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고 싶습니다: 다정하기 단련

김성은
김성은은 미술관과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이자 기획자이며, 2019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와 신체적/감각적 경험의 관계, 큐레토리얼과 공동/공유 개념의 결합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전시 기획으로는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 (백남준아트센터, 2021), «웅얼거리고 일렁거리는»(백남준아트센터, 2018), «인터미디어 극장»(리움미술관, 2015–2016),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탤봇라이스갤러리, 에든버러대학교, 2013) 등이 있다.

‘다정한 이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공허하거나 반어적인 수사처럼 들리는 것은, 우리가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웃은 다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이웃과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인간은 대화와 담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고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대화」라는 글에서 그는 “우리가 종종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대화가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것을 타인들과 교환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없을 때, 늘 똑같은 결말로 되돌아가는 공회전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외롭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과 상대방이 하는 말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차이와 다름을 인식하고 그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동안, 대화는 우리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안규철, 2021년 9월 29일)1

2021년 아르코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백남준아트센터가 함께했던 기획의 제목은 ‘다정한 이웃’이다. 당시는 팬데믹이 1차, 2차, 이렇게 거센 파도의 횟수가 붙어가며 재유행을 거듭하던 때, 미술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때다.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사회 문제들 앞에서 미술관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고, 미술관의 근본이 되는 여러 활동들이 부정당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온라인 미술관이 정답인 것처럼 종용했으며, 또 누군가는 이제 전시를 보려 발걸음 하는 미술관은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재난의 시대에 지친 마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 예술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그 예술을 위해 일하는 미술관 사람들의 마음에는 많은 생채기가 났다. 사회에서 미술관은 외로웠다.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면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관이 더 다양한 이들에게 대화를 걸고자 과연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던가? 공회전하는 대화만 되풀이하며 외롭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술관들의 이 같은 안으로부터의 성찰과 실천이, 재난이 닥치고 나서야 일어난 것은 물론 아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기관의 10주년을 맞았던 2018년 미디어 아트 공공미술관으로서 미래의 실천 경로를 설정하기 위해 ‘공유지(the commons)’를 의제로 선정하고 전시, 학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공유지로서 미술관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나는 사유재산 제도 발명 이전의 오래된 과거를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비디오 아트에는 신석기시대 사람들과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2 ‘코뮌(commune)’, ‘공동시장’ 등의 사유가 담긴 백남준의 텍스트를 탐독하고,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의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의 『세계에 다시 주술 걸기: 페미니즘과 공유지의 정치』, 니코 독스(Nico Dockx)와 파스칼 길렌(Pascal Gielen)의 『코모니즘에 관하여』 등을 함께 읽고 공부하였다.3 열 번째 ‘백남준의 선물’ 심포지엄 〈미래 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에서는 공공성, 공유지, 공유재, 공동체라는,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개념들을 학술적으로 다루며 동시대의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예술과 미술관의 역할을 논하였다. 단순히 이론을 현장에 이식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술관의 공유지 가능성을 함께 공부하고 실험하는 과정, 함께 기획하여 실행하며 일시적이더라도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이에 동반되는 감정과 정서를 나누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공유지’일 수 있음을 알아간 시간이었다.4

최태윤, 〈탈학습 워크숍〉, 《#메타뮤지엄 #프로젝트 #관점실험》, 2018. 10. 10.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당시 여러 갈래로 기획했던 사업들 중에 《#메타뮤지엄 #프로젝트》가 있다. ‘사이에, 뒤에, 넘어서’라는 의미의 ‘메타(meta-)’를 접두어로 하여 미술관에 관한 지식, 관점, 태도의 틀을, 안과 밖을 경계 짓는 테두리를 들여다보고자 한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메타 탐구는 미술관이 공유지가 될 수 있는지, 공유지가 되기 위해 무엇을 공유자원으로 보아야 하는지, 이 자원을 이용하고 가꾸는 공동체는 누구인지를 정의해 나가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그리고 그 탐구는 행동이다. 공유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가치를 위해 자원을 가꾸고 운영하는 사회적 실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의 동태(動態)를 ‘공유(지)화(commoning)’라 부를 수 있다. 공유지는 자원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자원을 일구는 공동의 행동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메타뮤지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공동체실험〉이 있었다. 공동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공동체로 당연시되었던 이들과의 작은 실험도 시도하였다. 바로 미술관 직원들이다. 우리는 과연 미술관이라는 공유지이자 공유자원을 같이 일구는 공동체인가? 학예, 행정, 시설, 보안, 안내, 미화 등 직무가 다른 미술관 직원들이 매일 같은 공간에 시간을 정해 두고 모였다. “오후 3시의 동료”라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은 일상적인 휴식 시간, 티타임의 모습을 취했지만 그 안에서 공유지와 공동체에 대해 여러 층위의 의견을 나누도록 하였다. 업무 회의도 아니고 사적 담소도 아닌 이러한 종류의 대화는, 몸으로 익숙해진 미술관의 작동 방식을 말로 꺼내 ‘소통’하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낯설게 한다. 특별히 의식해서 수행해야 하는 일부터, 반복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습득된 일에 이르기까지, 미술관의 업무가 언제 어떻게 공동의 행동으로 느껴지는가, 무엇을 공통의 자원으로 합의하고 또 어떤 지점에서 타협하는가? 공동체가 같은 장소에서 같이 일한다는 동질감으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의 것, 공통의 것에 대한 감각 중 가시적이고 이해된 것과 그로부터 단절, 분열된 것 사이에서, 끈끈하게 결속한 관계가 아니라 도리어 무르고 부서지기 쉬운 관계를 발견하고 나눠야 한다.

언러닝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셨다는 부분에서 지난해 연말 아트선재에서 열렸던 다나카 고키(Koki Tanaka | 田中 功起)의 개인전에서 전시의 제목이자 그의 작품 제목에서 ‘vulnerable’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이 단어 역시 주디스 버틀러의 글에서 사용된 단어였어요. vulnerability는 한글로 ‘취약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 단어가 가진 회복 가능성, 약함을 통해 연대가 형성된다는 의미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조금 더 부드러운(?)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 번역하였습니다. 각자의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상호 의존을 이룬다고 설명해주신 부분이 vulnerability의 함의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타인들이 각자의 ‘다치기 쉬움’을 인정하고 서로 상호 소통해 가는 과정의 기록으로서 다나카 고키의 작업도 덕분에 다시 반추해 보게 됩니다. (김해주, 2021년 11월 2일)

이렇게 미래 미술관의 의제를 발굴하고 학습하고 축적해 오던 중, 전 인류를 덮친 팬데믹의 발발은 미술관의 경로를 재설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접촉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은 물리적 거리두기가 마치 사회적 거리두기와 동격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나눠 쓰고 함께 쓰는 공유경제의 활동들은 크게 위축되었다. 미술관들은 이미 오랫동안 활용해 온 온라인 플랫폼을 아예 주된 무대로 삼기 시작했고 메타버스, 가상현실 전시는 기본값이 되었다. 공동으로 활동하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공통의 감각, “함께 움직이며 얻어지는, 혹은 함께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리듬적 동조를 통해 형성되는”5 공동성을 만드는 장으로서의 공유지 미술관에 대한 모색은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미술관에 던져진 이러한 시대적 조건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공유지 구상의 관점에서 재고해야만 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미술관을 둘러싼 공동체를 멀리 떨어져 볼 수 있는 거리두기가 감염병으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다정한 이웃》 아이덴티티, 2021. 그래픽·웹 디자인: MHTL.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전환의 기로에서 같은 고민을 갖고 있던 아르코미술관, 아트선재센터와 백남준아트센터는 2021년 봄, 서로에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 보기로 한다. 인력과 자원이 풍족한 대형 기관들에 비해 중간 규모의 미술관들이 겪는 어려움, 감염병의 시대에 위기에 처한 미술관이 사회적 가치를 마땅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에 공감하고, 미술관이 이웃을 만드는 일, 미술관이 다정해질 수 있는 일을 함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세 기관이 공동 사업으로 어떤 성과물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웃의 의미, 다정함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데 뜻을 두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세계적인 작가의 미술관이면서 서울이 아닌 곳에 있는 미술관으로서 전문가 집단, 국제적 관객, 지역사회 주민 등 소구 대상의 설정에 있어 태생적 딜레마를 지녀 왔기에, 수년간 천착해 온 공유지 연구와 실험의 연속선에서 ‘이웃’은 중요한 화두로 다가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같이’의 존재론적 의미, ‘가깝다’를 느끼는 심리적인 거리감이 크게 흔들리는 시대에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감각, 즉 이웃 되기의 감각을 들여다보는 일은 미술관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숙제였다.

미술관들이 보통 협업을 도모할 때, ‘전시를 같이 하자, 심포지엄을 같이 하자’, 이렇게 행사의 형식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프로젝트는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는, 세 미술관이 공통으로 품고 있던 반성이자 바람에서 출발하였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게도, 협약서 체결이나 사전 예산 계획 같은 행정 절차 없이 무작정 다 같이 만나 이야기하면서, 근황과 상념을 나누기도 하면서, 조응하고 조율하는 일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사업의 결과를 위해 미리 밑그림을 정교하게 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협업의 방식 안에서 모두의 태도는 조심스럽지만, 개방적이었고 기대는 차분히 영글어 갔다. 5월에 다 같이 각 미술관을 방문하여 그곳의 전시를 보고 대면 회의를 한 이후, 약 반년 동안 세 미술관 열 명의 기획자들은 거의 매주 줌 화상회의로 모였다. 백남준이 “비디오는 삶의 조악한 모델이다”라고 빗대었듯이, 감염병이 세상을 더 전면적인 온라인 상태로 내몰면서 우리는 영상회의 소프트웨어의 기술 구조 속에서, 삶의 “창백한 모조” 속에서 수업하고 회의하며 서로를 만난다.6 온라인에서 작동하는 많은 도구들은 실상 굉장히 개인화되고 고립된 장치이지만, 그러한 온라인 상태를 선택했다면 쉽게 불어나고 쉽게 사라지는 ‘커뮤니티’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기술적 논리의 쓰임새를 역용하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닿고 다가가는 길을 스스로 찾을 필요가 있다.

모두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업무 프로세스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고 각 기관에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여전한 상황에서 반년 가까이 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욱 섬세하게 서로에게 주파수를 맞춰야 했다. 주제를 토의하며 차근차근 형식을 고안하고 내용을 궁리해 나가는 가운데 《다정한 이웃》의 기획자들은, 이미 줌 영상회의 사용에 익숙했지만 그 한계와 미덕을 예민하게 다루려 노력하였다. 분산적인 연결로 작동하는 앱의 특성상, 화면 등장인물의 순서를 각자 다르게 설정한다든가, 간단한 키패드 조작을 통해 말과 글을 오갈 수 있다든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든가 하는 점들은, 조직의 언어로 서열 관계가 존재하는 열 명이 수평적이고 탈위계적으로 소통하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였다.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열 명의 기획자들이 한시적이지만 동료가 되기 위해 함께 생각하고 함께 움직이는 데 필요한 리듬을 맞춰 나간 영상회의는 ‘창백한’ 온라인이지만 어떤 온색과 온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분업적 기계적 협업과 친밀하고 인격적 협업의 차이에 대한 다른 경험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자는 마치 목표를 정하고 계약을 맺는 기관 사업에 가깝고, 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 과정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오랜 지인들 간의 ‘놀이’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드슨 드라마〉가 기대한 창조적 발상이 이뤄지는 ‘마법적 협업’은 후자의 경우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협업의 방법 자체가 곧 실험이자 결과라는 생각도 들고, 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임근혜, 2021년 9월 30일)

《다정한 이웃》은 제도 기관들의 새로운 연결망 구축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대중을 향한 소통 채널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접근성의 여지가 많은 온라인은 기획자들의 회합을 위한 장이면서 관객이 모여들게 하는 장으로 자연스러웠다. 여럿이 기동성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데에 온라인이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하였다. 하지만 미술관을 마치 플랫폼처럼 작동시키는 최근 온라인 방법론의 대세에서는 탈피하고 싶었다. “가이던스에 따라서 콘텐츠에 도달하는 제도적인 길에 ‘옆’ 길이란 없다. 그리고 이 직선의 답답함은 플랫폼에서 작품을 보는 내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7 매끈한 인터페이스와 진진한 이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사이트 구축 대신 웹 매체가 일으키는 반응, 감정, 동작을 현상으로 숙고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러한 방향의 디자인 토대에서 《다정한 이웃》을 위해 공동 창작한 신규 콘텐츠, 그리고 각자의 과거와 현재 프로그램들을 《다정한 이웃》의 맥락에서 재가공한 콘텐츠를 작성하였고, 이를 담아낼 그릇으로 텔레톤, 플러그인, 오디오북, 텍스트 코퍼스라는 네 가지 형식을 정하였다.

세 미술관이 《다정한 이웃》을 위해 새 내용으로 함께 만든 작업은 텔레톤이다. ‘텔레비전+마라톤’의 합성어로 1950-60년대 자선 모금 버라이어티 방송에 착안한 것이다. 2020년 퍼포먼스 비엔날레인 뉴욕 퍼포마(PERFORMA)가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8시간짜리 《퍼포마 텔레톤(Performa Telethon)》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연 형태를 띠는 퍼포먼스가 주된 레퍼토리인 퍼포마가 감염병 환경의 타개책으로 기획한 행사이다. 커미션 신작과 함께 아카이브 자료를 소개하는 전시이자 공연인 방송이면서, 후원 모금도 목표로 하여 쇼호스트가 있는 홈쇼핑처럼 방송하였다. 영상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팬데믹 시대에, 방송과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1984)에 헌사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속에는 온라인 회의처럼 보이는 대목이 나온다. “지성의 대행진”이라는 이 장면은 뉴욕과 파리의 지식인들이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것을 패러디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로 우스꽝스럽게 전개되는 이 코미디를 통해 백남준은 온라인에서 영상을 통해 하는 대화는 곧 기술적인 결합이자 ‘기술의 대화(technologue)’임을 풍자하였다.8 이러한 배경에서 〈다정한 이웃〉의 텔레톤은 온라인 대화와 방송에 있어 기술의 편재, 기술적 솔기를 숨기지 않기로 한다.

〈다정한 이웃〉의 첫 프로그램이었던 텔레톤은 대담, 낭독, 토크쇼, 밴드 공연을 각각 촬영하고 마라톤처럼 이어 편집하여 8월 28일 《다정한 이웃》 웹사이트를 통해 방영했다. 사전에 녹화, 편집한 영상을 업로드해 바로 공개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스트리밍으로 내보내면서 실시간 채팅 기능으로 시청자들과 대화했다. 콘텐츠 자체를 생방송으로 제작하는 일은 예산으로나 기술 실무상으로 힘들기도 했거니와, 동시적이고 집단적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경험의 라이브니스에 보다 중점을 두고자 하였다. 편성은 세 미술관이 각자의 기관 역사와 특성을 되돌아보며 주제를 정하고 출연진을 섭외하여 꾸렸다. 미술 공동체를 중심으로 기능해 온 아르코미술관은 “다정한 이웃들의 반상회”라는 제목으로 안규철 작가와 권태현 독립 큐레이터가 한국의 미술운동과 미술 집단의 역사를 돌아보며 오늘날 미술계에서 이웃은 무엇인가에 관해 대담했다. 국제적이고 다원적인 전시 방향성을 갖고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시인 오은과 미술 비평가 콘노 유키(Yuki Konno)가 “이웃, 경계, 언어”라는 제목으로 주요 전시 사례를 소개하며 이주의 언어, 번역과 소통의 문제를 논설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네트워크를 둘러싼 기술과 미디어의 역할을 주제로 아티스트 콜렉티브 배드 뉴 데이즈(Bad New Days)가 “굴절의 문화사” 토크쇼를 열었다. 작가들은 백남준부터 지금 동시대의 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에 여러 겹의 레이어를 씌워 현실을 구부리는 기술의 역사를 훑는다. 부정적인 의미의 왜곡이 아니라 매체가 세계를 매개하고 우리가 그 세계를 수용하는 양상으로서 굴절의 프리즘을 환기한다.

이 토크쇼에서는 페이스 필터가 탄생시킨 아이돌 매드 몬스터의 문화 현상을 보도하기도 하는데, 《다정한 이웃》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였다. 텔레톤의 각 미술관 방영분 사이사이 인터미션 같은 시간에 가수 겸 배우 신성우와 밴드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의 낭독 코너를 삽입하였다. 신성우는 작가 정재철의 생전 사진들이 배경으로 상영되는 가운데 그의 작업 노트를 읽었고, 황소윤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영상을 배경으로 백남준의 「예술과 위성」을 읽었다. 또한 밴드 바밍타이거는 세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여 각기 다른 곡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제작하였다. 아르코미술관에서는 마로니에 공원을 내려다보는 옥상에서, 아트선재센터에서는 극장형 강당에서, 그리고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백남준의 〈TV 정원〉에서 촬영하였다. 바밍타이거의 곡들은 미술관과 관련이 있지는 않았지만 가수들이 물리적으로 세 장소를 가로지르며 영상을 만들고 각 미술관 방송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독자적이고도 서로 응집하며 움직인 《다정한 이웃》을 잘 표방해 주었다.

이옥경, 〈÷ / +〉, 《웃어》 전시 연계 퍼포먼스, 백남준아트센터, 2021. 7. 20.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이옥경, 〈백조: 폴리에스터로 리플레이하다〉, 《백남준의 주파수로》 전시 연계 퍼포먼스, 에든버러대학교 탤봇라이스갤러리, 2013. 8. 9. 공동기획: 에든버러대학교 탤봇라이스갤러리,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두 번째 형식은 플러그인이다. 각자 진행 중인 사업들로부터 《다정한 이웃》이 제안하는 주제에 부합하는 영상 콘텐츠를 분기시키거나 기관 아카이브 중 선별하여 말 그대로 ‘플러그인’ 함으로써 자원을 공유한다는 취지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경우, 즉흥 연주가 이옥경의 퍼포먼스를 선정하였는데,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이옥경은 2013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탤봇라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백남준의 주파수로》와 연계하여 〈백조: 폴리에스터로 리플레이하다〉를 공연하였고, 2021년에는 《웃어》 전시와 연계하여 〈÷ / +〉를 공연한 바 있다. 첼로를 땅에 고정하지 않고 움직이며 연주하는 이옥경은 에든버러의 유서 깊은 대학 공간에 마련된 무대와 청중석을 오가며, 때로는 관객의 코앞까지 다가가기도 하면서, 공연 예술의 문법에 도전하였다. 8년 후 팬데믹이 한창 기승이던 시기에 백남준아트센터를 다시 찾은 이옥경은 플럭서스를 주제로 한 전시실 곳곳을 첼로와 함께 자유롭게 누볐다. 거리를 두고 밀집도를 낮춰야 하는 감염병 환경을 연주의 조건으로 삼아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 속에 있되 일정한 거리를 두며 두 시간 동안 즉흥 연주해 나갔고, 관객들은 각각 단 10분 만의 감상 시간이 주어져 순서대로 입장하고 퇴장하였다. 기록 방식 또한 상이한 두 편의 영상을 통해 미술관에서의 현장성, 플레이와 리플레이의 의미, 관객과 예술이 맺는 감각적인 경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

최근 플러그인에 업로드한 ‘쿤스트인스티튜트 멜리’ 영상을 제작할 때 권미나 연극배우에게 영어 녹취를, 유지원 비평가/기획자에게 번역을, 그리고 정유진 작가에게 영상 편집을 부탁했습니다. 아마도 이 영상뿐 아니라 《다정한 이웃》에 올라온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여러 사람의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협업들이 용역을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관계를 떠나 일종의 ‘이웃되기’를 권하는 제스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콘텐츠 전면에 드러나는 발화자 외에도 저마다의 역할로 참여하는 협업자들에게 일을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짧게나마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눌 때 역시 이웃의 감각을 느낍니다. 콘텐츠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것에 내재하는 태도와 가치, 지향점을 그들도 작업 과정에서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희현, 2021년 11월 11일)

세 번째로, 오디오북은 여러 낭독자들을 초대하여 텍스트를 읽어주는 페이지이다. 앞서 텔레톤에서도 낭독의 요소가 삽입되었는데, 이미지 없는 목소리, 순전히 소리로만 누군가에게 닿도록 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그사이에 충만한 공백을 담보함으로써 영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유대의 힘을 가질 수 있다. 무진형제, 다나카 고키, 언메이크랩, 염지혜, 서울익스프레스 등 작가들과 시인, 배우, 큐레이터, 에듀케이터가 예술, 환경, 생태, 교육, 돌봄에 대한 글을 들려주었고, 스크립트를 함께 제공하여 전체가 하나의 책처럼 이뤄져 읽기와 듣기의 감각이 교차하도록 하였다. 또한, 텔레톤 영상에 한영 자막과 더불어 수어 통역을 제공한 것처럼, 대개의 미술관 콘텐츠에서 애초에 배제된 (비)관객, 즉 시각장애인들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완벽한 베리어프리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결국엔 (장애인) 관객이 그 공간 안에서 ‘존중받고 있는가’가 핵심일 수 있다.”9

마지막으로 ‘말뭉치’라는 뜻의 텍스트 코퍼스는 세 미술관의 기획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이웃이 되고픈 이들을 초대하여 그에 대한 단상을 글로 답하도록 한 구성이다. 초대된 이들 중에는 텔레톤, 플러그인, 오디오북 참여자들도 있었고, 질문자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제삼의 인물들을 초대하기도 하였다. 모바일 앱 실험 공연 〈저드슨 드라마 (취소선)〉를 공동 기획한 안무가 이민경은 ‘마법 같은’ ‘화학적’ 협업 또는 ‘미묘한 공동 창작의 감각’을 추구하는 협업을 말하였고, 정책 연구자인 김현경은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위한 미술관 가이드라인에 대해,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유지원은 투명한 기능적 존재로서 통번역 일을 하며 대하는 ‘클라이언트’에 대해 언급하였다. 독립적인 전시나 프로그램의 관계자들을 《다정한 이웃》에 참여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매체를 통해, 미술관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가령, 텍스트 코퍼스의 레이아웃을 설계하던 때, 장문의 담론식 소통보다 일상에서 흔히 하는 단문의 대화를 나눠 보기로 하고 카톡 같은 메시지창을 디자인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그 안에서 정말 카톡처럼 동시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비)대면 매체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정리해서 게시할 것인가? 흥미로운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현재의 매체 환경은 모든 소통이 즉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하므로, 문자 메시지의 감정은 무색하거나 실제 감정과 무관해지기도 한다. 무의식화된 기술 매체 기반의 즉각성과 동시성을 웹 개발의 흐름도처럼 짚어 나가면서 텍스트 코퍼스는 시차적이고 순차적으로 작동시키기로 하였다. 질문만 있고 답글이 준비되는 동안 질문자의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듯한 기분으로 공백의 화면을 며칠씩 ‘대하다’ 보면, 활성화되는 대화 창에 담긴 단정한 글의 토막들은 오히려 꽤 인격체다운 기운으로 다가온다.

2021년 12월 21일, 《다정한 이웃》을 마감하는 ‘대잔치’가 열렸다. 열 명의 기획자를 비롯하여 《다정한 이웃》 다양한 꼭지의 참여자들과 관객들이 다 함께 영상회의로 모였다. “새로운 접촉이 새로운 내용을 낳고, 새로운 내용이 새로운 접촉을 낳는 피드백―지난 시대의 표현을 빌린다면 변증법―이 생겨났다.”10 모두가 예술의 위기를 말하고 우리 스스로도 제도와 여건을 어찌할 수 없어 자조적이 되기 쉬울 때, 그 흔들리는 믿음을 간절하게 다짐하는 누군가가 또 있다면, 그래서 그들과 어떤 ‘변증법적인’ 피드백을 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다. 이웃은 이미 거기에 있어서 발견하고 모으기만 하면 되는 상대가 아니라, 우리가 미술관의 일상을 절개하는 ‘대각선적 실천’을 할 때11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다. 횡단하는 실천 속에서 내가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는 성가신 일을 기꺼이 하고자 할 때, 누군가가 내 울타리의 금을 넘는 것을 흔쾌히 대하고자 할 때, 실체가 없는 막연한 공동체가 아니라 이웃이 동료가 되고 동료 같은 이웃이 마침내 생겨날 수 있다.

“공통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와 그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것, 혹은 ‘가시화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공통적인 것의 존재는 일상에서 쉽게 감춰지기 때문이다. (중략) 시야에서 계속 은폐되는 공통적인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 혹은 “공통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오늘날 예술의 동시대적 역할 중 하나다.”12 이는 곧 오늘의 미술관들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이기도 하다.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공통성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따로’와 ‘같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으로 타자를 끌어당기고 그 타자와의 교집합 같은 관계를 가시화하며 공통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는 미술관. 단순히 타자를 만나고 부대끼는 접촉의 지대가 아니라 누군가를 다정하게 환대하고 또 그 환대를 주고받는 이웃되기의 습관을 기르는 미술관. 그곳은 다정한 호혜, 무한한 환대를 단련하는 지반이다.

텔레톤에 참여한 세 기관의 기관장과 실무자, 참가자와 같이 예술 공동체 속에서 공생하고 있는 서로 다른 동네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러 가지 목소리와 연대하며 형식적으로 다른 방법들이 관계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텔레톤처럼 하나의 주제로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구성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이웃되기의 방식이었을까요? 서로 다른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이고,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전지영, 2021년 9월 24일)

*이 글은 2022년 1월 16일, 세마 러닝 스테이션(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있었던 《세마 러닝 스테이션: 전환》의 〈공공미팅—배움의 전환(Public Meeting―Shift in Learning)〉 중 필자(김성은)의 발표 내용에서 출발하여, 2022 SeMA 의제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자적으로 쓰인 원고입니다. 2021년과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는 각각 ‘배움’과 ‘제작’입니다.


  1. 단락으로 구분되고 필자와 날짜가 부기된 인용문들의 출처는 모두 〈다정한 이웃〉의 ‘텍스트 코퍼스(kindneighbors.art/page/text-corpus)’이다. 

  2. 백남준, 「DNA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에디트 데커(Edith Decker),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 엮음, 임왕준 외 옮김(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18), 268. 앞의 백남준의 글의 원문인 “DNA is not racism”은 1988년에 발표되었다. 

  3. 데이비드 볼리어,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새로운 공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공유인을 위한 안내서』, 배수현 옮김(서울: 갈무리, 2015); Silvia Federici, ‘Feminism and the Politics of the Commons’, in David Bollier and Silke Helfrich eds., The Wealth of the Commons: A World Beyond Market & State (Amherst: Levellers Press, 2012); Nico Dockx and Pascal Gielen eds., Commonism: A New Aesthetics of the Real (Amsterdam: Valiz, 2018). 

  4. 최빛나, 「커먼스 형태론 입문. 커먼스를 위한 그리고 커먼스에 의한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커먼스를 향하여’로 느리게 변신해 가는 불완전한 이야기」, 『NJP 리더 #8 – 미래 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18), 124-127. 

  5. 이진경, 「공유재와 미술관」, 『NJP 리더 #8 – 미래 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18), 67. 

  6. 알렉산드라 주하즈, 「나무들을 목표하기: 임의접속정보와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 『NJP 리더 #11 – 비디오 디지털 공유지』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22), https://njp.ggcf.kr/wp-content/uploads/2022/05/4_7_알렉산드라-주하즈Kor.pdf.  

  7. 조은비, “어린이가 현대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미술관은 망할까?,” 〈다정한 이웃〉 오디오북(서울: 아트선재센터, 2021), https://kindneighbors.art/page/audio-book/ 

  8.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 「미디어 고고학의 눈으로 디지털 비디오 아카이브를 바라보기」, 『NJP 리더 #11 – 비디오 디지털 공유지』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22), https://njp.ggcf.kr/wp-content/uploads/2022/05/4_6_볼프강-에른스트Kor.pdf

  9. 연구모임 ‘웰코밍 인코밍’의 여혜진이 김원영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https://kindneighbors.art/page/text-corpus/ 

  10. 백남준, 「예술과 위성」,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에디트 데커(Edith Decker),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 엮음, 임왕준 외 옮김(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18), 151. 앞의 백남준의 글의 원문인 “Art & Satellite”는 1984년에 발표되었다. 

  11. 지그프리드 질린스키(Siegfried Zielinski), 「경이로움을 창조하는 미래의 미술관: 전망해보기」, 『NJP 리더 #10 – 미술관 없는 사회, 어디에나 있는 미술관』(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20), https://njp.ggcf.kr/wp-content/uploads/2021/04/ㅈㅣㄱㅡㅍㅡㄹㅣㄷㅡㅈㅣㄹㄹㅣㄴㅅㅡㅋㅣ-ko-2.pdf

  12. 조선령, 「공동체, 공통적인 것, 예술」, 『NJP 리더 #8 – 미래 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용인: 백남준아트센터, 2018), https://njp.ggcf.kr/wp-content/uploads/2020/05/8_2_조선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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