시실 갖춰 개관 신문로 옛 서울고 본관건물 6억들여 보수 완공」, 『한겨례』, 1988년 08월 20일. 

  6. 서울미술대전은 서울에 거주하는 작가 중 한국화, 양화, 판화, 조각 네 분야의 초대작가 120-150여명을 선정해 온 전시이다. 초대작가는 원로작가들로 구성된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회에 의해 결정되었다. 

  7. 윤원화, 『1002번째 밤 :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워크룸프레스, 2016), 194-195. 

  8. 「[아트뉴스] ’87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2일간 열려」, 『미술세계』, 1987년 9월, 49. 

  9. 김아영, 정혁과의 인터뷰, 서소문동 카페, 2018년 12월 3일.; 서울시립미술관의 초기 소장품에 관한 연구는 다음의 글을 참고. 김아영,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역사와 ‘가나아트 컬렉션’」, 『SeMA 소장품 가나아트 컬렉션』, (서울시립미술관, 2018), 6-9. 

  10. 기존 연구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1999년까지 소장품과 상설전 없이 관전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초대 관장 취임 후에야 학예실을 마련해 소장품 구입을 시작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수집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총 소장품 수는 487점으로, 매년 30-40점 내외가 서울시 자체 관전을 통해 수집되었다. 임근혜, 「제도와 미술의 역학관계: SeMA를 중심으로 본 공립 미술관의 작동원리」,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서울시립미술관, 2016), 175-183. 참고. 

  11. 「서울시립미술관 관(官)주도 탈피해야」, 『동아일보』, 1999년 4월 20일. 

  12. 「서울시립미술관 초대관장 유준상씨 작품기증 활성화로 질 높일 터」, 『한겨레』, 1999년 5월 5일. 

  13.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 소장품 기증 협약(안)」, (서울시립미술관, 2001.2.14.), 149. 

  14. 실제로 유준상 관장 재임시절 학예직에 의한 수집이 강화되었을 때, 문화과에서 관장과 몇 명이 수집을 진행한다는 염려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김아영, 위의 인터뷰. 

  15. 그 이듬해에 작성된 문서에는 2002년도 수집예산이 불용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조례상에 명시된 인터넷·시보 공고 절차를 누락”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2002년에는 공모제를 운영하기 조례 개정과 제도를 정비하는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특별시립미술관운영조례시행규칙」(2002년 3월 25일)에는 관장은 소장작품 수집계획을 매년 수립하여, 시보·인터넷 등에 게재하여 공고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16. 「소장작품 2차 수집 공고문」, (2003년 9월 29일) 

  17. 「서울특별시립미술관운영조례」, (1997년 8월 11일) 

  18. 국내 공립미술관의 개관연도 및 공모제 최초 시행연도는 다음과 같다. 광주시립미술관(1992/1990년대 후반 추정), 부산시립미술관(1998/2006), 경기도 미술관(2006/2006), 제주도립현대미술관(2007/2010), 포항시립미술관(2009/2010), 대구시립미술관(2011/2010), 수원시립미술관(2015/2015), 각 미술관 수집 담당 학예사와의 통화, (2020년 6월 23일) 

  19. 임산, 「미술관 ‘수집’의 개념적 원류와 동시대 ‘타자성’의 수용」,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국립현대미술관, 2019), 50. 

  20. 설문대상은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 술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었다. 「미술관 수집 및 수장고 설문조사」, 『미술세계』, 2019년 1월, 76-79. 

  21. ⓵ 서울시립미술관 기소장품의 질적 보완에 적합하며 장르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작품 ⓶ 80년대 이후 작품으로 신경향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 ⓷ 현실주의 미술의 대표작품 (79~91년 사이) ⓸ 2003 년 시립미술관 기획전 출품작 중 우수 작품 「소장작품 2차 수집 공고문」, (2003년 9월 29일). 

  22. 2009년까지는 「서울특별시립미술관 운영조례 시행규칙」(2009년 12월 10일)에 의거, 시보, 인터넷 등 에 게재한 공고로만 수집 대상 작품을 구성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서울특별시립미술관 작품 수집 및 관리 규정(안)」(2010년 7월 19일)에는 그 대상을 관장과 내부 학예직 연구직 공무원까지로 넓혀 놓았다. 

  23. 스티븐 밴, 「미술사와 박물관들」, 『미술사의 현대적 시각들: 해체주의에서 퀴어이론까지』, 조선령 옮김(경성대학교출판부, 2007),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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