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의 역할을 기록하기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

고주영
고주영은 공연예술 독립기획자이다. 현재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규범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 Question 을 던지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이상한 Queer 존재들의 삶을 공연을 통해 응시하고 함께 걷는 〈플랜Q 프로젝트〉(극단 북새통과의 협업, 2019~),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함수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세마 코랄의 커미션 연구로, 공연 프로듀서 고주영은 ‘리서치의 역할’을 보여주는 웹프로젝트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1을 제작한다.

글뿐 아니라 연구적 태도와 감각을 접목한 웹프로젝트를 기획·제안하는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 때문에 코랄은 과연 ‘리서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리서치의 목표는 질문에 대한 답 구하기가 아닌 ‘질문하기’ 그 자체라 말하는 동명의 책2 서두를 보자. 이 책을 발간한, 큐레토리얼 ‘리서치 기관’을 자임하는 뉴욕의 바드 대학원 센터(Bard Graduate Center)의 학장 피터 밀러(Peter Miller)는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써 리서치를 사용하지만, 정작 리서치에 대한 고찰은 부재한 지금의 상태를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리서치에 대한 정의를 내세우는 대신, “리서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적, 지적 덕목”, 즉 ‘끈기, 결단력, 상상력, 체계성·조직화, 자기-비평, 진실을 추구하기, 협력, 소통, 장기적 안목’을 강조한다. 진실로 그러하다. 리서치는 현상, 정보, 지식과 같은 추상적 결정화 이전에, 어떤 누구, 어디, 그 무엇, 그리고 이것들이 얽힌 구체적 현장에서 긴 세월, 배양된다. 따라서 리서치 수행자는 이러한 구체성을 껴안아야 한다. 그것이 영어와 한국어 번역어 사이에 간격을 내포한 단어 minorities처럼 대면하기 뜨겁고 따갑더라도, 그것에 기꺼이 ‘연루’3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얻은 리서치 미덕, 그 암묵지를 침묵의 상태에 두지 않고 하나하나 기록해 둔 고주영 프로듀서가 일본에서 수행한 사회적 소수자·소수성(minorities) 리서치처럼.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연극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사회에서, 연극, 혹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 공연예술이라는 장은 묻히기 쉬운 작은 목소리를 픽업해 조금이라도 확장해 나가는 매개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다수와 다른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거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예술이 만나는 일본의 현장을 찾아 관점과 실천의 방식을 확장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2023년 1월 4일부터 2월 17일까지 약 40일 간 일본에 머무르며 리서치를 진행했다. 이 리서치를 통해 한 개인의 삶, 공연예술 기획자로서의 작업,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 소개글, 2023.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2023. 리서치 기록 웹페이지(https://kohjooyoung.info/)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지원.

리서치 여행 도구: 누군가, 지도, 리서치, 코멘트, 그리고 점프

고주영 프로듀서가 쓰고 계획하고, 남선미 작가가 구축한 이번 리서치 웹사이트 kohjooyoung.info는 일단 고주영이라는 한 사람의 이름을 웹주소로 둔다. 누구든, 연구자의 리서치는 계속 분화할 것이기에 나중에 바뀔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가 수행하는가에 따라 연구의 초점과 결이 크게 변화한다(결정짓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연구자 자신의 이름이야말로 리서치를 찾아갈 주소라는 격에 들어맞는다.

지도에 표시된, 일본의 5대 본토 섬 곳곳을 숨 가쁘게 찾아간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1-1. 간토 지역 중에서 도쿄

01- 장애인들의 몸과 감각을 연구하는 미학자 이토 아사
02- 예술을 통해 사회 혁신을 꿈꾸는 비영리단체 슬로우 레이블의 ‘소셜 서커스’
03- 미술작가가 주인으로 있는 도쿄 성소수자의 성지인 바 ‘탁스 놋’
04- 일본 후생노동성의 장애인문화예술계획 추진관 모리 마리코
05- 시각예술가이자 활동가 아키라 더 허슬러
06- 국적을 떠나 도쿄에서 성소수자들이 정보를 나누는 사랑방 ‘프라이드 하우스 도쿄 레거시’
07-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작가 벤델린 반 올덴버그의 개인전
08- ‘홈리스, 휴먼, 희망’의 다중적 의미를 품은 안무가들의 단체 ‘소케릿사!’
09- FTM 연극배우이자 젠더 워크숍을 이끄는 와다 하나코

1-2. 간토 지역 중에서 사이타마

10- 예술과 접점을 만드는 고령자 대상 주간 활동센터 ‘라쿠라쿠’
11- 베이커리, 카페, 화요 바자회, 화실 등을 운영하는 장애인 작업장 ‘카푸카푸’

1-3. 간토 지역 중에서 우츠노미야

12- 수어와 구어가 자유롭게 오가는 객석에서 본 영화 ‘무지갯빛 아침이 올 때까지’

2-1. 신슈(나가노) 지역 중에서 우에다

13- 카페, 게스트하우스의 리셉션, 공연장, 파티장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이노츠노(무소의 뿔)’
14- 도시의 다양한 공간, 상점이 힘을 모아 코로나19 속에서 이뤄낸 프로젝트 ‘노키시타(처마 밑)’
15- 1917년 개관해 지금까지 이어온 단관 극장 ‘우에다 필름 시어터’
16- 세 군데의 아틀리에를 가진 성인 장애인복지시설 겸 작업장 ‘리베르테’

3-1. 규슈 지역 중에서 후쿠오카

17- 트랜스젠더 교수로서, 미래, 공생, 디자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예술사회학자 나카무라 미아
18- 젊은 세대가 소수자성을 자기 일로 생각하길 바라는 예술공학자 나가츠 유이치로
19- 복지사업소와 비영리활동법인 두 가지 성격을 공유하는 장애인작업장이자 활동지원센터 ‘아틀리에 마루’

4-1. 간사이 지역 중에서 고베

20- 1996년 시작한 오사카 최초 현대무용 전문 소극장 ‘댄스박스 고베’
21- 농인, 맹인, 지체장애인, 비장애인, 수어통역사 등 다양한 형태의 신체와 감각의 사람들이 만든 무용단 ‘미-미-비(Mi-Mi-Bi) 컴퍼니’
22- 재일조선인 3세이며 한국 전통무용수이자 교육자인 조혜미, 댄스박스 고베의 프로그램 디렉터 요코보리 후미
23- 재일조선인 3세 김신용이 설립한 커뮤니티 공간이자 자료관 ‘고베 한국교육문화센터’

4-2. 간사이 지역 중에서 교토

24- 전맹 미술작가 미츠시마의 스큐디오 겸 사무실 겸 갤러리 ‘아틀리에 미츠시마’
25- 다큐멘터리 영상과 연극을 창작하는 연출가 무라카와 타쿠야의 작품 ‘문라이트’

4-3. 간사이 지역 중에서 오사카

26- 빈민가에 자리해, 카페, 게스트하우스, 플리마켓, 예술학교를 겸한 공간 ‘코코룸’
27- 재일교포 3세 김만리가 창단한, 지체장애인만의 신체표현을 탐구하는 극단 ‘타이헨’

4-4. 간사이 지역 중에서 오카야마

28- 요양보호사이며 극단 오이보케시(늙음, 치매)의 대표이며 작가이며 연출가인 스가와라 나오키

4-5. 간사이 지역 중에서 나라

29- 한 도시에서 4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복지시설이자 창작터 ‘단포포노이에’

5-1. 홋카이도 지역 중에서 이시카리

30- 예술, 농업, 요식업 등을 통해 지적장애인의 자기표현과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복지시설 ‘유유’
31- 홋카이도 선주민 아이누의 상징공간 국립아이누박물관 ‘우포포이(다 함께 노래하다)’

5-2. 홋카이도 지역 중에서 삿포로

32- 1인 극단 유비와호텔의 작가이자 연출가이자 배우 시로타마 히츠지야

고주영,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 2023. 리서치 기록 웹페이지(https://kohjooyoung.info/) 갈무리.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 제작지원.

리서치 수행자이자 여행자 고주영 프로듀서는 각각의 이야기를 ‘리서치, 코멘트, 점프 투’로 나누어 기록했다. ‘리서치’는 사실과 맥락의 관찰, 연구자의 분석적 관점과 같은 지적 탐구에 집중하는 칼럼의 역할로 보인다. ‘코멘트’는 인터뷰이와 같은 누군가의 말(따옴표 표시)이나 연구자 자신의 일기, 시 같은 메모 등 리서치의 반향을 담아낸 칼럼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점프 투’는 말 그대로 ‘어딘가로 갈 수 있는 도약대’이다. 이 대목에서 점프! 독자로서 맥락을 확장할 수 있겠다. 이렇게 성격을 달리 한 리서치 기록의 구성은 리서치 도구들이 구성하는 사회의 모양으로도 읽힌다.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


  1. 고주영 프로듀서의 〈Social minorities and Art in Japan(일본의 사회적 소수자와 예술)〉는 원래 연구자 본인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로, 일본에서 현대공연예술을 지원하는 민간기관인 세존문화재단(The Saison Foundation)의 방문 펠로우 프로그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 레지던스 참가지원으로 실행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 코랄)의 제작지원이, 리서치 여정을 웹프로젝트로 옮겨보면 좋겠다는 세마 코랄 기획/편집자 김진주의 제안으로, 더해졌고, 그 결과가 웹프로그래머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한 남선미가 개발한 웹사이트 형태로 공유되었다. 

  2. 피터 밀러 외, 『리서치란 무엇인가?』, 박유선, 박지윤 옮김(서울: 플레인앤버티컬, 2022), v-vi 참고. 외따옴표 안의 번역은 필자가 약간씩 고쳤다.  

  3. 연구자의 연루됨에 관해서 다음의 책을 참고하길 권한다. 김연화, 성한아, 임소연, 장하원,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서울: 에디토리얼, 2021); 다나 J. 해러웨이,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를­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민경숙 옮김(서울: 갈무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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