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소장품 데이터의 데이터화, 재:료 기:법

김민아
김민아는 디지털 기술 발전의 뒤에 남겨지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의 잔해와 인간 삶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예술의 장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설치물, 사운드, 퍼포먼스,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선보인다. 비타미나(Vitamina)라는 이름으로 사운드 작업을 하며, 다양한 소리들을 실험하며 함께 놀고 배우는 데 관심 있는 여성과 퀴어를 위한 커뮤니티 ‘레지스터 코리아(Re#sister Korea)’ 활동을 이끌고 있다.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연구자인 김민아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의 ‘재료와 기법’에 대한 정보를 재구성하는 웹프로젝트를 제작한다.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는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도 크게 도맡고 있다. 전자 장치를 활용할 수 있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모두가 이 전문적인 미술정보에 가닿을 수 있다. 이 웹페이지 속 ‘검색옵션’에는 미술작품의 정보를 구성하는 몇 가지 항목이 배치되어 있다. 이 중 ‘작품명’이나 ‘작가명’이 각 정보 값의 주소지와 같은 보편적 기능을 발휘한다면, ‘재료/기법’과 ‘부문’(장르)은 미술만의 특수성을 드러낸다. 좀 더 살펴보자. ‘부문’은 회화, 조각/설치, 사진, 뉴미디어, 한국화, 드로잉/판화/디자인, 공예, 서예로 짜인 구성을 ‘찾는 이(검색하는 자)’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재료/기법’은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왜일까? 이는 이 자리에 담겨야 할­―이 빈칸으로 연결될­―정보들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형편 때문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1

그럼에도 소장품의 정보의 하나인 재료/기법은 표준적인 범주화를 성취해야 하는 측면을 떨쳐낼 수 없다. 재료/기법은 소장품의 장르를 구분하는 개념 정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또한 데이터로서의 무결성을 가지기 위해서도, 재료/기법은 정제되어야 한다. 범주화는 모두가 어떤 정보에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인 한편, 이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확인한다. 현대미술은 범주화를 월경하는 새로운 재료와 기법의 작품이 계속해서 등장함으로써 가동되어 왔다. 세마 코랄의 웹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새로운 변칙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재료/기법의 범주가 공고하게 만들어내는 미술의 어떤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자연스레 현실적으로 재료/기법이라는 이 경계를 활짝 열어 놓는 것이 더 이롭겠다는 판단이 뒤따라 온다. 그렇지만 이 열린 문 앞에서 미술정보를 찾는 이들은 여전히 표지 없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김민아 작가의 웹프로젝트 〈재:료 기:법(Jae: Lyo Gi:Beob)〉jaelyo-gibeob.website은 그 자체가 창작물인 동시에, 창작물에 대한­―즉, 창작물이 생산한 정보가 가지는 (불)가능성에 대한 위와 같은 여러 문제를 되물어보는­―정보의 아카이빙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재료/기법’에서 ‘재:료 기:법’으로

재료/기법 데이터를 데이터화(혹은 작업화) 하는 시도는 데이터의 역할을 하지 못하던 재료 목록을 데이터화 함으로써 정보 값을 부여한다. 즉 정체성과 존재감을 부여한다.

작품 재료 데이터들은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말하는 가비지 데이터(garbage data) 혹은 다크 데이터(dark data)와 같이 정보 값이 없고 쓸모없는 데이터와는 또 결이 다르다. 정보 값은 있으나 데이터로서 (이용 가능한) 정제된 정보 값을 갖지 않는 데이터들이다. 어떤 값들은 중복되고, 비슷한 이름이지만 또 다르다. 재료를 설명하는 정보 값들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특별하다. 비슷한 단어들이 비슷한 재료를 나타내지만 다르게 선언됨으로써 주체성을 갖는다.

이렇게 혼재되고 정제되지 않고 쉽게 검색될 수도 없는 재료 데이터를 작품의 위치로 지위를 상승시켜 본다면 어떨까. 쉽게 검색될 수 없는 재료들을 일단은 가시화해보자. 드러내 보이자. 재료 데이터들을 파이썬(Python) 코딩을 통해 정제해 본다. 작품별로 나열된 재료들을 모두 통합하고, 완전히 중복된 단어는 합쳤다. 총 5653개의 작품들에서 1627개의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재료 데이터를 추출해내었다.

재료들의 이름을 화면(웹 캔버스) 위에 일렬로 펼쳐내 보았다. 작품에 귀속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펼쳐진 각기 다른 재료 이름들은 작품과 연결된 정보 값이 전혀 없는 고유의 예술작품을 나열한 것처럼 보였다. 이 캔버스 위에 놓인 1627개의 재료들은 새로운 데이터로서 고유의 정보 값, 토큰, 아이디 혹은 정체성을 원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을 때, 재료는 작업이 된다. 머신러닝 프로그램 중 (카카오브레인에서 오픈소스로 공개한) 텍스트 투 이미지(Text to Image) 생성 도구인 민달리(minDALL-E)를 사용하여 각 재료들의 이름에 걸맞을 인공지능 이미지를 생성했다.

캔버스 위에 나열된 재료들의 이름 위에 새롭게 생성된 그들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상하고 기괴한 작품들의 나열처럼 보이는 재료들의 이름을 클릭하는 순간, 이미지는 사라지고 그들이 귀속된 원래 작업의 작업 검색창(세마-지식과 연구-소장품 검색창)으로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은 재료가 작업이 되는 짧은 순간, 그 가상의 캔버스 위에서, 재료를 데이터화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보려는 시도이다.”

­ ―김민아, 작가노트, 2022.

웹사이트 ‘재:료 기:법’ 사용법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웹사이트 왼쪽 영역에는 이 창작물의 주소가 되는 정보인 작품명, 그리고 정보에 대한 아카이빙이라는 n차적 정보가 발원한 맥락 정보를 우선적으로 명시해 보여준다. 형식적 맥락 정보 아래에는 이 작품의 맥락적 내러티브인 작업 과정과 창작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작가노트(작업노트)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웹사이트 공개 이후에, 세마 코랄이 조력해서 작가가 품고 있는 미술작품의 재료/기법 정보와 그 데이터의 (불)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여러 관계자에게 던져 본 이야기를 더할 예정이다.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김민아, 〈재:료 기:법(Jae: Lyo Gi:Beob)〉, 2022. 웹사이트(https://jaelyo-gibeob.website/)와 연결된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소장품 검색 화면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의뢰 작품.

오른쪽 영역에는 작가가 미술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소장품 5653점의 재료/기법 입력 값 5653개)를 중복된 것들만 제거하는 식으로 최소한으로 정제한 결과(재료/기법 기술 정보 1627개)를 축적해 놓았다. 일단, 성급하게 클릭하지 말고 잠시 커서를 화면 위에서 움직여 보기만을, 접속한 이들에게 권한다. 1627개의 기술 정보 위로 커서가 놓이면 두 가지 단어 이상이 묶여 밝은 바탕색으로 구별 지어 보인다. 이를 통해 정보의 사용자는 각각의 요소처럼 인식되는 단어들이 어떤 조합으로 하나의 정보 값이 되었는지를 시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왼쪽 영역에 4개의 이미지가 찰나로 보인다. 이 이미지들은 미술관의 소장품의 재료/기법 정보 값을 정제한 1627개의 기술(description) 정보 텍스트를 하나하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된 기술(technology)인 AI 이미지 생성 모델에 입력하여 얻어낸 이미지의 조합적 예시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데이터화 작업에 투여되는 노동을 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기술 정보 값 하나를 클릭하면, 눈앞에 창은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로 옮겨간다. 각각의 값을 재료/기법 검색 창에 입력한 결과가 나와있다.

〈재:료 기:법(Jae: Lyo Gi:Beob)〉 웹사이트의 도메인을 제외한 나머지 본 웹페이지는 개발자들의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이 데이터들이 로딩되는 시간(브라우저와 접속망 상황에 따라 약 5초에서 길게는 1분 정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길 수 있는 이 시간은, 기실, 5653개의 값이 1627개의 값이 되고 다시 1627x4개의 값이 되고 다시 어떤 값이 될 수 있는 데이터적 변환의 한 조각을 체감케 하는 비교적 ‘짧은’ 워밍업이다.

­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1. 2017년에 마련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기술지침은 소장품 정보를 생산하는 방법을 표준화하는 작업의 목적을 두 가지로 밝히고 있다. 안으로는 (소장품을 제안하거나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될) ‘소장작가’에게 이 기술지침의 사용을 권장해 전문성을 기하고, 밖으로는 관객에게 제공하는 소장품 정보 서비스를 향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전의 소장품 정보의 정의나 분류 체계를 새롭게 정비하면서 몇 가지 어려움과 판단도 밝히고 있는데, 다음의 대목에서 재료/기법 정보의 난점에 대해 알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는 현대미술을 재단하듯 구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본 기관의 소장품 관리 현황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를 중심으로 개념을 정립하였다. (중략) 특히, 재료/기법에 관해서는 재료와 기법을 함께 기술하며, 너무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사항들은 소장작가들의 자문을 받아 정리하였다. 평면 작품은 바탕재료와 표현재료를 구분하여 기술하고, 입체 작품은 주재료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영상 작품은 재생 정보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단, 작가가 원하는 방식이 있다면 우선으로 반영하여 기술하고, 기술지침에 따라 생략된 세부적인 사항들은 소장품 담당자가 반드시 따로 기록하여 관리하기로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기술지침』(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017),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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