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확장, 미래 미술관 경험

박상애
박상애는 2009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의 아키비스트로 일하면서 백남준 비디오 아카이브와 아카이브 컬렉션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 아카이브와 디지털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지고 미술관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과 활용, 미디어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를 연구하며, 백남준아트센터 인터뷰 프로젝트, 백남준 비디오 테이프 분석, 비디오 아카이브 상영회 《백남준의 도시: 뉴욕에서 서울까지》(2019) 등을 기획·진행했다.

2020년 봄,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팬데믹이 선언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용어가 일상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고, 모든 공공 미술관은 문을 닫았다. 미술관을 방문할 수 없는 관객들을 위해 미술관들은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전시 투어, 소장품의 해설, 교육과 공연 등의 미술관 프로그램을 감상했다. 디지털 기기(device)가 필수품이 돼버린 언택트 시대에 사람들은 미술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고, 대중에게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 유일성을 가지는 작품 원본을 훼손 없이 보존하고, 작품에 관한 사실과 기록정보에 기반을 둔 다양한 해석과 연구를 수행한다. 작품은 전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큐레이터는 전시장 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작품 향유에 가장 효과적인 환경으로 조성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러티브의 구성 요소들로 작품을 배치한다.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전시의 내러티브를 읽어낸다.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의 직접적 작품 향유 경험은 정보의 인지를 통해 심화될 수 있다. 작품과 전시 정보들, 글과 이미지, 동영상 등은 디지털 매체로 저장되고 웹 플랫폼을 통해 확산된다. 전시장에 가지 않아도 작품과 전시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방문하지 않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미술관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세대들을 위한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고 연구하고 보존하는가? 미술관은 이용자들에게 어떤 경험과 지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미술 작품

동시대 현대미술관이 수집하는 작품의 범위는 확장 중이다. 미디어 아트의 수집과 큐레이팅에 대한 사례를 통해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미술관이 직면하고 있는 현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미디어 아트(Media Art)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한 한 예술의 유형”1으로, 미디어 아트가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유입된 사례는 이미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은 ‘@’ 심볼의 수집을 시작으로 비디오 게임, 이모지(emoji) 등을 소장품으로 수집했다.2 NTT 도코모(NTT Docomo)의 176개의 이모지 세트는 2016년 뉴욕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편입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 디자인 파트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2010년 ‘@’ 심볼이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수집되었을 때 ‘@’ 심볼을 “유일하게 자유로운” 오브제로 언급하며, 물리적으로 오브제를 소장하는 것이 더 이상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정책의 핵심이 아닐 수 있음을 밝혔다.3 이어 이모지의 수집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획득한 것이라고 자평하며, 새로운 소장품 수집 범위의 확장을 시사했다. 또한 ‘@’ 심볼의 수집은 미술관이 하나의 유가(有價)적 오브제 수집 단계에서 나아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비물질적 개체의 수집방향을 제시했다.4 뉴욕현대미술관은 이외에도 2012년에 비디오 게임 테트리스(Tetris)를 수집한 이력이 있다. 이때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을 수집하는 기준으로 행동(behavior), 미학(aesthetic), 공간(space), 시간(time)을 제안했고, 수집의 이유로 플레이어의 창조적 경험이 더해진 게임은 기술적 메커니즘을 넘어서 예술의 한 분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5

‘@’ 심볼, 이모지, 비디오 게임은 모두 비트로 저장되는 디지털 객체이다. 비트로 저장되고 코딩으로 기록되는 기술적 속성은 정보와 동일하다. 여기서 논의하는 미래 미술관의 수집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디지털 객체가 정보와 작품을 모두 포함함으로써 갖는 디지털 물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튜 커센바움(Matthew Kirschenbaum)은 비트로 기록되고 코딩되는 디지털의 물성을 증거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포렌식(forensic)과 구조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포멀(formal)로 구분했다.6 포렌식 물성이란 비트는 각각의 물리적 흔적의 형태로 새겨지기 때문에 어떠한 디지털 기록도 정확하게 동일한 것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문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시각적으로는 동일하게 인지되는 이미지나 텍스트들도 모두 다른 고유의 비트 기록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포멀 물성은 비트의 상태를 0과 1의 연속적 행렬, 즉 구조로 인식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객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디지털 객체를 이루는 비트의 구조적 관계들로 대상의 특성을 인식한다. 또 다른 학자 요한나 드러커(Johanna Drucker)는 디지털 객체가 이용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물성이 생성된다는 수행적(performative) 속성과 다층적인 시스템을 통해 존재하는 분산적(distributed) 속성을 디지털 물성으로 제시했다.7 수행적 속성은 코드의 프로세싱 과정이나, 이용자들의 이용 과정, 시스템을 통한 신호의 송출 과정 등에서 디지털 객체가 의미를 생산하는 점을 주목한다. 분산적 속성은 디지털 객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의 구현 환경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한다. 따라서 분산적 속성은 기능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상호 연관된 다원적 시스템의 구조에서 디지털 객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디지털 물성에 대한 이해는 비트로 기록된 작품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장소에서 예술작품이 가지는 일회적인 현존재와, 원작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로 이뤄지는 진품성으로 인해 예술작품은 아우라를 가진다. 진품성은 특정한 사물의 지속성과 함께 사물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8 미래 미술관 소장품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디지털 시대의 작품 아우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아우라를 논하는데 있어 회화나 조각과 같은 고전적 예술작품은 원본의 개념이 중요한 반면, 미디어 아트는 개별 개체가 가지는 기술적 고유성에 근거한 작품 향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속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진본성(authenticity)에서 아우라를 찾을 수 있다. 미디어 아트는 고정적인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구현의 기반이 되는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한다.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작품이 지속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구현 환경,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작품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숙명으로 가진 작품의 지속가능성을 답보할 수 있는 것은 관련 도큐멘테이션이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아우라를 논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지원하는 기술적 환경과 기록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우라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인인 미디어 아트의 진본성은 기술적 관점과 수행적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특정한 작품이 가지는 고유한 기술적 흔적과 기술적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의 구조적 특징은 해당 작품의 고유한 진본성을 증명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 아트의 진본성은 관객이 작품을 향유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비선형성, 상호성 등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미디어 아트의 진본성은 유일한 개체가 가지는 원본성과는 다르다. 미디어 아트의 진본성은 작품을 구현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9

미술관이 수집하고 연구하는 대상은 디지털 물성과 함께 아우라를 지닌 작품이나 프랙티스이며, 관련 도큐멘테이션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제작과 수집, 설치와 연구 과정의 기록이 도큐멘테이션이며, 이 기록은 사실 정보에 기초하고 있다. 도큐멘테이션에 포함된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미술관은 지속가능한 상태로 작품을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관객에게 일정한 작품 향유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큐레이팅

게임, 이모지 등의 새롭게 소장품으로 수집된 작품들은 전시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모마에서 2014년에 열린 《A collection of ideas》는 이모지, ‘@’ 심볼, 비디오 게임 등 새로운 소장품을 선보였던 전시이다.10 그리고 2016년 백남준아트센터는 게임들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선보이는 《뉴 게임플레이》 전시를 개최했다. 두 전시 모두 미디어 아트를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선보인 것들이다. 관객들은 미술관에서 게임을 즐기고, 웹에서 보던 심볼과 이모지들을 전시 공간에서 마주한다. 두 유형의 전시들은 모두 설치된 객체들이 가지는 고유한 기능과 메시지를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제공했다. 미술관 공간으로 유입된 게임, 심볼, 이모지는 그 고유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미술관에서의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라이좀(rhizome.org)은 넷아트를 비롯한 뉴미디어 아트의 제작과 보존, 연구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라이좀 웹사이트는 1999년부터 디지털 포맷으로 생성된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을 아카이빙하며, 이 작품들이 지속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무료로 배포한다.11 라이좀은 홈페이지를 통해 브라우저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전시들을 선보인다.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되면서 물리적 공간의 부재에도 선보일 수 있는 전시와 작품들이 등장했다. 라이좀이 큐레이팅한 전시 중 일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웹 브라우저 등의 인터페이스 환경을 통해 관객들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를 향유할 수 있다. 디지털 코드로만 존재하는 작품들은 관객의 참여로 의미가 형성되기도 하고, 공간에서의 한정적인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인지와 결합한 가상의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서울과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이젤(eazel.net)은 가상현실(VR)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술 콘텐츠 플랫폼이다. 이는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같은 전시와 작가의 스튜디오 공간을 촬영한 VR 영상 또는 이미지와 함께 각 기관의 정보와 전시를 아카이빙 하며, 이를 다루는 기획 콘텐츠와 매거진을 발행하며 전시 경험을 제공한다.12 이젤은 물리적으로 구현된 전시의 공간적 경험 공유와 작품 콘텐츠의 전달을 위해 최신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비디오 아트와 뉴미디어 아트를 판매하는 플랫폼인 모네그라프(monegraph.com)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통화와 디지털 아트의 등록 및 매매시스템을 비슷하게 보고, 작가들이 작품을 등록하고, 이를 암호통화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13 이외에도 유튜브 콘텐츠를 활용한 “큐레이팅 유튜브(Curating YouTube)”나 페이스북 네트워크 한계에 도전하며 이용자들의 시각적 경험을 향상시키는 페이스북 아트 갤러리 “#0000FF”는 동시대 새로운 큐레이팅을 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14

미래 미술관의 제안: 정보와 경험의 플랫폼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온라인 컨퍼런스 〈보이지 않는 미술관〉(2021.04.22. 2:00 - 2021.05.07. 18:00) 웹사이트 갈무리.

미래 미술관은 물리적 현존성이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미술관에서 관객들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미술관, 즉 버추얼 미술관이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유기적인 “벽이 없는”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15 이곳에서 작가, 관객, 큐레이터는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미술관 경험을 창조한다.

N. 캐서린 헤일즈(N. Katherine Hayles)는 가상성(virtuality)을 물질적 구조가 정보적 패턴으로 해석되는 개념으로 보았다.16 따라서 버추얼 미술관에서는 작품과 유관 데이터가 모두 정보적 패턴으로 재현되고 공유된다. 회화나 조각과 같은 작품의 물질적 구조는 시스템에서 정보적 패턴으로 변환해 공유되며, 미디어 아트 역시 시스템 상에서 정보적 패턴으로 존재하고 향유된다. 새로운 관객경험을 창조하는 환경은 정보적 패턴으로 존재하는 작품과 관련된 데이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시스템, 기획자와 관객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 디바이스를 포괄한다.

버추얼 플랫폼에서의 작품은 정보적 패턴으로 존재하고 동시에 연관된 메타데이터가 함께 제공되면서 시각적 경험이외의 복합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데이터, 작품의 구현에 필요한 기술적 데이터, 작품의 관리와 연관한 데이터, 그리고 제작에서 도출된 연관 데이터들이 작품 자체와 함께 맵핑되어 제공됨으로써 다면적인 정보의 층위를 경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지원하는 첫 번째 구성 요소인 시스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뤄진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송출하는데 필요한 서버를 포함하는 컴퓨팅 기기, 정보 데이터의 엔코딩(encoding)과 디코딩(decoding)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운영체제 등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대표적 예시이다. 에코 시스템, 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아우르는 구현환경의 기술적 지속가능성과 호환성은 관객 경험 제공과 유지에 있어 필수적이다. 또한 웹을 통한 서비스 제공을 위한 네트워크 환경 등도 고려해야 한다.

양숙현, 〈언박싱, 컬렉션〉 (2021), 메타포트, 웹 프로젝션, 가변설치.
: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1.01.26.-04.11.) 커미션 작업.
아르동(남기륭), <뮤지엄 메이커> (2021), AR 어플리케이션, 모바일 기기, 사운드(스테레오), 가변설치.
: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1.01.26.-04.11.) 커미션 작업.

시스템을 통해 제공되는 작품을 관객들이 인지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 디바이스는 다양하다. 컴퓨터와 브라우저, 스마트폰, VR 기어, AR 디바이스 등을 활용해 비트로 존재하는 정보를 감각적, 인지적으로 경험한다. 보편적인 디바이스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버추얼 미술관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보편적 접근성을 제공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정보적 패턴을 평면적인 시청각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제한적 접근성을 가지는 VR 기어나 AR 디바이스는 향상된 다차원의 다감각 경험을 제공한다.

새로운 관객 경험의 또 다른 중요한 논의점은 상호작용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일방적인 방식으로 작품 감상 기회를 제공하던 전통적인 전시에 비해, 버추얼 전시는 가상의 공간에서 기획자와 향유자가 정보의 제공과 피드백을 교환하며 확장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한다. 버추얼 미술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포함하는 시스템, 내용에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기기(device), 제작과 큐레이팅 그리고 감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상호성에 기반을 둔 행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목적물인 작품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작품의 정보적 패턴을 정확하게 하는 데이터가 메타데이터이다. 비트로 저장된 미디어 아트의 기술(technical), 내용(content), 관리(administrative), 제작(production) 메타데이터는 물리적 공간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예술적 경험을 탄생시킬 수 있다.

미술관에서의 전시 향유가 감각적 경험이라면, 미래 미술관의 예술적 경험은 상호작용과 정보성에 근거한 인지적 경험이다. 메타데이터로 존재하는 작품의 기술 정보, 내용 정보, 제작 정보를 활용하여 관객들은 작품을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관객과 작가의 상호성에 기반을 두어 생성된 예술 작품은 수행적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디바이스를 매개로 한 관객의 피드백은 작품의 의미론적 완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수행적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따라서 본 글은 미래 미술관의 관객 경험을 학습과 수행을 통한 새로운 인지 및 공감각적 경험으로 제안한다.

미술관은 가치 있는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품이 물리적 형상을 지니지 않고 디지털 코드로만 존재하는 경우 무엇을 수집하고 보존할 것인가? 디지털 코드로 존재하는 정보와 작품은 어떻게 구분하고 공유할 것인가? 미래의 미술관은 관객들에게 어떠한 예술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미래 미술관을 준비하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고 있다.

기술 매체를 활용해 생산된 작품, 미디어 아트는 이미 미술관의 수집 대상으로 자리했다. 일상의 디자인 결과물, 게임, 비디오 및 넷아트 등 기술을 활용한 작품은 소장품으로 자리하는 동시에 전시를 통해 다양한 관객과 조우한다. 미디어 아트의 아우라는 지속가능성과 진본성을 통해 관찰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작품을 지속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환경적 속성과 함께 작품이 향유되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비선형성, 상호성 등으로 이뤄지는 작품의 진본성으로 인해 관객들은 작품의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비트로 기록되고 코드로 구현되는 작품은 이러한 아우라로 인해 정보와 차별화 된다. 정보적 패턴으로 콘텐츠가 공유되는 네트워크 환경의 미술관 플랫폼에 대한 이해는 미래 미술관에서의 예술 경험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에코 시스템, 관객과의 접촉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 디바이스, 정보적 패턴으로 존재하는 작품, 그리고 유관 정보의 집합인 메타데이터는 미래 미술관의 작품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구성요소들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작가와 관객은 작품을 향유한다. 작품과 연계된 메타데이터를 통해 관객은 정보를 습득하는 학습 경험을 할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작품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을 통해 수행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전통적 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관객이 경험했던 감각적 향유 이외에도, 미래 미술관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호작용과 정보에 기반을 둔 인지적 경험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기술과 분리될 수 없는 미래가 도래함에 있어 미술관은 그 사명과 역할을 재점검 할 필요가 있다. 수집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며, 새로운 수집 대상의 속성에 대한 이론적·실제적 연구가 필요하다. 또 관객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어떠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역시 요청된다. 기술과 예술, 미술관과 관객, 감각과 인지에 관한 논의를 통해 미래 미술관이 제공하는 확장된 경험을 구체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2020년 7월 24~25일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한 SeMA Agenda 2020 ‘수집’ 〈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 심포지엄 발표문을 각색 및 재편집한 원고입니다.


  1. Oliver Grau, “Media Art’s Challenge to Our Societies,” Imagery in the 21st Century, eds. Oliver Grau and Thomas Veigl (Cambridge, MA: MIT Press, 2011), 349. 

  2. 홍이지, 「미술관 소장품의 온라인 공유와 디지털 콘텐츠 전략을 통한 기관의 공공성」, 『세어 미, 공유하는 미술관 반응하는 플랫폼』, 미팅룸 엮음 (스위밍꿀, 2019), 63. 

  3. Amanda Hess, “Look Who’s Smiley Now: MoMA Acquires Original Emoji,” The New York Times, 26 October 2016. (2020년 7월 11일 검색) 

  4. Sebastian Chan, “Collecting the present: digital code and collections,” MW2014: Museums and the Web 2014. (2020년 4월 20일 검색) 

  5. 홍이지, 같은 책, 63. 

  6. Nathalie Casemajor, “Digital Materialisms: Six Frameworks for Digital Media Studies,” Westminster Papers in Communication and Culture (WPCC), Special issue on The Internet and the Material Turn. 

  7. Johanna Drucker, “Performative Materiality and Theoretical Approaches to Interface,” DHQ: Digital Humanities Quarterly 7:1 (2013). (2020년 4월 21일 검색) 

  8.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3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역사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10), 103-106. 

  9. Ariane Noël de Tilly, “Moving images, editioned artworks and authenticity,” in Art Conservation and Authenticities: Material, Concept, Context, eds. Erma Hermens and Tina Fiske (London: Archetype Publications, 2009), 215. 

  10. 《A Collection of Ideas》(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4.2.15.-2015.1.11.)(2020년 7월 11일 검색). 

  11. 이경민,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왜, 온라인에 공유하는가?」, 『세어 미, 공유하는 미술관 반응하는 플랫폼』, 미팅룸 엮음 (스위밍꿀, 2019), 129-130. 

  12. 같은 글, 147. 

  13. 같은 글, 148. 

  14. Sarah Cook and Marialaura Ghidini, “Internet art [net art],” Grove Art Online. (2020년 4월 20일 검색) 

  15. Oliver Grau, “Media Art’s Challenge to Our Societies,” Imagery in the 21st Century, eds. Oliver Grau and Thomas Veigl (Cambridge, MA: MIT Press, 2011), 357. 

  16. Beryl Graham and Sarah Cook, Rethinking Curating: art after new media (Cambridge, MA: MIT Press, 2010),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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