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웹의 경험, 그리고 보편적 접근성

정시우
정시우는 서울 외곽에 위치했던 공간 교역소(2014–2016)를 공동 운영했으며 플랫폼엘, 부산비엔날레,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을 맡았고 《그리드 아일랜드》(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022)를 담당했다. 《폴리곤 플래시》(인사미술공간, 2018),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기획에 참여했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늘 제 발표의 제목은 ‘재난, 웹의 경험, 그리고 보편적 접근성’입니다. 거창한 제목과 다르게 시각예술보다는 대중문화에서 포획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조금은 일반론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팬데믹 이후, 빠르게 소통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네트워크와 클라우딩 컴퓨터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고집해온 소통의 방식이 드라마틱하게 전환된 지금 일상의 회복을 주장하며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웹의 경험을 전통적인 창작, 소통, 그리고 배움의 방식에 대입하는 대신, 온라인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움의 경험을 다각화하기 위해 구동되는 도구로 웹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2020년부터 시작해 지금 현재까지 이 시기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과도기적 혼란을 겪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각예술이 매체에서 콘텐츠로 위치를 이동했음에도 미술관은 전시장과 촉각적 경험을 중심에 두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고수하며 웹을 단순히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급성 호흡기 질환의 범세계적 유행에 국공립 미술관은 장기간 휴관을 이어가던 중 온라인으로 전시 기록과 해설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온라인 전시를 기획하기에도 이르렀습니다. 미술관에 방문해 전시를 관람하는 것이 일상을 넘어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가 됨으로써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고 감각하는 전시를 본다는 오래된 정의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술관 그리고 전시란 신체는 유효할까요?’ 동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해 보고자 합니다.

MUSEUM after MUSEUM
약 500년 정도의 미래를 상상해도 이상하게도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바티칸 미술관의 풍경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우리는 미술관의 전형적 풍경에 익숙한 듯합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전시를 상상할 수 있고 심지어 상상 속의 전시가 실제 전시보다 좋은 경험도 종종 있습니다. 미술관 이후에 미술관을 그려보기 위해서 미래의 인류를 상상해보려고 하는데요. 상상을 위한 도구로서 1990년 두갈 딕슨의 소설 맨 애프터 맨1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가운데 보이는 인류가 500년 이후에 도래할 인류의 모습이라고 두갈 딕슨은 상상했습니다. 대체로 검은 피부와 가늘고 긴 신체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체온을 빠르게 식히기 위해 진화했는데요. 여기서 흥미롭게 보이는 것이 마치 영양류의 다리와 같은 발의 모양입니다. 이 발의 모양은 남아공의 육상 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가 착용해 화제가 되었던 플렉스 풋 치타의 상당히 유사한 것을 볼 수 있어 이러한 진화의 모습은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일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인류를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미래 기술에 관해 접근을 해보려고 합니다. 더 플라이는 1986년 개봉한 SF 호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1986년 작품은 리메이크작에 해당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저 방처럼 생긴 기기는 물체를 데이터로 전환해 전송시키는 장치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팩스와 같이 물건이나 신체를 전송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물체 전송 기술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구현되지 못했지만 동일한 데이터를 전송하고 출력하는 기술로써 3D 프린터는 유효한 기술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접근을 해보겠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2010년 발행된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자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인간을 산 채로 먹는 거인을 막기 위해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사는 가상의 세계관과 전투 장면이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본 작품에선 지금 화면에서 가운데 위에 있는 입체 기동 장치를 활용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거인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새로운 이동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애니메이션에서 현실로 돌아와 베네치아를 보시겠는데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들이 상식을 벗어난 거인이라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와이어를 통해 날아가듯 이동했다면 베네치아는 이민족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물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러한 삶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고요.

다음은 포켓몬고입니다. 포켓몬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이고 포켓몬고는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모바일 게임인데 이 게임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저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포켓몬고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동시에 구동되는데요. GPS에 기반한 위치 센서와 현실과 합성하기 위한 카메라 기술 및 기울기와 가속 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그러나 오랜 세월 우리 일상에 스며든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의 세계관이 현실과 동기화합니다.

2016년 출시된 포켓몬고와는 다소 시차가 있지만 1997년 일본에서 발생한 닌텐도 쇼크 혹은 폴리곤 쇼크로 불리는 사건은 포켓몬스터 전뇌 전사 폴리곤 방영 당시 적색과 청색이 빠르게 점멸하는 폭발 효과가 주 시청 연령인 다수의 아동에게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빛이 번쩍이는 효과가 시청하던 어린이들에게 발작을 일으킨 사건이죠. 이러한 닌텐도 쇼크는 가상공간이 브라운관을 통해 현실에 보낸 일종의 신호이자 현실에 개입한 상징적 사건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더는 현실과 가상이 화면을 경계로 온전히 분리되지 않고 상호 참조하고 동기화해 영향을 주고받게 된 것이죠. 브라운관 너머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대상화된 세계와 현실이 동기화되어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최신의 예시로 넘어왔습니다. 포트나이트는 2021년 8월 대규모 이벤트인 ‘리프트 투어 피처링 아리아나 그란데’를 개최하며 게임과 콘서트를 넘어 테마파크의 라이드 어트랙션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투어로 명명된 이 이벤트는 라이드 어트랙션이 가지고 있는 탑승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서사에 몸을 맡기고 전 세계의 플레이어와 스펙터클을 공유하고 현실 세계의 팝스타가 가상공간을 가로지르며 게임이기에 가능한 스케일 감각, 그리고 상호작용하는 연출 방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메타버스 그 자체로 정의되고 있는 포트나이트와 여기에서 보여드리지는 않지만 로블록스의 경우 제작사로부터 제공되는 서사나 이벤트의 비중보다는 유저가 스스로 만드는 플레이 방식 그리고 새로운 생활권으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다층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각예술 밖에선 이미 온라인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져서 가상화폐와 같은 경제가 긴밀히 연결된 일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시각예술은 여전히 돌아올 일상 돌아올 전시의 경험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레지던시 프로그램 〈GSR(Game-Sandbox-Residency)〉의 부분으로 웹에서 생성되는 세계를 전시장의 스크린에 투사하는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 전경, 2022. 사진: 홍철기.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웹의 경험, 그리고 보편적 접근성
역사적으로 미술은 타 분야를 흡수하며 확장해 왔습니다. 웹에서 참조한 파운드 푸티지와 수집된 장면을 그로 모아 핀터레스트적 무드보드로 제시하는 작업 방식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더는 시각예술의 매체 중심 사고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러한 레퍼런스들을 통해서 웹의 특성 중 하나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공유와 협업에서 보편적 접근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동시대 웹 환경에서는 한 방향으로 제공되는 서사나 이벤트를 따르기보다는 사용자 스스로 규칙을 설정하고 다층적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사용 환경을 설정하는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웹의 공유와 협업 기능을 통해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역전되고 수직에서 수평으로 배움의 경험이 전환될 수 있을까요? 시각예술의 형식이 공공 영역인 웹에서 참조한 자료를 편집하는 방향으로 이동했고 팬데믹으로 인해 웹이 기존 전시 공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전시에 확장된 신체로서 위상을 갱신했습니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기관의제인 ‘제작’에 맞춰 미술관의 기능인 수집과 연구, 전시와 교육의 바탕이 되는 ‘담론의 생산 조건이자 과정으로써 제작(production)’에 주목하는 전시 《그리드 아일랜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에서 데이터로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 형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창제작 플랫폼을 상상합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공유와 협업을 가능케 하는 웹의 잠재력을 전시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제작 플랫폼 구축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방식, 제작 개념을 제안합니다. 이를 위해 평면, 입체, 공간, 사운드 등 시각예술 매체를 게임의 구성 요소에 대입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세계(world)’를 생성하는 온라인 레지던시 〈게임-샌드박스-레지던시(GSR | Game-Sandbox-Residency)〉를 구축했습니다. 우리는 공간의 물리적 점유와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 기존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다음 세대 레지던시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물성에 기반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현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시도로써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구조를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전유하는 웹 플랫폼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입주자들은 이미지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만들어 작업 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샌드박스 레지던시는 웹에 기반한 다음 세대 레지던시이자 작업 도구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이며 동시에 이것은 그냥 게임입니다. 레퍼런스 중에서 미술과 근접해 있는 예시들을 잠시 소개해 드리자면, 이완 챙이라든가 피에르 위그의 작업들이 서로 간의 시차는 있지만 존재했고, 팬데믹 이후, 비교적 최근의 예시로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프로젝트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우리의 미술적 형식에 관한 기대감을 배신했기에 유의미한 레퍼런스일지는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소유와 분배, 그리고 접근성
제가 오늘 발표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두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소유와 분배인데요. 웹은 공유와 협업에 특화된 강력한 도구입니다.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활용해 공동의 작업을 생산한다면 작품은 누구의 소유가 되고 권리는 어떤 기준에서 분배될까요? 가상자산과의 결합으로 작품의 가치에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고 있는 현재 개인의 내밀한 세계와 독창적 표현 방식에 주목하는 전통적 시각예술의 방법론을 비켜서기 위해서는 공유와 단절 협력과 반목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위치를 더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접근성입니다. 팬데믹 초기 단절로 인한 소통의 공백을 염려했지만 통신 인프라와 스마트폰과 같은 콘텐츠 소비형 기기의 도움으로 인류는 예상보다 빠르게 간극을 극복했습니다. 웹은 단순히 정보를 게시하고 실제를 재현하는 수단이 아닌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그리고 보편적인 장소입니다. 변화한 환경에서 작가의 역할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변환하는 일종의 편집자로 그 위치를 이동했고 일방적 교육의 대상이었던 관람자는 웹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미술관의 능동적 주체이자 나아가 생산자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미술 외부에서 대중문화를 매개로, 핀터레스트식 구성을 통해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시각예술은 전통적으로 재현에서 추상으로 관조에서 상호작용으로 이동해 왔지만 증강현실과 같은 기술의 발전에도 전시 관람의 경험은 온라인, 웹이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한 지 30년이 지났고 이를 활용한 프로젝트는 대체로 하이퍼링크를 통해 정보에서 정보로 이동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국내 시각예술에서 웹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탐구한 유의미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촉발된 현 상황 이전에는 웹이나 SNS를 통해 전시장을 방문하는 직접 방문하는 전통적 전시 관람 경험을 보조하는 수단 혹은 소재 또는 광고의 매체로써 사용했을 뿐입니다.

제가 가상성, 웹에 위치하는 플랫폼을 상상하는 것은 전시에 관한 계몽적 미래주의적 선언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동시대 창작 환경에서 작가의 역할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적합한 방식으로 변환하는 것인데 웹의 시공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과거나 미래를 호출하거나 하나로 포개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현재를 의심하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과거나 미래, 환상 혹은 허황된 그 무엇일지라도 수집된 데이터에 대입해 결합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22년 1월 16일 세마 러닝 스테이션(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열린 〈공공미팅—배움의 전환(Public Meeting―Shift in Learning) 발표문을 보충하고 재편집한 원고입니다.


  1. Dougal Dixon, Man After Man: An Anthropology of the Future (London: Blandford Press, 199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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