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막 이야기: 도시 사막과 OS 사막

심소미
심소미는 파리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이자 연구자로, 신자유주의 도시와 예술 실천의 관계를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도시연구에 걸쳐 탐구하고, 이를 큐레토리얼 담론으로 재생산하는 데 관심을 둔다. 주요 기획으로 《미래가 그립나요?》, 《리얼-리얼시티》, 《2018 공공하는 예술: 환상벨트》 등이 있다.

사막의 사전적 의미는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강수량이 적어 건조해진 지역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열대 사막 외에도 해안 사막, 내륙 사막, 한랭지 사막이 있다. 둘째는 인간의 가치 판단에 의해 방치되거나 버려져 온 장소를 뜻한다. 셋째는 야생으로서 경작되지 않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칭한다. 이 글에서 나는 작년부터 관심을 두고 리서치를 해오고 있는 주제로서 사막이 동시대 도시생태와 맺는 관계를 검토함과 동시에, 사막화 과정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지리·정치·경제학적 실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1 도시공간, 생태위기, 문화경험, 디지털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목격된 사막의 흔적을 교차 추적함으로써, 오늘날 행성적·물리적·비물리적 영역을 돌고 돌면서 복제되어 가는 사막화에 대한 문화연구적 독해를 시도할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 타들어가는 지구와 도시 사막

공원을 날던 새들이 유리에 부딪혀 추락하고
도시의 검은 연기에 질식한 새들이 신음하는 이곳.
페소아는 예견했다. 공원은 인류의 실수라고.
새들도 이제는 연기를 피해 간다 했다.
사람들은 피해 갈 수 없다.
구축할 수 없는 시대의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터전은
도시 사막과 OS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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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으로 도시가 펄펄 끓던 어느 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에서는 오후에 외부 출입을 자제하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한국식으로 표기하면 재난 문자이다. 재난 문자의 범위는 화재, 재난, 감염, 폭염, 범죄, 시위, 미세먼지, 태풍, 폭설 등 일상을 수시로 불안케 하는 알람이자 경고문이 되었다. 한창 녹음이 울창할 여름인데 땡볕과 가뭄에 부서진 낙엽들이 모래폭풍처럼 도시를 휩쓸고,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지붕 밑으로 찜통처럼 더운 열기가 차오르고, 태양열을 흡수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방 안에서 머물 수 없던 나는 거리로 나갔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전체를 달구는 도심의 열기를 피해 찾아간 곳은 인근 공원이었다. 폭염을 피해 많은 도시민이 전원의 풍경과 바닷가를 앞에 둔 바캉스 장소 곳곳으로 빠져나간 여름, 도시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말라가는 황무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공원에는 폭염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무 그늘을 차지하고 있다. 주로 이주민 여성과 어린아이들 혹은 여름 바캉스를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해가 질 때까지 열기를 피해 있던 사람들은 공원을 폐쇄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무는 폭염에 노출된, 주거 취약계층의 사람들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어둠이 도시에 들어서고서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 모습은 2022년 7월 프랑스 파리의 풍경이다.

폭염으로 도시가 타들어 가던 시기, 유럽의 곳곳에서 에너지 문제가 터져 나오고 국경을 넘나드는 기차들은 운행 도중 전력 문제로 멈추었다. 소비가 급증한 전력의 과부하를 기계가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두 국가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기차가 거의 4시간을 멈추고 정전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승객들은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과열된 기차 트랙의 온도가 55도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작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기후 위기의 해로 기록되었다. 동일한 시기 한국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해 도시 곳곳이 침수돼 일상이 마비 되었고, 반지하에서 살던 한 가족에게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에 대해 외신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참고 화면으로 뉴스에 내보내며, 기후재난의 취약 계층이 된 한국의 반지하 주거 현실에 집중했다. 폭염, 화재, 건조화, 폭우, 홍수, 지진 등 예기치 못한 생태 재난이 심각해지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는 개발주의, 시장주의, 도시주의, 채굴주의, 소비주의의 속도를 늦추고 탈성장 정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국제적 협약이 이뤄지고 있으나 일상에서의 변화는 희박하다. 그로부터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2023년 4월, 스페인에서는 작년보다도 훨씬 이른 봄부터 39도에 달하는 극심한 무더위와 건조화가 찾아왔다. 작년보다 사막화의 시간대가 한 걸음 앞으로 더 당겨진 것이다.

근 몇 년간 활활 타오르는 대재앙으로서 발생한 생태 위기로는 캘리포니아주에서의 대형 산불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인의 스크린을 붉은 화염의 공포로 채웠던 산불은 유럽의 가뭄, 한국의 홍수가 일어난 시기에 지구의 또 다른 편에서 일어난 최악의 재난으로 강원도의 면적에 달하는 숲과 대지가 타버렸다. 거의 3주 동안 지속된 화재의 원인으로서 기후 건조화는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가 각종 글과 강연,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심각함을 전하고자 했던 생태 위기의 주요 이슈이다. 90년부터 자본주의 도시의 불평등 구조와 착취적 현실을 고발한 데이비스는 이후 수십 년간 산불, 지진, 사막화 등 인류세의 재난이 핵전쟁 이상의 위협이 되었음을 거듭 강조해 왔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한평생 자본주의와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삶, 노동자,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해 왔는지를 폭로해 온 데이비스가 생을 다하는 마지막까지 집중한 것은 지구의 사막화 문제이다.

“우리는 여러 번 기후 위기의 티핑 포인트를 지났고, 너무 많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가뭄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의 신축 주택에서 3분의 2가 화재 위험이 높은 지역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오늘날 정치인은 도시와 야생의 경계에서 건설을 지연하거나 폐기하는 논의를 거부해 왔습니다. 이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전기 자동차를 지지한다, 쉽게 말하고 있죠. 그린워싱은 역겨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면한 미래에 대한 사회 집권층의 분석이나 설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미래를 독점화하는 권력을 갖고 있지만 아무런 비전도, 전략도, 계획도 없습니다.”3

인터뷰에서처럼 데이비스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급증한 건조화, 사막화, 산불의 한 원인으로서 화재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무분별하게 확산되어 온 교외주택 개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 오며, 부동산업자와 결탁한 도시개발에 저항하는 현실·정책적 변화를 촉구해 왔다. 도시 건물에서 냉난방 등 에너지 소비가 현재 탄소 배출량의 40%, 도시의 산업시설과 운송 수단이 35%를 초과하는 현실을 폭로하며, 홀로세 기후 안정성을 파괴한 주범으로서 오늘날 거대도시들의 반지구적 확장을 비판한다. 이를 다룬 글로써 「도래하는 사막(The Coming Desert)」4은 건조화를 자연 현상이 아닌, 지리·정치·경제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도시 문명과 기후 위기의 관계로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1870년대 최초로 제기된 유라시아 대륙의 건조화와 문명의 관계가, 이후 18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 플랜테이션 농업과 이후의 산업혁명 등 인류의 지속적인 개입을 통해 현재의 기후 위기로 악화되어오고 있는지를 밝혀 보인다. 산업혁명의 전후부터 기후 위기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데이비스는 결국 전 지구적 사막화의 증가에 있어서는 도시의 변화만이 해답임을 재차 강조한다. 도시자본에 의해 불평등을 악화하는 현재의 도시 시스템을 재검토하고, 노동자, 빈민의 삶을 재통합하는 주거 환경과 생태를 모색하는 전 지구적 혁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엥겔스의 지중해 산림 파괴에 대한 언급은, 인간에 의한 착취적 파괴가 초래한 현 위기에 큰 경종을 울린다. “인간의 모든 ‘승리’ 위에는 ‘자연의 보복’이 뒤따른다.”5

두 번째 사막 이야기: 새로운 프런티어와 디지털 사막

그런데 현실에서 사막은 데이비스의 우려보다는 그 반대편에서 대중적인 인식을 얻고 있다. 그것은 사막의 황폐화를 인류의 미래적 해방과 잠재력의 토대로서 도구화해 온 디지털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관계한다. 사막이 은유해 온 황무지 이미지에는 거울처럼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이 전개되어 왔다. 여기에는 사막화를 통해 인간의 능력을 과시하고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디지털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시대가 된 오늘날에 있어 사막은 90년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California Ideology)’6가 촉발한 기술유토피아와 낙관주의를 통한 자본주의적 성장에 기댄다. 사막과 디지털 기술의 만남은 미국 서부의 사막 도시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적으로 등장한 기술가속주의와 관련된다.

“사막의 로켓 붐, 사바나 위의 실리콘 밸리, 사막 꽃 피우는 첨단 기술, 사막서 기술 허브로, 실리콘 사막, 디지털 사막 허브, 기술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문화 사막으로서 실리콘 밸리, 사막 로봇,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는 가고 애리조나의 실리콘 사막이 온다.”7

위 문구들은 디지털 기술을 홍보하는 슬로건 중 사막과 관련된 것들을 일부 모아본 것이다. 기술과 결탁한 사막의 이미지는 이를 일종의 테크노 프런티어, 즉 기술 유토피아의 터전으로 탈바꿈된다. 기술가속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사막이라는 배경이 극대화된 프로젝트로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산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계획을 들 수 있다. SF에서나 나옴직한 첨단 스마트시티 계획을 전면화한, 네옴시티는 사막 한가운데 서울의 43배나 되는 친환경도시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첨단 산업단지로 계획되었던 것으로, 2020년을 전후로 하여 가속화된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정세를 고려한 듯 에코스마트시티로 홍보 방식을 변경하게 된다. 이러한 생태적 고려는 오일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본격적인 탈석유국가로서의 노선을 향하겠다는 것이다. 네옴시티의 시뮬레이션 동영상에서 170㎞ 구간을 직선형 건물을 통해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장면은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네옴시티의 핵심은 건설이 아닌 사실상 척박한 환경에서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첨단기술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인간 해방적 기술관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건설하기 위해서 ‘실재의 사막’에서 벌어졌던 비윤리적 사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홍보 영상에는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이자 아무런 유기체가 없는 장소로서 비어있는 사막이 등장한다. 프런티어로서 사막은 인간 중심적 생태계를 인공적으로 복제하기 위한 하얗게 펼쳐진 도화지일 뿐, 사실상 사막에 누적된 실재로서의 생태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무한한 공간의 이미지에 은폐된다.

은폐된 ‘사막의 실재’는 사막의 생태계에 한 일원이자 역사로서 오랫동안 정주했던 원주민들을 강제추방하고, 처벌과 수감 및 처형 등 비인간, 비윤리적인 정치사회 시스템을 배후에 두고 있다. 몇 년 전에 드물게 등장한 한 기사는 네옴시티가 예정된 사이트에서 퇴출되는 부족의 이주 문제를 다루며, 원주민에 대한 위협, 강제 퇴거, 유혈 사태를 다룬 바 있다. “네옴은 우리의 피와 뼈 위에서 건설되고 있습니다”8는 한 원주민의 말은 오늘날 사막의 실재에서 착취, 채굴, 제거, 소멸, 멸종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원주민을 내쫓고 세워지는 네옴시티는 최첨단 기술에 의해 생태가 복원되고, 에너지가 순환되고, 자동화를 지향하나, 이 모든 기술의 구현은 상류층과 관광객을 중심으로 한 폐쇄형 공통체라는 계급적 분리와 사회공간적 양극화 및 감시 시스템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형성되는 이 도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전에 사막의 역사를 형성해 온 원주민의 역사를 흔적도 없이 제거하고, 새로운 자본의 역사로서 사막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데 있는 것이다. 인권 침해가 난무하는 비윤리적, 비민주적 과정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한국 방문처럼 글로벌 경제는 네옴시티의 초대형 개발 계획에 한껏 고조된 분위기이다.

새로운 프런티어로서의 역사는 미국이라는 국가적 건설의 황무지 신화에 이어, 오늘날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 국가이자 탄소배출 국가의 그린워싱 전략과 결합되었다. 탄소중립도시와 최첨단 생태 기술을 앞에 내세운 네옴시티는 데이비스의 표현대로 “역겨운 그린워싱”의 관점에서 설계된 각종 에코스마트시티와 기술유토피아의 복제판일 뿐이다. 건설이 지구상의 전체 탄소배출량은 40%임을 감안해 볼 때, 서울 크기의 도시를 40배로 복제 생성하는 네옴시티는 건설 과정만으로도 탄소배출국 불명예 이상으로 치명적인 생태 파괴범이 될 우려를 크게 안고 있다. 2020년 한 통계에 의하면 국가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이란을 거쳐 한국이 세계 8위, 사우디아라비아가 9위를 잇는다. 이와 관련하여 시멘트 소비량 국가별 통계 또한 유사하다. 한국이 11위, 사우디아라비아는 10위이다. 한국이 6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도시공간을 고도로 자본화함으로써 만든 건설공화국이라는 오명은 획일화된 주거공간 문제, 건설 산업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로 복제되어 나간 도시공간의 개발 방식이 오늘날 생태위기를 가속화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위기와 관련한 각종 통계를 보다 보면, 실재하는 석유, 시멘트, 사막이 없이도 생태 파괴 국가의 상위권에 한국의 상황에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채굴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시멘트는 쓰레기 합성물로 만들어지고, 사막은 일상을 폐허화하는 재개발의 과정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해 왔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500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 도시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통계를 보면 충격적인 결과가 목격된다. 서울이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다.9 서울, 광저우, 뉴욕, 홍콩, 로스엔젤레스, 상하이, 싱가포르 순이다. 이 순위는 전 세계 메가시티 통계와도 상당히 유사한 결과를 갖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데이비스가 비판적으로 성찰한 자본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거대 도시들이 초래한 기후 위기와 사막화에 힘을 실어 준다.

사막의 공백, 백지, 황무지, 황폐함을 통해 프런티어, 개발과 성장, 문명의 전진이라는 인간 중심적 신화를 전개해 온 인류에게 사막화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동력으로서 도시와 디지털 기술이라는 두 개의 축을 과제로 두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사를 전 지구적 도시 재편의 질서로부터 파악한 닐 스미스(Neil Smith)는 미국의 도시개발이 ‘인디언의 나라’를 ‘새로운 프런티어’로 변화시키고자 변질시킨 위험한 땅, 황무지, 미개척지 등등에 담긴 자본가적 욕망을 들춘다.10 특히 그는 ‘새로운 프런티어’의 모티브로서 건조환경을 착취하고, 이를 탈바꿈하기 위한 계급적 인종적 목표로서 현재의 도시공간이 조직돼 왔음을 비판적 관점에서 거론한다. 이러한 용감한 도시개척자, 황야를 길들인 현대인의 이미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젠트리피케이션 뿐만 아니라 네옴시티의 사례와 같이 기술유토피아적 비전에 결탁되어 있다. 미국식 성장 신화가 이룩한 황야와 프런티어의 이미지는 네옴에 검은 오일머니의 유토피아로 자리 잡으며, 사실상 기술자본주의를 촉진시키는 많은 기업들의 착취적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또 다른 예로서, 기술가속주의의 환상적 욕망과 성공적 인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화성 진출 계획인 ‘스페이스X’가 있다. 이렇듯 인류의 우주 정복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사막을 통해 새로운 식민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꿈 이미지로 담긴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가 사라진 오늘날 신자유주의 자본가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화성 정복은 새로운 식민지이자 정복의 대상으로서 사막을 미래의 시간대로 연장시킨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미래를 상상하는 블랙유머와 같았던 아포칼립스적인 풍경은 오늘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에 등장해 전 세계인과 미래를 상상한 전설적인 만화 『땡땡의 모험』(1929-1976) 중 한 시리즈인 『슈팅 스타』(1941-42)는 유성과의 충돌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다룬다. 유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자 도로의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로 세상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장면이 등장하고, 주인공 땡땡(Tintin)은 녹아나는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세상의 끝”이라고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외친다. 고열로 인해 지구가 녹는 상황은 오늘날 기후위기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산사태가 나고, 땅이 갈라지고, 강이 범람하여 가옥을 삼켜내는 성난 지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만화에서는 땡땡과 과학자의 노력으로 유성의 파편들이 바다로 향하면서 지구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나, 오늘날 공상이 실재 재난이 된 세계에 있어서 대안적 사고는 상상조차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한 세기 전 디스토피아에서 활약하는 인간의 서사는 90년 대 초까지만 해도 각종 영화의 영웅 캐릭터 서사로 존재하다, 2000년을 넘어가면서 마블 스튜디오로 대표되는 각종 하이브리드 영화에서 장르뿐만 아니라 시간관념이 뒤섞인 혼성으로 반복돼 오고 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모든 것이 혼재된 시간의 개념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성이 문화적 증상처럼 드러난다.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급진적 상상력의 퇴보를 간파한 마크 피셔(Mark Fish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 같은 리좀 구조로 어느 부분에서 다른 구조로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연속성”11을 통해 오늘날의 창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처럼 과거도 돌아갈 수도, 시간여행을 할 수도 없기에, 매일 악화되는 재난은 일상을 범람하는 스펙터클이 되어 각종 미디어에서 상영된다. 웹의 확산으로 인해 사용자와 제공자의 경계가 흐트러진 오늘날 재난의 이미지는 디지털 시대의 밈이 되어 광활한 OS 사막을 떠돌며 자동반복되는 파국적 유령으로 등장해 오고 있다. 복제를 통한 현실의 소외는 최근 인공지능 챗GPT가 상용화되면서 불러 일으킨 기계의 창의성 문제에서 더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인간이 질문하고 기술이 답변을 창의적으로 생성하는 알고리즘은 사실상 데이타셋에 저장된 통제를 무한대로 복제, 편집, 붙여넣기 하여 리믹스된 사고관12을 답변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모든 답변은 리믹스, 하이브리드, 혼성, 짜깁기, 재조합의 결과물로서 복제의 기술을 한층 더 고도화해 보인다.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원본은 무수한 통계 데이터로서 숫자로서만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과거의 통계가 인공지능의 자원이 되어, 앞서서 언급한 피셔의 언어로 하자면 “지옥 같은 리좀 구조”로서 재생성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가속화된 디지털세계가 현실을 어떻게 사막화하고 소외 및 분리시키는 지에 대한 비평적 성찰과 개입, 그리고 저항의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컴퓨터 화면을 마주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잠시 자신의 스크린 배경화면으로 돌아가 보길 권고한다. 대게 초원과 하늘, 그리고 사막을 기본 배경화면으로 두고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흔하게 보는 이미지는 스크린의 무한함, 광활함, 공백을 담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컴퓨터의 배경화면을 지나치다 깨달은 것은,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의 표피가 바로 사막의 이미지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macOS 운영체제에서 모하비(Mojave)로 불리는 이 사막은 캘리포니아에 존재하는 사막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배경화면은 실제 사막을 촬영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지도앱을 열어 모하비 사막을 찾아가면, 캘리포니아 남동부의 허허벌판 한가운데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살펴볼 수 있다. 줌을 하여 지도에 가까이 다가가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모하비 공항 및 우주항(Mojave Air and Space Port)’이다. 사실 모하비 사막은 전 세계에서 로켓과 위성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우주실험기지국 위치한 곳으로, 화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에 도전하는 각종 우주산업 스타트업이 모인 미래적 장소로 불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연방 공군시설인 ‘플랜트42’도 있었는데, 최근의 타임지 기사에 의하면 전쟁 시 가장 냉혹한 살인 기계로 악명 높은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가 비밀리에 생산된 곳이라 한다.13 OS 배경화면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사막의 이미지 뒤에 있는 현실은 로켓 발사를 위한 반복된 폭발, 최첨단 기술로 가능해진 살인 로봇 병기들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데스크탑의 이미지는 캘리포니아에 실재하는 사막도, 그것을 사진으로 복제한 사막도 아닌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넨 환영사이자 슬라보예 지젝이 책 제목으로 가져온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무한 복제된 사막의 실재는 기술 유토피아를 가장한 파국적 미래, 도래할 사막, 산산 조각난 뼈와 핏자국을 기저에 두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자본의 식민지를 위한 테라포밍과 정복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막으로써 OS 배경화면에 심어진 것이다.

*이 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와 전시의제의 소주제를 발굴하는 2023 SeMA 의제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록되었습니다.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의제는 ‘복제(성)’입니다.


  1. 본 연구는 2024년 개최 예정인 《붉은 사막》(가제) 전시의 리서치 과정 중에 파생된 것이다. 

  2. 위 텍스트는 2022년 여름에 파편적으로 적어둔 단상을 본 원고를 전개하면서 시의 구조로 재배치해 본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파편은 폭염을 피해 찾아간 공원과 새들의 죽음 앞에서, 염세적 실존주의가 담긴 페르난도 페소아의 글귀를 읽으며, 도시의 경계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각장의 매연 속에 있다가, 이러한 현실로부터 시선을 거둬내는 OS의 배경화면 앞에서 머무른 시간으로부터 듬성듬성 떠오른 것들로, 본 원고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3. Mike Davis, “California’s ‘prophet of doom’, on activism in a dying world: ‘Despair is useless’” (interview by Lois Beckett), The Guardian, August 31, 2022,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2/aug/30/mike-davis-california-writer-interview-activism.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4. Mike Davis, “The Coming Desert: Kropotkin, Mars and the Pulse of Asia,” New Left Review 97, no. 1 (January–February 2016), 23–43; 마이크 데이비스, 『인류세 시대의 맑스』, 안민석 옮김(파주: 창비, 2020), 241-266 참조. 

  5. 마이크 데이비스, 『인류세 시대의 맑스』, 안민석 옮김(파주: 창비, 2020), 247. 

  6. 리차드 바브룩 외,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문화/과학』 제10호, 1996 가을, 45-67 참조. 

  7. 2023년 4월 20일, 구글, 네이버 검색. 

  8. Ruth Michaelson, “‘It’s being built on our blood’: the true cost of Saudi Arabia’s $500bn megacity,” The Guardian, May 4, 2020,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20/may/04/its-being-built-on-our-blood-the-true-cost-of-saudi-arabia-5bn-mega-city-neom

  9. 각각의 랭킹 정보는 2023년 기준으로 최근의 통계를 기반하고 있으며,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세부 정보를 참조할 수 있다.
    국가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https://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y-rankings/carbon-footprint-by-country.
    시멘트 소비량 국가별 통계: http://www.cemnet.com/Articles/story/171972/uncertain-times.html.
    도시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통계: http://www.citycarbonfootprints.info

  10. 닐 스미스, 『도시의 새로운 프런티어: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강탈』, 김동완 옮김(파주:동녘, 2019), 36-43 참조. 

  11.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안현주 옮김(서울: 구픽, 2019), 60-69 참조. 

  12. 이에 대한 분석은 아래 집담회에서 생성 인공지능을 “자동화된 창작 리믹스 기계”로 표현한 이광석 교수의 관점을 참조로 하고 있다. 김상규, 양아치, 언메이크랩, 임태훈, 장진승 외, 「특별 집담회 : AI 창의성을 둘러싼 예술의 위기와 가능성」, 『문화/과학』 제114호, 2023 가을(발간 예정), 참조.  

  13. W. J. Hennigan, “Exclusive: The Making of the U.S. Military’s New Stealth Bomber,” TIME, November 3, 2022, https://time.com/6238168/b-21-raider-bomber-us-military-exclu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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