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작가작업 (piece-artist.work)〉 피드백

김나희
김나희는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웹 프로그래머이다. 생명정치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인간의 섹슈얼리티와 생식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성적 욕구에 대한 코드를 작성하거나 그것에 대한 실험적인 내러티브 영상, 웹페이지를 제작한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업체eobchae’의 일원이다.

2021년 11월 19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세마 코랄 워크숍/강연 두 번째 시간은 김나희 작가의 작품 〈작품작가작업 piece-artist.work〉(2021)(이하, 〈작품작가작업〉)에 관한 렉처 퍼포먼스로 펼쳐졌습니다. 세마 코랄 커미션 웹프로젝트인 〈작품작가작업〉을 제작하며 느낀 아쉬움을, 작품 발표 이후 시차를 두고 풀어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작품의 작가 성별 데이터를 새롭게 해석해 낸 김나희는, 이번 강연에서 스스로 가상의 웹 에이전시에 소속된 두 명의 직원(기획자 K, 개발자 나희)으로 분(分)하여 연기합니다.


들어가며

퍼포먼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가상의 인물이자 논 바이너리(Non-binary), 퀴어한 정체성을 가진 기획자/프로덕트 디자이너-K개발자-나희, 그리고 실제로 〈작품작가작업〉에 텍스트로 참여한 협업자-코멘터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쓰레드를 낭독했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 자신의 작업을 보다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기 위한 의도에서 시도되었다. 게스트 퍼포머로 참여한 황휘 작가가 피드백 일부를 대독해 생동감을 주었다. 〈작품작가작업〉 웹사이트는 실제로 5명의 코멘터들과 협업하여 완성되었는데, 이들에게 받았던 피드백과 작가 자신이 작업에 관해 아쉽다고 느꼈던 지점들을 섞어 내용을 구성했다. 이어서 2부에서는 나희가 〈작품작가작업〉을 제작하며 들었던 생각과 감상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자료에 제시된 목차는 다음과 같다.

1부

1-a. 성별 소장 작품 수의 차이
1-b. 코멘트 업로드 인터페이스
1-c. 중복된 단어에 코멘터가 남겨졌을 경우
1-d. 사용 빈도가 크게 차이나는 단어
1-e. 참여자의 프로필
1-f. 논바이너리 작가는

2부

2-a. ‘div’와 ‘div’ 사이
2-b. 작품이 소장된 작가들의 성별
2-c. 성별 데이터가 꼭 필요할까
2-d. 작가 그룹의 성별은 기타
2-e. 누락된 ‘기타’ 카테고리
※ 에필로그: 코멘터 오픈콜

*김나희 작가가 렉처퍼포먼스 중 공유한 강의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의자료 바로가기]

작품의 기획의도와 결과

〈작품작가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의 해제를 분석해서 작가 성별에 따라 사용된 단어의 선택이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 웹사이트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드러내보려는 시도였다. 먼저 해제문을 작가의 성별로 구분하고, 여성작가들과 남성작가들의 해제 각각에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알고리즘을 적용시켜 사용 빈도수가 높은 단어를 명사 중심으로 추출했다. 가장 자주 쓰인 단어 1위부터 500위까지를 오름차순으로 정렬하고, 이를 세로로 나열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별로 구분된 단어들을 사용자가 클릭하면, 서로 다른 성별의 해제에서 특정한 단어가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는지 볼 수 있다. 이렇게 성별로 사용 빈도수에 대한 비교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툴(Tool) 같은 웹사이트를 제작하고자 했다.

그 결과, 여성/남성/전체 라는 3개 카테고리에서 ‘작품’, ‘작가’, ‘작업’이 각각 1, 2, 3위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로 꼽혔다. 아울러 단어사용의 빈도수에 따라 순위별로 나열된 결과값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한국’이라는 단어를 클릭하면 여성 작가들의 작품해제의 경우 28번째로 등장하고, 전체 단어 수에 비하면 0.35% 비중을 차지하며, 남성 작가의 경우 17번째로 등장하고 전체 단어 수 중 0.57%의 비율로 사용되었다는 수치가 나온다. 이 결과를 클릭해서 상세 페이지로 넘어가면 ‘한국’이라는 단어가 여성 작가와 남성작가 각각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몇 가지 단어 중에서는 별모양의 아이콘이 붙어 있는데, 이를 누르면 코멘터들이 적은 글을 볼 수 있다. 협업자로 코멘터들을 초청해서 4~5개 단어를 선정하고, 그 단어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이나 나름의 객관적 분석을 적어달라고 요청드렸다. 따라서 몇 개의 단어에 한하여 코멘트가 붙어 있다. 가령 윤희준 작가는 한국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간 생각했던 것들과 함께, 전체적인 감상을 공유한 텍스트를 작성해 주었다.

대화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강연 역시 또 하나의 작업처럼 만들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처음 저희가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작품 데이터를 다른 각도에서 연구해 줄 작가를 리서치하면서 성별,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하는 나희 작가님의 방법론을 떠올렸는데요. ‘남녀’라는 구분된 개념이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이고, 작가로서는 매력적인 소스가 아닐 수도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공격 포인트를 잘 잡아서 유연하게 작업해 주셨습니다. 왜 처음 성별에 대한 작업을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김나희(강연자): 저는 본능적으로 섹슈얼한 것들에 끌려 작업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자신이 왜 그런 것들에 대해 천착하게 되는지 고민하고, 그것들을 작업을 통해 이성적으로 풀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성(性), 젠더를 주제로 하다 보니, 작업이 쌓일수록 그 이유들을 천천히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진주: 하지만 저희가 이번에 전해드린 미술관 소장작품 데이터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셨을 것 같아요. 이전에 작가님께서 기획하신 다른 작업과 다르게 고정된 성별 데이터가 들어있는 재료이니까요. 오늘 말씀해 주신 강연 파트 1 중에 그런 내용들이 잘 담겨 있어서, 작업 외의 장면들을 볼 수 있어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아마 작업 진행 과정 중에 코멘터들과의 상호작용이 많이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김나희: 네 맞아요. 이번 웹사이트 작업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이 있어야 좀 더 좋은 형태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획부터 프로덕션까지 저 혼자 진행하다 보니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진 않았습니다. 대신에 코멘터들과 인터랙션 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의미가 웹이라는 인터페이스에 잘 반영됐는지 여러모로 따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분들과의 대화가 디지털 공간, 이메일에 한해 일어나긴 했지만 저한테는 실제로 피드백을 나누는 대화 과정처럼 느껴져서 오늘과 같은 렉처 퍼포먼스 형태의 강연 역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김진주: 우리는 인터넷 작업을 통해 피드백 루프를 꿈꾸지만, 막상 돌아오는 피드백을 체화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에요. 특히나 ‘남녀’라는, 굉장히 크고 단단한 고정관념에 대한 작업의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건드려주셔서 기뻤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을 도입하시는 과정 중에 명사(名詞)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녀의 성별을 언어에 대입시킬 때 명사는 남성적인 것, 형용사나 동사는 여성적인 것, 대안적인 것으로 위치를 시키곤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고민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혹은 실제 기술이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김나희: 명사를 선택한 이유는 제가 사용하는 알고리즘에서 명사를 추출하는 게 제일 쉬워서였습니다. (웃음) 제가 알기로 영어로 이 알고리즘을 돌리면 형용사, 부사 등 다른 품사를 선택해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제한된 수의 사람만 사용하는 한국어로 돌리다 보니, 알고리즘의 기능이 많이 축소되더라고요. 그래서 명사로 특정했을 때 가장 안정적인 단어 데이터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명사 외에 동사, 동사구도 뽑을 수 있어서 함께 시도해 보았는데 그 결과값이 어간, 어미와 함께 포함되는 등 불완전한 형태로 분석되었어요. 500위까지의 순위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 데이터가 오염되는 경우도 발생했고요. 그래서 그런 시도들을 뒤로하고 명사 위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진주 님께서 그런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셔서 다른 품사로 시도했을 때 달라지는 양상을 보고 싶었어요. 당분간은 실현이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앞으로 이 작업이 뻗어갈 수 있는 방향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주: 한국어의 난점이 그런 것 같아요. 성별화된 단어는 없지만 사실 굉장히 성별화되어 쓰이거든요. 오히려 다른 언어보다 뉘앙스, 계급 차이, 성별 차이, 지향성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언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언어로 작업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로망어 계열의 언어들은 남성형 명사, 여성형 명사, 중성 명사가 구분되고, 일본어에도 여성이 쓰는 표현법과 남성이 쓰는 표현법이 관습적으로 규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김나희: 네, 이건 제가 About에서 적었던 이야기인데 한국어가 여성, 남성 단어로 나뉘어 있지 않음에도 가설을 자연스럽게 세우게 되더라고요. ‘이런 단어는 남성 작가들에게 많이 등장할 것이다’라는 가설이요. 한국어의 미묘한 계급과 양상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것을 데이터 표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고요. 제가 작업과정 중에 했던 행위와 생각들이 진주 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네요.

김진주: 네, 한국어는 단어가 지시하는 개념의 경계가 명확하다기보다 뽀얗게 중첩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오늘 파트 1에서 짚어주셨듯이, 두 단어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결과도 흥미로웠어요.

김나희: 이건 코멘터로 참여하신 권자현 님이 이야기해 주셨던 건데,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성들은 ‘순간’이라는 단어를, 남성들은 ‘당시’와 ‘역사’라는 단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데서 차이를 보이더라고요.

김진주: 웹사이트의 구조를 ‘순위’로 잡으신 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선 강연 중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작품 DB에 적용되어 있는 ‘남성’, ‘여성’, ‘기타’라는 아직은 불완전한 성별 카테고리를 지적하시면서도, 그러한 구분을 소거하는 것보다는 유지하는 게 남성과 여성의 개념이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 자각하게 하는 차원에서 낫다고 하신 것과 같은 차원에서 순위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위의 개념을 깨고 싶지는 않으셨을지 궁금해요.

김나희: 네. 남녀의 성별 데이터에 순위를 매기고 길쭉한 형태로 데이터 비주얼 라이징을 해서, 오히려 단적으로 비교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순위를 매겨버리면 그 결과를 단순히 숫자로 바라보게 됩니다. 많은 것은 위에, 적은 것은 아래에 위치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 안에 내재한 미묘한 의미들이 쓸려 나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런저런 단어로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고, 실제 결과값으로 확인해 보는 과정 그 자체가 한국어 화자이면서 여성인 저에게는 일종의 게임 같았습니다. 이런 미묘한 부분은 코멘터들이 제게 준 코멘트에서도 발견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실제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를 일이지만요.

김진주: 오늘 또 다른 퍼포머로 참여하신 황휘 님께서는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황휘(게스트 퍼포머): 저는 방대한 데이터를 소화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별표 아이콘이 있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스크롤이 끊임없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서, 사실 이 데이터를 다 보기보다는 별표가 붙어있는, 코멘트가 있는 항목들 위주로 보게 되었거든요. 별표가 붙어있는 해제를 위주로 보고, 그러한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고 어떤 방향으로 분석했는지에 대한 후기를 봤던 것 같습니다. 또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소장작품 수가 거의 두 배가량 차이가 나는 게 충격적이기도 했어요. 데이터들을 쌓기만 하고…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잖아요. 김나희 작가의 작업들이 데이터를 어떻게 보고,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 같아서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김나희: 방금 황휘 님 말씀을 들으며 기억난 건데, 미술관에서 넘어온 해제는 상당히 날 것의 데이터거든요. 아마도 현재 소장작품 DB에 업데이트된 해제는 다른 pdf 파일에서 긁어서 올려주신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클리닝하고 어떤 방식으로 분석을 하느냐에 따라 데이터가 다르게 보이게 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세마 코랄 팀과의 기획회의 중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처음 엑셀에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았던 가장 충격적이었던 단어가 ‘아줌마’였어요. 사용 단어의 빈도수를 300위까지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인데, 이 ‘아줌마’라는 단어가 남성 작가 작품의 해제에 쓰인 300위까지의 단어 중에서는 등장한 반면 여성 작가의 작품 해제에서는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거든요. 이 발견은 곧 저의 호기심과 동기가 발동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남성 작가의 작업에서 아줌마가 등장하나? 이게 정말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하며 남성 작가의 작품을 설명할 때 아줌마를 얼마나 대상화해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떤 특정 작가의 해제에 아줌마라는 단어가 포함되었고, 이 해제가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대로 쓰이다 보니 아줌마라는 단어가 유독 남성 데이터에서 도드라져 보이게 나온 것이었어요. 이게 그 자체로도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특정 작가의 여러 작품에 대해 똑같은 해제가 반복되어 쓰일 경우를 제외하면 또 어떤 데이터가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결과값은 반복된 것을 한 번 뺀 상태로 올려둔 거예요. 그러고 나니 아줌마라는 단어가 여성과 남성 각각에서 사용된 빈도와 순위가 또 달라지더군요. 사실 제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데이터를 선별하는 게 더 옳은 방식인지 결정하기 힘들어서 방식을 달리하며 결과를 비교해 봤어요. 그래서 사용자에게도 이걸 일종의 ‘툴’로서 제시하고, 직접 이렇게 저렇게 작동시켜 비교해 보고, 그 과정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게 했습니다.

김진주: 데이터의 변화되는 해석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상황,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애초에 우리가 이 작업을 통해 질문하려고 했던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별이 얼마나 불분명한지, 혹은 분명함의 구분이라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네요. ‘기준’이라는 건 일종의 선 긋기 같은 것이고, 그 선은 계속 바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렉처 퍼포먼스 중에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미술관에 불평등 이슈가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해결하려고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지점에 동의합니다. ‘아줌마’라는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언어라는 게 발화하는 주체에 대해서 명명하는 동시에 그가 대상하는 것을 함께 명명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작가로 성별화된 작품에서 아줌마라는 여성 성별의 언어가 많이 노출되듯이 여기에는 역전관계도 숨어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 작가로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미술관에서 소장작품 제안을 할 때 주는 양식에 성별 구분이 되어 있는데 대해 저항하는 작가는 왜 그동안 한 명도 없었을까요?

김나희: 사실 미술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이야기가 제 일처럼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제 작업의 매체 특성상 제가 만든 작품이 기관에 소장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런 점에서 다른 여성 작가들과 접점 하는 공감대가 그 시작부터 조금은 달랐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데이터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며 느낀 바는, 처음 단순하게 소장작품의 개수에서 차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와는 다르게, 해제 등 다른 모든 항목에서 남녀 성별로 훨씬 더 많은 결과값의 이격이 나온 데 대한, 한국 여성으로서 느끼는 답답함이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작업에서는 제가 피부로 느낀 분석 결과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직접적으로 수치를 비주얼라이제이션하고 결과값을 리포트하는 것을 메인으로 삼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였어요. 리포트에 해당하는 내용은 웹사이트의 About이라는 탭에서 작게 다루었고, 오히려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들을 거꾸로 뒤집은 형태로 보여주고자 작업했습니다. 사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이 성별 구분을 어떻게 파고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작가로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상상해 보았지만, 소장품 데이터는 과거에 정리된 데이터이고 제가 작업으로 만들어갈 웹사이트는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게 될 테니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못하고, 그러한 아쉬움을 이번 퍼포먼스에 녹여서 이야기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주변 동료 작가들 중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 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 역시 많으니까요.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떤 분께서 그것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김진주: 작품이 만들어지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미술사에 기록되어야 할 것들을 찾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동안 ‘현재’ 혹은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소장품이라는 과거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는 시점에 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새로운 제안을 주시는 작가들이 생기기를 저 또한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요. 저는 처음 외부 기획자로서 세마 코랄 팀에서 일할 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서울시립미술관 DB 등록 시스템 내 성별 구분에서의 ‘기타’ 카테고리였거든요. 굉장히 급진적인 구분법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룹, 집단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비판적 논의를 더하거나 사고할 기회를 놓쳐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 논의의 차원에서 ‘they’의 개념은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데, they와 기타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김나희: 그러니까요. 저에게도 ‘기타’는 허겁지겁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요소였고, 미술관의 의도가 그게 아닌 걸 알게 된 후에도 they와 비슷한 존재가 이 카테고리에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어떤 퀴어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인칭을 they라고 했을 때, 기타가 함의하는 복수성이 잘 맞아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기타야”라고 고집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것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새로운 성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것은 정말 안된다’고 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차악의 선택지인 것 같고요. 카테고리들을 조금씩 추가해 가면서 작가들이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기타보다 100만 배 낫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김진주: 한편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단지 개인의 차원인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어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별은 단체나 복수가 아니라, 굉장한 개별성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런 사고를 역전시키면 굉장히 흥미로운 전환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김나희: 맞아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별이 딱 하나씩만 배정이 된다고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자신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정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깊게 뿌리박힌 인식을 깨 나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그런 재미나 즐거움을 알고 자기 자신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을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고 있어요.

김진주: 작가님의 이런 관점 때문에 생식의 과정에서 생기는 경험과 감각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되신 게 아닐까 합니다.

김나희: 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식이라는 것 개념 자체가 이분법적인 성을 전제로 시작하는 것인데요. 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래부터 흔드는 거고, 사회에서는 충분한 노동력을 만들지 못하니까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혼란을 틈타 저의 성생활과 가족생활을 새롭게 디자인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제 작업에서 이런 시작을 해 보려고 합니다.

김진주: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 중이신 〈대디 레지던시〉 작업도 기대가 됩니다. 채팅창에서 질문이 올라왔네요. “작가님은 이 작업에서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작품 해제에 등장하는 단어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직접 해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해제의 단어들은 작가의 성별과 연관이 있는 것일 뿐 아니라 해제를 작성한 연구자들의 성별과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요?” 라고 하셨네요. 맞아요. 해제문은 작가가 직접 작성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가 해제문 작성 지침에 따라 작성합니다. 그 지침이 유도하거나 권장하는 경향성을 띤다고도 할 수 있겠죠.

김나희: 맞아요. 저 역시 작가와 해제 사이에 연구자의 레이어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이걸 제 작업에서 풀어낼 만한 노출 지점을 정하지 않았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데이터는 낡은 것이거든요. 특히 초반에 수집된 소장품에 대해서는 해제를 작성하신 평론가나 큐레이터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뒤에 남기시더라고요. 해제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분석 결과인데도 대부분 당대에 유명했던 기자, 남성 기획자분들에 의해 작성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해제 작성자의 프로필을 확정할 수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가 혼재되어 있었어요. 지금 채팅창에서 짚어주신 것처럼 작품과 해제 사이에는 작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작성해 준 다양한 배경의 해제 작성인이 또 다른 레이어로 존재를 하고 있고, 이들의 성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서 해당 작품과 작가에 대한 분석에 대한 결과 편차가 상당히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해제문 작성자의 정보가 있었다면 한 가지 팩터를 더 추가해서 이것저것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기획자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작성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프로필이 숨겨져 있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소임(SeMA 코디네이터): 저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질문드리고 싶어요. 나희 님의 웹 작업에서 관객은 무슨 의미일까요?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이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작품이 작동되는 데 있어 항상 사용자를 상정하시는 셈인데요.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계시는 〈대디 레지던시〉나 〈nahee.app〉, 〈코드시〉에서도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사용자의 역할이 굉장히 크고, 이번 〈작품작가작업〉에서도 코멘터를 참여시키셨고요. 통상 미술 씬에서 흔히 말하는 ‘관람객이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킨다’ 라는 명제와 별개로, 작가님의 작업에서 관객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김나희: 사실 미술 씬에서 회자되는 명제의 프로그래머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주로 개발자,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작업을 구상하고 구현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 세상과 멀어져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논리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프로그램이라는 게 그 안에서도 잘 돌아가는 세계이다 보니까요. 로직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점점 빠져드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로직을 함께 공유하지 않았을 경우에 그 의미를 같이 공유할 수 없는 식으로 작업의 결과물이 나온 경우가 많았어요. 이렇게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제가 프로그래밍 논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서 ‘유저 프렌들리(user-friendly)’한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툴이나 매체에 갇히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사람들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작업 안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작가작업〉 역시 결과를 익스포트 해서 매끈한 웹사이트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을 생각했다가, 그렇게 되면 제가 생각했던 의미가 여기저기 파편화돼서 잘 보이지 않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코멘터들을 초대해 봐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김진주: 코멘터들의 안내서가 나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곁들여 하게 되네요. 오늘 렉처 퍼포먼스 잘 들었습니다. 특히 이 자리를 단순히 작업을 소개하는 시간이 아니라, 작업하며 들었던 고민들을 통해 또 다른 작업으로 만들어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술관 생태계를 젠더적 관점으로 접근해 주셨고, 특히 나희 님의 개발 언어로 접할 수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혹시 오늘 워크숍에 참여해 주신 분들 중에서 떠오른 질문이 있으시다거나 작업과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에 대해 코멘트가 있으신 분은 김나희 작가님 메일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나희: 감사합니다.

〈작품작가작업>(2021)과 SeMA 소장작품에 대한 질문 & 코멘터 참여 문의: nahbee10@gmail.com

기록과 편집 이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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