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쉬운 글과 쉬운 정보를 시도할 때

주명희
주명희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총괄본부장으로 쉬운 정보(Easy Read)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에 프로젝트 매니저(PM)으로 참여해 다수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해왔다. 주요 작업으로 보건복지부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안내서〉(2019), 국립암센터 〈알기 쉬운 암 정보지〉(2020), 배달의민족 〈쉬운 배달앱 사용법〉(2021),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소장품》(2022) 전시의 쉬운 해설 등이 있으며 소소한소통의 ‘어려운말 캠페인’, 매거진 『쉽지』 등을 기획했다.

쉬운 정보(Easy Read) 기획/편집자와의 인터뷰

서울시립미술관의 최근 두 전시, 《시적 소장품》(서소문본관, 2022.3.22.-5.8.)과 《그리드 아일랜드》(서소문본관, 2022.5.26.-8.15.)의 기획의도와 작품을 설명하는 글은 (발달장애인이 읽고 의견을 내는 과정을 거쳐) 좀 더 쉽고 분명한 글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발달장애인과 다른 정보 약자들도 읽고 접근하기 편하게 기존의 글이나 정보를 다시 쓴 것을 ‘쉬운 정보(Easy Read)’라고 합니다. 이같이 쉬운 정보를 만들고 알리는 작업은 생활에 필요한 법령에서 미술 영역의 글까지 여러 가지로 번집니다. 이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사회적 기업 소소한소통의 주명희 본부장과 2022년 6월 13일 서울시립미술관 사무동 회의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전시 《시적 소장품》(2022)의 ‘쉬운 글(Easy Read) 해설’ 제공을 안내하는 문구 전경. 제공: 소소한소통.
전시 《시적 소장품》(2022)의 작품 설명(전시 레이블)에 쉬운 글(Easy Read)을 적용한 예시.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발달장애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지식의 전문성이 가지는 격차와 벽을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미술에서도 활발해지고 있기는 한데,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관객에 대한 접근과 교육을 시도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이 관객에 대한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한편, 창작 차원에서 발달장애인 작가들, 즉 발달장애인의 감각을 존중하고 살리는 방향의 문화예술교육은 취미나 치유를 넘어서 창작까지, 매우 진전된 편입니다. 최근에도 아주 흥미로웠던 전시(《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북서울미술관, 2021)가 있었고, 또 교육 프로그램은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네요. 그러나 이는 여전히 창작 차원이지, 수용자의 차원까지 나아가지는 못해 보입니다. 장애를 신체적 장애로만 단일하게 인식하는 경향도 있고, 비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마주칠 경우도 매우 적고요. 이런 상황 속에 놓인 오늘의 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발달장애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매개자, 접촉자,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누군가로서 선생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식한 발달장애라는 인지적 감각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번에 미술관에서 작업 제안이 왔을 때도 신기하셨을 것도 같고요.

주명희(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 PM): 우선 미술관의 제안이 너무 반가웠어요. 제가 강연1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서 ‘발달장애인이 다양한 경험과 문화들을 동등하게 누리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이번 시도는 미술, 예술의 공간에서 관객으로서 다른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고, 저희한테도 흥미로운 시도였어요.

창작자로서의 발달장애인과 관람객으로서의 발달장애인, 이 둘의 입장이 현재는 미술참여의 주도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자 같은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이 있어요. 반면에 관람객으로서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미술로부터 좀 더 배제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비장애인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저마다 다른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미술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찾아보며 아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에 대해서 감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험치가 거의 없는, 학교 교육 범위 내에서만 미술 교육을 받았고 타인에 의해서 전시회에 같이 가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에서 미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경우에는 관람객으로서 작품이나 전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겠죠. 물론 후자에 속하는 발달장애인이 훨씬 많고요.

사실 비장애인 관람객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레이블(전시장에 부착된 작품이나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글)을 심도 있게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해의 영역, 소위 작품의 기본적인 정보를 이해하는 부분과 주관적인 감상의 영역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설명 없이도 작품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갖고 있는 주제, 작품의 핵심 키워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없다면 감상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작아질 것이고 진면모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가의 히스토리, 작품의 기법 등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차치하더라도 작품이 갖고 있는 큰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정보를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제공한다면, 관객으로서 발달장애인이 작품을 감상을 했을 때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다른 관객과 마찬가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미술관과 함께 한 쉬운 해설 작업은 ‘관람객으로서의 발달장애인’을 고려하며 진행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김진주: 방금 언급하였듯이, 발달장애인을 떼놓고서 보더라도 쉬운 글쓰기는 미술 글쓰기, 기획, 지식을 전달하는 활동에 큰 울림을 줍니다. 현대미술이 계속 고도화되면서 어떤 이론을 가져올 때 어려움을 낳는 경향도 있고, 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새로움이란 건 비장애인들도 굉장히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이 의도치 않게 관람객들에게 ‘내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없구나.’라는 박탈감부터 먼저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지점들이 미술에서 절실한 문제들을 건드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분명한 것은 발달장애가 가지는 감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걸 우리가 단순히 쉽게 읽히는 글 차원에서 알아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명희: 발달장애에 대해 ‘어떤 특성이다’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장애 유형을 15개로 지정하고 있긴 해요.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거든요. 15개 유형 안에 이 두 개 유형을 통틀어서 발달장애인이라고 부르고 있어요.2 지적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인지적인 부분, 그러니까 무엇을 이해하거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폐성 장애는 스펙트럼 장애라고 할만큼 더 다양한 범위의 특성을 갖고 있고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로 인해 평범한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 중증의 자폐성 장애인도 있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회적 소통의 어려움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 증후군은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종종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있어서 비교적 알려져 있는데, 이런 사례들은 일부 특성만 그려지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평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하고요. 개개인의 장애특성, 타고난 기질, 경험, 가정환경에 따라서 많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기에 ‘발달장애인이 이렇습니다.’라고 규정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쉬운 정보에 대해서는 단순히 ‘발달장애인에게 맞춰서 읽기 쉬운 글을 반드시 제공해라’보다는, ‘발달장애인 관람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존과 다른 정보 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존재하며, 비장애인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시도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접근 가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생각 안에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다운증후군 배우가 등장했어요. 그 배우는 실제 작가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고 개인적으로도 만난 적이 있는 사이인데요. 그분의 등장이 장애계에서 한 동안 화제로 떠올랐어요. (관련 칼럼: 홍윤희, 「장애의 판타지, 삶의 리얼리티」(웹진 『이음』, 2022.6.15.) 화제가 됐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의미있게 꼽고 싶은 부분은 비장애인 배우가 발달장애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발달장애인이 직접 연기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발달장애인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발달장애인이 본인의 삶을 투영해 연기한 부분은 드라마가 당사자성을 살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요.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출연하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도 존재하는데 반해 아직 우리나라는 너무 멀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불편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드라마 중간중간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했어요. 예를 들어, 자매의 장애를 가족의 ‘재앙’으로 여기는, 장애는 불행한 것으로 애초에 설정된 서사라든지 장애를 어떤 질병으로서 표현한다든지 하는 부분들이 그랬죠.

김진주: 무엇을 치유해서 개선되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데, ‘질병’이라는 표현은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드네요.

주명희: 그런데 비장애인의 시각, 입장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있었어요. 드라마에서 한 등장인물이 연인의 언니(발달장애인)를 처음 만나게 된 장면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여요. 그래서 연인은 그의 그런 반응에 대해서 화를 내죠. 그때 그 인물이 이렇게 항변을 해요. “아무도 나한테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어.” 일상생활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날 수 없고 경험해 본 적 없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현실의 지점 같아요. 반대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을 옆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몰랐던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소통하는 것은 비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 함께 있어야 되는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진주: 맞아요. 그 사람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는 모두 타인이라서 어색하긴 마찬가지예요. 발달장애인 작가의 전시를 보면 구획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방금 말씀해 주신 드라마 예시처럼, 발달장애인 작가와 비장애인 작가가 참여작가로 섞여서 전시장에 녹아든 그런 모습을 언제쯤 미술관에서 보게 될 수 있을까요. 또 한편으로 발달장애인 분들이 관람객으로서 미술관에 와서 쉬운 글을 정말 읽으실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어요.

주명희: 쉬운 정보 작업에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시고 있어요. 한편으로 소소한소통을 좋아해 주시고 매주 우리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를 들어주시고, 페이스북 같은 SNS를 구독해주시는 등 발달장애인 가운데에 일종의 팬 층도 존재하고요. 최근에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참여해주신 발달장애인분이 《시적 소장품》 전시에 다녀오셨다는 거예요. 저희가 유튜브 라이브로 《시적 소장품》을 소개한 적이 있거든요. 그분들이 전시를 보고 쉬운 글 해설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전시도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진주: 너무 좋은데요. 그분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으셨다는 거군요.

주명희: 네. 저희가 이렇게 전시에 대해서 알려드렸는데 자발적으로 가셔서 보시고, 또 어떤 분은 두 번 보셨다고 하니까 저희도 감사하고 뿌듯해요.

김진주: 저희 업계 사람들도 같은 전시 두 번 보기 힘들어요. 저보다 전시를 더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피드백을 확인하니까 다음 전시를 기획할 때, 쉬운 글 해설 작업을 필수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것 같습니다.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분들 몇 명이나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주명희: 지금은 15명에서 20명 사이예요. 소소한소통은 주로 성인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기에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발달장애인 분들이 많습니다. 소소한소통 활동이 5년 정도 됐는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충원되어서 감수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대부분은 일을 하시고, 다양한 직장을 다니세요. 어린이집 보조 교사, 도서관 사서 보조, 국가에서 진행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서 다양한 직무에 배치되어서 일하시는 분, 네이버 자회사에서 일하시는 분, 장애인 당사자로서 칼럼 쓰시는 분도 있어요. 이렇게 성비, 장애 유형, 나이, 하는 일 등이 다양할수록 저희가 다채로운 의견을 수렴할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우리 작업물이 모든 발달장애인분들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 가지 선택지에서 여러 가지 의견, 입장, 시각을 바라보기에 작업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어요. 감수할 때 15명을 한꺼번에 모시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함께 회의하고 잘 살펴보고 있어요.

김진주: 감수위원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는 사실이 새롭고 놀라운 것 같습니다. 제가 뉴스에서 접하거나 찾아보는 소식에서는 장애인이 당사자로서 어떤 활동 단체에서 함께 활동가로서 일을 하시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거든요.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분들은 외부활동보다는 집에만 계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주명희: 감수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소수이기는 합니다. 저희 감수위원은 소소한소통이 제작하고 있는 작업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기에 나름의 인터뷰를 통해 감수의견을 주실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여 활동을 하시게 된 경우예요. 어떤 글을 읽고 이해하실 수 있지만 언어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우신 분들도 있습니다. 또 의견을 표현하시지만 개인적 경험의 차이로 인해서 소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인지력이 높은 분이나 언어적 의사소통을 잘 하는 분을 모시는 건 아니고 단순한 글을 읽고 이해하실 수 있으면서 어려우면 어렵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분들과 함께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회의를 하면 같은 공간에 모여야 하는데, 한 분 한 분 도움을 드릴 수가 없으니 시간에 맞춰 참여하시는 부분을 스스로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렇다보니 감수위원으로 활동하는 분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다른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은 발달장애인분들 보다는 사회 안에 좀 더 들어와서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진주: 이미 우리 사회 안에 발달장애인과 함께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비장애인들이 확인하게 하는 작업이 중요하네요.

주명희: 미디어에서 자극적으로 재현되어서 장애인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측면에서는 필요한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장애인은 모두 다 어렵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해요. 실제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계시거나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는데 극단적인 부분만을 부각하다 보면 잘못된 편견을 줄 수 있으니까요. 모든 발달장애인이 무능력한 존재라고 오해할 수 있도록 비추는 것은 불편한 부분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다양한 삶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쉬운 정보(Easy Read 또는 Accessible information)와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재난 경고 문자. 주명희, 소소한소통, ‘정답보다 이해의 길을 제시하는 쉬운 전시 안내’ 강연 자료, 2022.

쉬운 정보, 쉬운 글

김진주: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Easy Read’를 ‘쉬운 정보’로 번역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쉬운 정보’는 그야말로 이해하기 쉽다의 의미일 텐데요. 그러나 이 ‘쉬운 정보’는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쉽지 않은’ 어떤 이해를 요청하지요. 이는 습득이 아닌 또 다른 이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쉬운 정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주명희: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일단은 외국에서는 영어로는 Easy Read 혹은 Accessible information. 이 두 가지로 많이 불리는 것 같습니다. Easy Read는 단어 그대로 읽기 쉬운 자료라고 할 수 있고, Accessible information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겠지요. 쉬운 정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소소한소통에서 하는 작업은 후자의 개념에 방점을 두고 있어요. 읽을거리, 글, 혹은 자료라는 한정적인 매체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유형, 무형의 것들을 다 포괄할 수 있는 인포메이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쉬운 정보는 ‘정보를 제공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쉬운 정보’를 의미해요. 그런데 ‘쉬운’ 정보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쉽다는 개념은 개인마다 주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어찌 보면 열린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쉽다’는 개념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 보니까 설명하기 어렵긴 한 것 같아요. 또 어떤 분야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무엇이 쉬운 정보인가?’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김진주: 정말, ‘쉽다’는 개념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적 소장품》에는 직접 쉬운 글로 다시 쓰는 작업에 참여하셨고, 또 《그리드 아일랜드》에는 기획과 감수의 전반적인 진행을 살피셨다 들었습니다. 이번 두 번의 작업에서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는 무엇이 제일 어려우셨나요? 감수에 참여하신 발달장애인 감수자들의 두드러진 의견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주명희: 일단 《그리드 아일랜드》는 처음에 작품 설명을 보고 한 문단을 넘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리드(grid)’라는 개념 자체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학예팀에서 보내준 전시에 대한 설명을 봤는데 복합적인 개념이 함께 담겨 있다 보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김진주: ‘그리드’처럼 다층적인 함의들로 쓰인 단어, 또 은유적으로 쓰인 문장이, 미술 기획에 많이 등장하는 편이니까요. 선생님은 쉬운 글의 생산자/매개자로서 이 어려움을 잘 소화해 뱉어 내주셔야 되는 책무를 받으셨기에,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주명희: ‘그리드’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해야 될까. 핵심만 남기자니 그 의미가 다 담기지 않을 것 같아서 아쉽고, 반면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하자니 한 장짜리가 될 것 같았어요. 이렇게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접근성 측면에서 또 바람직하지 않고요. 이런 식으로 모든 해설이 다 고민스러웠어요. 《시적 소장품》 같은 경우에도 다시 쓰는 작업 난이도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죠. ‘시’라는 것이 상징적이잖아요. 또 문학의 한 장르로서 ‘시’의 특성, 개념을 구분해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시’ 자체만 설명하기보다는 ‘시인’에 대해 함께 설명했을 때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령 윤동주 같이 유명한 시인은 들어봤음직 하고 그의 시 역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잖아요. 이처럼 저희가 쉬운 글 해설을 쓸 때 노력했던 부분 중 하나는 최대한 상징적인 것을 현실로 끌어오기 위해서 구체적, 현실적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거나 일상의 언어로 다시 바꾸는 등의 노력을 했다는 점입니다.

김진주: 저번 강연 참여자의 한 명으로, 저도 직접 쉬운 글로 기존 전시 글을 바꾸는 작업을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해보았는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특히 퇴고 작업은 자기가 쓴 글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다시 쓰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게다가 글이 쉬워져야 한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때 강연에서 여러 방법들을 알려주셨어요. 그 방법들은 마치 새로운 방향을 틀고 만드는 것 같았고요. ‘시’ 혹은 ‘그리드’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가기 위해 원래 꼬불꼬불하고 교차된 길이 있다면 그것과 달리 날아가는 방법, 전체를 조망해서 분명한 것들만 보여주는 방법 등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신다는 생각도 들어서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주명희: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 어깨가 무겁네요. 쉬운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쓰고자 하든 늘 어려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희가 쉬운 글로 바꾸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단어, 글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만 중요한 것을 짚어서 풀어낼 수 있어요. 이해하지 않으면 그냥 말만 겉으로 바꾸는 것뿐이거든요. 저희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의미를 제대로 담아서 쉽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어떠한 스킬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합니다.

김진주: 그렇게 보면 ‘쉬운’이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판단 지은 결과가 아니라 수행적인 것, 형용사나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명희: 유동적인 것이지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내가 쓴 글을 내가 퇴고하는 것이 정말 힘든 것처럼, 어제 분명 쉽다고 생각해서 썼는데 며칠 있다 다시 보면 ‘이건 이렇게 바꿨어야 되는데’ 싶을 때가 있거든요. 한 문장을 가지고 소소한소통의 프로젝트팀 5명이 머리를 맞대고 계속 바꾸기를 거듭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진주: 미술 전시에서 텍스트라는 것은 부차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내용이 많아서 작품을 가린다고 지탄받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전시 텍스트에 대한 역할이나 의미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주명희: 반대로 저는 이번에 인터뷰 답변을 준비하다가 여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 혹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레이블의 역할이 무엇일까. 무엇으로 여기면서 기획을 할까. 전시마다 다르게 접근하는지 혹은 기본적으로 레이블에 꼭 담겨야 되는 내용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진주: 반대로 질문해주시리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미술에 관해 물어주시니 무척 반갑습니다. 최근에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일부러 작품과 작가 정보를 가린 전시가 기획되기도 했어요. 전시 글 쓰기는 배움을 거쳐서 나와야 하겠지요. 국내 교육기관에 큐레이팅, 전시 기획 전공이나 학과가 많지는 않아요. 인접한 전공으로, 예술학, 미술이론, 미술/예술경영, 미술사학과에서 ‘미술 글쓰기’를 배우죠. 미학이나 철학과에서도 예술에 대해서 비평을 해야 되니까, 비평의 기본 대상인 작품, 작가, 전시에 대한 글을 쓰게 됩니다. 대상을 분석해서 써야 하니, 1차 정보, 즉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 작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면, 전시를 통해 제공되는 글, 명제, 레이블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쓰이는 글을 보면 정해진 원칙이나 ‘좋은 글쓰기 매뉴얼’ 같은 정답은 없어 보여요. 대신, 미술 글쓰기에 대한 탐구는 많이 진행되어서 이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학교 수업에서도 가르치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미술 글쓰기는 시각적인 것을, 글이라는 다른 감각으로 옮겨야 하는 것인데, 단순히 서술된 글과는 다른 특성이 있어야 되겠지요. 시각적인 것을 어떻게 잘 구술, 기술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치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이것과 상관없이 분석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요. 한편, 지금 말씀하신 레이블은 비평 이전에 나온 텍스트들이라서, 작가가 먼저 생각과 내용을 밝혀야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획자가 제작 과정이나 작품을 보고 혹은 작가의 말을 듣고 정리하면서 글이 쓰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이후에 작가가 자신의 생각이나 말과 다르다고 할 수도 있어요.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글을 같이 쓰게 되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글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작가한테 먼저 내용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큐레이터의 해석을 거쳐서 글을 만드는, 이러한 과정이 최근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설명, 즉 레이블 텍스트의 생산 경로가 아닐까 싶어요. 작가의 글을 덧붙이고 재배치하고 다듬고, 또 큐레이터의 쓰기가 추가되어서 최종본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하기에 전시에 대한 텍스트는 한 사람이 쓴 글이라고 보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작품 설명 옆에 저자의 이름이 안 붙는 이유가 이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작가들 중에 글을 잘 다루는 분들이 있어서, 이 작가의 경우엔 다른 사람의 펜을 빌리지 않고 자기 서술이 가능하다 싶으면 작가의 글을 그대로 가져올 때도 있어요. 이럴 때는 작가의 요구나 큐레이터의 판단에 따라서 ‘작가 노트에서 발췌’라는 설명이 붙기도 합니다.

주명희: 쉬운 해설은 작품마다 해설이 붙기 때문에 각각 다른 종류의 독립적인 콘텐츠이면서도 또 하나의 전시 안에 묶여야 합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균형점도 고려하지만, 작품이나 그것을 설명하는 글이 가진 개별적인 개성들을 뭉뚱그리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작품이 더 쉬워지고 친절해져야 한다는 관점이 자칫 예술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들이 현대 미술을 완전히 이해의 영역 바깥에 두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작품 이해에 대한 쉬운 단서 제공, 친절한 배경 설명은 오히려 작품을 더 폭넓게 즐기고, 향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주: 그래서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 미술(관)에서 쉬운 글을 쓰려고 하나?’라는 의문도 드셨을 법하고요. 고차원으로 분화되고 축적된 지식이나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에서 이해가 어려워지는 문제를 문해력 차원으로만 봐야 할지 고민입니다. 미술만의 장르적 특수성이 작용하지 않나 싶어요. 생활 속에서(아니면 일상에서는 희소하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필요한 법률 정보를 쉬운 정보로 바꾸는 작업, 그리고 미술에서 생산된 지식을 쉬운 글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어떤 점에서는 매우 다를 테니까요. 미술에서 쉬운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모두 함께 의논할 문제 같기도 합니다.

주명희: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작품을 설명하는 레이블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또 직관적 이해가 어려운 현대 미술의 성격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 상상력을 더 불러일으키기도 할 거고요. 하지만 전시에서 작품 옆에 붙는 레이블, 해설은 정보 전달, 쉬운 이해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때로는 원문에 없는 추가적인 자료를 더 하기도 하고, 굳이 쉽게 설명하지 않고 쉬운 해설에서 그대로 두어도 의미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겠다 싶은 것들은 바꾸지 않기도 했어요. 반대로 설명이 혼란을 주거나 더 이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들은 내용에서 과감히 덜어내기도 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문장의 문제(로부터)

김진주: ‘쉬운 글’로 다시 쓰는 원칙들3 중에 ‘단문으로 쓰기’, ‘분명하게 쓰기’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미술 분야의 글쓰기에서도 가깝게, 필요한 것으로 다가오는 반면, ‘서술형으로 쓰기’, ‘은유, 비유, 추상적 표현은 쓰지 않기’, ‘능동문, 긍정문 쓰기’는 미술을 다루는 글에서 잘 실현될까 의문입니다. 현대미술이 계속해 온, 규범화된 재현을 벗어나 찾고자 하는 상징을 통한 의미와 해석이라든가, 정상성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부정성의 감각은 쉽게 쓰다 보면 결국 피하게 되고, 미지의 영역으로, 결국 소외된 것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런 점에서 미술과 발달장애의 관계 맺기가 더욱 중요하지만요. ‘쉬운 글쓰기 과정에서 덜어내게 되는 부분들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자기반성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하고 쉽게 글을 쓰기 위해서 작품이나 전시에서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고 열어놨던 부분들을 단순화해서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실, 쉬운 해설을 하나의 공유 방법으로 찾은 거잖아요.

주명희: 그 부분이 저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쉬웠으면 좋겠다. 작품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않는 글쓰기 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의 의견이었어요. 최대한 쉽게 쓸 수 있는 부분은 쓰되, 그 의미를 완전히 왜곡하거나 너무 건조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없도록, 살릴 수 있는 의미들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것이 작업의 큰 방향성이었어요. 그래서 아까, 수정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야기했던 문장이 바로 《시적 소장품》에 전시된 작품 〈Pompom〉(2016)에 관한 글이에요. 의미적으로 담고자 했던 원문의 해당 부분은 “〈Pompom〉은 초록색 코스튬에 감춰진 신체가 특정 감정을 연기하는 ‘감정의 초상화’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버전은 “자신의 원래 모습을 숨긴 사람들의 이상한 모습을 통해서 속에 있는 감정을 반대로 강하게 드러낸다.”입니다. 이것도 사실 다시 보니 쉽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이것을 또 “자신의 원래 모습을 숨긴 사람들의 이상한 모습을 통해 오히려 숨겨진 것들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두 번째 버전으로 바꾸었어요. 여기서 “모습”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해서 “자신의 몸을 숨긴 사람들의 이상한 모습을 통해 오히려 숨겨진 것들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로 바꾸었어요. 마지막 최종 버전은 “작품 속 사람은 이상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다. 작가는 이런 이상한 겉모습을 통해 숨겨진 것들을 오히려 더 강하게 표현하다.”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5명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장을 두 개로 분리하는 것으로 최종적인 문장을 완성을 했어요. 쉬운 해설이,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문장을 덜어내지 않고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진주: 이렇게 험난한 감수 과정 상황에서 서로 공감하면서 느꼈던 질문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강연에서는, 최대한 구체적인 상황으로 풀고 기본적으로는 문장을 짧게 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쉬운 글쓰기 방법의 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주명희: 이 작업을 하면서 미술관의 추여명 큐레이터께서 긍정적으로 피드백 주셨던 것 중 하나가 기억납니다. 소소한소통 반재윤 에디터가 시도를 했던 부분으로 본래 원문에 없던 문장인데 구체성을 띠면서 현실적인 질문으로 해설을 시작했어요.4 “이 작품은 커튼 뒤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커튼 뒤의 무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숨어 있을까?”( 《시적 소장품》에 전시된 작품 중 뮌, 〈서브텍스트(당신이 들어온 문)〉(2014)의 쉬운 레이블 중에서) ‘문장을 읽는 사람이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예시가 무엇일까?’를 고민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김진주: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 생활 속 여러 갈래의 텍스트들을 접해 보셨을 텐데 텍스트들 사이의 편차도 확실히 느끼셨을 것 같아요. 미술관과 작업한 쉬운 해설과 달리 법령을 다루실 때는 어떠셨나요.

주명희: 법령은 법령대로의 힘듦이 따로 있어요. 영국은 Easy Read가 오래전부터 시작이 되었고 다양한 비영리 단체, 조직들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곳, Inspired Services와 최근에 ‘줌터뷰’(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진행을 했어요.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한국에 거의 없는 환경에서 소소한소통은 5년 여간 많은 기관 등과 다양한 쉬운 정보를 제작해왔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선보이고 리드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쉬운 정보에 관한 일을 먼저 시작한 영국의 기관들은 대체 어떻게 정보를 만들고 있는지 알고 싶었고 해답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정보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영국에서 쉬운 정보를 접하는 당사자들은 실제로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들이 생겼어요. 더불어 한국의 우리는 쉬운 정보를 이런 식으로 생산하고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공유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연락을 취했고, 최근 약 한 3시간 동안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참고로 관련한 영상과 스토리북을 7월 4일에 공유할 예정이에요.

줌터뷰에서 얘기 나눴던 것 중에 굉장히 놀랐던 점은, 저희와 영국의 기관이 공통점이나 공감 지점이 너무나 많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줌터뷰 이후에 ‘우리가 잘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게 됐고 반대로 굉장히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줌터뷰를 했던 Inspired Services는 유엔 등 국제기구나 영국 정부와 협업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최근에는 난민 여성과 관련된 보고서들을 만들었어요. 이야기해주었던 사례 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소소한소통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도 한데, 정부 또는 공공의 이슈들을 쉬운 정보로 바꾼 것이 지나치게 날 것이라 배포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공유되기도 했다는 경우였어요. 한 마디로 쉬운 정보로 설명되다 보면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포장 없이 의미가 드러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배포될 수 없었다는 거죠. 예를 들어 난민의 상황에 대한 리포트에서 난민이 내쫓기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본국에서) 죽거나 고문당할까봐 무서워서”라고 표현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정부 기관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나쁠까봐”라고 바뀌었다고 해요. 쉬운 정보를 통해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인데 실질적으로 배포가 되는 과정 속에서는 뭉뚱그리거나 포장되어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김진주: 이런 것들은 원본에 없었는데 쉬운 글을 쓰다 보니 구체적 상황이 개입되면서 리얼함이 드러나게 되어서 그런가요?

주명희: 본래 원문 안에 있는 건데 쉬운 글쓰기로 변환되면서 리얼함이 극대화되는 부분입니다. 일종의 뉘앙스에 대한 것과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팩트는 팩트인데 이를 거칠게 표현한 것과 한 겹 포장해서 표현한 것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셈이지요.

김진주: 유려하고, 유식하고, 교양 있게 표현한 것과 달리 직접적이고 더 쉽게, 거리를 좁히는 표현들을 보고 검열 아닌 검열을 하는 것인가요.

주명희: 그렇죠. 저희도 영국 기관이 겪는 문제점들을 겪어요. 정치의 언어는 또다른 생각거리를 줍니다. 정치인들에게 어떠한 요구사항들이 전달되었을 때, “고려해 보겠습니다. 재고해 보겠습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건 사실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가깝잖아요.

김진주: ‘검토’라는 단어에 들어간 함의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드러내 줘야 하는 부분인데 이를 진실되게 이야기하면 그 순간 진실이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쉬운 글 작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중요한 문제가 이 부분일 같아요. 우리가 글을 쓰고 문자를 다룬다고 하면서 그 안에 감춰놨던 진짜 의미들이 쉬운 글을 통해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하신 Easy Read와 Accessible information를 떠올려보면, 쉬운 글은 글이 쉬어야 한다가 아니라 정보에 얼마나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지의 문제이고요. 이처럼 쉬운 글 작업은, 어떤 글이 정해진 대상으로서의 쉬운 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정보와 의미에 쉽게 찾아가는 분명한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겠습니다.

주명희: 앞에서 말씀드렸던 부분과 유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피플퍼스트’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분들로 구성된 단체에서는 선거 공보물이 발달장애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몇 년째 선거법 개정안 운동을 진행하고 계세요. 단체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공약을 담아서 공보물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안은 몇 년 전에 올라갔는데 아직 통과가 되지 않은 채 계속 계류되어 있는 상태예요. 최근 6월 지방선거 때도 보셨겠지만 선거 공보물에 어려운 단어들이 즐비해 있어서 비장애인들도 잘 안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선거 공보물을 쉽게 써서 배포해달라고 했을 때의 반론으로, ‘이해하기 쉬운 표현만 사용하면 후보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이나 문구를 쓰지 못하게 되니까 이로 인하여 선거운동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이 관련 토론회에서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주장이 될 수 없어요. 쉬운 글이 어떤 표현을 누락시키거나 어떤 의미를 원래와 다르게 낮추어서 쓰는 것이 아니잖아요. 반론으로 제기된 주장은 쉬운 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제가 함께 던지고 싶은 질문은 ‘투표를 행사하는 국민이 기존의 선거 공보물 속 정책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데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가’입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이를 올바른 판단의 잣대로 삼고 나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잖아요. ‘나의 참정권 행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제공되고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더불어 쉬운 글과 표현이 어떤 의미를 제한시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진주: 어쩌면 우리가 ‘쉬운’이라는 단어에 속고 스스로 오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쉬운 글 작업에서 ‘쉽다’는 어떤 대상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모두를 포함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여러 통로들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활동인 것 같습니다. 미술 텍스트 앞에서도, 법령 앞에서도, 모두가 편안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요. 명제가 관람객을 좌절시키고, 선거 공약이 유권자를 실망시키지 않게끔 우리가 ‘쉬운’의 의미를 찾아야 될 것 같네요. 말씀을 듣다보니, 미술관에서 했던 쉬운 글 작업은 예시로 들었던 작업보다는 좀 더 행복하신 작업이었다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주명희: 미술관에서 했던 작업은 물론 다른 측면의 어려움이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김진주: 미술(관)이 더 자주 쉬운 글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술의 난제들이 많지만, 그래도 선생님들께 기쁨을 던져드려서 쉬운 글 작업을 계속하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지루하고 어려운 문제 중에 미술관과의 작업이 반짝거리는 측면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주명희: 아무래도 미술 작품이 딱딱한 현실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나 감성들을 현실 너머로까지 표현하는 영역이다 보니까 글을 쓰거나 디자인하는 사람들의 감각과 감성을 다른 방식으로 깨워 줄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또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양한 삶의 영역을 경험할 기회를 발달장애인분들에게 제공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뿌듯하고요.

시각 작업

김진주: 지금까지 하신 작업들의 사례를 보면, 시각적인 편집물, 디자인 결과물들이 많습니다. 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 시각적으로 쉬운 글을 펼치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구체적으로 공간 제약을 받는 상황도 생기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잘 풀어야 할까 고민도 하셨잖아요. 그래서 쉬운 글 작업이 경험을 시각화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쉬운 정보를 만드는 법 중에, ‘쉬운 어휘, 단순한 문법 구조, 이미지로 보조하기는 편집 작업에 가깝고, ‘서체, 글자 크기, 자간, 어간, 행간, 글줄 길이, 정렬 방식, 인쇄용지, 제본 방식’을 고려하는 부분은 UX(사용자 경험)에 대한 시각화 작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각예술이 접근하고 시도할 부분이 많아 보여요. 이번에 미술관과 전시 정보를 재료로 쉬운 정보, 쉬운 글로 다시 탈바꿈시키는 작업에서 어떤 시행착오나 아이디어를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쉬운 글 작업을 보이스 리더 같은 다른 감각의 매체로 옮겨볼 생각과 시도도 하셨을 것 같아요. 우선적으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활동을 하지만, 들려주고 만지게 해주는 등의 ‘다른 매체를 이용한 작업들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주명희: 일단 저희는 가독성 그리고 편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최근 미술관과 두 차례의 작업은 작업기간의 한정으로 새로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것까지를 고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음성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필요할 것 같아요.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글을 읽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계신 발달장애인은 영상이나 이모티콘 등을 통해서 정보를 접하거나 소통하기도 해요. 저랑 친한 지적장애인 여성분은 아직 한글을 배우고 계시는 중이에요. 그분이랑 대화할 때는,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기 위해 밥그릇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소통하고 간단한 텍스트를 주고받아요.

저희가 이번에 전시에 포함될 쉬운 글을 준비했을 때 시각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작품 감상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보통 쉬운 정보를 만들 때에는 가독성을 고려해 텍스트의 크기를 일정 이상 키우고 있고, 텍스트를 담는 판형도 크게 가져갑니다. 이렇게 되면 작품과의 조화를 해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작품을 설명하는 보조적인 역할의 정보로서 쉬운 해설을 제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김진주: 그렇죠. 설명을 읽느라 정작 작품을 못 봤다든가, 작품은 5초 봤는데 설명은 1분 이상 읽고 있는 상황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주명희: 먼저 작품 설명부터 보는 경우는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적 소장품》 같은 경우 일반 레이블과 같이 부착되는 형태니까 기존 레이블과 쉬운 해설이 밸런스가 맞아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작품과의 거리, 일반 레이블과 함께 배치하는 위치, 그리고 일반 레이블과 쉬운 해설 레이블이 같이 놓일 때 관객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쉬운 해설을 어떻게 구분 지어서 디자인할까?’ 등을 고민했어요. 완성된 레이블은 세로로 긴 박스 형태로 ‘쉬운 정보’ BI 마크가 위에 부착되어 있는 결과물로 나왔어요. 부착된 스마일 마크도 오른쪽으로 뺄까 위로 뺄까 혹은 아래에 따로 담을까 등 여러 가지를 시뮬레이션해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분들한테도 보여드리면서 같이 고민했어요. 이런 공동 작업을 나중에는 정보 약자 분들과 전시장에서 함께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시가 열리기 전에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과 쉬운 레이블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시 《시적 소장품》(2022)에서 장성은 작가의 〈Bubble〉(2016)과 〈Pompom〉(2016) 옆으로 작품 설명(전시 레이블)과 쉬운 글(Easy Read) 해설이 함께 부착된 전경, 2022.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실제 전시장에 레이블이 부착된 후 직접 전시장에 와보고서야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된 부분도 있었어요. 전시장의 조도를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아무래도 작품에 스폿조명이 강하게 쏘여지니까 상대적으로 레이블이 있는 곳은 조도가 낮을 수밖에 없기에 쉬운 정보를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보통은 쉬운 정보를 만들 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도 읽을 수 있을 정도여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쉬운 정보를 인쇄물로 만들 때 종이의 재질, 두께, 배경 색, 텍스트의 색을 전반적으로 고려합니다. 《시적 소장품》 레이블을 작업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광택이 없는 종이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배경이 되는 벽의 색과 글씨가 잘 대비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 적절한 색을 사용하여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김진주: 이번에 《그리드 아일랜드》는 이러한 부분들을 수정해서 작업에 적용이 되었나요? 《그리드 아일랜드》는 작품 옆에 작품 설명 레이블이 붙는 게 아니라 전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종이 인쇄물이 배치되어 있고, 전시장 내에는 간단한 작품 명제 외에는 텍스트로 된 전시 정보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각 전시 공간마다 굵직하게 기획에 대한 글을 바닥에 큰 글씨로 프린트해 놓았어요. 어떻게 보면 바닥이라서 쉽게 눈에 마주치다가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또 안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쉬운 정보(Easy Read)로 다시 쓴 《그리드 아일랜드》(2022)의 전시 기획의 글이 전시장 바닥에 부착된 전경, 2022.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주명희: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의 경우, 저희가 레이블 디자인 작업은 참여하지 않고 쉬운 글 해설을 작성하는 작업만 진행했어요. 아무튼 이렇게 전시에 적용되는 쉬운 정보를 만드는 작업은 인쇄물과 달리 사인물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인물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정보니까 시인성과 판독성이 중요한 요소로서 고려되어야 하거든요.

김진주: 물리적 규모나 거리감도 굉장히 중요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주명희: 네. 그래서 《시적 소장품》 전시에서는 작품과의 거리, 벽과의 거리, 설치 벽면과의 거리, 각도, 위치 등을 고려했습니다. 실사 왔을 때, 전시장 환경에 맞춰서 제안드렸던 부분들도 많았어요.

김진주: ‘공간 속에서는 조율하고 고려할 점들이 많아서 매 전시마다 이렇게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쉬운 글/정보 작업이 정착되면 참 좋을 것 같고요.

주명희: 사실 시간이 충분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항상 있거든요. 어떤 프로젝트이던지 항상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전시장 내부 벽 색깔, 작품이 걸리는 위치들을 사전에 공유해주신 3D 자료로 전시의 설치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서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마 코랄에 관하여

김진주: 이렇게 또 상세한 결들이 있었네요. 이제 세마 코랄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어요. 저희가 작년에 ‘장애, 비장애, 접근성’과 같은 주제들을 풀어내 보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리서치 글이나 작업을 한 두건 정도를 다뤄본 정도라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전시에서 정보나 내용을 담고 있는 텍스트를 쉬운 글로 바꾸어 접근성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다시 쓰는 것과, 세마 코랄에서의 작업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발달장애, 장애인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은 세마 코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주명희: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것 같지만,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 때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첫 번째는 ‘세마 코랄의 대상 안에 발달장애인이나 정보 약자를 포함하기보다는, 세마 코랄 채널의 특성을 더 구체적으로 좁혀 가면 좋겠다. 오히려 전문성 있는 혹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장애에 관련된 이슈를 포함해서 다양한 장애+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콘텐츠들을 제공하는 것이 세마 코랄과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발달장애인이 세마 코랄과 같은 콘텐츠를 쉽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세마 코랄을 주로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이슈에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오히려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혹은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과 예술가의 접점, 다양한 관람객들의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제들을 풀어내는 형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당연하게 쓰이는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많은데 굳이 어렵게 쓰지 않아도 되는 표현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을 지양하기 위한 노력이 같이 곁들여지면 좋겠습니다. 세마 코랄의 글을 읽으면서 좌절하지 않고 더 들여다보고 싶고 더 알아보고 싶어 할 수 있게끔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상의 언어로 쓰이는 콘텐츠였으면 좋겠어요.

김진주: 소소한소통도 웹 페이지가 있고 종이책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쉬운 정보를 만드는 작업도 하실 것 같아요. 웹 지면이나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들에 대한 생각도 들어보고 싶어요. 발달장애인과의 함께하는 활동을 옮기고 공유하기 위해서 웹이나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실 때 어떤 생각을 우선으로 두시나요?

주명희: 저희가 생산하는 콘텐츠는 ‘당사자를 위한 콘텐츠’와 ‘당사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콘텐츠’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자 같은 경우 최근에 오픈한 ‘어려운말쉬운말’ 웹사이트가 있어요. 원래는 2018년부터 지속해 왔던 캠페인으로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어려운 말을 제보받아서, 그중에 하나를 이달의 어려운 말로 선정하고, 이를 쉬운 정보로 바꿔서 무료로 배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건을 별도의 콘텐츠인 카드 뉴스로 가공을 하다 보니까 선정하는 것도 어렵지만 새로운 콘텐츠로 시각화하는 부분에서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더 많은 콘텐츠를 선보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카드 뉴스 형식이 다양한 어려운 말을 쉽게 바꾸는 것에 제한을 준다고 생각해서 웹사이트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웹사이트를 보시면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들인데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제보받아서 설명하고 이 단어는 이런 뜻이고, 실제로 이렇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신조어, 한자어 등 예를 들면 ‘취존, 변이, 바이러스, 승강기’ 등 여러 가지 단어들이 있어요. 알려주기 탭을 통해서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누구나 사진과 글을 직접 쓰면서 어떤 단어의 의미가 궁금하다고 문의해주십니다. 발달장애인 혹은 정보 약자 분들은 이 사이트에 와서 ‘이 단어는 이런 뜻이구나.’라는 걸 이해하실 수 있고, 비장애인 분들은 ‘이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생소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상호 누구나 참여하고 이용 가능한 형태의 웹사이트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진주: 웹사이트로 전환하신 것이 하나의 흥미로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참여의 통로도 같이 열어둘 수 있어서 좋고요. 또 이 사이트를 통해서, ‘내가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무엇이 어려울 수 있는지’, 그 감각을 배울 수 있겠습니다.

주명희: 네. 아직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기존의 데이터는 4년 동안 한 달에 한 건 정도를 카드 뉴스로 만들었기에 사실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사이트 오픈에 앞서서 추가적으로 저희 내부에서 어려운 말을 다시 수집하고 쉬운 말로 바꾸는 등 사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또 어떻게 쉬운 단어를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들도 많이 있었어요. ‘어려운 말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 사이트에 담고자 하는 단어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선정된 단어를 어디까지 설명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행착오 속에서 완성된 사이트라고 할 수 있지요.

김진주: 계속 유지가 된다면 이 사이트 하나로도 어렵고 쉬운 단어에 대한 어휘집이 만들어질 수 있어서 소중한 사이트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에 미술의 언어는 얼마나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널리 알려져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흥미롭고 창의적인 작업, 창작에 가까운 작업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주명희: 저는 사실 쉽게 쓰는 것이 새롭게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주: 네. 흥미로운 작업들을 쭉 이어가셨으면 좋겠고, 미술에도 이러한 활동들이 더 많이 같이 결합돼서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고요.

주명희: 저희도 계속 확산이 되었으면 해요. 대부분의 답은 현장에 있더라고요. 현장은 여러 이해 관계자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답을 함께 찾거나 만들어가게 되는 거 같아요. 미술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현장, 미술관도 마찬가지이고요. 저는 미술, 미술관이 하나의 정답을 모두가 똑같이 얻기보다 저마다의 답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발달장애인도 포함해서요. 감사합니다.

*이 대화록은 장애와 접근성에 대해 쉬운 글(Easy Read) 사례 중심으로 진행했던 세마 코랄 사전 자문회의(2022년 6월 13일)에서 나눈 말을 글로 옮기고 보완한 내용입니다.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1. 서울시립미술관 직원이 참여하는 강의 ‘정답보다 이해의 길을 제시하는 쉬운 글 전시 안내’가 주명희 강사의 길잡이로 2022년 4월 26일, 5월 4일 두 번에 걸쳐 마련되었다. 

  2.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 유형을 15가지로 나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별표 1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따른 장애인, 시행 2022년 1월 28일, 2022년 1월 25일 일부개정) (중략) 시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의 시각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사물의 윤곽을 알아보거나 빛을 구부할 수 있는 약시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전혀 듣지 못하는 농인과 청력이 남아 있는 난청의 청각장애인이 있다. 발달장애는 장애인복지법 상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포함한다. 2015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발달장애’라는 표현을 쓰기로 정했다.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사람이 많고, 가족의 보호와 돌돔이 필요한 경우가 만항 정책으로 지원하는 방향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는 다르고, 자폐성 장애의 경우 그 특성이 매우 다양해 ‘자폐스펙트럼 장애’라고 칭하기도 한다. (중략) 한 장애인이 가진 고유한 특징에는 장애로 인한 특성도 있지만, 개인이 가진 기질적 특성, 성향, 성격 등도 있다. 비장애인이 사람마다 고유의 특징을 가진 것처럼 장애인도 똑같이 다르다.” 백정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다양한 몸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하여』, (서울: 도서출판 유유, 2022), 33-35. 

  3. 쉬운 글을 작성 시 고려해할 점은 쉬운 단어를 고르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어려운 단어가 문장 안에 있다면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또한 원문의 의미가 잘 살지 않으면 새로 쓰고 독자에게 맞는 어휘를 사용하거나 표현을 통일해야 한다. 더불어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 시간은 12시간 표시제, 날짜는 년, 월, 일을 사용하며 돈은 천 원 단위 이상일 경우 한글로 쓰고 특수문자나 기호도 되도록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내용만 남겨서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을 담아 단문으로 분명하게 밝혀서 은유, 비유, 추상적인 표현 말고 능동문 혹은 긍정문 형태의 서술형으로 작성해야 한다. (소소한소통,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 모두를 위한 쉬운 정보 제작 안내서』, (서울: 소소한소통, 2021), 40-49 참고.) 

  4. 《시적 소장품》 전시 작품의 쉬운 레이블 작업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참여했다. 담당 학예연구사: 박지수, 추여명.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김은비, 이주형, 장지용, 정유민. 소소한소통 에디터: 고우정, 반재윤, 주명희.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의 기획 글, 작품 해설을 쉬운 글로 다시 쓰는 작업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참여했다. 담당 학예연구사: 정시우.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김상욱, 김유리, 김은비, 이주형. 소소한소통 에디터: 반재윤, 신수연, 윤선혜, 주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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