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장진택
장진택은 독립 기획자이자 현대 미술 연구자로 전시와 글을 생산한다. 기획 전시 플랫폼 INTERACTION SEOUL(2016-17)을 운영하였고,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팀장(2019-20)을 역임한 바 있으며, SeMA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연구자(2023)로 선정되었다. 주요 기획전으로 《풍경들》(우손갤러리, 2023), 《-NESS》(라흰갤러리, 2023), 《RE-SEARCH》(SNUE 샘미술관, 2020), 《MAKE A PINKY WISH!》(INTERACTION SEOUL, 2017), 《COSMOS PARTY: 우리는 우주로 간다》(인사미술공간, 2016), 《육종학적 다층 문화 지형도》(STUDIO 148, 2016), 《BLACK BOX FORMULA》(Royal College of Art, 2015), 《DELVE》(Acme Project Space, 2014) 등이 있다.
정시우
정시우는 서울 외곽에 위치했던 공간 교역소(2014–2016)를 공동 운영했으며 플랫폼엘, 부산비엔날레,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을 맡았고 《그리드 아일랜드》(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2)를 담당했다. 《폴리곤 플래시》(인사미술공간, 2018),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기획에 참여했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권혁규
주로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독립기획자로 《이브》(삼육빌딩, 2018), 《ABCDE》(페리지갤러리, 2017), 《러브스토리》(아마도예술공간, 2017)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9), 뉴욕 ISCP 큐레이터 레지던시(2016), 덴마크문화위원회 큐레이터리서치(2015)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 WESS의 공동 큐레이터(2019-2023)로 활동했으며, 2020년 문을 연 뮤지엄헤드의 책임 큐레이터(2020 - 현재)로 《나메》(2020), 《인저리 타임》(2021), 《모뉴멘탈》(2023)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이규식
이규식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교육과 학예연구사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으며,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 WESS의 공동 큐레이터(2021-)로 활동하고 있다. 《플레어》(WESS, 2023), 《피니치오니: 끝에게》(THEO, 2023), 《잠재감각》(배렴가옥, 2022), 《작은 불화》(탈영역우정국, 2020), 《뉴노멀》(오래된 집, 2020)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퀴어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전시를 통한 예술의 실천적인 전략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근래에는 변화하는 국내외 미술 환경 속에서 레지던시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23 난지액세스: 랠리>의 일환으로 열리는 본 대담은 이른바 ‘레지던시’라고 명명되는 공기관 산하 창작 스튜디오 지원 제도에 관한 논의를 위해 기획되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서로 다른 연을 맺은 네 명의 대담 참여자들은 예술가를 위한 창작 활동 공간의 지원을 위해 출범한 지 올해로 17주년을 맞은 본 기관의 역사를 지지체 삼아, 공적 제도의 범주가 그 형성의 기반을 크게 차지하는 한국 미술계의 주요한 부문으로서 레지던시를 두고 레지던시는 레지던시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 기획 및 모더레이터: 장진택(난지 17기 입주 연구자)

• 초청 패널: 정시우(큐레이터, 前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 권혁규(뮤지엄헤드 책임 큐레이터, 난지 13기 입주 연구자), 이규식(現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

• 일시 및 장소
2023. 7. 6.(목) 13:30-15:00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 프로그램 구성

  • 1부: 레지던시의 존립 근거(장진택 + 정시우)
  • 2부: 레지던시 형식의 제도적 유효성(장진택 + 정시우 + 권혁규)
  • 3부: 레지던시의 목표와 성과(장진택 + 정시우 + 권혁규 + 이규식)
  • 4부: 합동 토론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제공: 장진택.

(들어가며)

장진택: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2023 난지액세스: 랠리>에 참여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이하 난지 혹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연구자 장진택입니다. 본 대담은 <2023 난지액세스: 랠리>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라고 하는 기관에 대해 옆에 계신 패널분들과 함께 논의하려는 자리로서 마련되었습니다. 패널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계신 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셨던 정시우 선생님 계시고요. 뮤지엄헤드 책임 큐레이터시자 난지 13기 입주 연구자로 계셨던 권혁규 선생님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부임하셨고 저희가 레지던시 생활 잘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 주고 계시는 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로 계신 이규식 큐레이터님 계십니다.

레지던시가 당대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운영 차원에서의 실무적 논의 외 입주자와 운영자의 입장을 가로지르는 공통선 상에서 이를 논의한 사례는 사실 그만큼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17년, 즉 레지던시의 역사가 대략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당대의 시점에서 레지던시의 역사적 의미를 돌이켜 볼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프로그램의 1부에서는 정시우 선생님과 함께 레지던시의 존립 근거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2부에서는 레지던시 형식의 제도적 유효성에 관해 정시우, 권혁규 선생님 같이 이야기하고, 3부에서는 레지던시의 목표와 성과에 관해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선생님과 함께 논의하겠습니다. 마지막 4부에서는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합동 토론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1부. 레지던시의 존립 근거(장진택 + 정시우)

장진택: 우선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레지던시의 존립 근거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현재는 앞쪽의 Studio A와 그 뒤쪽에 Studio B, 그 두 건물을 주요하게 활용하고 있고, 또한 Studio A 옆에 전시동이 있습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건물의 전신인 난지 침출수 처리장은 2001년도에 설립되어 2006년까지 운영이 됐는데, 이 침출수라 하면 생활폐기물 매립지였던 난지 일대에서 발생하는 오•폐수를 말하고, 이를 처리하는 시설로서 난지 침출수 처리장을 운용했습니다. 근데 자연의 자정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침출수의 양이 줄어들면서 점차 유휴공간으로 전락한 이곳을 서울시 차원에서 문화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금 활용하고자 했고, 고민 끝에 당시 40세 이하의 청년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필요한 창작 공간으로 이곳을 지원해 보자고 해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출범하게 됐습니다. 이상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간략한 역사였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난지에 지금까지 몇 분의 디렉터가 부임하셨었죠?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촬영: BLB ENT.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정시우: 지금 계시는 이규식 학예연구사님, 저. 그리고 제 전에는 10년 정도 박순영 학예연구사님이 계셨고요. 그 이전에는 거의 1년에서 2년 정도 짧은 기간 계셨기 때문에 대략 네 분 정도 계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진택: 그 네 분의 학예연구사, 레지던시에 따라서 보통은 매니저라는 직함을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디렉터라는 직함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팀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서울시립미술관, 특히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특별하게 학예연구사라는 직제를 두고 있어요.

정시우: 네. 맞습니다.

장진택: 학예연구사라고 하는 직책으로 인해서 행해지는 특징적인 큐레이션의 범주나 구체적인 운용 프로그램에서 그 영향이 미치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요.

정시우: 네. 아무래도 학예연구사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불리는 직책이자 포지션이죠. 이들이 그 안에서 스스로 수행하는 역할은 이제 설정하기에 따라, 어떤 큐레이터십인가에 따라, 혹은 기관의 방향성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작가분들을 케어하고 매니지먼트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프로그램에 좀 더 집중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보면 열려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사실 전반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레지던시는 매니지먼트를 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장진택: 그래서 어떤 큐레이션 혹은 기획의 큰 틀, 특히나 운영 차원의 그런 체계 안에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는 작가들이 매해 선정되었겠죠. 저희가 이게 대략적으로 한 1년 정도 기간 안에, 구체적으로는 10개월 정도 되겠지만, 이 1년이라고 하는 연간 행사 안에서 수행하는 하나의 큰 부분이 전시 프로덕션이 있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 및 이벤트, 그리고 연구, 학술 파트라고 해서 출판의 형식으로 생산되는 부분이 또 있고, 운영 차원에 대한 부분도 있겠는데, 이중 전시 프로덕션과 프로그램, 이벤트 부분에 대해 1부에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전시 프로덕션 같은 경우에는 바로 오픈 스튜디오, 저희에게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있겠죠. 사실 이건 연구자인 저보다도 입주해 계신 작가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일 것 같고요. 그리고 난지 아트쇼라고 입주자들에 의해 기획되던 프로젝트식의 소규모 그룹전들이 있었고요. 코로나 이후에 뜸해지기는 했지만, 국제 교류전이 꽤 활발하게 이루어졌었고, 해외 입주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 보고전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특별 기획 주제전이라고 해서 레지던시가 10주년을 맞았을 때 계셨던 박순영 학예사님이 기획하신 《난지 10년》(2017,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아카이브 전. 또 정시우 큐레이터님이 기획하셨던 《그리드 아일랜드》(2022,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이 있습니다. 전시 프로덕션은 일전에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기획하셨을까요.

정시우: 전시 프로덕션 같은 경우는, 사실 지금 분류된 갈래들 중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전시 프로덕션에 포함할 수 있느냐는 내부적으로도 일부 이견이 있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픈 스튜디오가 지금은 형식적으로 전시의 형식을 띠어 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사실 오픈 스튜디오의 목적 자체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와 교류에 가깝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오픈 스튜디오를 교류 프로그램으로 분류하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전시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특히나 아마 입주해 계시는 작가분들은 이것이 되게 보여지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아마 하나의 전시로서 인식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있고요.

그리고 난지 아트쇼라든가 국제 교류전, 성과 보고전 같은 경우는 박순영 학예연구사님이 계실 때 활발하게 진행됐던 프로젝트들인데, 아무래도 미술 안에서 프로덕션이라고 하는 것이 레지던시 혹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프로덕션도 있겠지만 개별 작가분들이 진행하는 제작의 현장들, 그 제작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결국 전시라는 형식이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박순영 학예사님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난지 아트쇼 프로젝트를 연간 많게는 7회 정도까지 진행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 외에 국제 교류전 같은 경우는, 레지던시가 사실은 국제 교류전을 한다고 했을 때 조금 이상한 감도 좀 있습니다. 근데 예전 같은 경우는 다른 레지던시 혹은 교류 기관들이 레지던시를 경유해서 들어오는 경향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 교류전이 몇 차례 있었던 걸로 저는 파악을 하고 있고요.

성과 보고전 같은 경우는 현재는 진행을 하지 않고 있기는 한데요. 특히 해외 작가들에게 해당하는 성과 보고전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비자 문제로 3개월 정도만을 체류하게 되는데 그 기간에 대한 성과를 보고한다는 개념 자체가 사실 좀 팍팍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좀 과열되는 양상도 있었고. 그래서 이게 한국, 서울이라는 곳에 체류하면서 리서치라든가 프로덕션의 측면에 작가분들이 집중하기보다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는 데 집중을 하게 되다 보니까 이것을 조금 지양하자는 결정이 있어서 현재는 성과 보고전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외는 특별 기획전, 아카이브 전시 같은 경우는 레지던시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진행이 됐었고요. 《그리드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2022년에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 의제인 ‘제작’을 주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장진택: 이상의 차원 안에서는 프로그램의 진행이 작가들 혹은 레지던시 입주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건강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다른 경우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오히려 창작 활동 자체를 저해한다는가 혹은 좀 더 다른 쪽에 신경을 쏟게 하는 상황으로 동시에 귀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있어서, 운영 차원에서는 굉장히 고민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프로그램 기획의 섬세성이라고 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하는,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일으켜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에서 운영이 쉬울 수 없고, 또한 입주자 입장에서도 여기서 무엇을 창작하고 어떠한 것을 수행해야 과연 레지던시에서의 활동을 의미 있고 가치롭다고 평가할 수 있게 될까, 하는 차원에 대한 고민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미술 창작이라고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레지던시 활동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하나 주요하게 수행하는 하나의 프로그램 중에서 비평 워크숍이 있잖아요. 이 비평 워크숍 역시 작가분들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레지던시 차원 안에서 무언가 레지던시에서의 성과들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형태가 아닐지. 그것을 위해 전시의 형태가 있다면, 다른 하나는 이 텍스트라고 하는 차원이겠죠.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정시우: 지금은 레지던시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일을 할 당시에는 입체적으로 작가들을 지원한다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연다거나 비평 및 혹은 출판한다거나 혹은 해외 교류를 한다거나, 여러 가지 입체적으로 작가들을 지원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사실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많은 것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말씀하신 어떤 기획의 섬세성 같은 걸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사실 프로덕션의 측면, 정말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서 스튜디오가 존재한다면, (비평은) 그 뒤에 있는 작가에 집중하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전시 프로덕션은 작품에 집중한다면 연구, 학술이나 비평 같은 경우는 작가에 집중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저는 작가분들께 이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기는 해요.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 따라서 혹은 그 방향성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항상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마지막으로 했었던 연구, 학술은 단순하게 정말 비평문을 작성하고, 혹은 꼭 비평문일 필요는 없죠. 어떤 대화록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제 그런 결과들이 출판되는 것 자체에 집중했었는데, 관련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좀 다른 더 높은 뭔가를 요구받을 때는 좀 힘든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또 매칭이라는, 이것도 역시나 비평가와 매칭을 한다는 입장에 있어서는 재고해 봐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장진택: 결과적으로는 입주해 계신 창작자분들의 바람과 또 각자의 이해관계라고 하는 것이 상호 간에 너무나 상이하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 안에서 이를테면 비평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누군가 적극적으로 글을 받고 싶다, 비평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굳이 이런 걸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 말 그대로 레지던시에 소속되어 있는 작가들의 배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것에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인원들을 하나의 통합된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레지던시 운영에서의 큰 고민들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 토크를 준비하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공적 레지던시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엄밀하게 말해 이들이 공적 지원, 즉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로부터 레지던시 입주 예술가의 위상이 규명되는 어떤 형태, 다시 말해 레지던시가 어떠한 방식으로 기능할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일종의 공적 재원으로서의 입주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혹은 이들이 어떤 차원에서 생산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내도록 할 것인지, 그것이 시민 친화적인 차원에서도 있어야 할 거고, 작가 개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거고요. 등등의 차원에서 두 마리의 양가적 토끼들을 한 번에 잡아내야 하는 게 레지던시 운영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공모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 1부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레지던시 공모에 합격해 이미 입주하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도 그렇고 혹은 레지던시 공모에 지원했다 불합격하신 분들도 그렇고, 사실 본인이 왜, 어떻게 선정됐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왜 선정되지 않은 건지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레지던시의 미션이라는 건 “이번에 우리는 어떤 작가들을 뽑는다”고 할 때, 그 조건이 보편적 평등을 향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예술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을 선발하려 하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목표가 상충하면서 선정에 있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공평함이나 투명함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과들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하는 것이, 글쎄요. 재직하시면서 공모를 진행해 보셨으니까요. 어떤 부분들을 느끼셨는지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정시우: 말씀하신 것처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최소한으로 이 제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자면 결국은 서울시에서, 특히나 공모라는 방식을 통해 입주 예술가를 선정하는 상황에서는 보편성의 틀 안에서 공모를 진행하게 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여러 가지 제한사항, 학력이라든가 나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완전히 제하는 상태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을 하나의 룰로서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제…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은 (기관을) 나온 상태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그러한 방식에 사실 동의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공무원분들은 동의를 하시겠지만, (웃음) 왜냐하면 사실은 이게 보편적 방식으로 선정을 한다고 할 때,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보편적인 방식, 이것을 어떤 작업이 좋다 어떤 작업은 몇 점이다,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사실 존재하지 않잖아요. 결국은 보편성 안에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점수라는 것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되게 애매하죠. 나는 이 작가의 작업이 좋다는 부분을 체크하게 돼 있는데, 그것을 결국 점수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그런 상황인데… 공정성의 지향으로 인한 한 가지 문제점은 그런 것이 있고요. 두 번째는 그렇게 공정과 평등을 지향하다 보니 레지던시라든가 아니면 기관 혹은 기획의 어떤 색채 같은 것들이 전혀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평평하게 다양한 분들을 선정해야 하고, 특히나 난지 같은 경우는 19분이 들어오세요. 되게 많은 숫자인데, 평평한, 좋게 말하면 다양한 어떤 분들이 들어오게 됐을 때 사실 이 레지던시 혹은 기관의 색채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획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 19분의 취향 혹은 니즈 같은 것들을 고려하다 보면 무색무취의 무언가를 만들 수밖에 없거나, 혹은 틀을 만들어서 그 안에 콘텐츠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밖에 작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쨌든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기획자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예전의 난지 아트쇼와 같은 전시라는 콘텐츠, 아니면 오늘 저희가 모인 이런 난지액세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밖에 없고요. 그런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죠. 아무래도 난지, 특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1년 동안 진행되는 하나의 롱텀 전시라고,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일을 해왔었는데 어떠한 (기획적) 색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많이 아쉽습니다.

장진택: 말씀드렸던 것처럼, 선정과 공모라고 하는 데에 있어 사실 누가 어떻게 다 백 프로 만족할 수 있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오히려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방증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저는 이런 논의 자체가 사실은 너무 터부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자체가 난지든 다른 레지던시든, 아니면 저희가 2부에서 이야기할 어떤 제도 차원에서의 레지던시에 대한 것이 됐든, 혹은 한동안 미술계에서 문제 아닌 문젯거리로 이슈가 됐던, 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는 것이 곧 하나의 커리어로 치환된다고 하는 등의 이러한 지점들을 우리가 정확히 파악한 상태에서 과연 어떤 선정을 통해 한국 미술계를 이 난지 레지던시라는 기관이 지원할 수 있는지, 혹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용어를 좀 빌리자면 “양성”할 수 있는지, 그러한 차원들 안에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면서 1부를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2부. 레지던시 형식의 제도적 유효성(장진택 + 정시우 + 권혁규)

장진택: 2부에서는 권혁규 큐레이터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다. 이 레지던시 형식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 미술사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큰 역할을, 이를테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경우) 17년 정도의 기간 동안 해왔다고 볼 수가 있겠죠. 그러한 차원에서 이 레지던시 형식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의 경우 대부분 그것이 공적 지원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 사적 지원의 형태들로 행해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권혁규 큐레이터님 같은 경우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도 계셨었지만 또 해외에 있는 레지던시에의 입주 경험도 있으셔서, 제도로서의 레지던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2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권혁규: 네, 저는 2019년도 난지의 입주 연구자로 있었는데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떤 제도로서의 레지던시를 인지하면서 입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그 당시에 공간이 필요했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입주했었고, 근데 이제 이 토크를 계기로 이런저런 경험을 복기해 보기도 하고, 또 그때 당시에 어떤 그 과정을 거쳐 레지던시에 입주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제가 경험했던 해외 레지던시와 국내 레지던시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해외 레지던시와 국내 레지던시를 이분화해서 해외는 저렇고 국내는 저렇고,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국내 레지던시 같은 경우에는 아까 장진택 큐레이터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주로 관이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어떤 공적인 취지를 두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고요. 해외 레지던시 같은 경우는 좀 더 민간 단체나 혹은 일종의 파운데이션 맥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해외 레지던시 같은 경우는 지원 절차도 그렇고 선정 절차도 그렇고, 아까 정시우 전 학예연구사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보편적 지원의 맥락이 아니라 조금 더 개별적인 특수성을 많이 취할 수 있는, 물론 여기서 해외 레지던시가 개별적 특수성을 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항상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해외의 경우는 그렇고, 국내는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좀 더 어떠한 공적 제도로서 레지던시가 운영되고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제공: 장진택.

장진택: 네, 저희가 기관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여러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모르겠어요. 근데 이러한 것이 저는 마냥 나쁘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건강하다고 하기도 뭐한 게, 결국은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사실은 들고요.

저희도 어찌 보면 그런 시스템을 통해 선발된 인원들이기는 하지만, 이 심사 제도라는 것을 두고 참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거죠. 이런 경험들도 있어요. 제가 보기엔 너무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는데, 공적 심사나 혹은 공적 지원의 시스템 안으로는 진입 못하는 그런 형태의 작업도 있는 거죠. 결국은 그러한 작업들도 해당 심사위원이든 혹은 그들 심사위원을 선발하는 시스템의 경향성을 따라서 선발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한계점을 갖고 있을 텐데, 그러한 차원 안에서 저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분명 어떤 역할들을 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그 안에서 우리가 지나친 책임감이나 혹은 책무감을 가져야 한다기보다는, 그렇다면 결국 다시 그 프로그램의 차원으로 혹은 이 전시의 차원으로 돌아가서 어떠한 활동들을 해야 그것이 레지던시가 요구하는, 또는 레지던시를 지원하는 이 국가와 시 차원의 기금 혹은 세금, 이러한 것들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자문하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거든요. 물론 저희가 권혁규 큐레이터님이 말씀하신 것 같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이 레지던시에 입주하는 건 아니지만요. 이렇게 공적 지원을 받는다는 것에 있어 입주 후의 활동을 두고서는 어떤 특징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촬영: BLB ENT.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권혁규: 거듭 말씀드리면, 저의 레지던시 경험이 지금 여기 세 분의 기획자분들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저에게 레지던시는 연구의 대상이나 어떤 고민의 대상이라기보다 조금 더 이용자의 입장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갖고 있는, 한편으로는 미시적인 경험을 확장해 본다면, 일단 레지던시로서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저는 앞서 정시우 전 학예연구사께서 말씀하신 어떤 몇몇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지던시를 레지던시로 존재하게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요.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다른 레지던시와 달리 난지 같은 경우 입주 연구자의 슬롯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이 저한테는 되게 유효하게, 중요하게 느껴졌었고, 그래서 지원하게 됐었고요. 근데 항상 기획자로서, 여기 지금 다른 작가분들도 계시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고요. 이건 기획자뿐만 아니라 어떤 동시대 창작자로서 물리적인 작업의 공간이 얼마나 유효하냐는 질문을 여전히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는데 저한테는 여전히 그 물리적인 공간이, 물론 저의 경험입니다만, 물리적인 공 간이 꽤 중요하게 그 1년 동안 당시 저의 활동이나 창작을 생각한다면 꽤 많은 지지를 해준 것 같았고요. 그래서 (레지던시라는) 물리적 공간이 저에게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언급됐었던 비평 프로그램이라든가 오픈 스튜디오라든가 혹은 일종의, 이 난지액세스도 그렇고,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 당시에 제가 이렇게 엄청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네트워킹하고 이런 시기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 경험으로 보면 그때는 조금 더 다음 전시를 준비하거나, 정말 읽고 쓰고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레지던시 환경 안에서 일어나고, 공유되고, 어떤 의견이 교차되기도 하면서 분명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네트워킹이나 혹은 발표나 이런 것들이 귀찮을 수도 있고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레지던시 안에서 그런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분명히 유효하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이렇게 또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픈 스튜디오도 마찬가지고요. 이와 관련해서 오늘의 토크 주제이기도 한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고민을 해본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2019년도에 제가 얘기한 레지던시를 레지던시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뭐 좀 나쁘게 얘기하면 패턴화된 규칙처럼 한국 레지던시의 프로그램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분명히 그런 것이 다 무효하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이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이 각각의 레지던시들의 특징 안에서 이를 개발하고 갱신하고 수정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또 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서 아까 언급하신 것처럼 거의 모든 레지던시가 어떤 보편 지원의 정책안에서 그 레지던시의 특수성을 내세울 수 없는 제도적인, 행정적인 여러 문제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레지던시들, 제가 보기에는 국내에 있는 레지던시들의 지리적인 그리고 프로그램상의 특징들을 가지고 그 특징을 피상적으로나마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레지던시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골자로 해서, 그 안에서 어떠한 특성을 구현한다거나 개발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2019년도에 정시우 전 학예연구사께서 진행했던 난지액세스도 그렇고 오픈 스튜디오를 일종의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방식도 그렇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는 조금 귀찮기도 하고 왜 이걸 온라인으로 굳이 다 송출해서… 지금도 이게 온라인으로 나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상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이 메아리를 전달해야 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안 됐는데, 한편으로는 마치 어떤 미래를 먼저 경험한 것처럼 그 이후에 코로나19가 터졌고, 거의 모든 국내 미술 전시를 비롯해서 프로그램들이 다 이제 온라인으로 대체가 되었고. 근데 물론 코로나19와 별개로 레지던시의 어떠한 여러 물리적인 형태라든가 혹은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분명히 재고되어야 하는 시점에 점점 다다르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진택: 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금 돌아오면서도 난지에 대한 범주를 거기에 같이 더해 고민 해 본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어떤 특정 시점을 지나면서 사회에 있는 많은 것들이 다 재고됐지만, 그중에서도 결국은 전시의 유효성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또한 권혁규 큐레이터님이 잠시 언급해 주셨지만, 과연 물적인 공간을 지원하는 것만이 레지던시의 가장 큰 목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것들이 떠오르게 됐단 말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이 레지던시의 형태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제도화를 더 강화하거나 혹은 회피하는지에 대해 논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시우: 일단 저의 경험 안에서 기본적으로 레지던시의 어떤, 특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운영 방침 같은 것들을 되짚어 보면,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스튜디오 공간을 지원한다는 기조였고요. 그 이후에는 사실 뭐 이게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1년이라는 기간은 충분하지 않고, 그러나 보편적 지원을 따르자면 입주 기간을 더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1년의 기간은 고정되나 입체적인 지원을 하자는 부분으로 인해 쇼잉을 하는,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러한 전시 형태로 진화했었고 그 이후에는 전시되는 작품을 넘어서 그것을 제작하는 작가의 능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서 멘토링이라든가 인큐베이팅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었는데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코로나19 시기를 전후해서 저희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물리적 신체를 가진 전시에 대해서 재고한 것처럼, 물리적 신체를 가진 레지던시 전제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었던 지점인 것 같아요.

장진택: 큰 틀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큰 기획들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정시우: 네,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작아져야 할 필요, 그 작아짐을 따르면서 특성화할 필요성, 그리고 말씀하신 실질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봤을 때 사실 난지는 서울의 끝자락에 있긴 하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레지던시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관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들이 어떤 것을 더 선호하고, 어떤 매체를 활용하고, 대체로 어떤 정도의 사이즈로 창작을 하느냐, 이러한 것들이 이제 다시… 한 20여 년 전에 했던 방식과는 좀 달라진 상황이니까요. 그런 걸 다시 한번 고민해서 가능하다면 리뉴얼이 되면 좋겠죠.

장진택: 전시와 프로덕션이라고 하는 차원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우리가 시각 예술의 영역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더라도, 이 오픈 스튜디오의 영향력이라는 건 사실 엄청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한편으로 레지던시라고 하는, 꼭 특정하게 난지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레지던시 입주자들을 좀 특권화하거나, 혹은 그러한 부분들을 통해서 제도화에 일조한다고 보는데. 근데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상황들을 인정했을 때 과연 레지던시는 어떠한 방향성들을 설정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결국 레지던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당사자들 간의 소통이라고 보고, 특히나 운영진하고 입주자들 사이의 네트워킹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근데 그것들이 결국은 단순 프로그램 차원에서 이야기라기보다는 결국 레지던시 존립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부분과 맞닥뜨려지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권혁규: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고요. 지금 네트워킹도 그렇고, 앞서 언급됐던 레지던시의 1년 동안 진행되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잖아요. 이 프로그램도 그렇고, 네트워킹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창작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전시를 하거나 혹은 어떤 일대일 비평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맞는 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우리가 최근 한 3•4년 동안, 전시를 예로 들자면 그 전시라는 일종의 매체를 재고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때에 그런 것이 엄청 가속화됐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코로나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온라인 전시라든가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과연 이 온라인 전시들이 진짜 (물리적인) 전시를 재고하고 돌파하고 갱신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전시를 단순히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이 그 전시의 매체를 재고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제가 코로나 시기에 봤던 대부분의 온라인 전시들이 너무나도 전형적인 전통적인 전시의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그 공간이라든가 관객이라든가 작품이라든가, 심지어 그 전시장 안에서의 경험까지도 온라인으로 어설프게 복제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죠. 제가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그런 식의 재고는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저는 레지던시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까 전 언급했던 레지던시의 주요 프로그램들이 있는데요. 그걸 단순히 다른 형식으로 옮긴다거나 혹은 다른 어떠한 공간으로 옮기는 것은 기존에 있던 그 프로그램의 어떠한 혹은 진행 방식만 바꾸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시간적, 장소적으로 이것이 더 특수한 맥락 안에서, 어떠한 당사자성까지 같이 포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조금 막연하게나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제공: 장진택.

장진택: 이건 조금 구체화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혹은 다수의 작가님들께는 사실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난지의 구성 중에서 또 하나 특이한 것이 바로 입주 작가와 국외 입주 작가에 더해 입주 연구자를 받는다는 부분이잖아요. 입주 연구자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표상하는 상징성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어 보여요. 그리고 그 기관의 수가, 물론 기획자를 직업 삼아 일하는 사람의 수가 작가군보다 훨씬 더 적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난지 혹은 인천아트플랫폼 정도가 있고… MMCA 창동레지던시 같은 경우는 또 국외 연구자들을 뽑는 경우고요. 그렇다고 했을 때 이제 서울시에서 유일한 어떤 하나의 레지던시로서 연구자들을 포섭하는, 인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혹은 뭔가 공인된 형태의 연구자 슬롯이 있다는 것이 좀 특징적인데, 이건 어떤 비판이나 옹호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있음을 말하는 거고요.

그렇다고 할 때 특히나 난지 초창기 기획으로 입주 연구자가 입주 작가와 함께 만들었던 전시 형태가 특징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그 기획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입주 연구자를 대하는 관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그러한 형태와,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러한 형태의 의무적 관계라 할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정시우: 답하기 힘든 질문인데요. (웃음) 기획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의무적 릴레이션십은 좀 지양하는 편이었고요. 근데 그런 건 있습니다. 저희가 연구자 슬롯이 있었을 때 그분들에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성과 보고의 형태를 갖는다고 했을 때, 예전에는 항상 성과 보고라는 것이 따라왔었죠. 전시 형태든 오픈 스튜디오 형태든.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성과 보고를 할 수 있는 형태는 그 기간 동안 저작하신 글이나 아니면 레퍼런스라든가 이런 것을 보여주는 방식인데, 사실 그런 면으로만 봤을 때는 (입주 연구자가)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죠. 무언가 시각화하는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은 아니잖아요, 물론 시각화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그래서 기획 차원에서 진행됐었던 것이, 연구자분들이 난지 아트쇼 기획을 하는 (그러한) 일종의 방향으로 틀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난지 아트쇼 같은 경우는 이제 약간 강제되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기획자들은 대체로 기획을 하시고 작가분들은 참여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됐었습니다.

장진택: ‘강제’보다는 ‘의무’라고 해야 할까요.

정시우: 감사합니다. (웃음) 의무적으로 진행을 했었던 부분이 있어서 어떠한 생산을 한다, 제작한다는 측면으로 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레지던시라는 곳이 제작이나 창작을 지원하지만, 그것의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 하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보니까. 근데 이렇게 전시를 무조건 해야 한다, 의무적으로 참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는 결국은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 이 1년을 소비하게 되는 사이클이 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요.

장진택: 레지던시의 차원에서는 금천예술공장 같은 경우가 있잖아요. 친척 관계 같은. 서울시의 지원을 같이 받고 있기 때문에. 이 금천 레지던시의 경우에는 어찌 됐든 간에 소규모 프로젝트들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단 말이죠. 근데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특히나 레지던시 차원 안에서는 굉장히 콘텐츠가, 그 성과의 콘텐츠가 많아지는 효과라는 것도 분명히 있거든요.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면 입주해 계신 작가님들께서는 우리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어떤 프로듀서인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결과적으로 서울시나 아니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성과로서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공적 차원 안에서 당연히, 혹은 제도 안에서 당연히 또는 그 제도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혹은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마련되는 어떤 자료들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 안에서 저는 사실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보거든요.

권혁규: 제가 입주한 시기에는 그 프로그램 자체가 약간 바뀌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전의 연구자들은 입주 작가분들과 난지 아트쇼를 진행해야 하는 게 거의 의무처럼 되어 있는 상태였고… 저 때부터 그게 없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앞서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하고, 근데 또 생각해봐야 할 것은 레지던시의 어떠한 지원이나 운영의 타임 테이블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레지던시가 12개월 주기로 돌아가고 있고, 그래서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어떤 면에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공유의 장이 될 수도 있고요. 서로 고민하고 또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건 그런 것들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전달이 되느냐, 또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작가분들에게도 다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레지던시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러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겠구나, 하는 게 인지가 된 상태에서 지원한다면 그 안에서 난지 아트쇼가 됐든 일종의 소논문이 됐든 의무 사항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빠르게, 혹은 입주 상태에서 나름의 계획들이 다 있는데 그 안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이 갑자기 생기고 없어지고 이런 것들이… 많은 작가들이 혼란스럽고 조금 어려워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공고 단계에서부터 어느 정도 프로그램의 명징함을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이게 단순히, 저는 한 번도 내가 서울시의 공인 인증된 연구자,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1년 내내. 물론 이게 서울시에서 지원하지만 저는 전혀 뭐…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요.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 (웃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당시 제 개인의 공부라든가 관심 있었던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고 과정에서 혹은 심사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투명하게 정립되고 밝혀진다면 당연히 지원 과정에서 이런 거 하겠구나 하면서 지원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진택: 논의하면서 느껴지는 부분들은 이게 결국 사실 처음에는 제도화된 예술로서의 레지던시를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좀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는 이 예술이라고 하는 장의 형성이나 혹은 그 범주의 작동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공적 지원을 통해 제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특징이자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이나 혹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음에 대한 부분들은 서로가 입장이 분명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 역시도 제가 서울시 공인 인증 받은 연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3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3부. 레지던시의 목표와 성과(장진택 + 정시우 + 권혁규 + 이규식)

장진택: 프로그램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더 나눠봤으면 좋겠는데요. 2019년도에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는 ZER01NE이라는 기관에서 선발된 크리에이터들을 맡아 (그들의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팀장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가 저에게는 레지던시 혹은 작가 지원이나 양성이라고 하는 차원이 어떠한 태도를 바탕해서 기획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느낀 하나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저희가 입주할 때쯤이 여러모로 서울시립미술관 조직이 개편되는 상황이었고, 이규식 학예사님이 새로 들어오는 상황이기도 했는데요.

이규식 학예사님이 오시는 걸 몰랐을 때 다들 누가 기획을 맡게 될지를 궁금해했어요. 당연히 1년 내내 운영되어야 할 혹은 저희가 수행해야 할 프로그램들 같은 것들을 마련해 주실 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 해를 함께 지내야 하기도 하는 등등의 이유들 때문에 기대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 관계를 잘못 설정하면 레지던시에서의 1년이 굉장히 힘들어질 거고, 앞서 저희가 이야기한 다양한 차원에서 프로그램들에 대한 성과라는 것 자체를 논의하기도 전에 모든 것들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 같은 것들을 품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규식 학예사님이 지금 운영을 잘해 주고 계셔서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느끼면서, 여쭙고 싶어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이 레지던시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촬영: BLB ENT.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이규식: 면접을 다시 보는 것 같은데요. (웃음) 사적인 얘기인데 저는 미술을 처음 시작하면서, 저도 레지던시 참여자로서 처음으로 좀 진지하게 미술계에 진입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되게 좋은 기억들이 많았고, 제가 밖에서 기대하고 상상하고 계획했던 것과 실제로 들어와서 제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부분들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어떻다고 지금 말씀드리기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고.

앞에,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되게 비슷한,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일단 저희는 레지던시의 입주 작가분들이 한 20명 가까이 되고 그러다 보니, 진행이나 기획하는 것들이 좀 큰 틀에서 프레임을 만들어서 그 안에 콘텐츠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기획하는, 그런 식으로 밖에는 참여를 많이 끌어낼 수 없다는 한계가 느껴져서. 사실은 방금 권혁규 큐레이터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를테면 내년도에 연간 이러한 것들을 하겠다고 공표하고 입주자들을 받기에도, 이게 엄청 보편적인 그러한 플랫한 프로그램 말고는 할 수가 없는 한계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1년이라는 그 기간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랄까… 그리고 의무? 이게 공적 자원으로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고 공간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계속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이걸 작가분들한테 눈에 보이는 성과로서, 입주 연구자분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이걸 요구해서 끌어내는 게 맞을까? 의미 있는 결과물이 생성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런 제한적인 기간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과 맞물려서 계속해서 고민이 되는 지점이고.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렇게 제너럴 하게 프로그램 운영을 한다면, 만약에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면, 또 후속 지원의 형태로서 역대 입주 작가분들의 풀을 또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쪽에서 기획을 좀 뾰족하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질문과 너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네. (웃음)

장진택: 이 주제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데, 결국은 우리가 레지던시 입주자로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실천할 수 있느냐 그 조직 안에서. 결국 레지던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면 그것이 혹시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도 사실 좀 궁금하거든요. 이건 세 분께 다 드리는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규식: 저는 현업에 있으면서 계속 고민이 되는 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오롯이, 그러니까 해외에 우리와 교류하고 있는 기관들을 보면 정말 레지던시만을 위한 그런 파운데이션, 기관들이 되게 많아요. 근데 저희는 어쨌든 큰,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엄브렐라 안에 있는 레지던시 기관이고, (그 안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그런 특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가장 주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그런 레지던시만 있는 곳과 다르고 그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최대한 입주 작가분들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 인력들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그런 목표가 있고요. 그럼으로써 또 후속 지원의 형태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그러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건 연구자들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장진택: 후속 지원에 대한 부분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한데, 이 질문 먼저 드리고 나서 다른 두 분으로 이어 갈게요. 지금 단기적으로 보면 결국 해외 레지던시와의 교류인 것 같아요. 사실 그 형태가 가장 많은 것 같고. 또 저희가 사전에 많이 만나면서 많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현재 난지에는 없는 공용 창작 공간에 대한 것이었어요. 물론 야외 작업장과 전시실 두 동이 있고요. 그래서 그곳에서 대형 창작 같은 부분들을 진행할 수 있도록 협조를 해주시는데, 그러면 이 후속 지원의 형태들이 그런 공용 공간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용이라든지, 그러니까 말 그대로 해외 교류나 이런 부분들에 국한되는 형태가 아니라. 혹은 전시나 프로덕션의 형태라든지, 이러한 영역들 안에서 어떤 식으로 지원이 될 수 있을지 의견이 있으시면 그것도 같이 얘기를 해봐도 좋을 거 같거든요.

이규식: 말씀하신 것처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안에서 직접적으로 지원해 드리는 후속 지원의 형태는 저희와 협약을 맺은 해외 레지던시와의 일대일 교환 프로그램이 있을 거고. 말씀하신 공용 작업 공간을 이전 입주자분들이랑 같이 공유하는 부분에 대해서 사실 고려해 본 적은 없는데, 당연히 우선순위는 현재 입주해 계신 분들일 거고, 만약 비어 있는 기간이 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지원이 충분히 가능할 거로 생각을 하고요.

전시나 프로덕션 부분에 대해서 사실 어떠한 오픈 콜이나, 뚜렷하게 무언가를 딱 만들어서 지원받거나 하는 게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계속해서 더 접점을 만들고, 그러니까 이를테면 내년에 있을 전시라든지 내후년에 있을 어떠한 프로젝트에 난지에 입주해 계셨던 분이 접점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면, 그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그것도 일종의 느슨한 후속 지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장진택: 지금 당장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좀 열어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저는 이야기를 드렸던 거고, 그러면 권혁규 큐레이터님은 혹시 이 레지던시의 성과에 대해서 어떠한 방식의 정리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권혁규: 말씀드렸던 것처럼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투명해지고, 어떠한 계획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들어보니까 그 안에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어떠한 성과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것도 좀 조심스러운데. 국내 기관의 성과주의와 결과주의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정량적인 성과 혹은 결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견이고요.

그래서 비평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오픈 스튜디오도 마찬가지고, 다 여러 작가분들에게 또 입주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근데 문제는 여기서 어쩔 수 없이 작동하는 그 성과와 결과에 대한 어떤 데이터, 수치화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무리하게 비평집이나 결과 보고집을 만들고, 그 엄청난 볼륨과 무게를 매년 출력해 내고. 오픈 스튜디오를 위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냥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레지던시의 성과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정말 이렇게 평평한 것인지. 이렇게 그냥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일단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연결을 해보자면 레지던시마다의 어떤 특수한 성과와 결과 설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렇게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같은 운동장에서 경쟁하듯이 성과와 결과에 막 이렇게 내달리고 있는, 제가 뭐 내부적으로 모든 걸 다 알고 있진 못하지만, 이 레지던시에서 나름의 어떤 유효함과 특수함을 가져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촬영: BLB ENT.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장진택: 저 역시도 레지던시 생활 경험이 많지는 않아서 제가 무엇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하면서도, 혹은 조금 거리를 두고 아무래도 좀 볼 수 있는 입장이다 보니까, 여기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최근이었어요.

“릴레이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해서 내부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제가 제로원(ZER01NE)에 있을 때도 그렇고 혹은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당연히 이런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 해줘야 하겠지. 혹은 제가 그 당사자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다른 차원에서 생각했었는데. 이걸 실제로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라든가 상호 간의 이해라든가 그것으로부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겠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얻게 되는 효과라는 게 정말 있더라고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난지 부분으로 접속할 때 “지원과 양성” 항목을 통해서 들어가거든요. 이해가 조금 되더라고요. 어떠한 차원에서 이러한 단어를 쓰고 있구나. 근데 그게 단순하게 목표만 세운다고 되는 건 아니고 결국은 그런 목표들이 어떠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그러한 목표들이 실현될 수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고. 이러한 프로그램들로부터의 성과라는 것을 기록하기 어렵다는 생각들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것이 굉장히 사소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작가들의 역량이라든가 그 가능성이라든가 혹은 실제 성장 정도를 수치화하고 수량화해서 파악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성과를 정리하는 방식도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권혁규: 간단한 질문이 있는데요. 현재 레지던시의 성과와 결과는 어떻게 측정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장진택: 같이 얘기를 조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시우 학예사님께서.

정시우: 제가 지금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웃음) 기본적으로 성과를 공유하는 오픈 스튜디오가 있고. (거기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오셨는가, 뭐 이런 거죠. 기본적으로 정량적 평가를 했을 때는 그런 것들이고, 아무래도 정량적 평가에 기대고 있는 것 같고요.

그 외에는 이제 내부적으로, 이제 운영자 입장에서 조금 불편한 지점이 그러한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입주자분들을 우리가 시민 혹은 고객으로 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동등한 어떤 하나의 동료로서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는데. 공무원 입장에서는 시민, 고객이십니다 하다 보니까 이제 이분들이 불편하지 않으면서 이분들의 니즈를 충족했는가가 저희들의 하나의 지표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설문조사 같은 것들을 하게 되면 “어떠한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의견이 되게 많은 상황이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두 가지 지표, 관람객 수 그리고 입주자들의 어떤 리액션 같은 것들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장진택: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보면 전시가 성과를 기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정시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웃음) 결국은 이제 레지던시라는 곳이 쇼잉하기 위한 곳이냐.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1년 정도 되게 자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어떤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지만, 사실 그것이 퍼블리싱되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죠. 하나는 오픈 스튜디오, 하나는 자료집. 그러니까 그것에 과도한 무게감을 투입하게 되는, 물량을 투입하게 되는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요. 사실 그런 건 있어요. 오늘날에 있어서 레지던시가 그렇게 퍼블릭에게 선망받는 관심 있는 곳이냐 했을 땐 또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 관람객 지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들어가는 것은 있죠. 그래서 점점 더 입주자분들의 니즈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까 계속 저희가 서포트하는 입장이 되고. 근데 그렇게 되다 보니까 또 발생하는 문제는 저희가 이제 공립 기관이잖아요. 이제 서울시 기관이다 보니까. 예를 들면 우리가 그냥 일반적인 갤러리고 갤러리의 소속 작가라고 한다면 계속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근데 공적 지원이라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고요. 보편적으로 모든 분에게 평등하게 지원을 해야 하다 보니까. 그리고 또 결과물이라고 했을 때, 갤러리에서는 그것이 판매로 이어지는 하나의 서클이 있을 텐데, 저희는 이제 그렇지 못하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이분들을 어디까지 우리가 서포트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떠한 반쪽짜리, 그러다 보니까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진택: 조금 더 희망적인 얘기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이규식 학예사님께 마이크를 넘겨야 하겠죠. 혹시 그러면 장기적인 지원 혹은 장기적인 계획, 한 해의 프로그램이 애초에 공모 단계부터 명징하게 제시되는 형태, 이러한 것들이 실행되려면… 물론 시스템에서 그런 것들을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구조를 이길 수 있는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들은 없으니까요. 다만 이러한 것들이 만약 정말 필요한 형태라면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요?

이규식: 일단 프로그램을 미리 설계해서 (모집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공립 기관에서 지향하는 방향에 맞춰서 들어가는 게 사실 상상이 되진 않거든요. 그렇게 해버리는 것 자체가 그 보편을 깨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프로그램에 맞는 사람들을 뽑겠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기획이 좀 날카로워지기 위해서는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인원이 적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정량적 지표 중에 몇 명이 지원했는지의 부분도 저는 문서에서 봤거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시스템상에서는 되게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후속 지원이라고 생각을 했을 때, 그러니까 그런 부분 때문에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어떠한 프로그램, 타이틀 하에 지원하는 형태가 다시 또 돌아갔을 때 보편 지원…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어서. 좀 나이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속해서 저희가 거쳐 가셨던 작가분들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또 어떻게 다른 프로그램에 맞춰서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장진택: 어려운 질문에 현답을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제 합동 토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4부. 합동 토론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촬영: BLB ENT.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장진택: 대부분의 이야기가 얼추 되어서, 저희가 조금 더 토론할 지점이 있는 부분들을 좀 건드려 볼게요. 바로 이 커리어화에 대한 부분인데요. 레지던시에 대한 지원율은 업다운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전에 비해 확실히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게 보통의 판단인 것 같아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시우: 근거 자료를 토대로 말씀을 드리면요. 제가 한 네 차례 공모 진행을 했었기 때문에 그 지원율 추이를 볼 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대략 한 400명대였습니다, 2020년 지원자 수를 봤을 때. 그리고 나서는 한 450명, 그다음에 500명이 지원했는데 올해는 좀 떨어진 편이었어요. 한 400명대로 되는데, 근데 다른 전반적인 레지던시들의 지원율을 봤을 때는 조금씩 오르는 상황이고, 사실 이제 큰 틀에서 봤을 때는 비슷합니다. 100명에서 왔다 갔다 하긴 하는데 그게 과도하게 과열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도하게 냉각되지도 않은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고 저는 봐요.

20년 가까이 레지던시라는 제도가 운용되면서 어떠한 하나의 커리어로서 볼 수 있는 공고한 위치를 점했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조금 씁쓸한 부분은 그런 것이죠. 레지던시가 만들어진 이유와 그다음에 어떤 커리어, 서티피케이션(인증)의 문제로 가냐. 이건 조금 별개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운영자 입장에서는 이것에 어떤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작을 지원할 거야 하기도 사실 지원하시는 분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밝힌다고 해도 본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그것을 패싱하시기도 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는 좀 더 커리어 적으로 (레지던시가) 작동하지 않는가 하고 느끼는 편입니다.

장진택: 그러면 결국 제도로서의 레지던시가 굉장히 유효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데. 권혁규 큐레이터님 혹시 동의하시나요?

권혁규: 동의와 비동의를 떠나서 이것도 한번 같이 얘기해 볼 수 있는 게, 레지던시가 커리어로 정말 그렇게 기능하는지 일단 저는 의문이고요. 여기서 물론 수치로 이렇게 말씀을 해주시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공무원 시험 같은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원자 수가 많다고 그 레지던시를 향한 어떠한 욕구나 열망이 높아졌다고 볼 수는,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게 어떤 경력으로서 그리고 지원 제도로서 작동하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주목할 만한 경력으로 볼 수도 있겠죠. 근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만약 그것이 어떤 시점에서 경력이 되었고, 누군가에게 사용하고 싶고, 그 입주자가 되고 싶은 공간이었다면 그 열망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앞서 저희가 얘기 나눴던 레지던시의 지향점과도 연결 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예를 들어 어떠한 물리적 장소로서의 레지던시에 대한, 저는 지금 그 엄청난 질문에 봉착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레지던시 안에서 진행되는 전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시라고 하는 것의 위상이 과거 5년 혹은 과거 10년과 지금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전시한다는 것이 경력이었고 중요한 실천이었고 이벤트였다면, 지금은 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작가분들이 이미 체감하고 계실 거로 생각을 하고요. 예전에는 레지던시에서 전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경력이었다면, 지금 누군가에게는 되게 귀찮은 일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창작 행위일 수도 있고.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게 경력이다 아니다 보다 여전히 레지던시를 필요로 하고 레지던시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열망의 장소가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또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프로그램 -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배움동,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2023. 7. 6. 토론자: 장진택, 정시우, 권혁규, 이규식. 제공: 장진택.

장진택: 결국은 레지던시가 그 당대에 해석될 수 있는 여지라고 하는 것들이 다 다른 상황이고. 특히나 코로나19 상황과 맞닥뜨려지면서 그런 것들을 더 직접적으로 빠르게 고민하게 된 것 같기는 해요. 다만 이게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난 다음, 지금의 상황 안에서 느끼는 레지던시의 범주나 작동 혹은 그 무게감이나 부담감, 이런 것들은 사실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던시에 들어온다는 것은 결국은 굉장히 큰… 뭐랄까요, 축복이라면 축복이겠고요. 보통 레지던시 됐다고 하면 축하해 주니까 좋은 일이겠죠. 그렇다고 했을 때 그 보편성과 특화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지원’과 ‘양성’이라고 하는 차원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두 가지 양날의 부분 속에서 레지던시는 어떤 균형을 가져야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 당연히 답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 질문을 드린 건 아니고. 다만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나 예술계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과연 블라인드 심사가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부분들도 사실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리고 블라인드 심사라고 하는 것이 과연 공정성을 정말로 담보하는 일인가라는 질문도 사실 한단 말이죠. 결국은 이제 공적 지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표상하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과연 레지던시 혹은 레지던시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할까? 혹은 그러한 태도들을 갖추기 위해서 어떠한 기획을 실현 혹은 실천해야 할까? 뭐 이러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시우: 기관이면 기관 혹은 담당자분이 좀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아요. 특히나 기관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를 명확하게 해주고, 다음에 일종의 지원자 수라든가 다양한 부분에서 페널티를 받더라도 그런 것을 밀고 나가는, 하나의 총대를 메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요. 좀 어려운 얘기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특성화와 결과주의, 그러한 부분들이 좀 해소되지 않을까 싶고요.

장진택: 저도 맺는말을 한마디 하자면, 레지던시 자체에서 당사자성을 가지고 레지던시를 고민하고, 그것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한 적이 잘 없기 때문에 난지 엑세스가 그러기에 적합한 자리라고 생각해서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감히 던져봤었는데. 여기에 하나의 단어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지던시는 무엇을, 누구와 고민해야 하는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저희 레지던시 내부에서도 그렇고 혹은 그 이후 어떤 다양한 형식들을 통해서도 그렇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기회가 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자리를 가름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들어주신 시청자분들과 여기 앞에 계신 작가님들 감사드리고요. 또한 어렵다면 어려운 이 행사에 기꺼이 참여해 주신 세 분의 패널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전경.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본 글은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연구자 장진택 큐레이터가 기획한 프로그램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의 기록을 편집한 녹취록으로, 본 대담은 <2023 난지액세스: 랠리>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녹취록 작성: 강수빈
편집: 장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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